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전쟁과 미국적 자유주의의 쇠락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1. 도입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7월 6일 이제까지 공언했던 바대로 34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실제로 부과했다. 중국은 그 즉시 같은 규모의 미국 수입품에 대해서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적으로 8월 23일부터 나머지 160억달러에 대해서도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중국도 역시 이에 대해서도 같은 규모로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미국은 25% 관세를 2,000억달러어치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며, 중국도 그럴 경우에 600억달러어치의 미국 수입품에 대해서 5~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국제무역기구WTO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자유무역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이 WTO의 틀에서 벗어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1995년에 출범한 WTO는 냉전 종식 이후 조성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WTO의 출범은 분명히 미국이 대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Gregory Shaffer, China’s Rise: How It Took on the U. S. at the WTO, University of Illinois Law Review, 2018).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던 지역 내에서는 자유무역에 대한 강한 정치적 합의가 있었다. 보호무역은 국제무역을 위축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분할로 이어져 국민국가 간 전쟁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는 1930년대에 미국을 필두로 서구 제국들이 보호무역을 실시한 것이 대공황을 심화시켰고 결국에는 세계대전을 야기했다는 널리 공유되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은 미국과 영국에서 발달한 주류 경제학에 의해서도 더욱 강화되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자유주의 경제학은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을 원형으로 삼아 오랫동안 자유무역을 이상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0년대 초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유로운 시장 및 무역의 승리를 역사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미국의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으며, 무역 전쟁이 야기할지도 모르는 세계 경제의 혼란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 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서구 세계의 오랜 합의였던 자유무역을 부정하고 자국이 만든 WTO의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미국이 WTO의 틀을 깨고 보호무역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본다.

2. WTO 가입 이후 중국의 무서운 추격

미국의 표면적인 명분은 현재의 WTO 규칙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무역에서 벗어난 중국의 불공정 행위를 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WTO 규칙이 미국에게 불리하고 중국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버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이 그런 주장을 펴는 이유는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양국 간의 경제 실적의 놀라운 격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여 중국의 WTO 가입을 허용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정치인들은 중국이 자유무역 체제에 들어오게 되면 미국의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많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 중국이 WTO 규칙에 따라 관세를 낮추면, 미국이 우월한 산업적, 금융적 경쟁력을 통해서 중국으로의 수출을 확대하고 그것에 힘입어 미국의 고용도 확충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크게 빗나갔다.

그 결과는 통계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는 2000년 약 831억달러였는데, 2017년에는 약 3,756억달러로 거의 4.5배로 늘어났다. 미국의 수출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수입의 증가에 의해서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 무역 적자가 중국의 노동 집약적인 저가 상품에 의해서만 야기된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컴퓨터, 전기 장비, 전자 및 부품 등 고기술 제품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018년 7월에 발표된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수입에서 “선진 기술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3.8%에 이른다(Wayne Morrison, China-US Trade Issues, CRS, 2018).

대중 무역 적자의 문제는 단지 그 규모에 한정되지 않는다. 무역적자의 증대는 미국의 일자리를 감축시켰다. 2014년에 발표된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4년 사이에 대중 무역 적자로 인해 320만 개의 미국 내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했다(EPI, China Trade, Outsourcing and Jabs, 2014).

위 통계에 비춰 보면, 미국 행정부는 미중 무역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계속해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런데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무역 적자의 규모 자체가 아니라 2001년 이후 중국이 보여 주고 있는 놀라운 정도의 경제적 추격이다. 2001년 미국의 경제 규모는 명목 GDP 기준으로 중국의 7.9배에 달했지만, 2017년에는 1.6배에 불과하다(IMF, World Economic Outlook). 이 추세라면 중국은 미국을 조만간 추월하게 된다.

중국의 추격은 거시적 차원의 지표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의 수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 세계 4대 은행이 전부 중국 기업이며, 100대 은행에 속하는 은행의 수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Mark Wu, The “China, Inc.”, Challenge to Global Trade Governance, 2016).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중국의 WTO 가입이 중국을 미국적 규칙에 복속시켜 미국에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17년이 지나고 보니 중국이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은 현재 WTO의 규칙이 중국의 경제적 추격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중국의 세계 패권 도전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확립한W TO의 규칙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사실, 미국이 WTO 체제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돌출적인 정치인인 트럼프에 의해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2010년경부터 WTO가 중국에게 유리하고 미국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미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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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노회찬의 죽음

박기순 충북대 철학과 교수

1. 자살이란 무엇인가?

