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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편이냐? 그리고 너는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

1960년대 미국에서 반전운동이 거세질 때 이런 노래가 있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1980년대 격동의 시대가 지난 후 한국에서 어느 시인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노래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전선이 분명했지. 그리고 각자가 그 전선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전선에 오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지 않았지.’

지금은 둘 다를 묻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조국 법무부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고, 또 조국 법무부 장관 자신에 대해서는 그가 서 있는 자리와 그가 걸어온 길이 부합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묻지 않는다. “검찰 개혁”이라는 말이 허공에 맴돌 뿐이다.

1960년대의 미국과 오늘날의 한국은 분명 다르다. 베트남에서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투하했던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이때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묻는 것은 거리감은 있었을지언정 가상에 기초한 질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 편 아니면 저쪽 편”이라고 하는 단정은 다양한 욕망과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성립하는 상상적 질문의 폭력이다.

물론 “검찰 개혁 대 법무부 장관 사퇴”라는 구도 속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은 순진하거나 적의 편을 드는 말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편에 서는가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전선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그 전선에서 싸워서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도 최소한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시절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서 있는 자리만큼이나 걸어온 길이 중요하다며 물을 때, 거기에는 분명 세대 논쟁이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복잡한 사회학적 논구를 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386세대”라고 부르는 특정 연령층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인간의 생물학적 순환에서 특정 시기에 특정 연령층이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 혹은 운fortuna이 특정 연령층에 그런 행운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령 변수를 제거하더라도 386세대가 ‘과잉 대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또 역사나 운명의 여신이 벌인 장난이었다면 그건 온전히 자신의 몫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 대학 학생들이 “공정”이라는 구호 아래 벌이는 움직임이 달가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공정을 말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그럴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좀 더 나은 조건과 그렇지 않은 조건 사이의 공정은 더 큰 사회적 그림 속에서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할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새로운 사회 연대성의 수립이 필요할 텐데, 그 기반은 시민성의 보장이다. 시민성의 보장은 모든 차별의 금지와 삶의 보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적 권리를 복지국가 황금시대에 서구가 보장했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원리적인 의미에서 근대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개인의 해방이야말로 근대성의 원리라 할 수 있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는 다양한 연원이 있는 전근대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근대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법률적 조치뿐만 아니라 “문화 전쟁” 또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문화 전쟁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라도 시민성의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질문에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이라고 대답할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10월호 통권72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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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판결과 ‘권리들을 가질 권리’

‘포스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중의 고통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과거가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미래는 우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시작해서 포스트포디즘을 거쳐 포스트신자유주의를 지나 포스트자본주의까지. 여기에 포스트파시즘과 포스트트루스까지. 뭔가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그 속에 머물고 있으며, 세상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도리어 뒤로 떠미는 바람이 더 거센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뒤로 떠미는 거센 바람에 과거의 것이 실려 오면서 “귀환”이 포스트 시대의 주조인 것처럼 보인다. 직접적으로는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치적 대응으로 시작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 전쟁’과 대중적, 민족적 대립은 역사적 잔해의 귀환이다. 물론 이 사태가 단순한 귀환은 아닐 것이다. 분명 여기에는 미래를 향한 불씨가 있다. 다만 역사적 잔해 속에 묻혀 있을 뿐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누구 말대로 “지정학의 귀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자유주의적 국제 체제의 붕괴를 가리키는 지정학의 귀환은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지역 패권 추구, 터키와 인도 등의 새로운 위치 잡기 등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를 추구하는 일본의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태세 전환의 시도가 도드라져 보인다. 북한이 핵무장과 그 해결 과정에서 추구하고 있다고 알려진 “정상국가화”라든가 한국 정부가 이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 일본과의 대립 속에서 주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모두 지정학 속에서 행위자로서 자리 잡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일지만 이러한 지정학의 귀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민족주의다. 서구에서 근대국가가 ‘민족-국가’라는 특유한 형태를 취했고 20세기 이후 이것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낯선 일은 아니다. 지구화 속에서 민족주의의 시대가,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주장이 나온 바로 그 시점부터 에스닉과 종교 등 다른 갈등이 터져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의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적 침략의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국가의 추구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억압적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족주의의 귀환’은 봉인된 파괴적 힘이 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한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에도 예외는 아니다. 민족주의가 인류 공동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과도적인 단계라는 자유주의자들의 바람과 달리 민족주의의 일반화는 중첩된 갈등을 낳았다. 크게 보아 지배적인 민족일지라도 특정 지역에서 ‘소수민족’일 경우 억압을 피하지 못했으며, 제국주의에 지배받는 피억압 민족도 자기보다 하위에 있는 민족 집단에 대해 제국주의와 유사한 태도를 보였다. 이른바 민족 내부에서는 민족 대 반민족의 이름으로 소수자나 반대파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일본과의 대립 속에서 기술 자립을 위해 노동조건의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든가, 불매운동에서 민족(?)자본에 대한 옹호가 나타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우려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격렬한 싸움은 가끔 그 싸움이 왜 일어났는지를 잊게 한다. 한일간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원인을 빼고 해법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적 발단은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해 해당 일본 기업에 손해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강제징용 자체가 있었는지 여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 한국이 받은 3억 달러의 성격, 그리고 이것으로 개인들의 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여부다.

