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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가 아닌 권리로서의 기본소득, 어떻게 해야 시행 할 수 있을까?

김태호 발행인

기본소득. 일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
가이 스탠딩 지음, 안효상 옮김 | 2018년 7월 | 창비

1.

처음으로 번역된 가이 스탠딩의 글을 접한 한국 독자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사람은 그랬다. 「CIG, COAG, COG:논쟁에 대한 비평」(『분배의 재구성. 기본소득과 사회적 지분 급여』,나눔의 집, 2010년). 한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막 시작되던 시점에 그 글은 제목부터 너무 전문적이어서 쉽게 읽을 수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책은 2006년에 나온 “Redesigning Distribution. Basic Income and Stakeholder Grants as Cornerstones for an Egalitarian Capitalism”을 번역한 것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분배를 재구성할 방법으로 기본소득이 더 나은지 사회적 지분 급여가 더 나은지를 놓고 벌인 토론에서 발표된 글들을 모은 책이다.

가이 스탠딩 글 제목에 나오는 “CIG”란 Citizenship Income Grant, 즉 “시민소득급여”의 약자다. 기본소득이라 봐도 좋다. “COAG”란 Coming-of-Age-Grant(“미래 세대를 위한 수당”)의 약자이며, “사회적 지분 급여 혹은 자산급여 구상”을 말한다. 21세가 되는 국민에게 일정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해 삶을 준비할 수 있게 하자는 기획이다. 이 둘이 논쟁의 두 축이다. 여기에 더해 스탠딩이 주장하는 “COG”란 Community Capital Grant, 즉 “공동체 자산급여”를 말한다.

가이 스탠딩은 CIG와 COAG를 비교할 때는 CIG를 지지하지만, 더 나아가 COG, 즉 “공동체 자산급여”를 새로운 대안으로 주장한다. COG의 예로는 초기의 스웨덴 임금노동자 기금이 있고, 이제 『시대』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알래스카영구기금이 있다. “COG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장, 즉 경제적 민주주의의 확장이며 실질적인 자산 분배일것이다.”(276쪽)

2.

가이 스탠딩은 1948년 영국에서 태어나 1977년에 캠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06년까지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활동했고, 특히 후기에는 사회경제보장프로그램Socio-Economic Security Programme을 마련하는 작업의 책임자였다. 그의 글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나쉬대학Monash University에서 노동경제학 교수 지위도 얻었지만, 2006년부터는 영국의 배스대학University of Bath에서 강의를 했고, 2013년에 런던대학University of London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인도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 실험에 관여해 많은 연구 성과를 냈다. 2015년 영국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 당선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약력은 BIEN과 관련된 것이다.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asic Income European Network 창립에 참여했고 공동의장이 되었다. ‘좋다’는 뜻의 프랑스어 ‘bien’을 단체 이름의 약자로 하자고 한 사람이라고 한다(최광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2011년, 박종철출판사, 190쪽).

그런 가이 스탠딩이 기본소득과 관련된 논의를 정리한 책을 냈고, 그 책이 얼마 전 한국에서 번역됐다. 한국어판 뒤표지에 적혀 있는 “가이 스탠딩이 말하는 기본소득의 모든 것”이라는 문구가 과장이 아니라 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그의 다른 책을 먼저 다루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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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철학과 고딕건축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서양의 미술 작품을 깊이 있게 읽어 내는 작업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작품을 읽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1892~1968)의 설명을 들어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파노프스키는 『도상해석학 연구』에서 미술 작품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지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미술 작품을 어떻게 분석하는가

길을 걸어가는데 건너편에서 아는 사람이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한다. 순전히 시각 작용의 관점에서만 보면 우리는 한 “집합체의 세부요소들”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모습을 본다. 색과 형태를 지닌 한 집합체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집합체를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물”(내가 아는 사람)로 확인하고 세부 요소의 변화를 “사건”(모자를 벗는 행위)으로 받아들이면 이제 “형식적인 인식 행위”를 넘어서 의미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처럼 어떤 행위자가 특정한 행동을 할 경우 우리는 곧장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을 파노프스키는 “사실 의미”라고 부른다.

