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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처럼 가볍게 깃털처럼 아름답게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암컷 앞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걷는 수컷 청란. (리처드 프럼, 『아름다움의 진화』, 94쪽)

몇 번에 걸친 달 탐사 여행으로 달에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테지만, 새의 깃털이 달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의아한 일이다.

아폴로 15호는 월면차로 유명했는데, 그 우주비행 때 예정에 없던 실험이 짧은 순간 이루어졌다고 한다. 데이비드 스콧 선장은 여러 임무를 수행하는 바쁜 와중에 사전에 허락받지 않은 한 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실험, 바로 낙하 실험이다. 한 손에는 당연히 묵직한 망치를 들었다. 다른 한 손에는 가장 가볍다고 여겨지는 그것, 깃털을 들었다. 팰콘Falcon이라는 착륙선 이름에 딱 어울리게 송골매의 비행깃털을 미리 준비해 가서 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1971년 8월 3일에 있었던 일인데, 이 장면은 “아폴로 15호의 낙하 실험”으로 검색하면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오래된 영상이라 화질도 좋지 않고 극적인 장치 같은 것도 기대할 바가 전혀 없다. 갈릴레오 얘기를 몇 마디 하며 실험의 의미를 설명한 뒤 스콧 선장이 어깨높이에서 망치와 깃털을 떨어뜨린다. 그러고는 갈릴레오가 옳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1분 남짓한 길이의 동영상이다. 중력이 작용하는 곳에서는 망치든 깃털이든 질량과 관계없이 일정한 가속도로 낙하한다는 법칙을 몸소 실험해 본 것이다. 공기 저항이 없는 달이라 실험에는 적격이다.

얼마나 바빴던지 스콧 선장은 그때 실험에 쓴 깃털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그 깃털은 지금도 시간이 봉인된 것처럼 달 위에 그대로 있다고 한다.

깃털 열풍

가벼운 것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깃털이지만, 깃털의 가치마저 가볍게 평가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까지 서양에서는 깃털 열풍이 불어 깃털 산업이 융성했다.

열풍의 정도는 프랭크 채프먼의 일화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직업은 금융인이었지만 열렬한 새 애호가인 채프먼은 1886년 뉴욕 거리에 나가 새를 관찰했다.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라 여성 모자에 장식된 깃털을 조사한 것이다. 어느 날 답사에서는 700개의 여성 모자를 조사했는데 그 가운데 4분의 3에 깃털 장식이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 4분의 1은 “상복 입은 숙녀”나 “나이 든 부인”처럼 눈에 띄지 않는 복장을 해야 하는 여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깃털 장식 모자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보니 깃털 산업도 번창했다.

깃털 시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백로 깃털 30그램 가격이 지금 돈으로 2,000달러가 훨씬 넘었고 잘나가는 사냥꾼은 한 시즌에만도 10만 달러라는 엄청난 순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번식기의 깃털 30그램을 얻으려면 어른 새 여섯 마리를 죽여야 하며, 백로 두 마리가 죽으면 그 뒤에 어린 새가 세 마리에서 많게는 다섯 마리까지 죽게 된다. 이리하여 수백만 마리의 백로가 죽었고, 한때 흔한 종이던 백로가 20세기로 접어들면서는 에버글레이드 습지를 비롯한 몇몇 습지대에서만 살아남았다. (소어 핸슨, 『깃털』, 246~7쪽)

1912년 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선적된 물품 가운데 가장 비싼 귀중품이 깃털이었다고 한다. 뉴욕의 여자 모자 제조상에게 배달될 최상급 깃털이 40상자 이상 실려 있었는데, 230만 달러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고 한다. “무게당 가치를 놓고 볼 때 이보다 비싼 것은 다이아몬드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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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선언과 해방적 기본소득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기본소득이 낯설고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제법 오래된 역사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말 그대로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역사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공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부상한 구체적 맥락을 검토하게 함으로써 이 아이디어가 진전하는 조건과 이를 가로막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끝머리의 주에 나와 있는 것처럼 2018년 5월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제출되고 승인받은 것이다. 이 선언은 독일기본소득네트워크 내의 워크그룹인 “디지털화? 기본소득!”이 작성한 것이다. 「선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기본소득 논의가 크게 퍼진 배경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화이며 그런 배경 속에서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 가운데 일부가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기본적인 동기는 파괴적인 기술 진전 속에서 일자리 없는 미래는 불가피하므로 고용 노동과 무관한 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침 기본소득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무조건성이기 때문에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디지털화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디지털화가 기본소득 논의에 유리한 지형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도리어 이 지형이 “왜곡된” 기본소득의 논의와 도입을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해방적” 기본소득의 관점에서 디지털화에 대응하자는 일종의 출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 원문영어 번역본은 각각 https://digibge.wordpress.com/2018/06/13/unser-positionspapier-2/https://digibge.wordpress.com/digitalisation-basic-income/에서 볼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해방적 접근의 가능성

