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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편이냐? 그리고 너는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

1960년대 미국에서 반전운동이 거세질 때 이런 노래가 있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1980년대 격동의 시대가 지난 후 한국에서 어느 시인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노래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전선이 분명했지. 그리고 각자가 그 전선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전선에 오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지 않았지.’

지금은 둘 다를 묻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조국 법무부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고, 또 조국 법무부 장관 자신에 대해서는 그가 서 있는 자리와 그가 걸어온 길이 부합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묻지 않는다. “검찰 개혁”이라는 말이 허공에 맴돌 뿐이다.

1960년대의 미국과 오늘날의 한국은 분명 다르다. 베트남에서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투하했던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이때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묻는 것은 거리감은 있었을지언정 가상에 기초한 질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 편 아니면 저쪽 편”이라고 하는 단정은 다양한 욕망과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성립하는 상상적 질문의 폭력이다.

물론 “검찰 개혁 대 법무부 장관 사퇴”라는 구도 속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은 순진하거나 적의 편을 드는 말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편에 서는가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전선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그 전선에서 싸워서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도 최소한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시절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서 있는 자리만큼이나 걸어온 길이 중요하다며 물을 때, 거기에는 분명 세대 논쟁이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복잡한 사회학적 논구를 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386세대”라고 부르는 특정 연령층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인간의 생물학적 순환에서 특정 시기에 특정 연령층이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 혹은 운fortuna이 특정 연령층에 그런 행운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령 변수를 제거하더라도 386세대가 ‘과잉 대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또 역사나 운명의 여신이 벌인 장난이었다면 그건 온전히 자신의 몫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 대학 학생들이 “공정”이라는 구호 아래 벌이는 움직임이 달가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공정을 말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그럴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좀 더 나은 조건과 그렇지 않은 조건 사이의 공정은 더 큰 사회적 그림 속에서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할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새로운 사회 연대성의 수립이 필요할 텐데, 그 기반은 시민성의 보장이다. 시민성의 보장은 모든 차별의 금지와 삶의 보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적 권리를 복지국가 황금시대에 서구가 보장했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원리적인 의미에서 근대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개인의 해방이야말로 근대성의 원리라 할 수 있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는 다양한 연원이 있는 전근대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근대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법률적 조치뿐만 아니라 “문화 전쟁” 또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문화 전쟁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라도 시민성의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질문에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이라고 대답할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10월호 통권72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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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기타를 만들지 않겠다는 회사

―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13년간의 눈물

임성용

2019년 4월 23일 콜텍의 노사가 드디어 합의문에 서명했다. “4,464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한 공동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출처: 임재춘 페이스북)

장장 13년의 투쟁이었다. 국내 최장기 투쟁 사업장 중의 한 곳이었던 (주)콜텍 해고노동자들이 13년의 복직 투쟁 끝에 마침내 회사와 합의했다.

지난 4월 23일, 노사는 아홉 차례에 걸친 교섭 끝에 어렵사리 합의안을 마련하고 조인했다. 노동자들이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한지 4,464일 만이었다.

합의문의 주요 내용은 회사의 유감 표명, 그리고 해고노동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의 명예로운 복직과 퇴사였다. 아울러 콜텍지회 조합원(25명)에 대한 합의금 지급과 민형사상 소 취하 등도 합의했다.

충남 논산에 있던 콜텍은 2007년에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았다. 콜텍에서 통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당했다. 해고노동자가 복직해도 지금은 돌아갈 공장이 없다. 그래서 합의문을 보면, 이인근(콜텍 지회장) 등은 “5월 2일 복직시키되 5월 30일부로 퇴직”하기로 했다. 또한 “소급해서 근로관계를 부활시키거나 해고 기간의 임금 등을 지급하지는 아니한다”라고 했다. “회사는 국내 공장을 재가동할 시 희망자에 한해 우선 채용한다”라고 했지만, 그럴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콜텍 사장 박성호는 이미 공장을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기타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인천 부평에서 함께 운영하던 (주)콜트악기도 폐업한 후 중국으로 이전했고 콜트 노동자들 역시 전원 해고되었다. 두 회사 모두 사장은 박성호이며 법인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콜트와 콜텍은 똑같은 정리해고 사업장이었고,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한 몸으로 연대해 왔다. 다만 콜텍이 먼저 합의했다. 합의서 한 장 받는 데 13년이 걸렸다.