우선 강제징용 문제는 두 가지 다른 쟁점을 제기한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식민지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중첩되어 있는 것이긴 하지만 어떤 체제 하에 살던 개인이 인간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에 관한 문제다. 1910년 대한제국과 일본은 “한일병합에 관한 조약”을 맺어 대한제국 전체에 관한 통치권을 일본 황제에게 양여하기로 한다. 이로써 한국 인민은 법적으로 일본 황제의 신민이 되었다. 이런 사태가 1965년 이후 무효화되긴 했지만, 한국은 원천 무효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일본은 당시에는 유효했으나 대한민국 수립 이후 무효화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일제강점기 한국 인민의 ‘강제동원’에 대한 입장 차이를 수반한다. 하지만 설사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대해 ‘합법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강제징용된 개인의 권리까지 무효화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런 개인의 권리를 통치권과 무관한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통한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는 개인의 권리와 관련해서 좀 더 일반적인 시사점을 준다. 두 나라는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도 맺었는데, 일본은 이로써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본다. 여기에는 청구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 간의 조약으로 개인의 권리가 무효화될 수 있는가라는 쟁점이 있다. 청구권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이 있는데, 앞서 보았듯이 양국 사이에는 여전히 이견이 있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일본 측에서도 국가가 가지는 외교 보호권을 포기한 것이지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외교 보호권의 포기와 개인 청구권이 유효함은 양립가능한 일인가?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는 깨달음과 마주한다. 20세기의 가장 특유한 정치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말처럼 상황과 우연의 결과물로 미국으로 건너가 1951년에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지만, 그 이전까지 거의 20년간 국적 없는 난민으로 살았다. 이 경험 속에서 그는 권리들을 가지려면 단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했다. 권리를 가지려면 인간은 우선 정치공동체의 일원이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구체적인 권리들에 앞선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아렌트의 이런 깨달음은 근대의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이 가진 추상성을 드러내며, 현실에서 이것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권리들을 가질 권리”에 대해 말한 바로 그때부터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제적인 제도와 활동의 발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적 없는 사람들과 난민들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에서 설사 정치공동체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오늘날 지정학의 귀환은 ‘민족-국가’와 민족주의의 이름 아래 정치공동체 내부에서 많은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강제징용 손해 배상 판결은, 어느 정도로 실효성이 있을지 아직 모르지만,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려 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누구나 과거를 딛고 내일로 나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동아시아 세계에서 일본의 침략과 만행으로 벌어진 과거사에 대한 청산 없이 의미 있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청산은 국가 대 국가 사이의 관계 재설정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극단의 시대이자 진보와 야만이 교차한 지난 세기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어떤 정치공동체도 모든 사람의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보고 있는 인권의 목록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권 자체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다시금 정치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할 때, 그리고 그러한 인권 자체가 다시금 후퇴한다고 여겨지는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19세기에 프랑스의 종교사가인 에르네스트 르낭은 민족을 “나날의 국민투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 인간의 권리, 이 권리를 보장한다는 정치공동체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권리들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공동체를 나날이 형성하는 투쟁이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고 행사하는 길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어떤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은 그러한 권리를 위한 투쟁 속에서만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9월호 통권71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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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해방, 사회주의

