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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본주의와 무조건적 기본소득: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유토피아*

로날드 블라슈케 번역 조혜경

* 로날드 블라슈케Ronald Blaschke의 이 글의 원제는 “Utopie mit Sprengkraft. Das bedingungslose Grundeinkommen im digitalen Kapitalismus”이며, 출처는 Blätter für deutsche und internationale Politik, 11/ 2017, S. 104∼112다. 로날드 블라슈케는 기본소득독일네트워크의 공동 창립자이자 이사이며, 독일연방의회의 학술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조혜경 연구원이 발췌하여 번역했다.

최근 들어 무조건적 기본소득 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세력은 사회운동 단체, 단일 의제 정당인 기본소득동맹Bündnis Grundeinkommen, 또는 좌파당과 녹색당의 일부만이 아니다. 이제는 기독민주연합 소속의 전 튀링엔 주지사 디이터 알트하우스Dieter Althaus, 독일텔레콤 대표이사 티모테우스 회트게스Timotheus Höttges도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나섰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보수 진영에서도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소득 지지층이 다양한 이념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은 하나의 기본소득 모델이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실제로 서로 다른 세계관과 정치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기본소득 구상이 존재하며 사회개혁의 방향과 목표도 상이하다. 그에 따라 지급 금액, 재원 조달 방법, 조세제도 개혁, 기존 노동 및 사회 시스템과의 관계등 기본소득의 구체적 방안에서도 입장들이 다양하게 갈라진다.

독일에서 최초의 기본소득 논쟁은 1980년대 초 실업자운동의 생계급여Existenzgeld 요구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등장한 것이 ‘녹색대안Grün-Alternative’이다. 임금노동, 과잉 소비, 산업사회, 환경 파괴, 임금노동 중심주의에 빠진 비민주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사회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이 녹색대안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21세기에 들어 독일 기본소득운동의 기반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슈뢰더 총리의 “아젠다 2010”과 “하르츠 IV” 법제화에 대한 대응으로 2004년에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결성되었으며, 이 네트워크에는 독일연방청소년연맹, 가톨릭 계통의 독일노동자운동, 독일가톨릭청년연맹, 자연친화청소년, 노동자복지협회 산하 연방청소년협회와 같은 대규모 대중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포스트가부장사회, 탈성장주의 진영, 반세계화 운동, 글로벌 사회권 운동, 공유재 및 연대경제 논쟁에서도 기본소득 지지가 확산되고 있으며 노동조합 진영에서도 우호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 구상이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인지는 기본소득의 구체적 방안과 제반 사회 여건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모델과 해방적 기본소득 모델로 구분된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노동시장 유연화 확대, 조세제도 및 복지 이전소득 제도의 극단적 단순화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본다. 그에 반해 해방적 모델의 기본소득은 근대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논리의 극복을 지향한다.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vs. 해방적 기본소득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구상의 전형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해방적 기본소득 구상의 전형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에서 찾을 수 있다. 프리드먼과 프롬 모두 1960년대 미국에서 기본소득 구상을 제시했다.

신자유주의적 또는 시장자유주의적 기본소득 구상은 임금노동에 대한 경제적 강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노동소득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부분기본소득을 주장한다. 독일에서는 토마스 슈트라우브하르Thomas Straubhaar와 디터 알트하우스가 대표적인 지지자에 속한다. 이들은 임금노동의 유인을 강화하는 효과를 특별히 강조한다. 또한 해고 제한, 산별 효력 확장 제도, 최저임금제도 등 노동자를 위한 각종 노동 시장 규제를 폐기할 것과 복지 행정 비용의 축소, 더 나아가 기존의 사회보험, 기타 사회보장 급여나 지원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사회보장 비용을 줄이고 저임금 부문을 육성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구상은 고소득층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세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노동시간 단축 또는 젠더 임금 평등을 위한 노동정책을 부정한다.

그에 반해 해방적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 독일에서는 좌파당 주도의 기본소득연구회, 실업자운동, 아탁 활동그룹 “모두에게 충분하게”가 여기에 해당한다 – 모든 사람이 시장시스템 및 관료주의적 국가의 족쇄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시에 모든 사회구성원이 경제 및 기타 사회적 영역의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기본소득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소득재분배를 이루어내고 기본 생계를 보장하며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적 기본소득 구상은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정치적 지향을 내포하고 있다. 경제, 금융, 정치, 교육, 문화, 사회보장제도, 공공인프라 및 공공서비스 등 모든 사회 영역을 민주적으로 개조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에서 그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보험은 보편적인 시민보험으로 개편되어야 하고 상호 협력에 기초한연대경제와 자조 활동을 촉진하며 생산, 소비, 생활방식을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체협약과 법률에 의거한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도입, 공공인프라 및 공공서비스의 확대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유럽 전역, 더 나아가 글로벌 차원에서 도입되어야 하고 글로벌 사회권과 인권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해방적 기본소득은 젠더 정책의 문제도 직시하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실현, 전형적인 여성 직업의 가치 격상, 임금노동, 가사노동, 돌봄 노동의 젠더 평등적 재분배, 교육, 임금노동, 시민적 참여의 동등한 접근권 보장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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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 요인들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I. 들어가는 말