20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던 사람

회사는 지독했다. 노사 협상이 시작된 것은 복직 투쟁이 시작되고 무려 12년 만인 2018년 12월 말이었다. 노동자들이 협상 당사자인 박영호 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13년 만인 2019년 3월 7일에 있었던 8차 협상에서였다. 사장을 만난 그날도 협상은 결렬되었고, 3월 12일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조합원이 단식을 선언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임재춘은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42일 동안 단식했다. 그의 나이는 57세. 흰색 한복을 입고 앉아서 단식하는 그의 머리카락은 한복만큼이나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가 해고될 당시에 마흔네 살이었을 테니, 그 길고 어두운 시간을 견뎌 온 세월이 버림받은 노동자의 이력으로 고스란히 묻어났다.

지난 4월, 필자가 단식투쟁을 지지하기 위한 집회에 참석했을 때, 그의 몸무게는 47kg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약간 말을 더듬는 듯한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로 그는 말했다.

“13년을 길거리에서 싸우고 농성할 줄 알았으면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깊고 강인한 눈빛을 가진 눈에 고인 눈물이 안타까웠다. 옆에 앉은 이인근 지회장과 김경봉 조합원은 차마 그 모습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여전히 제 꿈은 명품 기타를 만드는 겁니다.”

과연 그는 이번 생에 다시 기타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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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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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판결과 ‘권리들을 가질 권리’

‘포스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중의 고통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과거가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미래는 우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시작해서 포스트포디즘을 거쳐 포스트신자유주의를 지나 포스트자본주의까지. 여기에 포스트파시즘과 포스트트루스까지. 뭔가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그 속에 머물고 있으며, 세상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도리어 뒤로 떠미는 바람이 더 거센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뒤로 떠미는 거센 바람에 과거의 것이 실려 오면서 “귀환”이 포스트 시대의 주조인 것처럼 보인다. 직접적으로는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치적 대응으로 시작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 전쟁’과 대중적, 민족적 대립은 역사적 잔해의 귀환이다. 물론 이 사태가 단순한 귀환은 아닐 것이다. 분명 여기에는 미래를 향한 불씨가 있다. 다만 역사적 잔해 속에 묻혀 있을 뿐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누구 말대로 “지정학의 귀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자유주의적 국제 체제의 붕괴를 가리키는 지정학의 귀환은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지역 패권 추구, 터키와 인도 등의 새로운 위치 잡기 등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를 추구하는 일본의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태세 전환의 시도가 도드라져 보인다. 북한이 핵무장과 그 해결 과정에서 추구하고 있다고 알려진 “정상국가화”라든가 한국 정부가 이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 일본과의 대립 속에서 주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모두 지정학 속에서 행위자로서 자리 잡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일지만 이러한 지정학의 귀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민족주의다. 서구에서 근대국가가 ‘민족-국가’라는 특유한 형태를 취했고 20세기 이후 이것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낯선 일은 아니다. 지구화 속에서 민족주의의 시대가,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주장이 나온 바로 그 시점부터 에스닉과 종교 등 다른 갈등이 터져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의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적 침략의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국가의 추구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억압적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족주의의 귀환’은 봉인된 파괴적 힘이 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한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에도 예외는 아니다. 민족주의가 인류 공동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과도적인 단계라는 자유주의자들의 바람과 달리 민족주의의 일반화는 중첩된 갈등을 낳았다. 크게 보아 지배적인 민족일지라도 특정 지역에서 ‘소수민족’일 경우 억압을 피하지 못했으며, 제국주의에 지배받는 피억압 민족도 자기보다 하위에 있는 민족 집단에 대해 제국주의와 유사한 태도를 보였다. 이른바 민족 내부에서는 민족 대 반민족의 이름으로 소수자나 반대파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일본과의 대립 속에서 기술 자립을 위해 노동조건의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든가, 불매운동에서 민족(?)자본에 대한 옹호가 나타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우려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격렬한 싸움은 가끔 그 싸움이 왜 일어났는지를 잊게 한다. 한일간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원인을 빼고 해법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적 발단은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해 해당 일본 기업에 손해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강제징용 자체가 있었는지 여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 한국이 받은 3억 달러의 성격, 그리고 이것으로 개인들의 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여부다.