 

얼마 전 한 라디오방송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짧게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미리 받아 본 질문지에 적힌 내용은 꼭 필요한 질문이긴 했지만,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이런 식의 인터뷰를 여러 번 했던 사람에게는 흥미가 떨어진 것이었다는 말도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짧은 시간에, 그것도 어떤 영국 작가가 커뮤니케이션의 역사에서 “실수”라고 말한 적이 있는 전화를 통해 조리 있게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누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이건 저렇게 대답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꼭 필요한, 다시 말해 흔한 질문 가운데 그렇지 않은 질문이 하나 끼어 있었다. 대략 질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면 사회주의/공산주의와는 어떻게 다른가?’ 인터뷰 때에는 이 질문을 살짝 틀어서 ‘정의의 문제’로 바꾼 다음, “공유부에 기초한 기본소득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고전적인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좀 더 시간이 많고 대면한 상태의 인터뷰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설마 농담이시겠죠? 사회주의/공산주의야말로 노동에 따른 분배에 충실한 사회입니다. 도리어 자본주의가 노동에 따른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사회죠.’

내 대답이 여기에 그쳤다면 특정한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해 해설하는 일을 한 셈이다. 그러면서 진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바뵈프에서 시작하는 현대 공산주의는 ‘공동 소유, 공동 노동, 공동 향유’라는 원칙을 간직해 왔다. 물론 현실사회주의에서 이 원칙이 얼마나 철저하게 관철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현실사회주의가 ‘전 인민의 소유’나 ‘국가 소유’라는 방식으로 공동 소유를 설사 실현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나타난 결과가 권력에 따른 위계와 불평등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권력의 문제, 국가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형식적 소유의 문제와 상관없이 노동과정에서도 관철되는 문제였다는 것도 드러났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혹은 선동적인 수준에서 현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하고자 한 일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종식하고 진정한 인간의 역사를 열겠다는 것이었다면, 포스트자본주의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은 세계지도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 라는 말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사회주의에서의 인간의 영혼」(1891년)은 이런 점에서 흥미로운 글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사회주의가 “공동체의 각 구성원에게 물질적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다시 말해 “삶에 필요한 기반과 적절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개인주의다. 이때 그가 말하는 “진정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개인주의”는 “그 누구도 재물과 재물의 상징들을 쌓아가는 데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오스카 와일드가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예술이다. 그리고 그 기초가 개인주의다. 그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예술은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다. 나는 심지어 예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개인주의의 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20세기 최대의 아이러니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한다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다시 억압적 체제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이 아이러니는 민중 혁명 속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해소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해방의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이 아이러니는 언제고 다시 등장할 것인데, 이때 우리는 어떤 방향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전제는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공동의 향유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공동의 향유는 말 그대로 개인들의 삶의 토대를 확보하는 일이 된다. 물질적인 것을 말 그대로 물질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그 위에서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각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이때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개인주의의 참뜻이 드러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등에 대해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우려할 일이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미 이렇게 선언한다. “마치 시골의 신사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풀은 자라나는 것처럼, 인류가 삶을 즐기면서 노동 대신 인간의 목적이 되어야 할 우아한 여가를 보내거나,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고 아름다운 것들을 읽거나 그저 세상을 관조하며 감탄과 기쁨을 느끼는 동안, 기계는 필요하고 힘든 일들을 모두 처리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사회주의/공산주의는 20세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경제적 권력이기를 멈추고, 말 그대로 인간적 삶의 토대가 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7~08월호 통권70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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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가 권문석을 추모하며

 

육 년 전 급작스러운 그의 죽음을 접한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자리의 이름에 “사회운동가 권문석”이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속에 꼬박꼬박 그가 떠나간 날을 지나고 있다.

