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1월 1일을 싫어한다”

선거법 개정 과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러려고, 그 난리를 벌였나?’ ‘이러려고 내가 ○○를 지지했나?’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법 개정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크리스마스 시기 무기 실험이 묘하게 비슷한 말처럼 들리는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도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물론 이러는 사이에도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온다.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이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오니, 안타깝더라도 매듭지을 것은 매듭짓고 새로운 희망을 품으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과 한반도의 상황을 보면,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절망을 느낀다.

인위적인 매듭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동기에 의해 시간의 흐름을 끊거나 잇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안토니오 그람시가 104년 전에 쓴 글을 권한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워지기를 원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일어날 때마다, 이게 나에게는 1월 1일이라고 느껴진다.

그게 내가 고정된 만기일처럼 도래하는 1월 1일을 싫어하는 이유다. 그런 1월 1일은 삶과 인간의 정신을 최종적으로 깔끔하게 맞춰진 균형, 미결 금액, 새로운 경영을 위한 예산 등이 있는 상업적 관심으로 바꾼다. 1월 1일은 우리로 하여금 삶과 정신의 지속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는 진지하게 한 해와 다음 해 사이에 단절이 있다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심하고, 지키지 못한 결심을 후회하고 등등. 이것이 일반적으로 날짜를 가지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대기가 역사의 근간이라고 말한다. 좋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모든 선량한 사람이 머릿속에 넣어 두고 있는 네다섯 개의 중요한 날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날짜는 역사에서 농간을 부린다. 1월 1일도 이 날짜에 속한다. 로마 역사의 1월 1일, 중세의 1월 1일, 현대의 1월 1일.

그리고 이 날짜는 너무나 강력하게 스며들어 있고 화석화되어, 가끔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삶은 752년에 시작되었고, 1490년이나 1492년은 인류가 뛰어넘은 거대한 산맥이 되어 갑자기 신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따라서 날짜는 역사가 동일하게 중요한, 변화하지 않는 노선에 따라, 갑작스러운 중단 없이 지속해서 펼쳐지는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난간이 된다. 마치 극장에서 필름이 찢겨 잠시 밝은 빛이 비치는 것과 같다.

이게 내가 1월 1일을 싫어하는 이유다. 나는 매일 아침이 내게는 1월 1일이기를 원한다. 매일 나에 대해 숙고하고 매일 나를 새롭게 하기를 원한다. 하루도 이렇게 하지 않는 날이 없게. 나는 내 휴식 시간을 스스로 정한다. 삶이 너무 격렬하다고 느끼거나, 좀 마음껏 즐겨 여기서 활력을 찾고자 할 때 말이다.

정신적으로 시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이 순간이 지나간 것과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매 순간이 새롭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법으로 정해진 집단적 리듬으로 축하해야 하는 날은 없다. 나의 고조할아버지 등등이 축하했기 때문에 우리도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껴야 한단다. 이는 불쾌한 일이다.

나는 또한 이런 이유로 사회주의를 기다리고 있다. 사회주의는 우리 정신에 울림이 없는 이 모든 날짜를 쓰레기통에 처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다른 날짜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최소한 우리 자신의 것이 될 것이며, 우리가 우리의 어리석은 조상에게서 아무런 유보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나는 1월 1일을 싫어한다」, 『전진』, 1916년 1월 1일. https://www.viewpointmag.com/2015/01/01/i-hate-new-years-day/에 실린 영어 번역본에서 번역.)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20년 01~02월호 통권7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

이한동부터 조국까지, 인사청문회로 드러난 ‘인싸’의 세상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우여곡절 끝에 임명 직전에야 열렸다. 여느냐 마느냐 다툼이 있는 와중에 집권당과 후보자는 국회 본청에서 청문회가 아닌 기자간담회를 열었고, 야당은 반박 기자간담회로 대응했으나 결국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하게 됐다. 법으로 정해진 기한에 쫓겨 열린 청문회였고, 여야 합의로 채택한 열한 명의 증인 가운데 한 명만 출석했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검찰이 후보자의 가족을 기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임명 안 하면 나쁜 선례”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 임명 이후에도 검찰 개혁과 관련하여 또는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와 관련하여 이어지는 논란, 또는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야당의 이러저러한 움직임 등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다. 이 글은 이제까지의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와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이 알게 된 것, 특히 조국 후보자 청문회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을 확인하려 할 뿐이다.

