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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양지혜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공동대표

세월호 4주기, 기억이라는 투쟁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세월호 침몰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검토된 비용이었다. 정부는 경제적 효용을 위해 운영 제한 규제를 완화했고, 기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후한 선박을 부활시켰다. 이윤 앞에서 인간은 ‘감수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에게 펼쳐진 세계는 ‘깨어진 상식’의 세계였다. 우리는 책임지지 않는 국가를 보았다. 구조가 가능한 골든타임동안, 박근혜 씨는 침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박근혜 씨를 움직이게 한 것은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가 아니라 최측근인 최순실 씨의 연락이었다. 언론은 ‘전원 구출’ 오보를 낸 것으로도 모자라, 높은 조회 수의 특종을 위해 자극적이고 저열한 보도를 이어 갔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불안과 참혹함을 거름 삼아 보험 영업을 했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유가족의 투쟁은 정치권의 야합에 가로막혔다. 2014년 8월, 여야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특별법을 밀실에서 야합으로 처리했다. 2015년, 간신히 결성된 세월호참사특별진상조사위원회는 당시 여당 새누리당의 방해로 무력화되었다. 유족들이 간절히 외쳐 왔던 세월호 인양은 3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못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긴 시간을 차디찬 바다 앞에서 버텨야 했다.

2017년 4월, 홍준표를 제외한 대선 후보자들은 모두 안산으로 달려갔다. 후보들은 저마다 미수습자 수습, 진상 규명, 추모 공원 조성 등을 약속했다. 그간 특조위를 무력화하고 “세월호특별법보다 민생 문제가 우선”(2016년 4월 18일 국민의당 최고의원 회의)이라고 밝혀 온 정치세력들이 한 일이었다. 그렇게 세월호는 ‘기억’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4월, 우리는 한 치도 변하지 않은 세상을 마주한다. 1기 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한 황전원 위원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임명되었다. 황전원 위원이 조사를 거부했던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이 밝혀지며 진상 규명은 간신히 시작되었을 뿐이다. 모든 후보가 약속했던 추모 공원 조성은 지역 야당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정부합동분향소는 4주기 영결식을 끝으로 철거된다.

세월호는 조금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이 참사가 무엇인지조차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기억하는 일은 투쟁이었다. ‘순수한 추모’만을 허용하는 세력에 맞서,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라’라는 요구에 맞서, ‘추모가 변질되었다’라고 선전하는 보수 언론에 맞서, 우리는 기억의 투쟁을 이어 왔다. 청년정치공동체 ‘너머’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기억의 투쟁을 이어 가기 위해 안산을 방문했다. 교육청 옆으로 이관된 기억교실을 찾았고, 영결식이 끝나고 나면 철거될 정부합동분향소를 들렀다.

여느 때와 다르게 기억교실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억교실은 수학여행 전 날까지 피해자들이 머물었던 흔적, 피해자를 그리워하고 참사를 추모하는 이들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한 반에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희생자가 되었다. 방명록에는 유가족들의 방문 편지가 남아 있었다. 문장을 다 마무리하지 못한 채 눈물로 얼룩진 편지가 있었다. 기억교실은 한 번 이전했던 역사가 있다. 참사 이후, 더 이상 교실을 존속할 수 없다는 학교 입장에 따라 현재 교육청 옆 건물로 이전했다. 지난 2016년 교실이 이전될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유품을 옮기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책상과 걸상을 옮길 상자를 설치하기 위한 차량에는 “이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새 교실에는 유품을 놓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참사 이후에도 유가족들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기억교실을 둘러보며, 내가 세월호 참사를 처음 만난 순간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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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하여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대안’상임연구원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종교인이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나왔고, 정치인, 교수 들이 그 뒤를 이었다. 평균 아래로는 작가, 예술가 들이 있고, 그 밑으로는 연예인, 체육인, 기자들이 포함되었다. 몸을 전문적으로 쓰는 스포츠맨들이 다소 의외인데. 과도하게 몸을 써서 평균수명이 짧은 경향을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들의 수명이 짧은 것으로 유명한데, 격렬한 운동에 더하여 서로 심하게 몸을 부딪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면 우리 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이런 염증 반응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작가, 예술가, 연예인, 기자 들의 공통점이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먼저 떠오른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고, 특히 연예인의 경우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떤 식으로든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조사는 한국의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훨씬 오래 전에 서양의 경우를 보도한 기사도 떠오른다.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휘자가 가장 오래 사는 직업이라는 결과가 또렷이 기억난다. 몸과 마음을 함께 쓰는 직업이라 오래 산다는 해석이 함께했다. 한국의 조사에서는 지휘자가 예술가 범주에 포함되어 결과가 분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휘자는 예술가 가운데서도 특이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창작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는 점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작품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야 있겠지만 창작에 대한 압박감과 비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해석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특별하다. 지휘자는 열정적인 몸짓으로 자신의 해석을 표현한다. 그야말로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정신과 몸을 가장 이상적으로 쓰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사는 철학자