지난 7월 23일 정의당 국회의원이었던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자살이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한국진보운동과 함께해 왔던 그의 삶을 알기에 많은 사람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슬퍼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은 ‘꼭 그래야만 했는지’를 물으며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일반적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자살’이라는 행위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때로는 목숨을 걸고 어떤 일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무릅써야’ 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사실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것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욕구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살은 살아 있는 존재에게는 자기모순적 행위다. 즉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존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간주되는 인간은 살고자 하는 자연적 욕구를 거스르는 행위를 하는가?

현상적으로 자살의 형태를 띠고 있는 행위들이 엄밀히 말해 모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견상으로는 자살이지만 실제로는 타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즈음 뉴스를 매일같이 장식하는 이러저러한 자살 소식들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울해서, 살길이 막막해서, ‘왕따’를 당해서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 선택은 강제된 선택이다. 살기를 원했지만 최소한의 살아갈 의지마저도 앗아간 이러저러한 환경과 원인 때문에 더 삶을 계속할 의지를 상실한 것이기에, 최종 행위자는 자기 자신이지만 그 행위의 진정한 원인은 외부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철학자 스피노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자살은 우연히 칼을 든 손이 외부의 힘에 의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행위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살’로 부르지 않는 행위도 앞에서 말했던 자살적 행위와 같은 것이 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그것도 잘 살기 위해서는 부와 쾌락과 명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맹목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삶은 황폐해지고, 돌보고 사랑해야 할 많은 것을 잃는다. 이 경우,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하는 많은 것은 실제로는 우리의 삶을 파괴하게 된다.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죽이는 것이지만, 실제로 여기에서도 죽음의 실제적인 원인은 내가 아니라 외부 원인에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즐거운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즐거운 것들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즐겁게 하는 모든 것이 나를, 나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그것들은 반대로 나의 삶을 불행에 빠뜨리거나 파괴한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나의 삶을 파괴하게 되는 것은 내가 행복(잘 사는 것, 잘 존재하는 것)을 쾌락적인 삶으로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혼동은 외부의 어떤 것(나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 나에게 미친 영향(쾌락)에 굴복하여 그것을 올바르게(나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지 못한 것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잘못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살’이라고 부르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즉 그것은 자살의 형태를 띠고 있는 타살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자살은 없는가?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다. 고 노회찬 의원의 자살은 분명 앞에서 언급한 ‘자살의 형태를 띤 타살’과는 조금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경우를 성찰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례 하나가 철학사에 있다. 다름 아닌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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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의 시장화와 북핵 해결 전망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대안’부소장

1. 도입

북한이 2018년 6월 12일 역사상 최초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 미국 일각에서는 북핵 폐기의 구체적인 원칙(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폐기)이 명시되지 않은 것을 두고 비판이 일고 있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과정에서 이탈하여 상황을 되돌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만약 북한이 핵보유를 다시 고집하면서 한국 및 미국과 대립한다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봉쇄는 과거보다 훨씬 더 강화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과거의 대립 노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사실은 비단 핵문제와 대외 관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사실 북한은 경제 영역에서도 사회주의의 기본 통념에서 벗어나 시장 관계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개혁을 진행시켜 왔다. 대다수 연구들은 북한의 시장화를 계획경제의 토대가 붕괴되고 개인과 기업이 자구책을 찾는 과정에서 시장이 자생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시장화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시장을 양성화하고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화는 개혁적 의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 경제의 시장화 확산은 대외 정책 및 군사 전략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역사상에 존재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인 시장의 무정부성을 ‘중앙 계획’으로 대체하려는 목적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여러 연구들이 말해 주는 것처럼, 현실의 사회주의는 경제 자원을 국가 전략상의 최우선 분야인 군수산업으로 집중하기 위한 전쟁 동원체제다. 폴란드 경제학자 오스카 랑게에 따르면, 현실의 사회주의는 “독특한sui generis 전쟁경제”로서, “모든 자원을 하나의 유일한 목적을 위해 집중하는 체제, 중요하지 않은 부분으로의 자원 유출을 피하기 위한 자원의 집중적 배분 체제, 정치적 판단에 따른 우선순위에 따라 행정적으로 자원을 분배하는 체제, 정치적 자극과 애국심에 호소함으로써 노동을 독려하는 체제”다. (Oskar Lange, “The Role of Planning in a Socialist Economy”, Indian Economic Review, Vol. 4, No. 2, August 1958).