어쩌면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을 굳이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5공 청문회의 추억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회 청문회의 시작은 인사청문회가 아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에서 시작하기로 하자.

1988년 12월,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가 열렸다.

1987년 6월까지 이어진 국민의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민주정의당은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승리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치러진 1988년 4월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은 299석 가운데 125석을 얻었다. 일반적인 안건도 단독으로 통과시키기에는 25석 부족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른바 “여소 야대” 국회였다. 아울러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70석,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59석,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35석 등, 대통령 후보로서 경쟁했던 네 후보가 각각 이끄는 4당 체제의 국회였다.

서울올림픽이 몇 달 뒤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올림픽을 탈 없이 개최하려면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들에게 무언가를 양보해야 했고, 지난 정권이 저질렀던 일을 파헤치는 청문회의 개최가 합의됐다. 1988년 6월 15일 「 국회법」 개정으로 청문회는 법률적으로 준비를 마쳤다.

협상의 결과, 5공 청문회는 올림픽이 끝난 뒤 열렸다. 1988년 11월 2일에 시작된 청문회는 여당의 방해로 흐지부지되었지만, 1989년 12월에 다시 청문회가 열렸다. 그해 마지막 날 국회는 강원도의 한 사찰에 머물며 버티던 제5공화국의 유일한 대통령 전두환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냈다. 당시 초선의 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을 “청문회 스타”라 부르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혐의로 인해 여럿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실패의 정치가 아닌 변화의 정치를, 기본소득당이 지금 시작합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 상임대표

양희석 제공

● 모든 국민에게 월 60만 원 기본소득을!
● 빅데이터 시대, 디지털 공통부 배당으로 데이터 주권을!
● 1인 가구 600만 시대, 개인이 중심이 된 새로운 사회계약!
● 기후위기의 시대, 탄소배당으로 생태적 전환을!
● 자동화의 시대, 기본소득과 함께 주 30시간 노동 사회!

지난 9월 8일, 기본소득을 전면에 내건 한국 최초의 원 이슈One-Issue 정당,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출범하며 제시한 5대 핵심 정책입니다.

기본소득을 전면에 내건, 그것도 이름부터 기본소득을 내건 정당이 등장한 것은 2007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기본소득이 한국의 공직자 선거에 처음 소개된 지 12년 만입니다. 지난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본소득에 대해 알리고 정치 운동을 통해 기본소득을 실현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의 노력을 담아, 이제 ‘보편적 기본소득의 실현’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은 정당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소득당에 대한 논의는 올해 초부터 시작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는 점점 뚜렷해져만 가는데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속에서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모아 기본소득을 실현할 기본소득 중심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제안으로부터 계획은 시작되었습니다. 기존 진보정당 안에서 시작된 ‘기본소득당’에 대한 논의는 처음에는 몇 가지 제안에 그쳤지만, 당명을 바꾸는 단순한 논의가 아니라 점차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시대 인식과 대안 논쟁으로 점차 진지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면적이고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한 주도적인 대응과 대안 제시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들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채,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결정적 차이들을 확인하면서 기존의 정당 안에서 진행된 ‘기본소득당’을 둘러싼 첫 번째 논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도, 기본소득으로 타고 넘자

하지만 ‘기본소득당’이 제안되었던 배경인 새로운 변화의 파도는 여전히, 그리고 어느새 우리 발아래에 도달해 다리를 적시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파도에 쓸려 가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상황 인식과 적절한 대처 방법이 필요합니다. 들이치는 파도를 막고자 하는 완고한 방식으로는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유연하게 파도를 타고 넘는 것이야말로 현실 가능한 대안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당도한 파도는 ‘노동의 축소’, ‘일자리의 급감’, ‘이로 인한 소득의 감소’‘ 양극화 심화’ 등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 없는 사회’에 대한 공포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정치는 이러한 변화에 유연하고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낡은 방식의 해결책만을 고수해 왔습니다. 보수정치는 현재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에만 더 많은 지원과 규제 완화를 제공하려 하고 있습니다. 진보정치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못 본 척하며, (97년 IMF 이후 모든 정권이 다 추진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일자리 창출’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그저 ‘금배지’를 유지하기 위한 혹은 ‘금배지’를 달기 위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수, 진보, 기존의 정치, 그 어느 곳에도 우리의 삶은, 사회의 변화는, 미래의 대안은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완전 자동화 럭셔리 공산주의”의 전망과 쟁점

