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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신세대, 신지예

안재성 소설가

 

1.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당년 29세 여성. 역대 서울특별시장 선거 최연소 후보인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이력은 남다르다. 이번 2018년 6월 13일에 실시되는 제7회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마다 무슨 대학이니 무슨 고시 출신이니 하는 상투적인 관록을 내세우느라 바쁘다. 그런데 다르다. ‘하자학교’ 출신과 ‘오늘공작소’ 대표다.

보통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할 이 짧고 명쾌한 이력만 보아도 신지예가 처음부터 기성의 문화나 제도와는 다르게 인생을 시작한, 그야말로 신세대 중의 신세대임을 알 수 있다. 이름 지어 ‘녹색 신세대’다. 누구에게 배우거나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중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변화를 택하고 2000년대 진보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이 당찬 청년운동가의 삶을 살펴보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가 시작되는가, 미미하지만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달에 만나 볼 인물로 선정했다.

선거를 40여 일 앞둔 2018년 4월 말,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신지예 후보 사무실을 찾았다. 50평은 될 꽤 넓은 3층 공간. 아직 플래카드도 걸지 않고 집기도 들여놓지 않은 상태로 당원들이 한창 청소와 정리를 하는 중이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이가 내부 수리를 위해 잠시 비워 둔 곳을 매우 저렴하게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늘 살짝 웃음을 띤, 밝고 씩씩한 인상이다. 한 시간 한 시간이 금쪽같은 후보이니 만나자마자 서울시장에 출마한 이유에 대해 단도입적으로 물었다. 답은 명쾌하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집권한 후 서울이 변화했느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선거인데, 저는 서울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봐요. 문재인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고 박근혜보다는 진일보했지만 보수적인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요. 지난해 핵발전소 문제에서 보여 주었듯이 탈핵 문제에 대한 입장이나 현재 민주당에서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 역시 보수가 맞다고 봅니다. 그래서 녹색당이 필요하다고 보고 제가 나선 것입니다.”

삼선에 도전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박원순 시장님 역시 좋은 분입니다. 그러나 역시 기존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분이라고 저는 봅니다. 먼저, 박원순 시장에게서도 개발주의자의 면모가 보입니다. 서울시는 현재 서부간선도로, 동부간선도로 등 주요 간선도로를 지하로 파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최대 깊이 70m에 왕복 4차선 도로입니다. 환기, 안전 등 여러 가지 우려도 있고 주민과 협의도 안 된 상황입니다만, 지금도 유례없는 크기의 지하차도가 발밑에 뚫리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계획 중인 지하 개발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문제 때문에 이명박 때도 안 했던 토목공사를 박원순 시장이 강행하고 있는 것이죠. 이 문제를 지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다른 말로 쓰라면 ‘건설 공화국’, ‘토목 공화국’, ‘도로 공화국’이 정답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인성을 파괴하는 토목공사에 쏟아 붓는 세금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얼마나 많을까? 그 문제에 대한 민주당 정권의 안목은 거의 제로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신흥 권력자들도, 박원순 시장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신지예는 본다. 박원순 시장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서울시장은 시민 전체의 삶을 바꿀 혁신적인 큰 그림을 그리고 추진해야 하는데, 박원순 시장님은 제도권 안에서 작은 변화를 주는, 중간 관료들이 해야 할 일을 간섭하고 들여다보는 스타일이죠. 저는 서울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이 한걸음 더 질 높은 삶으로 나가려면 새 정당, 새 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선전하려고 선거에 나섰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해방 직후 한민당이란 이름으로 창당한 이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민주당 세력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벌써 세번째 집권으로 하부 구성원들까지 권력의 단맛을 알게 된 민주당 세력에 대한 신지예 후보의 시각은 냉정하다.