사회주의에서 계획의 실질적인 의미는 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체제의 시장화란 자원 배분의 방식이 계획에서 시장으로 대체된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군사 부문으로의 경제적 동원이 완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경제에서 계획 부문이 축소되는 시장화의 현상은 북한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군수산업으로 동원하던 자원의 양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

이 글은 위와 같은 관점에서 북한 경제의 시장화 현상을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향후 북한 당국의 대내외적 정책 방향을 전망해 본다.

제2절에서는 북한이 전통적인 사회주의를 고수하던 시기에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는가를 살펴본다. 계획경제라 불리던 시기에도 시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공식적으로 인정되던 시장이 있었고, 비공식적이고 은폐된 형태로도 다양한 시장이 존재했다. 사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장화는 비공식적이고 은폐된 형태의 시장이 제도화, 양성화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시장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사회주의에서의 시장을 먼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제3절에서는 북한 경제의 시장화 현상이 시기별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본다. 북한 경제의 시장화는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북한 당국의 정책에 의해서 가속되었다. 이후 시장화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후퇴하기도 했지만 북한에서 시장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는 점을 확인해 본다.

그리고 결론에서 향후 북한의 대내외 정책을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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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의 지방선거 패배와 정당체제의 변화 가능성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 들어가며

선거를 관전하는 즐거움은 무엇보다 누가 이길 것인지 모르는 ‘불확실성uncertainty’에서 온다. 그러나 간혹 어떤 선거는 그 결과가 너무나 확실해서 굳이 개표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승패가 확실해 보이더라도 대부분의 선거는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는 마음을 졸이며 지켜봐야 하기 마련이다. 제7회 동시지방선거도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불확실성의 수준이 매우 낮았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고공 행진을 지속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와 언론 보도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선거가 종반으로 가면서 이러한 전망이 더욱 굳어졌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회담 역시 더불어민주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했다. ‘북한의 김정은이 문재인의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있다’라는 홍준표의 탄식에서 잘 드러나듯이, 여당의 입장에서 북한 변수는 ‘총풍’이 아니라 ‘훈풍’의 역할을 해 주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을 긴장시킨 이슈는 ‘드루킹 사건’이었다. 자칫 국정원 댓글 사건처럼 정권의 정당성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고 파장이 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여당은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인 5월 18일 이 사건에 대한 야당의 특검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를 지켜본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당시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참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은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역대 선거에서 나타났던 영남 유권자들의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을 고려할 때 자유한국당이 참패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아울러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아 잘 드러나지는 않는 소위 “샤이 보수”가 본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알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제7회 지방선거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지방선거는 총선이나 대선과 달리 중앙권력이 아닌 지방권력의 구성을 위한 것이기에 통상적으로 전국적 차원의 정당체제의 재구성을 의미하는 중대 선거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히 더불어민주당의 압승과 자유한국당의 대패로만 그 의미를 한정하여 바라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에서 기존의 영호남 지역 균열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투표 행태의 변화가 목도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념적으로 ‘보수’를 대표하고 지역적으로 ‘영남’을 대표하던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가 현격히 약화되어 그 위상이 추락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은 물론 부산·울산·경남에서도 광역단체장 선거를 비롯한 거의 모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구·경북에서도 과거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다.

