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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악에 맞서는 정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보면서 악의 진화를 알아차리고 악의 평범성 혹은 평범한 악에 대해 논구했다. 평범한 악은 추악하거나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종교적 악과 달리 범속하고 일상적이다. 아렌트는 평범한 악에 맞서 개별적 감수성인 양심을 내세운다. 아렌트 이후 악의 평범성 혹은 평범한 악은 어느덧 상식이 되었다. 우리와 한참 떨어져 있는 거대한 악만큼이나 일상 속에 악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다.

이런 상식에 맞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철학자 김진영은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으로 악의 평범성을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악은 “선과 악의 경계를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거나 도덕적 양심을 외면하는 그런 의지적인 악이 아니다.” 오늘날 악은 “선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 양심 자체가 이익을 따라서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부드러운 악이다.”

김진영은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게 악의 평범성이 시효 만료되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을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가? 선과 악이라는 구도는 불가피하게 경계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결국 경계를 짓는 일이 필요한데, 부드러운 악이라면 그만큼 경계 짓기가 어렵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경계가 유동적일 가능성이 크다.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과 마주하면서 당장 세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권력의 절대적 부패 가능성이라는 고전적 테제가 첫 번째이고, 영구 혁명이라는 맑스주의적 테제가 두 번째이며, “단단한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라는 근대성 테제가 세 번째다. 물론 이 테제들은 조금씩 수정해야 한다. 권력은 좁은 의미의 정치권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 사이에서 작동하는 힘의 관계를 말한다. 맑스주의 전통 속에서의 영구 혁명은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공산주의사회를 종착점으로 한다.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인간관계로서의 사회는 불가능하며, 아무리 미끄러진다 하더라도 잠정적인 고정점이 필요하다.

다시 부드러운 악이라는 사태에 맞서기 위해 경계를 짓는 일로 돌아가면 지속적인 경계警戒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물론 경계는 고발을 수반한다. 마키아벨리는 갈등과 대립의 사사화私事化를 방지하기 위한 공적 질서의 확립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고발의 중요성을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대립과 갈등을 공개적인 공적 권위를 통해 해결할 수 없을 때 고발은 격심한 사회적 불안정의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공공성publicness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다. 공적인 것을 가리키는 라틴어 publicus는 ‘성숙한’이라는 뜻의 pubes의 영향을 받아 사람 혹은 인민을 가리키는 populus가 변해서 생긴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성은 인민의 성숙을 조건으로 하며 또 이를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인민의 성숙은 어디서 오며,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대한 근대적인 대답은 도야Bildung겠지만, 고대적인 대답은 정의의 실현일 것이다. 정의가 자리 잡을 때만 공적 권위가 유지될 것이고, 이럴 때에만 개인적인 도야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대적인 의미에서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각자가 자기 몫을 가지는 것이다. 이를 근대로 넘기면 소유와 분배의 문제가 될 것이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그리고 공유에 대한 접근권과 공유부에 대한 몫의 권리 등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산에 대한 공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는 부드러운 악에 맞서기 위한 기반일 뿐이다. 하지만 이 기반이 사람들에게 자율적 시간 혹은 주권적 시간을 부여한다면 부드러운 악에 맞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에 기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도덕적 감수성을 날카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12월호 통권64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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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어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서 쾨슬러의 소설 제목 『정오의 어둠』에서 따오는 것은 변주이긴 하지만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유토피아적 이념의 고양과 환멸이 교차했다면, 촛불혁명의 밝음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어둠과 대조된다. 한편으로 우리는 추상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구체적인 인격에 투사했지만, 일상의 삶은 추상적인 패러다임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는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가장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로 재산권의 신성함이다. 물론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부동산이다.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상관하지 않고 더 나아가 짓밟는 사태가 재산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설령 많이 양보한다 하더라도 자기 노동에 기초하지 않는 재산권이 지배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런 사태의 배후에 신자유주의가 있다고 간단하게 말해 버렸을 것이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그 무엇보다 경제적 자유를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가 기소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육을 사유화/사영화하고, 토지와 주택을 절대적 소유로 바라보는 태도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환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도리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집단적 심성을 파악하는 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인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라고 노래했지만,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이 땅에는 그 어떤 도덕적 준거점도 남지 않고 오직 개인과 ‘가족’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개인주의가 가장 강한 나라가 미국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의 경우 개인주의가 하나의 이념인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강요된 삶의 태도라는 점이 차이다.

사실 우리에게 이념적 지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근대화/산업화, 민주화, 통일 등이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보다 하위 범주로 진보, 복지, 인권 등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어느것도 이 정치체의 ‘좌표’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저 돈과 땅에 대한 사랑만이 넘쳐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기에 절차적, 추상적 민주주의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준거점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땅에서 진보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헌법 애국주의’에 기대고 싶은 유혹이 들 것이다. 하지만 헌법이 사회적 관계를 규제하는 틀이라 해도 이 틀은 다시 사회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 할 때, 헌법에 대한 호소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에 기초하여 사회적 관계를 바꾸려 해야하는가? 그것은 공동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노력에서 나올 것이다.