“촛불혁명의 덕분에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보수 기득권 세력이 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권력과 이권을 분배해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요, 진보세력 내지 신진 세력의 진출을 억제하고 있어요. 이번 지방선거구 협상할 때도, 소수 정당이 당선될 수 있도록 4인 당선 선거구를 35개로 늘리고자 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총력으로 반대해 무산시켰습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토론회장의 문을 잠가 버려 시민들의 출입까지 막으면서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게 법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제4회 세계녹색당대회에 참가하여 미국 참가자와 함께 사드 배치 반
대를 외치고 있는 신지예(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신지예는 말한다. 자신이 속한 녹색당은 아직 권력에 물들지 않았다고. 그러나 권력 잡으면 언제든지 변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고. 지금 민주당과 싸우고 견제를 해야 하듯이, 그때가 되면 자신은 녹색당을 견제하고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 권력과 돈은 사람을 사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임에 틀림없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견제하여 정치 생태계를 정화해 나가지 않으면 언제든 폭압적인 독재정권이 등장할 수 있는 게 인간 사회다. 세계 많은 나라에 하나의 이름으로 보조를 함께하는 녹색당은 그 정화제의 역할을 하는 소중한 존재다. 이번 선거에서 신지예의 득표율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녹색당과 청년 정치인들의 제도권 진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2017년에만도 네덜란드 총선에서 녹색당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뉴질랜드에서는 스물세 살의 녹색당원 크로에 스워브릭이 국회에 진출했다. 신지예처럼, 그들도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낸사람들이다.

“서울은 너무 비대하고 모든 게 과잉 상태입니다. 면적은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살고 있고 전력의 10%를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사회적, 생태적 위기의 많은 문제가 여기서부터 발생하고 있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지방분권의 의미도, 정의도 찾을 수 없어요. 저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등한 서울, 소유하지 않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 서울, 비대한 수도권이 아니라 건강한 도시 서울을 만들 것입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상상에 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이 당당한 청년 정치인이 장차 한국 정치를 미래로 이끌어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를 걸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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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실현

서정희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1.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실현의 가능성 및 바람직성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기본소득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유한 의제를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사회운동이 선거에 대응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개혁적인 방식’으로 어떤 의제나 정책을 실현하려 할 때 이것이 신생 정당을 포함하여 기성 정당과 정치인의 비전으로 포함되어야 하는데, 선거는 이런 과정이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집중적인 계기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절차 속에서 대중의 정치적 관심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

선거라는 국면에서 기본소득운동 세력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특히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자치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기본소득 제도를 지방 단위에서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기본소득 제도를 어떻게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에 대한 전략적 검토가 요구된다.

먼저, 전자의 문제를 살펴보자. 현재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를 제외하면 기본소득 실험은 전국 단위보다 지방정부 단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 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 주, 나미비아의 오티베로-오미타라Otivero-Omitara 마을,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 Y 컴비네이터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등이 그러한 예다. ***

