,

윤리와 정치의 관계

박기순 충북대 철학과 교수

 

1. 정치는 윤리에 기초해야 하는가?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대화편인 『국가』는 제목이 알려주는 것처럼 국가의 본성을 탐구하고 논의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런데 이 물음은 그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제기된다. 왜냐하면 국가는 모름지기 정의의 원칙에 의해 통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의는 국가의 본성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의롭지 않은 나라는 나라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일까? 달리 말하면 국가는 무엇의 실현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 플라톤에 따르면 그것은 ‘전체의 좋음’이다. 일부 구성원에게만 좋은 어떤 것을 국가가 실천한다면 그 국가는 정의로운 국가가 아니다. 제도를 마련하고 법을 설립할 때 원칙이 되어야 하는 것은 모두의 좋음이다. 물론 모두에게 좋은 정책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두고 다양한 사람 혹은 집단 사이의 논쟁과 불화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 주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다. 그의 철학 전체는 바로 이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근본 동기로 해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면 결코 회의할 수 없는 옳고 그름의 절대적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기준과 관련하여 논쟁이나 불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 기준을 논의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그 일에 끼어들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말의 과잉으로, 말할 자격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의한 불필요한 말들의 잔치로 규정한다.

옳은 것은 인식될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한 그것은 불화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플라톤은 굳게 믿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원칙 혹은 사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이것이 플라톤의 철학 사상을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플라톤의 이러한 생각을 먼 과거의 것으로만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생각이 다양한 모습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희생자’ 혹은‘ 절대적 약자’의 프레임이 그것이다. ‘정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누군가가 ‘정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회의 약자나 희생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답한다면, 그는 본질적으로 플라톤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 플라톤의 논리를 “윤리주의”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실현해야 할 어떤 절대적 윤리가 있다고 가정되는 한에서 정치의 본질은 윤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윤리주의 정치론은 정치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이 정치의 봉쇄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