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데이트: 전 세계“ 기본소득 실험들”

박선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

 

작년부터 국내외의 여러 매스미디어에서 다양한 “기본소득 실험”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소식들은 기본소득이 바로 지금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그 실험들 각각의 현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모두의 토론 주제가 될 만한 문제들을 끌어내는 것이 이번 글의 목적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기본소득 실험들”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웹사이트basicincome.org의 ‘기본소득 뉴스Basic Income News’ 코너에 실린 케이트 맥팔런드Kate McFarland의 2017년 5월 15일자 글「지금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실험들(과 기본소득 실험이라 불리는 것들): 개괄Current Basic Income Experiments (and those so called): An Overview)」을 발췌한 것이다. 따라서 성남시 청년배당을 비롯한 국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는 다루지 않는다.

 

1.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2017년, 핀란드 중앙정부는 기본소득이 노동시장 참여에 미치는 효과를 조사하기 위해서 켈라Kela(핀란드 사회보장보험공단)에서 설계하고 총괄하는 2년짜리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 집단은 2천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2016년 11월에 켈라에서 실업수당을 받은 25~58세의 개인들(전국적으로 약 17만5천 명) 중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사람들이다. 선택된 사람들은 기본소득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참가자 2천 명은 매달 560유로(약 590US달러)를 조건 없이 지급받고 있다. 핀란드의 현행 실업부조 프로그램들과 달리, 이 시범 시행프로그램은 수급자들에게 구직 활동 중임을 증명하거나 제안된 일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560유로 전액을 계속 받게 된다. 따라서 모든 핀란드인들을 대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표본이지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이라는 점은 기본소득의 정의에 맞는 특징이다. 비록 살아가는 데 충분한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말이다.

실험은 2017년 1월 1일에 공식 개시됐고 1월 9일에 첫 지급금을 배부했으며, 2018년 12월 31일까지 계속될 것이다.

켈라는 실험 집단의 결과를 통제 집단의 결과와 비교할 것인데, 이 통제 집단은 모집단(2016년 11월에 켈라에서 실업수당을 받은25~58세의 개인들)의 나머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분석의 초점은 노동시장 참여에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실험 집단과 통제 집단 사이의 고용률 차이를 분석한다. 최근 설명에 따르면, 약물 치료 지출, 의료서비스 이용, 소득 변화에 대해서도 추적 관찰할 것이라고 한다.

관찰자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 켈라는 실험 기간 동안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있고, 2018년 말에 실험이 끝나기 전에 어떠한 결과물도 내지 않을 것이다.

 

2. 기브다이렉틀리의 케냐 기본소득 실험

미국에 기반을 둔 자선단체인 기브다이렉틀리GiveDirectly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케냐의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조건없이 현금을 이전하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마을 200곳 주민들(다 합치면 약 26,000명)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다.

실험은 2016년 10월에 한 마을에서 시작되었는데, 현재 그 마을의 주민 95명 모두가 매달 약 23US달러(21유로)의 현금을 조건 없이 받고 있다. 이 금액은 케냐 농촌 지역 평균소득의 대략 절반에 해당한다. 이 현금 지급은 이 마을에서 12년 동안 계속 이뤄질 것이다. 현재는 이 최초의 “시험 마을test village”만 기본소득을 받고 있다. 기브다이렉틀리의 목표는 2017년 9월에 완전한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완전한 연구에서는 마을 300곳이 네 집단 중 한 집단으로 무작위 배정될 것이다. 네 집단이란 모든 주민이 조건 없이 현금을 받는 일정 방식의 실험 집단 세 개와 주민 중 누구도 현금을 받지 않는 통제 집단한 마을이다.

첫 번째 실험 집단에는 마을 40곳이 속하게 될 것인데, 그 마을 주민들은 (최초의 실험 집단에서처럼) 12년 동안 매달 약 23US달러의 현금을 받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실험 집단에는 마을 80곳이 속하게 되고, 주민들은 매달 첫 번째 집단과 같은 액수의 현금을 받게 되지만, 2년 동안만 받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실험 집단 또한 마을 80곳이 속하게 되는데, 주민들은 2년 동안의 기본소득과 똑같은 액수를 한꺼번에 받게 될 것이다.

