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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주도 성장론과 소득 주도 성장론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1. 머리말

새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을 뒷받침하는 ‘소득 주도 성장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 의사를 밝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일자리 창출’ 등은 소득 주도 성장론에 입각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의 소득이 향상되면 수요가 창출되고 이에 따라 기업 활동이 제고되어 성장이 촉진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에 대립되는 성장론은 ‘이윤 주도 성장론’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기업 활동의 여건을 개선하면 투자가 활성화됨으로써 고용이 창출되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보자면, 이윤도 소득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이윤 주도 성장’과 ‘소득 주도 성장’을 대립시키는 것은 이론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국민소득은 자본소득인 이윤과 노동소득인 임금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이윤 주도 성장’과 대립되는 것은 ‘임금 주도 성장’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영세자영업자가 많기 때문에 임금이 아닌 전반적인 서민 소득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득 주도 성장’이 ‘이윤 주도 성장’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경제가 역동성을 갖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감세와 규제 완화, 임금안정화와 노동시장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방침은 이윤 주도 성장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윤 주도 성장론은 신자유주의의 성장 모델로서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하나의 규범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소득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세계적인 불황을 가져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윤 주도 성장론에 대한 대안으로서 임금 주도 성장론이 세계기구(ILO, UNCTAD 등)와 서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한국에서도 진보적 학자를 중심으로 임금 주도 성장론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는데, 현재 새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임금 주도 성장론의 한국판이다.

그런데 이윤 주도 성장론은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이윤 주도 성장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경제 사조가 여전히 경제학계에서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정책 입안자들과 여론 주도층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은 이윤 주도 성장론을 뒷받침하는 경제이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이윤 주도 성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공급 측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서구 경제학의 주류였던 수요를 중시하던 케인스주의가 1970년대에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한계를 보임에 따라 등장한 경제학 사조가 공급 측 경제학이다.

공급 측 경제학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공급 측 요인인 기업의 생산과 투자에 대한 장애를 완화해 줄 때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소비자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 확대에 힘입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급 측 경제학은 기업에 대한 감세, 규제 완화, 노동시장유연화, 임금 억제 등을 경제 활성화의 관건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경제에서 공급의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은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하나의 전제를 깔고 있다. 생산된 상품은 시장에서 큰 무리 없이 소화될 수 있다는 전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세Say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공급 측 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세의 법칙에 대한 경제학의 오랜 논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이윤 주도 성장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

가) 세의 법칙

고전경제학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에서 부르주아계급이 절대주의하의 봉건적 질서를 타파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던 시기에 등장했던 자유주의적 경제 사조다. 일반적으로 영국의 애덤 스미스(1723~1790)를 고전경제학의 효시로 보는데, 세Jean-Baptiste Say(1767∼1832)는 프랑스 고전경제학파다.

세는 생산에서 유래된 소득이 생산된 상품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케인스는 세의 주장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로 정리하고 “세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세에 따르면, 생산물이 팔리게 되면 비용을 구성하는 노동자 임금과 원자재 비용이 노동자와 판매자에게 주어지고 이윤이 자본가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생산물은 판매를 통해서 가격에 해당하는 만큼의 소득을 창출하고 그 소득은 시장의 구매력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한 상품이 생산되면 그와 동시에 그 순간부터 전체 가치에 해당하는 정도로 다른 상품들에 대한 시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생산을 마친 생산자는 생산물의 가치가 감소하지 않도록 즉시 팔기를 원한다. 그는 또한 그것을 팔아서 얻은 화폐도 가치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즉시 처리하기를 원한다. 화폐를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생산물이 창조되는 상황은 즉시 다른 생산물에 대한 활로를 열어 준다. (Say, Jean-Baptiste, A Treatise on Political Economy (sixth American ed.), Philadelphia: Grigg & Elliott, 1834, pp.138~139.)

물론 세가 개별 상품시장에서 공급이 초과하게 되거나 부족하게 되는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 시장에서 전반적으로 초과 공급이 발생하지는 않으며 개별 상품시장의 불균형은 가격 변동을 거쳐 즉각적으로 조정된다고 믿었다. 만약 세의 법칙이 성립한다면, 자본주의경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 완전고용 산출을 위해 충분한 수요가 항상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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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 바라는 문화·예술정책

– 영화를 중심으로

 

임순례

 

소개

임순례
영화감독. 파리제8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와서《와이키키 브라더스》《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남쪽으로 튀어》《제보자》등 10여 편의 상업영화와 단편영화로 널리 알려졌으며 청룡영화상 등 10여 차례 상을 받았다. 동물 보호 단체 ‘카라’의 대표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장관 인선 과정에서 다소의 잡음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새 정부에 거는 국민의 기대치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높다. 사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는’ 예술정책이 가장 바람직한 기조이지만,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이 기조를 자신들 정권의 편의에 맞춰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영화 분야에서 영화인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첫 번째 분야는 대기업의 투자-배급-상영의 수직 계열화 문제다. CJ, 롯데, 쇼박스, 메가박스, NEW 등 몇몇 대기업 계열사가 한국영화의 전체 공정을 장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폐해가 너무나 크고 이 중에서도 특히 스크린 독과점 부분은 가장 심각한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스크린 독과점 방지

며칠 전인 6월 21일 개봉한 《트랜스포머 5 ― 최후의 기사》의 경우, 한국 스크린 전체인 2,575개 중에 무려 1,739개를 차지해 거의 7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보였다. 30%에 불과한 나머지 스크린을 놓고 할리우드의 또 다른 블록버스터들과 국내의 대형 상업영화가 치열하게 다투는 구도에서는 다양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는 관객의 권리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중소형 규모의 상업영화가 합리적 숫자의 스크린 수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현실이고, 극장을 겨우 잡았다 하더라도 관객이 많지 않으면 개봉한 지 며칠 만에 바로 ‘퐁당퐁당 상영’이나 조조/심야편성으로 내쳐진다. 최소 상영 일수 보장 같은 절실한 구호는 그저 헛된 메아리일 뿐이다.