이렇게 확인된 물체와 사건들은 내 마음에 특정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표정이나 몸짓을 보고 나에 대한 그의 감정 상태가 살가운지 머쓱해하는지 따위를 곧장 알아차릴 수 있다. 일종의 감정이입 상태가 되면서 심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또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므로 이것을 “표현 의미”라고 부른다. 아는 사람이 모자를 들어 올리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림과 동시에 심리적 반응이 일어나므로 사실 의미와 표현 의미를 한 범주로 취급하여 “일차적 의미” 또는 “자연적 의미”라 하자고 파노프스키는 말한다.

그런데 모자를 벗는 일을 인사 행위로 알아차리게 된다면 이제 전혀 다른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파노프스키는 말한다. 사실 모자를 벗는 인사법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다. 서양 고유의 인사법이기 때문이다. “무장한 병사들이 헬멧을 벗어 평화적 태도를 보이며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던 중세 기사들”의 습성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은 이런 행위가 “공손함을 뜻하는 기호”임을 알지 못한다. 어떤 행동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특정 문화의 고유한 관습과 문화 전통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이런 이차적 또는 관습적 의미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일차적(자연적) 의미는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이차적(관습적) 의미는 지적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파노프스키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나의 친지가 한 행동은 이렇듯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연스러운 사건을 구성하고, 분위기와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며, 관례에 따른 인사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파노프스키, 『도상해석학 연구』, 24쪽)

그런데 여기에 더해 그 행동은 그의 ‘인격’을 드러내주기도 한다고 파노프스키는 덧붙인다.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사회적 교육적 배경은 무엇이며 사회적 경력과 현재의 상황이 어떠한지가 그의 인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며 아울러 “사물을 관조하고 주위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이 될 것이다. 흔히 우리가 세계관이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단지 그런 징후가 드러날 뿐이라고 파노프스키는 말한다.

단순히 이 행동 하나를 근거로 해서는 그 사람의 내면적 초상화를 그려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유사한 수많은 관찰 결과를 서로 조합하고, 그가 살았던 시대, 국적, 사회계급, 지적 전통 등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연관시켜 해석해야만 그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적 초상화에서 명료히 드러나게 될 질적 요소들은 각각의 개별 행동에도 암암리에 내재해있다. 그래서 거꾸로 모든 개별 행동에서 그러한 질적 요소들을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책, 25쪽)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일은 이를테면 내면의 초상화를 그려 내는 작업이 된다. 그 사람을 형성해 온 배경과 역사 를 샅샅이 살펴야 하는 한편, 개별 행동에 스며 있는 질적 요소들을 해석해 내기도 해야 한다.이런 식으로 발견되는 의미를 파노프스키는 “본래 의미”라고 말한다. 앞에서 말한 일차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가 현상에 해당한다면, 본래 의미는 본질에 해당한다.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시각이 전달하는 의미 아래 숨겨져 있는 본래 의미를 찾는 작업이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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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투쟁에 내몰리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문재인 정부의 경제 및 고용정책의 민낯

문재인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구조화된 극단적 노동유연화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패러다임을 타파하기 위해 내세운 ‘소득 주도 성장론’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첫째, 국제수지 흑자 행진이 지속되고 심지어 지난 5월 기준 경상수지 흑자가 86억8천만달러로 2017년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한국은행 2018년 7월 5일 발표), 민생에 깊숙이 영향을 주는 고용 지표는 거꾸로 가고 있다. 20∼30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에 따라 동일 연령대의 취업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해도 40∼50대 중장년층의 제조업, 서비스업 취업자 수의 감소는 통계청장을 교체할 만큼 요란법석을 떨어도 별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구조적 특성을 보인다.

