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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미크로메가스』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실존 인물이 아닌 철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팡글로스 박사가 먼저 떠오른다.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 나오는 인물이다.

캉디드은 베스트팔렌 지방의 고귀한 남작의 성에 사는 소년이다. 성에서 오래 지낸 하인들은 남작 누이와 이웃에 사는 마음씨 좋은 신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일 거라고 짐작했다고 한다. 이 남작의 성에서 “형이상학적-신학적-우주론 바보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팡글로스 박사다. (볼테르는 이런 우스꽝스런 용어로 형이상학적-신학적-우주론을 얼치기 학문이라고 놀려대고 있다.) 팡글로스 박사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 이 가능한 최선의 세계 안에서 남작의 성이 모든 성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또한, 남작 부인이 모든 남작 부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멋지게 증명해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캉디드는 “이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철학자이므로 당연히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철학자인 팡클로스 선생”의 강의를 듣는 것이 행복했다. 물론 그보다 행복한 것은 이 세상에 퀴네공드 양이 있다는 것, 그녀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퀴네공드 양은 열일곱 살 난 남작의 딸인데, “혈색이 좋고 풋풋하고 포동포동하고 탐스러운” 아가씨였다. 한편, 퀴네공드 또한 “자신이 젊은 캉디드의 ‘충족 이유’가 될 수 있고 캉디드도 자신의 ‘충족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상상했다.”

드디어 두 사람은 병풍 뒤에서 만난다. “입술이 서로 맞닿았고 눈길이 불타올랐다. 무릎이 떨렸고 손은 어찔할 줄을 몰랐다.” 병풍 근처를 지나던 남작이 이 “원인과 결과”를 보더니 캉디드를 발길로 걷어차 성에서 내쫓아 버렸다. 여기까지가 1장의 내용이다. 팡글로스 박사가 라이프니츠를 풍자하는 인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라이프니츠에 대한 풍자가 애교스럽게 그려져 있다.

팡글로스 박사

성에서 쫓겨난 캉디드는 “불가리아” 군대에 억지로 끌려가게 되고 아바르족과 불가리아 군 사이의 참혹한 전쟁으로 주변 마을은 비참한 모습으로 바뀐다. 남작의 성도, 성 안에 있던 사람들도 참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어렵사리 전쟁터를 벗어난 캉디드는 네덜란드로 도망친다. 그곳에서도 오물을 뒤집어쓰는 수모를 당하지만 선량한 재세례파 신자, 자크를 만나 도움을 얻는다. 도움에 감격한 캉디드는 자크의 관대함에 감사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팡글로스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제게 늘 말씀하셨군요.”

다음날 캉디드는 거지 하나를 만난다. 거지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종기가 잔뜩 나고 눈빛은 퀭하고 코끝은 빨갛고 입은 비뚤어지고 이빨은 누렇고 목구멍에서 그렁그렁 소리가 나고 심한 기침으로 괴로워하더니 그때마다 침을 뱉어냈다.” 이 거지를 본 캉디드는 연민에 사로잡혀 자크에게 받은 은화 두 닢을 모두 준다. 거지는 눈물을 흘리며 캉디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팡글로스를 못 알아본단 말인가? 거지는 팡글로스 박사였다.

팡글로스는 이 모든 게 “인간의 위로자이며 우주의 수호자”인 사랑 때문에 벌어졌다며 이렇게 사연을 들려준다.

자네도 파케트를 알겠지. 우리 존귀하신 남작 부인의 귀여운 시녀 말일세. 나는 그녀의 품에서 천국의 행복을 맛보았는데, 그것이 지금 자네가 보다시피 나를 집어삼킨 지옥의 고통을 낳았다네. 그녀는 성병에 걸려 있었고 아마도 그 때문에 죽었을 게야. 파케트는 꽤나 학식 있는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한테서 그 선물을 받았지. 역사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네. 왜냐하면 그 수사는 늙은 백작 부인에게서 그 병이 옮았고 백작 부인은 기병대장에게서, 기병대장은 후작 부인에게서, 후작 부인은 어느 시동에게서, 시동은 한 예수회 수사에게서 옮았다니까. 그는 수련 수사 시절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일행 중 한 사람에게서 그 병을 옮겼다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4장)