2018년은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지난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회복 속도는 다른 때에 비해 유난히 더뎠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주식, 채권, 부동산 등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은 전후 어느 때보다도 좋은 실적을 올렸다. 실물경제의 성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자산 가격의 급등을 ‘경제거품economic bubbles’이라고 한다. 현재의 세계경제에는 경제거품이 가득하고 이는 또 다른 금융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앙이자 세계경제의 약 24%(경상GDP 기준)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를 보자.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위기 이후 한때 10.0%에 달했지만 2017년 10월 4.1%까지 내려왔다. 이를 근거로 미국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2017년 성장률은 2.2%로, 1980년 이후 평균성장률인 2.6%보다 낮다. 2010년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6%를 상회한 것은 2015년이 유일하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은 정체되어 있다. 미국 중산층의 가계소비가 늘고 있다지만, 소득 증가가 아니라 부채와 저축의 감소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장의 기반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주식, 채권, 자산 등의 시장의 동향을 보면, 현재 세계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정점은 약 14,000이었다. 그 후 7,000수준으로 폭락했다가 8년이 지난 현재에는 24,500을 넘어섰다. 금융위기 직전의 정점과 비교했을 때 75% 이상 상승한 것이다. 미국의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주택 가격은 2008년 위기로 거품인 것이 판명된 가격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심지어 암호화폐인 비트코인과 미술품 가격의 동향을 보여 주는 그래프는 에펠탑 모양을 하고 있다. 실질임금이 정체된 상황에서의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의 활황은 금융회사, 직업적 투자자, 상위 1%의 부자들에게 엄청난 자본이득을 가져다주어 소득불평등을 더욱 악화시켰다.

역사적 경험이 말해 주는 분명한 사실은 거품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남기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2018년 세계경제에 형성되어 있는 경제거품의 붕괴를 촉발할 수 있는 세계경제의 위험 요인을 점검해 본다.

 

II. 새로운 금융위기의 촉발 요인

1.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과 양적 완화 해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는 2017년에 이어서 2018년에도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와 함께 양적 완화를 통해 그동안 쌓아둔 금융자산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유럽중앙은행도 양적 완화의 축소tapering를 시작했으며, 영국 중앙은행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것은 시중에 풀린 돈을 흡수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정책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지난 금융위기를 야기한 제반 문제가 해소되어 경제가 정상화되었으며 금리 인상과 자산 매각이 실물경제나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경제의 구조적 측면과 금융시장의 동향을 고려하면 통화긴축을 실시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아 보이고, 만약 통화 긴축을 실행에 옮긴다면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을 급격히 위축시킴과 동시에 수면에 가라앉아 있던 구조적 문제를 다시 부각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 위기 동안, 주요국 정부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했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시장의 부실채권을 떠안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체제를 구제했다. 즉 중앙은행은 제로 금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채무자가 상환할 수 없는 부실채권을 현금을 주고 떠안았다. 이런 방식으로 시중으로 풀린 돈이 미국의 경우 10조달러에 이르고, 유럽, 일본, 영국까지 합치면 20조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조치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연쇄적인 파산을 막고 투자의 불씨를 되살리는 역할을 했지만, 이와 동시에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에서 전례 없는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중앙은행들은 공개적으로는 시장 붕괴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지만, 예외적인 통화 완화가 금융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FRB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점진적이나마 인상하려는 이유를 명목적으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인플레이션율은 실제로 그리 높지 않고 2% 내에서 안정되어 있다. 사실 중앙은행들이 점진적이나마 통화긴축을 단행하려는 것은 금융시장의 지나친 과열 때문이다.