안효상 편집주간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가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비교할 만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대침체 직후 두드러진 것이 있다면,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배계급의 무능력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대안 세력의 전망 부재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결과는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일종의 반유토피아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쉽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은 일종의 “헤게모니 없는 지배” 상태다. 헤게모니 없는 지배 상태 속에서 2011년부터 대중의 반란이 점거에서부터 새로운 정당의 출현까지 이어졌고, 이는 기성 질서의 붕괴 조짐으로까지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때 기성 질서의 붕괴는 정치 질서의 변동을 넘어서는 더 큰 위기와 함께하고 있다. 이 위기가 아론 바스타니가 “완전 자동화 럭셔리 공산주의”를 말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바스타니는 인류가 다섯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기후변화 및 지구온난화의 파멸적인 결과, 자원 고갈(특히 에너지, 광물, 깨끗한 물의 부족), 사회고령화, 점점 “필요 없는 사람들unnecessariat”을 구성해 가는 지구적 빈민의 증가, 기술적 실업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새로운 기계 시대. 흥미로운 것은 이런 위기 속에서 바스타니는 묵시록적 미래가 아니라 매우 낙관적인 내일을 그려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완전 자동화 럭셔리 공산주의”다.

바스타니는 보통 20세기의 실패한 프로젝트를 가리키는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굳이 쓰는 이유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때 그가 공산주의라는 말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일이 없어지고 희소성이 풍요로 대체되며 노동과 여가가 서로 섞이게 되는 사회다.

이런 공산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프로젝트가 된 이유를 바스타니는 자신이 “세 번째 단절the Third Disruption”이라고 부르는 기술 변화에서 찾는다. 첫 번째 기술적 단절은 이른바 농업혁명이며, 두 번째 기술 단절이란 산업혁명을 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런 변화가 가져올 결과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 들어 있는 「기계에 관한 단편」에 의지하여 그려 내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맑스의 사고 가운데 크게 주목받지 않고 있는 측면은 자본주의가 기계로 노동을 대체하는 경향에 대해 그가 어떻게 인식했느냐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순으로 가득한 체제에서 이 체제를 잠재적 해방의 힘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

 

* Aaron Bastani,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 A Manifesto, 2019.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블레이드 러너》와 포스트휴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강준상*

《알파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 프로 기사들은 “인간이 두는 바둑 같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이전의 바둑 프로그램들은 기계 같았는데 《알파고》는 생각하는 인간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후, 세계 1위 커제까지 가볍게 이겼고, 《알파고》끼리 둔 50국의 기보를 남기고 사라졌다. 기사들은 《알파고》의 바둑을 공부하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바둑을 두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들은 학습해 온 방식을 벗어나지 않지만 《알파고》는 인간들이 두지 않는 창의적인, 아니 창의적으로 보이는 수들을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알파고》의 수를 보며 반성하고 새롭게 공부하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구절에서 어떤 영화 한 편이 떠오를지 모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

영화 속에서 리플리컨트(복제인간)를 만드는 회사의 회장 타이렐은 신형 복제인간(넥서스 6호)의 모토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라고 말한다. 이 모토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조금씩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의 핵심은 인간과 복제인간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는 것에 있으나, 영화가 진행되며 과연 인간은 인간적인지, 복제인간이 더 인간적인 건 아닌지, 그렇다면 인간과 복제인간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한지, 무엇보다 주인공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인간인지 복제인간인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2019년이었다. 올해가 2019년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 우리에게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세계가 도래하진 않았다. SF 영화 속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등은 아직 문화적 아이콘들일 뿐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과학기술은 그에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보이며, 로봇과 인공지능은 많은 부분 현실화되고 있다.