기브다이렉틀리가 자체 웹사이트에서 설명하듯,“ 첫 번째 마을 집단과 두 번째 마을 집단을 비교하는 것은 미래의 지급에 대한 보증이 오늘의 결과들(예를 들면, 창업 같은 모험을 하는 것)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혀 줄 것이다. 두 번째 집단과 세 번째 집단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주어진 액수의 돈을 나누어 지급하는 것이 그 돈의 효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단체는 또한 “경제적 상태(소득, 자산, 생활수준), 시간 사용(노동, 교육, 여가, 공동체 참여), 위험 감수(이주, 창업), 젠더 관계(특히 여성 역량 강화), 삶에 대한 포부와 전망” 등에 관한 결과들을 조사할 것이라고 한다.

기브다이렉틀리는 자료(예를 들면, 이 첫 시범 시행 참가자들의 첫 설문조사에 대한 반응들)를 모으면 대다수를 공개하고 있고, 일이년 후에 첫 실험 결과들을 책으로 펴내려고 한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황제와 신 포도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지금 기억하기에, 맨 처음 가져 본 철학 책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받은 상에 딸려 온 상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딸려 왔다고 표현했지만 상장보다야 상품에 마음이 끌리는 법. 책이 귀하던 시절에 상품으로 받은 책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노란색 표지에 비닐 커버가 씌워져 있어서 매끄러운 감촉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로마의 황제가 썼다는 점이 흥미를 끌기는 했지만, 『명상록』이라는 제목이 썩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책을 펼쳐 보니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 읽고 싶은 마음이 또 한 번 꺾였다. 그래도 몇 줄 읽어 보았지만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까까머리 남학생과『명상록』이 어울린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어린 내가 읽어서 도움 안 되는 내용이 많을지도 몰라.’ 아마 이런 식의 합리화도 했을 것이다. 비닐 커버를 씌우는 기술이 좋지 않아 비닐 커버에 갇힌 표지가 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명상록』도 표지가 비닐 속에서 울고 있었다. 나와『명상록』이 어긋난 것처럼.

그 뒤에 철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명상록』을 읽을 기회가 오지는 않았다. 한참 뒤에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서는 한번 읽어 봐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회색빛 전투 장면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 한가운데서 마치 달관한 듯한 태도로 묵묵히 있는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명상록』을 찾아 읽지는 못했다. ‘어차피 좋은 번역본도 없을 거야,’ 이런 자기 위안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핑계를 대며 뒤로 미뤄 둔 책이 어디 한두 권이겠는가?

 

황제의 조언

『명상록』을 읽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믿을 만한 번역본이 나온 지도 오래 되었고, 사 두고 오랫동안 묵혀 두는 일이 민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꼭지의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121~180)는 로마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스토아철학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명상록』은 후대에 많은 학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지도력을 과시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다고 내비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80년대에 전두환이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는 것처럼 ‘코스프레’를 펼친 적이 있는데, 우리들끼리 실컷 조롱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의 빌 클린턴에게는 『명상록』이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 클린턴이 『명상록』을 즐겨 읽으며 삶의 교훈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고결한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스토아주의 철학자의 책을 클린턴이 제대로 읽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르윈스키 스캔들을 생각하면 클린턴은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어떤 비평가의 말마따나, “왜냐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성적 열정의 무분별함을 설교했던 반면 빌 클린턴은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명상록』은 모두 열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의 구성이 특이하다. “나의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나는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 이 첫 문장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이 가족들과 여러 스승에게 빚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일관성 있게 서술된 점으로 미뤄 볼 때 1권은 따로 쓰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권 끝에는 “그라누아 강변의 과디족 사이에서 적다,” 2권 끝에는 “카르눈툼에서 적다,” 이렇게 밝히고 있어 이 두 권은 전장에서 쓴 글임이 분명하다.) 나머지 권들은 모두 짧은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가지 필사본에 제목으로 적혀 있다는 “자기 자신에게”처럼 이 책은 자기 자신에게 쓴 수상록 같은 책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너”는 저자 자신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우선 『명상록』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경구들이 가득했다. 몇 가지 경구를 먼저 읽어 보자.

