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저 아랫동네 누구네 집에서 상량식이 열린다고 했다. 초가집이 하나둘씩 신식 집으로 바뀌던 70년대 초의 일이다. 어린 나이에 상량식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말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새집이 번듯하게 세워진 것을 축하하며 잔치를 벌이는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튼 상량식이 뭔지는 몰라도 떡과 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상량식이 열리는 곳으로 몰려갔다.

벌써 집 마당에는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번듯한 집은 보이지 않고 기둥 뼈대만 서 있었다. 수수깡으로 만든 집처럼 벽도 문도 없이 얼개뿐이었다. 집을 이제 막 짓기 시작한 것 같은데 중요한 행사로 여겨지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잔치 음식이 많이 나올 것 같지 않는 작은 불안감도 한편에 있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어떤 아저씨가 높은 보 위에 앉아 있었다. 차림새로 보아 집 짓는 목수처럼 보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하얀 광목천을 몸에 휘감고 있었다. 두 다리를 벌리고 보 위에 앉아 있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운데 쪽으로 오려는 것 같았다. 높이가 2미터를 넘는 곳이라 앉아 있기만 해도 아찔할 텐데 양손을 앞으로 짚으며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높은 보 위에서 움직이는 목수를 향해, 잘 버틴다, 무서워 떠는 거 아니냐, 하는 농담을 던지는 아저씨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농담에도 그저 가볍게 웃어넘기며 목수는 침착하게 움직여 얼추 가운데에 이르렀다. 몸에 두른 광목을 풀어 보를 몇 번 휘감은 뒤 양 옆으로 늘어뜨렸다. 아래 있던 아저씨가 광목 끝을 잡아 양쪽에서 넓게 펼쳤다. 그런데 그때 보 위에 있는 목수는 큰 닭 한 마리를 잡고 있었다. 몸에 두른 광목 안에 닭을 넣고 왔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건네준 것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높은 곳에 있는 목수에게 닭을 건네주려면 또 한 사람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테니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내 기억에는 조금씩 움직이던 목수가 어느 순간 닭 한 마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 칼을 든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마 그 다음에 무슨 제문 같은 것을 읽는 그런 순서가 진행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날 상량식의 하이라이트는 희생 제의를 치르는 것으로 끝났다. 목수 혼자서 닭 모가지를 댕강 자르고, 붉은 피가 하얀 광목에 뿌려지고, 머리 잃은 닭이 피를 흩뿌리며 하얀 광목으로 날아가고.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엘리아데의 『성과 속』을 읽으며 떠오른 기억이다.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1907~1986)는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신화학자인데 20세기 사상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엘리아데가 보기에 인간은 태생적으로 종교적 인간이다. 그런 “종교적 인간에게 공간은 균질하지 않다.” 어떤 공간이든 성스러운 공간과 속된 공간으로 구별하여 인식하게 된다. “공간 내부의 단절과 균열을” 몸으로 느끼며 사는 존재가 종교적 인간인 것이다. 성스러운 공간은 “힘이 있고 의미가 깊은 공간”이고, 성스럽지 않은 공간, 즉 속된 공간은 “일정한 구조와 일관성이 없는 무형태의” 공간이다.

이런 공간의 구분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문지방이다. 어렸을 때 문지방에 올라서거나 걸터앉을 때는 물론이고 그저 문지방을 밟고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에게 호되게 혼이 난 경험이 있다. 왜 이처럼 문지방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엘리아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집의 문지방을 넘어갈 때에 행하는 의례는 많다. 문지방을 향하여 절을 하거나 몸을 엎드리거나 경건하게 손을 대는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문지방에는 외적의 침입뿐 아니라 악마나 페스트와 같은 질병을 가져오는 힘의 침입을 방지하는 수호신 혹은 수호령이 거주하고 있다. 문지방 위에서 수호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고대 동양 문명(바빌로니아, 이집트, 이스라엘)에서는 판결의 장소를 문지방 위에 두기도 하였다. 문지방과 문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공간 연속성의 단절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점에서 중대한 종교적 의미를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문지방과 문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의 이행의 상징이자 매개자이기 때문이다.
(엘리아데, 『성과 속』, 58쪽. 강조는 원문)