둘째, 2년 연속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와 고용 악화의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은 프레카리아트화(불안정화)된 노동시장에서 불안정노동자들의 소득 및 사회안전망 개선을 통해 소득분배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그러나 소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에 따라 노동소득률(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조차 별로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재벌과 대기업의 하청업자 노릇을 하던 정치인과 신자유주의자들은 소득 주도 성장론이 마치 경제 침체의 핵심 원인을 제공한 주범이라도 된 듯 이 정책의 철학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랫동안 시장에서의 적자생존 상황을 방치해 놓고 정치적으로만 이용해 왔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수호자 노릇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다. 《뉴스타파》에 보도된 삼성 장학생 명단으로 곡학아세의 전형적 인물이 된 어느 학자에게도 시장의 ‘을’을 대변하는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니, 소득 주도 성장론의 정치적 효과는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문재인 정부 스스로 불러온 바가 크다. 최저임금 인상폭 때문에 아우성을 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정치적 불안감 때문에 올 초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시키면서 소득/임금 주도 성장에 대한 회의론에 불을 지폈고, 그렇다고 이를 보완할 만한 여타 산업정책은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한 채 창조경제와도 별 차별성을 보이지도 않는 ‘혁신 성장’의 허울 아래 고용정책의 미래도 가늠할 수 없는 4차산업혁명 논의만 무성하니 정부의 경제정책과 고용정책에 대한 신뢰가 생길 리 만무하다.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 이후 금융시장 주도적 신자유주의 경제 패러다임으로 만신창이 된 자본주의가 1960년대 이후 장기 침체에 들어선 자본주의의 수요 측면을 만회하기 위해 기술 주도적 산업구조조정(소위 ‘4차산업혁명’패러다임을 표방한 새로운 슘페터주의)이나 노동생산성 증대(최저임금을 비롯한 노동소득률 재조정), 혹은 생태친화적 발전 패러다임 등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자본주의 전환의 시도가 이루어지는 마당에, 소위 ‘촛불혁명’의 유산으로 탄생했다는 문재인 정부는 노동 친화적 경제 패러다임은커녕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형국이다. 아래에서는 간략하게 그 원인과 대안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 이 글에서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본 가치를 검증할 수 있는 노사 관계법이 아직 논의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여 노동정책에 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경제정책과 고용정책(일자리정책)에 논의를 집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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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부진의 진상과 원인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대안’부소장

1. 머리말

최근 고용 부진을 둘러싸고 문재인 정부와 보수 진영이 크게 충돌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문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고용 참사’를 낳았다며 정부의 정책 기조인 ‘소득 주도 성장’을 전면 철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고용 부진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와 제조업 경기 악화에 따른 것이라며 정책 기조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실제로 고용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다. 처음부터 청와대 주도의 소득 주도 성장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관료 출신의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보수적 여론의 지원을 배경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유보할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하며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수정을 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과 함께 ‘혁신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현 정부는 여러 측면에서 보수 진영과 다양한 진보 진영의 요구를 절충하는 방식으로 정국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소득 주도 성장은 서민 경제를 지원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지만, 혁신 성장은 “과도한 서민 위주 정책”에 대한 재계와 보수층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정책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친재벌 행보를 통해서 보수층의 반발을 무마하는 방식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 진영은 고용 사정의 악화를 빌미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최소한의 친서민 정책까지 포기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사실 정부가 말하는 소득 주도 성장은 내용이 모호하며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외에는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득 주도 성장이 문재인 정부의 지향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 진영은 고용 부진을 이유로 현 정부의 정국 주도권에 상처를 내기 위해서 집요하게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러면 보수 진영이 주장하듯이 최저임금의 인상이 현재의 고용부진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을까? 사실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나 보수 진영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의 고용 사정을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검토해 보고, 고용 지표의 부진을 낳은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악화되는 고용 지표

보수 진영이 고용 참사의 대표적인 지표로 내세우는 것이 월별 취업자 수 증가 폭의 급격한 둔화다. 통계청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고용 통계(e-나라지표)에 따르면, 지난 2017년까지만 해도 취업자가 전년도 같은 달에 비해서 매달 최소 30만 명 이상 증가했는데, 2018년 2월 들어서부터 그 수치가 10만 명대로 떨어지더니 7월에는 5,000명 수준으로 급락했고 8월에는 3,000명으로까지 하락했다. 이것이 보수 언론이 말하는 ‘고용 참사’의 대표적인 지표다.