통화 긴축이 현재의 경제거품을 붕괴시키게 되는 경로로는 여러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우선 통화 긴축으로 신용 경색을 불러오고 이로 인해 취약한 금융시장의 한 부분을 타격할 수 있다. 지난번 위기는 미국 주택 가격의 급락으로 비우량 주택 대출subprime mortgage 시장에서 대규모 파산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금융규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다시 미국의 주택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지난번과 같은 대규모 파산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위기는 언제나 이전의 위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도둑처럼 찾아온다. 미국 연방정부의 학자금 대출이 위기 촉발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고, 자동차 할부 시장이 위기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 부문에서는 고위험 소비자들에게 대출이 계속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에는 통화 긴축이 달러의 평가절상과 함께 개도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사실로 인해 위기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 달러의 평가절상은 미국 다국적기업의 해외 수익을 잠식하며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려서 미국의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 인하를 통해서 기업의 경쟁력을 보완하려고 하지만, 감세는 재정 적자를 심화시키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는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취했던 역사상 전례 없는 실험이었다. 마찬가지로 금융시장이 과열된 상태에서 금리를 높이고 양적 완화를 해소하는 것도 분명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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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관하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후안무치일 것이다. 거짓말과 사기꾼의 대명사로 남을 가능성이 큰 전직 대통령의 구속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지방의회의 양당 의원들까지 구석구석 그렇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운 게 우리네 현실이다. 물론 부끄러움은 기성 질서의 이른바 기득권층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갑을 관계의 연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조금 더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아래 있는 사람을 짓밟고 서려고 한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그런다고들 말할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사회의 분할과 해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처럼 느껴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형성’된 데는 뿌리가 있을 것이다. 그건 식민지 시대, 해방 전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상실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있었는지 자체는 논외로 하자.) 물론 “헤게모니 없는 지배”는 사실상 불가 능하기 때문에 국시raison d’etat라는 게 제시되긴 했다. 그건 다 아는 것 처럼 반공과 경제성장 혹은 근대화였다. 이 두 가지 국시는 특정한 국면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고 실제로 작동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고 냉전의 방벽이 단단하던 시절에는 반공은 대단한 주술적 효과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화와 근대화를 뒷받침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그리고 1997년을 거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 는 서서히 침식되어 갔고, 산업화와 근대화는 대중의 복지가 아니라 사회 양극화 속의 절망이라는 정반대 효과를 낳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자잘한 국시는 있었지만, 대중을 사로잡고 그 힘을 특정한 방향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지표는 사실상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권리를 지키고 요구를 관철하고자 하는 대중의 다양한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분할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지난 촛불혁명이 의미가 있다면 그건 이 ‘정치 공동체’가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근거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새로운 방향이란 민주공화국, 공정과 정의, 사람 사는 세상 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대통령이 발의하는 헌법 개정안도 대체로 이런 방향에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는 공정과 정의, 그리고 최근 기대를 가지게 하는 한반도 평화 같은 구호가 새로운 국시가 될 수 있느냐다. 물론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여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자체로 정치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느냐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방책을 선택하고 실행하는가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하고 그것이 모두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어떤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합의 혹은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할 텐데, 그것도 정치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이루어지는 합의 혹은 사회계약이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새로운 합의 혹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해서라도 이 정치 공동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아마 이 지점에서 ‘좌파’와 ‘민주파’ 사이에 쟁점이 형성될 것이다. 물론 당장 이 쟁점이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합의와 새로운 합의를 위한 참여의 장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낡은 것을 청소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고, 그 가운데 하나는 안팎의 반공주의를 일소하는 일이다.

하지만 좌파와 민주파의 논점은 머지않아 드러날 수밖에 없다. 현재와 미래의 삶의 절박함이 그리 많은 시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좌파가 과연 미래를 향한 쟁점을 형성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다. 더 나아가 도덕적 설득력을 포함한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대답이 긍정적이지 않다.

아마 우리의 부끄러움은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이 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후안무치가 아니라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고백의 부끄러움 말이다. 물론 부끄러움을 뼈저리게 느낀다면 약간이나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4월호 통권57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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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만난 아이디어의 실행과 구현을 위하여

― 기본소득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이건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수료

 

기본소득은 진정 리드Howard Reed와 랜슬리Stewart Lansley의 책 제목처럼 “때를 만난 아이디어”인가? 실로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 실험(사회적 실험, 모의실험, 사고실험, 기타 다양한 실천들)의 형태로든 현실 정책 및 제도의 형태로든 실제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그 이전의 두 번의 물결과 같이 현재의 세 번째 물결 역시 잠깐 출렁였다가 이내 사그라지는 운명에 처하고 말 것이다.* 현재 전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본소득(과 관련된) 실험들, 기본소득 정책을 법제화하고자 하는 일련의 운동들, 기본소득의 기대 효과와 잠재적 영향에 관한 연구, 기고, 기사 등의 급증은 세 번째 물결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 기본소득을 비단 아이디어와 실험 차원에서 멈추게 하지 않고 우리 시대의 현실로 구현하기 위한 열망과 바람을 담은 것일 테다.

지난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개최되었던 제17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의 제목은 바로 “기본소득 실행하기Implementing Basic Income”였다.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함께 이번 대회 참가자 및 대회 조직위원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9월 20일에 총 14명에게 서면 인터뷰 또는 현장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발송하였다. 서면으로 3명이, 그리고 현장에서 3명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이 글은 서면 인터뷰 세 건을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벨기에 루뱅대학교의 필립 판 빠레이스Philippe Van Parijs 교수는 “기본소득의 경제적 지속 가능성Economic Sustainability of Basic Income”에 대해 말한다. 폴란드 아담미츠키에비츠대학교Adam Mickiewicz University in Poznań의 마치에이 슐린데르Maciej Szlinder 박사는 “일자리보장Job Guarantee(JG) 대 기본소득보장Basic Income Guarantee(BIG)”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P2P 이론가이자 P2P재단 P2P Foundation의 설립자로 유명한 벨기에의 미셸 바우엔Michel Bauwens은 사회적 지식 경제social knowledge economy와 도시 공유재urban commons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첫 번째 인터뷰: 기본소득의 경제적 지속 가능성 – 필립 판 빠레이스