성과 속을 가르는 문지방의 의미는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흔히 교회는 성역聖域으로 여겨지는데 교회의 문지방을 통해 공간의 연속성이 단절된다. 이런 교회의 문지방을 엘리아데는 “두 세계를 구분하고 분리하는 한계이자 경계선이고 국경인 동시에 그러한 세계들이 서로 만나고 속된 세계에서 성스러운 세계로 이행할 수 있는 역설적인 장소”라고 말한다. 성역은 신들이 지상으로 강림하는 곳이기도 하고 “인간이 상징적으로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천상계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이 있어야 한다.

엘리아데가 보기에 “종교적 인간”은 이런 성스러운 공간에 살고자 하는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공장으로 돌아가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원직 복직 합의

임성용

서른 번째 죽음을 안고

지난 9월까지만 해도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가 있었다.

서울 시청역 2번출구, 지하철에서 나와 대한문 쪽으로 걸어가면 덕수궁 돌담 곳곳에 여러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고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서른 번째 죽음을 추모하며”라는 글귀였다.

“여기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죽음을 맞는 또 하나의 죽음, 또 한 사람 위에 쌓인 또 한 사람의 죽음들이었다. 무려 서른 명의 목숨이 잿빛으로 사라지는 동안, 국가와 사회는 어떤 짓을 저질렀던가?

국가는 노동자의 삶을 처절하게 짓밟았고 사회는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마저 외면했다. 그 쓰라리고 참담한 세월은 정리해고, 국가 폭력, 사법 살인으로 이어진 잔인한 시간이었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에 9년이라는 길고 긴 죽음의 터널 속에서, 순박하게 살아온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죽어 갔다. ‘쌍용자동차 희생자 시민분향소’에는 영정으로 남은 희생자들이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까지 늘어났다. 분향소는 22번째 희생자가 생기면서 대한문 앞에 설치되었고 1년 7개월 동안 농성을 벌였다.

2013년에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가장 먼저 쌍용차 분향소부터 강제 철거하면서 노동자 탄압을 시작했다. 당시 세 명의 노동자가 지키고 있던 분향소에 경찰 병력 280명과 중구청 직원 50여 명이 들이닥쳐 기습 철거를 감행했다. 분향소에는 화단을 만들었다. 그 후, 여덟 명이 더 목숨을 끊었다.

2018년 7월 3일. 쌍용차 노동조합은 김주중 조합원이 자살하며 희생자가 서른 명에 이르자 대한문에 다시 분향소를 차렸다. 보수 단체의 방해와 충돌 속에서 5년 만에 두 번째로 설치된 분향소였다. 쌍용차 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촉구했다.

“정부는 쌍용차 희생자와 가족 앞에 사과하고 국가폭력 사법 농단 책임자를 처벌하라!”

회사 측에는 해고자 전원 복직 합의를, 정부에는 해고자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금 가압류 조치와 손해배상 소송의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해고자로 남은 노동자들 전원이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체투지로 몸을 길바닥에 뉘였다. 청와대까지 행진을 하고, 범국민대회를 열고, 지부장은 단식을 했다. 분향소에서는 종교, 문화, 노동, 사회 단체가 참여하는 문화제가 이어졌다. 시민들의 관심과 발길도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분향소가 설치된 지 3개월이 지난 9월 중순, 마침내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9월 14일, 2009년 투쟁 당시의 노조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2009년 투쟁 이후 금속노조를 탈퇴한 쌍용자동차 노조, 그리고 쌍용자동차 회사 측이 해고자 복직을 합의한 것이다.

이에 쌍용차 지부는 대한문 분향소를 해체하기로 했다. 강제 철거가 아닌 자진 철거였다. 분향소를 설치한 지 73일 만이었다. 쌍용차 지부는 밝혔다.

