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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시작: 2019년 유럽의회 선거

안효상 편집주간

 

자료: https://election-results.eu/

 

영국의 좌파 역사가 페리 앤더슨이 “메로빙거 입법기관”이라고 부르는 유럽의회가 유럽연합 내에서 유일하게 대중의 직접선거로 구성된다는 것은 유럽연합이 지향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면서도 유럽연합의 비밀을 은연중에 누설하는 일이다. 오늘날 유럽연합은 실질적으로 집행위원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고, 집행위원회는 유로존의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운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의회의 권한이 점차 커지긴 했지만 유럽의회를 여전히 유럽연합에서 장식적 기구 이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도 지난 5월 23∼26일에 열린 유럽의회 선거가 주목받은 이유는 유럽과 유럽연합이 처한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선거 결과가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더 높은 수준의 통합으로 가는 길은 이미 2005년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 헌법을 부결시킴으로써 한 차례 좌절된 바 있다. 이를 2009년 리스본조약으로 봉합했지만, 곧이어 닥친 부채 위기는 오늘날 유럽연합 및 유로존의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유럽연합 내 위계적 질서를 드러냈고, 이 속에서 유럽연합 및 유로존 탈퇴에 관한 논의와 주장이 분출했다. 이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른바 민족주의적인 우익 포퓰리즘 정치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고, 영국에서는 2016년에 브렉시트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여전히 브렉시트의 향방은 안갯속이긴 하지만, 유럽연합 탈퇴를 쟁점으로 국민투표가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탈퇴가 우세했다는 것 자체가 유럽연합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유럽의회에 사실상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아는 유럽 유권자들은 국내 선거 때와 달리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이전 선거와 달리 국내 정치적 쟁점만이 아니라 유럽 차원의 쟁점이 부각된 선거이기도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유럽의회 선거가 정치적 지형을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오늘날처럼 유동적인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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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포상 대상인가 전범인가?

안재성 소설가

 

해방된 뒤 김구, 이시영, 김규식 들과 함께한 김원봉.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우뚝 선 이.

 

몇 권의 평전을 쓰고 나니, 출판사들로부터 누구누구를 써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온다. 박정희와 김일성부터 최근의 노회찬까지 다양하다.

그중 김원봉은 특이한 경우다. 다른 인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 거절해 왔는데, 김원봉은 평전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까지 했다가 내가 먼저 해약해 버렸다.

김원봉을 어떤 사람이라고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위인전이 아니라 평전이라면 주인공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김구는 김원봉을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자”라며 매우 싫어 했다는데,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다. 강연회에서 누군가 “좌우를 통틀어 독립운동가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꼭 김원봉이라고 답한다. 사회주의자 중에는 이관술, 현대 운동가 중에는 윤한봉을 좋아한다는 단서와 함께. 그런데도 김원봉은 평전을 쓰기에 참 어려운 인물이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본인의 행동이나 글이 아닌 내면의 생각을 추측해서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엄청난 용량의 지능을 가진 인간의 내면은 그만큼 복잡하다. 겉으로 어떤 활동을 하든, 내면에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같은 온갖 생각이 뒤엉켜 있고, 친일과 반일, 친미와 반미, 친북과 반북이 공존할 수 있으며, 심지어 마초이즘과 페미니즘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의 불법적 행위를 재판해야지 도덕성이니 계급성이니 하는 잣대로 내면을 측량해 재판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사상을 추측하고 의심하고 캐내어 징벌하려는 오만한 행위가 구 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고 단언해도 될 것이다. 인간이란 가난은 견딜 수 있지만 남이 자기 머릿속을 캐고 들어와 헤집고 통제하는 것은 견딜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평전은 다르다. 행위만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과 감정까지, 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추론해도 된다. 그런데 자료를 아무리 봐도 김원봉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잡아낼 수가 없었다.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입만 벌리면 말했다. 그들이 항일운동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나의 소원은 첫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둘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셋째도 조선의 독립이다.”

독립한 뒤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가난한 조선인들을 위해 어떠한 정책을 펼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민족주의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당제 민주주의 공화국부터 의료보험, 국민연금, 가족수당 등 세부 사항까지 무려 260가지에 이르는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준 것은 온전히 공산주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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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핵폐기물, 이것이 딜레마다

박혜령 반핵지구인행동 회원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선명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운동은 어려워진다. 피아의 명확한 구분이 애매해지고 무엇이 다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고준위高準位 핵폐기물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 정부인지에 대해 판단이 다르거나, 탈핵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거나 표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사실 탈핵의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는 정부의 성격이 ‘찬핵’이라는 명확한 선이 존재했고, 그 반면 정권을 잡고자 하는 야권 정치인 문재인은 ‘탈핵’을 구현할 의지가 있는 인물로 간주됐다. 사실 이때부터 혼란은 시작되었다.

과연 얼마만큼 해야 탈핵인 건가? 오늘 당장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영구 정지를 선언하면 탈핵인가? 핵 마피아들이 득실대는 체제에서 완전한 탈핵이 쉽지 않으니 신규 핵발전소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문재인 정부 정도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탈핵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확실한 생각이 없으면, 고준위 핵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확한 메시지를 마련할 수 없다. 신고리5, 6호기 공론화 때와 마찬가지의 우를 범하고 있다. 정확한 자기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초기 대응의 첫 단추는 여지없이 잘못 끼웠다. 하다보니 그리된 것이 아니다.