네 안을 들여다보라. 네 안에는 선의 샘이 있고, 그 샘은 네가 늘 파내어야 늘 솟아오를 수 있다. (7권 59)

불의의 공격에 대비하여 꿋꿋이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삶의 기술은 무용의 기술보다는 레슬링의 기술과 더 비슷하다. (7권 61)

네가 화가 나 폭발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8권 4)

남의 과오는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라. (9권 20)

최선의 복수 방법은 네 적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6권 6)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유명한 대목도 있다. 마르쿠스의 풍부한 감수성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수반되는 현상들도 우아하고 매력적인 면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빵을 굽다 보면 몇 군데 균열이 생기는데, 이런 균열은 어떤 의미에서는 빵 굽는 사람의 의도에 어긋나지만 우리의 주목을 끌어 나름대로 식욕을 돋운다. 무화과도 가장 잘 익었을 때 갈라지고, 농익은 올리브도 썩기 직전에 아름답다.

이처럼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것들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얼핏 보기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 모습도 마르쿠스는 아름답다고 이어서 말한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왜 일해도 가난한가?

-대선 직전 실시한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

 

구교현 평등노동자회 사무국


1. 들어가며

새 정부 들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선언한 상태에서 민간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하나둘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 비정규직노동자의 현실과 요구를 정확히 진단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평등노동자회는 대선 직전인 4월 한 달간 네 개 비정규직노동조합과 함께 비정규직노동자와 관련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비정규직노동자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또한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고 생활비를 낮추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생산 영역뿐만 아니라 재생산 영역에서도 노동자를 수탈한다. 생산 영역에서는 저임금과 불안정 일자리로, 재생산 영역에서는 주거비·부채를 비롯해 교육·의료·통신 등 사회서비스를 통해 광범위한 수탈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노동자들은 일정 정도 임금이 인상된다 하더라도 빈곤을 벗어나기 힘든 상태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연대 운동을 구상하고 있는 평등노동자회는 재생산 영역에서 벌어지는 수탈에 저항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터의 문제는 제각각 사안이 다양하므로 웬만한 장기 투쟁을 벌이지 않고서는 연대 운동이 어렵다. 그러나 생활 이슈는 불안정노동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므로 연대의 가능성이 확장된다. 평등노동자회는 이번 조사를 시작으로 생활 문제 각각에 대해 보다 면밀히 조사하고 대안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

 

2. 조사 개요와 결과

이번 조사는 평등노동자회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조사 기간은 2017년 4월1일 ~ 4월 30일이며, 결과 정리에 약 3주가량이 소요되었다. 조사 대상은 수도권 지역 비정규직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전국여성노동조합, 희망연대노동조합) 조합원이며, 조사는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사업장마다 조사원들이 방문해 구조화된 설문지에 응답자가 직접 기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문항 수는 총 48문항이며 전체 응답자는 372명이었다. 조사 대상은 한국의 대표적인 비정규직 직종 중 임금, 성비, 연령 등을 고려해 평균 수준에 가까운 비정규직노동자들로 선정했다. 성비는 전체 비정규직노동자의 남녀 구성이 1 대 1.5인 것을 고려해 35 대 65로 구성했다. 연령은 전체 비정규직 중 비율이 높고 생활 문제에 민감한 40세 이상을 주로 선정했다(응답자 가운데 60세 이상 43.0%, 50~59세 23.4%, 40~49세 21.8%, 39세 이하 11.8%). 응답자의 업종별 분포는 아래의 <표 1>과 같다.

임금은 실수령액이 151만원으로 나타나 전체 비정규직의 평균임금 151만원(2016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비해 14만원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응답자들이 노조를 통해 4대보험을 쟁취하고 임금을 꾸준히 높여 왔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따라서 평균적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실태는 본 조사 결과보다 나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일해도 가난한 ‘워킹 푸어working poor’ 상태라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본인과 배우자의 소득, 공적이전 소득 등을 합한 금액보다 기본 생활비가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기본 생활비에는 문화·여가, 저축·보험, 교통비 및 기타 서비스 이용료 등은 포함하지 않아 이를 위해선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가족 전체를 합한 소득이 100일 때 기본 지출(의식주·공과금·교육비·의료비)은 103.85로 나타났다.

