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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비극일 뿐만 아니라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4월 말 현재 한국의 확진자는 1만 명이 넘으며 사망자도 250명 가까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확진자는 300만 명이 넘고 사망자도 20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3월 초에 나사NASA가 발표한 것에 따르면, 초기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중국의 경우 대기오염 정도가 전년도에 비해 10∼30% 정도 낮아졌다. 이는 산업 활동이 15∼40% 정도 감소하고 이에 따라 석탄과 석유 등 탄소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 결과다. 이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앞바다가 깨끗해져 돌고래가 돌아왔다거나 미국의 대도시에 코요테가 나타났다는 등의 뉴스도 전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대기오염에 기인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렇듯 재난은 고통이고 비극이지만,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류의 고통과 진전의 오랜 원천이었던 희망을 불러낸다. 하지만 그 희망이 근거를 가지려면 이 사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이 필요할 것이다.

바이러스의 창궐은 이미 많은 사람이 예측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인지능력의 진화 등 복잡성을 추구하는 진화 전략을 택한 인간과 그 인간에 기생하면서 빠른 속도로 복제할 수 있기 위해 단순성을 추구하는 진화 전략을 택한 바이러스가 일대 격돌을 벌이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바이러스가 전적으로 유리한 형국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인간의 생태적 영역 내에서는 지배적이지만 인간의 영역과 중첩되어 있으면서 전혀 다른 규칙에 의해 작동하는 다른 수많은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구 건강planetary health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이러스의 창궐은 생물다양성을 파괴한 인간 활동의 결과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역사』를 쓴 데이비드 쾀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나무를 베었다. 우리는 동물을 죽이거나 우리에 가두었고 시장에 보냈다. 우리는 생태계를 파괴했고, 우리는 바이러스들이 자연적 숙주에서 벗어나도록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보면 자연이 우리를 위협하는 원천이 아니라 진짜로 해를 끼치는 것은 인간의 행위일 것이다. 이 속에서 분명한 것은 언제일지는 모르나 팬데믹이 확실히 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인간의 공통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다. 인간 집단을 나누고 있는 다양한 분할선이 있고 이 선을 따라 이루어지는 차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공통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종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침투하고 있고 공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인식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설사 모두가 이런 인식을 지닌다 하더라도, 기존의 지배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충돌 없이 미끄럽게 “뉴노멀”로 이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인식을 지니지 못하거나 그런 인식을 지녔음에도 이런 사태를 낳은 것은 바로 지배적인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적인 질서를 가리키는 이름은 그 질서의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자본주의, 산업주의, 소비주의, 진보주의 등등. 그렇다면 그 반대편, 즉 인간의 공통성과 종들의 공생을 승인할 뿐만 아니라 실현할 수 있는 질서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가? 이름을 붙이는 일은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자 주체를 부르는 일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이런 점에서 임시적인 이름일 것이고, 그다음 시대의 이름을 위한 쟁투가 벌어지는 이름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20년 05월호 통권78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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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정치의 관계

박기순 충북대 철학과 교수

 

1. 정치는 윤리에 기초해야 하는가?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대화편인 『국가』는 제목이 알려주는 것처럼 국가의 본성을 탐구하고 논의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런데 이 물음은 그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제기된다. 왜냐하면 국가는 모름지기 정의의 원칙에 의해 통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의는 국가의 본성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의롭지 않은 나라는 나라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일까? 달리 말하면 국가는 무엇의 실현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 플라톤에 따르면 그것은 ‘전체의 좋음’이다. 일부 구성원에게만 좋은 어떤 것을 국가가 실천한다면 그 국가는 정의로운 국가가 아니다. 제도를 마련하고 법을 설립할 때 원칙이 되어야 하는 것은 모두의 좋음이다. 물론 모두에게 좋은 정책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두고 다양한 사람 혹은 집단 사이의 논쟁과 불화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 주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다. 그의 철학 전체는 바로 이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근본 동기로 해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면 결코 회의할 수 없는 옳고 그름의 절대적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기준과 관련하여 논쟁이나 불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 기준을 논의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그 일에 끼어들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말의 과잉으로, 말할 자격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의한 불필요한 말들의 잔치로 규정한다.

