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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쟁을 다룬 영화 《기생충》?

강준상*

한국 사회에서 영화 《기생충》은 그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이 된 듯하다. 많은 평론가가 《기생충》을 “계급투쟁”에 대한 영화로 소개하고 있고, 연예계 뉴스가 아닌 정치·사회면의 기사와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빈부 격차나 갑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기생충》을 언급한다.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비평적 의미에서건 대중적 의미에서건 성공한 작품은 맞다. 칸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그에 대해 이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사회에서 소통되는 방식은 좀 불편하다. 《기생충》이 계급투쟁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거기서, 그 불편함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이 글은 《기생충》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영화비평을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기생충》이 동시대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계급 문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집중해 몇 가지 지점들을 짚어 보고, 영화의 의미를 조금 다른 길로 비틀어 보고자 한다.

산수경석! 상징적이네!

기택(송강호) 가족의 희비극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기우(최우식)의 친구 민혁(박서준)의 방문이다. 민혁이 와서 처음 한 일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선물로 준 산수경석을 전달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이상한 컷이 하나 있다. 바로 산수경석의 시점 숏(산수경석의 시점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선물함이 열려 산수경석이 보이는 컷 바로 뒤에 그것을 바라보는 기우의 묘한 표정을 산수경석의 시점에서 극단적인 로우 앵글(낮은 곳에서 위를 향해 찍는 앵글)로 보여 준다.

함이 열리고 보이는 산수경석(왼쪽), 바로 다음 컷(오른쪽)은 산수경석 시점 숏으로 기우를 보여 준다

이것은 비상식적인 시점 숏이다. 사물의 시점 숏은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점 숏은 대부분 사람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 간혹 동물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으로 사용되지 사물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그러고 나서 평범한 앵글로 돌아가, 뒤의 민혁이 기택 가족들에게 산수경석을 가져온 이유를 설명하고 있을 때, 기우가 돌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야,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라고 말한다. 이후에도 그는 산수경석이 “상징적”이라는 말을 한 번 더 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물, 돌덩어리에 불과한 산수경석을 의인화라도 하듯 시점 숏을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기우가 산수경석을 보며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상징적”이라는 단어였다는 점. 이 두 가지가 이후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파생시키는지는 글의 후반부에서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상징”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상징symbol은 눈이나 귀 등으로 직접 지각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어떤 유사성에 의해서 구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징으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승인된 약속’으로서의 사회적 성격을 보통 포함하고 있다.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가 사용되는 것은 사회적인 약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비둘기에게 평화를 의미하는 어떤 과학적이거나 물질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는 본성으로서 그 관습, 그 제도 중에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출한다고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산수경석은 영화 《기생충》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무엇인가 추상적인 것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를 상징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강준상
다큐멘터리 《달려라 휠체어, 달려라 박정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을 연출했으며, 공연연출작으로 《옹달샘》, 《꼴》, 《줄탁동시》, 《스퀘어 – 다시 지금 여기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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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회상속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

이건민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1. 열며

“기본자산”(“기본재산”, “기본자본”, “사회적 지분 급여” 등으로도 불림)이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현금 지급이라는 특성은 “기본소득”과 공유하면서도 기본소득과는 달리 주 또는 월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대신 성인 초기에 일회성으로 목돈을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기본자산은 18세기 말 토머스 페인이 제안한 이래로 제임스 토빈, 윌리엄 클라인, 로버트 헤이브먼, 브루스 애커만과 앤 앨스톳 등 여러 사람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제안된 바 있으며(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86), 그리 크지 않은 액수이긴 하지만 영국, 스페인 등에서 실제로 도입된 바 있다(위의 책 제2장 후주 4). 기본자산이 추구하는 핵심 정책 목표는 바로 기회의 평등 제고와 자산 재분배로서, 그 재원으로는 부유세, 상속세, 증여세가 제안되고 있다. 성인 초기에 들어서는 청년들 사이에 기회의 평등을 높이기 위해 사회가 그들에게 일정 자산을 물려주자는 ‘사회적 상속(social inheritance)’이라는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부유세와 상속세와 증여세가 기본자산의 재원으로 제시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자산과 유사한 정책이 제출된 바 있다. 2017년 대선 때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청년사회상속제’라는 공약을 제안했다. 20세가 되는 청년 모두에게 1천만 원씩 자산을 지급한다는 정책 구상으로서, 상속세와 증여세 세입을 재원으로 고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 후에 심상정 의원은 이 공약을 정교하게 다듬고 나서 국회에 「청년사회상속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의안 번호: 12473, 발의 연월일: 2018. 3. 14, 발의자: 심상정 의원 등 12인). 법안의 내용을 보면, “국가가 20살(만 19살) 청년들에게 1천만 원의 기초자산을 지급하자”는 것으로, 그 취지는 “불평등 해소와 기회 균등이라는 상속·증여세의 본래 취지를 살려 그 세입 예산으로 국가가 청년들에게 사회 상속을 해 주자는 것”이다(엄지원, 2018. 3. 14). “2017년 기준으로 5조 4천억 원에 이르는 상속·증여세 재원이면 61만 명(2018년 기준)의 20살 청년에게 충분히 자산을 배당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엄지원, 2018. 3. 14).