우선 강제징용 문제는 두 가지 다른 쟁점을 제기한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식민지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중첩되어 있는 것이긴 하지만 어떤 체제 하에 살던 개인이 인간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에 관한 문제다. 1910년 대한제국과 일본은 “한일병합에 관한 조약”을 맺어 대한제국 전체에 관한 통치권을 일본 황제에게 양여하기로 한다. 이로써 한국 인민은 법적으로 일본 황제의 신민이 되었다. 이런 사태가 1965년 이후 무효화되긴 했지만, 한국은 원천 무효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일본은 당시에는 유효했으나 대한민국 수립 이후 무효화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일제강점기 한국 인민의 ‘강제동원’에 대한 입장 차이를 수반한다. 하지만 설사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대해 ‘합법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강제징용된 개인의 권리까지 무효화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런 개인의 권리를 통치권과 무관한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통한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는 개인의 권리와 관련해서 좀 더 일반적인 시사점을 준다. 두 나라는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도 맺었는데, 일본은 이로써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본다. 여기에는 청구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 간의 조약으로 개인의 권리가 무효화될 수 있는가라는 쟁점이 있다. 청구권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이 있는데, 앞서 보았듯이 양국 사이에는 여전히 이견이 있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일본 측에서도 국가가 가지는 외교 보호권을 포기한 것이지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외교 보호권의 포기와 개인 청구권이 유효함은 양립가능한 일인가?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는 깨달음과 마주한다. 20세기의 가장 특유한 정치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말처럼 상황과 우연의 결과물로 미국으로 건너가 1951년에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지만, 그 이전까지 거의 20년간 국적 없는 난민으로 살았다. 이 경험 속에서 그는 권리들을 가지려면 단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했다. 권리를 가지려면 인간은 우선 정치공동체의 일원이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구체적인 권리들에 앞선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아렌트의 이런 깨달음은 근대의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이 가진 추상성을 드러내며, 현실에서 이것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권리들을 가질 권리”에 대해 말한 바로 그때부터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제적인 제도와 활동의 발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적 없는 사람들과 난민들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에서 설사 정치공동체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오늘날 지정학의 귀환은 ‘민족-국가’와 민족주의의 이름 아래 정치공동체 내부에서 많은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강제징용 손해 배상 판결은, 어느 정도로 실효성이 있을지 아직 모르지만,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려 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누구나 과거를 딛고 내일로 나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동아시아 세계에서 일본의 침략과 만행으로 벌어진 과거사에 대한 청산 없이 의미 있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청산은 국가 대 국가 사이의 관계 재설정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극단의 시대이자 진보와 야만이 교차한 지난 세기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어떤 정치공동체도 모든 사람의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보고 있는 인권의 목록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권 자체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다시금 정치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할 때, 그리고 그러한 인권 자체가 다시금 후퇴한다고 여겨지는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19세기에 프랑스의 종교사가인 에르네스트 르낭은 민족을 “나날의 국민투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 인간의 권리, 이 권리를 보장한다는 정치공동체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권리들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공동체를 나날이 형성하는 투쟁이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고 행사하는 길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어떤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은 그러한 권리를 위한 투쟁 속에서만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9월호 통권71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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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해방, 사회주의

 