당시 유럽에 매독이 아무리 창궐했다 해도 라이프니츠와 매독을 연결 짓는 것은 너무 짓궂은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스캔들 없이 평생 독신으로 지낸 라이프니츠였다. 게다가 나중에 프로이센의 황후가 되는 조피 샤를롯테와 철학적인 서신을 주고받으며 이어진 우정은 유명한 얘기였다. 그리고 볼테르는 여기서도 예수회를 비롯한 가톨릭 성직자들을 함께 물고 들어간다. 예수회 신부들에 대한 풍자와 야유는 볼테르의 작품 곳곳에 늘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만큼 볼테르와 예수회 신부들 사이의 대립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회는 1534년에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설립한 수도회였는데, 반反종교 개혁의 선봉대 같은 역할을 했으므로 볼테르와 날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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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없는 사회와 기본소득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Ⅰ. 일자리의 미래와 기본소득

 

일자리 없는 사회

최근 기본소득 논의의 확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1980년대 이후의 소득불평등 심화이고, 다른 하나는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일자리의 희소화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서는 주로 두 번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기술진보가 총고용을 감소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대다수 기존 일자리가 파괴되었지만 신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던 1차 및 2차 산업혁명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도 이와 같은 가정이 들어맞을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일자리 총량이 크게 줄 것이라는 연구가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노동부 온라인 서비스의 직업 및 직능 데이터를 이용하여 직업별 컴퓨터화 가능성을 분석한 프레이와 오스본(Frey & Osborne, 2013)의 연구는 미국의 일자리 중에서 47%가 빠르면 향후 10년, 늦어도 20년 이내에 소멸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프레이와 오스본의 방법론에 따라 한국 직업들을 분석한 김석원(2016)에 따르면, 국내 고용의 63%가 고위험군에 속하여 미국의 47%보다 더 많은 고용이 컴퓨터로 대체될 위험에 놓여 있다. 한편 2016년 세계경제포럼은 주요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주요 15개국의 18억6천만을 고용하고 있는 371개 글로벌 기업의 응답을 수집한 결과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일자리는 710만 개 감소하고 200만 개가 새로 창출되어 결과적으로 510만 개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World Economic Forum, 2016). 가장 비관적인 예측은 2017년 12월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보고서다. 46개국 800개 직업, 2,000개 업무를 분석한 결과, 최대 8억 명, 중간 시나리오에 따른다고 해도 4억 명이 자동화로 실직할 것으로 예측했다(McKinsey Global Institute, 2017: 2).

물론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Deloitte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센서스 데이터를 활용하여 1871년 이후 140년간 기술발전으로 파괴된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음을 보여 주었다(Allen, 2015).** 하지만 딜로이트의 연구에서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감소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내기에는 두 가지 난점이 따른다. 첫째, 설령 장기적 관점에서 일자리 총량이 늘거나 줄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특히 기술진보의 초기에는 급격한 일자리 감소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난점은 과연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에 대하여 지난 140년간의 경험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여기에서 굳이 낙관론이나 비관론의 근거를 자세히 검토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기본소득 논의와 관련하여 세 가지를 먼저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제조업의 ‘고용 없는 성장’, 즉 생산성과 고용의 탈동조화decoupling가 진행되었으며, 또한 이에 따른 서비스업 일자리의 증대는 고임금 제조업 일자리와 저임금 서비스업 일자리의 양극화를 낳았다. 일자리 양극화도 GDP 대비 노동소득분배율labor share의 하락에 일조했지만, 보다 중요한 요소는 지식자산 생산의 GDP 점유율이 꾸준히 상승했다는 점이다. 고용을 통해 임금으로 분해되지 않는 지식자산 생산의 점유율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과정이 수십 년간 거듭된 결과, 고용과 소득 간의 탈동조화 현상은 이미 굳어진 현실이 되었다. 서구 산업자본주의 황금기인 1950년대와 60년대의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일자리 없는사회jobless society’를 살아왔다.