스크린 독과점은 관객의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의 건강한 지형도 훼손한다. 투자자는 흥행이 불확실한 중급 규모의 영화보다는 리스크가 크더라도 대형 영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결국 티켓파워가 있는 몇몇 톱스타와 연출가 외에는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치닫고 있다. 나는 1,000만 영화 한 편보다 200만 명 정도의 영화 다섯 편 흥행이 더 건강한 지형이라고 생각하지만, 200만 관객을 지향하는 영화의 기획은 투자자의 시선을 잡아채지 못한다.

대기업의 영화 산업 수직 계열화를 타파하는 것만으로는 스크린 독과점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몇 퍼센트 이상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스크린 독과점 제한에 관한 정책’이병행되어야만 한다.

프랑스는 12개관 이상의 멀티스크린 극장에서는 한 영화가 두 개관 이상 걸리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12개관 미만의 극장에서도 전체 상영의 30%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의 관객들이 본 다양성영화(예술영화/독립영화)는 전체의 20.3%에 달하는 데 비해 한국은 3.8%에 머무르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프랑스의 영화 정책 때문이다.

스크린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한편에서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작년 11월 안철수 의원과 도종환 의원이 대표로 영화 배급과 상영업을 동시에 할 수 없도록 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활성화

두 번째 기대하는 정책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활성화다.

도종환 의원은 위의 법안 발의 시, 예술영화 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 사업을 영화발전기금의 용도에 포함시키고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를 연간 상영 일수의 60% 이상 상영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안도 담았다.

도종환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취임한 후 첫 번째 대외 행사로 독립영화 전용상영관 ‘인디스페이스’를 방문하여 독립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이어서《재꽃》 관람으로 독립영화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하였으니, 일단 이 부분은 매우 반가운 행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역별로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전용상영관 혹은 시네마테크 건립등 관련 인프라를 확대하고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제작과 배급에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 또한 절실하다. 독립-예술영화의 활발한 움직임은 관객의 영상 문화 향유를 위한 다양한 선택권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영화의 창의성과 새로움을 통해 상업영화 산업 근간에도 건강한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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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전 세계“ 기본소득 실험들”

박선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

 

작년부터 국내외의 여러 매스미디어에서 다양한 “기본소득 실험”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소식들은 기본소득이 바로 지금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그 실험들 각각의 현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모두의 토론 주제가 될 만한 문제들을 끌어내는 것이 이번 글의 목적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기본소득 실험들”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웹사이트basicincome.org의 ‘기본소득 뉴스Basic Income News’ 코너에 실린 케이트 맥팔런드Kate McFarland의 2017년 5월 15일자 글「지금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실험들(과 기본소득 실험이라 불리는 것들): 개괄Current Basic Income Experiments (and those so called): An Overview)」을 발췌한 것이다. 따라서 성남시 청년배당을 비롯한 국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는 다루지 않는다.

 

1.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2017년, 핀란드 중앙정부는 기본소득이 노동시장 참여에 미치는 효과를 조사하기 위해서 켈라Kela(핀란드 사회보장보험공단)에서 설계하고 총괄하는 2년짜리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 집단은 2천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2016년 11월에 켈라에서 실업수당을 받은 25~58세의 개인들(전국적으로 약 17만5천 명) 중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사람들이다. 선택된 사람들은 기본소득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참가자 2천 명은 매달 560유로(약 590US달러)를 조건 없이 지급받고 있다. 핀란드의 현행 실업부조 프로그램들과 달리, 이 시범 시행프로그램은 수급자들에게 구직 활동 중임을 증명하거나 제안된 일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560유로 전액을 계속 받게 된다. 따라서 모든 핀란드인들을 대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표본이지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이라는 점은 기본소득의 정의에 맞는 특징이다. 비록 살아가는 데 충분한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말이다.

실험은 2017년 1월 1일에 공식 개시됐고 1월 9일에 첫 지급금을 배부했으며, 2018년 12월 31일까지 계속될 것이다.

켈라는 실험 집단의 결과를 통제 집단의 결과와 비교할 것인데, 이 통제 집단은 모집단(2016년 11월에 켈라에서 실업수당을 받은25~58세의 개인들)의 나머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분석의 초점은 노동시장 참여에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실험 집단과 통제 집단 사이의 고용률 차이를 분석한다. 최근 설명에 따르면, 약물 치료 지출, 의료서비스 이용, 소득 변화에 대해서도 추적 관찰할 것이라고 한다.

관찰자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 켈라는 실험 기간 동안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있고, 2018년 말에 실험이 끝나기 전에 어떠한 결과물도 내지 않을 것이다.

 

2. 기브다이렉틀리의 케냐 기본소득 실험

미국에 기반을 둔 자선단체인 기브다이렉틀리GiveDirectly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케냐의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조건없이 현금을 이전하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마을 200곳 주민들(다 합치면 약 26,000명)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다.

실험은 2016년 10월에 한 마을에서 시작되었는데, 현재 그 마을의 주민 95명 모두가 매달 약 23US달러(21유로)의 현금을 조건 없이 받고 있다. 이 금액은 케냐 농촌 지역 평균소득의 대략 절반에 해당한다. 이 현금 지급은 이 마을에서 12년 동안 계속 이뤄질 것이다. 현재는 이 최초의 “시험 마을test village”만 기본소득을 받고 있다. 기브다이렉틀리의 목표는 2017년 9월에 완전한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완전한 연구에서는 마을 300곳이 네 집단 중 한 집단으로 무작위 배정될 것이다. 네 집단이란 모든 주민이 조건 없이 현금을 받는 일정 방식의 실험 집단 세 개와 주민 중 누구도 현금을 받지 않는 통제 집단한 마을이다.