전국 단위에서 전면적인 사회보장 체계의 개편을 동반한 것이 아닌 지방정부 단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간 주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이라는 한계로 인해 소규모로 실험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이 아닌 실험에서 공공부문 역시 지방정부 단위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보다는 오히려 기본소득 제도가 가지고 있는 혁명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 어떤 발달된 복지국가도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인 현금 급여를 시행한 역사적 경험이 없고, 이를 전면에 내세운 적도 없다. 또한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실현은 기존 복지국가의 기반이었던 유급노동 중심성 테제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격렬한 정치적 반대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작은 단위에서 선도적으로 실행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동안에도 전면적인 개편을 수반하며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몇 개 지역에서 ‘시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그 시범 사업의 결과를 평가한 후 전국 단위로 확장해서 복지제도를 시행한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지방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이나 시행은 그간의 시범 사업에 상응하는 역할을 담당해 줄 것이기 때문에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보다는 현실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정치적 주체라는 측면에서도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보다 지방 단위의 정치적 주체가 기본소득 시행을 주도하기에 보다 수월할것으로 예상된다.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대선 후보 및 경기도지사 후보까지 갈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선도적인 사회정책 아젠다인 청년배당을 자신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전환하여 정치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청년배당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의 마찰을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적 소신을 확고하게 밀어붙였고, 이는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선호로 이어졌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 캐슬린 윈Kathleen O. Wynne의 경우, 재선 이후 기본소득 실험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다. 2018년 연말에 진행될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까지 자유당의 지지율은 보수당에 비해 높아 자유당이 온타리오 주정부 선거에서 다수당이 될 경우 캐슬린 윈의 도지사 3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점을 이번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한다면 후보들은 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변혁적인 대안이자 참신한 공약으로 기본소득 시행을 부각시킴으로써 구태의연한 사회복지 공약을 제시하는 타 후보들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바람직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지방정부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은 전국적인 기본소득 시행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지방의회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사회복지정책을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빚어가면서 조례를 제정하여 제도를 시행하고 결국 그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사례들이 존재한다. 1996년 광주광역시 동구의회의 「저소득주민생계보호지원조례안」이나 2006년 강원도 정선군의회의 「정선군 세자녀이상세대양육비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지방의회가 국가 단위의 복지정책 이상으로 복지 급여를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 지방자치단체장과 중앙정부는 지속적으로 반대를 제기해 왔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법원 소송까지 진행되었으나, 대법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주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조례안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하였고,***** 이러한 조례안의 내용은 다른 지역의 조례제정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국가 단위의 정책에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점을 상기한다면 기본소득 조례를 통한 지방정부 단위에서의 선도적인 정책 시행 전략은 기본소득을 국가 단위의 정책으로 확산시키는 데 고려해 봄직한 주요한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

* 안효상,「지방선거에 대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방침을 정하는 것에 대하여」,『2018년 지역네트워크 워크숍 토론 자료』, 2018년 2월 23일.

** 두 번째 요소인 대중의 정치적 관심은 최근 60년 만에 찾아온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 의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의제도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국면을 기본소득 의제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선거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선거를 이번만 하고 말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방선거 국면에서 기본소득 실현에 대한 검토는 여전히 유효한 의제라 판단된다.

*** 나미비아의 오티베로-오미타라 마을,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 주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은 민간 재원을 활용하여 한시적으로 시행되었고, 현재 종결되었다.

**** 서정희·김교성,「기본소득 지방선거 공약(안)」,『2018년 지역네트워크 후속워크숍 자료』, 2018년 4월 22일.

***** 광주광역시 동구의 ‘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1997년 4월 25일에 선고한 96추244 판결을 참조하고, 강원도 정선군의 ‘지방의회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2006년 10월 12일에 선고한 2006추38 판결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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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둘 수 없는 지주회사 및 자사주 제도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1. 들어가는 말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투척한 사건이 대한항공 지배주주의 갑질 문제로 퍼지더니 상습적인 관세법 위반 등의 불법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는 등 재벌 갑질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재벌가의 크고 작은 반사회적 행동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항항공 조회장 일가의 사례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이 인성이나 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사실 조양호 일가는 2013년 한진그룹의 지배 구조를 기존 순환출자 구조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룹지배력을 확보했다. 조양호 회장은 쏟아지는 사회적 질타와 사법 처리가능성을 의식해 조현아, 조현민 자매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였지만, 조 씨 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확고하기 때문에 이는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

재벌가와 재벌 기업들의 관계, 즉 극소수 지분으로 방대한 계열사를 확고하게 지배하는 소유-지배 구조의 문제가 사태의 본질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시장에 의해 퇴출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별다른 제도적 감시와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재벌이 기업집단*을 지배함에 따라 재벌-노동자, 재벌-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재벌-소비자의 관계는 물론이고, 나아가 재벌과 국민경제의 관계에서도 재벌은 점점 수탈자의지위로 변모하였다.