2. 지방선거 결과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역대급’ 승리를 거두었다. 14명의 광역단체장(82.4%), 151명의 기초단체장(66.8%), 605명의 광역의원(82.1%)과 47명의 광역비례의원(54.0%), 1,400명의 기초의회의원(55.1%)과 238명의 기초비례의원(61.8%)을 당선시켰으며,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15개 광역의회에서 원내 제1당이 되었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가히 ‘일당 우위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자유한국당은 대구와 경북 등 두 곳에서만 광역단체장을 배출하였으며, 나머지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는 비교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저조한 성과를 거두었다. 바른미래당은 광역단체장 선거는 물론 기초단체장 선거 가운데 단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하였으며, 불과 1명의 광역의원, 4명의 광역비례의원, 19명의 기초의회의원, 2명의 기초비례의원만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민주평화당은 그나마 5명의 기초단체장(전남 3명, 전북 2명)과 2명의 광역비례의원(전남과 전
북 각 1명), 46명의 기초의원(모두 광주, 전남·북), 3명의 기초비례의원(모두 전남)을 당선시켰다. 진보정당인 정의당과 민중당 또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합진보당의 후계 정당인 민중당은 11명의 기초의원(광주 3명, 울산 1명, 경기 2명, 전남 4명, 경남 1명)을 당선시키는 데 만족해야 했으며, 그나마 정의당은 1명의 광역의원(전남), 10명의 광역비례의원(서울, 인천, 광주, 충남, 전북, 전남, 경남, 제주 등 각 1명, 경기 2명), 17명의 기초의원, 9명의 기초비례의원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영남 지역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가 급속도로 약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음의 그림은 이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비중과 자유한국당 당선인 비중 사이의 차이를 보여 준다. 자유한국당은 대구와 경북에서는 기초단체장 선거와 광역의회 선거에서 당선인의 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불어민주당보다 훨씬 더 높았다. 특히 대구의 경우,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보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87.5%p, 광역의회 선거에서 70.4%p 당선인의 수의 비중이 더 높았다. 그러나 광역비례대표 선거, 기초의회 선거, 그리고 기초비례의원 선거의 경우 그 차이가 현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부산, 울산, 경남에서 나타난 선거 결과였다. 특히 통상적으로 자유한국당의 전신이었던 새누리당의 지지도가 높았던 부산과 울산에서 자유한국당의 당선인 비중은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현격하게 낮았다. 특히 울산 지역에서 모든 기초단체장 선거의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 후보였으며, 자유한국당은 단 한명의 당선인도 배출하지 못하였다. 다만, 경남에서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에 비해서 각각 16.7%p, 10.6%p, 13.9%p 더 높은 비율의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기초비례의원을 배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저임금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고,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안태근, 안희정, 조민기, 조재현 등 정계와 영화계 인사들의 성추행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는 소위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그 외에도 이 시기에는 이명희를 비롯한 한진 그룹 오너 가족의 ‘갑질’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의 특징은 ‘지방’이 없는 선거였다는 점이다. 지역 이슈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에 묻혀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였다. 각 정당들이 제시한 10대 정책에는 ‘일자리 창출’과 함께 ‘미세먼지’ 대책이 포함되었다. 한편, ‘세월호 사건’ 발생 직후 실시된 지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는 거의 모든 정당이 ‘안전’을 1순위 정책으로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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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넘랜드, 자동화, 기본소득: 하나의 응답*

말콤 토리, 번역 이건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지난 호에서 프레더릭 피츠, 로레나 롬바르도치, 닐 워너 등은 기본소득이 저임금에 대한 우울한 보조금으로 기능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비판했다. 여기서는 기본소득의 주요한 옹호자가 기본소득은 단순한 임금 보조금과는 다르게 기능한다는 주장으로 이에 응답한다.

『갱신』 2017년 마지막 호(25권 3∼4호)에서, 프레더릭 피츠, 로레나 롬바르도치, 닐 워너는 1795년 스피넘랜드 개혁 경험이 “일종의 기본소득 실험”이었다고 주장한다.1)

스피넘랜드 제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것은 노동빈곤층에 대한 구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다양한 비율로 지급된 보충 급여들은 순소득을 보장했다. 절대로 ‘기본소득’이 아니었다. 그 차이는 결정적이다. 스피넘랜드 제도에서 보장된 최저소득은 가구소득이 그 수준 아래로 떨어지도록 허용되지 않는 최저소득이며, 주어지는 급여는 가구의 순소득을 특정 수준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설계된다. 현재 그와 유사한 것들로는 근로세액공제Working Tax Credits와 이른바 유니버설 크레딧Universal Credit이 있다. 스피넘랜드 제도에서 지급되는 보충 급여는 노동자의 소득과 특정한 최저소득 사이의 격차를 메우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이때 그 특정한 최저소득은 가족 규모나 빵 가격과 연관된 것이었다. 보충 급여는 자산 조사에 기반하는 복지 급여였다.

기본소득은 이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기본소득은 동일한 연령의 모든 개인에게 똑같은 액수로 지급된다. 그 차이는 뚜렷하다. 스피넘랜드 급여는 소득이 증가할 경우 감소했으며 소득이 감소할 경우 증가했다. 기본소득은 개인의 소득이 어떠하든 동일한 액수로 유지된다. 이는 효과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피넘랜드 보충 급여는 동태적 보조금으로서 기능했다. 보충 급여는 임금이 하락하면 상승해서, 임금을 삭감했던 고용주들은 보충 급여가 임금 삭감을 벌충할 것임을 알았다. 기본소득은 정태적 보조금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임금이 하락해도 상승하지 않을 것이어서, 고용주와 피고용자 모두 만약 임금이 하락하면 피고용자 가족들의 경제적 상황이 더 나빠지게 됨을 알 것이었다. 단체협상과 국가생활임금 모두 현재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이며,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격렬할 것이다.

