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로 둘 수 없는 지주회사 및 자사주 제도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1. 들어가는 말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투척한 사건이 대한항공 지배주주의 갑질 문제로 퍼지더니 상습적인 관세법 위반 등의 불법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는 등 재벌 갑질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재벌가의 크고 작은 반사회적 행동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항항공 조회장 일가의 사례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이 인성이나 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사실 조양호 일가는 2013년 한진그룹의 지배 구조를 기존 순환출자 구조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룹지배력을 확보했다. 조양호 회장은 쏟아지는 사회적 질타와 사법 처리가능성을 의식해 조현아, 조현민 자매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였지만, 조 씨 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확고하기 때문에 이는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

재벌가와 재벌 기업들의 관계, 즉 극소수 지분으로 방대한 계열사를 확고하게 지배하는 소유-지배 구조의 문제가 사태의 본질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시장에 의해 퇴출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별다른 제도적 감시와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재벌이 기업집단*을 지배함에 따라 재벌-노동자, 재벌-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재벌-소비자의 관계는 물론이고, 나아가 재벌과 국민경제의 관계에서도 재벌은 점점 수탈자의지위로 변모하였다.

이 글에서는 대한항공 갑질 사례를 계기로 조 회장 일가에 확고한 지배권을 안겨 준 지주회사 제도, 특히 ‘자사주 마법’이라 불리는 지배력 확장 수단에 대해 알아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

한진그룹은 2013년에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조양호 회장 일가는 지주회사 전환 전에 는 순환출자 구조에서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정석기업주식회사를 지배함으로써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을 지배하였다. 총수 일가가 정석기업을 37.3%의 지분으로 지배하고, 정석기업은 (주)한진에 19.41% 지분을 갖고, (주)한진은 대한항공 지분 9.69% 보유하고, 대한항공은 다시 정석기업에 48.28%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정석기업 → (주)한진 → 대한항공 → 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한진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총수 일가는 정석기업에 대한 확고한 지배 이외에 대한항공에 9.86%, (주)한진에 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순환출자 구조는 총수 일가의 지분 9.86%만으로는 대한항공을 지배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계열사 내부 지분***을 통해 한진그룹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순환출자를 통해서도 그룹 지배권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대한항공에 대한 총수 일가 지분 9.86%와 (주)한진의 대한항공 보유 지분 9.69%를 합쳐도 20%가 안 된다. 이는 그룹 경영권을 3세로 승계하려 할 경우에 특별히 문제가 된다. 총수 일가 지분 역시 조양호 회장 단독 보유 주식이 거의 절대적 비중이었는데, 세 명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경우 과세표준 30억원 이상에 적용되는 50%로 증여세를 내야 하므로 그룹 지배력이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한진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총수 일가의 추가 지분 투자 없이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소위 ‘자사주 마법’을 활용했다. 먼저 대한항공을 사업회사(대한항공)와 이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한진칼)로 분할한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주회사로 신설 법인이다. 대한항공에 적용된 분할 방식을 ‘인적 분할’이라고 한다. 인적 분할 방식으로 대한항공을 분할할 경우 총수 일가는 기존 대한항공에 대한 보유 지분과 동일한 9.86%를 신설 법인인 한진칼에서도 보유하게 된다. 2013년 8월 당시 대한항공은 자사주 6.76%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자사주 마법’이 등장한다. 자사주 마법에 대해서는 이후 상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핵심만 언급하겠다. 자사주는 원래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지만, 인적 분할 시에 존속회사****가 그 비율만큼 자사주를 승계하고 존속회사의 지주회사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율로 신주가 배정된다. 존속회사 자사주가 지주회사에 분할 신주로 배정될 때는 의결권이 부활한다는 것이 ‘자사주 마법’이다. 지배주주가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권만 안정적으로 확보하면 사업회사가 보유했던 자사주가 의결권이 있는 지주회사의 내부 지분으로 전환되어 결과적으로 지주회사 지배주주(조양호 회장 일가)의 의결권 지분이 되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를 보면, 대한항공 법인이 보유 중이었던 자사주 6.76%가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신설 지주회사 한진칼의 의결권 있는 내부 지분이 되었다. 대한항공 시가총액의 6.76%에 해당하는 주식을 사기 위해서 조양호 회장 일가에게 필요한 자금은 2018년 5월 3일 대한항공 주가 기준으로 약 2,145억원이다. 조 회장 일가가 자사주 마법을 통해 절약한 돈의 액수라고 보면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수의 재벌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추가의 지분 투자 없이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사주 마법을 활용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조 회장 일가는 한진칼에 대한 지분을 23.13%로 늘렸다. 여기에서도 지주회사와 존속회사의 주식 맞교환 등의 방법으로 지배주주의 추가 지분 투자 없는 지배력 확대가 이뤄졌다. 특수관계인*****의 한진칼 주식 지분까지 합쳐 조 회장이 지배하는 한진칼 지분은 32% 가까이 늘어났다. 인적 분할 첫 단계에서 한진칼의 대한항공에 대한 지분은 대한항공이 보유했던 자사주 6.76%에서 32.83%로 확대되었다. 이와 동시에 존속회사 대한항공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분은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쳐 47.08%에 이르렀다. 자사주 마법을 활용한 지주회사 전환으로 주주총회 안건 가결이든 적대적 M&A 방어든 지배권이 확고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 “기업집단”이란,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을 말한다, 여기서 “동일인”이란 특정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나 법인을 말하며, 통상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일 경우에는 그 총수(예, 삼성그룹의 이재용, 현대차그룹의 정몽주 등)가 동일인이며,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일 경우는 지배회사(예, 포스코)가 동일인이다.

