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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해방, 사회주의

 

얼마 전 한 라디오방송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짧게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미리 받아 본 질문지에 적힌 내용은 꼭 필요한 질문이긴 했지만,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이런 식의 인터뷰를 여러 번 했던 사람에게는 흥미가 떨어진 것이었다는 말도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짧은 시간에, 그것도 어떤 영국 작가가 커뮤니케이션의 역사에서 “실수”라고 말한 적이 있는 전화를 통해 조리 있게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누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이건 저렇게 대답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꼭 필요한, 다시 말해 흔한 질문 가운데 그렇지 않은 질문이 하나 끼어 있었다. 대략 질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면 사회주의/공산주의와는 어떻게 다른가?’ 인터뷰 때에는 이 질문을 살짝 틀어서 ‘정의의 문제’로 바꾼 다음, “공유부에 기초한 기본소득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고전적인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좀 더 시간이 많고 대면한 상태의 인터뷰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설마 농담이시겠죠? 사회주의/공산주의야말로 노동에 따른 분배에 충실한 사회입니다. 도리어 자본주의가 노동에 따른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사회죠.’

내 대답이 여기에 그쳤다면 특정한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해 해설하는 일을 한 셈이다. 그러면서 진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바뵈프에서 시작하는 현대 공산주의는 ‘공동 소유, 공동 노동, 공동 향유’라는 원칙을 간직해 왔다. 물론 현실사회주의에서 이 원칙이 얼마나 철저하게 관철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현실사회주의가 ‘전 인민의 소유’나 ‘국가 소유’라는 방식으로 공동 소유를 설사 실현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나타난 결과가 권력에 따른 위계와 불평등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권력의 문제, 국가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형식적 소유의 문제와 상관없이 노동과정에서도 관철되는 문제였다는 것도 드러났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혹은 선동적인 수준에서 현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하고자 한 일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종식하고 진정한 인간의 역사를 열겠다는 것이었다면, 포스트자본주의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은 세계지도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 라는 말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사회주의에서의 인간의 영혼」(1891년)은 이런 점에서 흥미로운 글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사회주의가 “공동체의 각 구성원에게 물질적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다시 말해 “삶에 필요한 기반과 적절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개인주의다. 이때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개인주의”는 “그 누구도 재물과 재물의 상징들을 쌓아가는 데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오스카 와일드가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예술이다. 그리고 그 기초가 개인주의다. 그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예술은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다. 나는 심지어 예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20세기 최대의 아이러니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한다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다시 억압적 체제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이 아이러니는 민중 혁명 속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해소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해방의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이 아이러니는 언제고 다시 등장할 것인데, 이때 우리는 어떤 방향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전제는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공동의 향유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공동의 향유는 말 그대로 개인들의 삶의 토대를 확보하는 일이 된다. 물질적인 것을 말 그대로 물질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그 위에서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각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이때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개인주의의 참뜻이 드러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등에 대해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우려할 일이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미 이렇게 선언한다. “마치 시골의 신사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풀은 자라나는 것처럼, 인류가 삶을 즐기면서 노동 대신 인간의 목적이 되어야 할 우아한 여가를 보내거나,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고 아름다운 것들을 읽거나 그저 세상을 관조하며 감탄과 기쁨을 느끼는 동안, 기계는 필요하고 힘든 일들을 모두 처리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사회주의/공산주의는 20세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경제적 권력이기를 멈추고, 말 그대로 인간적 삶의 토대가 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7~08월호 통권70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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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가 권문석을 추모하며

 

육 년 전 급작스러운 그의 죽음을 접한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자리의 이름에 “사회운동가 권문석”이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속에 꼬박꼬박 그가 떠나간 날을 지나고 있다.

사회운동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로 인식된 이후 등장한 현상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다수의 힘으로 이루어질 터였다.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가 되자, 이 변화에 대한 태도 속에서 이른바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맑스주의 등등.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가 다수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 사람들은 그 다수를 구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와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 속에서 사회운동이 탄생했다. 사회운동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처럼 거대 담론을 가지고 국가를 투쟁의 중심 지점으로 보는 것부터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사회운동까지,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가 되었다.