옳은 것은 인식될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한 그것은 불화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플라톤은 굳게 믿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원칙 혹은 사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이것이 플라톤의 철학 사상을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플라톤의 이러한 생각을 먼 과거의 것으로만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생각이 다양한 모습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희생자’ 혹은‘ 절대적 약자’의 프레임이 그것이다. ‘정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누군가가 ‘정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회의 약자나 희생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답한다면, 그는 본질적으로 플라톤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 플라톤의 논리를 “윤리주의”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실현해야 할 어떤 절대적 윤리가 있다고 가정되는 한에서 정치의 본질은 윤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윤리주의 정치론은 정치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이 정치의 봉쇄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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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화폐론이 제기되는 이유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2008년 이후 여러 선진 자본주의국가가 실시하고 있는 양적완화 정책은 경제정책과 이론 부분에서 다양한 새로운 제안과 이론적 시도를 촉발했다. 72호(2019년 10월호 「현대화폐이론의 실제적 함의」)에서는 정부재정에 의한 완전고용 보장을 주장하는 “현대화폐이론”에 대해 살펴보았고, 지난 호에서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하여 모두에게 일시적으로 돈을 지급하거나 공적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성하자는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론”을 살펴보았다(2019년 12월호 「국가발권력을 활용한 경제정책 대안들」). 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서 간략히 소개한 바 있는 “주권화폐론”을 더 상세히 검토해 보기로 한다.

오늘날에는 중앙은행이 법정화폐를 창조하긴 하지만 유통 중인 화폐의 대부분은 상업은행이 대출을 통해 공급한 은행화폐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은 경제 내의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법정통화를 공급하고 상업은행은 대출을 통해 은행화폐를 공급한다. 주권화폐론은 상업은행의 화폐창조 기능을 없애고 국가가 발행한 법정화폐가 유통화폐의 역할을 전담하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주권화폐론이 제시하는 새로운 화폐제도에서는 국가가 재정지출이나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화폐를 경제에 공급한다.

1. 주권화폐란?

먼저 용어부터 정의하자. ‘주권화폐’란 법정통화를 말한다. 그리고 ‘법정통화’란 세금을 내거나 민간에서 부채를 청산할 때 국가가 그 수단으로 인정해 주는 국가가 직접 발행한 화폐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현재 널리 사용되는 화폐는 상업은행에 예금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 ‘은행화폐’다. 가계와 기업은 상업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그 돈을 요구불예금계좌에 넣어 두고 수표 발행이나 계좌이체를 통해 지불 행위를 할 수 있다. 은행화폐도 세금을 내거나 부채를 청산하는 데 사용되지만, 법적으로는 법정통화에 대한 청구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날 주권통화로는 상업은행의 지급준비금으로 불리는 비현금성 중앙은행화폐와 현금(지폐와 주화)을 들 수 있다.

현재 유통화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은행화폐다. 유로존의 경우 은행화폐가 82%, 주화가 1%, 지폐가 17%를 차지한다. 그런데 은행화폐는 상업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 항목에 기록되어 있는 안전하지 못한 화폐다. 은행화폐는 은행이 파산하면 정부가 예금보험을 통해 보장해 주더라도 그 자체는 일단 사라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지난 그리스 위기 때 그리스 사람들은 상당 기간 은행으로부터 돈을 인출할 수 없었다.

주권화폐론은 현재의 은행화폐를 법정통화로 모두 대체하자는 개혁안이다. 은행화폐를 법정통화로 대체하려면 은행의 신용창조 기능을 없애야 한다. 은행이 현재와 같이 예금의 일부만을 지급준비금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대출하여 은행화폐를 창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주권화폐론의 전제다. 그리고 주권화폐론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정부가 화폐를 발행할 것을 주장한다.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현재의 중앙은행 제도가 정비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전형적인 화폐발행 방식이었다. 근대로 들어와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때 정부지폐를 발행했으며, 케네디 대통령도 정부지폐 발행을 검토했다. 현재에도 미국에서는 재무부가 주화를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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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뉴딜의 지향과 쟁점

안효상 편집주간

 

주기적인, 게다가 더욱더 날카로워지는 과학자들의 경고, 그레타 툰베리와 선 라이즈 운동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 미국 대통령 선거. 이런 계기들보다 기후위기에 대한 긴급한 대응을 촉구하기에 좋은 조건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타임』이 툰베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에서 예감할 수 있듯이, 사후적으로 2019년은 인류가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한 원년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러한 행동은 현재 “녹색 뉴딜”이라는 슬로건이자 계획으로 등장하고 있다.