어떤 정치체의 공동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은 그 물질적 기초의 공동성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토지와 자연자원, 사회적 생산 등에 대해 모두가 몫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는 거의 신성시되고 있는 재산권의 범위를 재규정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정치적 지형을 볼 때 이는 새로운 ‘좌파’의 출현을 요청한다. 이 좌파는 낡은 체제의 위기에서 자양분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이제 출현하고 있는 미래에서 정당성과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에 대한 지적 인식, 공동성의 실천을위한 도덕적 헌신,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도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좌파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2천 년 전에 어느 랍비의 말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니라면 누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이 일을 하겠는가?”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11월호 통권63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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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을 생각한다

인간 지식의 불완전함과 인식의 불철저함으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보기revision를 해야 한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학을 보자면, 새로운 사료(사실)의 발견이나 증거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 나타날 경우 혹은 둘 다일 경우 과거를 다시 보는 작업이 집중적으로 벌어진다. 하지만 이 바탕에 가치나 지향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혁명을 ‘위대한 부르주아 + 민중의 혁명’으로 보지 않고 어중이떠중이(민중)가 정치라는 장에 난입하여 올바른 개혁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고 보는 ‘수정주의’가 냉전 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듯이, ‘광주사태’가 ‘광주의 민주화 운동’ 혹은 ‘광주민중항쟁’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87년 체제의 형성과 완성을 향한 움직임을 반영한다.

사실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내뱉는 말 ‘이러려고 * * 했나?’라는 말도 같은 행위다. 요즘 같아서는 이 말을 ‘이러려고 촛불혁명 했나?’ 혹은 ‘이러려고 그 추운 겨울에 우리가 거리에 나갔나?’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촛불혁명은 21세기에 비폭력적이면서도 상당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시민의 의지에 반하는 권력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기무사가 당시 대통령과의 ‘교감’ 속에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문건들이 나오긴 했지만, 거꾸로 보면 계엄령을 실시하고픈 마음은 있었겠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제도나 심성이라는 면에서 꽤나 완강하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사실 사태가 그렇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 일당이 보인 너무나 터무니없는 행태 때문이긴 하다. 당시 새누리당조차 탄핵에 동의했다는 것은 그저 대중의 움직임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에 우리는 민주적이고 개혁적이면서도 가깝게 느껴지는 스타일의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감동을 주었다. 격식 문제에서부터 과거사에 대한 이해까지 그는 사람들이 대체로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비핵화를 향한 남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른바 경제 영역으로 자리를 옮기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이 지난 두 번의 정권과 다른 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의 유일한 정책 수단인 최저임금 인상 추진도 어려운 경제 여건 앞에서 스스로 철회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집값 안정과 적절한 재분배를 위해서 꼭 필요한 토지 관련 세금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정부의 경제철학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간단하게 ‘부르주아 정권’의 본질이 드러났다고 비난하는 것은 편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본질’을 간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부는 자유주의 개혁 세력과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의 연합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오랜 꿈은 정상적인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민주주의로 미끄러져 갔고 1997년의 실질적인 평화적 정권 교체 속에서 제도적, 실천적 가능성을 발견한 후자는 실현 가능한 복지국가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의 공통분모를 찾자면 “경제적 공포”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성장을 지상 목표로 삼고, 여기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신자유주의자들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성장의 과실이 좀 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일 것인데, 이는 무엇보다 고용의 증대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또 하나의 강박을 더해야 할 것이다. 87년 체제를 거치면서 한국 현대사를 해석하는 두 개의 핵심어로 산업화와 민주화가 떠올랐다. 이 두 단어는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때 등장한다. 문제는 둘 사이의 관계다. 산업화는 개발 독재에 의해, 민주화는 그 속에서 민중의 저항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통속적인 이해 방식이다. 이것이 지난 20여 년 정도 지속되고있는, 현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 집권한 민주개혁 세력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자본축적, 고용 안정, 복지 등의 순환적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게 현대 국가라는 인식에서 이들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집권의 이유를 보여 주는 것은 이를 더 잘 수행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주는 것 이외에는 없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정책 수단이 신자유주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의지는 산업화를 민주화에 수렴시키려 하나 현실은 민주화를 산업화에 수렴시키는 것이며, 이는 어쩌면 이전 정권보다 더한 경제적 배치와 상황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 정부가 경제와 관련해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그저 이들의 본질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촛불혁명 당시 탄핵에 동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 정부도 대중의 움직임에 의해 탄생했고 또 거기에 신경 쓰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촛불 정신인가다. 눈에 보이는 촛불혁명의 한 가지 공통된 목표는 물론 대통령 탄핵 혹은 퇴진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 다양한 열망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의 억울함부터 청년의 불안한 미래와 여성에 대한 차별까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표출한 불만과 간직한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이라는 공통의 목표 이외의 것은 억압당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서로 갈등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는 현행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서 나왔거나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촛불혁명은 최소한 현재까지는 87년 체제에 대한 일종의 보수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87년 체제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경제문제’가 눈앞의 과제가 되면서 갈등의 지형이 퇴행하고 있다. 현재의 정치 지형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촛불혁명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갈등의 지형 자체를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성장, 고용, 복지의 관계가 이미 어긋한 시대, 제4차 산업혁명의 전망이 어른거리는 시절에 이는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10월호 통권62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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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주도 성장의 시대착오