임금수준별로 나눠 보면, 임금이 가장 높은 직종의 응답자들은 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91.12로 조사된 반면, 임금이 가장 낮은 직종의 응답자들은 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119.5로 조사됐다. 이는 소득과 관계없이 필수적인 소비지출은 (아무리 저소득층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응답자의 10명 중 6~7명이 부채가 있다고 응답했으며, 금액은 평균 6천5백만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주거 형태별로 보면, 자가 거주자의 60%, 전세 거주자의 73%가 부채가 있다고 응답했다. 부채의 주요 원인은 주택 마련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2017년에 바라본 6월항쟁

안효상 편집주간

 

거대한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을 거쳐 사람들이 바라는 ‘민주 정부’가 탄생한 시점이 6월항쟁 30주년 직전이라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간계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가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한 지난한 투쟁의 시간이었지만, 어느 정도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될 가능성을 보인 것은 6월항쟁 덕분이었다. 6월항쟁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다수가 공통의 목표로 싸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다수가 공통의 목표로 싸운 이번 촛불시위 속에서 6월항쟁이 연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더 나아가 ‘이번 일로 유신이 끝났다’라는 평가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지난 십 년 간의 정부가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도 6월항쟁과의 유비는 적절해 보인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이는 면에서만 유비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6월항쟁 직후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지면서 민주주의 체제의 본질이 드러나긴 했지만, 여야로 구성된 8인위원회에서 급조된 87년 헌법과 이에 기초한 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를 매우 형식적이고 통제된 한계 내에 머물게 했다. 이번에 벌어진 촛불집회의 장기적인 효과가 어떠할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지만, 6월항쟁으로 등장한 87년 체제의 여러 가지 한계가 일정 부분 6월항쟁의 성격과 진행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촛불집회가 곧바로 대통령 선거와 새로운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로 이어진 것도 이번 사태의 제한된 결과를 예감하게 한다. 그러니 꼭 30주년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건을 다시 보는 것은 어떻게해서든 현재적인 의미가 있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 1987년 6월항쟁으로

짧게 보면 6월항쟁은 1987년 1월에 있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을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정치적, 사회적 연합의 형성과 대중적 동원의 감성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길게 보면 1980년 광주항쟁에 대한 군부의 폭력적인 진압이 이미 씨를 뿌렸다고 할 수 있다.

신군부가 박정희 장군과 달랐던 점은 권력 장악 자체가 대중에게 부당한 것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박정희 신화’에서 잘 드러나지만 박정희의 쿠데타와 집권은 사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 요소들이란 반공을 기반으로 안보와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 발전이었다. 이에 반해 전두환 장군이 이끄는 신군부는 유신 체제의 연장 시도 및 개인들의 권력욕 이외에는 정당화할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광주의 피를 먹고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지만 그 피는 서서히 퍼지는 독이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만회하고자 정권이 시도한 것이 1983년 말부터의 ‘유화 조치’였다. 제5공화국 헌법이 대통령 7년 단임제를 채택한 것은 유신 체제를 연장시키면서도 개인의 권력욕을 실현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임시적인 조치였던 것이 권력 구조가 되었을 때 이를 정당화하는 전략과 유지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했고 이것이 ‘유화 조치’로 나아간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정치 피규제자 해금, 구속자의 석방, 사면, 복권, 제적생 복교, 학원 상주 경찰의 철수, 해직 교수 복직 등으로 이루어진 유화 조치는 권력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방책이었다.

이렇게 통제된 자유화는 이중의 효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정권의 의도대로 장기적으로 중산층의 포섭을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만 그러한데, 왜냐하면 당장은 6월항쟁의 또 다른 직접적 계기였던 1987년 4·13 호헌 조치에 대한 중산층의 항의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6월항쟁과 그 이후 기성의 야당 정치인과 종교계를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 내로 중산층을 포섭하는 데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효과는 반체제적 동원이 좀 더 넓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유화 조치 이전까지는 일부 헌신적이고 전투적인 학생들의 소규모 운동만이 가능했지만 이제 정치적 동원이 좀 더 넓게 좀 더 쉽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마련된 것이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