핵폐기물 이제 그만? 언제까지 그만?
임시 저장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제 그만?

그렇다면 이야기해 보자. 2017년 당시 고준위 핵폐기물을 위한 공론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산업부의 발표에 8월경부터 시작된 각 현안 지역과 시민단체와의 논의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를. 임시 저장은 애초에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선명했다면, 고준위재검토준비단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논의에 임하거나 합의하는 내용과 과정이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기존의 환경 단체를 비롯한 일부 현안 지역에서도 탈핵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그 내용의 구체화를 위한 논의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런 논의를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않도록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 온 단체들의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고 본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딜레마는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해법 없는 문제가 아니라, 고준위 핵폐기물을 더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큰 줄기의 내용은 있으나 세부적인 내용의 자기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는 문제다. 무엇이 탈핵인가라는 질문에 선명한 답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딜레마다. 이제라도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반핵운동이 더 길을 잃기 전에.

딜레마 1. 뾰족한 수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고준위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보관하여 안전하게 자연 상태로 되돌릴 기술은 확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핵발전을 선택한 나라들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곳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없다. 현재 유일하게 핀란드가 고준위 핵폐기물 심지층 처분장을 건설중이다. 부지를 선정하고 심지층 방식이 거론되던 스웨덴에서는 고준위 핵폐기물 심지층 처분 방식은 구리 원통이 부식될 수 있으며 방사선 누출 대책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부지 선정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었고 이를 충분히 보장하는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기술적 안전성이 아니라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공론화였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현재 월성핵발전소에서 추가 증설하려는 맥스터가 사실상 핵발전소 부지의 지상 중간 저장 시설로 분류될 수 있다. 단기적인 조치이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테러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 등을 생각하면 근본적인 대책일 수 없다. 발전소 내의 수조에 저장하는 그야말로 임시 저장을 비롯해 제3의 부지나 발전소 부지 내의 중간 저장, 아니면 영구 봉인하는 최종 처분까지 기술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고 안전성 확보에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이것은 핵발전소 가동을 시작할 때부터 예상한 문제였으나 우선 가동하고 보자는 무책임한 결정이 낳은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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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지 않은 생일, 전교조 30돌

임성용

참교육의 깃발을 들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투경찰과 백골단을 동원한 무장 병력으로 민주주의를 짓밟던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 쿠데타 세력에 맞서 이뤄낸 1990년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와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창립 과정에서 전교조의 역할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교원 노조가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한 1986년에 「교육민주화 선언」을 이끌었던 교사들은 1987년 6월항쟁의 열기를 “교육민주화 실현”으로 되살렸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참교육 실현, 사립학교 민주화, 교육 악법 개정 투쟁에 나선 교사들은 1989년 5월 28일 전교조를 창립했다. 법외노조였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라며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42명의 교사를 구속하고 1,527명의 교사를 파면 또는 해임하는 등 강경하게 탄압했다. 그중 1,329명만이 1994년 3월에야 교단으로 복귀했다.

합법성 쟁취 투쟁 10년 만인 1999년 7월 1일, 마침내 전교조는 합법화됐다. 민주당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같은 해 7월, 조합원 6만2,654명으로 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함으로써 합법적인 노조로서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전교조는 노동법이 아닌 특별법에 따라 합법화됨으로써 애초부터 일반적인 노조와 동등한 권한을 갖지 못했다.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단결권, 단체교섭권만을 갖게 되었다. 쟁의 행위는 금지되고 조합원 자격도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교원과 유치원 교원은 포함하되 대학교수는 제외되었다. 또한 전국 단위와 시도 단위의 조직은 허용되지만 학교 단위의 노조는 설립할 수 없었다.

공문 한 장으로 박탈당한 합법성

노조와 관련된 현행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이 세 가지 가운데 「노동조합법」은 일반법이고 나머지 둘은 특별법이다. 교원은 특별법인 「교원노조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이 법에서 규정하지 않는 사항은 「노동조합법」, 즉 일반법의 적용을 받는다. 교원은 국공립학교에 속하더라도 국가공무원이긴 하지만 「공무원노조법」의 적용은 전혀 받지 않는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교원노조법」 제2조와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이었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조합원의 자격을 재직 중인 교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은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은 후 ……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해 노동조합에 대하여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바로 이 법률 조항에서 심각한 충돌이 발생한다. 「교원노조법」 제2조의 조합원 자격 규정은 실업자나 해고자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노동조합법」에 배치된다. 특히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담긴 ‘행정관청 시정 요구’와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한다는 규정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결정하게 한 핵심적인 조항이었다.

이 조항들로 인해, 이미 설립신고를 하고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 행정부는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시행령이 노동조합의 존립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 같은 모순된 법률이 정부와 전교조의 법외노조 다툼을 야기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교조는 해당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해직자 조합원 인정’ 등 5개 규약에 대해 시정명령을 했고 전교조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듬해인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는 해직 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임을 통보했다. 팩스로 날아온 공문 한 장으로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가 되고 말았다. 6만 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노동조합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박탈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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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