촛불혁명에 뒤이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최소한 두 가지를 보여 주었다. 하나는 한국 민중의 완강한 저항이 폭발적 계기 속에서건 누적된 불만 속에서건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역사의 반복이며, 다른 하나는 매우 온건하고 질서 있고 상당히 기성 질서 안으로 편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그 저항의 고유한 성격이다. 특히 후자에 대한 분석은 훨씬 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므로 여기서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촛불혁명으로 인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모호한 성격이다. 아니 촛불혁명의 요구를 특정한 방향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정부의 태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의미와는 다르지만 “질서 있는 자본주의”를 만들겠다는 한국의 상상적 자유주의자의 오랜 꿈을 실현하려는 것일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성격이 모호하다는 것은 우선 폭발적인 대중의 지지 속에 당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으로 인해 그 이전 어느 대통령도 누려 보지 못한 지지도를 보이는 정부가 어떻게 이토록 소심한 태도를 보이는가다. 혹자는 최근의 논란 속에서도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을 지속적일 뿐만 아니라 발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태도 속에서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소득 주도 성장은 사실 그 말과 달리 소심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일부 우파가 여전히 “규제 완화”를 떠들긴 하지만 그런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임금 주도 성장”이며, 이것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소득 주도 성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름이야 어떠하든 넓은 의미에서 케인스주의의 부활인 것만은 분명하다. 피고용인의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될 때 경제적으로는 유효한 소비가 보장될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의 조건이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경제 운영 방식이나 사회제도가 피고용인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요소와 배열이 있는가고, 다른 하나는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이 가능한가다.

케인스주의가 경제학에 혁명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전후 자본주의와 복지국가 황금기는 고유한 역사적 배치와 내적 요인들에 의해 성립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의 생명 정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전쟁 기계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강조할 텐데, 최대의 총력전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여기서 중요한 배경이 될 것이다. 계급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사태를 보는 사람들은 그 이전에 있었던 계급투쟁의 격화와 타협의 드라마를 그릴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시각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대중의 주체화일 것이다. 전쟁기계로서의 국가의 국민 혹은 시민이건 계급투쟁에 나서는 계급 주체이건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 둘은 겹쳐 있다. 경제 운영과 국가 운영의 주체로서 말이다. 이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보통 ‘포드주의’라고 말하는 경제 운영 방식이었다. 고정자본의 대량 투입으로 인한 대량생산은 한편으로는 규율 있는 노동자를 필요로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 욕망을 자극받은 소비자를 필요로 했다. 이는 제도적으로 (산업)노동조합과 (부르주아적) 가족으로 나타났다. 물론 여기에 냉전과 탈식민화를 더해야겠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어떤 시기에는 천천히 또 어떤 때는 급격하게 사태가 바뀌었다. 그 사태의 변화는 신자유주의화와 탈냉전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과 관련해서만 살펴보자면 과거에 피고용인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대량생산 방식과 강력한 노동조합의 존재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변화했다.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시작된 노동의 유연화는 글로벌 노동력의 확대, 여성의 노동 참가 확대, 유연한 생산방식의 도입으로 이어져, 오늘날에는 “영구 임시직”이라는 새로운 범주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나라에서는 여전히 노동조합이 강력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조직률은 절반에서 2/3까지 떨어졌고, 새로운 존재방식의 노동력을 조직할 특별한 방법도 눈에 띄지 않는다.

또 다른 변화는 금융자본주의의 새로운 등장이다. 이를 완전히 새로운 양상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반복된 이행 국면에서 나타나는 금융화 현상이라고 볼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생산과 유리되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금융자본은 자본주의의 약탈적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이 속에서 이른바 ‘자본소득’이라고 분류되는 이윤이 크게 늘어났고, 이는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장려세제EITC 같은 수단밖에 없는 소득 주도 성장은 사태의 일부만 보고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득 불평등이 큰 것은 사실이고 현재의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일 때, 최저임금 인상은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이긴 하다. 하지만 강력한 노동조합과 같은 제도 없이 법정 최저임금을 소득 주도 성장의 주된 수단으로 삼는다면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더 큰 문제는 소득 불평등이 아니라 이른바 자산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사태다. 상상할 수 없는 서울의 주택가격은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현 정부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지만,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질서 있는 자본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능력주의’일 것이다. 엘리트 대학을 나온, 선한 자유주의자들인 그들이 보기에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은 능력에 따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총칼을 가진 군부 때문이건, 돈을 가진 재벌 때문이건 말이다. 그들이 소득 주도 성장과 함께 “혁신 성장”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있었던 ‘혁신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을 떠올린다. 기득권층에 맞서 현대화된 중간계급이 일으킨 반부패 운동 말이다. 물론 오늘날 적폐 청산이라고 부르는 이런 과제는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만이 적폐일까? 그들이 말하는 적폐를 청산하면 공정과 정의가 확보될까?