이 글은 《블레이드 러너》와 재작년에 만들어진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이하 《2049》) 두 편의 영화를 통해, 포스트휴먼 자체가 아니라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지, 또는 인간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징후를 살펴보고자 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첫 번째 컷과 두 번째 컷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첫 번째 컷과 두 번째 컷

 

*강준상
다큐멘터리 《달려라 휠체어, 달려라 박정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을 연출했으며, 공연연출작으로 《옹달샘》, 《꼴》, 《줄탁동시》, 《스퀘어 – 다시 지금 여기에서》 등이 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책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갈 세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하는 다소 진부한 물음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이 물음에 대해 “책이라고? 무인도에서? 뭐 하러?”(응우옌 후이 티엡) 이렇게 짐짓 딴죽을 걸 수도 있다. “이렇게 고약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스핑크스가 틀림없다.”(아멜리 노통브) 또는 “이 질문은 비인간적이다. 문학 유산은 대양의 방식으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파트리크 샤무아조) 이렇게 책 좋아하는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성경』과 셰익스피어는 제외해 달라는 단서를 달아도 기어코 이 두 가지를 목록에 포함시키는 작가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묵직한 책, 두껍고 오랫동안 명성을 누려온 책들에 치우친 목록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천일야화』 ……. 전 세계의 유명한 작가들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에 대한 답변이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에 실려 있다.

그런데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1712~1778)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루소의 대답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이 있다면 단 한 권이 있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가장 좋은 자연 교육 개론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 책은 나의 에밀이 읽게 될 최초의 책이 될 것이다. 그 책만이 오랫동안 그의 책꽂이에 꽂혀 있을 것이며, 그곳에서 품격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 도대체 그런 훌륭한 책은 어떤 책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일까, 플리니우스의 책일까, 뷔퐁의 책일까? 아니다. 그것은 『로빈슨 크루소』다. (장 자크 루소, 『에밀』, 329쪽)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에서도 『로빈슨 크루소』를 꼽은 작가들이 더러 있지만, “무인도에 가져갈 책”이라고 듣는 순간 대다수는 『로빈슨 크루소』를 우선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다람쥐”하면 “도토리”가 떠오르듯이. ‘무인도에서 홀로 사는 삶은 로빈슨 크루소의 삶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책은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읽는 책이다.’ 작가 대부분의 의식 속에는 이런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주저 없이 『로빈슨 크루소』를 첫째로 꼽았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하나 하나 척척 해결해 나가는 로빈슨 크루소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나도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고, 로빈슨 크루소처럼만 하면 못 살 것도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루소가 열두 살의 에밀이 읽어야 할 유일한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꼽은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워낙 재미있어서 에밀에게는 좋은 “오락거리”가 될 것이다. 거기에다 “교육거리”의 역할을 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로빈슨 크루소』를 읽는 에밀이 이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그가 그 책에 심취하여 끊임없이 저택과 염소와 식물에 대해 생각하며, 책에서가 아닌 사물을 바탕으로 하여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자세하게 배웠으면 한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다시 4월,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양지혜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공동대표

세월호 4주기, 기억이라는 투쟁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세월호 침몰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검토된 비용이었다. 정부는 경제적 효용을 위해 운영 제한 규제를 완화했고, 기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후한 선박을 부활시켰다. 이윤 앞에서 인간은 ‘감수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에게 펼쳐진 세계는 ‘깨어진 상식’의 세계였다. 우리는 책임지지 않는 국가를 보았다. 구조가 가능한 골든타임동안, 박근혜 씨는 침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박근혜 씨를 움직이게 한 것은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가 아니라 최측근인 최순실 씨의 연락이었다. 언론은 ‘전원 구출’ 오보를 낸 것으로도 모자라, 높은 조회 수의 특종을 위해 자극적이고 저열한 보도를 이어 갔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불안과 참혹함을 거름 삼아 보험 영업을 했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유가족의 투쟁은 정치권의 야합에 가로막혔다. 2014년 8월, 여야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특별법을 밀실에서 야합으로 처리했다. 2015년, 간신히 결성된 세월호참사특별진상조사위원회는 당시 여당 새누리당의 방해로 무력화되었다. 유족들이 간절히 외쳐 왔던 세월호 인양은 3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못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긴 시간을 차디찬 바다 앞에서 버텨야 했다.