그렇다면 철학자들의 수명은 어떨까?
철학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젊은이’는 없다. 죄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고 게다가 모두 남성이다. 이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자료가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3세기 ~ 미상)가 쓴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가르침』(한국어판 제목은 『그리스 철학자 열전』)이다. 고대 희랍철학자들을 다룬 이 책은 철학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이 책에는 철학자들의 사망 연령도 나와 있는데 그 추정치가 거의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다룬 고대 희랍철학자 48명의 사망 연령을 정리한 내용이 『노년의 역사』에 실려 있는데, 한결 같이 오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젊어서 죽은 철학자는 에우독소스로 53세에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60세에 죽은 헤라클레이토스, 63세에 죽은 아리스토텔레스, 66세 죽은 아낙시만드로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70대 이상에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정확한 나이 없이 그냥 “늙어서” 또는 “매우 늙어서” 죽었다고 기록한 경우가 11명이다.) 100세 이상 산 철학자도 보인다. 데모크리토스 100세 또는 109세, 고르기아스 100세 또는 105세 또는 109세, 테오프라토스 85세 또는 100세 이후. 과음으로 죽은 인물도 더러 있고 노년의 무게를 벗어 버리려 자살한 철학자들도 몇 있다. 테오프라토스의 경우에는 장문의 유서를 실어 놓기도 했다. 그 가운데 스틸폰(기원전 380? ~ 300년)이라는 철학자가 눈에 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키티온 사람 제논(기원전 335?~ 263?년)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포도주를 마셨다”는 그를 위해 저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시가 실려 있다.

메가라 사람 스틸폰을 당신은 아마 알리라.
늙음과 병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한 쌍이 그를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도주라는, 이 못된 한 쌍의 말[馬]들보다 나은 존재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단숨에 비우고 서둘러 떠나갔으니. (『그리스 철학자 열전』 스틸폰 편)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여러 철학자가 오래 살았다고 해서 고대 희랍의 철학자 전체의 평균수명도 높았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생존자 편향’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래 살면서 명성을 떨친 철학자들만 실려 있는 것이다. 젊어서 철학 공부에 매진했으나 채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들의 데이터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명성을 누린 철학자들이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을 테고, 이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늙어감에 대하여 숙고하고 글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 대한 글을 쓴 고대 철학자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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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비정규직노동자가 공유하고자 하는 사태의 진행과 해법

신현창 한국지엠 부평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요 몇 달 한국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와 파산 이야기로 사방이 시끄럽다. 글을 쓰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몇 주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엠을 둘러싼 상황은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해 갔다. 날마다 신문 기사를 읽어 보고 현장의 교섭 내용을 파악해 봤지만,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언론에서 ‘운명의 날’이라고 칭한 부도 신청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다. 내부 소통망에서 확인해 본 결과, 부도 신청과 관련된 이사회 결정을 4월 23일 월요일로 연기했다고 한다. 다시 며칠을 번 셈인가?