얼마 전 한 라디오방송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짧게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미리 받아 본 질문지에 적힌 내용은 꼭 필요한 질문이긴 했지만,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이런 식의 인터뷰를 여러 번 했던 사람에게는 흥미가 떨어진 것이었다는 말도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짧은 시간에, 그것도 어떤 영국 작가가 커뮤니케이션의 역사에서 “실수”라고 말한 적이 있는 전화를 통해 조리 있게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누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이건 저렇게 대답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꼭 필요한, 다시 말해 흔한 질문 가운데 그렇지 않은 질문이 하나 끼어 있었다. 대략 질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면 사회주의/공산주의와는 어떻게 다른가?’ 인터뷰 때에는 이 질문을 살짝 틀어서 ‘정의의 문제’로 바꾼 다음, “공유부에 기초한 기본소득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고전적인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좀 더 시간이 많고 대면한 상태의 인터뷰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설마 농담이시겠죠? 사회주의/공산주의야말로 노동에 따른 분배에 충실한 사회입니다. 도리어 자본주의가 노동에 따른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사회죠.’

내 대답이 여기에 그쳤다면 특정한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해 해설하는 일을 한 셈이다. 그러면서 진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바뵈프에서 시작하는 현대 공산주의는 ‘공동 소유, 공동 노동, 공동 향유’라는 원칙을 간직해 왔다. 물론 현실사회주의에서 이 원칙이 얼마나 철저하게 관철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현실사회주의가 ‘전 인민의 소유’나 ‘국가 소유’라는 방식으로 공동 소유를 설사 실현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나타난 결과가 권력에 따른 위계와 불평등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권력의 문제, 국가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형식적 소유의 문제와 상관없이 노동과정에서도 관철되는 문제였다는 것도 드러났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혹은 선동적인 수준에서 현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하고자 한 일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종식하고 진정한 인간의 역사를 열겠다는 것이었다면, 포스트자본주의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은 세계지도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 라는 말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사회주의에서의 인간의 영혼」(1891년)은 이런 점에서 흥미로운 글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사회주의가 “공동체의 각 구성원에게 물질적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다시 말해 “삶에 필요한 기반과 적절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개인주의다. 이때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개인주의”는 “그 누구도 재물과 재물의 상징들을 쌓아가는 데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오스카 와일드가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예술이다. 그리고 그 기초가 개인주의다. 그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예술은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다. 나는 심지어 예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20세기 최대의 아이러니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한다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다시 억압적 체제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이 아이러니는 민중 혁명 속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해소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해방의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이 아이러니는 언제고 다시 등장할 것인데, 이때 우리는 어떤 방향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전제는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공동의 향유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공동의 향유는 말 그대로 개인들의 삶의 토대를 확보하는 일이 된다. 물질적인 것을 말 그대로 물질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그 위에서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각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이때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개인주의의 참뜻이 드러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등에 대해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우려할 일이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미 이렇게 선언한다. “마치 시골의 신사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풀은 자라나는 것처럼, 인류가 삶을 즐기면서 노동 대신 인간의 목적이 되어야 할 우아한 여가를 보내거나,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고 아름다운 것들을 읽거나 그저 세상을 관조하며 감탄과 기쁨을 느끼는 동안, 기계는 필요하고 힘든 일들을 모두 처리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사회주의/공산주의는 20세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경제적 권력이기를 멈추고, 말 그대로 인간적 삶의 토대가 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7~08월호 통권70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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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못 깨면 회사 문을 닫겠다

― 서울 독산동 신영프레시젼 투쟁

임성용

여성 친화 기업 회장님의 두 얼굴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신영프레시젼은 1993년에 설립된 금형 회사다. 1998년 모토로라사의 휴대폰 금형 제작과 사출성형으로 기반을 다지고 LG사의 우수 협력사로 선정되면서 급성장했다. 초정밀 금형부터 중소형 금형까지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여 금형 설계와 제품 사출, 코팅, 후가공, 조립에 이르기까지 일관 생산 능력을 가진, 동종 업계에서는 유명한 회사다.

회장 신창석은 전남 영암군 학산면 출신이며, 《학산서초등학교 카페》에 그의 행적과 선행이 상세히 나열되어 있다.