이 글에서는 대한항공 갑질 사례를 계기로 조 회장 일가에 확고한 지배권을 안겨 준 지주회사 제도, 특히 ‘자사주 마법’이라 불리는 지배력 확장 수단에 대해 알아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

한진그룹은 2013년에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조양호 회장 일가는 지주회사 전환 전에 는 순환출자 구조에서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정석기업주식회사를 지배함으로써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을 지배하였다. 총수 일가가 정석기업을 37.3%의 지분으로 지배하고, 정석기업은 (주)한진에 19.41% 지분을 갖고, (주)한진은 대한항공 지분 9.69% 보유하고, 대한항공은 다시 정석기업에 48.28%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정석기업 → (주)한진 → 대한항공 → 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한진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총수 일가는 정석기업에 대한 확고한 지배 이외에 대한항공에 9.86%, (주)한진에 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순환출자 구조는 총수 일가의 지분 9.86%만으로는 대한항공을 지배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계열사 내부 지분***을 통해 한진그룹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순환출자를 통해서도 그룹 지배권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대한항공에 대한 총수 일가 지분 9.86%와 (주)한진의 대한항공 보유 지분 9.69%를 합쳐도 20%가 안 된다. 이는 그룹 경영권을 3세로 승계하려 할 경우에 특별히 문제가 된다. 총수 일가 지분 역시 조양호 회장 단독 보유 주식이 거의 절대적 비중이었는데, 세 명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경우 과세표준 30억원 이상에 적용되는 50%로 증여세를 내야 하므로 그룹 지배력이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한진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총수 일가의 추가 지분 투자 없이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소위 ‘자사주 마법’을 활용했다. 먼저 대한항공을 사업회사(대한항공)와 이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한진칼)로 분할한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주회사로 신설 법인이다. 대한항공에 적용된 분할 방식을 ‘인적 분할’이라고 한다. 인적 분할 방식으로 대한항공을 분할할 경우 총수 일가는 기존 대한항공에 대한 보유 지분과 동일한 9.86%를 신설 법인인 한진칼에서도 보유하게 된다. 2013년 8월 당시 대한항공은 자사주 6.76%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자사주 마법’이 등장한다. 자사주 마법에 대해서는 이후 상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핵심만 언급하겠다. 자사주는 원래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지만, 인적 분할 시에 존속회사****가 그 비율만큼 자사주를 승계하고 존속회사의 지주회사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율로 신주가 배정된다. 존속회사 자사주가 지주회사에 분할 신주로 배정될 때는 의결권이 부활한다는 것이 ‘자사주 마법’이다. 지배주주가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권만 안정적으로 확보하면 사업회사가 보유했던 자사주가 의결권이 있는 지주회사의 내부 지분으로 전환되어 결과적으로 지주회사 지배주주(조양호 회장 일가)의 의결권 지분이 되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를 보면, 대한항공 법인이 보유 중이었던 자사주 6.76%가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신설 지주회사 한진칼의 의결권 있는 내부 지분이 되었다. 대한항공 시가총액의 6.76%에 해당하는 주식을 사기 위해서 조양호 회장 일가에게 필요한 자금은 2018년 5월 3일 대한항공 주가 기준으로 약 2,145억원이다. 조 회장 일가가 자사주 마법을 통해 절약한 돈의 액수라고 보면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수의 재벌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추가의 지분 투자 없이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사주 마법을 활용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조 회장 일가는 한진칼에 대한 지분을 23.13%로 늘렸다. 여기에서도 지주회사와 존속회사의 주식 맞교환 등의 방법으로 지배주주의 추가 지분 투자 없는 지배력 확대가 이뤄졌다. 특수관계인*****의 한진칼 주식 지분까지 합쳐 조 회장이 지배하는 한진칼 지분은 32% 가까이 늘어났다. 인적 분할 첫 단계에서 한진칼의 대한항공에 대한 지분은 대한항공이 보유했던 자사주 6.76%에서 32.83%로 확대되었다. 이와 동시에 존속회사 대한항공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분은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쳐 47.08%에 이르렀다. 자사주 마법을 활용한 지주회사 전환으로 주주총회 안건 가결이든 적대적 M&A 방어든 지배권이 확고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 “기업집단”이란,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을 말한다, 여기서 “동일인”이란 특정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나 법인을 말하며, 통상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일 경우에는 그 총수(예, 삼성그룹의 이재용, 현대차그룹의 정몽주 등)가 동일인이며,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일 경우는 지배회사(예, 포스코)가 동일인이다.