아마도 이 글을 독자들이 읽게 될 때에는 이 글을 쓸 때와는 많은 것이 변해 있을 수도 있겠다. 지엠의 법정 관리가 확정됐을 수도 있고, 여전히 지금과 같은 상태로 진행 중일 수도 있다. 또 추가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면서는 상황을 공유하여 논의를 확장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생각나지 않는다.

기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이 지경이 되도록 지엠 노조는 무엇을 했느냐?’ ‘국가는 혹은 산업은행은 왜 알지 못했느냐?’ 하지만 모든 사건의 전조는 있기 마련이고, 오늘의 한국지엠 사태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위기를 말해 왔다. 특히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구조조정이 있었고 이에 대해 비정규직 구성원은 수년 전부터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에 대해 경고해 왔다. 이에 반해 10여 년간 위기설에 시달린 탓인지 정규직노조는 다소 위기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또한 비정규직 목소리에 대해 언론은 무관심했고, 나아가 가장 큰 피해자인 비정규직 주체가 확장되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어우러지면서 사태를 키웠다고 본다.

따라서 몇 가지를 짚어서 공유할 생각이다. 첫째, 지엠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한국지엠의 비정규직 구조조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볼 것이다. 둘째, 글로벌 지엠이 한국지엠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어떤 작업을 진행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셋째, 이미 언론에서 드러난 지엠의 수탈 과정을 다시 한 번 공유할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해법을 놓고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지엠의 글로벌 정책에 따른 비정규직 구조조정의 역사

1) 한국지엠 비정규직노조(지회)의 간략한 투쟁 역사

한국지엠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완성차 공장의 비정규직 주체들의 노조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2003년 현대 아산 공장을 시작으로 2004년 현대 울산, 2005년 한국지엠 창원과 현대 전주, 기아 화성 등의 공장에서 비정규직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한국지엠 창원 공장에서는 비정규직노조가 건설될 때 특이하게도 정규직 노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국지엠 사측은 끊임없이 정규직 내부를 흔들었고, 한국지엠 창원 정규직 집행부가 불신임을 받고 내려오면서 본격적인 비정규직노조 깨기에 들어갔다. 당시 한국지엠은 사내하청 업체 폐업을 통해 비정규직노조를 무력화시켰다. 오래지 않아서 핵심 활동가와 적극적인 조합원을 모두 공장 밖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창원 공장 비정규직 운동은 깊은 수렁에 빠지게됐다. 소수의 조합원이 공장 안팎에서 명맥을 이어 왔는데, 2013년 닉 라일리 사장의 불법파견 형사처벌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다시 반전의 기회를 얻게 됐다. 즉각적으로 창원 비정규직 주체들은 다시 조합원을 확대했고, 현장에 남아 있던 조합원을 중심으로 한국지엠의 근로자임을 확인해 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걸었다. 2016년 6월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서 조합원 확대 사업에 성공했다.

부평의 경우, 비정규직노조 건설에 대한 논의는 2004년부터 본격화됐지만 창원보다 다소 늦은 2007년 9월에 노조 깃발을 올렸다. 당시 지엠의 글로벌 정책에 따라 모듈화, 외주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비정규직노동자가 해고되거나 일터가 공장 안에서 공장 밖으로 바뀌게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이에 더 이상 노조 건설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노조를 건설했다. 하지만 창원에서 이미 비정규직노조 깨기에 성공한 경험이 있기에 한국지엠은 핵심 주체에 대한 집단 폭행과 징계해고, 조합원 다수가 조직되어 있는 업체의 폐업 등의 방식으로 비정규직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노조는 사측의 편에 서서 탄압을 방관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협조하고 있었다. 결국 조합원 절반가량은 조합 건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해고됐고, 나머지 현장 조합원들도 하나둘 사측의 압력에 못 이겨 조합을 탈퇴했다. 2008년 9월에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지엠도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2009년 4월 한국지엠 부평 공장에 있는 비정규직 1,000명 이상이 해고되면서 공장 안에는 비정규직 조합원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대규모 비정규직 해고 역시 그 과정에서 노사 합의 또는 정규직노조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장 밖으로 밀려난 비정규직노조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2011년 비정규직 전원 복직을 회사와 합의하여 2013년부터 현장에 배치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2014년 현장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조합원 확대 사업을 통해 조합원을 늘리면서 2015년 1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창원, 군산, 부평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제기했다. 2016년 이후 물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자 끊임없는 한국지엠의 ‘인소싱’(정규직의 비정규직 공정 전환배치) 시도가 있었지만, 줄기차게 현장에서 투쟁을 이어가면서 어느 정도 인소싱을 막아 내고 조합원도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결국 12월에 조합원 상당수를 포함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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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입법’과 새로운 의회-시민 관계 ― 2018년 헌법 개혁 논의에 부쳐*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Tampere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울대 강사