둘째, 일자리 희소화에서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임금노동을 중심에 둔 생각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연중에 기본소득을 실업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여러 기회에 여러 차례 밝혔듯이, 기본소득은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려주는 제도로서 공유부共有富의 배당이다. 기본소득이 이 시대에서 절박해진 이유는 실업만이 아니라 디지털 공유지의 확대와 디지털 자본의 GDP 점유율의 비약적인 상승, 이를 통해 극심해져 가는 소득불평등, 가족 돌봄 활동의 상품화 경향으로 인한 사회재생산 위기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셋째, 노동력 절감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기술적 실업technical unemployment에 대한 관점은 기본소득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케인스는 1930년에 쓴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기술혁신으로 실업이 증대하는 현상에 대해 그 이면에 놓여 있는 역사적 운동을 지적한다. 케인스는 기술적 실업은 역설적으로 인류가 경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물질적 풍요의 시대가 개막될 것이며, 바야흐로 인간은 자신의 에너지를 비경제적 목적에 쓸 수 있게 되고, 희소성에 바탕을 둔 경제학의 역할이 축소되어 경제학자는 치과의사 정도로 대접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Keynes, 1963). 자동화는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낳는다. 하나는 희소성의 경제가 풍요의 경제로 대체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술적 실업과 일자리의 희소화다. 자동화의 부정적 결과인 실업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자동화의 긍정적인 결과인 경제적 풍요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자동화에 반대함으로써 일자리를 존속시키려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나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려는 시도는 해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자동화와 풍요의 경제는 역설적으로 일자리와 소득의 연계에 대한 오래된 믿음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 볼 것을 촉구하며 사회적 부를 분배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 최근 프레이(Frey & Rahbari, 2016)는 컴퓨터화로 인한 일자리 대체가 2013년 연구에서 예상한 것보다는 좀 더 늦춰질 수 있지만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인한 기술적 실업의 증가는 어쩔 수 없는 추세라고 말한다.
** 최근 『매일경제』와 딜로이트컨설팅은 4차 산업혁명으로 한국에서 2025년까지 최대 68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28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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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본주의와 무조건적 기본소득: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유토피아*

로날드 블라슈케 번역 조혜경

* 로날드 블라슈케Ronald Blaschke의 이 글의 원제는 “Utopie mit Sprengkraft. Das bedingungslose Grundeinkommen im digitalen Kapitalismus”이며, 출처는 Blätter für deutsche und internationale Politik, 11/ 2017, S. 104∼112다. 로날드 블라슈케는 기본소득독일네트워크의 공동 창립자이자 이사이며, 독일연방의회의 학술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조혜경 연구원이 발췌하여 번역했다.

최근 들어 무조건적 기본소득 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세력은 사회운동 단체, 단일 의제 정당인 기본소득동맹Bündnis Grundeinkommen, 또는 좌파당과 녹색당의 일부만이 아니다. 이제는 기독민주연합 소속의 전 튀링엔 주지사 디이터 알트하우스Dieter Althaus, 독일텔레콤 대표이사 티모테우스 회트게스Timotheus Höttges도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나섰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보수 진영에서도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소득 지지층이 다양한 이념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은 하나의 기본소득 모델이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실제로 서로 다른 세계관과 정치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기본소득 구상이 존재하며 사회개혁의 방향과 목표도 상이하다. 그에 따라 지급 금액, 재원 조달 방법, 조세제도 개혁, 기존 노동 및 사회 시스템과의 관계등 기본소득의 구체적 방안에서도 입장들이 다양하게 갈라진다.