사회운동을 선택한 사람들은 햄릿이 말한 것처럼 “시대가 탈구되어 있다”라고 생각했고, 사태를 제자리에 놓는 비판을 시도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다. 권문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학생운동가로서 성년의 삶을 시작한 그가 진보정당의 활동가로, 정책 기획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상황은 많이 변해 있었다.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은 적극적인 전망을 내놓기는커녕 과거의 성취를 지켜내는 것도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여성의 권리 등 새로운 권리 운동의 등장과 생태적 위기에 맞서는 환경 쟁점의 부상에 대해 힘겹게 즉자적으로 대응할 뿐인 상황이었다. 이 바탕에는 “보편적 계급”, “세계사적 사명을 가진 계급”으로서의 노동자운동의 정체성화와 주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지역에 따라 이미 오래전에 감지되었으나 한국에서는 늦게까지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몰랐다기보다는 기존의 진보운동이라는 틀로 다 욱여넣으려고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혁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꾸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 원인을 다 드러내기는 어려우니, 일단 기존의 성취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해 두자. 굳이 하나를 더 들자면, 추상적 대의와 현실적 전략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자신을 구성하게는 하지만 한번 구성된 정체성을 바꾸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러니 목숨을 건 도약이 필요했을 텐데, 그것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일이긴 하지만 자유낙하는 아니었다. 그것은 적절한 착륙 지점에 도착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게다가 허공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기에 그 어떤 준거점도 주위에서 발견할 수 없이 감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의 권문석이 이 일의 선두에 섰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보다 땅에 발 딛고 서기를 원했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가 그를 그 무엇보다 “사회운동가”로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 사회운동가였다면, 오늘날에는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게 사회운동가의 운명이 되었다. 사회운동가 권문석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와 알바노동이라는 형태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어떤 것을 찾아내려고 했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알바들의 내적 힘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변화의 원동력이 되도록 만드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면, 알바노동의 가시화는 변화하는 우리의 노동 현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알바들이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가리키려는 시도였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권문석을 창립 회원일 뿐만 아니라 명예 의장이라고 생각하며, 알바연대는 그를 대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그가 내세운 의제, 그가 개척하고자 한 활동이 조금씩이나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면, 단두대로 가면서 시드니 카턴이 했던 말을 반복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내가 지금껏 했던 어떤 일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이라네.” 이런 점에서 조숙한 사람, 시대와 불화를 일으킨 사람과 함께했던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6월호 통권69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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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진실, 분개의 정치

 

세월호 5주년을 지나면서 거리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많아졌다. “기억 너머 진실로.” 세월호 사건 속에서 함께 아파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의미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문구가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또 그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출발점으로 “진실”이 필요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날 때 “기억”은 격정을 멈추고 온전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리라. 하나는 세월호에 대해 끊이지 않고 나오는 폄훼와 왜곡이다. 지면에 옮기기조차 저어되는 모욕은 사건 자체를 넘어 인간성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낳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건의 총체적 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러저러한 사실조차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기대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바람이 우리가 “기억 너머”로 나아갈 때 다가올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억을 가지는가에 따라 진실도 다르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억은 하나의 틀이며, 가변적인 쟁점이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과 진실은 아마 왕복운동을 하면서 각각을 특유한 방식으로 구성할 것이다.

 

기억과 진실, 과거와 현재의 가변성은 5월 광주민중항쟁을 둘러싼 쟁투 혹은 그 역사적 사건의 이용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꽤 오랫동안 광주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자 한 “신군부”에 맞선 민주화 투쟁과 폭도들에 의한 무질서 사이에 형성된 전선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거대 서사 속에서 비무장 시민을 향한 무차별 총격이라든가 북한군과 간첩의 개입 등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등장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19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수립되면서 광주는 이 나라를 만든 가장 최근의 민중 항쟁으로, 민주화를 향한 거대한 발걸음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항쟁 이후의 광주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그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평가하려 하지 않거나, 이른바 흠집을 내기 위한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형식적으로 광주항쟁을 부정할 수는 없었는데, 아마 우리는 여기서 민주주의 담론이 가지는 힘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광주의 운명을 감안할 때 최근에 도드라지게 보이는 광주에 대한 폄훼, 모욕, 왜곡은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당연히 첫 반응은 이럴 수 있다. “광주에 대한 평가는 이제 끝난 것 아닌가?” “도대체 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 하지만 반복될 뿐만 아니라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광주에 대한 폄훼, 모욕, 왜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날 가짜 뉴스 혹은 사실 왜곡을 통한 대중 동원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이를 “포퓰리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이때 포퓰리즘은 사회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는 정치 전선을 구축하는 담론적 전략이다. 이 전략에는 다양한 소재와 정체성이 동원될 수 있고, 우리의 경우 분단과 반공주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반공이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배치를 감안할 때 포퓰리즘적 동원 전략의 일순위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모호할 것이 하나도 없는 북한군 개입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과 관련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동원을 위해 거짓 뉴스나 악의적 왜곡을 하는 발화자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듣는 수신자의 처지다. 오늘날 포퓰리즘의 발흥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따라 경제적 손실을 입고 정체성 정치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 예컨대 백인 노동자계급의 “분개의 정치”로 설명하는 것은 이런 점에 주목한 것이다. 과거에 자신이 사회의 주역이었고 자기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 분개의 정치의 조건이 형성된다.