또 다른 차이는 고용 인센티브와 관련된다. 스피넘랜드 보충 급여가 지급되던 공동체들 내에서는, 저임금 생계부양자가 한 명인 대가족에게는 임금을 인상하고자 시도하는 것, 보수가 더 좋은 직업을 찾는 것, 또는 추가 기술을 습득하는 것의 재정적 이점이 없었다. 임금 상승은 더 적은 보충 급여를 의미할 것이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결코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자산 조사에 기반하는 복지 급여에 의존하는 사람의 경우, 기본소득으로의 전환은 그들로 하여금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재정적 불리함을 제거할 수 있게끔 할 것이고, 더 높은 임금을 받고자 시도하거나 보수가 더 나은 직업을 얻고자 추가 기술을 습득하는 등 인센티브 증가를 즉시 경험하게끔 할 것이다. 더 이상 임금 인상으로 인한 급여 상실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노동소득 증가는 훨씬 더 큰 순소득 증가를 낳을 것이다.2)*

* 아래의 글은 『갱신: 노동정치 저널Renewal: a Journal of Labour Politics』(www.renewal.org.uk) 26(1)호(2018년)에 실린 “Speenhamland, automation, and Basic Income: A response”을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이 실린 잡지의 편집자의 주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2017년에 나온 같은 잡지 25/3-4호에 실렸던 「스피넘랜드, 자동화, 기본소득: 역사로부터의 경고? Speenhamland, automation and the basic income: A warning from hiatory?」에 대한 비판이다. 말콤 토리Malcolm Torry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가입 단체인 영국의 시민기본소득트러스트Citizen’s Basic Income Trust의 대표자이자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방문선임연구원이다. 저자와 잡지사 모두의 허락을 얻어 번역했으며 이 주를 제외하고 번호로 표시된 세 개의 주는 저자의 것임을 밝혀 둔다.

1) F. H. Pitts, L. Lombardozzi, &N. Warner, ‘Speenhamland, automation and the basic income: A warning from history?’, Renewal, 25/3-4, 2017, p.150.

2) 실현 가능한 예시적인 기본소득 제도에 의해 자산 조사 기반 복지 급여로부터 벗어나는 가구 수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 제도가 보장하는 한계공제율의 중요한 감소에 대해서는 M. Torry, “A variety of indicators evaluated for two implementation methods for a Citizen’s Basic Income”, Euromod working paper 12/17, Institute for Social and Economic Research, University of Es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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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판결 이후를 생각하다*

박정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징역을 산 알바노동자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 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018년 6월 28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병역법」 제88조 제 ①항이다. 2014년 4월 15일, 나는 이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서울서 부지방법원에서 수갑과 포승줄을 찼다. 법무부 버스를 타고 달려 서울 남부구치소로 이동했다. ‘쾅쾅’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히는 구치소 건물 안의 수많은 문을 통과했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드디어 좁은 방 앞에 섰다. ‘쾅.’ 마지막으로 방문이 닫히고, 나는 완전히 사회와 단절됐다. 나는 죄인이 됐다.

군복 대신 입은 수의와 내무반 대신 몸을 누인 감방이 내가 죄인임을 확인시켜 줬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교도관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사람들을 “확신범”이라 부른다며 다루기가 힘들다고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죄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터라, 구속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항소이유서를 쓰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왜 무죄인지를 재판에서 항변하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가 부담스러웠던 국선변호인은 변호를 그만두었다.

법을 잘 몰랐지만 항소 재판을 위해 법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치적 이유 이외에는 내가 감옥에 있어야 할 법리적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어설픈 항소이유서를 적었지만 판결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다 과거 ‘용산 투쟁’으로 추가로 재판을 받게 됐고 당시 청년좌파(현 ‘너머’)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김현성 변호사를 만나게 됐 다. ‘용산 투쟁’ 건은 뒤집기가 힘들어 보였고 (나중에 징역 10월 집 행유예 2년이 나왔다) 용산 사건 대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을 부탁드렸다. 일종의 반칙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받아들여 주셨다.