이건민: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건민이라고 합니다. 먼저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해 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필립 판 빠레이스: 반갑습니다. 필립 판 빠레이스입니다. 인터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민: 여기서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기본소득의 경제적 지속 가능성”입니다. 말콤 토리Malcolm Torry 박사는 작년에 나온 저서 『시민소득의 실현 가능성The Feasibility of Citizen’s Income』에서 기본소득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으로 “정부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과 “가구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이 도입되어 있지 않다가 도입되는 이행 과정과 관련한 다양한 실현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더불어 교수님께서 야닉 판더보르트Yannick Vanderborght 브뤼셀대학 교수와 함께 쓰신 책 『기본소득: 자유로운 사회와 건전한 경제를 위한 제안 Basic Income: A Radical Proposal for a Free Society and a Sane Economy』(2017년) 제6장에서 다룬 기본소득의 “경제적 지속 가능성”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만약 아직까지 도입되지 않은 어떠한 정책이 미래에 채택된다는 가정 하에서 그것이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일반적으로 예측된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널리 판단되는 그 정책을 현실에서 도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립 판 빠레이스: 네. 그렇습니다.

이건민: 제가 보기에 기본소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들고 있는 주요한 논거는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1) 대다수 사람들이 전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2)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다, 3) 심각한 경제적 변동성과 불균형성을 낳을 것이다. 하나씩 여쭈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필립 판 빠레이스: 설문조사, 인터뷰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만약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당신은 계속 일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거의 대다수는 자신은 계속해서 일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반면 “만약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사람들이 계속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상당수 사람은 많은 이들이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응답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타인이 무엇을 할 것이냐보다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이냐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에 대한 대답이 후자에 대한 대답보다는 기본소득이 초래할 결과들을 추측하는 데 더 나은 지침이라 하겠습니다.

노동 공급 측면에서 기본소득 제안이 부딪히는 진정한 도전 지점은 많은 사람이 전혀 일하지 않게 될 가능성보다는 많은 사람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하고, 경력 단절 기간을 더 길게 가지며, 비록 보수는 좋지 않지만 더 높은 내재적 가치(특질)를 갖는 일자리를 취할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효과들은 추상적인 견지에서inabstracto 기본소득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할 때 고려되어서는 곤란하며, 특정한 기본소득 제안들의 지속 가능성을 논할 때 감안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지급 수준이 어떠한지, 기본소득이 무엇을 대체하고 무엇을 보완하는지, 기본소득의 재원이 어떻게 조달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 보아야만 합니다.

 

  • *   칼 와이더키스트Karl Widerquist는 2016년 서울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트 대회의 한 발표에서, 사회정의의 기초로서 기본소득이 부상했던 20세기 초를 기본소득의 첫 번째 물결로, 복지권운동, 민권운동을 비롯한 여러 사회운동이 펼쳐졌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기본소득의 두 번째 물결로, 현재를 기본소득의 세 번째 물결로 지칭하였다.
  • ** “정부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fiscal feasibility”이란 정부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는 재원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가구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household financial feasibility”이란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되는 저소득층이 거의 없어야 함과 동시에 고소득층의 손실이 지나치게 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말콤 토리는 이러한 “재정적 실현 가능성” 외에도 “심리적 실현 가능성psychological feasibility”, “행정적 실현 가능성administrative feasibility”, “행태적 실현 가능성behavioural feasibility”, “정치적 실현 가능성political feasibility”, “정책 과정 실현 가능성policy process feasibility”을 특정 사회에서 특정한 기본소득이 충족시켜야 할 실현 가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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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실험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2008년 경제 위기는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비교되면서 대불황Great Recession이라 불렸다. 커다란 차이가 있는데, 대공황은 뉴딜을 비롯한 ‘대안’의 제출과 실행으로 이어졌지만, 대불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과거에는 국민국가라는 파라미터와 총력전의 경험과 전망 속에서 경제를 다시 사회 속에 묻으려는 시도가 가능했다면, 오늘날 지구화된 자본주의는 그런 제약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위로부터의 대안’은 없었지만, 경제 위기에 대한 기성 질서의 해결 방식은 ‘아래로부터의 분노’를 낳았다. 특히 경제 위기가 부채 위기로 이어지고, 구제금융이 긴축을 강제한 남유럽에서는 대중의 저항이 거셌고, 이는 기성 정치질서 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나아갔다.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곳은 그리스였다. 이곳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트로이카(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 유럽중앙은행)의 압력 하에서 긴축 조치를 실시한 사회민주주의정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이 완전히 몰락하고, 2015년 1월 급진좌파인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시리자의 권력 장악보다 더 극적이었던 것은 시리자가 트로이카에 굴복한 일이었다. ‘채무 조정’과 반反긴축을 내걸고 집권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긴축 거부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까지 확인했지만, 시리자는 결국 3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트로이카의 요구를 수용하는, 사실상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 과정은 좌파에게 두 가지 교훈이자 과제를 남겨 주었다. 하나는 긴축을 받아들인 사회민주주의의 몰락이다. (긴축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회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이를 역사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정세적으로 볼 것인지는 아직 남은 문제이긴 하지만, 지지층에 반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의 결과는 분명해 보인다. 다른 하나는 특히 유럽에서 문제인데, 오늘날 국민국가 수준에서의 주권, 특히 경제 주권의 회복이 가능하고 또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문제다.