“정부의 사과와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등 우리의 요구 사항에 대해 정부가 성의 있게 나선 것에 대해 존중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정리하기로 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분향소를 방문하여 정부의 공식 사과와 퇴직금 가압류·손해배상 취하 절차를 밟겠다는 뜻도 전했다. 2019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에 대한 복직, 해고자 119명 가운데 60%를 2018년 연말까지 우선 채용, 나머지는 2019년 상반기까지 단계적 채용 등이 합의 내용이었다. 2019년 상반기 복직 대상자 중에서 부서 배치를 받지 못한 인원에 대해서는 6개월간 무급휴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포이동에서 마주한 국가의 민낯과 정부의 대체복무제 계획

오경택 병역거부자,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반전평화모임 공동대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주민들을 내쫓기 위해 아침부터 찾아온 강남구청 공무원을. 그 뒤를 따라 먹구름처럼 몰려온 용역 깡패를. 그들이 건너온 양재천 다리와 개천 건너 보이던 반짝이는 타워팰리스를.

지금은 그 명성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타워팰리스가 ‘가장 비싸고 좋은 집’의 대명사였다. 바로 그 부자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포이동 재건 마을’이 있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로25길 32(옛 주소로는 포이동 266번지)에 위치한 이 마을은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넝마주이’와 ‘부랑인’ 등을 자활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수용하면서 만들어졌고, 1990년대 말까지도 재개발로 밀려난 철거민, 가난한 상이용사 가정 등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강제로 이주한 곳이다.

2011년 6월 12일, 작은 불씨로 시작된 화재가 초동 진화 실패로 마을 96가구 중 75가구를 전소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강남구청과 서울시는 마을 주민들을 어떻게든 쫓아내려 했는데, 허허벌판에서 금싸라기 땅으로 변신한 마을 부지 때문이었다. 사람이 살던 집들이 불타 없어지고 폐허만 남자, 구청은 주민들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계고장이 나붙고 공무원들은 용역 깡패와 함께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주민들을 회유하고 협박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마을에 머문 시간도 짧았고 성실하게 일하지도 않았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국가’를 대신한 공무원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그들이 데려온 깡패에게 패대기쳐지는 주민들을 보고서 생각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최소한 ‘양재천 건너’에 서 있어선 안 되겠다고. 이후 주변의 동료들을 따라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끊임없이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찾고자 했다.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세월호와 같은 투쟁에 연대했고 제주 4·3, 광주민중항쟁, 베트남과 이라크 파병의 역사를 학습했다. 근래에는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여 처벌하고 여군에 대한 성폭력을 은폐하는 데 급급한 모습까지 보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나라의 군대는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육지, 요동치는 배 위에서

대학을 졸업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영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미루고 미루던 입영 거부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사법 절차를 설명하자면, 입영 날짜를 어겨도 3일 이내에 훈련소로 찾아가면 ‘지연 입대’ 처리를 받을 수 있다. 그 기한마저 넘기면 병무청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다. 경찰 조사, 검찰 조사를 거쳐 재판을 받으면 「병역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이전의 병역거부자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나 또한 그와 같을 줄 알았다. 올해 5월에 시작된 재판이 6월 변론 종결을 거쳐 7월 17일 제헌절에 선고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재판을 받던 중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 사건을 전원 합의체에 회부하고 8월 30일에는 공개 변론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뒤 6월 28일에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일방적 처벌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다. 바깥세상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정리하던 나로서는 마냥 기쁘진 않았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돼 버려 걱정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감옥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병역거부운동에 이전과는 다른 국면이 열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선고 날이 다가왔고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저 멀리 대체복무제라는 육지가 보이는데 타고 있는 배는 침몰할 듯 요동치는 처지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란스러울지언정 무력하지는 않았다 점이다. 사법부에서 넘어온 변화의 단초가 ‘병역’라는 단단한 벽에 조그마한 균열을 냈으니, 법정투쟁을 열심히 하면 정과 망치가 되어 유의미한 싸움이 될 것도 같았다. 곧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장을 제출했으나 항소심은 곧장 잡히지 않았다. 반면, ‘대체복무’에 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국방부, 법무부, 병무청이 공동으로 실무추진단을 꾸리고 국가인권위, 로스쿨 교수, 참여연대, 군인권센터 등 학계와 시민사회 진영을 아우르는 자문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두 기구가 중심이 되어 대체복무제 도입을 활발히 논의했으나 결과물은 썩 훌륭하지 못하다. 11월 중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대체복무제 정부 안’의 내용이 “교정 시설 36개월 합숙 근무”이기 때문이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그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지난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미국에서 중간선거는 하원, 상원, 주지사 등을 뽑지만, 대통령 임기 중간에 실시되어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중간 평가의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중간선거의 결과에 따라 미국 대내외 정책이 방향을 크게 전환한 사례는 많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많은 반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이번 중간선거는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중간선거가 끝난 후 미국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들은 대부분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을 되찾았고 주지사 선거에서 선전했기 때문에 트럼프와 공화당이 패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기성 언론들이 트럼프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온 편향된 해석이다.