2017년 4월, 홍준표를 제외한 대선 후보자들은 모두 안산으로 달려갔다. 후보들은 저마다 미수습자 수습, 진상 규명, 추모 공원 조성 등을 약속했다. 그간 특조위를 무력화하고 “세월호특별법보다 민생 문제가 우선”(2016년 4월 18일 국민의당 최고의원 회의)이라고 밝혀 온 정치세력들이 한 일이었다. 그렇게 세월호는 ‘기억’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4월, 우리는 한 치도 변하지 않은 세상을 마주한다. 1기 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한 황전원 위원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임명되었다. 황전원 위원이 조사를 거부했던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이 밝혀지며 진상 규명은 간신히 시작되었을 뿐이다. 모든 후보가 약속했던 추모 공원 조성은 지역 야당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정부합동분향소는 4주기 영결식을 끝으로 철거된다.

세월호는 조금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이 참사가 무엇인지조차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기억하는 일은 투쟁이었다. ‘순수한 추모’만을 허용하는 세력에 맞서,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라’라는 요구에 맞서, ‘추모가 변질되었다’라고 선전하는 보수 언론에 맞서, 우리는 기억의 투쟁을 이어 왔다. 청년정치공동체 ‘너머’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기억의 투쟁을 이어 가기 위해 안산을 방문했다. 교육청 옆으로 이관된 기억교실을 찾았고, 영결식이 끝나고 나면 철거될 정부합동분향소를 들렀다.

여느 때와 다르게 기억교실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억교실은 수학여행 전 날까지 피해자들이 머물었던 흔적, 피해자를 그리워하고 참사를 추모하는 이들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한 반에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희생자가 되었다. 방명록에는 유가족들의 방문 편지가 남아 있었다. 문장을 다 마무리하지 못한 채 눈물로 얼룩진 편지가 있었다. 기억교실은 한 번 이전했던 역사가 있다. 참사 이후, 더 이상 교실을 존속할 수 없다는 학교 입장에 따라 현재 교육청 옆 건물로 이전했다. 지난 2016년 교실이 이전될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유품을 옮기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책상과 걸상을 옮길 상자를 설치하기 위한 차량에는 “이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새 교실에는 유품을 놓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참사 이후에도 유가족들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기억교실을 둘러보며, 내가 세월호 참사를 처음 만난 순간을 생각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계급투쟁을 다룬 영화 《기생충》?

강준상*

한국 사회에서 영화 《기생충》은 그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이 된 듯하다. 많은 평론가가 《기생충》을 “계급투쟁”에 대한 영화로 소개하고 있고, 연예계 뉴스가 아닌 정치·사회면의 기사와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빈부 격차나 갑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기생충》을 언급한다.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비평적 의미에서건 대중적 의미에서건 성공한 작품은 맞다. 칸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그에 대해 이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사회에서 소통되는 방식은 좀 불편하다. 《기생충》이 계급투쟁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거기서, 그 불편함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이 글은 《기생충》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영화비평을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기생충》이 동시대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계급 문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집중해 몇 가지 지점들을 짚어 보고, 영화의 의미를 조금 다른 길로 비틀어 보고자 한다.

산수경석! 상징적이네!

기택(송강호) 가족의 희비극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기우(최우식)의 친구 민혁(박서준)의 방문이다. 민혁이 와서 처음 한 일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선물로 준 산수경석을 전달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이상한 컷이 하나 있다. 바로 산수경석의 시점 숏(산수경석의 시점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선물함이 열려 산수경석이 보이는 컷 바로 뒤에 그것을 바라보는 기우의 묘한 표정을 산수경석의 시점에서 극단적인 로우 앵글(낮은 곳에서 위를 향해 찍는 앵글)로 보여 준다.

함이 열리고 보이는 산수경석(왼쪽), 바로 다음 컷(오른쪽)은 산수경석 시점 숏으로 기우를 보여 준다

이것은 비상식적인 시점 숏이다. 사물의 시점 숏은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점 숏은 대부분 사람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 간혹 동물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으로 사용되지 사물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그러고 나서 평범한 앵글로 돌아가, 뒤의 민혁이 기택 가족들에게 산수경석을 가져온 이유를 설명하고 있을 때, 기우가 돌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야,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라고 말한다. 이후에도 그는 산수경석이 “상징적”이라는 말을 한 번 더 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물, 돌덩어리에 불과한 산수경석을 의인화라도 하듯 시점 숏을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기우가 산수경석을 보며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상징적”이라는 단어였다는 점. 이 두 가지가 이후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파생시키는지는 글의 후반부에서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상징”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상징symbol은 눈이나 귀 등으로 직접 지각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어떤 유사성에 의해서 구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징으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승인된 약속’으로서의 사회적 성격을 보통 포함하고 있다.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가 사용되는 것은 사회적인 약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비둘기에게 평화를 의미하는 어떤 과학적이거나 물질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는 본성으로서 그 관습, 그 제도 중에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출한다고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산수경석은 영화 《기생충》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무엇인가 추상적인 것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를 상징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강준상
다큐멘터리 《달려라 휠체어, 달려라 박정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을 연출했으며, 공연연출작으로 《옹달샘》, 《꼴》, 《줄탁동시》, 《스퀘어 – 다시 지금 여기에서》 등이 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청년사회상속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