발의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청년사회상속제(안)은 한동안 잠잠한 듯했으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기초자산제”(‘청년출발자본’ 정책)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2019, 7. 17; 이제형, 2019. 7. 22).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 서울시가 앞으로 청년기초자산제를 실시하게 될지 자체도, 그리고 만약 향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형태가 정의당에서 제안했던 청년사회상속제(안)과 얼마나 유사할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청년사회상속제(안)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이유는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기본자산과 유사한 제도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안되었다는 점에서 청년사회상속제(안)은 향후 서울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 혹은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 검토 단계에서 논의 테이블의 중심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청년사회상속제(안)을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 정책안에서 후퇴하는 형태가 아니라 전진하는 형태의 새로운 정책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새로운 정책(안)이 기존의 청년사회상속제(안)에서의 미세 조정 수준에 그치는 형태로 제안되든 아니면 그것을 대폭 수정한 형태로 제안되든, 청년사회상속제(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은 앞으로 제시될 특정 제안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절에서는 청년사회상속제(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3절에서는 청년사회상속제(안)에서 제안된 액수가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으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되는지를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몇 가지 함의를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평가 내용을 요약하고 정책적인 시사점을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 본고의 일부 내용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제작한 팟캐스트 《이럿타》에서 소개된 바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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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AB5와 플랫폼 노동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노동 중개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저에서 흔드는 법안이 지난 7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 고용위원회를 통과했다. AB5법(Assembly Bill 5)는 대다수 주문형(on-demand) 플랫폼 노동자(platform workers)*의 법률상 지위를 현재의 “독립 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에서 “피고용인(employees)”으로 분류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 법안이 현재와 같은 내용으로 최종 발효된다면, 우버(Uber), 리프트(Lyft), 태스크래빗(TaskRabbit) 등의 주문형 노동 중개 플랫폼은 적어도 캘리포니아에서는 존폐 기로에 설 전망이다.

AB5는 기업이 노무를 제공받을 때 ‘ABC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법률상 노무 제공자가 “피고용인”이 아니라 “독립 계약자”임을 인정한다. ABC 테스트는 2018년 4월 캘리포니아 대법원 판결**에 기초하고 있다. 이 판결은 미국 전역에 당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피고 회사 다이나멕스(Dynamex)가 회사의 직원으로 일해 오던 배달 기사들을 2004년 모두 독립 계약자로 전환하면서 직원들이 2005년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다이나멕스 판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1심 법원은 항소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들의 피고용인 지위를 인정하면서 2010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마르티네스 판결***에서 나온 “고용”에 관한 세가지 정의에 의존했다. 마르티네스 판결에서 대법원은 고용을 (1) 시간, 임금 또는 노동조건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2) 노동을 감내하도록 하거나 허용하며, (3) 계약을 맺어 보통법의 고용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와 같은 포괄적 정의에 따를 경우 원고들의 피고용인 지위가 인정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에 대해 원고 다이나멕스는 마르티네스 판결에서 나온 정의 (2)와 (3)은 누가 피고용인의 ‘공동’ 고용주(joint employer)인가를 정하는 데 적용될 뿐 원고들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피고는 그 대신 정의 (2)와 (3)은 보렐로 테스트****로 고용관계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데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SheppardMullin, 2018년 5월 1일).

보렐로 테스트는 고용관계의 존부를 열두 가지 지표를 종합하여 제시한다. 그러한 지표로는 △ 노무 제공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해당 회사의 비즈니스와 구별되는지, △ 수행 업무의 수단, 도구, 장소를 회사와 노무 제공자 중에서 누가 조달하는지, △ 제공되는 노무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지, △ 노무가 회사의 지시에 의해 수행되는지 또는 지시나 감독 없이 전문가에 의해 수행되는지, △보수의 지불 방식이 무엇인지, △노동 수행의 방식이나 수단의 측면에서 회사가 통제권을 갖는지 등이 있다(K. Van den Bergh, 2019).