** “지주회사”란 주식의 소유를 통해 다른 회사의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상의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회사를 말한다. “주된 사업”의 기준은 지주회사가 지배하는 자회사의 주식 가액의 합계액이 지주회사 자산총액의 50%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지주회사는 순환출자와 함께 대표적인 기업결합의 방식으로, 기업집단 지배 구조의 투명성 제고 및 경제력 집중 억제 등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한도,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로 이루어진 출자 구조에서 모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최소 지분보유 한도, 증손회사 허용 여부, 자회사의 모회사 지분 보유 금지 등 여러 규제를 두고 있다. 이에 관한 제도의 총체를 “지주회사 제도”라 한다.

*** 기업집단 내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과 계열사 지분을 합쳐 “내부 지분”이라고 한다.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재벌 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은 2016년 기준 2.6%, 계열사 지분은 54.9%로 내부 지분은 57.6%에 달한다.

**** 분할되기 전의 원래 회사를 말한다. 한진그룹의 경우 대한항공의 인적 분할에서 대한항공이 ‘존속회사’이자 ‘분할 회사’이며, 한진칼이 ‘신설 회사’이자 ‘지주회사’다.

*****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 규정은 동일인이 법상의 규제를 피해 형식적으로 소유를 분산시키고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동일체를 형성하여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특수관계인은 1. 당해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자, 2. 동일인 관련자(배우자,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을 포함), 3 경영을 지배하려는 공동 목적으로 기업결합에 참여하는 자에 해당한다. 특수관계인에는 자연인뿐만 아니라 계열사와 공익법인 등 법인도 포함된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노년에 관하여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대안’상임연구원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종교인이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나왔고, 정치인, 교수 들이 그 뒤를 이었다. 평균 아래로는 작가, 예술가 들이 있고, 그 밑으로는 연예인, 체육인, 기자들이 포함되었다. 몸을 전문적으로 쓰는 스포츠맨들이 다소 의외인데. 과도하게 몸을 써서 평균수명이 짧은 경향을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들의 수명이 짧은 것으로 유명한데, 격렬한 운동에 더하여 서로 심하게 몸을 부딪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면 우리 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이런 염증 반응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작가, 예술가, 연예인, 기자 들의 공통점이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먼저 떠오른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고, 특히 연예인의 경우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떤 식으로든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조사는 한국의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훨씬 오래 전에 서양의 경우를 보도한 기사도 떠오른다.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휘자가 가장 오래 사는 직업이라는 결과가 또렷이 기억난다. 몸과 마음을 함께 쓰는 직업이라 오래 산다는 해석이 함께했다. 한국의 조사에서는 지휘자가 예술가 범주에 포함되어 결과가 분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휘자는 예술가 가운데서도 특이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창작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는 점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작품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야 있겠지만 창작에 대한 압박감과 비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해석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특별하다. 지휘자는 열정적인 몸짓으로 자신의 해석을 표현한다. 그야말로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정신과 몸을 가장 이상적으로 쓰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사는 철학자