유럽연합에서 다섯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스페인은 약간 다른 양상을 보였다. 시리자가 규모는 작지만 기성 정당이었다면, 스페인의 경우에는 포데모스Podemos라는 완전히 새로운 ‘좌파’정당이 출현했다. 이는 2011년 5월에 시작된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의 운동이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형성한 것을 다시 모아 정치적 매듭을 만들어 낸 것인데, 일종의 포퓰리즘적 계기를 정치적으로 포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와 달리 스페인사회당PSOE이 완전히 몰락하지 않고 여전히 주요한 정치 세력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의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과 달리 오래된 정당으로서 여전히 전통적인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끝으로 오른쪽에서도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시우다다노스Ciudadanos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페인 정치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2015년 12월 총선 결과 다수파 정부가 등장하지 못했고, 이후 2016년 6월 총선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국민당PP-시우다다노스’ 조합도, ‘사회당-포데모스’ 조합도 다수파 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다. 물론 후자는 사회당 내 우파의 반대로 시도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기성 질서의 일부가 된 사회민주주의정당은 자기 왼쪽에 있는 정당과 연합하는 것을 일종의 터부로 삼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럽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작은 나라 포르투갈은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2015년 10월 총선에서 32.3퍼센트를 득표하여 제2당이 된 사회당Partido Socialista이 왼쪽의 좌파블록 및 연합민주동맹CDU(공산당과 녹색당의 정치연합)과 함께 정부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 선거에서 우파 연합인 전진포르투갈(사민당과 국민당의 정치연합)이 38.6퍼센트를 득표하여 의석의 46퍼센트를 확보하긴 했지만 다수를 구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렇게 형성된 사회당 주도 정부가 반긴축 정책을 펼쳤으며, 현상적으로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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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샌드박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김찬휘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와 진입 장벽을 전면 개선해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대기업 특혜가 아니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이 국회에서 입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

눈을 크게 뜨고 기사의 날짜를 다시 체크해 본다. 혹시 2016년은 아닐까? 분명히 2017년, 그것도 5월 10일 이후의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나 나왔을 성 싶은 이 발언들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수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박근혜는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조금씩 해서는 한이 없으니 과감하게 단두대에 올려서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라고 규제 철거를 공언했다. 그 이후 박근혜는 2016년 1월 13일 대국민 담화에서「규제프리존법」,「서비스발전기본법」등의 국회 통과를 요청했는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K스포츠재단이 설립된 날이었다. 결국 3월 24일 새누리당 의원 13인의 발의로 「지역전략산업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19대 국회에 제출되었고,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이 법안은 5월 30일 새누리당 의원 전원과 국민의당 3인에 의해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다시 발의되어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근혜-최순실 정부의 희대의 악법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부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짐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있어 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5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지금도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들은 규제프리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히면서 “당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는 박근혜 정권 당시 전남도지사로서 「규제프리존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건의했던 바 있다. 7월에는 김부겸 행자부 장관이 “규제 개혁 차원에서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라고 발언했고, 여당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면서 이름을 바꿔서라도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7월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추경예산 심사 보고서에는,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를 전제로 반영된 목적예비비 2천억원이 연내 집행될 수 있도록 법안 통과에 최대한 노력한다”라는 부대 의견이 달렸다.

이런 와중에서 급기야 10월 11일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산업 분야는 일정 기간 규제 없이 사업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하고, 18일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테스트베드형 지역특구” 도입을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여당 내부의 주장대로 ‘규제프리존’을 이름을 바꿔서라도 실시하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난감한 일이 있다. 박근혜 정부건 문재인 정부건 영어를 쓴다는 것이다. 마치 그 본질을 모든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양, 그들의 정책은 알 수 없는 영어로 가득 차 있다. “규제프리존”에서 ‘프리free’는 ‘자유롭다’라고 번역해도 좋지만 ‘없다’라고 번역할 때 더 이해하기 쉽다. 즉 ‘규제프리존’이란 ‘무無규제 구역’이다. “테스트베드형 지역특구”에서 ‘테스트베드test bed’는 ‘시험장’이다. 성능, 효과, 안정성, 피해 등이 입증되지 않은 제품 및 기술을 시장에 판매하여 시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반응”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가 ‘마루타’가 되는 것이다.

제일 어려운 단어가 남았다.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샌드박스’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대답이 돌아 왔다. “권투할 때 쓰는 샌드백 같은 거예요? 규제를 막 패는 건가요?” 역시 외국어는 뭔가를 숨기려고 하는 자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도구다. 샌드박스가 뭔지 사진으로 보도록 하자.