** “지주회사”란 주식의 소유를 통해 다른 회사의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상의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회사를 말한다. “주된 사업”의 기준은 지주회사가 지배하는 자회사의 주식 가액의 합계액이 지주회사 자산총액의 50%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지주회사는 순환출자와 함께 대표적인 기업결합의 방식으로, 기업집단 지배 구조의 투명성 제고 및 경제력 집중 억제 등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한도,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로 이루어진 출자 구조에서 모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최소 지분보유 한도, 증손회사 허용 여부, 자회사의 모회사 지분 보유 금지 등 여러 규제를 두고 있다. 이에 관한 제도의 총체를 “지주회사 제도”라 한다.

*** 기업집단 내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과 계열사 지분을 합쳐 “내부 지분”이라고 한다.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재벌 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은 2016년 기준 2.6%, 계열사 지분은 54.9%로 내부 지분은 57.6%에 달한다.

**** 분할되기 전의 원래 회사를 말한다. 한진그룹의 경우 대한항공의 인적 분할에서 대한항공이 ‘존속회사’이자 ‘분할 회사’이며, 한진칼이 ‘신설 회사’이자 ‘지주회사’다.

*****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 규정은 동일인이 법상의 규제를 피해 형식적으로 소유를 분산시키고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동일체를 형성하여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특수관계인은 1. 당해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자, 2. 동일인 관련자(배우자,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을 포함), 3 경영을 지배하려는 공동 목적으로 기업결합에 참여하는 자에 해당한다. 특수관계인에는 자연인뿐만 아니라 계열사와 공익법인 등 법인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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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기본소득: 좌파의 주장인가 우파의 주장인가?*

다니엘 라벤토스Daniel Raventós, 줄리 와크Julie Wark / 번역 박선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

[다니엘 라벤토스 / 사진-정치경제연구소 대안]

* 이 글은 『카운터펀치 CounterPunch』의 웹사이트에 2018년 4월 6일 자로 기고된 “Universal Basic Income: Left or Right?”을 번역한 것이다. https://www.counterpunch.org/2018/04/06/universal-basic-income-left-or-right/. 필자들은 2018년에 기본소득을 옹호하며 낸 책 “Against Charity(CounterPunch, 2018)”의 공저자다.

보편적 기본소득, 즉 모든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조건 없이 지급하는 현금이 사회계, 정계, 학계에서,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점점 더 토론거리가 되고 있다.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기본소득을 옹호하고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끝에서 밀고 있다면, 그 비밀은 무엇일까? 아주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이 있어서 정치적 양 극단 사이의 모든 차이를 없앤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기본소득이 그렇게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에게서 환호를 받는다는 사실은 진지한 논쟁을 애매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을 완전히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좌파 측을 보자면, 자신은 안 속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이 기본소득 완전 반대라는 자동 반응을 보인다. 기본소득을 그저 우파의 속임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과두제 지배층의 ‘기본소득 보장’ 신용 사기The Oligarchs’ ‘Guaranteed Basic Income’ Scam」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과두제 지배층은 구조 변화를 제안하지 않는다. 기업과 시장이 규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노동조합을 지지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에서 빚에 몰려 강제로 일해야 하는 노동자나 미국의 창고와 배송 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배달 차량을 운전하는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한다. 무상 대학 교육, 정부의 보편적 의료나 적절한 연금 등을 수립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렇기는커녕, 최저 생존 임금을 버는, 마음대로 고용되고 해고될 수 있는 절망적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착취하는 메커니즘을 추구한다. 기본소득 보장을 요청하는 것은 칼 맑스와 안토니오 그람시가 이해한 바의 고전적 사례다. 즉, 자본가들은 잉여의 자본과 노동이 있으면 그 잉여분을 빨아들이기 위해 사회의 관습을 변경하는 대중문화와 이념을 이용하는데, 지금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Against Charity(CounterPunch, 2018)”