그렇다면 철학자들의 수명은 어떨까?
철학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젊은이’는 없다. 죄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고 게다가 모두 남성이다. 이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자료가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3세기 ~ 미상)가 쓴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가르침』(한국어판 제목은 『그리스 철학자 열전』)이다. 고대 희랍철학자들을 다룬 이 책은 철학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이 책에는 철학자들의 사망 연령도 나와 있는데 그 추정치가 거의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다룬 고대 희랍철학자 48명의 사망 연령을 정리한 내용이 『노년의 역사』에 실려 있는데, 한결 같이 오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젊어서 죽은 철학자는 에우독소스로 53세에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60세에 죽은 헤라클레이토스, 63세에 죽은 아리스토텔레스, 66세 죽은 아낙시만드로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70대 이상에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정확한 나이 없이 그냥 “늙어서” 또는 “매우 늙어서” 죽었다고 기록한 경우가 11명이다.) 100세 이상 산 철학자도 보인다. 데모크리토스 100세 또는 109세, 고르기아스 100세 또는 105세 또는 109세, 테오프라토스 85세 또는 100세 이후. 과음으로 죽은 인물도 더러 있고 노년의 무게를 벗어 버리려 자살한 철학자들도 몇 있다. 테오프라토스의 경우에는 장문의 유서를 실어 놓기도 했다. 그 가운데 스틸폰(기원전 380? ~ 300년)이라는 철학자가 눈에 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키티온 사람 제논(기원전 335?~ 263?년)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포도주를 마셨다”는 그를 위해 저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시가 실려 있다.

메가라 사람 스틸폰을 당신은 아마 알리라.
늙음과 병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한 쌍이 그를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도주라는, 이 못된 한 쌍의 말[馬]들보다 나은 존재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단숨에 비우고 서둘러 떠나갔으니. (『그리스 철학자 열전』 스틸폰 편)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여러 철학자가 오래 살았다고 해서 고대 희랍의 철학자 전체의 평균수명도 높았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생존자 편향’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래 살면서 명성을 떨친 철학자들만 실려 있는 것이다. 젊어서 철학 공부에 매진했으나 채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들의 데이터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명성을 누린 철학자들이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을 테고, 이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늙어감에 대하여 숙고하고 글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 대한 글을 쓴 고대 철학자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지엠 비정규직노동자가 공유하고자 하는 사태의 진행과 해법

신현창 한국지엠 부평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요 몇 달 한국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와 파산 이야기로 사방이 시끄럽다. 글을 쓰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몇 주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엠을 둘러싼 상황은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해 갔다. 날마다 신문 기사를 읽어 보고 현장의 교섭 내용을 파악해 봤지만,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언론에서 ‘운명의 날’이라고 칭한 부도 신청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다. 내부 소통망에서 확인해 본 결과, 부도 신청과 관련된 이사회 결정을 4월 23일 월요일로 연기했다고 한다. 다시 며칠을 번 셈인가?

아마도 이 글을 독자들이 읽게 될 때에는 이 글을 쓸 때와는 많은 것이 변해 있을 수도 있겠다. 지엠의 법정 관리가 확정됐을 수도 있고, 여전히 지금과 같은 상태로 진행 중일 수도 있다. 또 추가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면서는 상황을 공유하여 논의를 확장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생각나지 않는다.

기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이 지경이 되도록 지엠 노조는 무엇을 했느냐?’ ‘국가는 혹은 산업은행은 왜 알지 못했느냐?’ 하지만 모든 사건의 전조는 있기 마련이고, 오늘의 한국지엠 사태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위기를 말해 왔다. 특히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구조조정이 있었고 이에 대해 비정규직 구성원은 수년 전부터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에 대해 경고해 왔다. 이에 반해 10여 년간 위기설에 시달린 탓인지 정규직노조는 다소 위기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또한 비정규직 목소리에 대해 언론은 무관심했고, 나아가 가장 큰 피해자인 비정규직 주체가 확장되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어우러지면서 사태를 키웠다고 본다.

