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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는 대중의 폭력을 선동하는 영화?

강준상*

화장실로 피신한 이후 갑자기 화면 밖 음악을 화면 안 음악인 것처럼 들으며 춤을 추는 아서

 

영화 《조커》는 한국에서 5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하고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간판을 내렸다. ‘엘사’의 폭풍이 몰려왔기 때문에 2019년 11월 마지막 주 극장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영화는 외국 영화이든 한국 영화이든 예매율 1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조커》는 유튜브에서 최근까지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였으나 이제 더 관심을 끌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엘사가 극장가의 모든 것을 잠식할 듯하다.

그런데도 굳이 《조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조커》를 둘러싼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 때문이다. ‘영화와 현실의 관계.’ 《조커》는 개봉과 함께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나뉘었다. 미국의 일부 극장에서는 혼자 온 남성 관객을 몸수색하기까지 했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의 주요 극장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되기도 하여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영화는 유럽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는 황금사자상을 받았으나, 미국 주요 언론은 특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반反트럼프 진영의 언론을 중심으로 이 영화에 악평을 쏟아 냈다.

무게감 없이 가볍기만 하다. 재미없을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조차 없다. 그게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농담인가? ― 『뉴욕타임스』

만약 당신이 현실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조커》를 보시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것을 추천한다. ― 『월스트리트 저널』

《조커》는 유감스럽게도 현실적인 악몽만큼이나 당신에게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 『시카고 선 타임스』

총기류 소지가 허용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와 같은 격렬한 반응은 없었으나, 일부에서 “일베들이 날뛰는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는 평가가 있었고,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아서(조커)가 참조하고 있는 사람들인 인셀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라며 미국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강준상
다큐멘터리 《달려라 휠체어, 달려라 박정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을 연출했으며, 공연연출작으로 《옹달샘》, 《꼴》, 《줄탁동시》, 《스퀘어 – 다시 지금 여기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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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

이건민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1. 들어가며

지난 10월 28일 LAB2050은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이원재, 윤형중, 이상민, 이승주, 2019)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발행하고, 같은 날 오후 2시 공공그라운드 001스테이지에서 연구 결과 보고회를 개최하였다(김수연, 2019. 10. 30).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여러 주요 언론매체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필자가 알고 있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기본소득 재정 모형은 강남훈 한신대 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경기도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를 중심으로 몇 차례 제출되었던 것이 전부였다(2009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곽노완, 이수봉, 2009; 2012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4; 2018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5; 강남훈, 2017; 최근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9a: 12~13장). 그러한 점에서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며, 강남훈 교수의 최신 재정 모형(강남훈, 2019a)과의 비교 역시 유의미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의 문제의식과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3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어떠한 ‘솔루션’을 제출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어떠한 ‘인사이트’를 주는지 살펴본다. 4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 열 가지를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2. ‘국민기본소득제’의 문제의식과 주요 내용 요약

‘국민기본소득제’ 보고서의 저자들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1장).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으로 인해, 1) 지위 경쟁과 사회적 갈등이 악화되어 신뢰를 비롯한 사회적 자본이 낮아지고 다차원적 빈곤이 심화되며, 2) 소득이 불안정해지고 가계소비를 비롯한 내수가 부진해지며, 3) 저출생 현상이 초래되고 부양 부담과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세 가지 요소로 인해 경제와 사회의 역동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핵심 문제이며,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도를 낮춤과 동시에 모두에게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분배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제와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분배 제도가 바로 기본소득일진대, LAB2050은 우리나라에서 실현가능한 하나의 기본소득 모형으로 ‘국민기본소득제’를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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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 썼을까?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1937년 블랑키의 저서 『유럽 정치경제의 역사』의 표지와 “산업혁명”(밑줄은 이 글의 필자가 그은 것)이 등장하는 제2권 209쪽.

 

사물인터넷, 나노기술,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3D 프린터. 놀라운 기술 발전으로 인류의 삶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귀찮거나 위험한 일을 쉽고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노동의 종말까지는 몰라도 임금노동의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엄청난 기술혁신을 놓고 조금은 희한한 논쟁이 벌어졌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바프 의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많은 기업은 물론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 정부는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대응에 분주하다. 한편, 한국에서 “종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제러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 『한계비용 제로 사회』 같은 책에서 현재의 변화와 혁신은 “제3차 산업혁명의 연장”일 뿐이라고 본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한 토론 행사에 영상으로 보낸 기조 발제에서 리프킨은 제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것은 사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상업적 목적에 휘둘린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여러 이유로 “산업혁명”이 관심이다.

이 글은 최근의 변화와 그에 대한 평가나 대응책을 다루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일과 관련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증기기관의 등장, 여러 기계의 발명, 가내공업을 무너뜨린 대규모 작업장의 등장, 철도 부설과 열차 운행 따위에서 촉발되어 대체로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일어난 변화를 흔히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그러한 변화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은 어떤 이유이며 그러한 변화에 맞닥뜨려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다. 현재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일말의 단서를 지난 역사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예컨대 “최초의 산업혁명에 인류는어떻게 대처하려 했나?”가 처음에 생각한 주제였다.

안타깝게도 이 글은 그 주제에까지 가지 못했다.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또는 매우 일찍) 사용한 사람(들)이 누구였으며 그 사람(들)은 어떤 맥락에서 그 용어를 사용했는지를 부족하게나마 밝혔을 뿐이다.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면 이 글의 결론은 뒤집힐 것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너무도 많았다.