독일에서 최초의 기본소득 논쟁은 1980년대 초 실업자운동의 생계급여Existenzgeld 요구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등장한 것이 ‘녹색대안Grün-Alternative’이다. 임금노동, 과잉 소비, 산업사회, 환경 파괴, 임금노동 중심주의에 빠진 비민주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사회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이 녹색대안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21세기에 들어 독일 기본소득운동의 기반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슈뢰더 총리의 “아젠다 2010”과 “하르츠 IV” 법제화에 대한 대응으로 2004년에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결성되었으며, 이 네트워크에는 독일연방청소년연맹, 가톨릭 계통의 독일노동자운동, 독일가톨릭청년연맹, 자연친화청소년, 노동자복지협회 산하 연방청소년협회와 같은 대규모 대중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포스트가부장사회, 탈성장주의 진영, 반세계화 운동, 글로벌 사회권 운동, 공유재 및 연대경제 논쟁에서도 기본소득 지지가 확산되고 있으며 노동조합 진영에서도 우호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 구상이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인지는 기본소득의 구체적 방안과 제반 사회 여건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모델과 해방적 기본소득 모델로 구분된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노동시장 유연화 확대, 조세제도 및 복지 이전소득 제도의 극단적 단순화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본다. 그에 반해 해방적 모델의 기본소득은 근대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논리의 극복을 지향한다.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vs. 해방적 기본소득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구상의 전형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해방적 기본소득 구상의 전형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에서 찾을 수 있다. 프리드먼과 프롬 모두 1960년대 미국에서 기본소득 구상을 제시했다.

신자유주의적 또는 시장자유주의적 기본소득 구상은 임금노동에 대한 경제적 강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노동소득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부분기본소득을 주장한다. 독일에서는 토마스 슈트라우브하르Thomas Straubhaar와 디터 알트하우스가 대표적인 지지자에 속한다. 이들은 임금노동의 유인을 강화하는 효과를 특별히 강조한다. 또한 해고 제한, 산별 효력 확장 제도, 최저임금제도 등 노동자를 위한 각종 노동 시장 규제를 폐기할 것과 복지 행정 비용의 축소, 더 나아가 기존의 사회보험, 기타 사회보장 급여나 지원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사회보장 비용을 줄이고 저임금 부문을 육성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구상은 고소득층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세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노동시간 단축 또는 젠더 임금 평등을 위한 노동정책을 부정한다.

그에 반해 해방적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 독일에서는 좌파당 주도의 기본소득연구회, 실업자운동, 아탁 활동그룹 “모두에게 충분하게”가 여기에 해당한다 – 모든 사람이 시장시스템 및 관료주의적 국가의 족쇄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시에 모든 사회구성원이 경제 및 기타 사회적 영역의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기본소득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소득재분배를 이루어내고 기본 생계를 보장하며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적 기본소득 구상은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정치적 지향을 내포하고 있다. 경제, 금융, 정치, 교육, 문화, 사회보장제도, 공공인프라 및 공공서비스 등 모든 사회 영역을 민주적으로 개조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에서 그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보험은 보편적인 시민보험으로 개편되어야 하고 상호 협력에 기초한연대경제와 자조 활동을 촉진하며 생산, 소비, 생활방식을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체협약과 법률에 의거한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도입, 공공인프라 및 공공서비스의 확대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유럽 전역, 더 나아가 글로벌 차원에서 도입되어야 하고 글로벌 사회권과 인권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해방적 기본소득은 젠더 정책의 문제도 직시하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실현, 전형적인 여성 직업의 가치 격상, 임금노동, 가사노동, 돌봄 노동의 젠더 평등적 재분배, 교육, 임금노동, 시민적 참여의 동등한 접근권 보장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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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 요인들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I. 들어가는 말