 

1. 근대의 정치적 조건과 직접민주주의 논쟁

‘다수의 독재’ 또는‘ 무분별한 포퓰리즘’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직접민주주의 구상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로부터 페이트만Carole Pateman(1940∼ )과 바버Benjamin R. Barber(1939∼2017)에 이르기까지 많은 참여 민주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다. 이들은 ‘회합 민주주의assembly democracy’에 대한 고전적 이상을 회복함으로써 선거 형태의 대의 정부가 지니는 민주적 결함을 극복하기를 희망했다. 직접민주주의가 정치과정의 중심에서 작동하는 스위스의 사례는 직접민주주의가 근대사회의 정치적 조건 속에서도 실행될 수 있음을 입증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회합 민주주의와 달리 본질적으로 대의 정부 시스템의 기반 위에 수립된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1806∼1873)과 매디슨James Madison(1751 ∼ 1836) 등은 (직접)민주주의의 불안정함과 인민들의 불완전성 때문에 대의민주주의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보편적 참정권조차도 20세기 초반 들어서야 도입되고 확대되었다.

스위스는 1848년혁명 이후 국민투표referendum 기반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국민투표와 (완전형) 시민발의 제도가 1874년과 1891년의 헌법 개혁들을 통해 각각 도입됐다. 이후 미국의 많은 주가 스위스 모델을 따르면서 주민투표와 시민발의를 제도화했다. 그러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과 나치 등 전체주의 체제들에서 일어난 대중 참여의 남용으로 인해 직접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럽 국가가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면서도 의회와 정당 중심의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선호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재생된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전후 구축된 안정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복지국가 질서의 기반에 균열이 오면서 대안적 의제 설정과 직접 행동주의를 추구하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이 출현했다. “비판적 시민들critical citizens”은 더 투명한 정부와 모든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직접적 시민 참여를 요구했다. 참여 민주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의회와 정당 등 대의 기구를 우회하는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이 더 자주 활용됐다. 알트만에 따르면, 1984년부터 200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국가 단위 수준에서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이 총 949회(시민 주도 메커니즘 328회, 위로부터의 메커니즘 621회) 실행됐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 적합성, 국민투표와 시민발의의 정책적 효과와 정치적 영향,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 등은 계속됐다. 논쟁은 주로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간의 고전적 이분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벗지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주요 비판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근대사회에서 함께 토론하고 표결하도록 모든 시민들을 소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유권자들은 이미 총선을 통해 정당한 정부와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3) 평범한 시민들은 ‘숙고된 판단’을 내릴 역량이 없으며 정책 전문성을 결여하고 있다. (4) 다수의 전제專制와 소수자 인권의 침해라는 위협은 현실이다. (5) 정당과 입법부 등 ‘중간 매개적’ 제도들을 침식하는 것은 ‘일관성 없고, 불안정하며, 무분별한 정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 이 글은 필자의 박사 학위논문 Reaching Out to the People? Parliament and Citizen Participation in Finland(Tampere University Press, 2017)을 토대로 작성됐다. 결론부의 제언은 2017년 11월 3일 국회 박주민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 Altman, D., Direct Democracy Worldwid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 Budge, I., “Implementing popular preferences: is direct democracy the answer?”, Geissel, B. & Newton, K. (ed.), Evaluating Democratic Innovations: Curing the democratic malaise? Routledge, 2013, pp.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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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자본주의의 문제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논리에 대한 이해