첫 번째 실험 집단에는 마을 40곳이 속하게 될 것인데, 그 마을 주민들은 (최초의 실험 집단에서처럼) 12년 동안 매달 약 23US달러의 현금을 받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실험 집단에는 마을 80곳이 속하게 되고, 주민들은 매달 첫 번째 집단과 같은 액수의 현금을 받게 되지만, 2년 동안만 받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실험 집단 또한 마을 80곳이 속하게 되는데, 주민들은 2년 동안의 기본소득과 똑같은 액수를 한꺼번에 받게 될 것이다.

기브다이렉틀리가 자체 웹사이트에서 설명하듯,“ 첫 번째 마을 집단과 두 번째 마을 집단을 비교하는 것은 미래의 지급에 대한 보증이 오늘의 결과들(예를 들면, 창업 같은 모험을 하는 것)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혀 줄 것이다. 두 번째 집단과 세 번째 집단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주어진 액수의 돈을 나누어 지급하는 것이 그 돈의 효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단체는 또한 “경제적 상태(소득, 자산, 생활수준), 시간 사용(노동, 교육, 여가, 공동체 참여), 위험 감수(이주, 창업), 젠더 관계(특히 여성 역량 강화), 삶에 대한 포부와 전망” 등에 관한 결과들을 조사할 것이라고 한다.

기브다이렉틀리는 자료(예를 들면, 이 첫 시범 시행 참가자들의 첫 설문조사에 대한 반응들)를 모으면 대다수를 공개하고 있고, 일이년 후에 첫 실험 결과들을 책으로 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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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신 포도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지금 기억하기에, 맨 처음 가져 본 철학 책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받은 상에 딸려 온 상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딸려 왔다고 표현했지만 상장보다야 상품에 마음이 끌리는 법. 책이 귀하던 시절에 상품으로 받은 책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노란색 표지에 비닐 커버가 씌워져 있어서 매끄러운 감촉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로마의 황제가 썼다는 점이 흥미를 끌기는 했지만, 『명상록』이라는 제목이 썩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책을 펼쳐 보니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 읽고 싶은 마음이 또 한 번 꺾였다. 그래도 몇 줄 읽어 보았지만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까까머리 남학생과『명상록』이 어울린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어린 내가 읽어서 도움 안 되는 내용이 많을지도 몰라.’ 아마 이런 식의 합리화도 했을 것이다. 비닐 커버를 씌우는 기술이 좋지 않아 비닐 커버에 갇힌 표지가 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명상록』도 표지가 비닐 속에서 울고 있었다. 나와『명상록』이 어긋난 것처럼.

그 뒤에 철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명상록』을 읽을 기회가 오지는 않았다. 한참 뒤에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서는 한번 읽어 봐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회색빛 전투 장면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 한가운데서 마치 달관한 듯한 태도로 묵묵히 있는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명상록』을 찾아 읽지는 못했다. ‘어차피 좋은 번역본도 없을 거야,’ 이런 자기 위안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핑계를 대며 뒤로 미뤄 둔 책이 어디 한두 권이겠는가?

 

황제의 조언

『명상록』을 읽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믿을 만한 번역본이 나온 지도 오래 되었고, 사 두고 오랫동안 묵혀 두는 일이 민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꼭지의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121~180)는 로마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스토아철학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명상록』은 후대에 많은 학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지도력을 과시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다고 내비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80년대에 전두환이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는 것처럼 ‘코스프레’를 펼친 적이 있는데, 우리들끼리 실컷 조롱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의 빌 클린턴에게는 『명상록』이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 클린턴이 『명상록』을 즐겨 읽으며 삶의 교훈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고결한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스토아주의 철학자의 책을 클린턴이 제대로 읽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르윈스키 스캔들을 생각하면 클린턴은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어떤 비평가의 말마따나, “왜냐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성적 열정의 무분별함을 설교했던 반면 빌 클린턴은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명상록』은 모두 열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의 구성이 특이하다. “나의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나는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 이 첫 문장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이 가족들과 여러 스승에게 빚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일관성 있게 서술된 점으로 미뤄 볼 때 1권은 따로 쓰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권 끝에는 “그라누아 강변의 과디족 사이에서 적다,” 2권 끝에는 “카르눈툼에서 적다,” 이렇게 밝히고 있어 이 두 권은 전장에서 쓴 글임이 분명하다.) 나머지 권들은 모두 짧은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가지 필사본에 제목으로 적혀 있다는 “자기 자신에게”처럼 이 책은 자기 자신에게 쓴 수상록 같은 책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너”는 저자 자신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우선 『명상록』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경구들이 가득했다. 몇 가지 경구를 먼저 읽어 보자.

네 안을 들여다보라. 네 안에는 선의 샘이 있고, 그 샘은 네가 늘 파내어야 늘 솟아오를 수 있다. (7권 59)

불의의 공격에 대비하여 꿋꿋이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삶의 기술은 무용의 기술보다는 레슬링의 기술과 더 비슷하다. (7권 61)

네가 화가 나 폭발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8권 4)

남의 과오는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라. (9권 20)

최선의 복수 방법은 네 적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6권 6)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유명한 대목도 있다. 마르쿠스의 풍부한 감수성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수반되는 현상들도 우아하고 매력적인 면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빵을 굽다 보면 몇 군데 균열이 생기는데, 이런 균열은 어떤 의미에서는 빵 굽는 사람의 의도에 어긋나지만 우리의 주목을 끌어 나름대로 식욕을 돋운다. 무화과도 가장 잘 익었을 때 갈라지고, 농익은 올리브도 썩기 직전에 아름답다.