나무로 된 박스(box) 안에 모래(sand)가 채워져 있는 이것이 샌드박스다. 모래놀이터를 만들어서 이 ‘구역’ 안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부모/어른의 간섭 ‘없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에서 정부 규제는 부모/어른에 해당하고 뛰어노는 어린이들은 대기업을 위시한 특혜 기업이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을 테니 기업은 자유롭게 놀고 싶은 대로 맘대로 뛰어노세요.’ 이것이 ‘규제 샌드박스’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주는 제도로서, 영국에서 금융과 IT를 융합한 ‘핀테크FinTech’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다. 사업자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신청하면, 법령을 개정하지 않고도 심사를 거쳐 시범 사업, 임시 허가등으로 규제를 면제, 유예해 그동안 규제로 인해 출시할 수 없었던 상품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하고, 출시 이후 문제가 있으면 사후 규제하는 방식이다.

최근 11월 10일 베트남에서 열린 APEC 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신산업·신기술 육성을 위해 규제 법체계를 사전 허용·사후 규제 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한편 일정 기간 규제 적용 없이 혁신 서비스나 제품을 출시해 테스트할 수 있게 하는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규제프리존 부활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과연 규제프리존은 어떤 것이기에 신정부가 이렇듯 우선적으로 적극 추진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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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변화의 첫 단추, 선거제도 개혁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촛불 1주년, 정치 개혁이 핵심이어야

대통령 탄핵을 거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크게 진전하는 것은 아니고, ‘헬조선’이 ‘행복조선’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지금 상황은 정확하게 대통령 한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에는 전혀 바뀐 것이 없다.

정치권에서 개헌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민 참여’는 형식에 그치고 있다. 지난 8월 29일부터 한 달 동안 진행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지역 순회 토론회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은 되지 못했다. 이런 형식적인 참여 절차에 항의하는 위원회 자문위원들의 의견도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개혁 입법도, 정치 개혁도, 개헌도 모두 안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겨울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열망이 이런 식으로 끝나 버려서 되겠는가? 정말 답답한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시민사회, 그리고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돌파구는 정치 개혁일 수밖에 없다. 개혁 입법을 위해서도 국회를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국회 내의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개헌에 관한 합의는 불가능하다. 국회 판을 바꾸지 않고서는 시민들이 바라는 직접민주주의, 지방분권, 기본권 강화와 같은 내용들이 제대로 반영된 개헌은 이뤄질 수 없다.

정치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는 시민사회, 노동계, 개혁적인 정치세력·정치인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기본적인 선거제도 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선거제도 개혁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6월 8일 전국 단위의 ‘정치개혁공동행동’이 발족했고, 울산/강원/광주/대구/대전/부산/충북/충남/제주/전북/서울 등지에서 지역별 공동행동이 발족했다. 그만큼 전국과 지역 차원에서 힘을 모을 수 있는 이슈가‘ 정치 개혁’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지역 정치 개혁을 위해서도 선거제도 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의 선거제도를 그대로 두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촛불 1주년을 앞둔 지금 시점에 필요한 것은 정치 개혁이고,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루어져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개혁의 첫 단추는 선거제도 개혁

앞서 언급한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풀기 위한 실마리는 무엇일까? 국회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대한민국의 온갖 기득권 구조는 결국 국회로 모이게 된다. 기득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드는 것도 국회의 역할이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득권 세력들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통로로 기능해 왔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를 상징하는 단어는 ‘남성-기득권-50·60대’다. 국회의원 중 83%가 남성이다.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40억원에 육박한다.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연령이 만 55.5세이고, 20대/30대는 합쳐서 1%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런 구성을 그대로 둔 채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서민들과 약자들을 위한 정책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이런 모습의 국회가 아닌 ‘다른 국회’를 만들려면 국회를 구성하는 규칙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민심(표심)을 왜곡하는 불공정한 선거제도를 민심 그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공정한 제도로 교체하면 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각 정당이 얻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지금 국회의원이 300명인데, 300명 전체를 각 정당이 받은 득표율대로 배분하자는 것이다.

이 선거제도가 도입되어야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각 정당들은 정당 득표를 위해서 노동, 복지, 교육, 농업, 먹을거리, 안전, 환경처럼 시민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 청년, 소수자,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자 등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상당수 공천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유권자들이 공약의 진정성을 믿고 표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남성-기득권-50대 이상’의 국회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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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2018년 들어서면서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엔 우리의 철학으론 상상도 못할 일이 수없이 많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공화국 창건70돌”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하여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개선”하자고 했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을 “한반도 평화 원년”으로 만들자고 화답하면서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누이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방문했고, 폐막식에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이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물론 미국의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김여정 일행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고,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문은 ‘천안함 사태’의 책임 문제라는 명분 속에서 한국 내의 날카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낳고 있다.

올림픽이 서서히 무르익어 가던 2월 13일 지엠 본사는 한국지엠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폐쇄 결정을 발표하면서 지엠은 최근 3년간 군산 공장 가동률이 20퍼센트에 불과했고 한국지엠의 손실이 심각해서 내려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장 군산 공장 폐쇄로 2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며, 1, 2차 협력업체 노동자 1만 명 이상도 같은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많은 사람은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를 완전 철수의 신호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최대 수십 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일자리 늘리기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인데, 이 때문에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지엠의 경영 행태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정부는 지엠의 지원 요청에 대해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사태 속에서 지엠 같은 글로벌 기업이 2008년 이후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경영 전략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소득 아닌 소득일 것이다. ‘Government Motor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적 자금에 기대 생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는 상당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가 더 이상 아닐 것이라는 점 말이다.