카페 글에 따르면, 신창석은 학산면 매월리 미교마을 출신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찍 상경해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대학에 다닌다. 다우정밀을 공동으로 운영하다가 1993년 지금의 신영프레시젼의 모태인 신영정밀을 설립했다. 1995년 법인으로 전환하고, 창업 13년 만에 국내 휴대폰 케이스의 금형 및 사출로 연 매출액 2,000억 원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전국중소기업인대회에서 정부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카페 글은 신창석이 기업인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사회 공헌에서도 남다른 면을 보여 주고 있다고 칭찬한다. 독거노인, 소년 소녀 가장, 장애인, 편부·편모 자녀, 교회 등 여러 곳에 상당한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 공로로 ‘학산면민의 상’을 수상했고, 마을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공적비까지 세워 주었다고 한다.

노동조합의 확인에 따르면, 신창석은 가족이 다니는 반석교회, 회사가 위치한 금천구청, 성모재가노인복지회 등에 일 년에 수억의 기부금을 내고 있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회 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2016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여성가족부장관으로부터 ‘여성 친화·가족 친화 인증’도 받았다. “일과 가정 양립, 가족 친화 직장 문화 조성,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 조성, 여성 인재 육성 등”이 표창의 주된 사유였다.

과연 이 많은 표창을 받을 만큼 신창석 회장은 사회 공헌에 기여하고 투철한 공공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을까?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였다. 신창석이야말로 자본가 개인의 인성과 자본가로서의 행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2015년 10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수급 사업자를 상대로 납품 단가를 후려친 신영에 대해 과징금 1억5천만 원을 부과한다. 이른바 갑질 횡포를 저지른 악덕 기업으로 신영이 등장한 것이다.

2019년 3월 29일 금천구청 앞에서 신영 노동자들의 금요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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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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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운동은 정당하다, 저항하라!

원익선 원불교 교무, 원광대학교 정역원 연구교수

1.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봄이다. 신기하게도 그 메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고 잎이 돋는다. 어떤 과학자도 그 메마른 가지 안에 꽃이 들어 있고 잎이 숨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꽃과 잎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造物主밖에 없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物)을 만든(造) 조물주라고 한다. 그의 이름조차도 모른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이름이 아니다. 하나의 임이다. 우주 전체를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도 모르는 분을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실존철학에서 말하듯이 피투성被投性의 존재다. 즉 우리가 목격하는 이 세계 내에 내던져진 존재다. 이 말은 그만큼 인간의 고독을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임대아파트에서 살다가 기간이 지나면 나가야 하는 것처럼, 이 지구 위에서 일정한 시간을 살다가 이 지구라는 방을 비워야 할 처지에 놓인 존재다. 넉넉잡아 2백 년 전에 살던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2백 년 뒤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이 지구를 자기 혼자만의 방인 양 어지럽혀 놓고 사라진다. 청소는 후손들의 몫이 되고 있다.

이처럼 자연의 신비나 우주의 주재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존재인 인간이 고작 백 년 안팎의 삶을 살면서 이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과학도 스쳐가는 한때의 진리일 뿐임에도 영원한 것처럼 숭배되고, 개인보다 센 자본과 국가의 힘에 의지해 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인 핵발전소다. 핵발전소를 양산하는 ‘핵 마피아’의 핵심 세력은 과학, 국가, 자본주의다. 이 셋이 자신의 무명無明(불교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자신의 본성과 존재 의미와 행위의 결과를 모르는 것)에 말려들어 인류의 미래마저 어둡게 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 과학, 국가, 자본주의는 철두철미한 삼각동맹을 맺고 있다. 과학은 국가나 자본주의의 후원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는 과학과 자본주의에 내재된 맹목적 이성 및 탐욕과 제휴하며 공존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이다. 자본주의는 과학과 국가를 전진기지로 삼아 세계 전체를 자신의 발아래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란 국가나 과학을 시녀로 두고 자본만의 완전한 자유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말한다.