따라서 몇 가지를 짚어서 공유할 생각이다. 첫째, 지엠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한국지엠의 비정규직 구조조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볼 것이다. 둘째, 글로벌 지엠이 한국지엠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어떤 작업을 진행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셋째, 이미 언론에서 드러난 지엠의 수탈 과정을 다시 한 번 공유할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해법을 놓고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지엠의 글로벌 정책에 따른 비정규직 구조조정의 역사

1) 한국지엠 비정규직노조(지회)의 간략한 투쟁 역사

한국지엠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완성차 공장의 비정규직 주체들의 노조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2003년 현대 아산 공장을 시작으로 2004년 현대 울산, 2005년 한국지엠 창원과 현대 전주, 기아 화성 등의 공장에서 비정규직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한국지엠 창원 공장에서는 비정규직노조가 건설될 때 특이하게도 정규직 노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국지엠 사측은 끊임없이 정규직 내부를 흔들었고, 한국지엠 창원 정규직 집행부가 불신임을 받고 내려오면서 본격적인 비정규직노조 깨기에 들어갔다. 당시 한국지엠은 사내하청 업체 폐업을 통해 비정규직노조를 무력화시켰다. 오래지 않아서 핵심 활동가와 적극적인 조합원을 모두 공장 밖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창원 공장 비정규직 운동은 깊은 수렁에 빠지게됐다. 소수의 조합원이 공장 안팎에서 명맥을 이어 왔는데, 2013년 닉 라일리 사장의 불법파견 형사처벌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다시 반전의 기회를 얻게 됐다. 즉각적으로 창원 비정규직 주체들은 다시 조합원을 확대했고, 현장에 남아 있던 조합원을 중심으로 한국지엠의 근로자임을 확인해 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걸었다. 2016년 6월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서 조합원 확대 사업에 성공했다.

부평의 경우, 비정규직노조 건설에 대한 논의는 2004년부터 본격화됐지만 창원보다 다소 늦은 2007년 9월에 노조 깃발을 올렸다. 당시 지엠의 글로벌 정책에 따라 모듈화, 외주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비정규직노동자가 해고되거나 일터가 공장 안에서 공장 밖으로 바뀌게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이에 더 이상 노조 건설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노조를 건설했다. 하지만 창원에서 이미 비정규직노조 깨기에 성공한 경험이 있기에 한국지엠은 핵심 주체에 대한 집단 폭행과 징계해고, 조합원 다수가 조직되어 있는 업체의 폐업 등의 방식으로 비정규직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노조는 사측의 편에 서서 탄압을 방관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협조하고 있었다. 결국 조합원 절반가량은 조합 건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해고됐고, 나머지 현장 조합원들도 하나둘 사측의 압력에 못 이겨 조합을 탈퇴했다. 2008년 9월에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지엠도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2009년 4월 한국지엠 부평 공장에 있는 비정규직 1,000명 이상이 해고되면서 공장 안에는 비정규직 조합원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대규모 비정규직 해고 역시 그 과정에서 노사 합의 또는 정규직노조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장 밖으로 밀려난 비정규직노조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2011년 비정규직 전원 복직을 회사와 합의하여 2013년부터 현장에 배치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2014년 현장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조합원 확대 사업을 통해 조합원을 늘리면서 2015년 1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창원, 군산, 부평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제기했다. 2016년 이후 물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자 끊임없는 한국지엠의 ‘인소싱’(정규직의 비정규직 공정 전환배치) 시도가 있었지만, 줄기차게 현장에서 투쟁을 이어가면서 어느 정도 인소싱을 막아 내고 조합원도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결국 12월에 조합원 상당수를 포함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해고됐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직접 입법’과 새로운 의회-시민 관계 ― 2018년 헌법 개혁 논의에 부쳐*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Tampere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울대 강사

 

1. 근대의 정치적 조건과 직접민주주의 논쟁

‘다수의 독재’ 또는‘ 무분별한 포퓰리즘’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직접민주주의 구상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로부터 페이트만Carole Pateman(1940∼ )과 바버Benjamin R. Barber(1939∼2017)에 이르기까지 많은 참여 민주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다. 이들은 ‘회합 민주주의assembly democracy’에 대한 고전적 이상을 회복함으로써 선거 형태의 대의 정부가 지니는 민주적 결함을 극복하기를 희망했다. 직접민주주의가 정치과정의 중심에서 작동하는 스위스의 사례는 직접민주주의가 근대사회의 정치적 조건 속에서도 실행될 수 있음을 입증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회합 민주주의와 달리 본질적으로 대의 정부 시스템의 기반 위에 수립된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1806∼1873)과 매디슨James Madison(1751 ∼ 1836) 등은 (직접)민주주의의 불안정함과 인민들의 불완전성 때문에 대의민주주의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보편적 참정권조차도 20세기 초반 들어서야 도입되고 확대되었다.