이건민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1. 열며

“기본자산”(“기본재산”, “기본자본”, “사회적 지분 급여” 등으로도 불림)이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현금 지급이라는 특성은 “기본소득”과 공유하면서도 기본소득과는 달리 주 또는 월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대신 성인 초기에 일회성으로 목돈을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기본자산은 18세기 말 토머스 페인이 제안한 이래로 제임스 토빈, 윌리엄 클라인, 로버트 헤이브먼, 브루스 애커만과 앤 앨스톳 등 여러 사람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제안된 바 있으며(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86), 그리 크지 않은 액수이긴 하지만 영국, 스페인 등에서 실제로 도입된 바 있다(위의 책 제2장 후주 4). 기본자산이 추구하는 핵심 정책 목표는 바로 기회의 평등 제고와 자산 재분배로서, 그 재원으로는 부유세, 상속세, 증여세가 제안되고 있다. 성인 초기에 들어서는 청년들 사이에 기회의 평등을 높이기 위해 사회가 그들에게 일정 자산을 물려주자는 ‘사회적 상속(social inheritance)’이라는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부유세와 상속세와 증여세가 기본자산의 재원으로 제시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자산과 유사한 정책이 제출된 바 있다. 2017년 대선 때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청년사회상속제’라는 공약을 제안했다. 20세가 되는 청년 모두에게 1천만 원씩 자산을 지급한다는 정책 구상으로서, 상속세와 증여세 세입을 재원으로 고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 후에 심상정 의원은 이 공약을 정교하게 다듬고 나서 국회에 「청년사회상속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의안 번호: 12473, 발의 연월일: 2018. 3. 14, 발의자: 심상정 의원 등 12인). 법안의 내용을 보면, “국가가 20살(만 19살) 청년들에게 1천만 원의 기초자산을 지급하자”는 것으로, 그 취지는 “불평등 해소와 기회 균등이라는 상속·증여세의 본래 취지를 살려 그 세입 예산으로 국가가 청년들에게 사회 상속을 해 주자는 것”이다(엄지원, 2018. 3. 14). “2017년 기준으로 5조 4천억 원에 이르는 상속·증여세 재원이면 61만 명(2018년 기준)의 20살 청년에게 충분히 자산을 배당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엄지원, 2018. 3. 14).

발의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청년사회상속제(안)은 한동안 잠잠한 듯했으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기초자산제”(‘청년출발자본’ 정책)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2019, 7. 17; 이제형, 2019. 7. 22).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 서울시가 앞으로 청년기초자산제를 실시하게 될지 자체도, 그리고 만약 향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형태가 정의당에서 제안했던 청년사회상속제(안)과 얼마나 유사할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청년사회상속제(안)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이유는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기본자산과 유사한 제도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안되었다는 점에서 청년사회상속제(안)은 향후 서울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 혹은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 검토 단계에서 논의 테이블의 중심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청년사회상속제(안)을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 정책안에서 후퇴하는 형태가 아니라 전진하는 형태의 새로운 정책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새로운 정책(안)이 기존의 청년사회상속제(안)에서의 미세 조정 수준에 그치는 형태로 제안되든 아니면 그것을 대폭 수정한 형태로 제안되든, 청년사회상속제(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은 앞으로 제시될 특정 제안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절에서는 청년사회상속제(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3절에서는 청년사회상속제(안)에서 제안된 액수가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으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되는지를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몇 가지 함의를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평가 내용을 요약하고 정책적인 시사점을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 본고의 일부 내용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제작한 팟캐스트 《이럿타》에서 소개된 바 있음을 밝힌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캘리포니아 AB5와 플랫폼 노동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노동 중개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저에서 흔드는 법안이 지난 7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 고용위원회를 통과했다. AB5법(Assembly Bill 5)는 대다수 주문형(on-demand) 플랫폼 노동자(platform workers)*의 법률상 지위를 현재의 “독립 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에서 “피고용인(employees)”으로 분류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 법안이 현재와 같은 내용으로 최종 발효된다면, 우버(Uber), 리프트(Lyft), 태스크래빗(TaskRabbit) 등의 주문형 노동 중개 플랫폼은 적어도 캘리포니아에서는 존폐 기로에 설 전망이다.