보렐로 테스트는 이렇게 열두 가지 지표를 모두 고려하지만, 이러한 지표들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정보는 수행되는 노무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행사하느냐로 모아진다. 보렐로 테스트는 다이나멕스 판결 이전까지 고용관계의 존부를 다투는 많은 소송에서 인용돼 왔다. 확실히 마르티네스 판결에서 수립된 고용에 관한 정의는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정의 (2)와 정의 (3)을 고용관계 분석에 적용할 경우 원고의 피고용인 지위 주장이 수용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추정컨대, 피고 다이나멕스는 원고와의 분쟁 요점을 수행되는 노무에 대한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로 좁히기를 원했고, 이것이 정의 (2)와 (3)에 의한 고용관계 분석에 보렐로 테스트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마르티네스 판결이 공동 고용주 분석에만 제한되어야 한다는 피고의 주장을 기각하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worker”는 자주 “노동자”로 번역되지만 영어권에서는 맥락에 따라 그저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사업자 간 계약에 의해 노무를 제공하는 “worker”는 “독립 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 또는 “자영업자(elf-employed)”를 의미하고, 고용계약에 의한 “worker”는 “피고용인(employees)”을 의미한다. 고용계약에 의한 “worker”에 상응하는 보편적인 한국어 용어는 “임금근로자”나 “임금노동자”다.

** Dynamex Operations West, Inc. vs. Superior Court of Los Angeles(2018).

*** Martinez vs. Combs, 49 Cal. 4th 35, 64(2010).

**** S. G. Borello & Sons, Inc. vs. Department of Industrial Relations, 48 Cal. 3d 341(1989) 판결에서 노동자성 인정과 관련해 수립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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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삼성 해고자 김용희 앞에 떳떳하십니까?

임성용*

 

삼성 해고자 김용희, 철탑 위에 오르다

2019년 6월 10일 새벽이었다. 강남역사거리 교통관제탑 아래에 배낭을 멘 사람이 나타났다. 크레인 트럭이 한 대 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크레인을 타고 25m 높이 관제탑으로 올라갔다. 손잡이도 없는 쇠기둥 하나, 그곳은 교통 CCTV가 설치된 곳이었다. 철제 난간이 설치된 원형의 공간은 지름 50cm도 채 못 되어서 사람이 두 발을 뻗고 누울 수도 없다. 그 비좁은 철탑에 오른 이는 배낭에서 두 개의 현수막을 꺼내 기둥에 매달았다. 하얀 바탕에 붉은 글씨로 쓴 현수막에는 “국정농단범죄자 이재용을 구속하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난간에는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라는 현수막을 묶었다. 삼성그룹에서 24년 전에 해고된 김용희였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강남역 8번 출구 부근에 있는 삼성 해복투 천막에서 단식을 하고 있었다. 김용희와 함께 천막을 지켜 온 해고자 이재용의 말에 따르면, 김용희는 단식 사실을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고 그냥 밥을 굶고 있었다고 한다. 단식을 하던 그는 이재용에게 대뜸 사거리 철탑에 오르겠다고 말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어떻게 철탑을 오르려고?”

이재용은 김용희를 말렸고, 주변과 상의해서 행동할 것을 권했다.

“준비는 해 놓았어!”

김용희는 현수막을 직접 만들고 배낭까지 꾸려 놓은 상태였다. 단식을 시작할 때부터 사거리 철탑을 눈여겨보아 둔 모양이다.

“일주일이면 돼!”

이재용의 만류를 김용희는 듣지 않았다.

“강남역사거리가 마비될 거여.”

“만약 안 되면?”

“철탑에서 죽을 거여.”

얼마나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정말 그의 바람대로 강남 일대 교통이 마비되는 큰 사건이라도 일으켜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었나 보다. 아무리 호소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세상, 아무리 억울하다고 쫓아다녀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생을 걸고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김용희는 CCTV를 수리한다고 크레인을 불렀고, 혼자서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김용희의 결심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이재용은 창원으로 내려가 버렸다. 김용희의 유일한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이재용은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둘 다 삼성 해고자로 길거리를 떠돈 지 십수 년, 올해 예순으로 나이도 같았다. 김용희는 전라도 사람, 이재용은 경상도 사람이었다. 20여 년 전부터 창원에서 삼성에 노조를 만들기 위해 싸운 동료였지만 작년까지는 서로를 잘 몰랐다. 서울에서 삼성과 싸움을 하던 중에 만나 친구가 되었다.