이처럼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것들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얼핏 보기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 모습도 마르쿠스는 아름답다고 이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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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일해도 가난한가?

-대선 직전 실시한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

 

구교현 평등노동자회 사무국


1. 들어가며

새 정부 들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선언한 상태에서 민간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하나둘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 비정규직노동자의 현실과 요구를 정확히 진단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평등노동자회는 대선 직전인 4월 한 달간 네 개 비정규직노동조합과 함께 비정규직노동자와 관련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비정규직노동자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또한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고 생활비를 낮추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생산 영역뿐만 아니라 재생산 영역에서도 노동자를 수탈한다. 생산 영역에서는 저임금과 불안정 일자리로, 재생산 영역에서는 주거비·부채를 비롯해 교육·의료·통신 등 사회서비스를 통해 광범위한 수탈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노동자들은 일정 정도 임금이 인상된다 하더라도 빈곤을 벗어나기 힘든 상태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연대 운동을 구상하고 있는 평등노동자회는 재생산 영역에서 벌어지는 수탈에 저항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터의 문제는 제각각 사안이 다양하므로 웬만한 장기 투쟁을 벌이지 않고서는 연대 운동이 어렵다. 그러나 생활 이슈는 불안정노동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므로 연대의 가능성이 확장된다. 평등노동자회는 이번 조사를 시작으로 생활 문제 각각에 대해 보다 면밀히 조사하고 대안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

 

2. 조사 개요와 결과

이번 조사는 평등노동자회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조사 기간은 2017년 4월1일 ~ 4월 30일이며, 결과 정리에 약 3주가량이 소요되었다. 조사 대상은 수도권 지역 비정규직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전국여성노동조합, 희망연대노동조합) 조합원이며, 조사는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사업장마다 조사원들이 방문해 구조화된 설문지에 응답자가 직접 기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문항 수는 총 48문항이며 전체 응답자는 372명이었다. 조사 대상은 한국의 대표적인 비정규직 직종 중 임금, 성비, 연령 등을 고려해 평균 수준에 가까운 비정규직노동자들로 선정했다. 성비는 전체 비정규직노동자의 남녀 구성이 1 대 1.5인 것을 고려해 35 대 65로 구성했다. 연령은 전체 비정규직 중 비율이 높고 생활 문제에 민감한 40세 이상을 주로 선정했다(응답자 가운데 60세 이상 43.0%, 50~59세 23.4%, 40~49세 21.8%, 39세 이하 11.8%). 응답자의 업종별 분포는 아래의 <표 1>과 같다.

임금은 실수령액이 151만원으로 나타나 전체 비정규직의 평균임금 151만원(2016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비해 14만원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응답자들이 노조를 통해 4대보험을 쟁취하고 임금을 꾸준히 높여 왔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따라서 평균적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실태는 본 조사 결과보다 나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일해도 가난한 ‘워킹 푸어working poor’ 상태라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본인과 배우자의 소득, 공적이전 소득 등을 합한 금액보다 기본 생활비가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기본 생활비에는 문화·여가, 저축·보험, 교통비 및 기타 서비스 이용료 등은 포함하지 않아 이를 위해선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가족 전체를 합한 소득이 100일 때 기본 지출(의식주·공과금·교육비·의료비)은 103.85로 나타났다.

임금수준별로 나눠 보면, 임금이 가장 높은 직종의 응답자들은 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91.12로 조사된 반면, 임금이 가장 낮은 직종의 응답자들은 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119.5로 조사됐다. 이는 소득과 관계없이 필수적인 소비지출은 (아무리 저소득층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응답자의 10명 중 6~7명이 부채가 있다고 응답했으며, 금액은 평균 6천5백만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주거 형태별로 보면, 자가 거주자의 60%, 전세 거주자의 73%가 부채가 있다고 응답했다. 부채의 주요 원인은 주택 마련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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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바라본 6월항쟁

안효상 편집주간

 

거대한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을 거쳐 사람들이 바라는 ‘민주 정부’가 탄생한 시점이 6월항쟁 30주년 직전이라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간계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가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한 지난한 투쟁의 시간이었지만, 어느 정도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될 가능성을 보인 것은 6월항쟁 덕분이었다. 6월항쟁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다수가 공통의 목표로 싸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다수가 공통의 목표로 싸운 이번 촛불시위 속에서 6월항쟁이 연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더 나아가 ‘이번 일로 유신이 끝났다’라는 평가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지난 십 년 간의 정부가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도 6월항쟁과의 유비는 적절해 보인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이는 면에서만 유비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6월항쟁 직후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지면서 민주주의 체제의 본질이 드러나긴 했지만, 여야로 구성된 8인위원회에서 급조된 87년 헌법과 이에 기초한 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를 매우 형식적이고 통제된 한계 내에 머물게 했다. 이번에 벌어진 촛불집회의 장기적인 효과가 어떠할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지만, 6월항쟁으로 등장한 87년 체제의 여러 가지 한계가 일정 부분 6월항쟁의 성격과 진행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촛불집회가 곧바로 대통령 선거와 새로운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로 이어진 것도 이번 사태의 제한된 결과를 예감하게 한다. 그러니 꼭 30주년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건을 다시 보는 것은 어떻게해서든 현재적인 의미가 있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 1987년 6월항쟁으로

짧게 보면 6월항쟁은 1987년 1월에 있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을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정치적, 사회적 연합의 형성과 대중적 동원의 감성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길게 보면 1980년 광주항쟁에 대한 군부의 폭력적인 진압이 이미 씨를 뿌렸다고 할 수 있다.