보수 진영이 이 지표를 유난히 강조하는 이유는 이 지표가 사태를 실체보다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는 착각을 가져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월별 취업자 증가 수는 앞 달과 비교한 것이 아니라 전년도의 같은달과 비교한 수치를 말한다. 따라서 2017년에 매달 취업자가 평균 30만 명 이상 증가했다는 말은 2017년을 합쳐서 360만 명 이상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017년 특정 달의 취업자 수를 2016년 같은 달의 취업자 수와 비교했을 때, 취업자 수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12월을 기준으로 한다면, 2017년 취업자수는 2016년에 비해서 25만 7천 명이 늘어났다.

물론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취업자 수의 증가가 둔화된 것은 분명하다. 2018년 1월의 경우 2017년 1월에 비해 취업자가 33만4천 명이나 많았는데, 2018년 8월의 경우 2017년 8월에 비해 불과 3,000명 많은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보수 진영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같은 정부 정책 원인 이외에 고용 지표의 악화를 설명할 길이 없다”라고 주장한다(「일자리 정부의 일자리 붕괴」, 『중앙일보』 2018년 9월 13일). 보수 언론은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까지 고용 부진의 원인으로 돌린다(「KDI, 정부와 다른 ‘고용참사’ 결론」, 『조선일보』 2018년 9월 13일).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을 감소시켰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보수 진영은 고용 부진을 빌미로 문정부가 추진한 정책 전반을 문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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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를 ― 온국민기 본소득운동본부 활동을 돌아보며

용혜인 기본소득정치연대 공동대표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를 위해 모이다

2017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이 벌어진 지 37주년이 되는 날이었죠. 그리고 국정 농단에 분노해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대통령 선거를 통해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9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제37주년 5·18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부터 이슈가 되어 왔던 개헌이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왔던 순간이었습니다.

기본소득을 의제로 한 대중운동의 필요성을 고민하고 있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몇몇 청년 회원들은 30년 만에 개헌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사회적 논의가 널리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합의하는 개헌 과정에서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구체적인 모델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기본소득을 지지하면서도 함께 힘을 모으지 못했던 지난 시기들을 되돌아보며, 우리에게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을 모아 내는 것을 목표로 기본소득 개헌운동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뒤인 6월 17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회에서 기본소득 개헌을 위한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 추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약 일주일 뒤인 6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본소득이 포함된 개헌안을 공개했습니다.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의 워킹 그룹을 형성했던 청년들은 신이 났습니다. 아직 많은 국민이 기본소득을 알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국가인권위 개헌안을 보면서 최근 기본소득 논의 확대에 힘입어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가 이번 개헌 과정에서 완전히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 기본소득 개헌운동을 제안한 청년 회원은 다섯 명이었지만, 어느새 워킹 그룹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기본소득 기본권’에 동의하는 전국의 시민들을 너르게 모으기 위해 전국을 돌며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직접 만나 기본소득 개헌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의 발기인으로 개헌운동에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를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는 전국을 돌며‘ 기본소득 개헌’을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7월 17일, 대전, 청주, 전주, 부산, 대구, 인천, 수원, 광주, 목포의 시민들을 만나기 위한 1차 전국 투어를 떠났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여러 지역에서 기본소득 개헌운동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를 불러주셨고 천안, 고양, 창원, 울산, 제주,서울까지 포함하여 총 15개 지역에서 기본소득 개헌운동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지역에서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를 불러 주셨고, 생각보다 많은 시민이 설명회 자리에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기본소득 개헌운동을 제안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회원들,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채택한 노동당, 녹색당, 우리미래의 지역 당원들, 그리고 기존에 연결 고리를 갖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분들을 기본소득에 동의한다는 한 가지 공통점을 통해서 만나는 일은 정말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의 발기인으로 함께하겠다고 힘을 모으는 장면을 보는 것은 정말 가슴 뜨거워지는 일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국에서, 그리고 온/오프라인에서 총 543명의 시민이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의 발기인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기본소득 개헌을 지지하는 개인들을 모아내는 것과 함께, 각 단체와 세력이 지지하는 구체적 기본소득 모델을 넘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단체들의 힘을 모으고 기본소득운동 세력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도 있었습니다.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라는 간단한 명제에 동의하는 단체들을 모아 내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에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많은 단체가 모이지는 않았지만, 제안 단체였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포함해 개혁연대민생행동, 문화연대, 소박한 자유인, 알바노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청년좌파(현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청년초록네트워크, 평등노동자회까지 아홉 개의 단체가 힘을 모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의 참가 단체로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각 지역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했듯 노동당, 녹색당, 우리미래까지 세 개 진보정당의 당원들이 모여 힘을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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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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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으로 국민주권을 지키려는 맥도날드 라이더

최저임금 1만원

최저임금 1만원.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 개정판
박정훈 지음| 2018년 7월 | 240쪽 | 박종철출판사

김태호 발행인

1.