사회운동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로 인식된 이후 등장한 현상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다수의 힘으로 이루어질 터였다.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가 되자, 이 변화에 대한 태도 속에서 이른바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맑스주의 등등.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가 다수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 사람들은 그 다수를 구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와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 속에서 사회운동이 탄생했다. 사회운동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처럼 거대 담론을 가지고 국가를 투쟁의 중심 지점으로 보는 것부터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사회운동까지,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가 되었다.

사회운동을 선택한 사람들은 햄릿이 말한 것처럼 “시대가 탈구되어 있다”라고 생각했고, 사태를 제자리에 놓는 비판을 시도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다. 권문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학생운동가로서 성년의 삶을 시작한 그가 진보정당의 활동가로, 정책 기획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상황은 많이 변해 있었다.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은 적극적인 전망을 내놓기는커녕 과거의 성취를 지켜내는 것도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여성의 권리 등 새로운 권리 운동의 등장과 생태적 위기에 맞서는 환경 쟁점의 부상에 대해 힘겹게 즉자적으로 대응할 뿐인 상황이었다. 이 바탕에는 “보편적 계급”, “세계사적 사명을 가진 계급”으로서의 노동자운동의 정체성화와 주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지역에 따라 이미 오래전에 감지되었으나 한국에서는 늦게까지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몰랐다기보다는 기존의 진보운동이라는 틀로 다 욱여넣으려고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혁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꾸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 원인을 다 드러내기는 어려우니, 일단 기존의 성취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해 두자. 굳이 하나를 더 들자면, 추상적 대의와 현실적 전략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자신을 구성하게는 하지만 한번 구성된 정체성을 바꾸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러니 목숨을 건 도약이 필요했을 텐데, 그것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일이긴 하지만 자유낙하는 아니었다. 그것은 적절한 착륙 지점에 도착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게다가 허공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기에 그 어떤 준거점도 주위에서 발견할 수 없이 감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의 권문석이 이 일의 선두에 섰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보다 땅에 발 딛고 서기를 원했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가 그를 그 무엇보다 “사회운동가”로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 사회운동가였다면, 오늘날에는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게 사회운동가의 운명이 되었다. 사회운동가 권문석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와 알바노동이라는 형태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어떤 것을 찾아내려고 했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알바들의 내적 힘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변화의 원동력이 되도록 만드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면, 알바노동의 가시화는 변화하는 우리의 노동 현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알바들이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가리키려는 시도였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권문석을 창립 회원일 뿐만 아니라 명예 의장이라고 생각하며, 알바연대는 그를 대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그가 내세운 의제, 그가 개척하고자 한 활동이 조금씩이나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면, 단두대로 가면서 시드니 카턴이 했던 말을 반복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내가 지금껏 했던 어떤 일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이라네.” 이런 점에서 조숙한 사람, 시대와 불화를 일으킨 사람과 함께했던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6월호 통권69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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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진실, 분개의 정치

 

세월호 5주년을 지나면서 거리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많아졌다. “기억 너머 진실로.” 세월호 사건 속에서 함께 아파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의미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문구가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또 그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출발점으로 “진실”이 필요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날 때 “기억”은 격정을 멈추고 온전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리라. 하나는 세월호에 대해 끊이지 않고 나오는 폄훼와 왜곡이다. 지면에 옮기기조차 저어되는 모욕은 사건 자체를 넘어 인간성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낳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건의 총체적 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러저러한 사실조차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기대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바람이 우리가 “기억 너머”로 나아갈 때 다가올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억을 가지는가에 따라 진실도 다르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억은 하나의 틀이며, 가변적인 쟁점이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과 진실은 아마 왕복운동을 하면서 각각을 특유한 방식으로 구성할 것이다.