녹색 뉴딜은 그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기후위기에 대한 집단적, 특히 국가적 대처와 환경적 대응뿐만 아니라 경제적 전환, 제대로 된 일자리의 제공, 막대한 공공 인프라 투자 등도 내용으로 담고 있다. 또한 뉴딜을 경과하면서 코포라티즘 체제가 등장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녹색 뉴딜은 집단적 행위자의 조직화를 통한 새로운 사회 협약의 구성을 전제이자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유비類比는 상이점이 드러나지 않게 가릴 수 있으며, 교훈 또한 상이점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을 경우 희망이나 절망의 맹목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제출된 몇 가지 녹색 뉴딜 계획의 쟁점을 제대로 드러내는 일은 희망과 절망 사이의 좁은 오솔길을 걷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된다.

2019년 미국의 녹색 뉴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녹색 뉴딜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지난 2월 5일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녹색 뉴딜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연방정부의 의무를 인정하는 결의안」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결의안은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녹색 뉴딜의 기본 방향과 원칙을 추상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담고 있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논의의 준거점이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에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지구온난화 1.5도에 관한 특별 보고서」와 11월에 나온 「제4차 국가 기후 평가」에 기초한 이 결의안은 인간 행위가 지난 세기 기후변화의 지배적인 원인이며, 그 기후변화가 해수면 상승, 산불 발생 증가, 심각한 폭풍, 가뭄, 기타 극심한 기상 악화 사태 등을 일으켜 인간의 삶, 건강한 공동체, 주요 인프라를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기준 1.5도로 억제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는 2030년까지 2010년 기준 온실가스를 40∼60% 감축하는 것이며 2050년까지에는 온실가스 배출 “순純제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미국이 현재 경험하고 있다고 보이는 위와 연관된 몇 가지 위기를 언급한다. 그것은 미국 인구의 상당수가 깨끗한 공기와 물, 건강한 음식, 적절한 의료, 주택, 교통, 교육 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40년 동안 지속된 경제적 침체, 탈산업화, 반노동 정책으로 인해 임금이 정체되고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화했다는 것, 1920년 이래 소득 불평등이 가장 커졌다는 것 등이다. 게다가 기후변화, 오염, 환경파괴는 여러 집단에 대해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체계적인 인종적, 지역적,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불의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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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본소득제 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대한 반박

윤형중 LAB2050 정책팀장

 

1. 들어가며

이건민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회원은 『시대』 2019년 12월호(제74호)에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이하 “「비판적 평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고, 그 주요 내용을 12월 5일에 공개된 팟캐스트 《이럿타》의 151회에서 소개한 바 있다. 비판의 대상이 된 “국민기본소득제”는 지난 10월 28일 LAB2050이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이하 “『국민기본소득제』”)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서 소개됐다.

LAB2050이 제안한 『국민기본소득제』란 기본소득의 재정 모형 가운데 하나다. 이건민 연구원이 적시했듯,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 재정 모형은 그동안 강남훈 한신대 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경기도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제시된 바 있었고(2009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곽노완, 이수봉, 2009; 2012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4; 2018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5; 강남훈, 2017; 최근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9a: 12∼13장),『 국민기본소득제』는 그 연장선에서 제출된 재정 모형이다. 필자는 『국민기본소득제』를 제안한 보고서의 공동 저자 가운데 한 명이다.