그의 말이 딱 맞다. 그러나 과두제 지배층의 사악한 방법들을 밝혀낸다고 해서 조건 없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좌파의 주장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닌 것 같다. 이제까지 봤을 때, 보편적 기본소득이 모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즉 물질적 생존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방법으로 제기되는 유일한 정책이라는 주장 말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은 보편적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과두제 지배층에 맞선 투쟁에서 사회 취약층의 힘을 강력하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

존경받는 맑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다른 견해를 살펴보자. 논지를 모두 다 담도록 좀 길게 인용할 것이다.

그런데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되면 뭘 해야 할까? 일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로봇세”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걸로 할 수 있는 건 자동화 속도를 늦추는 게 전부다. 고역을 줄이는 진보적 변화는 결코 아닌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UBI이라는 아이디어가 경제학자들을 계속 끌어당기고 있는데, 좌파와 주류 모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이전에 보편적 기본소득의 장점과 단점을 논의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무상의 의료와 교육, 괜찮은 수준의 연금 등을 제공하던 “복지국가”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한다는 식으로 많은 신자유주의 경제 전략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낮추기 위해 제안되고 있다. 괜찮은 수준의 기본소득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서 자본주의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이 설령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쟁취된다고 해도, 여전히 누가 로봇과 생산수단 일반을 소유하느냐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더 흥미진진한 대안은 보편적 기본서비스라는 아이디어다. 사용 시점에 무료인 공공 재화와 서비스라고 일컬어지는 것 말이다. 극도로 풍요로운 사회는 정의상 우리의 욕구가 고역과 착취 없이 충족되는 곳, 즉 사회주의사회다. 그러나 그런 사회로의 이행은 사회적 필요노동을 교육, 의료, 주거, 교통 같은 기본적인 사회적 욕구와 기본적 식품 및 설비의 생산에 돌리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로버츠의 글은 기본소득 논쟁의 몇몇 주요 측면의 핵심에 이르는 훌륭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1) 기본소득은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좌파의 제안과 우파의 제안 사이의 차이는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를 물어보면 쉽게 확인된다. 좌파의 제안은 누진세 개혁을 필요로 하는데, 이 누진세 개혁은 가장 부유한 시민들에게서 사회의 나머지로의 중대한 재분배를 야기한다. 그래서 우리 책 『자선에 반대하여』의 마지막 장에서는 광범한 연구의 결과인 재원 마련 안을 상세히 밝혔고, 거기서 우리는 우리 판본의 기본소득으로는 가장 부유한 20%가 손해를 보고 나머지 80%는 이득을 본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것은 소득재분배를 의미하며, 지니계수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곳(약0.25)이 될 소득재분배다.

2) 복지국가 해체를 고려하는 기본소득은 모두 우파 술책이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 사실, 그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음의 소득세NIT’를 지지했는데, 음의 소득세는 몇 가지 점에서는 기본소득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들에서는 기본소득과 많이 다르다 ― 과 더 최근의 우파 경제학자들이 표면상 기본소득 지지자라는 사실로 인해, 기본소득을 좌파적으로 비판하는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고 있다. 프리드먼은 미국에서 공공 사회서비스 해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면서 NIT를 미끼로 쓰고 싶었지만, 이런 점으로부터 모든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복지를 없애고 싶어 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너무 환원주의적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기본소득은 더 많은 사회서비스, 더 좋은 서비스를 수반할 수 있고 수반해야 한다. 1986년에 만들어져서 현재 모든 대륙에 가입네트워크들을 두고 있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는 2016년 서울에서 열린 BIEN 총회에서 이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금액과 빈도가 안정적인, 그리고 다른 사회서비스들과 어우러져서 물질적 빈곤을 제거하고 모든 개인의 사회적 문화적 참여가 가능하게 하는 정책 전략이 되는 충분히 높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것에 동의했다. 우리는 사회서비스들과 수급권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취약하거나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상황을 악화시킨다면, 사회서비스들과 수급권을 대체하는 것에 반대한다.