 

기억과 진실, 과거와 현재의 가변성은 5월 광주민중항쟁을 둘러싼 쟁투 혹은 그 역사적 사건의 이용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꽤 오랫동안 광주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자 한 “신군부”에 맞선 민주화 투쟁과 폭도들에 의한 무질서 사이에 형성된 전선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거대 서사 속에서 비무장 시민을 향한 무차별 총격이라든가 북한군과 간첩의 개입 등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등장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19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수립되면서 광주는 이 나라를 만든 가장 최근의 민중 항쟁으로, 민주화를 향한 거대한 발걸음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항쟁 이후의 광주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그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평가하려 하지 않거나, 이른바 흠집을 내기 위한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형식적으로 광주항쟁을 부정할 수는 없었는데, 아마 우리는 여기서 민주주의 담론이 가지는 힘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광주의 운명을 감안할 때 최근에 도드라지게 보이는 광주에 대한 폄훼, 모욕, 왜곡은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당연히 첫 반응은 이럴 수 있다. “광주에 대한 평가는 이제 끝난 것 아닌가?” “도대체 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 하지만 반복될 뿐만 아니라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광주에 대한 폄훼, 모욕, 왜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날 가짜 뉴스 혹은 사실 왜곡을 통한 대중 동원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이를 “포퓰리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이때 포퓰리즘은 사회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는 정치 전선을 구축하는 담론적 전략이다. 이 전략에는 다양한 소재와 정체성이 동원될 수 있고, 우리의 경우 분단과 반공주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반공이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배치를 감안할 때 포퓰리즘적 동원 전략의 일순위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모호할 것이 하나도 없는 북한군 개입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과 관련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동원을 위해 거짓 뉴스나 악의적 왜곡을 하는 발화자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듣는 수신자의 처지다. 오늘날 포퓰리즘의 발흥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따라 경제적 손실을 입고 정체성 정치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 예컨대 백인 노동자계급의 “분개의 정치”로 설명하는 것은 이런 점에 주목한 것이다. 과거에 자신이 사회의 주역이었고 자기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 분개의 정치의 조건이 형성된다.

따라서 이 조건을 바꾸는 것이 문제다. 정체성의 정치가 가져온 성취, 즉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이 배제당하거나 차별받는 것이 아닌 일이 되게 만든 것을 보존하면서도, 정체성의 정치가 가져온 또 다른 분할선이 대립선이 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이는 결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공통성에 근거하고,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이는 보편성을 설정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때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특유하게 결합해서 적절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 시절이 있었다. 자본주의 황금기 혹은 복지국가 황금기라 불리던 때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주로 남성 시민에게 완전고용이라는 정책적 목표 아래 적절한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동자-시민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여성은 배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오늘날 더 이상 양적 성장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파괴적인 기술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면, 과거처럼 노동자-시민의 구성으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활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만약 기본소득이 모두의 것인 공유부에 대한 몫으로 정의되고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새로운 보편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가 설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은 이해당사자-시민일 것이다. 이는 인민주권에 맞먹는 새로운 권리의 지평을 여는 일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5월호 통권68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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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선택이다

앙드레 지드가 자신의 유일한 ‘소설’이라고 한 『위폐범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제도와 인습에 대한 반항뿐만 아니라 거짓된 세계 속에서 “진정한 삶과 의미”를 찾을 가능성 혹은 이를 위한 분투를 경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과거에 반항해야 할 혹은 전복해야 할 제도와 인습은 좌파에게 꽤나 명료해 보였다.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라든가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혹은 “독점자본의 정치적 지배의 테러적인 형태”인 파시즘이거나 이것도 아니면 “부르주아지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집행위원회”로서의 국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1989∼91년 이후 이런 현대의 신화는 종말을 고했다. 물론 그 신화를 구성했던 신화소神話素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데, 이는 “맑스주의를 낳았던 상황을 넘어서지 않는 한 맑스주의는 우리 시대의 철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사르트르의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 그러할 뿐이다.