재정 모형은 기본소득의 지급을 가능하게 하는 재원 마련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따라서 재정 모형은 기본소득을 정책화하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뚜렷해진다. 세금 제도의 신설 및 개편, 재정 구조조정의 방식 등 재원 마련 방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러 정체성을 지닌 재정 모형이 등장할 수 있다. 재원 마련 방안이 구체적이고 정체성이 뚜렷한 여러 재정 모형이 등장할수록, 기본소득 담론이 풍부해지고 국민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으며, 또한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건민 연구원이 「비판적 평가」에서 도출한 정책적 시사점 가운데 첫 번째로 제시한 다음과 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다양한 기본소득 재정 모형이 제출될 필요가 있다. 여러 재정 모형 간 상호 비교와 평가를 통해서, 우리는 실현 가능하고도 바람직한,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그리고 노동, 젠더, 생태 등 여러 차원에서 해방적인 효과를 낳는 기본소득 재정 모형의 상을 더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비판적 평가」와 같은 성실한 비판이 기본소득 담론을 풍성하게 하고 지적으로 정직한 토론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하고, 이 반박 역시 같은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됐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2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의 주요 내용과 「비판적 평가」의 주요 비판을 소개하고, 제3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가 만들어진 취지를 다룬다. 이 내용이 비판에 대한 반박에 앞서 나오는 이유도 제시될 것이다. 제4절에서는 「비판적 평가」의 주요 비판에 대한 재반박이 이뤄지고, 제5절에는 비판에 대한 제언과 새로운 토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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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는 과연 말발로 강동 6주를 얻었을까?

신석준신의한술TV

 

꿇어라! vs. 배 째라!

993년 음력 윤 10월 3일, 양력으로는 11월 19일. 서희는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 진영으로 갑니다. 고려를 침공한 거란군과 협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란군과 고려군은 석 달 동안 1승 1패를 주고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소손녕은 쉽게 서희를 만나 주지 않습니다. 기 싸움이죠. 사서에는 “나는 큰 나라(요나라)의 귀한 사람이니, 마땅히 뜰에서 절해야 한다”라고 점잖게 적혀 있지만, 한마디로 “꿇어라!”입니다.

그러나 서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신하가 군주에게 아래에서 절을 올리는 것은 예의지만, 두 나라의 대신이 서로 만나는데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소? ( 『고려사』, 「서희열전」)

본격 협상 전에 상견례 절차를 협의하기 위해 두세 번이나 왔다갔다 했지만, 소손녕은 완강합니다. 그러자 서희가 성질을 내고 누워 버립니다.

서희가 노하여 돌아와 관사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다. (『고려사』, 「서희 열전」)

“배 째라”였습니다. 배 째라고 드러누운 사람을 제압하려면, 진짜로 배를 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서희 배를 진짜로 쨀 생각이 없었던 소손녕은 결국 기 싸움에서 밀리고 맙니다.

이후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외교의 달인 서희가 기막힌 언변으로 싸움도 없이 80만 대군을 물러가게 했고 강동 6주까지 덤으로 얻었다고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서희는 무슨 말을 했기에 거란군을 물러가게 하고 영토까지 확장했을까요? 소손녕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협박을 일삼다가 왜 순순히 철군했을까요? 땅까지 내주면서 말입니다. 당시 회담의 당사자였던 서희와 소손녕의 이력을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진실에 접근해 보겠습니다.

먼저 서희입니다.

서씨네 염윤廉允이

『고려사』의 「서희 열전」에는 서희의 이력뿐 아니라, 서희의 할아버지, 자손들 이야기를 상당히 자세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일단 눈에 띄는 사람은 서희의 할아버지 서신일徐神逸입니다.

서신일은 시골에 살았다. 사슴이 도망하여 그에게 의탁하므로 서신일이 화살을 뽑고 숨겨 주었다. 사냥꾼이 쫓아왔으나 잡지 못하고 돌아갔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감사하며 말하기를,“ 사슴은 바로 내아들입니다. 공 덕분에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하겠습니다.”라 하였다. 서신일은 나이 80에 서필을 낳았다. 서필, 서희, 서눌이 과연 이어서 재상이 되었다. (『고려사』, 「서희 열전」)

이제현의 『역옹패설』(1342)에도 거의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아마 만들어진 이야기겠지요. 요즘도 집안마다 ‘우리 집안 시조 ○○ 할아버지는 말여∼’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재미는 있는데 그냥 믿어 주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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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는 대중의 폭력을 선동하는 영화?