끝으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장기 지속적인 일의 표출인 ‘미투’가 있다. 사실 왜 안 터지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검찰에서 시작된 폭로는 ‘문화예술계’와 종교계에까지 나아갔고, 아마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모든 사회 영역에서 분출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도 간간히 노출되었던 학계와 스포츠계 등의 사건도 새롭게 주목받을 것이다. 도리어 문제는 이런 일이 문자 그대로 만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없는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이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미투라는 사태 속에서,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이, 개인들을 비난하거나 징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인의 그런 행태가 가능했던 구조적 문제, 이른바 ‘권력관계’가 재구성될 수 있는가가 관건적인 문제이리라. 하지만 그런 권력관계가 재구성되어 모두가 동등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가 햄릿이 말한 “상상도 못할 일”인가? 누구도 그렇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 정권이 ‘합리적인’ 전략적 판단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주체라면 한편으로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재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이 국면에서 한국을 하나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는 이보다 더 예측하기가 쉬운 일이었다. 인천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엠이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 아닌 소문이 떠돌고 있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엠이 다른 지역에서 보인 ‘경영’ 행태를 보면 예측이랄 것도 없는 예측이었다. ‘미투’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가 문제였지 영원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인지를 헤아릴 게 아니라 상상도 못할 일 자체를 상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선 한반도의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보통 평화 체제라고 말을 한다. 과거에 열망하던 방식의 통일이 의제로 올라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평화 체제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변화까지를 포함하는 게 평화 체제이고, 또 평화 체제가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물론 세력 관계를 염두에 둘 때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약자도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것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남북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일 것이고, 상상도 못할 일은 ‘일방적인 군축’이다.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에 대한 전통적인 대응은 지원과 일자리 유지일 텐데, 현재 지엠의 입장을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해법이 새로운 산업의 유치 혹은 공장의 전환이다. 새로운 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 자체가 현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의 전반적인 방향은 ‘생산’과 일자리의 탈동조화脫同調化다. 이 속에서 지엠과 같은 사태는 시작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할 만한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여가, 한 마디로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활동 전반에 대해 다시 사고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운 경제로 가는 전환이 고통스럽다는 것까지 인정하면서 말이다.

독일의 화가인 샤롯데 베렌트 코린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실 해방되어야 할 여자란 없다. 바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남자들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오래 전의 것이라 여자와 남자라는 두 개의 젠더만 나오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고쳐 말해 본다면, 과거와 현재 권력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는 모두가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모두가 성숙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문명은 어떤 문명일까? 기존 문명의 옹호자들은 그걸 무질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돈에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세 가지 사태에 대해 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거나 실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거나 현재의 주체 역량을 벗어나 있기까지 하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시간 벌기’일 것이다. 물론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항전의 시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장소와 공간이 필요하다. 장소는 모이는 곳이고 공간은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래 걸리겠지만 시간 벌기는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3월호 통권5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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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국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개헌국면(?), 무엇을 할 것인가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1772~1837)는 자신의 ‘사상’과 미래 계획을 구성하면서 인간의 변덕스러움을 주요한 전제로 삼았다. 이를 사회적, 기술적 혁신의 동기에 적용하든 생물학적 돌연변이에 대입하든 그럴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꽤나 보수적이고 완강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일 년 전 가을과 겨울에 우리는 이를 경험했다. 거의 십 년에 가까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극악한 정치적, 사상적 탄압을 경험했음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행동의 의지는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광포한 신자유주의 시절을 이십 년쯤 겪었음에도 ‘이윤보다 인간’을 바라는 우리의 또 다른 욕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87년 민주항쟁이 30주년을 지나면서 우리가 새삼 깨닫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와 기성 정치의 완강함이다. 거리의 정치가 탄핵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지만, 제도의 완강함은 제도의 정치적, 법적 절차를 따라가도록 했고, 이 경로 의존성은 결국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로 끝났다. 물론 이렇게 선출된 대통령은 대중의 열망뿐만 아니라 그 과정도 잘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는 분명 기성 제도의 대통령이며 그 구조를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구조 속에서도 적절하게 통치 혹은 협치의 방법을 배워야 하고, 또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면서 변화의 힘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럴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대통령이 일 년만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시간의 필요성만 말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어떤 전략적 판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운동의 힘을 끌어내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통치 혹은 협치도 기성 정치 내에서 쉽지 않을 것이고, 이는 결국 대중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이유로, “촛불은 개헌으로 완성된다”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편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개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 속에서 제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라는 어떤 전임 대통령의 말처럼, 그렇게 제도 안에서 제도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개헌 자체에 대한 요구는 광범위하고 또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권력 구조의 문제다. 박정희 시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는 구체적인 인격에 따라 사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반대편에 있는 것이 ‘5년 단임제’다. 이는 충분한 역 사적 근거가 있는 제도이긴 하지만 대의제 정당정치의 책임성이라는 문제를 회피하게 만든다. (아예 모든 선출직의 단임제를 다른 시각에서 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직업적 정치가’라는 범주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인격에 따라 광범위하게 남용될 수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해도 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갈린다. 하나는 임기 4년에 중임이 가능한 대통령제다. 다른 하나는 이원집정부제라 불리는 사실상의 내각제다. 여기에 순수 내각제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대의제 정부라는 형태에서 이들 이외에 다른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위스 같은 예도 물론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대중적 호소력을 얻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대통령제와 내각제 가운데 어느 것이 대의제 정부에 적절한지를 따지자면 논리적으로는 내각제가 합당할 것이다. 대통령제는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두 개의 기관이 병립해 있는 양상이며,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더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입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입법 기능은 분명 의회에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왕이 부재한 체제에서 왕 대신에 꼭대기에 있는 자리를 만든 게 대통령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최소한 한국의 대통령은 대중의 열망을 대변하며 그 에너지를 하나의 방향으로 집행하는 힘이기도 했다. 게다가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내각제를 새로운 카스트를 위한 장식물에 불과하다고 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의제에 맞게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가 적절한 권한을 가지도록 하는 개혁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개헌은 권력 구조 때문에만 나온 의제는 아니다. 우선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헌법 내용을 수정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개헌에 대한 요구가 나왔다. 이때 기본권 보장은 두 가지 방향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던 권리를 새로운 헌법에 분명히 새겨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정체성’에 근거한 권리로 표현되며, 실질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차별의 금지다. 다른 하나는 추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있거나 국가의 의무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 부분을 구체화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사회권’과 관련이 있다.