따라서 이 조건을 바꾸는 것이 문제다. 정체성의 정치가 가져온 성취, 즉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이 배제당하거나 차별받는 것이 아닌 일이 되게 만든 것을 보존하면서도, 정체성의 정치가 가져온 또 다른 분할선이 대립선이 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이는 결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공통성에 근거하고,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이는 보편성을 설정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때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특유하게 결합해서 적절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 시절이 있었다. 자본주의 황금기 혹은 복지국가 황금기라 불리던 때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주로 남성 시민에게 완전고용이라는 정책적 목표 아래 적절한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동자-시민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여성은 배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오늘날 더 이상 양적 성장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파괴적인 기술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면, 과거처럼 노동자-시민의 구성으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활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만약 기본소득이 모두의 것인 공유부에 대한 몫으로 정의되고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새로운 보편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가 설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은 이해당사자-시민일 것이다. 이는 인민주권에 맞먹는 새로운 권리의 지평을 여는 일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5월호 통권68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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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선택이다

앙드레 지드가 자신의 유일한 ‘소설’이라고 한 『위폐범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제도와 인습에 대한 반항뿐만 아니라 거짓된 세계 속에서 “진정한 삶과 의미”를 찾을 가능성 혹은 이를 위한 분투를 경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과거에 반항해야 할 혹은 전복해야 할 제도와 인습은 좌파에게 꽤나 명료해 보였다.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라든가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혹은 “독점자본의 정치적 지배의 테러적인 형태”인 파시즘이거나 이것도 아니면 “부르주아지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집행위원회”로서의 국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1989∼91년 이후 이런 현대의 신화는 종말을 고했다. 물론 그 신화를 구성했던 신화소神話素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데, 이는 “맑스주의를 낳았던 상황을 넘어서지 않는 한 맑스주의는 우리 시대의 철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사르트르의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 그러할 뿐이다.

계속해서 좌파라는 말을 사용하자면, 좌파에게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역사의 담지자 혹은 혁명의 주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혁명의 주체라고 생각했던 “노동자계급”이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노동자가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적으로 그만큼의 중요성만 있는 사회학적 범주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의미의 노동자마저 사라져갈 운명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자칫하면 신화는 그 비극성마저 잃어버리고 희극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진정한 삶과 의미를 찾는 일이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일이라 할 때 전복의 대상을 상실한 것은 삶과 의미를 구성할 틀을 상실했다는 것과 같은 일이 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계속해서 하던 일을 하는 것은 제도와 인습을 전복하는 일이 아니라 인습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인습의 포로가 된 것은 한편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신화와 정신적 사랑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육체적 패배 속에서도 지속되는 정신적 사랑.

육체적 패배와 정신적 사랑의 위태로운 동거를 끝내기 위해서는 사건의 경험 속에서 삶과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사건은 저절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을 경험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구성하고 사건 속으로 돌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정향이 필요하다. 이 정향의 설정은 결단의 다른 말이기도 할 텐데, 이 결단이 불장난이나 가망 없는 도박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세계를 제대로 바라볼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앙드레 지드는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던 외사촌누나를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는 흔히 말하는 신비주의적 사랑이었고, 이는 결혼한 이후에도 신비주의적 사랑의 행태, 즉 육체적 관계나 쾌락이 없는 정신적 사랑으로 지속되었다. 이런 정신적 사랑은 북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경험한 대지와 동성애의 발견이라는 대립적 상관물과 병치된다. 그리고 이러한 병치는 그의 정신적 위기의 지속적인 근거가 된다. 하지만 청년 마르크 알레그레와의 사랑, 이를 알게 된 아내 마들렌이 지드가 마들렌에게 평생 보냈던 편지를 불태워 버린 사건 등을 겪으면서 그는 1926년에 발표한 자서전을 통해 동성애 경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내가 편지를 불태운 사건은 앙드레 지드에게 해방이자 부채 청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청산해야 할 부채는 무엇이고, 맞이할 해방은 무엇일까?