이 글에서는 2018년 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그 결과가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사안인 북미 협상과 중미 무역 전쟁에 미칠 영향을 진단해 본다.

1. 미국의 의회 및 선거 제도

미국 중간선거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의회 및 선거 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의회가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상원과 하원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하원은 435명으로 구성된다. 각 주는 인구 비례에 따라 의석을 배분 받는다. 인구가 3천5백만 명인 캘리포니아는 하원 의원이 53명이지만, 인구가 73만 명에 불과한 알래스카는 1명이다. 인구가 적은 노스다코타, 버몬트, 와이오밍도 하원 의원은 1명에 불과하다. 하원의원의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2년마다 한 번씩 하원선거가 치러지는데, 한번은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지고, 또 한 번은 이번과 같이 중간선거 때 치러진다

이에 반해 상원은 주마다 2명이 선출된다. 그래서 미국 전체로 상원의원은 100명이다. 임기는 6년이고, 2년마다 1/3씩 새로 선출된다. 주마다 모두 2명의 상원의원을 선발하는 것은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이 현재와 같은 연방국가를 구성한 것은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를 통해서인데, 연방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각 주에 대등성을 부여하면서도 각 주의 인구 차이를 고려하여 양원제를 채택했다.

원리적으로는 하원은 국민을 직접 대표하며 상원은 주를 대표한다. 그래서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은 좀 더 국민의 입장을 적기에 대변하라는 의미에서 임기가 2년이며, 상원은 보다 장기적이고 좀 더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하라는 의미에서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원리에 의해서 구성되었기 때문에 하원은 세금과 경제에 관련된 권한을 주로 갖는다. 대표적으로 하원은 예산심의권을 가지며, 세금 관련 법안은 하원에서만 발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상원은 연방의 정책과 운영과 관련된 역할을 맡는다. 군대의 파병, 대법관 및 연방 관료 임명, 국제협약 승인 등의 권한을 갖는다. 이 같은 역할 분담이 있지만, 모든 법안은 양원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중간선거에서는 주지사 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주지사 선거는 연방과는 관계가 없고 각 주의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임기는 4년이고 일부 주가 2년이다. 선거 시기도 주마다 다르다. 50개 주 중에서 34개 주는 4로 나눠지지 않는 짝수 년에 뽑는데, 2018년이 그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34개 주에서 주지사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중 9개 주는 4로 나눠지는 짝수 년에 뽑는다. 홀수 년에 뽑는 주도 있다.

2. 2018 미국 중간선거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첫 2년간은 공화당이 상하 양원에서 모두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하원 435석과 상원 총 100석 중의 35석(33개 + 2개는 임기 4년 남은 보궐선거 2곳)에 대한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34개 주의 주지사 선거가 함께 치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에서 38석을 늘려 233석을 차지해 절반 의석(218석) 이상을 확보했다.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기존 의석에 2석을 늘려 과반인 52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선전해서 기존보다 7개 주를 더 얻었고 공화당은 6개 주를 잃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은 여전히 총 27개 주를 장악했고, 민주당은 이번 승리에도 불구하고 23개 주를 장악하는 데 그쳤다.