사실 정의를 위한 투쟁은 무엇이 정의인가를 둘러싼 싸움이기도하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갈라져 있는 현대사회에서 정의가 하나일 리 없다. 소득 주도 성장을 둘러싸고 표면적으로는 현 정부와 야당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싸움은 거기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만인의 적절한 생존을 위한 요구를 넘어서는 정의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의 탄생이 하나의 포퓰리즘적 계기였다면, 이제 이 국면이 지나가고 새로운 국면을 열 때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9월호 통권61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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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시대가 변하고 있는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지난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일부 언론과 이데올로그들이 합의문에 확실한 북한의 비핵화 원칙, 이른바 CVID가 담겨 있지 않다고 당연한 시비를 걸긴 했지만, 대체로 보아 새로운 시대를 향한 첫 걸음을 떼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열린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원내에서 진보로 분류되는 정의당의 성과는 애매하지만 제법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권자의 의사가 투명하게 반영되지 않는 현행 선거제도로 인해, 그리고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현재 누리고 있는 인기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이 커다란 승리를 거둔 것이 당장 눈에 들어오는 일이긴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몰락이 아마 더 큰 사태라는 점에도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당연히 자유한국당은 ‘쇄신’의 노력을 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적응’하려고 애쓸 것이다. 하지만 당내의 분파 투쟁을 제외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쇄신의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그건 이들의 진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흐름이 더 이상 시대 변화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자유한국당을 지지했던 대중의 열망과 욕망을 받아 안을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의 지배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을 많은 사람은 냉전과 분단,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찾을 것이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민주주의에서 이데올로기가 주는 환상적 만족이나 억압만으로 장기간 통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대중이 누렸을 실질적 이득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우리가 ‘산업화’라고 부르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 그에 따른 어느 정도의 분배였을 것이다. 냉전이라는 역사적, 지정학적 배경이 (이 속에서 희생당한 사람들과 무관하게) 한국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했다는 점에서 냉전과 반공은 최소한 한반도에서는 동전의 양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균열을 가져온 것이 이른바 ‘97년 체제’하의 사회 양극화였다.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이 깨지면서, 다수에게는 당장의 삶이 어려워졌다. 또한 저성장 국면에서 자본은 투기에 의한 수탈, 보조금을 통한 강탈, 임금 비용의 절감을 통한 초과 착취에 몰두했다. ‘갑질’은 이런 양태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일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에 포획당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없었다. 진보라는 세력조차 방어적인 투쟁에 몰두하던 시절에 당시 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욕망이 이명박이라는 일그러진 인물로 통해 투사된 것은 냉전과 반공이라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이를 대신할 그 어떤 공공선도 눈에 잡히지 않을 때 대중이 선택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일그러진 초상화가 아니었을까?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의 후광과 자신의 묘한 아우라 덕분에 대통령이 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반사회적 가족과 개인만이 삶의 준거점이 된 시절에 그나마 대중을 통합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 덕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환상은 그의 오랜 벗이 드러나고 자신의 시간은 드러나지 않은 채 산산조각이 났다.

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일종의 경로 의존성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두 가지 과제는 각각 무겁기도 하고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하나는 “적폐 청산”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좀 더 민주적이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람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는 일일 것이다.

우선 적폐 청산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 사회의 나머지 부분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어딘가에, 주로는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잘못된 관행이 쌓여 왔다는 것으로 쓰이는 게 적폐다. 하지만 적폐 따로 정상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적폐만을 암세포 적출하듯이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자리 창출의 경우, 공공부문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어느 정도 만드는 것은 가능하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과잉생산의 덫에 빠진 현 국면에서, 특히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가 적절한 수준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현 정부가 기대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 활성화, 공정한 거래를 감독함으로써 다수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활력 제고다. 그런데 전자는 제한적인 효과만 있을 것이고, 후자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양자를 관통하는 남북 관계의 개선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 불확정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다. 물론 이것은 앞서 말한 자본주의의 현 국면을 반영하는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적’ 방식이다. 문제는 이것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최근 거세진 반페미니즘, 예멘 난민의 제주도 입국으로 불거진 포비아 등을 볼 때 적폐를 청산하고 돌아갈 우리의 정상적인 과거는 없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일자리 창출 같은 방식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정상적인 경제란 것도 없다. 사태는 언제나 중층적이고 정상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요구할 뿐이다.

자신의 삶의 비참함 때문에 타인을 혐오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새로운 사태를 상상할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가지는 것만이 언제나 위기의 물결을 새로운 ‘정상’으로 데려다줄 물길로 만들 수 있다. 만약 기본소득을 포함해서 우리가 넓은 의미의 경제민주화라는 것을 달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파도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먼저 적폐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익숙함이라는 적폐 말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7~08월호 통권60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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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68년 혁명’ 당시에 나왔던 유명한 슬로건 가운데 하나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다. 물론 “리얼리스트가 되라!”라는 슬로건과 함께이긴 했지만, 이 슬로건은 68 혁명의 유토피아적 성격을 상징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없다!”라는 주문 속에 ‘혁명성’이 거세된 좌파의 소심함을 꾸짖는 목소리가 되었다.