스위스는 1848년혁명 이후 국민투표referendum 기반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국민투표와 (완전형) 시민발의 제도가 1874년과 1891년의 헌법 개혁들을 통해 각각 도입됐다. 이후 미국의 많은 주가 스위스 모델을 따르면서 주민투표와 시민발의를 제도화했다. 그러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과 나치 등 전체주의 체제들에서 일어난 대중 참여의 남용으로 인해 직접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럽 국가가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면서도 의회와 정당 중심의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선호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재생된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전후 구축된 안정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복지국가 질서의 기반에 균열이 오면서 대안적 의제 설정과 직접 행동주의를 추구하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이 출현했다. “비판적 시민들critical citizens”은 더 투명한 정부와 모든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직접적 시민 참여를 요구했다. 참여 민주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의회와 정당 등 대의 기구를 우회하는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이 더 자주 활용됐다. 알트만에 따르면, 1984년부터 200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국가 단위 수준에서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이 총 949회(시민 주도 메커니즘 328회, 위로부터의 메커니즘 621회) 실행됐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 적합성, 국민투표와 시민발의의 정책적 효과와 정치적 영향,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 등은 계속됐다. 논쟁은 주로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간의 고전적 이분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벗지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주요 비판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근대사회에서 함께 토론하고 표결하도록 모든 시민들을 소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유권자들은 이미 총선을 통해 정당한 정부와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3) 평범한 시민들은 ‘숙고된 판단’을 내릴 역량이 없으며 정책 전문성을 결여하고 있다. (4) 다수의 전제專制와 소수자 인권의 침해라는 위협은 현실이다. (5) 정당과 입법부 등 ‘중간 매개적’ 제도들을 침식하는 것은 ‘일관성 없고, 불안정하며, 무분별한 정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 이 글은 필자의 박사 학위논문 Reaching Out to the People? Parliament and Citizen Participation in Finland(Tampere University Press, 2017)을 토대로 작성됐다. 결론부의 제언은 2017년 11월 3일 국회 박주민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 Altman, D., Direct Democracy Worldwid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 Budge, I., “Implementing popular preferences: is direct democracy the answer?”, Geissel, B. & Newton, K. (ed.), Evaluating Democratic Innovations: Curing the democratic malaise? Routledge, 2013, pp. 23∼38.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구체적인 것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위하여!

김교성, 백승호, 서정희, 이승윤, 『기본소득이 온다: 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 사회평론아카데미, 2018년.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노아의 홍수 같은 ‘신적 폭력’을 바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건 깨끗한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인간사의 처지는 그런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리가 가진 이상이 높다 하더라도 우리 발은 부드러운 흙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의 혁명 과정은 ‘테러’와 ‘독재’라는 형식으로 그 부드러운 흙을 쿵쿵 밟아 단단하게 다짐으로써 도약을 꾀하기도 했지만, 최소한 현재까지는 자기 발목을 부러뜨리는 효과를 낳았을 뿐이다.

오늘날 다양한 위기와 변화의 전망 속에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본소득‘운동’도 비록 정신적인 차원이긴 하지만 그런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지향하는 목표나 터 잡고 있는 근거에서 도덕적 우월성과 현실적이면서도 급진적인 태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역사적 사회주의의 붕괴 속에서도 그 홍수에 함께 떠밀려 가지 않은 ‘최소 기준’으로서의 자유, 평등, 사회정의, 인간의 존엄성을 그 어떤 사상이나 정책보다 확고하게 옹호하고 실현하는 것이며, 예상되는 사회 변화에 가장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신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도덕적 우월성과 현실적인 대안이기에, 머지않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신적 폭력의 유혹을 피해야만 한다면 현실의 변화는 정치적인 것의 자리에 스며들어야 하고, 정치의 장을 통과해야 한다. 이는 여기서 시작해서 저곳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에 관한 경로를 제시하는 문제이고, 실제로 이 경로를 통과하는 실천이다.