사르트르를 다시 떠올리면 우리의 과거를 낳았던 상황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철학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몫은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그것은 과거의 상황을 연장시키는 것, 새로운 상황을 지연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삶과 의미를 찾는 문턱을 넘는 일이 될 것이다. 비록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4월호 통권67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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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인식과 새로운 문제

 

토머스 페인은 『상식』 머리말에서 “시간은 이성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만들어 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에게 시간보다 더 강한 원군은 없는 것 같다. 비록 유토피아가 저 멀리 지평선에 아스라이 보일지라도 꾸준히 가다 보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 강한 동력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5·18 망언’과 이를 부추기고 있는 인식, 의도, 발언 등을 보면 페인의 말이 꼭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진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커진다.

사실 5·18이 북한군이 개입해서 만든 폭동이라는 망언의 의도와 인식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반공을 기초해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분단의 초기 단계를 넘어서려는 폭력적인 시도였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유아기를 보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를 주도한 냉전-반공 세력이 이른바 개발독재 체제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해 갔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정통성의 문제이건 이념의 문제이건 아니면 일상생활의 문제이건, 체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그에 대한 저항도 커졌던 것이 한국 현대사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5·18은 사실 하나의 비가역적인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이 몸으로 저항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따라서 아무리 군대의 힘으로 이를 억압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최후의 수단을 장기적으로 막을 다른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전히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면, 그 진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1980년대 초반, 시절이 아무리 암울하다고 느꼈다 할지라도 커다란 충돌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고, 이는 1987년에 사실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이른바 ‘87년 체제’에 살게 되었다.

87년 체제에서 냉전반공주의는 여전히 살아남았지만 최소한 폭압적인 군부독재는 정당성을 상실했고, 냉전-반공 세력은 새롭게 보수라는 이름을 걸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보수주의가 그 적절한 내용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보수는 ‘친자본’이라는 지향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없는 벌거벗은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신자유주의 하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된 것이 그들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라는 인물은 자기 역사에서 보수의 기반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미에서 보수주의를 나름대로 재건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당한 자기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그 보수주의는 침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촛불혁명과 탄핵이라는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5·18 망언은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갈등의 축을 옮김으로써 자기 정당성과 자기 활동성을 확보하려는 냉전반공주의의 끔찍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는 자유한국당에게 이는 강렬한 유혹일 텐데, 결국 ‘독이 든 사과’로 판명 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 내용이 가짜라서만이 아니라 반공주의를 가능케 한 냉전이라는 지형이 세계사적으로는 철지난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조차 서서히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냉전의 원인은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이념적이었다. 1989∼91년에 냉전이 끝나고 자유주의 이외에 다른 이념은 없다는 이념이 잠시 지배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트럼프주의의 발흥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간 일이 되었다. 아마 국제 질서는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지정학의 부활’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의 부활의 국내적 효과는 갈등의 축을 외부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 내부의 갈등의 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사회 양극화와 여기에 수반되는 사회적 지위의 변동 등은 해당 사회의 제도적, 문화적 배치 속에서 다양한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태극기 부대가 그저 냉전반공주의에 사로잡혀 거리로 나온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기존에 누리던 상상적, 실제적 지위가 무너지는 경험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며, 이는 어찌되었든 배출구를 필요로 한다. 태극기 부대와 5·18 망언은 이런 배출구가 퇴행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드는 완충제와 그 사회변동의 긍정적인 방향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공론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5·18 망언은 낡은 것이지만, 이러한 사태가 제기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3월호 통권6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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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을 위하여

해가 바뀌는 것이 자연적인 변화와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위적인 구분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덕분에 우리는 기억과 망각, 성찰과 구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시대』 독자들에게 기억과 망각, 성찰과 구상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기억할 만한 것은 기본소득이 한 번 솟구쳐 올랐다 사라진 의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정책적 차원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경기도에 기본소득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내년에는 청년배당이 실시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망국적인 부동산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국토보유세와 연동한 기본소득 제도가 분명한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농촌과 농업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목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농촌/농업 기본소득’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에서 실시하겠다는 ‘청년 기본소득’과 같은 것도 그 내용과 상관없이 언급할 필요는 있겠다.