닉 스르니첵 / 번역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닉 스르니첵Nick Srnicek

닉 스르니첵Nick Srnicek은 런던킹스칼리지King’s College London에서 디지털 경제를 가르치고 있으며, “Platform Capitalism”(2016년)을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의 특징과 작동 방식을 개념화하고자 했다. 알렉스 윌리엄스Alex Williams와 함께 쓴 “Inventing the Future”(개정판, 2016년)는 포스트자본주의에 대한 좌파적 전망을 제출한 책으로 주목받았다.

아래 글은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한 유용한 요약이라 할 수 있는데, 플랫폼 기업의 핵심적 성격을 무엇보다 데이터 추출에서 찾고 있고, 그 속성상 팽창적이기 때문에 향후 자본주의의 경제의 중심적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번역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졌으며, 각주는 모두 원문의 것이다. https://www.ippr.org/juncture-item/the-challenges-of-platform-capitalism

주위를 둘러보면 “플랫폼”이라 불리는 모호한 실재들이 점차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를 영속시키고 미국 선거 결과를 바꾸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다. 아마존은 급격하게 물류를 바꾸고 일자리 없는 자동화된 미래를 창출하고 있다. 구글은 이미 우리 주위의 기술과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는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을 급속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한편 우버는 새로운 초과착취 고용 모델을 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실재는 무엇이며, 이들 사이에 어떤 종류의 공통성이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회사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이 회사들을 정치적, 문화적 행위자로 보는 데 맞추어져 있다. 가짜 뉴스를 둘러싼 논란은 가장 최근의 예이며, 이 회사들의 역사는 종종 프라이버시 침해와 정치적 로비로 점철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이 회사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비평가들이 주장할 때도 그 논변은 종종 가치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자유지상주의, ‘정보는 자유를 원한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 회사들에 대한 이렇게 낡은 접근법은 이 회사들이 무엇보다 경제적 행위자라는 사실을 가린다. 그뿐만 아니라 이 회사들은 자본주의경제 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경제적 행위자다. 이때 자본주의경제란 특정한 요구를 회사들에 부과하는 그런 유형의 경제를 말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플랫폼을 자본주의 내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바라볼 때 우리는 이 회사들의 일부 미스터리한 행동을 조명할 수 있게 된다.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플랫폼은 새롭게 지배적인 유형이 된 비즈니스 모델로, 서로 다른 집단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에 근거한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광고주, 기업, 일상 사용자를 연결한다. 아마존과 지멘스는 현대 경제의 기초를 이루는 플랫폼 인프라를 건설하고 임대하고 있다. 이런 플랫폼 기업 모두에 핵심적인 것 – 그리고 자본주의의 더 커다란 변화의 지표 – 은 데이터 중심성이다. 데이터는 이 기업들을 추동하는 기본 자원이며, 경쟁자들에 비해 이 기업들이 우위를 갖게 되는 것도 바로 데이터다. 반대로 플랫폼은 그러한 데이터를 추출하고 이용하는 메커니즘으로 설계되어 있다. 인프라 및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매개를 제공함으로써 플랫폼은 이 집단들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을 감시하고 추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 이러한 위치 잡기positioning가 이 회사들의 경제적, 정치적 힘의 원천이다.