핵발전소는 근본부터 이러한 과학, 국가, 자본주의의 불순한 동맹 하에 건설되었다. 이와 관련된 과학자, 공무원, 핵 산업계는 핵발전소가 전력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킴으로써 이와 관련된 숱한 문제점들을 은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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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플랜트 노동자와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권준덕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울산지부 조합원

 

플랜트 건설 현장 (출처: 네이버 블로그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의 이야기》)

 

1970년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은 시간이 지나 2005년 내가 속해 있는 노동조합의 파업 구호가 되었다. 한때는 우리 조합 조끼 뒷면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문구까지 있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돼 밥상을 펼쳐 놓고 밥 먹고 쉬는 시간에 편하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울산지부에 소속된 조합원이다. 울산지부는 울산과 경남 일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도 플랜트 노동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궁금증을 나타내는 이들을 종종 본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이 사회에 얼굴을 비춘 것이 지난 1989년 포항건설노조 창립 때이니 말이다. 포항을 시작으로 여수, 전남 동부, 울산, 충남에 조직된 지역노조들이 2007년 산별조직인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그 뒤 전북지부와 산별 전환에 실패했던 여수지부가 가입했고, 또 경인지부와 강원지부가 가입해 전국 8개 지부 10만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난 ‘충남지부 사태’로 충남지부는 현재 지역노조로 전환된 상태다. (‘플랜트노조 충남지부 사태’에 대해서는 본지 2018년 7∼8월호에 실린 「노동자에 의한 테러와 민중당」을 보라. ― 편집자)

공장을 만드는 노동자

우리가 하는 일은 공장과 산업 설비 등을 건설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이다. 이런 공장들이 집중된 곳인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우리 8개 지부가 있다고 봐도 좋다. 우리 플랜트 노동자의 삶은 지난 박정희 시절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시작될 때부터 시작한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SK에너지, S-Oil 등 중화학 공장을 만드는 일, 석유화학 공장에서 일시적으로 공장의 생산 설비를 멈추고 진행하는 일명 ‘셧다운shutdown’이라는 정기적인 보수 공사, 여름철 휴가에 맞춰 공장을 보수하는 ‘휴무 작업’ 등이 우리의 주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보면 정규직이 일하지 않을 때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휴무 작업에 들어가면 여름휴가도 없고 설과 추석 때도 당일만 쉬고 일한다.

이런 공장과 생산 설비 등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세부적인 직종이 있을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산하에 지역별로 지부가 있고, 지부에는 직종별로 분회가 있다. 전기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계전분회, 펌프나 컨베이어 등 각종 기계 설비를 담당하는 기계분회, 현장 배관 및 모든 구조물에 페인트 작업을 하는 도장분회, 보온재와 함석을 이용해 높은 온도의 배관이나 열교환기를 보호하는 보온분회, 연료나 공정에 필요한 화학물질들을 파이프로 연결하는 배관분회, 중량물의 설치와 관련 작업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게 발판 등을 설치하는 비계분회, 주로 배관 파이프를 용접하는 용접분회, 화기 감시 등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여성 노동자들로 구성된 여성분회, 배관 파이프를 지지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제관분회, 각종 물질을 저장하는 탱크를 제작하는 탱크분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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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은 인간의 일자리 영역으로 남을까? 인공지능의 발전 현황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창조성은 동물과 인간의 경계다. 이제 인공지능(이하 ‘AI’) 시대에 창조성은 기계와 인간의 경계로 다뤄지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전자가 여전히 유지되는 경계라면, 후자는 논쟁적인 주제가 되었다. 이미 인간의 초보적인 창조성을 구현한 AI의 등장으로 창조성은 인간을 정의하는 고유한 기준으로서의 지위를 잃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철학적인 논쟁은 여전히 필요하고 진행형일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의 미래와 관련해 인간과 AI의 창조성의 질적 차이를 논하는 것은 실익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는 범용 AI 개발 경쟁으로 치닫는 AI의 발전사를 핵심 기술의 발달과 함께 짚어 보고, 범용 AI 개발이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 갖는 함의를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기계 학습과 심층 학습

AI의 개발이 궤도에 오른 1950년대에 AI 개발 방법론은 크게 두 가지 길을 걷게 되었다. ‘규칙 기반(또는 상징적) AI’와 ‘확률·통계적 패턴 인식 기반 AI’가 그것이다. 전자를 성인이 규칙과 문법을 숙지하고 단어를 암기하는 방법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에 비유할 수 있다면, 후자는 어린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는 방식에 비유할 수 있다(Erik Brynjolfsson & Andrew McAfee, 2018).