유토피아적 기운이 가득했던 시절에서 꽤 긴 시간을 지나온 오늘날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불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혹은 우리가 말하는 변화는 어디까지인가?

과거의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인간의 해방을 ‘생산력의 발전’에 건 도박이었다면, 아마 지금이야말로 해방을 이룰 확률이 가장 높은 시기일지 모른다. 생산력의 발전이 단순히 물질적 풍요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 시간인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유 시간을 확대할 수 있을 때 해방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좁은 의미의 경제적 변화가 이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며,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부터 새로운 국면을 연 여성운동과 반인종주의운동은 경제적 해방이 그 자체로 인간의 해방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 민주주의와 해방을 요구한다고 하는 신좌파운동, 노동운동 내에서 기성 질서의 차별이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폭로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는 여성과 특정 인간 집단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또 다른 구조와 문화가 존재하며 거기에 맞는 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변화의 방향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꾸는 것이 있다. 이는 자유란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헤겔적인 의미에서만 해방적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근대의 해방이라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에는 ‘자연의 정복’을 통해 인간의 물질적, 자연적 제약을 극복한다는 방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통한 자연의 정복이 인간적 삶을 발밑에서 허물고 있다는 자각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재인식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은 논리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 해방을 지향할 수 있는 오늘날,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하고, 바로 그 때문인지 조금이라도 물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다면 거기서 위안을 찾을 것만 같은 상황이다. 여성해방과 인종해방 같은 주제는 보편적인 것으로 고양되기는커녕 특정 집단의 요구로 폄훼되고 있고, 이에 따라 사회적 분할을 자극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재인식은 발화자의 현실적 위치에 따라 너무나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으며, 이는 행동을 가로막는 것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방이라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는 더 이상 불가능하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인가? 물론 포스트 공산주의 시대,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없다’라는 시절을 거쳐 온 우리에게는 ‘최소 원칙’이라는 게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개인의 권리, 생태적 지속 가능성, 차별의 부재 등이다. 말 자체로는 상식적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보장이 없는 권리는 추상적 문구이며, 산업주의를 뒤집는 실질적 조치가 없는 생태적 지속 가능성은 헛된 구호이며, 무조건적 평등과 반권위주의가 관철되지 않고서는 차별의 철폐가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각각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마련된다는 것 자체가 그 조건들 사이의 충돌을 수반할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 조건들을 조화시킨다는 것 자체가 진정으로 불가능한 요구일지 모른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근대적 요구는 평등-자유égaliberté일 것이다. 평등-자유는 개인과 모든 사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자는 요청인데, 이때 각 개인들은 존 던John Donne이 노래했던 다음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도 나를 작아지게 하나니, 그것은 내가 인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냐고 묻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6월호 통권59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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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혁명과 혁명의 새로운 정신

1968년 혁명에 어떤 혁명적 요소가 있었다면 그건 ‘혁명 속의 혁명’이었을 것이다. 어떤 연구자의 분석처럼 1968년 혁명의 독특한 면모는 지배세력에 대한 반항뿐만 아니라 기존 반체제세력의 나약함, 부패, 공모, 태만, 오만 따위에 대한 반항이 있었다는 것에서 나온다. 기존 반체제세력인 ‘구좌파’에 대한 공격 양상은 그 방향이나 정도에서 지역마다 달랐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곳에서는 나약함과 공모, 다시 말해 체제를 변혁한다는 좌파의 본령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죄목이었고, 중국이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곳에서는 부패와 태만, 즉 자기가 ‘대표하고 지도한다’라던 인민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도덕적 고발이 있었다. 비록 도덕적 고발이 더 폭력적인 결과를 가져오긴 했지만 말이다.