이 통계만을 두고 보면 양당 중 어느 한 당이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하기가 힘들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차지하다가 하원을 민주당에게 빼앗겼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패했다고 할 수 있지만, 공화당은 상원에서 의석이 늘었다.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선전했지만 공화당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렇다 보니, 미국 언론들의 평가도 조금 모호하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미국 언론들은 민주당의 ‘판정승’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뉴욕 타임스』는 “민주당 바람이 어느 정도 불긴 불었는데 태풍은 아니었다”라고 결론 내렸지만, 2016년 대선과 비교해 하원 선거구 317곳에서 민주당 지지가 늘었고, 전체적으론 평균 10%포인트 민주당 지지가 늘었다는 점을 들어 민주당의 손을 들었다. 한편 CNN은 민주당이 2016년 대선에서 잃어버렸던 ‘블루 월blue wall’(민주당의 아성 지역) 중 일부 지역(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에서 상원 의석과 주지사직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 승리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미국의 주요 언론, 특히 자유주의 성향의 언론들이 트럼프 개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선거 결과의 평가에도 그런 선호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선호를 감안하여 냉정하게 분석하면 이번 선거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선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트럼프의 지지층이 꽤 견고하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중간선거는 집권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첫 임기에 치러졌던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 6석, 하원 63석, 주지사 6곳을 공화당에 내줬고, 두 번째 임기 중간선거(2014년)에서는 상원 8석, 하원 13석을 잃어 공화당에 상원과 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내줬고, 주지사 3곳을 잃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하원은 뺏겼지만 상원에서는 오히려 의석을 늘렸기 때문에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한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5년 동안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속한 당이 상원 선거에서 의석수를 오히려 늘린 것은 딱 다섯 번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가장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대통령이다.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한다. 이번 중간선거는 그의 반대파만큼이나 트럼프의 지지층이 견고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줬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다니엘 매카시도 비슷한 분석을 했다. 트럼프는 “널리 증오 받는 우려의 대상이지만 또한 그는 자신의 지지층들에게 깊이 사랑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또한 중간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를 통해서 대선의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화당이 대선의 승부를 좌우하는 플로리다, 인디애나, 오하이오 등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지역(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차지하는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트럼프가 재선 가도에 중요한 고비 하나를 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밥 익는 냄새에 홀린 토끼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국민학교 들어갈 즈음에 할머니께서 낡은 책상을 하나 얻어 오셨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타지로 돈 벌러 나가시고, 할머니, 나, 동생 이렇게 셋이서 둘째 이모네 밧거리(바깥채)에 살 때였다. 쫓기다시피 막 돌아온 고향이라, 살림살이라곤 이불 몇 채가 전부인 단칸방이었다.

단칸방에 낡은 책상이나마 떡 하니 놓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누런색 합판을 대고 만든 싸구려 책상이라 여기저기 긁힌 자국도 많았고, 내 키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서 책상 앞에 앉으면 가슴팍까지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뛰놀다 들어와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아무 할 일이 없을 때에도 그저 책상에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장작이 귀해, 밥은 일출봉 분화구에서 베어 온 촐을 지펴 해 먹었다. 육지에서는 ‘꼴’이라고 부른다는 걸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베어온 촐로 지붕을 이고 새끼를 꼬아 줄로도 썼지만, 불을 지피는 데도 맞춤이었다. 불을 지펴 밥을 할 때면, 옆에서 할머니는 “솔솔 지드라. 와랑와랑 해분다.” 하고 당부하셨다. 한꺼번에 촐을 넣으면 활활 타오르니 조금씩 살살 지피라는 말씀이었다.

어느 정도 불을 지피고 나면, 촐이 작은 벌레처럼 잘게 부서지며 빨간색 불빛이나 노란색 불빛을 내뿜으며 일렁일렁 거리다가는 조금씩 회색빛 재로 바뀌며 아래에 쌓여 갔다. 부지깽이로 괜히 일렁거리는 불빛을 쿡쿡 찔러 보기도 하고, 촐을 살짝 들어 주어 불이 확 달아오르게 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따스하게 번져오는 온기도 좋았지만, 빨갛고 노랗게 꿈틀거리며 달아오르는 불빛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층층이 쌓이며 환하게 이글거리는 불빛은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