망각해야 할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망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건 기본소득 의제를 담아내고 실천할 적절한 정치적 틀과 통로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아니 더 진솔하게 말하면, 조직적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조직 자체를 망가뜨리고 또 추스르느라 다른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망각하고 싶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기본소득 의제 자체가 목표로 삼고 있는 ‘자율적인 인간들’의 결사체로서의 정치 조직을 형성하지 못하고, 심하게 말하면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의제와 충돌하는 낡은 관계들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여러 번 여러 사람이 반복했기에 이제는 진부한 격언처럼 들리는 말이 떠오른다.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과 망각을 넘어 성찰로 넘어가야 한다. 잠시 숨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이것이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면 말이다. 인간에게 성찰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성찰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점의 이동이 필요한 데, 성찰과 함께 탄생한 근대의 진리의 의지가 시점의 이동을 가로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찰은 진리의 의지가 좌절된 곳에서, 평범한 말로 하자면 소수파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수파의 좌절된 진리의 의지는 맹목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의지의 결사체가 낡은 유대로 전락하고 전략이 음모로 강등되는 상황은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성공한 혁명은 대중과 분리된 전위의 변증법적 결합을 통해서건, 함께 굶주리고 아파하고 싸우는 것을 통해서건, 융합의 파괴력을 통해서 가능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융합의 양식과 윤리가 바뀌었고, 이는 계속 바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로 말하려는 것, 완전고용, 노동조합, 복지국가 등이 시대의 토대이자 사회의 목표가 되는 시절이 지나갔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낡았지만 익숙한 것과의 이별, 닿지 못했지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 환상의 섬에서 벗어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하는 가다.” 자연적 수명을 가진 인간이기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처럼 현재를 구성하는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숙한 것이 비극이라면 시대착오적인 것은 희극이다. 그리고 희극이 시대를 드러내는 징후라면 비극은 미래를 향한 의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의 비극과 현대의 비극이 평행선을 이룬 비극의 대위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끌려가면서도 이를 거부하려 했던 페르소나와 자신의 힘을 믿으면서도 바로 그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스러져가는 캐릭터 사이의 충돌일 것이다. 물론 의지가 살아 있다면 그 충돌 속에서 그 의지는 다시 미래를 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여전히 충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여진이 있겠지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의지를 살려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내면의 소리를 듣는 연옥을 통과해야 한다. 그 충돌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마 진정한 의지는 거기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1~02월호 통권6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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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악에 맞서는 정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보면서 악의 진화를 알아차리고 악의 평범성 혹은 평범한 악에 대해 논구했다. 평범한 악은 추악하거나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종교적 악과 달리 범속하고 일상적이다. 아렌트는 평범한 악에 맞서 개별적 감수성인 양심을 내세운다. 아렌트 이후 악의 평범성 혹은 평범한 악은 어느덧 상식이 되었다. 우리와 한참 떨어져 있는 거대한 악만큼이나 일상 속에 악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다.

이런 상식에 맞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철학자 김진영은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으로 악의 평범성을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악은 “선과 악의 경계를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거나 도덕적 양심을 외면하는 그런 의지적인 악이 아니다.” 오늘날 악은 “선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 양심 자체가 이익을 따라서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부드러운 악이다.”

김진영은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게 악의 평범성이 시효 만료되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을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가? 선과 악이라는 구도는 불가피하게 경계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결국 경계를 짓는 일이 필요한데, 부드러운 악이라면 그만큼 경계 짓기가 어렵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경계가 유동적일 가능성이 크다.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과 마주하면서 당장 세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권력의 절대적 부패 가능성이라는 고전적 테제가 첫 번째이고, 영구 혁명이라는 맑스주의적 테제가 두 번째이며, “단단한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라는 근대성 테제가 세 번째다. 물론 이 테제들은 조금씩 수정해야 한다. 권력은 좁은 의미의 정치권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 사이에서 작동하는 힘의 관계를 말한다. 맑스주의 전통 속에서의 영구 혁명은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공산주의사회를 종착점으로 한다.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인간관계로서의 사회는 불가능하며, 아무리 미끄러진다 하더라도 잠정적인 고정점이 필요하다.