신군부가 박정희 장군과 달랐던 점은 권력 장악 자체가 대중에게 부당한 것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박정희 신화’에서 잘 드러나지만 박정희의 쿠데타와 집권은 사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 요소들이란 반공을 기반으로 안보와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 발전이었다. 이에 반해 전두환 장군이 이끄는 신군부는 유신 체제의 연장 시도 및 개인들의 권력욕 이외에는 정당화할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광주의 피를 먹고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지만 그 피는 서서히 퍼지는 독이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만회하고자 정권이 시도한 것이 1983년 말부터의 ‘유화 조치’였다. 제5공화국 헌법이 대통령 7년 단임제를 채택한 것은 유신 체제를 연장시키면서도 개인의 권력욕을 실현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임시적인 조치였던 것이 권력 구조가 되었을 때 이를 정당화하는 전략과 유지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했고 이것이 ‘유화 조치’로 나아간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정치 피규제자 해금, 구속자의 석방, 사면, 복권, 제적생 복교, 학원 상주 경찰의 철수, 해직 교수 복직 등으로 이루어진 유화 조치는 권력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방책이었다.

이렇게 통제된 자유화는 이중의 효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정권의 의도대로 장기적으로 중산층의 포섭을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만 그러한데, 왜냐하면 당장은 6월항쟁의 또 다른 직접적 계기였던 1987년 4·13 호헌 조치에 대한 중산층의 항의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6월항쟁과 그 이후 기성의 야당 정치인과 종교계를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 내로 중산층을 포섭하는 데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효과는 반체제적 동원이 좀 더 넓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유화 조치 이전까지는 일부 헌신적이고 전투적인 학생들의 소규모 운동만이 가능했지만 이제 정치적 동원이 좀 더 넓게 좀 더 쉽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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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단과 적폐

농단과적폐

 

마지막 달에 내는 잡지의 머리글이니 짧게라도 올해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올해’란 2017년 1월부터가 아니라 촛불이 시작된 2016년 10월 말부터 지금까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드러난 직후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사람, 재단, 기구 따위의 이름을 제외하면 아마도 “농단”일 것이다.

“국정 농단”이라는 어색한 표현에서 ‘농락籠絡’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농단과 농락은 전혀 관계가 없는 말이다. ‘농단壟斷/隴斷’은 높은 언덕이라는 말이고,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그런 언덕에 올라 아래를 둘러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고는 그로 인해 이득을 독점하는 것을 뜻한다.

“국정 농단”은 매우 너그럽고 고상한 표현이었다. 검찰이 박근혜 들을 기소할 때의 죄목은 직권남용, 강요 또는 강요 미수, 뇌물 수수, 공무상 비밀 누설 따위일 뿐이다. 따라서 부정 입학, 문화계 블랙리스트, 보안 손님 따위의 사태를 접하고 누군가 ‘농락’을 생각하게 된다면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남을 교묘한 꾀로 휘잡아 제 마음내로 놀리거나 이용하는 것이 농락이니, 국정을 농락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농단’ 세력에 대한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재판 진행 과정에서도 국민은 농락당하는 느낌이다.

그 인물들에 대한 수사나 재판과는 별도로,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자주 등장한 단어로는 “적폐積弊”가 있다. 하지만 일찍이 2014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당시 대통령 박근혜도 그 단어를 입에 올린 바 있다. “뿌리 깊은 적폐를 해소하지 않고는 국민 안전은 물론 경제 부흥도, 국민 행복도 이루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고는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 안전”이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고 한 말이라면 참으로 뻔뻔스러운 일이지만, 어쨌든 이때 말한 “적폐”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이와 달리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것을 겨냥하다가 이명박 정부까지 확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두 정부를 거치며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쓸어 없애겠다는 것이 지금의 “적폐 청산”이다. 국정원에 적폐청산태스크포스가 설치되고 국방부에 적폐청산위원회가 설치되어, 박근혜가 당선되던 대통령 선거에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댓글 부대’를 운영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일은 적지 않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고위 공직자’들이 하차하는 것이 그렇고, 세월호에서 유골을 발견하고도 쉬쉬하는 것이 그렇고, 청와대 정무수석이 뇌물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그렇다.

백 번 양보해 이런 것은 일부 개인과 관련된 일이라 치더라도, 정책과 관련해서도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오히려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모습을 문재인 정부는 보이고 있다. 이번 호에서, 박근혜 시절의 “규제프리존”이 “샌드박스”로 이름만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후보 시절 사드 배치 문제는 다음 정부에서 결정하자던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적극적이고, 건설 중인 핵발전소 문제는 공론화위원회라는 틀로 책임을 넘겨 공사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무엇이 청산할 적폐인지를 놓고 현 정부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행사장에서 대통령 옆에 앉게 되는 사람이 바뀌고, 대통령이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국민신문고’가 어느 정권보다 활성화되는 등 직전 정권과는 달리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는 성공한 듯하다. 탄핵된 대통령을 언론에서 아무 직함 없이 그냥 ‘박’으로 쓰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변화일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 종식”이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답답할 뿐이다.