3) 좌파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기본소득이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키울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다국적기업과 노동자가 계약을 맺을 때 양자가 법률상 “동등한 자”로 비교되는, 제도적으로 너무 비대칭적인 노동관계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더 취약한 측의 위상을 개선시키는지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노동자들이 최소한 빈곤선 이상의 소득을 의지할 소득으로 갖게 될 것이니 말이다.

4) 많은 페미니스트가 반복해서 지적하듯이, 매 맞는 여성의 다수가 자신을 학대하는 파트너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이 독립적으로 생계비를 벌거나 생존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학대당하는 여성들 가운데 꽤 높은 비율이 폭력적인 파트너에게 물질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그래서 기본소득은 그런 여성들에게 긴급하게 필요한 물질적 독립성을 제공할 것이다.

5) 기본소득은 정치경제 영역의 조치이지만 “정치경제” 자체는 아니다. 좌파 기본소득 안과 우파 기본소득 안의 차이는 정치경제 영역에서 강력히 촉구하는 조치들의 수와 유형을 보면 명백해진다. 예를 들면, 나머지 인구에게 기본소득을 효과 있게 지급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걷는 것은 과두제가 퍼뜨리는 조치들과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이 과두제는 미국의 세 인물 ― 제프 베조스Jeff Bezos, 빌 게이츠Bill Gates, 워런 버핏Warren Buffet ― 이 2017년에 그 나라 하위 50% 전체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한 것 같은 극단적 상황을 만들었다. 분명, 이 차이만으로도 기본소득은 오직 한 가지 종류만 있다는, 그것도 나쁜 종류만 있다는 관념을 떨쳐버리기 충분할 것이다.

6) 조건부 복지 급여들은 많은 행정비와 수급자 낙인을 필요로 하고 더 심각하게는 빈곤의 덫을 야기하고 영속화한다. 이런 조건부 급여들과는 달리,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그 본성상 관료제와 기관들의 감시를 제거함으로써 이런 위험들을 피하게 된다는 점이 분명하다. 더 중요하게는, 기본 개념들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조건부 급여들은 문제 있는 사람들, “루저,” “실패자”를 위한 것이다.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일을 구할 수 없는 사람, 사는 데 충분한 돈을 벌 수 없는 사람, 벌어들이는 소득, 능력, 인지 기술, 정신적 육체적 건강 등등과 관련해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 따위를 위한 것이다. 빈곤은 개인적 일탈로 평가된다. 규범은 일자리를 갖는 것, 꽤 괜찮은 생계비를 버는 것이다. 급증하는 노동빈곤층이 증명하듯, 일자리를 갖는 것이 빈곤에 대비하는 보증책이 아닌 오늘의 현실에서 이런 규범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대한 좌파의 관념에서는, 자유, 정의, 평등, 인간 존엄 등은 내재하는 원리들inherent principles이며,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그저 시민 또는 등록된 주민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개인의 물질적 존재를 자동으로 보장하게 된다. 이 점이 확실해진다면, 다른 세부 사항들은 논의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제1의 목표는 모든 권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기본소득의 좌파 판본과 우파 판본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물론, 그 밖의 점들도 있지만, 이 여섯 가지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들이다. 밀턴 프리드먼,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이 지지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나쁜 아이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이라크 어린이 50만 명이 미국의 이라크 제재로 죽게 된 것에 대해 “그 희생은 치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가 인권 증진을 주장하기 때문에 인권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혁명적인가? 그렇지 않다. 임금 인상, 노조 힘의 증가, 관대한 공공 의료·교육·주거 시스템을 가져다주지도 않고, 책임 있는 윤리적인 정부를 가져다주지도 않고, 또 그 밖의 것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자본주의는 괜찮은 사회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중대한 문제이고, 기본소득은 고전적 의미에서 “개량적”이다. 그러나, 잠깐만, 바로 지금 자본주의 시스템을 확실히 뒤집을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