결국 이재용은 창원으로 내려간 지 나흘 만에 다시 상경해 천막농성을 재개했다. 도저히 혼자 싸우게 할 수가 없었다. 이 나라에는 삼성과의 싸움을 함께할 사람이 없다.

2018년 2월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청원 하나가 올라왔다. “무노조 삼성재벌 추악한 만행을 막아 주세요”라는 제목이었고, 글을 올린 사람은 김용희였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청원 기간에 참여한 인원은 8명에 불과했다. 참여자가 20만 명 이상이 될 때만 청와대에서 답변한다. 그런데 겨우 8명만이라니! 공교롭게도 삼성의 지배자와 동명이인인 이재용은 자신마저 빠지면 김용희가 살지 못하리라 걱정하여 나흘 만에 다시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김용희는 이토록 목숨을 걸었을까?

*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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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74호(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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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포퓰리즘

시대 74호(2019/12)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을 지나면서 정권에 대한 일종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무런 대책도, 자신에게 맞는 색깔도 보여 주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이나, 도대체 알 수 없는 정신세계 속에서 사는 극우파 집단의 공격은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권을 지지했거나 최소한 이 정권이 자기 논리에 충실하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착잡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 정부가 실행했던 정책이나 보인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배신으로 느껴지며, 또 누군가에게는 나쁜 쪽으로의 방향 전환을 보인다. 또 누군가에게는 이 정권의 본질이 드러난 것일 뿐 대단한 어떤 일이 일어난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의미에서 비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모름지기 비판이란 비판의 대상을 적절한 위치에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약속 위반이거나 방향 전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가장 크게 내세운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의 형해화가 있다. 이는 소득 주도 성장하면 최저임금 인상이 떠오를 정도로 다른 정책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넚은 의미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기보다는 영세자영업자를 압박하는 양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은 ILO 등이 주장한 임금 주도 성장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으며, 이윤 주도 성장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수요 중심 성장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요의 기반이 되는 임금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도 필요하겠지만, 노사 간의 협상을 통해 임금 인상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노동조합 조직률,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법 제도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만 몰두하지 말고 노동계의 힘이 커질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한국의 경우 소득 주도 성장이 이루어지려면,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대기업 대 중소기업으로 대표되는 불공정거래의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다수를 고용하는 중소기업의 재정 여력이 확보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약탈적인 금융 부문의 통제, 소득의 많은 부분을 잠식하는 부동산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얼마 안 되는 혜택마저 오른손으로 주소 왼손으로 빼앗는 꼴이 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이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정반대로 했다. “(정부가) 국민 가슴에 가장 상처를 준 것은 부동산”이라는 말을 이 정부의 주요 인사가 하는 상황이다.

이 정부가 해야 했던 일 가운데 하지 않은 일을 지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가장 간단한 이해 방식은 이 정권의 담당자들이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고 싶었으나 이마저도 할 용기가 없었거나 무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무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지적하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을 말하면서도 최저임금 인상 외에는 별다른 정책 수단이 없었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물론 여기에는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 설치 등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상황 논리가 더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단고 말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여기서 용기는 그저 정서적 고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현실을 맑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태도이고, 이에 따라 오래된 인습으로 보자면 낯선 것일지라도 받아들이는 것이며, 무엇보다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변화된 상황,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한국적인 ‘천민적 자본주의’의 모습, 기후위기라는 비상사태 등이 시대의 현실이라면, 이에 대한 처방도 이 사태를 잘 이해하는 속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위와 같은 양상 속에서 불평등을 줄이는 첫 번째 방법은 마틴 루서 킹이 말한 것처럼 소득을 직접 보장하는 것이다. 이 정부가 이런 길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신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일자리를 통하지 않는 소득의 이전은 말 그대로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만 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런 소득 보장에는 상당한 돈이 들며 이를 마련하는 길은 결과적으로 부유층이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될 텐데, 이를 강제할 경우 성장이 안 되거나 반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도 소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때에 따라서는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레타 툰베리의 호소가 천둥소리라면, 베네치아의 침수는 기후위기의 소나타가 이미 2악장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리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 물론 이마저도 화석연료 동맹 세력의 반발 속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현 상황이다.