상고이유서와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죄가 확정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헌법소원을 냈다. 2015년 2월 23일의 일이다. 이날 감옥에서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몸이 아팠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지난 2018년 6월 28일 드디어 이 사건의 판결이 났다. 28건의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이 병합된 선고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서

법조문은 나 같은 비전공자들이 읽으면 너무 어렵다. 그래서인지 헌법재판소 판결을 가지고 말이 많다. 헌법재판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것(병역법 제88조)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 제도를 만들지 않은 건(병역법 제5조)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다. 잘못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게 합헌이라고 읽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병역법 제5조다.

병역법 제5조는 병역의 종류를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으로 규정해 놓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역이 보충역이다. 흔히 공익, 공중보건의, 국제협력의사, 공익수의사, 전문연구원, 산업기능요원 등 군인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언뜻 보면 이미 대체복무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간 것인가?

우선 공익근무요원을 예로 들어 보자면, 공익은 가고 싶다고 모두가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공익 판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결심한 사람들은 현행 공익근무를 수행할 수 없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이 금메달 따고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뒤 4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뉴스를 볼 수 있다. 공익근무요원도 4주간의 군사훈련은 받아야 한다. 따라서 총 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이 4주 훈련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누군가는 고작 4주를 못 견뎌서 감옥에 가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4주’ 대신 감옥을 선택한 사람들의 평화적 신념이 그만큼 진지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4주가 ‘그까짓 것’이라고 느껴진다면, 4주의 군사훈련을 없애는 걸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미 대체복무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들이 군대 대신 다른 일을 하게 하는 것이 큰 문제일까? 이렇게 쓰고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그간 대체복무를 주장해 왔던 사람들은 병역법 제5조에 군사 업무가 아닌 역을 신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시대의 요청에 대해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게 만드는 현행 병역법은 헌법 정신에 위반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쉽게 말하면,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지 않아 방치된 법조항 때문에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있으니 빨리 일 좀 해서 국민들 전과자 그만 만들라고 한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1950년 이후 오늘까지 6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만여 명의 전과자가 생겨났다. 일제강점기에 징집을 거부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사람의 고통스런 희생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만들어야 한다고 국회에 공을 넘겼다. 그렇다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겠다는 병역법 제88조를 합헌이라고 결정 내린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대체복무제도도 거부하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라는 의미다. 이 혼란은 우리가 국방의 의무를 병역의 의무만으로 좁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군대 대신 다른 형태로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고 이조차도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또, 이것마저 위헌이라고 할 경우 이미 처벌을 받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재심신청과 형사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감당이 안 될거라 판단했을 거다.

* 이 글은 2018년 6월 29일 《허프포스트코리아》 <블로그>에 올린 〈‘대체복무’ 시대에 우리가 맞 이한 과제들〉을 수정하고 보완한 글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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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신세대, 신지예

안재성 소설가

 

1.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당년 29세 여성. 역대 서울특별시장 선거 최연소 후보인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이력은 남다르다. 이번 2018년 6월 13일에 실시되는 제7회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마다 무슨 대학이니 무슨 고시 출신이니 하는 상투적인 관록을 내세우느라 바쁘다. 그런데 다르다. ‘하자학교’ 출신과 ‘오늘공작소’ 대표다.

보통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할 이 짧고 명쾌한 이력만 보아도 신지예가 처음부터 기성의 문화나 제도와는 다르게 인생을 시작한, 그야말로 신세대 중의 신세대임을 알 수 있다. 이름 지어 ‘녹색 신세대’다. 누구에게 배우거나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중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변화를 택하고 2000년대 진보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이 당찬 청년운동가의 삶을 살펴보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가 시작되는가, 미미하지만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달에 만나 볼 인물로 선정했다.

선거를 40여 일 앞둔 2018년 4월 말,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신지예 후보 사무실을 찾았다. 50평은 될 꽤 넓은 3층 공간. 아직 플래카드도 걸지 않고 집기도 들여놓지 않은 상태로 당원들이 한창 청소와 정리를 하는 중이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이가 내부 수리를 위해 잠시 비워 둔 곳을 매우 저렴하게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늘 살짝 웃음을 띤, 밝고 씩씩한 인상이다. 한 시간 한 시간이 금쪽같은 후보이니 만나자마자 서울시장에 출마한 이유에 대해 단도입적으로 물었다. 답은 명쾌하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집권한 후 서울이 변화했느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선거인데, 저는 서울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봐요. 문재인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고 박근혜보다는 진일보했지만 보수적인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요. 지난해 핵발전소 문제에서 보여 주었듯이 탈핵 문제에 대한 입장이나 현재 민주당에서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 역시 보수가 맞다고 봅니다. 그래서 녹색당이 필요하다고 보고 제가 나선 것입니다.”