개성상인의 기원

양정필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람들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사극이 방송된다. 인물 혹은 사건을 소재로 한 역사 영화도 계속 제작된다. 일상에서 쉽게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지식들도 조금은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 사람들은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일반인이 만날 수 있는 역사는 대개 정치적 인물 혹은 사건에 대한 것이다. 역사 속 경제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접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오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집단

생소할 수 있는 경제의 역사를 안내해 줄 사람은 개성상인이다. 개성상인은 중·고등학교 역사책에 나올 만큼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성상인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단 몇 줄에 불과하여서 개성상인의 존재는 알지만 그들의 장구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성상인은 오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큰 전쟁을 자주 겪은 우리 역사에서 수백 년 동안 존속한 존재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개성상인은 그 어렵다는 장기 존속은 물론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니,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개성상인 후손들이 경영하는 기업으로는 아모레퍼시픽, 녹십자, 신도리코, 한일시멘트, OCI,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개성상인이 세운 기업은 꽤 있다. 설립자는 모두 개성상인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2세들이 계승하여 경영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개성상인의 정체성을 지닌 기업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인도 있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

개성상인은 상인이므로 당연히 그들 활동의 중심은 상업이었다. 따라서 개성상인을 통해서 전근대 상업의 일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들은 돈 버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귀재였다. 개성상인 이야기를 통해 돈 버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개성상인을 이야기하려면 그들이 언제 어떻게 해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즉 개성상인의 기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기원을 잘 알면 그들의 성격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기원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이번 이야기는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한정될 것이다.

개성상인의 기원을 살펴보려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격변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려 말기는 정치 기강이 무너지고 경제는 양극화되어 소수의 권문세족과 사원이 경제력을 장악하고 다수의 백성은 비참하고 곤궁한 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사회 혼란은 미봉책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해결될 수 있는 단계였다. 이에 이성계와 정도전 그룹은 역성혁명을 통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여 사회 혼란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이 정도의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자. 역성혁명을 주도하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 그룹은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국가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이 그룹을 지지하고 그 노선을 추종하였다. 고려의 신하였던 이들 가운데서도 조선 건국을 지지하고 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길 때 따라간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고려 말기의 혼란을 고려 정부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역성혁명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진행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 중에는 역성혁명을 지지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지조나 절개와 관련된 문제인데,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유교적 가르침에 익숙한 사람들 중에는 차마 조선의 새 임금 이성계를 섬길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사람들은 대개 지식인, 관료 그룹이다. 일반 백성들도 새 국가 조선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을 텐데, 아쉽게도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전해 주는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당시 다수의 관료와 지식인은 개성에 거주하였다. 그들은 고려의 신하였기에, 지방관이 아니면 대개 개성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지식인들도 예비 관료로서 개성의 성균관 등에서 과거를 준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관료·지식인은 조선 건국을 둘러싸고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었다. 전자는 조선 정부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자 개성을 떠나 한양에 정착하였다. 반면 반대파의 경우는 그 운명이 크게 셋으로 갈렸다. 첫째는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 둘째는 낙향을 선택한 이들이 있었다. 마지막 셋째는 한양으로도, 고향으로도 가지 않고 개성에서 그대로 남아서 살아간 이들이 있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자산-가격 케인스주의와 부동산 정책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지난 9월 13일 「주택시장안정대책」 발표 이후, 가팔랐던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둔화되고 있다. 하지만 9·13 대책의 투기 수요 차단 실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부동산 하락폭 둔화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보다는 올해 들어 세 차례나 있었던 미국의 금리 인상이 한국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미래 경제 예측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듯하다.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대책이 발표되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도 부동산시장 안정화 목적의 종합 대책이 벌써 여덟 번째다. 대책 발표 때마다 정부가 투기 수요를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함에도 대책의 실효성이 이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부동산 정책을 관통하는 모종의 정책 기조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산-가격 케인스주의Asset-Price Keynesianism”는 이 기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피케티 베타값과 아파트 가격