한국의 여러 난맥상을 개혁할 수 있는 검찰 개혁이나 정치 개혁의 과제도 마찬가지다. 마치 공수처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거나 비례대표를 겨우 75석으로 늘리는 안건조차 불안해하면서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도대체 이들이 정치를 왜 하는 것인지, 위임받은 권력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닌지 등등 수많은 의문이 떠오르는 것은 몇몇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사태가 이러니 주당 52시간 노동의 후퇴는 당연한 일인 듯 지나가고 있고, 아마 사회경제적 후퇴 속에서도 그나마 지지를 얻었던 일본과의 대립도 지소미아 종료 연장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꼴로 끝날지 모른다.

이런 비난을 늘어놓은 것은 그저 문재인 정보의 용기 없음을 비꼬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용기 없음은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한 데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래도 남은 문제가 있다. 왜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가? 무엇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가? 그건 아마 이 정권의 탄생 배경에 있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권의 탄생과 유지에 대한 정권 자신의 인식이다.

이 정권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고 ‘노무현 정권 2.0’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유지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연료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가 되는 과정이나 탄핵을 넘어서고 다수당을 형성하는 과정 자체가 흔히 ‘포퓰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열망을 올곧은 방향으로 가져가지 못한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노무현의 유산이 남은 것은 그가 성공과 실패 모두를 짊어지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그늘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유사한 과정을, 아니 더 폭발적인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하지만 반복은 언제나 차이 속에서 나타날 뿐이다. 그 차이는 상황의 변화를 제외하면 지난 정권이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대한 자기평가에서 나온다. 그건 추측건대 한국 사회의 주류를 포획하지 못했다는 인식일 것이다. 그리고 개혁을 추구하되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일 텐데, 이는 사실상 하지 않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큰 위태로운 길이다.

물론 이 정부에만 현 상황의 책임을 묻는 것은 편파적인 일이 될 것이다. 여기 말하고 싶은 것은 박근혜 정부를 물러나게 하고 현 정부를 만드는 데 사실상 원동력이 된 촛불혁명의 폭력성이다. 여기서 ‘폭력성’은 대중의 삶의 요구를 오직 탄핵과 정권 교체라는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그 내용을 문제 삼지 않는 양상을 말한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한국 사회 주류의 비뚤어진 자화상이 있다. 그 어떤 공통성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헤게모니 없는 지배’를 행사하고 있는 집단의 초상 말이다. 이 속에서 대중의 에너지는 결국 제도 내에서 엘리트 집단 내에서의 권력 다툼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물론 가끔은 퍼팅할 때 카메라를 터트리거나 기침을 하는 예의 없는 갤러리가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다이내믹하긴 하다.

이렇게 보면 현 정부는 어떤 때는 세련되게, 또 어떤 때는 수줍게 포퓰리즘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절대로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가져가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스타일에서는 포퓰리즘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민주주의의 병리학으로서의 포퓰리즘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악의 포퓰리즘이다. 민주주의를 심화하거나 확대하는 것도 아니고 한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도 아닌, 오직 정권의 유지에만 봉사하는 포퓰리즘.

반복은 차이 속에서 나타나며, 앞의 것이 비극이었다면 그다음 것은 비극이 아니라 소극笑劇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것이 필연적인 일은 아닐 텐데, 소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대중의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록 그것을 자기가 통제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12월호 통권74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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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의 행진(!)

유신 독재를 펼치던 박정희가 암살당한 10월 26일이 한국 현대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보다 70년 전 같은 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보다 적을 것이다. 또 그보다 35년 전에 공산주의 혁명가 이재유가 청주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일 것이다.

우연일 수밖에 없는 날짜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2019년 10월 26일이 또 다른 역사적인 날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 25개 도시에서 기본소득 행진이 벌어졌다. 더 이상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행진을 벌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사실 부당한 것에 저항하기 위해, 정당한 요구를 성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행진을 벌이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30년 간디가 주도한 소금 행진이나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로 유명한 1963년의 워싱턴 행진이 유명한 예이지만, 이외에도 무수한 행진이 있었다.