답답한 일은 그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번으로 두 번째인 민주노총 임원 직접선거는 애초의 취지를 보잘것없게 만들고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권에 대응하는 전략을 준비해 조합원들과 토론하기보다는 그저 선거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른바 ‘좌파’가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했던 시도가 있었지만, 공동의 대응이 불가능하게 끝났다. 반전과 평화를 말하려는 행사에 참가하려던 허영구 평등노동자회 대표는 일본 정부의 입국 불허로 인해 오사카공항에서 조사를 받다가 귀국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갔다. 내년에는 좋은 소식을 기대해 본다. 기본권을 강화하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개헌 권고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거나, 모든 표가 같은 가치를 갖도록 선거제도 개혁이 진행된다거나,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가 이름처럼 많은 국민의 운동을 포괄하는 활동을 한다거나. 한 해 동안 관심과 애정을 보인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김태호

 

이 글은 『시대』 2017년 12월호 통권54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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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확장과 ‘혁명적 개혁’

민주주의의 확장과 혁명적 개혁

 

지난 10월 20일에 있었던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의 공론 조사 결과 발표 및 최종 정책권고안 제시는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우선 탈핵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이중적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문제가 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의 중단과 재개에 대해서는 시민참여단의 59.5퍼센트가 건설 재개에 찬성표를 던져 신고리 5, 6호기는 한국 원자력발전소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의 축소, 유지, 확대’와 관련해서는 축소가 53.2퍼센트, 확대가 9.7퍼센트로 ‘장기적으로’ 탈핵으로 가는데 찬성했다.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얼마나 대표성이 있는가,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숙의와 토론 과정을 얼마나 의미 있게 볼 것인가와 상관없이, 장기적으로는 탈핵에 찬성하는 경향이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현상 유지를 택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당장 쟁점이 된 건설 중단이냐 재개냐와 관련해서는 이른바 ‘매몰 비용’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건설 재개 찬성 쪽에서 제시한 ‘수출’, ‘국익’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결국 ‘경제적 공포’를 부추긴 것이고 여기서 안전과 가치 등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후 탈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의미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는 10월 24일 국무회의를 통해 ‘탈원전 로드맵’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신고리 5, 6호기를 제외한 신규 원전 6기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14기의 수명 연장 불허 등을 통해 2038년까지 원전을 14기로 줄인다고 한다. 이와 함께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퍼센트로 높인다고 한다. 끝으로 해당 지역과 산업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한다.

이런 로드맵을 보면서 우선 떠오르는 것은 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이다. 탈원전은 직접적으로는 ‘위험한 에너지’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지만,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기존의 화석에너지 체제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새로운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자는 맥락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좁은 의미의 탈핵이 아니라 에너지 체제 전환이라는 큰 맥락에서 시간 계획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에너지 체제의 전환만이 아니라 사회적 전환을 포함하는 것이 될 텐데, 과연 집권 세력이 이러한 상상력과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여론이 호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 정권에 ‘불통’이라는 트레이드 마크가 있었기 때문에 시민의 직접 참여, 토론, 의견 개진 등의 과정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주목을 받았고, 이후 발전시켜야 할 어떤 것의 지위를 얻었다. 그런데 이 자체를 발전시키는 것과 별개로 기존의 정치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어떻게 폭넓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한국의 헌법은 입법발의권이나 소환 등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하나도 없다. 또한 숙의 민주주의를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시간과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다. 이것도 에너지 체제 전환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경제사회적 삶과 양립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더 커다란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신고리 5, 6호기를 둘러싼 공론화 과정은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변화 혹은 이행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난점을 보여 준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저널리즘 용어로 말할 수 있는 기성 질서의 강고함이다. 사실 동어반복이긴 하지만 강고하고 지배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성 질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기성 질서의 강고함과 그 강고함을 유지하기 위한 유연함은 사실 87년 체제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가 있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가 가지는 개방성으로 인해 권리의 진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체제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적응력과 맞물린 기성 질서의 강고함과 유연함은 언제나 ‘포섭’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특히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혁명 혹은 대중의 봉기마저 흡수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완고함이다. 이때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소유적 개인주의까지도 어느 정도는 확고하게 자신의 정당한 내용으로 삼고 있다. 현 정권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는 ‘촛불혁명’조차 이런 민주주의 앞에서 무력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그 혁명의 주된 요구가 제한된 의미의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적절한 수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커다란 변화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아마 변화의 가능성은 민주주의의 확장과 이 속에서 나타날 틈새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는 민주주의를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며, 현 체제의 난점과 모순을 찾아내는 일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본소득개헌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로 기본소득 보장을 새로운 헌법에 넣고자 하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확장하려는 시도다. 현행 헌법에도 있듯이 현대 국가가 그 구성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공히 인정되는 바다. 하지만 보장의 정도와 방법은 정해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사회경제적 체제 속에서 사실상 보장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권리로서 보장하자는 것은 구체적인 방도를 헌법에 넣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려는 시도다. 따라서 이는 커다란 충돌을 가져오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당할 시도다. 하지만 담론 투쟁으로서의 이런 시도는 틈새에서 일어날 구체적인 투쟁의 나침반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하게 하려는 노력이다.

아마 틈새는 기성 질서와 실제 사이의 모순 혹은 충돌에서 찾게 될 것이다. 우리가 ‘청년문제’에 주목하면서 청년배당을 실시하는 것이 충분한 기본소득으로 가는 중요한 교두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의식했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런 방향을 지시한다. 제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없는 미래라는 테제도 거대한 전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완전고용의 신화와 노동 중심성에 머물러 있는 기성질서의 틈새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만큼 심각한 것이 재생산 위기와 ‘초고령화 사회’라는 전망이다.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은 지난 9월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BIEN Congress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본소득의 실시Implementing a Basic Income”이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소득의 제도화가 구체적인 시야에 들어왔다는 인식 하에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기본소득을 제도화할 수 있는가라는 발표가 제법 있었다. 예를 들어 음의 소득세(또는 마이너스소득세)를 “보편적인 방향”으로 개선해서 기본소득에 접근하자라든가 기본소득이 아니라 최저소득 보장을 우선적으로 제기한다든가 하는 접근법 등이다(리스본 대회에 관해 좀 더 자세한 것은 다음 호에 실릴 것이다).

