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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화폐론이 제기되는 이유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2008년 이후 여러 선진 자본주의국가가 실시하고 있는 양적완화 정책은 경제정책과 이론 부분에서 다양한 새로운 제안과 이론적 시도를 촉발했다. 72호(2019년 10월호 「현대화폐이론의 실제적 함의」)에서는 정부재정에 의한 완전고용 보장을 주장하는 “현대화폐이론”에 대해 살펴보았고, 지난 호에서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하여 모두에게 일시적으로 돈을 지급하거나 공적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성하자는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론”을 살펴보았다(2019년 12월호 「국가발권력을 활용한 경제정책 대안들」). 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서 간략히 소개한 바 있는 “주권화폐론”을 더 상세히 검토해 보기로 한다.

오늘날에는 중앙은행이 법정화폐를 창조하긴 하지만 유통 중인 화폐의 대부분은 상업은행이 대출을 통해 공급한 은행화폐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은 경제 내의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법정통화를 공급하고 상업은행은 대출을 통해 은행화폐를 공급한다. 주권화폐론은 상업은행의 화폐창조 기능을 없애고 국가가 발행한 법정화폐가 유통화폐의 역할을 전담하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주권화폐론이 제시하는 새로운 화폐제도에서는 국가가 재정지출이나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화폐를 경제에 공급한다.

1. 주권화폐란?

먼저 용어부터 정의하자. ‘주권화폐’란 법정통화를 말한다. 그리고 ‘법정통화’란 세금을 내거나 민간에서 부채를 청산할 때 국가가 그 수단으로 인정해 주는 국가가 직접 발행한 화폐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현재 널리 사용되는 화폐는 상업은행에 예금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 ‘은행화폐’다. 가계와 기업은 상업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그 돈을 요구불예금계좌에 넣어 두고 수표 발행이나 계좌이체를 통해 지불 행위를 할 수 있다. 은행화폐도 세금을 내거나 부채를 청산하는 데 사용되지만, 법적으로는 법정통화에 대한 청구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날 주권통화로는 상업은행의 지급준비금으로 불리는 비현금성 중앙은행화폐와 현금(지폐와 주화)을 들 수 있다.

현재 유통화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은행화폐다. 유로존의 경우 은행화폐가 82%, 주화가 1%, 지폐가 17%를 차지한다. 그런데 은행화폐는 상업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 항목에 기록되어 있는 안전하지 못한 화폐다. 은행화폐는 은행이 파산하면 정부가 예금보험을 통해 보장해 주더라도 그 자체는 일단 사라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지난 그리스 위기 때 그리스 사람들은 상당 기간 은행으로부터 돈을 인출할 수 없었다.

주권화폐론은 현재의 은행화폐를 법정통화로 모두 대체하자는 개혁안이다. 은행화폐를 법정통화로 대체하려면 은행의 신용창조 기능을 없애야 한다. 은행이 현재와 같이 예금의 일부만을 지급준비금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대출하여 은행화폐를 창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주권화폐론의 전제다. 그리고 주권화폐론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정부가 화폐를 발행할 것을 주장한다.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현재의 중앙은행 제도가 정비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전형적인 화폐발행 방식이었다. 근대로 들어와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때 정부지폐를 발행했으며, 케네디 대통령도 정부지폐 발행을 검토했다. 현재에도 미국에서는 재무부가 주화를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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