이렇게 피억압자 혹은 인민이 자신의 신체를 사용해서 어떤 발언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다른 통로가 없거나 통로가 있는 경우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 이전pre-democratic이거나 민주주의 이후post-democratic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니면 특정 집단이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고 느낄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최근 이른바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포퓰리즘”이라고 지목하는 현상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 주권자라고 말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민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하는 엘리트가 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때 거리의 정치가 등장한다. 한국에서 지금 촛불과 광장의 정치가 벌어지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엘리트가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었인가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진전 속에서 끊임없이 악화되어 온 경제적 상황이 있다. 전후 복지국가를 뒷받침해 온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실업자가 늘었고, 일자리가 생겨도 낮은 임금의 질 나쁜 일자리였다. 이런 경제 상황은 디지털 경제로 표현되듯, 기술은 분명 날로 발전하는데 자신들은 뒤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되었다. 또한 지구화 속에서, 그리고 지정학적 충돌 속에서 이민과 난민의 물결이 위기라고 표현될 정도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과 난민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게다가 낯선 외부인의 등장으로 주류의 전통적인 가치와 문화가 파괴된다는 감정을 낳았다. 이런 조건은 주로 우파 포퓰리즘의 발흥이라는 상황을 낳았고, 2016년 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의 당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유사한 양상을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포퓰리즘은 기성 정치계급에 대한 불신과 공격 속에서 등장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기성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경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의 포퓰리즘적 에너지가 주로 기성 정치를 수호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는 포퓰리즘이 기성 정치세력의 권력투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기성 정치세력은 조심스럽지만 포퓰리즘을 하나의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만 볼 수 없는 대중의 열망이 있는데, 이는 통상 “정치 개혁”이라 불린다. 현재는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넓게 보면 비대한 정치권력, 공정하지 못한 룰과 공정하지 못한 법 집행,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담합과 융합, 권력의 사적 이용 등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거나 “문화 전쟁”을 벌이지 못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검찰 개혁은 분명 성취되어야 할 과제이며 선거법 개정 등 몇 가지 정치 개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개혁의 방향일 것이다. 공수처가 다른 나라에 유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기소 독점주의와 기소 편의주의를 모두 누리고 있는 게 유례가 없는 일이다. 수능 시험이 그 나름 훌륭한 제도이고 수시로 선발하는게 다양한 교육과 균형 잡힌 선발을 가능케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개혁의 쟁점은 공수처를 설치한 것인지 말 것인지, 정시냐 수시냐 같이 옆길로 벗어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 사회 전반의 문화와 구조를 그냥 놓아둔 채로는 개별 정책이 아무리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고립된 섬처럼 제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혁명으로도 사회 전반의 문화와 구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혁명이건 개혁이건 인민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는 것이 아닐 때 전통과 인습이라는 이름의 끈질긴 힘은 언제든지 살아나고 인민의 삶을 무너뜨리려 한다.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인민의 힘 가운데에서도 경제적인 힘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주목을 받는 공유 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본소득운동은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힘을 주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이런 경제적 힘은 사람들에게 자율성을 줄 것이고, 그렇다면 좁은 의미의 정치 개혁보다 넓은 사회 전반의 변화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기본소득 행진은 이런 힘을 스스로 찾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몸짓이다. 이런 점에서 2019년 10월 26일은 역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니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이 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11월호 통권73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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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시작: 2019년 유럽의회 선거

안효상 편집주간

 

자료: https://election-results.eu/

 

영국의 좌파 역사가 페리 앤더슨이 “메로빙거 입법기관”이라고 부르는 유럽의회가 유럽연합 내에서 유일하게 대중의 직접선거로 구성된다는 것은 유럽연합이 지향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면서도 유럽연합의 비밀을 은연중에 누설하는 일이다. 오늘날 유럽연합은 실질적으로 집행위원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고, 집행위원회는 유로존의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운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의회의 권한이 점차 커지긴 했지만 유럽의회를 여전히 유럽연합에서 장식적 기구 이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도 지난 5월 23∼26일에 열린 유럽의회 선거가 주목받은 이유는 유럽과 유럽연합이 처한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선거 결과가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더 높은 수준의 통합으로 가는 길은 이미 2005년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 헌법을 부결시킴으로써 한 차례 좌절된 바 있다. 이를 2009년 리스본조약으로 봉합했지만, 곧이어 닥친 부채 위기는 오늘날 유럽연합 및 유로존의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유럽연합 내 위계적 질서를 드러냈고, 이 속에서 유럽연합 및 유로존 탈퇴에 관한 논의와 주장이 분출했다. 이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른바 민족주의적인 우익 포퓰리즘 정치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고, 영국에서는 2016년에 브렉시트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여전히 브렉시트의 향방은 안갯속이긴 하지만, 유럽연합 탈퇴를 쟁점으로 국민투표가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탈퇴가 우세했다는 것 자체가 유럽연합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유럽의회에 사실상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아는 유럽 유권자들은 국내 선거 때와 달리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이전 선거와 달리 국내 정치적 쟁점만이 아니라 유럽 차원의 쟁점이 부각된 선거이기도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유럽의회 선거가 정치적 지형을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오늘날처럼 유동적인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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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포상 대상인가 전범인가?