이러한 성격은 첫 번째 미스터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기술 부문 외부에 있는 회사들이 플랫폼 요소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 내에서 데이터가 기술 부문과 비기술 부문 모두에서 중심적인 자원이 되면서 회사들은 이 정보를 빨아들이고 한데 모으는 방법을 급속하게 발전시켜야만 한다. 플랫폼은 이 문제에 대해 기성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 결과, 세계 최대의 농기계 회사인 존 디어 같은 회사들이 농부, 종자 생산업자, 화학물질 생산업자, 장비 센서, 트랙터 등등을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존 디어 자체는 데이터를 추출하고, 이 플랫폼을 이용해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특정 곡물을 언제 어디에 심어야 하는지에 대한 예측)를 개선하고 생산물을 개선하고(예를 들어 기계 손상 감소) 궁극적으로 경쟁자에 비해 이점을 가지고 경쟁자를 물리친다. 이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데이터에 대한 충동은 부도덕한 결과를 낳는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특징이 되었다. 쇼산나 주보프Shoshana Zuboff가 주장한 것처럼 플랫폼이 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 과거의 철도 독점체가 석탄을 집어삼켰듯이 – 는 사실은 이 회사들에게는 현재 우리가 사적 영역이라고 간주하는 것의 한계를 깨려는 내적 충동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구글은 구글스트리트뷰 자동차를 운행하면서 가정의 와이파이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페이스북은 개인 생활을 너무 많이 이용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난받고 있다. 비지오는 스마트 티비를 통해 사람들을 염탐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이런 일들은 우연적인 과도함으로 볼 것이 아니라 플랫폼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귀결로 보아야 한다. 데이터가 중심적인 자원이라면, 자본주의적 경쟁이 데이터를 얻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면, 우리 시대는 필연적으로 프라이버시 스캔들로 점철될 것이다.

팽창, 독점, 불사신

플랫폼이 지니는 데이터 욕구는 또한 이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팽창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를 낳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형태가 자본주의적 집중화의 데이터 중심적 논리에 따라 성장하고 팽창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회사들이 합병과 취득에 열을 올리는 것은 데이터 추출이 이러한 회사들의 구조적 필요성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 회사들은 핵심 사업에 만족할 수 없다. 도리어 이 회사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데이터 추출기구를 확장해야 한다. 데이터 추출의 잠재력을 보여 주는 혁신적인 스타트업 기업들을 이 회사들은 재빨리 사들인다. 링크드인이나 트위터같은 2급 플랫폼조차 주요 플랫폼의 만족하지 못하는 데이터 욕구를 위한 사료가 된다. 이 모든 것은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 회사가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자율주행차나 소비자 사물인터넷 등의 벤처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것들은 그저 데이터를 추출하는 새로운 방법일 뿐이다. 포드주의적 회사들의 고전적인 수직적 통합과 달리 플랫폼은 통합의 리좀적 행태를 취한다.

이러한 플랫폼의 팽창적 성격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데이터를 추출해야 한다는 압력 하에서 합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검색 엔진 회사인 구글은 이제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로 시작한 페이스북과 경쟁하고 있고, 두 회사 모두 한때 이커머스 회사였던 아마존과 경쟁하고 있다. 현재 이 주요한 플랫폼 사이의 명시적인 적대감은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이들이 새로운 영역으로 팽창함에 따라 점차 직접적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소비자 사물인터넷이 좋은 예인데, 아마존과 구글은 각자 데이터 추출 제국의 이러한 부문을 지배하려는 노력에서 주요한 행위를 하고 있다. 온라인 상거래는 또 다른 마찰 지점인데, 페이스북은 기업 거래를 자신의 플랫폼으로 가져오려 하며, 이는 구글과 아마존에 어쨌든 직접적 위협이 된다. 이러한 사업들이 팽창하면서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적 필요성이 강력해짐에 따라 서로 간에 더욱 공격적으로 될 것이라고 예측해야 한다.