지난 2년 사이에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변화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와 경영자 들은 이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환영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정보기술 부문의 일부 사용자와 과학자 들도 이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한 가지 주요한 근거는 경제의 디지털화가 확대되면서 지불노동이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경제와 상관없이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생계 및 사회 참여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장은 인권이다. 이것은 사회에서 디지털경제가 발전하는 것과 무관한 일이다. 해방적인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의 한 형태이지 유일한 선택 사항은 아니다.

급격한 디지털화는 새로운 노동관계를 창출하고 있으며, 그 결과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을 촉진하고 있다. 어떤 기술이 언제 도입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장래에는 누군가가 매일 아침 사무실이나 공장에 출근해서 전날과 같은 일을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노동”은 점점 없어질 것 같다. 디지털화는 사람들의 삶을 더 쉽게 만들고 더 자기결정에 의거하게 만드는 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노동하는 것을 옹호하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루어지는 지불노동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기계가 가져가는 노동 하나하나는 자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의 디지털화는 노동을 더 압박하고 사회를 덜 안전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기본소득 논쟁과 상관없이 이런 경향에 반대한다.

글로벌 디지털자본주의가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의제로 올리면서 해방적 기본소득운동 지지자들은 여기에 답할 필요가 생겼다. 우리의 관점에 따라 해방적 효과를 보장하기 위해 성취하려고 하는 그런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해방적 기본소득으로 가는 길에서 이 아이디어를 함께 실현할 수 있고 실현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동맹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개념에 입각한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삶Buen Vivir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다른 변화와 함께 다수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때에만 기본소득은 바람직하다. 사회적 발전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준은 모든 인간의 좋은 삶의 증대이며, 여기에는 자유와 연대, 자기결정과 기본적인 인간적 필요의 무조건적 보장이 포함된다. 기본소득으로 가는 어떤 발걸음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거기에는 광범위한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정치적 영향력과 방향에 종속되어 있는 기술 발전으로서의 디지털화에도 동일한 것이 적용된다. 기본소득의 글로벌 차원은 기본소득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간주되어야 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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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과 역사를 조롱하는 유니클로 광고

신석준 《신의한술TV》

유니클로의 요상한 광고

안녕하세요. 《신의한술》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7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었던 유니클로가 또 유튜브와 TV를 통해 요상한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많이 보셨을 텐데요, 나이가 지긋한 여성과 어린 여성이 나와 대화를 나눕니다. 98세의 여성은 “패션 콜렉터” 이리스 아펠Iris Apfel이고 13세의 여성은 “패션 디자이너” 케리스 로저스Kheris Rogers라고 합니다.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어요?”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

바로 이 대답이 문제였습니다. 영어로 된 광고에서는 “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그렇게 오래된 일은 기억할 수 없어!”)라고 되어 있고, 일본어판 광고에는 자막에 “昔のことは、 忘れたわ。”(“옛날 일은 잊어버렸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 광고에서만 유독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는 자막을 넣은 것입니다.

유니클로의 한국 법인 FRL코리아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나이 차가 크게 나는 두 사람 모두 후리스를 즐겨 입을 수 있다고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미국, 일본 편과 달리 80년을 넣은 이유도 명백하고 직관적으로 나이 차를 알 수 있도록 자막을 넣은 것이다.

우리가 너무 민감한 걸까요? 유니클로 광고는 정말 아무 의도가 없을까요? 한술 떠 보겠습니다.

강제징용에 끌려간 두 할아버지

집안 이야기 조금 하겠습니다. 제 고향은 충북 옥천군 청성면 대안리입니다. 아주 깡촌입니다. 제가 1970년생인데도 어렸을 때 전기가 안들어왔으니까요. 일제강점기 말에는 더했을 텐데, 그 깡촌에도 강제징용의 마수가 뻗쳐 왔습니다.