안재성 소설가

 

해방된 뒤 김구, 이시영, 김규식 들과 함께한 김원봉.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우뚝 선 이.

 

몇 권의 평전을 쓰고 나니, 출판사들로부터 누구누구를 써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온다. 박정희와 김일성부터 최근의 노회찬까지 다양하다.

그중 김원봉은 특이한 경우다. 다른 인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 거절해 왔는데, 김원봉은 평전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까지 했다가 내가 먼저 해약해 버렸다.

김원봉을 어떤 사람이라고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위인전이 아니라 평전이라면 주인공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김구는 김원봉을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자”라며 매우 싫어 했다는데,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다. 강연회에서 누군가 “좌우를 통틀어 독립운동가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꼭 김원봉이라고 답한다. 사회주의자 중에는 이관술, 현대 운동가 중에는 윤한봉을 좋아한다는 단서와 함께. 그런데도 김원봉은 평전을 쓰기에 참 어려운 인물이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본인의 행동이나 글이 아닌 내면의 생각을 추측해서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엄청난 용량의 지능을 가진 인간의 내면은 그만큼 복잡하다. 겉으로 어떤 활동을 하든, 내면에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같은 온갖 생각이 뒤엉켜 있고, 친일과 반일, 친미와 반미, 친북과 반북이 공존할 수 있으며, 심지어 마초이즘과 페미니즘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의 불법적 행위를 재판해야지 도덕성이니 계급성이니 하는 잣대로 내면을 측량해 재판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사상을 추측하고 의심하고 캐내어 징벌하려는 오만한 행위가 구 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고 단언해도 될 것이다. 인간이란 가난은 견딜 수 있지만 남이 자기 머릿속을 캐고 들어와 헤집고 통제하는 것은 견딜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평전은 다르다. 행위만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과 감정까지, 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추론해도 된다. 그런데 자료를 아무리 봐도 김원봉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잡아낼 수가 없었다.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입만 벌리면 말했다. 그들이 항일운동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나의 소원은 첫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둘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셋째도 조선의 독립이다.”

독립한 뒤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가난한 조선인들을 위해 어떠한 정책을 펼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민족주의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당제 민주주의 공화국부터 의료보험, 국민연금, 가족수당 등 세부 사항까지 무려 260가지에 이르는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준 것은 온전히 공산주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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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핵폐기물, 이것이 딜레마다

박혜령 반핵지구인행동 회원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선명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운동은 어려워진다. 피아의 명확한 구분이 애매해지고 무엇이 다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고준위高準位 핵폐기물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 정부인지에 대해 판단이 다르거나, 탈핵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거나 표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사실 탈핵의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는 정부의 성격이 ‘찬핵’이라는 명확한 선이 존재했고, 그 반면 정권을 잡고자 하는 야권 정치인 문재인은 ‘탈핵’을 구현할 의지가 있는 인물로 간주됐다. 사실 이때부터 혼란은 시작되었다.

과연 얼마만큼 해야 탈핵인 건가? 오늘 당장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영구 정지를 선언하면 탈핵인가? 핵 마피아들이 득실대는 체제에서 완전한 탈핵이 쉽지 않으니 신규 핵발전소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문재인 정부 정도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탈핵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확실한 생각이 없으면, 고준위 핵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확한 메시지를 마련할 수 없다. 신고리5, 6호기 공론화 때와 마찬가지의 우를 범하고 있다. 정확한 자기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초기 대응의 첫 단추는 여지없이 잘못 끼웠다. 하다보니 그리된 것이 아니다.

핵폐기물 이제 그만? 언제까지 그만?
임시 저장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제 그만?

그렇다면 이야기해 보자. 2017년 당시 고준위 핵폐기물을 위한 공론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산업부의 발표에 8월경부터 시작된 각 현안 지역과 시민단체와의 논의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를. 임시 저장은 애초에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선명했다면, 고준위재검토준비단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논의에 임하거나 합의하는 내용과 과정이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기존의 환경 단체를 비롯한 일부 현안 지역에서도 탈핵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그 내용의 구체화를 위한 논의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런 논의를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않도록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 온 단체들의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고 본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딜레마는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해법 없는 문제가 아니라, 고준위 핵폐기물을 더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큰 줄기의 내용은 있으나 세부적인 내용의 자기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는 문제다. 무엇이 탈핵인가라는 질문에 선명한 답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딜레마다. 이제라도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반핵운동이 더 길을 잃기 전에.