이러한 동학은 독점을 향한 대항 흐름에 의해 균형추가 맞추어지고 있다. 플랫폼의 핵심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네트워크 효과에 대한 의존(그리고 네트워크 효과 창출 능력)이다. 더 많은 사용자가 어떤 플랫폼을 이용하게 될수록 이 플랫폼은 모두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이 된다. 그 결과는 승자독식 시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페이스북에 가입하는 이유는 이미 그곳에 친구와 가족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소셜 네트워크 영역에서 페이스북의 중심성과 독점적 성격을 강화한다. 우리는 이러한 독점 경향이 주요 플랫폼 – 비서구권의 경쟁자인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말할 것도 없고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 의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각각은 자신의 핵심 사업 영역에서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려 한다. 이들이 이런 위치를 점하게 되면 국가 지원 플랫폼부터 노동자 소유 플랫폼 협동조합까지 경쟁자들이 사실상 도전할 수 없는 위치에 있게 된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죽음 충동

이에 따른 결과는 점차 공격적인 방식으로 경쟁하는 유사 독점적 플랫폼을 향하는 경향이다. 이는 분명 일부 심각한 피해자를 낳게 되는 길이다. 실제로 가장 잘 나가는 유형의 플랫폼 – 공유경제와 연관이 있는 플랫폼 – 이 가장 지속 가능하지 않기도 하다. 우버, 에어비엔비, 딜리버루 같은 회사들은 가능한 한 비용의 많은 부분을 외주화해서 운영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연료비, 유지비, 보험료 등등을 우버대신 부담하며, 호스트가 청소비와 보험료를 에어비엔비 대신 부담한다. 피고용인은 이들 회사 대부분에게 초과 착취당하고 있으며, 임금은 낮고 가져가는 것은 없다. 한편 플랫폼은 이 플랫폼으로 인해 가능하게 된 모든 거래에서 임대료를 거둬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들은 여전히 이윤을 내지 못하고 있고, 벤처 자본의 복지에 기대 생존하고 있다. 실리콘벨리(그리고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기금이 이 회사들로 흘러들어와 수 년 동안 손실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우버는 몇몇 도시에서 가까스로 이윤을 내긴 했지만 (이윤을 내지 못하는) 중국의 경쟁자와 싸우면서 여전히 매년 10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 (우버는 이 싸움을 포기했고, 패배를 인정했다.***) 더 넓게 보자면 이 회사들은 규제 및 노동자들보다 앞서 가는 것에 의해서만 ‘성공’했다. 도시와 나라 들이 이를 따라잡고 적절한 규제를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이 착취적인 관행에 집단적으로 맞서고 더 나은 임금을 확보하면서, 이 회사들은 재정적으로 안정된 것이 아니라 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공유경제는 단기 현상이 될 것이다. 이 회사들 대부분은 파산하거나 부자를 위한 럭셔리 서비스로 바뀌거나 다른 사업 모델로 전환할 것이다. (어쨌든 후자가 우버의 전략인데, 자율주행차를 발전시키고 소유하려 한다.) 어느 경우든 공유 경제 플랫폼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데이터 중심 플랫폼 모델의 내재적인 경향 및 이들의 반反직관적인 결과와 맞서는 것이며, 이 힘에 맞설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그들의 지배력에 대한 과소평가는 그들의 위치를 보장할 뿐일 것이며, 이 플랫폼이 글로벌 경제에서 점차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들의 기능에 대해 이해하는 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 S. Zuboff (2016), “The Secrets of Surveillance Capitalism,” Frankfurter Allgemeine, 5 March 2016.
http://www.faz.net/aktuell/feuilleton/debatten/the-digital-debate/shoshana-zuboff-secrets-of-surveillance-capitalism-14103616.html

** Reuters (2016), “Uber losing $ 1 billion a year to compete in China,” February 2016.
https://www.reuters.com/article/uber-china/uber-losing-1-billion-a-year-tocompete-in-china-idUSKCN0VR1M9

*** B Stone and L. Y. Chen (2016), “Uber Slayer: How China’s Didi Beat the Riding-Hailing Superpower,” Bloomberg Businessweek, 6 October 2016. https://www.bloomberg.com/features/2016-didi-cheng-wei

 이 글은『시대』 2018년 05월호 통권58호에 실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