스스로를 “상상하는 리얼리스트들”이라고 부르는 사회복지 연구자 네 명의 공동 저작인 『기본소득이 온다: 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은 이런 경로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네 사람은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에서 도출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한국형 기본소득”의 모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기존 제도와의 실천적 비교 속에서 구체적인 이행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동안 한국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 논의와 실천, 정치적 투영과 전망 등을 검토함으로써, 한바탕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던 기본소득 논의를 새로운 정치적 실천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쉼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이 온다』는 구성이라는 면에서도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무엇보다도 저자들이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라는 말로 포착하는 현실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책은 저마다 독특하고, 현대적인 의미의 국제 기본소득운동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2017년에 기본소득의 베테랑들이 각기 출판한 책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야니크 반더보르트와 함께 쓴 책에서 기본소득을 “자유의 도구”로 제시하고 있으며, 가이 스탠딩은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하며, 애니 밀러는 기존 복지국가의 문제점에 자기 논의를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 권의 책은 이른바 “철학적 정당화”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건 그동안 국제 기본소득운동이 걸어온 궤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공산주의는 사실상 무너져 가고 있었고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 복지국가는 점점 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던 시점에서, 기본소득에서 어렴풋하나마 빛을 찾고자 한 사람들이 취할 수 있었던 태도는 무엇보다 그 정당성을 논하는 것이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철학이 시작되는 곳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다. 나무랄 데 없는 두 사람이 만난다. 첫눈에 반해 금세 사랑에 빠진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야 겪겠지만,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런 얼개의 이야기는 판타지일 뿐 현실에서는 거의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소개팅에서 첫눈에 반한 상대를 만난 적이 있다는 선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소개팅이었으니 이런저런 사회적 배경은 맞췄을테니 뜻밖의 배경을 지닌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모나 매너에 반했다는 말일 텐데, 소개팅에서 첫눈에 반한 사람을 만났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지금 남편 자랑하려고 이 얘기를 꺼내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선배 얘기로는 첫눈에 반하고, 그뿐이었다고 했다. 다음에 만날수록 조금씩 단점이 보이고 부족한 면이 드러나고. 만날수록 재미가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평범한 사랑의 힘은 설렘과 놀람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쁘지 않네’ ‘호감이 가네’ ‘계속 만나 볼까’ 하는 정도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을 처음 만난다. 만날수록 이런 면모 저런 면모가 보이며, ‘어, 이런 면이 있었네’ 또는 ‘오, 멋진데’ 하며 놀라기도 하고, 이런 놀람에 다음 만남이 설레게 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감정이 확 달아오르고, 뜨겁게 달아오른 감정을 지금까지 쌓아 온 믿음과 정으로 연착륙시켜서 오래 지속되는 관계로 만드는 것. 이런 관계가 아마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놀람-탐색-설렘이 이어지며 사랑과 믿음과 정을 쌓아 가는 그런관계말이다.

앎이란 무엇인가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과 논리학에서 시작해서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룬 저작을 펴낸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다. 반전 평화 활동도 활발히 펼쳤고 대중서도 많이 펴냈기에 아마 가장 널리 읽히는 철학자 축에 낄 것이다. 그런 러셀은 자서전말고도 철학 자서전이라고 할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도 썼다. 그 책에 평생에 걸친 철학 연구의 여정을 담았다. 러셀은 자신의 길고도 다채로운 철학 탐구를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간추려 말했다.

내가 평생 동안 계속 열심히 탐구했던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였다. 나는 철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며, 또 우리가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느 정도나 확실할 수 있고 어느 정도나 의심할 수 있는 것인가를 몹시 알고 싶어 했다.

러셀만이 아닐 것이다. 앎이 무엇이며, 어떻게 앎을 얻을 수 있고, 그렇게 얻은 앎의 옳고 그름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하는 물음은 서양철학사의 오래된 물음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이런 물음을 다룬 것으로 『테아이테토스』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로 테아이테토스가 나온다. 이 대화편에서 보면 플라톤이 몹시도 테아이테토스의 자질을 아끼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도 무리수 이론을 정립하고 입체기하학을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화편에서는 열여섯 살 정도의 어린 나이로 나온다.

