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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상인의 기원

양정필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람들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사극이 방송된다. 인물 혹은 사건을 소재로 한 역사 영화도 계속 제작된다. 일상에서 쉽게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지식들도 조금은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 사람들은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일반인이 만날 수 있는 역사는 대개 정치적 인물 혹은 사건에 대한 것이다. 역사 속 경제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접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오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집단

생소할 수 있는 경제의 역사를 안내해 줄 사람은 개성상인이다. 개성상인은 중·고등학교 역사책에 나올 만큼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성상인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단 몇 줄에 불과하여서 개성상인의 존재는 알지만 그들의 장구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성상인은 오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큰 전쟁을 자주 겪은 우리 역사에서 수백 년 동안 존속한 존재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개성상인은 그 어렵다는 장기 존속은 물론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니,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개성상인 후손들이 경영하는 기업으로는 아모레퍼시픽, 녹십자, 신도리코, 한일시멘트, OCI,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개성상인이 세운 기업은 꽤 있다. 설립자는 모두 개성상인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2세들이 계승하여 경영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개성상인의 정체성을 지닌 기업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인도 있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

개성상인은 상인이므로 당연히 그들 활동의 중심은 상업이었다. 따라서 개성상인을 통해서 전근대 상업의 일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들은 돈 버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귀재였다. 개성상인 이야기를 통해 돈 버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개성상인을 이야기하려면 그들이 언제 어떻게 해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즉 개성상인의 기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기원을 잘 알면 그들의 성격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기원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이번 이야기는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한정될 것이다.

개성상인의 기원을 살펴보려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격변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려 말기는 정치 기강이 무너지고 경제는 양극화되어 소수의 권문세족과 사원이 경제력을 장악하고 다수의 백성은 비참하고 곤궁한 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사회 혼란은 미봉책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해결될 수 있는 단계였다. 이에 이성계와 정도전 그룹은 역성혁명을 통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여 사회 혼란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이 정도의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자. 역성혁명을 주도하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 그룹은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국가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이 그룹을 지지하고 그 노선을 추종하였다. 고려의 신하였던 이들 가운데서도 조선 건국을 지지하고 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길 때 따라간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고려 말기의 혼란을 고려 정부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역성혁명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진행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 중에는 역성혁명을 지지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지조나 절개와 관련된 문제인데,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유교적 가르침에 익숙한 사람들 중에는 차마 조선의 새 임금 이성계를 섬길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사람들은 대개 지식인, 관료 그룹이다. 일반 백성들도 새 국가 조선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을 텐데, 아쉽게도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전해 주는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당시 다수의 관료와 지식인은 개성에 거주하였다. 그들은 고려의 신하였기에, 지방관이 아니면 대개 개성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지식인들도 예비 관료로서 개성의 성균관 등에서 과거를 준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관료·지식인은 조선 건국을 둘러싸고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었다. 전자는 조선 정부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자 개성을 떠나 한양에 정착하였다. 반면 반대파의 경우는 그 운명이 크게 셋으로 갈렸다. 첫째는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 둘째는 낙향을 선택한 이들이 있었다. 마지막 셋째는 한양으로도, 고향으로도 가지 않고 개성에서 그대로 남아서 살아간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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