2012년 대통령 선거에 한 여성 청소 노동자가 후보로 등록했다.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 지부장 김순자. 선거운동본부 ‘순캠’은 비정규직노동자를 후보로 내세운 선본답게 “최저임금 1만원”, “온 국민 안식년 제도”, “기본소득”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얻은 표만 보자면 커다란 의미를 남겼다고 할 수 없겠지만, ‘순캠’에 모였던 젊은이들의 이후 운동은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2013년 1월 1일 ‘비정규불안정노동자와 함께하는 알바연대’(‘알바연대’)의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에는 단 한 명의 기자도 없었”다(182쪽).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알바연대는 새벽에 편의점이나 PC방을 돌며 알바를 만나 실태를 조사했고, 세상에 왜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원은 되어야 하는지를 알렸다. 그리고 2013년 8월 5일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이 설립됐다.

2014년 3월에 나온 박정훈의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은 알바연대의 활동을 알리고 ‘최저임금 1만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책이었다. 기획자로 되어 있는 “권문석”은 알바연대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최저임금 1만원’ 운동에 앞장서다 2013년 여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2014년에 나온 그 책의 개정판이다. “낡은 통계자료들을 최근 통계자료로” 바꾸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예전보다 많이 오르면서 등장한 새로운 논쟁 지점”을 추가했다(11쪽).

2.

지금도 그런 용어가 쓰이는지 모르겠으나, 1980년대 운동권에는 ‘시각 교정용 도서’라는 것이 있었다. 주입되어 지니고 있던 생각을 뒤흔들 만한 책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로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감추어져 있던 사건을 파헤치거나 처참한 사회 현실에 대한 고발을 담은 책이었다. 결국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책을 그렇게 불렀다.

초판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이 그랬듯이 개정판 『최저임금 1만원』도 경어체로 되어 있다. 차근차근 이야기하며 독자에게 손을 내미는 듯한 분위기다. 말하자면 이 책은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이 시대의 ‘시각 교정용 도서’로 기획된 듯하다.

3.

제1장(“알바생 vs. 알바노동자”)은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국 사회에서 “알바”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묻고 있다. “망한 인생의 상징일까? 자유의 상징일까?”

저자는 “알바노동 자체에 이중적인 성격이 존재하기도”(31쪽) 한다고 본다. 수입과 고용이 안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처지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정규직보다 자유롭다는 것이다. 원하는 시간만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가이 스탠딩이 프레카리아트를 두고 “희생자로서의 정체성과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이라는 이중 정체성”(『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 박종철출판사, 12쪽)이라 한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아울러 저자는 “알바생”이라는 표현에 담긴 편견을 폭로하고 “알바노동자”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알바노동”이 “학생이 부업으로 하는 일쯤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34쪽). 실제로 현재 알바노동자는 학생 연령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알바생”이라 여기면서 여러 갑질이 벌어진다. 권문석의 삶을 다룬 얼마 전에 나온 책 제목이『‘알바생’ 아니고 ‘알바노동자’입니다』다.

이런 식으로 “이데올로기”가 어떤 효과를 낳는지를 필자는 다른 예로도 보여 준다. “청소 노동자는 한 시간 7,359원, 이건희는 하루 3억원이 당연하다?”, “노동조합은 빨갱이가 하는 짓?”, “일은 군필자가잘한다?” 필자는 이런 것들을 “이데올로기가 주는 가상”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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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어떻게 노동자 소유 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가? ― 경제민주주의를 향한 투 트랙 전략*

이건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1. 서론: 경제민주주의 차원에서의 기본소득과 노동자 소유 기업