『테아이테토스』는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어렵기로 유명하고 그만큼 학자들 사이에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도 많은 대화편이다. 그런 와중에도 자주 회자되는 대목이 몇 가지 있는데, 저 유명한 산파술이 이 대화편에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고상하고 건장한” 산파인 파이나레테의 아들로 소개하며 자신도 산파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단, 산파들이 사람들의 몸을 출산하도록 돕는 데 비해 자신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핀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네 기술에서 가장 대단한 건, 젊은이의 생각이 모상과 거짓을 출산해 내는지 아니면 씨알 있는 참된 것을 출산해 내는지 온갖 방식으로 시험할 수 있다는 것이네. ( 『테아이테토스』, 150c)

젊은이의 영혼을 돌보며 젊은이들이 참된 지혜를 산출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산파는 산파일 뿐 스스로 아이를 낳지는 못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기 스스로는 지혜를 낳지 못한다고 말한다. “신께서는 나로 하여금 산파 역할을 강제하셨지만, 직접 낳는 건 금하셨네.” 이렇게 말하며 “앎이 무엇인지” 젊은 테아이테토스가 깨달을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시작할 테니 같이 잘해 보자며 격려한다. 이렇게 “앎은 지각이다” 하는 문제를 테아이테토스와 함께 한창 탐구해 나가는 가운데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에게 잘 따라오고 있는지 묻는다. 젊은이에게는 거듭 이어지는 이 모든 논의가 일종의 충격처럼 다가온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저는 이런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엄청나게 놀라고 있고, 때로는 저것들을 바라보다가 정말이지 현기증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 『테아이테토스』, 155d)

이런 말을 하는 테아이테토스에게 역시 뛰어난 자질을 보여 주는 젊은이라고 칭찬하며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놀라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자의 상태이기에 하는 말이네. 이것 말고 철학의 다른 시작은 없으니까. ( 『테아이테토스』, 155d)

놀라워하는 것thaumazein,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경이로워하는 것. 이것을 철학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유명한 대목이다. 여기서 잠깐 놀람의 감정을 살펴보자. 놀라움은 원시 환경의 인간에게는 생존에 큰 도움이 되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맹수처럼 새로운 위험이 닥쳤을 때 놀라지 않고 무덤덤했다면 닥친 위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놀람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흔히 보이는 감정이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 통상 정책의 정치경제학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한 강력한 통상 정책을 실행에 옮김에 따라 세계경제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주의적 통상 정책을 취하는 목적은 자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는데 있다. 실제로 미국은 다음 쪽의 그래프가 보여 주는 것처럼 1970년대 중반부터 무역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 그 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트럼프는 만성적인 무역 적자 때문에 미국의 성장이 방해 받고 일자리가 줄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역 적자가 발생하는 이유를 미국이 맺고 있는 무역협정이 불공정하고 무역 상대국이 환율 조작 등 불공정 무역 행위를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통상 정책의 기조는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나서서 트럼프와 그의 보좌관들은 경제학 개론 수준의 기초 이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는 각종 매체를 통해서 무역 적자 발생의 원인에 대한 기초 이론을 트럼프 행정부에게 강의한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학의 기초 이론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무역 적자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다른 일부 경제학자는 만성적 무역 적자는 문제이지만 통상 정책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근의 이러한 논쟁 때문에 대학자들까지도 경제학의 기초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트럼프 통상 정책을 지지하는 학자와 그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다양한 주장과 그 근거를 검토해 보고, 이를 토대로 향후 트럼프의 통상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전망해 본다.

1. 트럼프 통상 정책의 이론적 근거

미국은 2000년대 들어와서 경제성장이 매우 느려졌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2.0%에 그쳤는데, 그 이전 50년간 평균 3.0%를 상회한 것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보호주의 정책의 옹호자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특히 심화된 무역 적자가 미국 경제의 성장을 둔화시킨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경제학자는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의 피터 나바로 교수다. 그는 현재 상무성 장관인 윌버 로스와 함께 2016년 트럼프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들의 논거는 의외로 단순했고 많은 학자들로부터 “경제학 문맹Economic Illiteracy”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나바로와 로스는 공동으로 집필한 「트럼프의 경제계획 평가」라는 논문에서 무역 적자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근거로서 “국민소득은 소비, 투자, 정부 지출, 수출의 합에서 수입을 뺀 것(GDP=C+I+G+X-M)”이라는 국민소득 균형 식을 제시했다. 이에 근거하여 수출은 GDP에 기여하며 수입은 GDP를 삭감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의 목표는 아주 간단하게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Peter Navaro & Wilbur Ross, Scoring the Trump Economic Plan, 2016, p. 9, p. 29.)