이런 접근법을 그저 기각할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틈새를 찾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틈새를 찾는 것인지 아니면 기성질서에 포섭되는 것인지는 그러한 개혁 조치에 대한 면밀한 검토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에 비추어 여러 시도를 기각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개혁 조치들이 전면적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민주주의를 다시 정의하며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사실 지금 현 정부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경멸의 폭포수’가 흐르고 있다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사회 연대성’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지향 사이의 절연이다. 물론 촛불혁명은 죽었고 1주년은 추도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 대칭적인 대립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할 때만 우리의 싸움은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7년 11월호 통권53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시대 55호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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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의 자유와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개인들의 자유와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작년 가을과 겨울, 사람들은 광장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게 나라냐?” 이 외침은 근대의 정상 국가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으며, 한국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났던 통치의 양상에 대한 조소를 띠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 위기(?)는 국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낳을 수밖에 없다. 국가라는 것의 논리는 무엇인가? 여기서 국가는 물론 정상 국가다.

사실 두 질문은 겹쳐 있다. 후일 역사가들이 좀 더 상세하게 분석하고 치밀하게 서술하겠지만,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사태의 주요한 계기가 ‘세월호 참사’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통치 권력이 국가 구성원, 즉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대중의 인식은 탄핵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을 형성했다. 이것이 ‘스캔들’이었던 것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게 통치자의 무능 때문만이 아니라 무책임과 사사로운 일 때문이었다는 (혹은 대중이 그렇게 느꼈다는) 점 때문이다. 더 나아가 현대 국가의 통치자가 대중과 완전히 분리되어 더 높은 곳 혹은 저 깊숙한 곳에 거처하고 있다는 인식은 자유와 평등의 관념으로 무장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사실 견디기 힘든 모욕이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했을 때 대중은 환호했다. 이 환호는 어려운 시기에 영웅의 등장을 기대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자신과 같은 지평 위에 서 있는 보통사람에 대한 동일시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당장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적폐 청산’과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의 ‘정상화’이기 때문에 과제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방향의 제시만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위기 속에서 강행되고 있는 사드 배치는 국가의 정상화가 아니라 정상 국가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국가안보’라는 주장은, 사드는 목표로 하는 것을 달성할 수 없는 무기 체계라는 합리적 비판조차 무의미하게 만들며, 더 나아가 강정과 밀양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듯이 해당 지역 보통사람들의 물질적, 사적 삶 자체를 파괴하는 것도 용인하게 한다. 여기서 ‘자유를 위해 자유를 제한한다’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설이 발생한다. 사람들의 삶의 안전을 파괴하는 국가 안보는 도대체 무엇인가? 물론 여기에 대한 전통적인 답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든가, 외적 압력 앞에서 정치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단결해야 한다든가 따위의 대답 말이다.

문제는 이런 답변을 그리 쉽게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수자의 권리’는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 정치와 큰 담론에 가로막혔으며, 그나마 어느 정도 이런 권리들이 인정받은 20세기 후반 이후에도 반복적인 다툼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국가와 국가 사이의 충돌을 바라보는 ‘현실주의’ 논리를 넘어서는 틀과 행동도 여전히 발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의 논리는 불가피하게 국가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부딪혀 축소될 운명인가? 이러한 축소는 힘의 충돌 속에서 결국 자유와 평등의 실현 불가능성으로 이어지는가? 이런 체념을 반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시 이상주의를 불러내는 일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선제적 예방 공격이 아니라 원리의 선제적 실현 노력이다. 대표적인 시도는 일방적 군축이다. 물론 전략적 사고까지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자간의 힘의 균형 속에서 일방적 군축을 점진적으로 실현할 경우, 이는 그 무엇보다 현실주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 공동체 내에서 개인과 개별 집단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는가? 사실 소박하게 말하면 차이를 인정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동성애에 대한 일부 기독교계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차이의 인정은 고사하고 차이를 악마로 보고 처벌하려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 동성애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개인의 성향과 지향대로 살겠다는 것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대칭성 및 지배의 문제와 만난다. 그저 차이가 아니라 어떤 것은 ‘우월’하고 어떤 것은 ‘열등’하며 또 어떤 것은 지배적이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한 경로는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급진적 변화다. 하지만 역사의 경험은 급진적 변화조차 또 다른 지배적인 사회질서를 낳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따라서 급진적인가 아닌가는 별개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도리어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과정일 수 있다. 특정 집단의 해방인가 개인들의 해방인가, 하나의 지향을 가지는 변화인가 다층적인 변화인가? 물론 여기에는 이런 질문이 따라 나올 수 있다. 해당 사회, 즉 정치 공동체의 공통의 목표란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개인들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그렇다면 변화의 과정도 계속해서 이러한 목표를 향해 조정되어 가는 경로를 택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변화가 개인들의 자유와 존엄을 확대하고 보장하며 ‘궁극적’으로도 그러한 방향 말이다.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좀 더 현실감 있게 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이런 사고방식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는 주로 그 효과와 필요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매우 필요하고 적절하긴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과연 기본소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기본소득은 그 무엇보다 개인들의 자유와 존엄을 위한 것이다. 정말로 개인들의 자유와 존엄이 보장될 수 있다면 정치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을 새로운 헌법에 넣자는 시도는 그만큼의 의미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 개인들의 자유와 존엄의 개인적인 물질적 기초를 이룰 수 있는 기본소득의 보장을 분명한 권리로 확보하고 이를 국가의 의무로 삼는다는 것은 매우 간단한 요구처럼 보이지만 심원한 목표와 역동적인 과정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니 당장은 한반도 위기 그리고 기타 정치적 개혁에 가려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기본소득을 헌법으로 보장하자는 요구는 커다란 발걸음이 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7년 10월호 통권52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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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국민주권 시대, 새로운 사회 구성의 연대를 위하여