1968년 혁명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면, 해당 사회를 근대화시키는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적 변화라고 설명하면서 자기 변화를 옹호하는 레지 드브레 식의 평가이든, 자본주의 전환의 소실 매개자라고 하면서 무시하려는 태도이든, 아니면 세계체제론자답게 1917년의 지양이라는 월러스틴 식의 예언자적 시선이든, 다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혁명 속의 혁명’이었기 때문에 1968년 혁명 자체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그 정신은 언제나 재활성화된다. 자본주의의 전환이든,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이전 혁명의 지양이든, 영구혁명이든, 혁명은 혁명의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이중의 의미에서 혁명의 (새로운) 정신이 사라진 지 오래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급진적 이념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주류 반체제 운동은 이미 그 끝과 궤적을 알 수 없는 점진적인 변화의 열차에 올라탔다. 1968년 혁명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나약함’과 ‘공모’라는 죄악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주류 반체제 운동이 이런 상황이라서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혁명 속의 혁명, 혁명의 새로운 정신도 고인 물처럼 썩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태만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만이 아닐까? 높은 이상이 있고, 굳은 결심이 있으며, 무엇보다 헌신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검은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프랑스대혁명으로 시작된 근대 정치문화의 일부분인 혁명적 결사에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난점이 있다. ‘대중’과 구별되는 이 결사가 어떻게 대중을 대변할 수 있는가, 자기의식이 어떻게 보편적 지향일 수 있는가 등등의 난점 말이다. 누군가는 변증법에 기대 ‘민주집중제’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하방에 기초한 대중노선’을 말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디어와 방식이 어떤 때는 잘 작동하기도 했고, 또 어떤 시기에는 말장난에 그치기도 했다. 아마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결국 개방성과 수행성만이 잠정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런 구좌파적 해결 방식은 1968년 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잠정적 진리조차 매우 불안정하여 실체적인 근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보편성은 기각되고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진리의 담지자이자 방향의 제시자로서의 전위적 결사체는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의는 편재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여전히 추구할 만한 가치인 것으로 보일 때 이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어떤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의 페미니스트 이론가는 오래 전에, 피억압자 대변하기가 아니라 그들에게 ‘말 걸기’를 제안한 적이 있다. 좀 더 나중에 영국의 사회학자인 케빈 맥도널드는 1968년 혁명이 사회운동의 의제와 방식을 ‘우리를 만드는 것’에서 ‘타자와의 조우’로 바꾸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문 칼럼을 통해 케빈 맥도널드에 대해 알려 준 신현준에게 감사한다.)

어떻게 표현하든 결국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대화를 제대로 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적절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과 대화의 규칙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동등한 사람 가운데 하나’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결사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고 방에서 나와야 한다. 이럴 때에만 혁명의 새로운 정신이 가능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5월호 통권58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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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관하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후안무치일 것이다. 거짓말과 사기꾼의 대명사로 남을 가능성이 큰 전직 대통령의 구속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지방의회의 양당 의원들까지 구석구석 그렇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운 게 우리네 현실이다. 물론 부끄러움은 기성 질서의 이른바 기득권층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갑을 관계의 연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조금 더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아래 있는 사람을 짓밟고 서려고 한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그런다고들 말할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사회의 분할과 해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처럼 느껴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형성’된 데는 뿌리가 있을 것이다. 그건 식민지 시대, 해방 전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상실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있었는지 자체는 논외로 하자.) 물론 “헤게모니 없는 지배”는 사실상 불가 능하기 때문에 국시raison d’etat라는 게 제시되긴 했다. 그건 다 아는 것 처럼 반공과 경제성장 혹은 근대화였다. 이 두 가지 국시는 특정한 국면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고 실제로 작동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고 냉전의 방벽이 단단하던 시절에는 반공은 대단한 주술적 효과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화와 근대화를 뒷받침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그리고 1997년을 거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 는 서서히 침식되어 갔고, 산업화와 근대화는 대중의 복지가 아니라 사회 양극화 속의 절망이라는 정반대 효과를 낳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자잘한 국시는 있었지만, 대중을 사로잡고 그 힘을 특정한 방향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지표는 사실상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권리를 지키고 요구를 관철하고자 하는 대중의 다양한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분할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지난 촛불혁명이 의미가 있다면 그건 이 ‘정치 공동체’가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근거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새로운 방향이란 민주공화국, 공정과 정의, 사람 사는 세상 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대통령이 발의하는 헌법 개정안도 대체로 이런 방향에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는 공정과 정의, 그리고 최근 기대를 가지게 하는 한반도 평화 같은 구호가 새로운 국시가 될 수 있느냐다. 물론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여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자체로 정치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느냐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방책을 선택하고 실행하는가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하고 그것이 모두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어떤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합의 혹은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할 텐데, 그것도 정치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이루어지는 합의 혹은 사회계약이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새로운 합의 혹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해서라도 이 정치 공동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아마 이 지점에서 ‘좌파’와 ‘민주파’ 사이에 쟁점이 형성될 것이다. 물론 당장 이 쟁점이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합의와 새로운 합의를 위한 참여의 장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낡은 것을 청소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고, 그 가운데 하나는 안팎의 반공주의를 일소하는 일이다.

하지만 좌파와 민주파의 논점은 머지않아 드러날 수밖에 없다. 현재와 미래의 삶의 절박함이 그리 많은 시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좌파가 과연 미래를 향한 쟁점을 형성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다. 더 나아가 도덕적 설득력을 포함한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대답이 긍정적이지 않다.

아마 우리의 부끄러움은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이 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후안무치가 아니라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고백의 부끄러움 말이다. 물론 부끄러움을 뼈저리게 느낀다면 약간이나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4월호 통권57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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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2018년 들어서면서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엔 우리의 철학으론 상상도 못할 일이 수없이 많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공화국 창건70돌”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하여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개선”하자고 했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을 “한반도 평화 원년”으로 만들자고 화답하면서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누이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방문했고, 폐막식에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이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물론 미국의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김여정 일행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고,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문은 ‘천안함 사태’의 책임 문제라는 명분 속에서 한국 내의 날카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낳고 있다.