오늘날 자유, 평등, 시민권, 민주주의 등의 추상적인 가치들을 급진적이고도 해방적인 방향으로 확장하고자 고민하는 그 누구라도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와 만나게 되고 이와 고투하게 된다.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기본소득이 다음과 같이 자리매김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기본소득은 자유의 측면에서는 형식적 자유에서 실질적 자유로(Van Parijs, 1995; Van Parijs and Vanderborght, 2017), 가장 확장된 자유의 개념인 공화주의적 자유로(Raventós, 2007; Casassas, 2016; Casassas and De Wispelaere, 2016;Standing, 2017) 나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평등의 면에서는 현재의 극심한 사회경제적, 젠더 차원의 불평등을 좀 더 평등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다(Fraser, 1994; Zelleke, 2008, 2011; 이건민, 2017).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차원에서는 인구학적 상황, 경제적 상황, 종사상의 지위와 계급 등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급되는 정당하고도 바람직한 사회배당이자, 공민권과 정치권,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사회경제적 권리와 경제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구성 요소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서 경제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기 위한 주요한 방안으로는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노동자 소유 기업(노동자 소유 협동조합을 포함하여)도 함께 떠오른다. 본고에서는 경제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은 사중의 능력으로 정식화한 카사사스(David Casassas, 2016:1)의 정의를 따를 것이다. “(ⅰ) 일하기 위해 ‘진입’하기를 바라는 사회적 관계들을 정할 능력. (ⅱ) 우리가 머무르고 일하기로 한 공간의 (비)물질적 성격을 결정할 능력. 그것은 실질적으로 들리는 ‘목소리 (발언권)’를 갖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ⅲ) 이 공간의 성격과 기능이 우리의 삶에서 바라는 바에 반하는 경우 이 공간에서의 ‘탈출’을 선택할 능력. (ⅳ) 떠나기로 선택한 경우에, 그 다음의 기회들을 위한 이전 직장의 외부에서 제공되는 수단들에 의지할 수 있는 능력. 즉 지금과는 다른 조건과 상태에서 (재)생산적 삶을 효과적으로 ‘다시 시작할’ 능력.” 이러한 경제민주주의의 추구라는 점에서 보자면, 기본소득과 노동자 소유 기업은 조금은 다른 점들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소득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생산과 노동, 작업장의 영역을 넘어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서 광범한 의미에서의 경제민주주의의 만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노동자 소유 기업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생산과 노동, 작업장 영역에서의 민주주의, 즉 기업민주주의나 산업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어 왔다.

경제민주주의 측면에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노동자 소유 기업은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거의 연구되어 오지 않았다. 이는 일자리의 양과 질 모두 문제시된다고 전망되자 일자리 보장과 참여소득이 기본소득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이 더 우월한지, 대체 관계에 있는지 보완 관계에 있는지 등이 활발히 연구되어 온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하지만 비록 지금까지 거의 논의되어 오지 않긴 했지만 경제민주주의 혹은 산업민주주의 면에서 일자리 보장이나 참여소득보다 훨씬 대담한 제안은 바로 노동자 소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기본소득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비판적, 해방적 사회과학과 사회정책을 추구하는 데 핵심적이다.

이 글에서는 기본소득의 도입과 노동자 소유 기업의 발흥이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룬다는 관점 하에서, 기본소득이 노동자 소유 기업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로와 기제를 탐구할 것이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노동자 소유 기업이 자본주의적 기업에 대해 지니는 비교우위와 비교열위를 검토한다. 다음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이 노동자 소유 기업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로와 기제를 탐구한다. 이 글의 마지막에서는, 경제민주주의를 향한 투 트랙 전략으로서 기본소득의 도입과 노동자 소유 기업의 활성화가 우리 시대의 주요한 해방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글을 맺는다.