계속해서 좌파라는 말을 사용하자면, 좌파에게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역사의 담지자 혹은 혁명의 주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혁명의 주체라고 생각했던 “노동자계급”이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노동자가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적으로 그만큼의 중요성만 있는 사회학적 범주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의미의 노동자마저 사라져갈 운명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자칫하면 신화는 그 비극성마저 잃어버리고 희극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진정한 삶과 의미를 찾는 일이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일이라 할 때 전복의 대상을 상실한 것은 삶과 의미를 구성할 틀을 상실했다는 것과 같은 일이 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계속해서 하던 일을 하는 것은 제도와 인습을 전복하는 일이 아니라 인습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인습의 포로가 된 것은 한편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신화와 정신적 사랑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육체적 패배 속에서도 지속되는 정신적 사랑.

육체적 패배와 정신적 사랑의 위태로운 동거를 끝내기 위해서는 사건의 경험 속에서 삶과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사건은 저절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을 경험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구성하고 사건 속으로 돌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정향이 필요하다. 이 정향의 설정은 결단의 다른 말이기도 할 텐데, 이 결단이 불장난이나 가망 없는 도박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세계를 제대로 바라볼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앙드레 지드는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던 외사촌누나를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는 흔히 말하는 신비주의적 사랑이었고, 이는 결혼한 이후에도 신비주의적 사랑의 행태, 즉 육체적 관계나 쾌락이 없는 정신적 사랑으로 지속되었다. 이런 정신적 사랑은 북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경험한 대지와 동성애의 발견이라는 대립적 상관물과 병치된다. 그리고 이러한 병치는 그의 정신적 위기의 지속적인 근거가 된다. 하지만 청년 마르크 알레그레와의 사랑, 이를 알게 된 아내 마들렌이 지드가 마들렌에게 평생 보냈던 편지를 불태워 버린 사건 등을 겪으면서 그는 1926년에 발표한 자서전을 통해 동성애 경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내가 편지를 불태운 사건은 앙드레 지드에게 해방이자 부채 청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청산해야 할 부채는 무엇이고, 맞이할 해방은 무엇일까?

사르트르를 다시 떠올리면 우리의 과거를 낳았던 상황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철학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몫은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그것은 과거의 상황을 연장시키는 것, 새로운 상황을 지연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삶과 의미를 찾는 문턱을 넘는 일이 될 것이다. 비록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4월호 통권67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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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인식과 새로운 문제

 

토머스 페인은 『상식』 머리말에서 “시간은 이성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만들어 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에게 시간보다 더 강한 원군은 없는 것 같다. 비록 유토피아가 저 멀리 지평선에 아스라이 보일지라도 꾸준히 가다 보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 강한 동력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5·18 망언’과 이를 부추기고 있는 인식, 의도, 발언 등을 보면 페인의 말이 꼭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진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커진다.

사실 5·18이 북한군이 개입해서 만든 폭동이라는 망언의 의도와 인식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반공을 기초해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분단의 초기 단계를 넘어서려는 폭력적인 시도였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유아기를 보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를 주도한 냉전-반공 세력이 이른바 개발독재 체제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해 갔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정통성의 문제이건 이념의 문제이건 아니면 일상생활의 문제이건, 체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그에 대한 저항도 커졌던 것이 한국 현대사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5·18은 사실 하나의 비가역적인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이 몸으로 저항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따라서 아무리 군대의 힘으로 이를 억압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최후의 수단을 장기적으로 막을 다른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전히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면, 그 진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1980년대 초반, 시절이 아무리 암울하다고 느꼈다 할지라도 커다란 충돌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고, 이는 1987년에 사실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이른바 ‘87년 체제’에 살게 되었다.