기호를 처리하거나 인간의 논리적 사고를 재현하는 전자의 방법은 AI 개발 초창기에 주된 방법론이었다. 하지만 규칙 기반 접근법은 언어 인지, 번역, 이미지 분류 등의 영역에서 수십 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더뎠고, 결국 1980년대 말에 이르러 ‘AI 겨울’을 맞고 말았다. 이는 기계에 모든 규칙과 패턴을 입력하여 기계가 제대로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AI에 가구류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규칙을 넣는다고 가정해 보자. 의자는 다리가 있지만 좌대에 붙어 있거나 아래를 천으로 감싸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경우는 예외라는 식의 모든 사항을 규칙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Brynjolfsson & McAfee, 2018). 번역을 예로 들면, 규칙 기반 접근은 프로그래머에게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고 그 효율성은 규칙과 단어 정의의 명확성에 크게 의존한다. 이것은 기계에 해당 언어의 모든 문법 규칙, 어휘, 숙어의 기원 등을 입력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단어는 사전적辭典的 정의로 축소될 수 없고 문법 규칙에는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Brugel.org, 2017).

로봇공학에서 인간과 같은 신체 능력을 가진 로봇을 만들기가 극히 어려운 이유는 흔히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의 이름을 딴 “모라벡의 역설”로 설명되어 왔다. “지능 검사나 서양장기에서 어른 수준의 성능을 발휘하는 컴퓨터를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지각이나 이동 능력 면에서 한 살짜리 아기만 한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만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현재의 로봇은 모라벡의 역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Brynjolfsson & McAfee, 2016)

로봇이 아이의 신체 능력처럼 쑥쑥 성장하는 것을 막았던 것이 모라벡의 역설이라면, 규칙 기반 AI의 실패를 불러온 것은 영국인 화학자이자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의 이름을 딴 “폴라니의 역설”이다. 사람이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쉽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폴라니는 이를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규칙 기반 AI는 인간의 ‘상식’적인 감각 기능이 해내는 일들을 기계에 규칙과 절차로 모두 입력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 좌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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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부딪힌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 브렉시트의 원인, 쟁점, 향방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브렉시트Brexit.” 영국이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하 ‘EU’)에서 떠난다는 말이다. 브렉시트 시행일은 두 차례 연기된 끝에 2019년 10월 31일까지로 정해졌다. 영국은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2019년 3월 29일이 조약에 따른 탈퇴 시행일이었다. 하지만 영국과 EU 간의 탈퇴 합의안이 영국 하원에서 세 차례나 부결되는 바람에 브렉시트 시행일이 연기되었다.

이제 영국은 10월 31일까지 EU와 다시 협상하여 새로운 탈퇴 합의안을 마련하여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합의 없는 브렉시트’, 곧 ‘노 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로 말미암아 영국과 EU의 관계가 단절되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

EU에서 탈퇴한다는 것은 경제 교류, 안보, 이민 등과 관련하여 EU차원의 규율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유럽 차원에서 단일 주권의 정치 공동체를 수립한다는 정치적 기획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가 급진전되어 세계적인 차원에서 국경을 초월한 경제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민족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정치 공동체를 실현한다는 대의로부터 이탈하겠다는 영국의 결정은 대세와 여망을 거스르는 돌출적인 행동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탈퇴 절차, 방식 그리고 이후의 새로운 관계를 둘러싸고 영국은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으며, 영국과 EU의 미래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세계경제의 안정이 위협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영국은 왜 EU 탈퇴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는가? 영국 국민 과반수는 왜 EU 탈퇴를 찬성했는가? 탈퇴 결의에도 불구하고 왜 탈퇴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가? 향후 브렉시트 문제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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