 

* 이 글은 제18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2018년 8월 24~26일, 핀란드 탐페레대학교) 세션 B4에서 필자가 발표한 “How Can Basic Income Activate and Encourage Labor-Managed Firms?: A Two-Track Strategy for Economic Democracy”를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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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 전쟁과 미국적 자유주의의 쇠락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1. 도입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7월 6일 이제까지 공언했던 바대로 34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실제로 부과했다. 중국은 그 즉시 같은 규모의 미국 수입품에 대해서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적으로 8월 23일부터 나머지 160억달러에 대해서도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중국도 역시 이에 대해서도 같은 규모로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미국은 25% 관세를 2,000억달러어치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며, 중국도 그럴 경우에 600억달러어치의 미국 수입품에 대해서 5~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국제무역기구WTO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자유무역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이 WTO의 틀에서 벗어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1995년에 출범한 WTO는 냉전 종식 이후 조성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WTO의 출범은 분명히 미국이 대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Gregory Shaffer, China’s Rise: How It Took on the U. S. at the WTO, University of Illinois Law Review, 2018).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던 지역 내에서는 자유무역에 대한 강한 정치적 합의가 있었다. 보호무역은 국제무역을 위축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분할로 이어져 국민국가 간 전쟁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는 1930년대에 미국을 필두로 서구 제국들이 보호무역을 실시한 것이 대공황을 심화시켰고 결국에는 세계대전을 야기했다는 널리 공유되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은 미국과 영국에서 발달한 주류 경제학에 의해서도 더욱 강화되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자유주의 경제학은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을 원형으로 삼아 오랫동안 자유무역을 이상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0년대 초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유로운 시장 및 무역의 승리를 역사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미국의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으며, 무역 전쟁이 야기할지도 모르는 세계 경제의 혼란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 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서구 세계의 오랜 합의였던 자유무역을 부정하고 자국이 만든 WTO의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미국이 WTO의 틀을 깨고 보호무역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본다.

2. WTO 가입 이후 중국의 무서운 추격

미국의 표면적인 명분은 현재의 WTO 규칙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무역에서 벗어난 중국의 불공정 행위를 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WTO 규칙이 미국에게 불리하고 중국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버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이 그런 주장을 펴는 이유는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양국 간의 경제 실적의 놀라운 격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여 중국의 WTO 가입을 허용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정치인들은 중국이 자유무역 체제에 들어오게 되면 미국의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많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 중국이 WTO 규칙에 따라 관세를 낮추면, 미국이 우월한 산업적, 금융적 경쟁력을 통해서 중국으로의 수출을 확대하고 그것에 힘입어 미국의 고용도 확충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크게 빗나갔다.

그 결과는 통계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는 2000년 약 831억달러였는데, 2017년에는 약 3,756억달러로 거의 4.5배로 늘어났다. 미국의 수출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수입의 증가에 의해서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 무역 적자가 중국의 노동 집약적인 저가 상품에 의해서만 야기된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컴퓨터, 전기 장비, 전자 및 부품 등 고기술 제품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018년 7월에 발표된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수입에서 “선진 기술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3.8%에 이른다(Wayne Morrison, China-US Trade Issues, CRS, 2018).

대중 무역 적자의 문제는 단지 그 규모에 한정되지 않는다. 무역적자의 증대는 미국의 일자리를 감축시켰다. 2014년에 발표된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4년 사이에 대중 무역 적자로 인해 320만 개의 미국 내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했다(EPI, China Trade, Outsourcing and Jabs, 2014).

위 통계에 비춰 보면, 미국 행정부는 미중 무역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계속해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런데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무역 적자의 규모 자체가 아니라 2001년 이후 중국이 보여 주고 있는 놀라운 정도의 경제적 추격이다. 2001년 미국의 경제 규모는 명목 GDP 기준으로 중국의 7.9배에 달했지만, 2017년에는 1.6배에 불과하다(IMF, World Economic Outlook). 이 추세라면 중국은 미국을 조만간 추월하게 된다.

중국의 추격은 거시적 차원의 지표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의 수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 세계 4대 은행이 전부 중국 기업이며, 100대 은행에 속하는 은행의 수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Mark Wu, The “China, Inc.”, Challenge to Global Trade Governance, 2016).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중국의 WTO 가입이 중국을 미국적 규칙에 복속시켜 미국에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17년이 지나고 보니 중국이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은 현재 WTO의 규칙이 중국의 경제적 추격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중국의 세계 패권 도전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확립한W TO의 규칙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사실, 미국이 WTO 체제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돌출적인 정치인인 트럼프에 의해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2010년경부터 WTO가 중국에게 유리하고 미국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미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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