제 할아버지와 바로 아래 동생이 일제강점기 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할머니 배 속에 있을 때 끌려가셔서 4살 넘어서 돌아오셨다니까, 아마 1941년이나 1942년쯤 끌려가셨다가 1945년 해방되고 나서 돌아오신 듯합니다. 참고로 그 아래 두 동생도 불과 5년 뒤 한국전쟁 때 군인으로 징집되었고, 막내 종조할아버지는 1952년 장단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뭐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돈 없고 빽 없는 한국 사람 누구라도 집안 내력을 조금만 뒤져 보면 나오는 그런 사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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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의 위험과 재정적 대응의 필요성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한국의 2019년 9월 작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가 0.4% 하락했다. 소비자물가가 전년도 같은 달에 비해 하락한 것은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일반적으로 실업과 함께 부정적인 경제 현상을 대표하며, 중앙은행은 대체로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려고 물가안정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드물게 나타나지만 경제적으로 더욱 문제가 되는 현상은 심각한 불황을 동반하는 디플레이션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바로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경제 상황이 악화된 대재앙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1990년대에 시작된 디플레이션이 동반된 장기불황의 결과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회복세가 그 이전의 위기 때보다 강하지 못했고 인플레이션율도 낮게 유지되었다. 그래서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기를 맞이하면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그러한 징후가 더 뚜렷하게 포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디플레이션이 왜 경제적으로 위험한 현상인지를 설명하고, 한국 경제와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는지,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제1절 디플레이션의 원인과 영향

가. 디플레이션의 원인: 총수요의 감소

디플레이션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경제학에서는 개별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변동하는 이유를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서 찾는다. 경제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물가수준이 하락하는 이유는 총수요가 줄어들거나 총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은 수요 측 요인 때문인 것과 공급 측 요인 때문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급 측 요인은 생산성 향상이다. 생산성 향상이란 동일한 비용으로 더 많거나 더 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성 향상 때문에 공급이 늘어남으로써 전반적으로 생산품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경제적으로 부정적이지 않다. 물가 하락과 함께 경제성장이 동반되는 긍정적 현상이다. 그 예로는 19세기 후반 서구 경제에서 기술혁신으로 일어난 디플레이션을 들 수 있다. 현재에도 개별 상품 차원에서는 생산성 향상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는 일은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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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 80의 사회와 조국 사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SNS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요즘이다.

드라마 《녹두꽃》이 방영될 때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올렸던 조국은 자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프로필 사진을 자주 바꿨다. 자신을 수호하겠다는 구호가 자랑스러워서인지 서초동 촛불시위 장면을 걸기도 했고, “불쏘시개”라는 말을 남기며 법무부에서 퇴장하는 모습을 올리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자의식 과잉의 전시장이긴 하지만, 그가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었다.

혁명을 꿈꿨던 그의 옛 사노맹 동지들과 서울대 친구들,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론가도 하나둘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세계를 뒤집어 보겠다는 그들의 꿈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라는 꿈으로 변해 있었다. 이진경부터 장정일까지, 전설처럼 책 속에 존재하던 이들의 고백이었다.

조국이 끝낸 노무현 장례식

다행스럽게도, 조국 사태를 통해 “386” 또는 “586”을 제대로 알고 비판할 수 있게 됐다.

첫째로는 경제적, 문화적 위치와 관련된 것이다. 조국은 자신의 인맥과 문화적 자본을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활용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과 부인이 교수이고 많은 친구가 교수이거나 대학 총장이거나 법조인인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라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문화적, 교육적 혜택을 누리며 살았다. 과거 “혁명 이론가”였던 이가 사모펀드에까지 투자했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물론, 불법은 없었고, 당연히 열심히 노력했다.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합법적으로 부와 문화적 자본을 독점하고 자식들을 교육과 시험이라는 경쟁에서 승리하게 하여 지위를 세습할 수 있는 지배 집단이 등장한 것이다. 군부독재에 맞서 싸울 때는 적이 분명해서 힘들고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적이 눈에 보이지 않아 싸움이 어렵다는 말이 한때 유행이었는데, 그 막연한 지배 집단이 누구인지를 이번 사태가 보여 줬다.

두 번째는 386의 사상적 붕괴다. 이들은 검찰 개혁에 몰두하면서 “조국 수호”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을 뿐,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그들은 조국에 대한 많은 국민의 분노를 “진보의 도덕 결벽증”이라는 완전히 시대착오적 잣대로 분석하려 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더 큰 잘못을 했는데 진보 인사들의 도덕적 결함에 대해서는 국민이 더 날뛴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도덕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그들의 편리함은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그들의 옛 분석 틀이 얼마나 공상적이었는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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