올림픽이 서서히 무르익어 가던 2월 13일 지엠 본사는 한국지엠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폐쇄 결정을 발표하면서 지엠은 최근 3년간 군산 공장 가동률이 20퍼센트에 불과했고 한국지엠의 손실이 심각해서 내려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장 군산 공장 폐쇄로 2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며, 1, 2차 협력업체 노동자 1만 명 이상도 같은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많은 사람은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를 완전 철수의 신호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최대 수십 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일자리 늘리기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인데, 이 때문에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지엠의 경영 행태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정부는 지엠의 지원 요청에 대해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사태 속에서 지엠 같은 글로벌 기업이 2008년 이후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경영 전략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소득 아닌 소득일 것이다. ‘Government Motor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적 자금에 기대 생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는 상당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가 더 이상 아닐 것이라는 점 말이다.

끝으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장기 지속적인 일의 표출인 ‘미투’가 있다. 사실 왜 안 터지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검찰에서 시작된 폭로는 ‘문화예술계’와 종교계에까지 나아갔고, 아마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모든 사회 영역에서 분출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도 간간히 노출되었던 학계와 스포츠계 등의 사건도 새롭게 주목받을 것이다. 도리어 문제는 이런 일이 문자 그대로 만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없는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이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미투라는 사태 속에서,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이, 개인들을 비난하거나 징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인의 그런 행태가 가능했던 구조적 문제, 이른바 ‘권력관계’가 재구성될 수 있는가가 관건적인 문제이리라. 하지만 그런 권력관계가 재구성되어 모두가 동등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가 햄릿이 말한 “상상도 못할 일”인가? 누구도 그렇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 정권이 ‘합리적인’ 전략적 판단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주체라면 한편으로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재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이 국면에서 한국을 하나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는 이보다 더 예측하기가 쉬운 일이었다. 인천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엠이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 아닌 소문이 떠돌고 있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엠이 다른 지역에서 보인 ‘경영’ 행태를 보면 예측이랄 것도 없는 예측이었다. ‘미투’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가 문제였지 영원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인지를 헤아릴 게 아니라 상상도 못할 일 자체를 상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선 한반도의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보통 평화 체제라고 말을 한다. 과거에 열망하던 방식의 통일이 의제로 올라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평화 체제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변화까지를 포함하는 게 평화 체제이고, 또 평화 체제가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물론 세력 관계를 염두에 둘 때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약자도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것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남북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일 것이고, 상상도 못할 일은 ‘일방적인 군축’이다.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에 대한 전통적인 대응은 지원과 일자리 유지일 텐데, 현재 지엠의 입장을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해법이 새로운 산업의 유치 혹은 공장의 전환이다. 새로운 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 자체가 현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의 전반적인 방향은 ‘생산’과 일자리의 탈동조화脫同調化다. 이 속에서 지엠과 같은 사태는 시작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할 만한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여가, 한 마디로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활동 전반에 대해 다시 사고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운 경제로 가는 전환이 고통스럽다는 것까지 인정하면서 말이다.