AB5는 기업이 노무를 제공받을 때 ‘ABC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법률상 노무 제공자가 “피고용인”이 아니라 “독립 계약자”임을 인정한다. ABC 테스트는 2018년 4월 캘리포니아 대법원 판결**에 기초하고 있다. 이 판결은 미국 전역에 당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피고 회사 다이나멕스(Dynamex)가 회사의 직원으로 일해 오던 배달 기사들을 2004년 모두 독립 계약자로 전환하면서 직원들이 2005년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다이나멕스 판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1심 법원은 항소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들의 피고용인 지위를 인정하면서 2010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마르티네스 판결***에서 나온 “고용”에 관한 세가지 정의에 의존했다. 마르티네스 판결에서 대법원은 고용을 (1) 시간, 임금 또는 노동조건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2) 노동을 감내하도록 하거나 허용하며, (3) 계약을 맺어 보통법의 고용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와 같은 포괄적 정의에 따를 경우 원고들의 피고용인 지위가 인정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에 대해 원고 다이나멕스는 마르티네스 판결에서 나온 정의 (2)와 (3)은 누가 피고용인의 ‘공동’ 고용주(joint employer)인가를 정하는 데 적용될 뿐 원고들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피고는 그 대신 정의 (2)와 (3)은 보렐로 테스트****로 고용관계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데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SheppardMullin, 2018년 5월 1일).

보렐로 테스트는 고용관계의 존부를 열두 가지 지표를 종합하여 제시한다. 그러한 지표로는 △ 노무 제공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해당 회사의 비즈니스와 구별되는지, △ 수행 업무의 수단, 도구, 장소를 회사와 노무 제공자 중에서 누가 조달하는지, △ 제공되는 노무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지, △ 노무가 회사의 지시에 의해 수행되는지 또는 지시나 감독 없이 전문가에 의해 수행되는지, △보수의 지불 방식이 무엇인지, △노동 수행의 방식이나 수단의 측면에서 회사가 통제권을 갖는지 등이 있다(K. Van den Bergh, 2019).

보렐로 테스트는 이렇게 열두 가지 지표를 모두 고려하지만, 이러한 지표들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정보는 수행되는 노무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행사하느냐로 모아진다. 보렐로 테스트는 다이나멕스 판결 이전까지 고용관계의 존부를 다투는 많은 소송에서 인용돼 왔다. 확실히 마르티네스 판결에서 수립된 고용에 관한 정의는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정의 (2)와 정의 (3)을 고용관계 분석에 적용할 경우 원고의 피고용인 지위 주장이 수용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추정컨대, 피고 다이나멕스는 원고와의 분쟁 요점을 수행되는 노무에 대한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로 좁히기를 원했고, 이것이 정의 (2)와 (3)에 의한 고용관계 분석에 보렐로 테스트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마르티네스 판결이 공동 고용주 분석에만 제한되어야 한다는 피고의 주장을 기각하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worker”는 자주 “노동자”로 번역되지만 영어권에서는 맥락에 따라 그저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사업자 간 계약에 의해 노무를 제공하는 “worker”는 “독립 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 또는 “자영업자(elf-employed)”를 의미하고, 고용계약에 의한 “worker”는 “피고용인(employees)”을 의미한다. 고용계약에 의한 “worker”에 상응하는 보편적인 한국어 용어는 “임금근로자”나 “임금노동자”다.

** Dynamex Operations West, Inc. vs. Superior Court of Los Angeles(2018).

*** Martinez vs. Combs, 49 Cal. 4th 35, 64(2010).

**** S. G. Borello & Sons, Inc. vs. Department of Industrial Relations, 48 Cal. 3d 341(1989) 판결에서 노동자성 인정과 관련해 수립한 원칙이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