강준상*

화장실로 피신한 이후 갑자기 화면 밖 음악을 화면 안 음악인 것처럼 들으며 춤을 추는 아서

 

영화 《조커》는 한국에서 5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하고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간판을 내렸다. ‘엘사’의 폭풍이 몰려왔기 때문에 2019년 11월 마지막 주 극장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영화는 외국 영화이든 한국 영화이든 예매율 1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조커》는 유튜브에서 최근까지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였으나 이제 더 관심을 끌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엘사가 극장가의 모든 것을 잠식할 듯하다.

그런데도 굳이 《조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조커》를 둘러싼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 때문이다. ‘영화와 현실의 관계.’ 《조커》는 개봉과 함께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나뉘었다. 미국의 일부 극장에서는 혼자 온 남성 관객을 몸수색하기까지 했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의 주요 극장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되기도 하여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영화는 유럽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는 황금사자상을 받았으나, 미국 주요 언론은 특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반反트럼프 진영의 언론을 중심으로 이 영화에 악평을 쏟아 냈다.

무게감 없이 가볍기만 하다. 재미없을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조차 없다. 그게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농담인가? ― 『뉴욕타임스』

만약 당신이 현실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조커》를 보시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것을 추천한다. ― 『월스트리트 저널』

《조커》는 유감스럽게도 현실적인 악몽만큼이나 당신에게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 『시카고 선 타임스』

총기류 소지가 허용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와 같은 격렬한 반응은 없었으나, 일부에서 “일베들이 날뛰는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는 평가가 있었고,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아서(조커)가 참조하고 있는 사람들인 인셀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라며 미국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강준상
다큐멘터리 《달려라 휠체어, 달려라 박정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을 연출했으며, 공연연출작으로 《옹달샘》, 《꼴》, 《줄탁동시》, 《스퀘어 – 다시 지금 여기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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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

이건민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1. 들어가며

지난 10월 28일 LAB2050은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이원재, 윤형중, 이상민, 이승주, 2019)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발행하고, 같은 날 오후 2시 공공그라운드 001스테이지에서 연구 결과 보고회를 개최하였다(김수연, 2019. 10. 30).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여러 주요 언론매체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필자가 알고 있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기본소득 재정 모형은 강남훈 한신대 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경기도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를 중심으로 몇 차례 제출되었던 것이 전부였다(2009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곽노완, 이수봉, 2009; 2012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4; 2018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5; 강남훈, 2017; 최근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9a: 12~13장). 그러한 점에서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며, 강남훈 교수의 최신 재정 모형(강남훈, 2019a)과의 비교 역시 유의미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의 문제의식과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3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어떠한 ‘솔루션’을 제출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어떠한 ‘인사이트’를 주는지 살펴본다. 4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 열 가지를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2. ‘국민기본소득제’의 문제의식과 주요 내용 요약

‘국민기본소득제’ 보고서의 저자들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1장).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으로 인해, 1) 지위 경쟁과 사회적 갈등이 악화되어 신뢰를 비롯한 사회적 자본이 낮아지고 다차원적 빈곤이 심화되며, 2) 소득이 불안정해지고 가계소비를 비롯한 내수가 부진해지며, 3) 저출생 현상이 초래되고 부양 부담과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세 가지 요소로 인해 경제와 사회의 역동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핵심 문제이며,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도를 낮춤과 동시에 모두에게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분배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제와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분배 제도가 바로 기본소득일진대, LAB2050은 우리나라에서 실현가능한 하나의 기본소득 모형으로 ‘국민기본소득제’를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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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 썼을까?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1937년 블랑키의 저서 『유럽 정치경제의 역사』의 표지와 “산업혁명”(밑줄은 이 글의 필자가 그은 것)이 등장하는 제2권 209쪽.