다시 부드러운 악이라는 사태에 맞서기 위해 경계를 짓는 일로 돌아가면 지속적인 경계警戒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물론 경계는 고발을 수반한다. 마키아벨리는 갈등과 대립의 사사화私事化를 방지하기 위한 공적 질서의 확립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고발의 중요성을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대립과 갈등을 공개적인 공적 권위를 통해 해결할 수 없을 때 고발은 격심한 사회적 불안정의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공공성publicness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다. 공적인 것을 가리키는 라틴어 publicus는 ‘성숙한’이라는 뜻의 pubes의 영향을 받아 사람 혹은 인민을 가리키는 populus가 변해서 생긴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성은 인민의 성숙을 조건으로 하며 또 이를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인민의 성숙은 어디서 오며,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대한 근대적인 대답은 도야Bildung겠지만, 고대적인 대답은 정의의 실현일 것이다. 정의가 자리 잡을 때만 공적 권위가 유지될 것이고, 이럴 때에만 개인적인 도야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대적인 의미에서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각자가 자기 몫을 가지는 것이다. 이를 근대로 넘기면 소유와 분배의 문제가 될 것이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그리고 공유에 대한 접근권과 공유부에 대한 몫의 권리 등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산에 대한 공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는 부드러운 악에 맞서기 위한 기반일 뿐이다. 하지만 이 기반이 사람들에게 자율적 시간 혹은 주권적 시간을 부여한다면 부드러운 악에 맞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에 기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도덕적 감수성을 날카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12월호 통권64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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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어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서 쾨슬러의 소설 제목 『정오의 어둠』에서 따오는 것은 변주이긴 하지만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유토피아적 이념의 고양과 환멸이 교차했다면, 촛불혁명의 밝음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어둠과 대조된다. 한편으로 우리는 추상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구체적인 인격에 투사했지만, 일상의 삶은 추상적인 패러다임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는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가장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로 재산권의 신성함이다. 물론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부동산이다.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상관하지 않고 더 나아가 짓밟는 사태가 재산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설령 많이 양보한다 하더라도 자기 노동에 기초하지 않는 재산권이 지배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런 사태의 배후에 신자유주의가 있다고 간단하게 말해 버렸을 것이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그 무엇보다 경제적 자유를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가 기소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육을 사유화/사영화하고, 토지와 주택을 절대적 소유로 바라보는 태도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환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도리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집단적 심성을 파악하는 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인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라고 노래했지만,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이 땅에는 그 어떤 도덕적 준거점도 남지 않고 오직 개인과 ‘가족’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개인주의가 가장 강한 나라가 미국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의 경우 개인주의가 하나의 이념인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강요된 삶의 태도라는 점이 차이다.

사실 우리에게 이념적 지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근대화/산업화, 민주화, 통일 등이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보다 하위 범주로 진보, 복지, 인권 등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어느것도 이 정치체의 ‘좌표’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저 돈과 땅에 대한 사랑만이 넘쳐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기에 절차적, 추상적 민주주의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준거점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땅에서 진보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헌법 애국주의’에 기대고 싶은 유혹이 들 것이다. 하지만 헌법이 사회적 관계를 규제하는 틀이라 해도 이 틀은 다시 사회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 할 때, 헌법에 대한 호소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에 기초하여 사회적 관계를 바꾸려 해야하는가? 그것은 공동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노력에서 나올 것이다.

어떤 정치체의 공동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은 그 물질적 기초의 공동성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토지와 자연자원, 사회적 생산 등에 대해 모두가 몫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는 거의 신성시되고 있는 재산권의 범위를 재규정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정치적 지형을 볼 때 이는 새로운 ‘좌파’의 출현을 요청한다. 이 좌파는 낡은 체제의 위기에서 자양분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이제 출현하고 있는 미래에서 정당성과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에 대한 지적 인식, 공동성의 실천을위한 도덕적 헌신,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도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좌파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2천 년 전에 어느 랍비의 말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니라면 누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이 일을 하겠는가?”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11월호 통권63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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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을 생각한다

인간 지식의 불완전함과 인식의 불철저함으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보기revision를 해야 한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학을 보자면, 새로운 사료(사실)의 발견이나 증거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 나타날 경우 혹은 둘 다일 경우 과거를 다시 보는 작업이 집중적으로 벌어진다. 하지만 이 바탕에 가치나 지향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혁명을 ‘위대한 부르주아 + 민중의 혁명’으로 보지 않고 어중이떠중이(민중)가 정치라는 장에 난입하여 올바른 개혁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고 보는 ‘수정주의’가 냉전 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듯이, ‘광주사태’가 ‘광주의 민주화 운동’ 혹은 ‘광주민중항쟁’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87년 체제의 형성과 완성을 향한 움직임을 반영한다.