2018년은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지난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회복 속도는 다른 때에 비해 유난히 더뎠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주식, 채권, 부동산 등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은 전후 어느 때보다도 좋은 실적을 올렸다. 실물경제의 성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자산 가격의 급등을 ‘경제거품economic bubbles’이라고 한다. 현재의 세계경제에는 경제거품이 가득하고 이는 또 다른 금융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앙이자 세계경제의 약 24%(경상GDP 기준)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를 보자.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위기 이후 한때 10.0%에 달했지만 2017년 10월 4.1%까지 내려왔다. 이를 근거로 미국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2017년 성장률은 2.2%로, 1980년 이후 평균성장률인 2.6%보다 낮다. 2010년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6%를 상회한 것은 2015년이 유일하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은 정체되어 있다. 미국 중산층의 가계소비가 늘고 있다지만, 소득 증가가 아니라 부채와 저축의 감소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장의 기반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주식, 채권, 자산 등의 시장의 동향을 보면, 현재 세계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정점은 약 14,000이었다. 그 후 7,000수준으로 폭락했다가 8년이 지난 현재에는 24,500을 넘어섰다. 금융위기 직전의 정점과 비교했을 때 75% 이상 상승한 것이다. 미국의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주택 가격은 2008년 위기로 거품인 것이 판명된 가격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심지어 암호화폐인 비트코인과 미술품 가격의 동향을 보여 주는 그래프는 에펠탑 모양을 하고 있다. 실질임금이 정체된 상황에서의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의 활황은 금융회사, 직업적 투자자, 상위 1%의 부자들에게 엄청난 자본이득을 가져다주어 소득불평등을 더욱 악화시켰다.

역사적 경험이 말해 주는 분명한 사실은 거품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남기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2018년 세계경제에 형성되어 있는 경제거품의 붕괴를 촉발할 수 있는 세계경제의 위험 요인을 점검해 본다.

 

II. 새로운 금융위기의 촉발 요인

1.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과 양적 완화 해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는 2017년에 이어서 2018년에도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와 함께 양적 완화를 통해 그동안 쌓아둔 금융자산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유럽중앙은행도 양적 완화의 축소tapering를 시작했으며, 영국 중앙은행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것은 시중에 풀린 돈을 흡수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정책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지난 금융위기를 야기한 제반 문제가 해소되어 경제가 정상화되었으며 금리 인상과 자산 매각이 실물경제나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경제의 구조적 측면과 금융시장의 동향을 고려하면 통화긴축을 실시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아 보이고, 만약 통화 긴축을 실행에 옮긴다면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을 급격히 위축시킴과 동시에 수면에 가라앉아 있던 구조적 문제를 다시 부각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 위기 동안, 주요국 정부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했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시장의 부실채권을 떠안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체제를 구제했다. 즉 중앙은행은 제로 금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채무자가 상환할 수 없는 부실채권을 현금을 주고 떠안았다. 이런 방식으로 시중으로 풀린 돈이 미국의 경우 10조달러에 이르고, 유럽, 일본, 영국까지 합치면 20조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조치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연쇄적인 파산을 막고 투자의 불씨를 되살리는 역할을 했지만, 이와 동시에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에서 전례 없는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중앙은행들은 공개적으로는 시장 붕괴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지만, 예외적인 통화 완화가 금융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FRB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점진적이나마 인상하려는 이유를 명목적으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인플레이션율은 실제로 그리 높지 않고 2% 내에서 안정되어 있다. 사실 중앙은행들이 점진적이나마 통화긴축을 단행하려는 것은 금융시장의 지나친 과열 때문이다.

통화 긴축이 현재의 경제거품을 붕괴시키게 되는 경로로는 여러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우선 통화 긴축으로 신용 경색을 불러오고 이로 인해 취약한 금융시장의 한 부분을 타격할 수 있다. 지난번 위기는 미국 주택 가격의 급락으로 비우량 주택 대출subprime mortgage 시장에서 대규모 파산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금융규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다시 미국의 주택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지난번과 같은 대규모 파산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위기는 언제나 이전의 위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도둑처럼 찾아온다. 미국 연방정부의 학자금 대출이 위기 촉발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고, 자동차 할부 시장이 위기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 부문에서는 고위험 소비자들에게 대출이 계속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에는 통화 긴축이 달러의 평가절상과 함께 개도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사실로 인해 위기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 달러의 평가절상은 미국 다국적기업의 해외 수익을 잠식하며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려서 미국의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 인하를 통해서 기업의 경쟁력을 보완하려고 하지만, 감세는 재정 적자를 심화시키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는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취했던 역사상 전례 없는 실험이었다. 마찬가지로 금융시장이 과열된 상태에서 금리를 높이고 양적 완화를 해소하는 것도 분명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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