여기에 대해서 유명 학자들이 나서서 트럼프 측의 주장은 국민소득 균형 식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몰이해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소비(C), 투자(I), 정부 지출(G), 수출(X)의 합에서 수입을 빼는 이유는 소비, 투자, 정부 지출에 이미 수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중 계산을 피하기 위해서 수입을 차감한 것일 뿐, 수입이 성장을 저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Noah Smith, Trump’s Trade Chief Makes a Rookie Mistake, Bloomberg View, 2016, p. 12, p. 28.)

이 지적은 정확한 이야기이지만 트펌프의 통상 정책을 자문하는 사람들은 괘념치 않는다. 그들의 계산법도 간단하다. 미국은 2015년 5,000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고, 미국의 2015년 명목GDP는 2014년에 비해서 6,440억달러 증가했다. 따라서 미국이 무역균형을 달성했다면 명목GDP의 증가분은 두 수치를 합친 11,440억달러가 되었을 것으로 계산한다(Peter Navarro & Wilbur Ross, 위의 책).

이들은 트럼프 정책에 대한 주된 비판에 대해서도 완강하고 강력하게 반박한다. 트럼프의 정책에 대한 널리 공유되고 있는 비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해외의 값싼 제품의 수입을 막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며 이로 인해 저소득 가계에 부담을 가중시켜, 수입제한은 역진세의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의 정책이 무역 전쟁을 야기해서 대공황과 같은 경제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제20대 총선 이후 한국 정당체제의 변화

지병근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 정당

한국에서 정당의 수명은 대체로 정치인의 수명보다 짧다. 그 이유는 단순히 정당의 지도부가 지조가 없거나, 부도덕하거나, 능력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당이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창출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목적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집권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정당은 정치인들에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숭고한 조직이 아니라, 필요하면 과감히 버려야 할 소모품일 뿐이다. 물론 일체감을 강하게 느끼거나 이념적으로 신성화되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정당은 그러한 위치에 있지 않다.

물론 정당의 존재 이유는 국회의 의석수 확대나 집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당은 다양한 목표를 두고 있으며, 오히려 행정부의 장악보다는 당헌과 강령에 묘사된 사회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사회로 ‘침투penetration’하는 데 목적을 둘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당은 단기적인 집권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거나 때로는 스스로 변형시키곤 한다. ‘선거 정당’ 혹은 ‘포괄 정당’으로의 변신은 사회주의체제의 몰락으로 가속화되었다. 사실 탈냉전기 현대 정당정치의 역사는 다름 아닌 이념으로부터의 탈출기exodus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민주화는 정당 중심의 정치 발전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정당들의 이념과 정책적 지향을 유연화시킴으로써 이들 사이의 이합집산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회의가 급속히 우경화된 공약을 제시하며 김대중과 김종필이 DJP 연합을 형성한 것이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자신의 이념적 위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제시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의당 지도부가 민주평화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체제가 개별 정당의 생애처럼 빈번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체제는 ‘지역주의적 정당체제’를 공고화시켜 왔다. 비록 일반 유권자들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정당이 당명을 바꾸거나 분열과 통합을 거듭해 왔지만, 영호남 출신의 정치인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을 만들고 유권자들은 이들을 일관되게 지지하는 패턴이 반복되어 왔다. 아울러 한국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형성된 ‘노동 없는 정당체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하는 성과를 얻었지만, 그 규모는 10석 내외에 불과하였으며, 그 후신인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하고 말았다. 비록 그 후에도 정의당이 통합진보당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의석수가 한자리 수에 머무르는 등 노동과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들의 성과는 미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체제가 항상 변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정당체제가 유지되더라도 이를 구성하는 정당이나 이들 사이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요동치기 마련이다. 이 글은 20대 총선을 전후로 이루어진 한국의 정당들의 통합과 분열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탐색하고 임박한 6·13 동시 지방선거를 계기로 한국의 정당체제가 재편될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간략히 제시하고자 한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