삼선에 도전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박원순 시장님 역시 좋은 분입니다. 그러나 역시 기존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분이라고 저는 봅니다. 먼저, 박원순 시장에게서도 개발주의자의 면모가 보입니다. 서울시는 현재 서부간선도로, 동부간선도로 등 주요 간선도로를 지하로 파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최대 깊이 70m에 왕복 4차선 도로입니다. 환기, 안전 등 여러 가지 우려도 있고 주민과 협의도 안 된 상황입니다만, 지금도 유례없는 크기의 지하차도가 발밑에 뚫리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계획 중인 지하 개발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문제 때문에 이명박 때도 안 했던 토목공사를 박원순 시장이 강행하고 있는 것이죠. 이 문제를 지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다른 말로 쓰라면 ‘건설 공화국’, ‘토목 공화국’, ‘도로 공화국’이 정답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인성을 파괴하는 토목공사에 쏟아 붓는 세금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얼마나 많을까? 그 문제에 대한 민주당 정권의 안목은 거의 제로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신흥 권력자들도, 박원순 시장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신지예는 본다. 박원순 시장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서울시장은 시민 전체의 삶을 바꿀 혁신적인 큰 그림을 그리고 추진해야 하는데, 박원순 시장님은 제도권 안에서 작은 변화를 주는, 중간 관료들이 해야 할 일을 간섭하고 들여다보는 스타일이죠. 저는 서울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이 한걸음 더 질 높은 삶으로 나가려면 새 정당, 새 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선전하려고 선거에 나섰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해방 직후 한민당이란 이름으로 창당한 이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민주당 세력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벌써 세번째 집권으로 하부 구성원들까지 권력의 단맛을 알게 된 민주당 세력에 대한 신지예 후보의 시각은 냉정하다.

“촛불혁명의 덕분에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보수 기득권 세력이 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권력과 이권을 분배해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요, 진보세력 내지 신진 세력의 진출을 억제하고 있어요. 이번 지방선거구 협상할 때도, 소수 정당이 당선될 수 있도록 4인 당선 선거구를 35개로 늘리고자 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총력으로 반대해 무산시켰습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토론회장의 문을 잠가 버려 시민들의 출입까지 막으면서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게 법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제4회 세계녹색당대회에 참가하여 미국 참가자와 함께 사드 배치 반
대를 외치고 있는 신지예(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신지예는 말한다. 자신이 속한 녹색당은 아직 권력에 물들지 않았다고. 그러나 권력 잡으면 언제든지 변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고. 지금 민주당과 싸우고 견제를 해야 하듯이, 그때가 되면 자신은 녹색당을 견제하고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 권력과 돈은 사람을 사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임에 틀림없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견제하여 정치 생태계를 정화해 나가지 않으면 언제든 폭압적인 독재정권이 등장할 수 있는 게 인간 사회다. 세계 많은 나라에 하나의 이름으로 보조를 함께하는 녹색당은 그 정화제의 역할을 하는 소중한 존재다. 이번 선거에서 신지예의 득표율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녹색당과 청년 정치인들의 제도권 진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2017년에만도 네덜란드 총선에서 녹색당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뉴질랜드에서는 스물세 살의 녹색당원 크로에 스워브릭이 국회에 진출했다. 신지예처럼, 그들도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낸사람들이다.

“서울은 너무 비대하고 모든 게 과잉 상태입니다. 면적은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살고 있고 전력의 10%를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사회적, 생태적 위기의 많은 문제가 여기서부터 발생하고 있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지방분권의 의미도, 정의도 찾을 수 없어요. 저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등한 서울, 소유하지 않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 서울, 비대한 수도권이 아니라 건강한 도시 서울을 만들 것입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상상에 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이 당당한 청년 정치인이 장차 한국 정치를 미래로 이끌어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를 걸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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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실현

서정희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1.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실현의 가능성 및 바람직성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기본소득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유한 의제를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사회운동이 선거에 대응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개혁적인 방식’으로 어떤 의제나 정책을 실현하려 할 때 이것이 신생 정당을 포함하여 기성 정당과 정치인의 비전으로 포함되어야 하는데, 선거는 이런 과정이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집중적인 계기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절차 속에서 대중의 정치적 관심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

선거라는 국면에서 기본소득운동 세력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특히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자치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기본소득 제도를 지방 단위에서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기본소득 제도를 어떻게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에 대한 전략적 검토가 요구된다.