 

사물인터넷, 나노기술,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3D 프린터. 놀라운 기술 발전으로 인류의 삶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귀찮거나 위험한 일을 쉽고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노동의 종말까지는 몰라도 임금노동의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엄청난 기술혁신을 놓고 조금은 희한한 논쟁이 벌어졌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바프 의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많은 기업은 물론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 정부는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대응에 분주하다. 한편, 한국에서 “종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제러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 『한계비용 제로 사회』 같은 책에서 현재의 변화와 혁신은 “제3차 산업혁명의 연장”일 뿐이라고 본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한 토론 행사에 영상으로 보낸 기조 발제에서 리프킨은 제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것은 사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상업적 목적에 휘둘린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여러 이유로 “산업혁명”이 관심이다.

이 글은 최근의 변화와 그에 대한 평가나 대응책을 다루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일과 관련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증기기관의 등장, 여러 기계의 발명, 가내공업을 무너뜨린 대규모 작업장의 등장, 철도 부설과 열차 운행 따위에서 촉발되어 대체로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일어난 변화를 흔히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그러한 변화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은 어떤 이유이며 그러한 변화에 맞닥뜨려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다. 현재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일말의 단서를 지난 역사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예컨대 “최초의 산업혁명에 인류는어떻게 대처하려 했나?”가 처음에 생각한 주제였다.

안타깝게도 이 글은 그 주제에까지 가지 못했다.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또는 매우 일찍) 사용한 사람(들)이 누구였으며 그 사람(들)은 어떤 맥락에서 그 용어를 사용했는지를 부족하게나마 밝혔을 뿐이다.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면 이 글의 결론은 뒤집힐 것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너무도 많았다.

따라서 이 글은 연구 결과가 담긴 학술 논문과는 거리가 멀다. ‘좌충우돌 검색 과정을 약간 편집한 녹화 중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기원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 바로잡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러 인물과 저작이 등장하고 인용문도 많지만, 독자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냥 중계를 시청하면 된다. 필자가 겪은 좌충우돌을 감상하며 목적지를 향해 떠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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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한일 연대 – 2019

이경자 반핵지구인행동(반지) 회원

AWC(‘미일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 공동행동’) 한국위원회와 일본연락회의는 정기적인 연대를 통해 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후쿠시마 방사능오염수와 도쿄올림픽에 대한 현황을 공유하고 한 걸음 진전할 수 있는 연대를 모색하자는 취지로 연대 행동을 마련했다.

“후쿠시마, 끝나지 않은 인재. 국경을 넘어 연대하라!”
“福島, 終わらない人災, 国境を越えて連帯せよ!”
“NO MORE FUKUSHIMA!”

2019년 11월 10일 저녁

갑작스레 장대비가 쏟아졌다. 짧지만 꽉 짜인 일정을 앞두고 걱정이 많아졌다. 멀리 일본에서 달려온 이들이 무사히 1박 2일의 일정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마중을 나갔다. 서울을 거쳐 대전에 도착한 일행들과 서툰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며 밀린 얘기들을 쏟아 냈다. 피곤한데도 기자회견에 쓸 피켓을 만들고 강연 자료를 수정하는 60∼70대 활동가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몇 년 전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던 ‘원전 필요 없다. 후쿠시마의 여성들原発いらない 福島の女たち’에서 활동하는 구로다세츠코黒田節子(69세) 선생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될 후쿠시마의 현재가 너무 궁금했다. 그 단체는 후쿠시마 핵 참사 직후인 2011년 10월과 오오이핵발전소를 재가동하려던 2012년 6월 각각 도쿄 경제산업성과 수상 관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으며, 매년 3월 11일 집회와 시위를 이어 가고 있고, 1년 동안 활동한 사진으로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끔찍했던 그때 일을 되돌아보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 쓰나미가 덮쳤고, 핵발전소에 전원이 끊기면서 1호기가 폭발했다. 4일 만에 2, 3, 4호기도 폭발했고,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뿜어져 나왔다. 일본 열도는 공포에 휩싸였다.

후쿠시마 전역에 걸쳐 피난 명령이 내려졌고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핵발전소 사고였다. 지진이 잦고, 그래서 어느 나라보다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여 안전 민감도가 높을 것이라 믿었던 일본의 민낯은 매우 처참했다.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체계도 없었고 훈련도 하지 않았다.” 당시 총리 간 나오토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 어디선가 반드시 일어난다.”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고 칭송되던 원자력–핵에너지의 위험하고도 무시무시한 실상을 목도하게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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