딜레마 1. 뾰족한 수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고준위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보관하여 안전하게 자연 상태로 되돌릴 기술은 확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핵발전을 선택한 나라들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곳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없다. 현재 유일하게 핀란드가 고준위 핵폐기물 심지층 처분장을 건설중이다. 부지를 선정하고 심지층 방식이 거론되던 스웨덴에서는 고준위 핵폐기물 심지층 처분 방식은 구리 원통이 부식될 수 있으며 방사선 누출 대책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부지 선정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었고 이를 충분히 보장하는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기술적 안전성이 아니라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공론화였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현재 월성핵발전소에서 추가 증설하려는 맥스터가 사실상 핵발전소 부지의 지상 중간 저장 시설로 분류될 수 있다. 단기적인 조치이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테러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 등을 생각하면 근본적인 대책일 수 없다. 발전소 내의 수조에 저장하는 그야말로 임시 저장을 비롯해 제3의 부지나 발전소 부지 내의 중간 저장, 아니면 영구 봉인하는 최종 처분까지 기술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고 안전성 확보에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이것은 핵발전소 가동을 시작할 때부터 예상한 문제였으나 우선 가동하고 보자는 무책임한 결정이 낳은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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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지 않은 생일, 전교조 30돌

임성용

참교육의 깃발을 들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투경찰과 백골단을 동원한 무장 병력으로 민주주의를 짓밟던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 쿠데타 세력에 맞서 이뤄낸 1990년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와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창립 과정에서 전교조의 역할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교원 노조가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한 1986년에 「교육민주화 선언」을 이끌었던 교사들은 1987년 6월항쟁의 열기를 “교육민주화 실현”으로 되살렸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참교육 실현, 사립학교 민주화, 교육 악법 개정 투쟁에 나선 교사들은 1989년 5월 28일 전교조를 창립했다. 법외노조였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라며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42명의 교사를 구속하고 1,527명의 교사를 파면 또는 해임하는 등 강경하게 탄압했다. 그중 1,329명만이 1994년 3월에야 교단으로 복귀했다.

합법성 쟁취 투쟁 10년 만인 1999년 7월 1일, 마침내 전교조는 합법화됐다. 민주당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같은 해 7월, 조합원 6만2,654명으로 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함으로써 합법적인 노조로서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전교조는 노동법이 아닌 특별법에 따라 합법화됨으로써 애초부터 일반적인 노조와 동등한 권한을 갖지 못했다.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단결권, 단체교섭권만을 갖게 되었다. 쟁의 행위는 금지되고 조합원 자격도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교원과 유치원 교원은 포함하되 대학교수는 제외되었다. 또한 전국 단위와 시도 단위의 조직은 허용되지만 학교 단위의 노조는 설립할 수 없었다.

공문 한 장으로 박탈당한 합법성

노조와 관련된 현행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이 세 가지 가운데 「노동조합법」은 일반법이고 나머지 둘은 특별법이다. 교원은 특별법인 「교원노조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이 법에서 규정하지 않는 사항은 「노동조합법」, 즉 일반법의 적용을 받는다. 교원은 국공립학교에 속하더라도 국가공무원이긴 하지만 「공무원노조법」의 적용은 전혀 받지 않는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교원노조법」 제2조와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이었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조합원의 자격을 재직 중인 교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은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은 후 ……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해 노동조합에 대하여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바로 이 법률 조항에서 심각한 충돌이 발생한다. 「교원노조법」 제2조의 조합원 자격 규정은 실업자나 해고자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노동조합법」에 배치된다. 특히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담긴 ‘행정관청 시정 요구’와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한다는 규정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결정하게 한 핵심적인 조항이었다.

이 조항들로 인해, 이미 설립신고를 하고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 행정부는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시행령이 노동조합의 존립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 같은 모순된 법률이 정부와 전교조의 법외노조 다툼을 야기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교조는 해당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해직자 조합원 인정’ 등 5개 규약에 대해 시정명령을 했고 전교조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듬해인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는 해직 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임을 통보했다. 팩스로 날아온 공문 한 장으로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가 되고 말았다. 6만 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노동조합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박탈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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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