87년 체제에서 냉전반공주의는 여전히 살아남았지만 최소한 폭압적인 군부독재는 정당성을 상실했고, 냉전-반공 세력은 새롭게 보수라는 이름을 걸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보수주의가 그 적절한 내용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보수는 ‘친자본’이라는 지향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없는 벌거벗은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신자유주의 하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된 것이 그들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라는 인물은 자기 역사에서 보수의 기반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미에서 보수주의를 나름대로 재건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당한 자기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그 보수주의는 침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촛불혁명과 탄핵이라는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5·18 망언은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갈등의 축을 옮김으로써 자기 정당성과 자기 활동성을 확보하려는 냉전반공주의의 끔찍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는 자유한국당에게 이는 강렬한 유혹일 텐데, 결국 ‘독이 든 사과’로 판명 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 내용이 가짜라서만이 아니라 반공주의를 가능케 한 냉전이라는 지형이 세계사적으로는 철지난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조차 서서히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냉전의 원인은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이념적이었다. 1989∼91년에 냉전이 끝나고 자유주의 이외에 다른 이념은 없다는 이념이 잠시 지배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트럼프주의의 발흥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간 일이 되었다. 아마 국제 질서는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지정학의 부활’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의 부활의 국내적 효과는 갈등의 축을 외부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 내부의 갈등의 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사회 양극화와 여기에 수반되는 사회적 지위의 변동 등은 해당 사회의 제도적, 문화적 배치 속에서 다양한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태극기 부대가 그저 냉전반공주의에 사로잡혀 거리로 나온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기존에 누리던 상상적, 실제적 지위가 무너지는 경험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며, 이는 어찌되었든 배출구를 필요로 한다. 태극기 부대와 5·18 망언은 이런 배출구가 퇴행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드는 완충제와 그 사회변동의 긍정적인 방향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공론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5·18 망언은 낡은 것이지만, 이러한 사태가 제기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3월호 통권6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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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을 위하여

해가 바뀌는 것이 자연적인 변화와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위적인 구분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덕분에 우리는 기억과 망각, 성찰과 구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시대』 독자들에게 기억과 망각, 성찰과 구상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기억할 만한 것은 기본소득이 한 번 솟구쳐 올랐다 사라진 의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정책적 차원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경기도에 기본소득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내년에는 청년배당이 실시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망국적인 부동산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국토보유세와 연동한 기본소득 제도가 분명한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농촌과 농업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목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농촌/농업 기본소득’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에서 실시하겠다는 ‘청년 기본소득’과 같은 것도 그 내용과 상관없이 언급할 필요는 있겠다.

망각해야 할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망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건 기본소득 의제를 담아내고 실천할 적절한 정치적 틀과 통로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아니 더 진솔하게 말하면, 조직적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조직 자체를 망가뜨리고 또 추스르느라 다른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망각하고 싶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기본소득 의제 자체가 목표로 삼고 있는 ‘자율적인 인간들’의 결사체로서의 정치 조직을 형성하지 못하고, 심하게 말하면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의제와 충돌하는 낡은 관계들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여러 번 여러 사람이 반복했기에 이제는 진부한 격언처럼 들리는 말이 떠오른다.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과 망각을 넘어 성찰로 넘어가야 한다. 잠시 숨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이것이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면 말이다. 인간에게 성찰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성찰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점의 이동이 필요한 데, 성찰과 함께 탄생한 근대의 진리의 의지가 시점의 이동을 가로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찰은 진리의 의지가 좌절된 곳에서, 평범한 말로 하자면 소수파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수파의 좌절된 진리의 의지는 맹목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의지의 결사체가 낡은 유대로 전락하고 전략이 음모로 강등되는 상황은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성공한 혁명은 대중과 분리된 전위의 변증법적 결합을 통해서건, 함께 굶주리고 아파하고 싸우는 것을 통해서건, 융합의 파괴력을 통해서 가능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융합의 양식과 윤리가 바뀌었고, 이는 계속 바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로 말하려는 것, 완전고용, 노동조합, 복지국가 등이 시대의 토대이자 사회의 목표가 되는 시절이 지나갔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낡았지만 익숙한 것과의 이별, 닿지 못했지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 환상의 섬에서 벗어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하는 가다.” 자연적 수명을 가진 인간이기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처럼 현재를 구성하는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숙한 것이 비극이라면 시대착오적인 것은 희극이다. 그리고 희극이 시대를 드러내는 징후라면 비극은 미래를 향한 의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의 비극과 현대의 비극이 평행선을 이룬 비극의 대위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끌려가면서도 이를 거부하려 했던 페르소나와 자신의 힘을 믿으면서도 바로 그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스러져가는 캐릭터 사이의 충돌일 것이다. 물론 의지가 살아 있다면 그 충돌 속에서 그 의지는 다시 미래를 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여전히 충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여진이 있겠지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의지를 살려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내면의 소리를 듣는 연옥을 통과해야 한다. 그 충돌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마 진정한 의지는 거기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1~02월호 통권6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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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악에 맞서는 정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보면서 악의 진화를 알아차리고 악의 평범성 혹은 평범한 악에 대해 논구했다. 평범한 악은 추악하거나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종교적 악과 달리 범속하고 일상적이다. 아렌트는 평범한 악에 맞서 개별적 감수성인 양심을 내세운다. 아렌트 이후 악의 평범성 혹은 평범한 악은 어느덧 상식이 되었다. 우리와 한참 떨어져 있는 거대한 악만큼이나 일상 속에 악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다.