사실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내뱉는 말 ‘이러려고 * * 했나?’라는 말도 같은 행위다. 요즘 같아서는 이 말을 ‘이러려고 촛불혁명 했나?’ 혹은 ‘이러려고 그 추운 겨울에 우리가 거리에 나갔나?’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촛불혁명은 21세기에 비폭력적이면서도 상당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시민의 의지에 반하는 권력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기무사가 당시 대통령과의 ‘교감’ 속에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문건들이 나오긴 했지만, 거꾸로 보면 계엄령을 실시하고픈 마음은 있었겠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제도나 심성이라는 면에서 꽤나 완강하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사실 사태가 그렇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 일당이 보인 너무나 터무니없는 행태 때문이긴 하다. 당시 새누리당조차 탄핵에 동의했다는 것은 그저 대중의 움직임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에 우리는 민주적이고 개혁적이면서도 가깝게 느껴지는 스타일의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감동을 주었다. 격식 문제에서부터 과거사에 대한 이해까지 그는 사람들이 대체로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비핵화를 향한 남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른바 경제 영역으로 자리를 옮기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이 지난 두 번의 정권과 다른 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의 유일한 정책 수단인 최저임금 인상 추진도 어려운 경제 여건 앞에서 스스로 철회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집값 안정과 적절한 재분배를 위해서 꼭 필요한 토지 관련 세금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정부의 경제철학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간단하게 ‘부르주아 정권’의 본질이 드러났다고 비난하는 것은 편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본질’을 간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부는 자유주의 개혁 세력과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의 연합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오랜 꿈은 정상적인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민주주의로 미끄러져 갔고 1997년의 실질적인 평화적 정권 교체 속에서 제도적, 실천적 가능성을 발견한 후자는 실현 가능한 복지국가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의 공통분모를 찾자면 “경제적 공포”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성장을 지상 목표로 삼고, 여기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신자유주의자들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성장의 과실이 좀 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일 것인데, 이는 무엇보다 고용의 증대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또 하나의 강박을 더해야 할 것이다. 87년 체제를 거치면서 한국 현대사를 해석하는 두 개의 핵심어로 산업화와 민주화가 떠올랐다. 이 두 단어는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때 등장한다. 문제는 둘 사이의 관계다. 산업화는 개발 독재에 의해, 민주화는 그 속에서 민중의 저항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통속적인 이해 방식이다. 이것이 지난 20여 년 정도 지속되고있는, 현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 집권한 민주개혁 세력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자본축적, 고용 안정, 복지 등의 순환적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게 현대 국가라는 인식에서 이들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집권의 이유를 보여 주는 것은 이를 더 잘 수행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주는 것 이외에는 없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정책 수단이 신자유주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의지는 산업화를 민주화에 수렴시키려 하나 현실은 민주화를 산업화에 수렴시키는 것이며, 이는 어쩌면 이전 정권보다 더한 경제적 배치와 상황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 정부가 경제와 관련해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그저 이들의 본질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촛불혁명 당시 탄핵에 동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 정부도 대중의 움직임에 의해 탄생했고 또 거기에 신경 쓰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촛불 정신인가다. 눈에 보이는 촛불혁명의 한 가지 공통된 목표는 물론 대통령 탄핵 혹은 퇴진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 다양한 열망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의 억울함부터 청년의 불안한 미래와 여성에 대한 차별까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표출한 불만과 간직한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이라는 공통의 목표 이외의 것은 억압당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서로 갈등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는 현행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서 나왔거나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촛불혁명은 최소한 현재까지는 87년 체제에 대한 일종의 보수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87년 체제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경제문제’가 눈앞의 과제가 되면서 갈등의 지형이 퇴행하고 있다. 현재의 정치 지형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촛불혁명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갈등의 지형 자체를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성장, 고용, 복지의 관계가 이미 어긋한 시대, 제4차 산업혁명의 전망이 어른거리는 시절에 이는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10월호 통권62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