새로운 국민주권시대,새로운 사회 구성의 연대를 위하여

 

1848년혁명 당시 민주파의 지도자였던 르드뤼-롤랭Ledru-Rollin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현대 대중 정치의 중요한 측면을 드러냈다. “나는 저들의 지도자다. 나는 저들을 따라가야 한다.” 물론 좀 더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원하던 사람들은 그의 이 말을 조롱거리로 삼기도 했으며, 이를 가리키는 꽤 오래된 말이 있다. 대중 추수주의! 하지만 계몽, 이성, 지도라는 말로 행해졌던 참혹한 20세기의 사건들을 뒤로 한 이후, 누구도 함부로 ‘전위의 지도’를 말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포스트민주주의 하에서 점점 더 우스꽝스럽거나 철면피하거나 아무 생각이 없는 정치 지도자를 경험한 이후에는, 도대체 지도자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피해 갈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르드뤼-롤랭의 말을 예시적인 것으로 읽으면서 긍정성을 부여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또 다른 질문이 남아 있다. “따라가야” 할 “저들”이 어디에 있는가? 좀 더 근본적으로, “따라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전자는 ‘대중의 형성’ 혹은 ‘주체의 형성’이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을 것이다. 후자는 ‘지도자와 대중의 관계’ 혹은 ‘지도자가 하는 행위에 대한 파악’으로 재개념화할 수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치적) 주체화를 경험하는 것은 호명과 요구의 발화를 통해서다. 이때 호명은 사건에 의해 이루어지고, 요구의 발화는 처지의 인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계기 자체에 대한 이해도 문제이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호명과 요구의 발화가 얼마나 넓은 지반 위에서 이루어지는가, 다시 말해 다수를 동원할 정도로 공통성이 있는가다. 한때 노동자 ‘계급’이 양적으로 다수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변화의 ‘사명’을 지닌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의 파편화, 다른 요구 집단의 등장으로 인해 전반적인 변화의 공통 지반과 공통 요구가 무엇인지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연대’라는 개념이다. 원래 연대는 중세적 질서가 해체된 이후 공적 단위인 국가와 개인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사회를 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고용노동과 사회보험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면서 현대 국가와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 원리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연대는 서로 다른 요구 집단 사이의 이해, 관용, 협력 등을 가리킨다. 간단하게 말해,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는 여지와 목표를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지도자와 대중의 관계와 관련해서 우리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라는 초월적 이해(베버), 고차원적 의식의 투입 및 청교도적 삶이라는 변증법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이해(레닌),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생물학적 이해(그람시) 등의 전범典範이 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결과론적 이해이기 때문에 이를 성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다. 레닌의 이해 방식은 앞서 말한 역사적 결과물 때문에, 그리고 개인들의 역량과 감수성의 고양 때문에 환영받기 어렵다. 유기적 지식인은 목표와 태도를 가리키기는 하지만 생물학적 비유가 초월적 인식과 난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과정에 대한 인식을 어렵게한다.

오늘날에는 지도자보다 집단 지성과 자발적 행위가 강조되고 있다. 물론 반대편에서는 ‘스타’에 대한 열망이 있다. 하지만 스타는 집단적 열망과 개인들의 바람이 잠시 머무르는 고정점이라고 할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집단적 열망과 개인들의 바람이 흐르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중조직에 대한 스탈린적 의미 부여(전달 벨트)와 반대의 의미에서 통로(채널)라는 관점에서 조직과 활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진정한 국민주권 시대가 시작되었다”라고 천명했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기존의 정치과정이 변경되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람이기에 당연한 말을 했다고 할 수 있고, 어쨌든 현행 헌법 체제 하에서도 할 만한 평범한 말로 치부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립 서비스’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 있어 보이며, 아니 우리가 거기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구성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의미로 국민주권을 말했는지는 사실 불분명하지만, 개헌에 관해 언급하면서 약간의 실마리를 주긴 했다. 그는 중앙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정치권(국회)의 합의가 없더라도 “지방분권과 국민 기본권 확대” 개헌을 대통령과 행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오늘날 왜 국민 기본권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한 가지는 역사적, 진화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프랑스혁명이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천명했지만 현실에서는 일부만이 이를 향유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 이후의 역사는 사실상 인간과 시민에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한 역사라는 이해가 그것이다. 이러한 일은 “차별 철폐”라는 구호 아래 계속되어 온 일이다. 다른 한 가지는 최소한 2차 대전 이후 형식적으로는 자유와 평등,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특히 최근 들어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해 방식이다. 이를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화합과 불화”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특정한 시기, 예컨대 장기 호황의 황금기에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번성했고 또 민주주의의 토대를 일정 정도 마련했지만,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발흥 속에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침식했고 둘의 관계는 불화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권 확대가 다시 형식적 명문화의 과잉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87년 체제를 경험하면서 모두가 분명하게 느낀 것은 헌법이 한계를 정해 주긴 하지만 그 자체로 포지티브한 현실의 결과물을 그냥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권리 확대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른바 당사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때 헌법에 보장된 권리는 현실의 꽃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사회 각계에서 ‘개헌운동’을 벌이고자 하는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침식당한 민주주의의 토대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꽤 오래 전부터 기본소득을 포함한 새로운 경제체제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 자체가 여전히 충분히 구체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우리의 사고실험이 게을러서만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구체적 요소들을 발견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의 승리를 가져올 이성적인 사람들의 구성이 필요했다. 전자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경제의 구조적 변동과 연관된 것이며, 후자는 촛불혁명의 뒤를 이을,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려는 에너지의 결합에 의해 가능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새롭게 사회라는 것을 구성할 수 있는 개인과 집단들의 연대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시대』 2017년 09월호 통권51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