이런 상식에 맞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철학자 김진영은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으로 악의 평범성을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악은 “선과 악의 경계를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거나 도덕적 양심을 외면하는 그런 의지적인 악이 아니다.” 오늘날 악은 “선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 양심 자체가 이익을 따라서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부드러운 악이다.”

김진영은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게 악의 평범성이 시효 만료되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을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가? 선과 악이라는 구도는 불가피하게 경계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결국 경계를 짓는 일이 필요한데, 부드러운 악이라면 그만큼 경계 짓기가 어렵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경계가 유동적일 가능성이 크다.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과 마주하면서 당장 세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권력의 절대적 부패 가능성이라는 고전적 테제가 첫 번째이고, 영구 혁명이라는 맑스주의적 테제가 두 번째이며, “단단한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라는 근대성 테제가 세 번째다. 물론 이 테제들은 조금씩 수정해야 한다. 권력은 좁은 의미의 정치권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 사이에서 작동하는 힘의 관계를 말한다. 맑스주의 전통 속에서의 영구 혁명은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공산주의사회를 종착점으로 한다.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인간관계로서의 사회는 불가능하며, 아무리 미끄러진다 하더라도 잠정적인 고정점이 필요하다.

다시 부드러운 악이라는 사태에 맞서기 위해 경계를 짓는 일로 돌아가면 지속적인 경계警戒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물론 경계는 고발을 수반한다. 마키아벨리는 갈등과 대립의 사사화私事化를 방지하기 위한 공적 질서의 확립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고발의 중요성을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대립과 갈등을 공개적인 공적 권위를 통해 해결할 수 없을 때 고발은 격심한 사회적 불안정의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공공성publicness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다. 공적인 것을 가리키는 라틴어 publicus는 ‘성숙한’이라는 뜻의 pubes의 영향을 받아 사람 혹은 인민을 가리키는 populus가 변해서 생긴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성은 인민의 성숙을 조건으로 하며 또 이를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인민의 성숙은 어디서 오며,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대한 근대적인 대답은 도야Bildung겠지만, 고대적인 대답은 정의의 실현일 것이다. 정의가 자리 잡을 때만 공적 권위가 유지될 것이고, 이럴 때에만 개인적인 도야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대적인 의미에서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각자가 자기 몫을 가지는 것이다. 이를 근대로 넘기면 소유와 분배의 문제가 될 것이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그리고 공유에 대한 접근권과 공유부에 대한 몫의 권리 등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산에 대한 공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는 부드러운 악에 맞서기 위한 기반일 뿐이다. 하지만 이 기반이 사람들에게 자율적 시간 혹은 주권적 시간을 부여한다면 부드러운 악에 맞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에 기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도덕적 감수성을 날카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12월호 통권64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