독일의 화가인 샤롯데 베렌트 코린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실 해방되어야 할 여자란 없다. 바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남자들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오래 전의 것이라 여자와 남자라는 두 개의 젠더만 나오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고쳐 말해 본다면, 과거와 현재 권력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는 모두가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모두가 성숙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문명은 어떤 문명일까? 기존 문명의 옹호자들은 그걸 무질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돈에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세 가지 사태에 대해 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거나 실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거나 현재의 주체 역량을 벗어나 있기까지 하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시간 벌기’일 것이다. 물론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항전의 시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장소와 공간이 필요하다. 장소는 모이는 곳이고 공간은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래 걸리겠지만 시간 벌기는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3월호 통권5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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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국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개헌국면(?), 무엇을 할 것인가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1772~1837)는 자신의 ‘사상’과 미래 계획을 구성하면서 인간의 변덕스러움을 주요한 전제로 삼았다. 이를 사회적, 기술적 혁신의 동기에 적용하든 생물학적 돌연변이에 대입하든 그럴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꽤나 보수적이고 완강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일 년 전 가을과 겨울에 우리는 이를 경험했다. 거의 십 년에 가까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극악한 정치적, 사상적 탄압을 경험했음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행동의 의지는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광포한 신자유주의 시절을 이십 년쯤 겪었음에도 ‘이윤보다 인간’을 바라는 우리의 또 다른 욕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87년 민주항쟁이 30주년을 지나면서 우리가 새삼 깨닫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와 기성 정치의 완강함이다. 거리의 정치가 탄핵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지만, 제도의 완강함은 제도의 정치적, 법적 절차를 따라가도록 했고, 이 경로 의존성은 결국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로 끝났다. 물론 이렇게 선출된 대통령은 대중의 열망뿐만 아니라 그 과정도 잘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는 분명 기성 제도의 대통령이며 그 구조를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구조 속에서도 적절하게 통치 혹은 협치의 방법을 배워야 하고, 또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면서 변화의 힘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럴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대통령이 일 년만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시간의 필요성만 말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어떤 전략적 판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운동의 힘을 끌어내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통치 혹은 협치도 기성 정치 내에서 쉽지 않을 것이고, 이는 결국 대중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이유로, “촛불은 개헌으로 완성된다”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편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개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 속에서 제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라는 어떤 전임 대통령의 말처럼, 그렇게 제도 안에서 제도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개헌 자체에 대한 요구는 광범위하고 또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권력 구조의 문제다. 박정희 시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는 구체적인 인격에 따라 사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반대편에 있는 것이 ‘5년 단임제’다. 이는 충분한 역 사적 근거가 있는 제도이긴 하지만 대의제 정당정치의 책임성이라는 문제를 회피하게 만든다. (아예 모든 선출직의 단임제를 다른 시각에서 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직업적 정치가’라는 범주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인격에 따라 광범위하게 남용될 수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해도 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갈린다. 하나는 임기 4년에 중임이 가능한 대통령제다. 다른 하나는 이원집정부제라 불리는 사실상의 내각제다. 여기에 순수 내각제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대의제 정부라는 형태에서 이들 이외에 다른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위스 같은 예도 물론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대중적 호소력을 얻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대통령제와 내각제 가운데 어느 것이 대의제 정부에 적절한지를 따지자면 논리적으로는 내각제가 합당할 것이다. 대통령제는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두 개의 기관이 병립해 있는 양상이며,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더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입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입법 기능은 분명 의회에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왕이 부재한 체제에서 왕 대신에 꼭대기에 있는 자리를 만든 게 대통령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최소한 한국의 대통령은 대중의 열망을 대변하며 그 에너지를 하나의 방향으로 집행하는 힘이기도 했다. 게다가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내각제를 새로운 카스트를 위한 장식물에 불과하다고 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의제에 맞게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가 적절한 권한을 가지도록 하는 개혁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개헌은 권력 구조 때문에만 나온 의제는 아니다. 우선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헌법 내용을 수정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개헌에 대한 요구가 나왔다. 이때 기본권 보장은 두 가지 방향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던 권리를 새로운 헌법에 분명히 새겨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정체성’에 근거한 권리로 표현되며, 실질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차별의 금지다. 다른 하나는 추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있거나 국가의 의무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 부분을 구체화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사회권’과 관련이 있다.

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개헌의 요구는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성숙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제기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기존의 기본권 보장이 역사적이고 특수한 것이며 새로운 지평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도 제기된다. 예컨대 ‘양성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표현 대신 ‘성평등’이라는 규범을 제시할 때 이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사회 질서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담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본권 보장의 요구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질서가 넓은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근원적으로 소유권 보장 및 이윤 추구의 자유라는 가치 위에 자리 잡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모두가 동등하게 공공의 업무respublica에 참여하는 민주적 공화주의는 충돌하기 마련이다. 물론 역사 적으로 이러한 모순적 결합의 체제는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기도 하고 조작하기도 하면서 유지되어 왔으며, 특히 제2차 대전 이후 상당한 활력을 보이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러시아혁명으로 성립한 사회주의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압력, 총력전에 따른 사회적 압력, 자본주의경제의 내적 모순에 따른 경제적 압력 등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세기말 이러한 압력은 여러 이유로 인해 사라졌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 극한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금융자본과 대기업의 지배라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존재하나 그 실질은 사라진 형해화된 민주주의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이런 의문은 사회권 보장을 아주 획기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주장과 경제적 질서의 바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견해로 이어진다. 전자의 대표적인 것이 기본소득이며, 후자의 경우 토지 공개념의 강화 및 사회적 경제를 새로운 헌법에 적절하게 포함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이번 개헌은 분명 1987년의 헌법 개정에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일 수 있는 커다란 변화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제도적 방식의 제도 변화인 ‘개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기성 질서의 요구에 따른 개헌 이외에 의미 있는 개헌, 사실상의 제헌은 혁명이나 이에 준하는 상황 속에서만 가능했다. 물론 지금이 촛불의 연장선에 있는지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것처럼 광화문에 모였던 대중의 힘은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의탁한 후 뒤로 물러섰다. 이 힘이 제도적 제도 변경인 개헌으로 모일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부분적으로라도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즉 대통령이 말하듯이 기본권 보장과 지방 분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을 6월에 이루어내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인가 아니면 좀 더 포괄적이고 제대로 된 개혁의 내용을 담은 개헌을 계속해서 ‘주장’할 것인가? 물론 현실에서 둘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제 개헌은 국회의 정치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의 정치 지형에는 다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어리석었지만 가장 길게 효과를 미친 것은 (실패한) 커다란 변동 뒤에 곧바로 그러한 변동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촛불혁명이 그만큼 성공했고 또 그만큼 실패한 것이라면, 금세 마찬가지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완강한 제도와 변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를 ‘개헌 국면’에서 실행하는 일은 개헌이 사실상 ‘제헌’이 되도록 하는 활동일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개헌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속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이후를 위한 새로운 주체와 조직의 형성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1~02월호 통권5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