올해 들어 1월부터 7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4.37%로, 2017년 한 해 상승률 4.69%를 넘어섰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몇 주 만에 몇 천 만원은 기본이고, 몇 억원이 오른 곳도 있었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가격이 2018년 8월 기준으로 약 7억5,000만원이다. 2015년 12월에는 약 5억2,500만원이었다.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37.6%가 올랐다. 고용노동부가 8월말에 발표한 「2018년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6월 국내 상용직 1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 노동자 1인당 월평균임금 총액은 322만4000원이다. 노동자 평균임금으로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임금을 한푼도 안 쓰고 20년 가까이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노동자 전체 임금 총액 증가분과 전국 아파트 가격 총액의 증가분을 비교해 보는 것도 유용할 성 싶다. 2016년 노동소득분배율 56.25%,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의 2017년 명목임금 상승률 2.7%, 2016년 국내총생산GDP 1,637조원이라는 세 가지 수치를 가지고 산출한 2017년 노동자 전체 임금 총액의 증가액은 전년 대비 약 44조원이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의 가격 총액은 199조원 증가했다.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98조원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분이다. GDP 증가율과 전국 아파트 가격 총액 증가율도 조사해 봤다. 2017년 명목 GDP는 전년 대비 5.7% 성장했는데 전국 아파트 가격 총액은 7.7% 증가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베타ß값의 의미를 짚어 보는 것도 아파트 가격 폭등의 경제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베타값은 간단히 ‘자본/소득’으로 표시한다. 자본은 저량stock 변수로 특정 시점에 소유되는 부의 총액을 말하며, 소득은 유량flow 변수로 특정 기간(주로 1년) 중에 생산되고 분배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총액을 말한다. 피케티의 베타값은 두 가지 공식으로 산출될 수 있다. 하나는 ‘자본소득분배율(α)/자본수익률(r)’이고, 다른 하나는 ‘저축률(s)/성장률(g)’이다. 피케티의 전체 분석에서 베타값이 클수록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가져가는 몫이 줄고, 같은 의미로 자본이 가져가는 몫이 크기 때문에 결국 세습 자본주의로 나가게 된다.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의 가격은 베타값에서 대표적인 자본에 해당하고, 임금은 대표적인 소득에 해당한다.

피케티는 선진국에서 이 베타값이 일반적으로 5∼6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경제학자 정태인은 2014년에 한국의 베타값이 7.5에, 2018년에는 8.2에 이른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일정한 경제 발전 단계에 이른 국가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자산 불평등 연구로 유명한 김낙년 교수는 한국의 베타값이 유례없이 높은 중요한 이유로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 자산 가격을 든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낙태죄 폐지와 산부인과 의사들의 임신중절 거부 사태

임석영 가정의학과 전문의, ‘행동하는 의사회’ 전 대표

우리나라 낙태 현황 및 법률 현황

우리나라는 법률적으로 낙태를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형법」은 “낙태의 죄”를 별도의 장(제27장)으로 명시하여 제269조, 제270조에서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와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에서는 불가피한 다섯 가지 경우, 임신 24주일 이내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 외의 낙태는 현행 법률에 따르면 불법이다.

그렇다면 실제 임신중절 시술 현황은 어떠한가? 이에 대해 보건 당국은 현재까지 2005년과 2011년 단 두 차례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두 차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5년 가임기 여성 1,000명당 29.8로 추정되던 임신중절률은 2010년 15.8로 감소하였으며, 추정 건수도 2005년 342,433건에서 2011년 168,738건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과소응답 가능 가능성을 고려하면 대략 해마다 15만에서 20만 건의 임신중절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임신중절수술의 대부분은 현행 법률에서 허용하는 경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2011년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응답을 1순위에서 3순위까지 종합적으로 합하여 분석하면, 사회경제적 이유가 89.3%로 가장 많았고, 본인의 요청 87.6%, 태아 이상 또는 기형 64.4%, 모체의 신체적 건강 보호 21.3%, 모체의 생명 위협 18.4%, 모체의 정신적 건강 보호 10.3%, 강간 또는 근친상간 7.4% 순으로 조사되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90% 가량이 현행 법률의 허용 이유가 아닌 경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

*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 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② 법 제14조제1항제1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한다.
③ 법 제14조제1항제2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한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