먼저, 전자의 문제를 살펴보자. 현재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를 제외하면 기본소득 실험은 전국 단위보다 지방정부 단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 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 주, 나미비아의 오티베로-오미타라Otivero-Omitara 마을,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 Y 컴비네이터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등이 그러한 예다. ***

전국 단위에서 전면적인 사회보장 체계의 개편을 동반한 것이 아닌 지방정부 단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간 주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이라는 한계로 인해 소규모로 실험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이 아닌 실험에서 공공부문 역시 지방정부 단위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보다는 오히려 기본소득 제도가 가지고 있는 혁명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 어떤 발달된 복지국가도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인 현금 급여를 시행한 역사적 경험이 없고, 이를 전면에 내세운 적도 없다. 또한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실현은 기존 복지국가의 기반이었던 유급노동 중심성 테제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격렬한 정치적 반대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작은 단위에서 선도적으로 실행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동안에도 전면적인 개편을 수반하며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몇 개 지역에서 ‘시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그 시범 사업의 결과를 평가한 후 전국 단위로 확장해서 복지제도를 시행한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지방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이나 시행은 그간의 시범 사업에 상응하는 역할을 담당해 줄 것이기 때문에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보다는 현실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정치적 주체라는 측면에서도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보다 지방 단위의 정치적 주체가 기본소득 시행을 주도하기에 보다 수월할것으로 예상된다.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대선 후보 및 경기도지사 후보까지 갈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선도적인 사회정책 아젠다인 청년배당을 자신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전환하여 정치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청년배당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의 마찰을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적 소신을 확고하게 밀어붙였고, 이는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선호로 이어졌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 캐슬린 윈Kathleen O. Wynne의 경우, 재선 이후 기본소득 실험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다. 2018년 연말에 진행될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까지 자유당의 지지율은 보수당에 비해 높아 자유당이 온타리오 주정부 선거에서 다수당이 될 경우 캐슬린 윈의 도지사 3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점을 이번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한다면 후보들은 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변혁적인 대안이자 참신한 공약으로 기본소득 시행을 부각시킴으로써 구태의연한 사회복지 공약을 제시하는 타 후보들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바람직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지방정부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은 전국적인 기본소득 시행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지방의회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사회복지정책을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빚어가면서 조례를 제정하여 제도를 시행하고 결국 그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사례들이 존재한다. 1996년 광주광역시 동구의회의 「저소득주민생계보호지원조례안」이나 2006년 강원도 정선군의회의 「정선군 세자녀이상세대양육비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지방의회가 국가 단위의 복지정책 이상으로 복지 급여를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 지방자치단체장과 중앙정부는 지속적으로 반대를 제기해 왔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법원 소송까지 진행되었으나, 대법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주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조례안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하였고,***** 이러한 조례안의 내용은 다른 지역의 조례제정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국가 단위의 정책에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점을 상기한다면 기본소득 조례를 통한 지방정부 단위에서의 선도적인 정책 시행 전략은 기본소득을 국가 단위의 정책으로 확산시키는 데 고려해 봄직한 주요한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

* 안효상,「지방선거에 대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방침을 정하는 것에 대하여」,『2018년 지역네트워크 워크숍 토론 자료』, 2018년 2월 23일.

** 두 번째 요소인 대중의 정치적 관심은 최근 60년 만에 찾아온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 의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의제도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국면을 기본소득 의제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선거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선거를 이번만 하고 말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방선거 국면에서 기본소득 실현에 대한 검토는 여전히 유효한 의제라 판단된다.

*** 나미비아의 오티베로-오미타라 마을,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 주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은 민간 재원을 활용하여 한시적으로 시행되었고, 현재 종결되었다.

**** 서정희·김교성,「기본소득 지방선거 공약(안)」,『2018년 지역네트워크 후속워크숍 자료』, 2018년 4월 22일.

***** 광주광역시 동구의 ‘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1997년 4월 25일에 선고한 96추244 판결을 참조하고, 강원도 정선군의 ‘지방의회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2006년 10월 12일에 선고한 2006추38 판결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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