따라서 이 글은 연구 결과가 담긴 학술 논문과는 거리가 멀다. ‘좌충우돌 검색 과정을 약간 편집한 녹화 중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기원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 바로잡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러 인물과 저작이 등장하고 인용문도 많지만, 독자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냥 중계를 시청하면 된다. 필자가 겪은 좌충우돌을 감상하며 목적지를 향해 떠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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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한일 연대 – 2019

이경자 반핵지구인행동(반지) 회원

AWC(‘미일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 공동행동’) 한국위원회와 일본연락회의는 정기적인 연대를 통해 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후쿠시마 방사능오염수와 도쿄올림픽에 대한 현황을 공유하고 한 걸음 진전할 수 있는 연대를 모색하자는 취지로 연대 행동을 마련했다.

“후쿠시마, 끝나지 않은 인재. 국경을 넘어 연대하라!”
“福島, 終わらない人災, 国境を越えて連帯せよ!”
“NO MORE FUKUSHIMA!”

2019년 11월 10일 저녁

갑작스레 장대비가 쏟아졌다. 짧지만 꽉 짜인 일정을 앞두고 걱정이 많아졌다. 멀리 일본에서 달려온 이들이 무사히 1박 2일의 일정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마중을 나갔다. 서울을 거쳐 대전에 도착한 일행들과 서툰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며 밀린 얘기들을 쏟아 냈다. 피곤한데도 기자회견에 쓸 피켓을 만들고 강연 자료를 수정하는 60∼70대 활동가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몇 년 전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던 ‘원전 필요 없다. 후쿠시마의 여성들原発いらない 福島の女たち’에서 활동하는 구로다세츠코黒田節子(69세) 선생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될 후쿠시마의 현재가 너무 궁금했다. 그 단체는 후쿠시마 핵 참사 직후인 2011년 10월과 오오이핵발전소를 재가동하려던 2012년 6월 각각 도쿄 경제산업성과 수상 관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으며, 매년 3월 11일 집회와 시위를 이어 가고 있고, 1년 동안 활동한 사진으로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끔찍했던 그때 일을 되돌아보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 쓰나미가 덮쳤고, 핵발전소에 전원이 끊기면서 1호기가 폭발했다. 4일 만에 2, 3, 4호기도 폭발했고,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뿜어져 나왔다. 일본 열도는 공포에 휩싸였다.

후쿠시마 전역에 걸쳐 피난 명령이 내려졌고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핵발전소 사고였다. 지진이 잦고, 그래서 어느 나라보다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여 안전 민감도가 높을 것이라 믿었던 일본의 민낯은 매우 처참했다.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체계도 없었고 훈련도 하지 않았다.” 당시 총리 간 나오토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 어디선가 반드시 일어난다.”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고 칭송되던 원자력–핵에너지의 위험하고도 무시무시한 실상을 목도하게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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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노동자, 86일간 파업하다

임성용*

필자는 2014년도에 서울시 성북구에서 청소차를 운전한 적이 있다. 서울시가 시범 사업으로 실시한 ‘재활용 정거장’ 위탁 업무였다. 재활용 분리수거대 설치를 비롯해 주민 교육, 재활용품 배출량 산출, 적치장 관리, 매입 물품 회계, 월별 사업 보고(시청과 구청 각각)까지 할 일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흔히 환경미화원이라고 부르는 청소 노동자들의 고충을 필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경미화원이라고 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관내 쓰레기 수거, 도로 청소, 공중 시설이나 건물의 관리를 위하여 고용한 노동자들을 말한다. 환경미화원은 거리미화원과 건물미화원 등으로 구분된다. 생활 쓰레기, 폐기물, 재활용품, 음식물 쓰레기는 지자체에서 처리하지 않고 대부분 위탁업체에 맡긴다. 언제부터인지 시설관리공단과 같은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 환경과의 업무를 청소업체, 환경업체에 이관했다. 그리하여 정규직이었던 노동자는 위탁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이 되었다.

필자가 일한 성북구도 마찬가지였다. 쓰레기 처리 업무가 입찰을 통해 위탁으로 전환되자 그와 관련된 모든 일은 해당 업체의 몫이었다. 규모가 큰 업체는 서울의 여러 구청과 계약을 맺는다. 재활용 선별장 수준의 영세한 업체들은 감원이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기반으로 운영한다. 위탁이 곧 열악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청소차를 운행하는 운전자 한 명에 수거 미화원 두 명이 하던 일을 위탁업체에서는 운전자 혼자서 해야 한다. 골목골목 운전하면서 곳곳의 거점마다 무거운 쓰레기 자루를 옮기고 차에 싣다 보면 금방 적재함이 차 버린다. 차에 여러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적치장에 가서 짐을 비우고 다시 수거하기를 수십 번 하는 고된 작업이다. 세 명이 하면 오후 두세 시쯤 끝날 일을 혼자서 하니 새벽 5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가 넘어야 겨우 끝난다. 일 년 만에 결국 손가락 관절은 물론 무릎도 아파 도저히 할 수가 없어 그만두었다. 위탁의 참혹함을 그때 톡톡히 경험했다.

청소 노동자, 아직도 절반이 비정규직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은 5,577명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직영, 그러니까 구청 소속은 2,559명이다. 나머지 3,018명은 용역업체 소속이다. 말하자면 청소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청소 노동자는 모두 용역업체 소속이다. 관공서도 다를 바 없다.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에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청소 노동자들을 ‘공무직’,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서울시청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는 큰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직영이 된 구청에서 채용하는 환경미화원 취업이 바늘구멍인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정규직으로 선발된 선택받은 소수를 제외한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단순 미화 업무가 아닌, 생활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청소는 서울시 자치구 거의 모든 곳이 아직도 위탁업체에 맡기고 있다.

 

*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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