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개헌의 요구는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성숙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제기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기존의 기본권 보장이 역사적이고 특수한 것이며 새로운 지평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도 제기된다. 예컨대 ‘양성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표현 대신 ‘성평등’이라는 규범을 제시할 때 이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사회 질서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담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본권 보장의 요구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질서가 넓은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근원적으로 소유권 보장 및 이윤 추구의 자유라는 가치 위에 자리 잡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모두가 동등하게 공공의 업무respublica에 참여하는 민주적 공화주의는 충돌하기 마련이다. 물론 역사 적으로 이러한 모순적 결합의 체제는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기도 하고 조작하기도 하면서 유지되어 왔으며, 특히 제2차 대전 이후 상당한 활력을 보이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러시아혁명으로 성립한 사회주의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압력, 총력전에 따른 사회적 압력, 자본주의경제의 내적 모순에 따른 경제적 압력 등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세기말 이러한 압력은 여러 이유로 인해 사라졌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 극한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금융자본과 대기업의 지배라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존재하나 그 실질은 사라진 형해화된 민주주의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이런 의문은 사회권 보장을 아주 획기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주장과 경제적 질서의 바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견해로 이어진다. 전자의 대표적인 것이 기본소득이며, 후자의 경우 토지 공개념의 강화 및 사회적 경제를 새로운 헌법에 적절하게 포함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이번 개헌은 분명 1987년의 헌법 개정에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일 수 있는 커다란 변화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제도적 방식의 제도 변화인 ‘개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기성 질서의 요구에 따른 개헌 이외에 의미 있는 개헌, 사실상의 제헌은 혁명이나 이에 준하는 상황 속에서만 가능했다. 물론 지금이 촛불의 연장선에 있는지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것처럼 광화문에 모였던 대중의 힘은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의탁한 후 뒤로 물러섰다. 이 힘이 제도적 제도 변경인 개헌으로 모일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부분적으로라도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즉 대통령이 말하듯이 기본권 보장과 지방 분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을 6월에 이루어내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인가 아니면 좀 더 포괄적이고 제대로 된 개혁의 내용을 담은 개헌을 계속해서 ‘주장’할 것인가? 물론 현실에서 둘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제 개헌은 국회의 정치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의 정치 지형에는 다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어리석었지만 가장 길게 효과를 미친 것은 (실패한) 커다란 변동 뒤에 곧바로 그러한 변동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촛불혁명이 그만큼 성공했고 또 그만큼 실패한 것이라면, 금세 마찬가지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완강한 제도와 변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를 ‘개헌 국면’에서 실행하는 일은 개헌이 사실상 ‘제헌’이 되도록 하는 활동일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개헌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속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이후를 위한 새로운 주체와 조직의 형성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1~02월호 통권5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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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 포르투갈 기본소득 활동가 미겔 오르타와의 인터뷰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2017년 9월 25-27일에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제17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BIEN Congress가 열렸다. “기본소득의 실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는 높아진 기본소득의 지위를 반영하듯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포르투갈 발표자도 적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곧 실시될 수 있다는 기대감, 새로운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것이 될 때 가질 수밖에 없는 조심스러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예전 대회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광범위한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는 오늘날,  ‘온전한’ 기본소득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단 합의를 통해 기본소득에 가까운 어떤 것을 실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이후 기본소득 지지자와 연구자 들 사이에서 하나의 쟁점을 형성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포르투갈 기본소득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활동가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미겔 오르타Miguel Horta는 인터뷰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를 거치지 않은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제출한 계획에 따르면 개인소득세를 폐지하는 대신 모든 사람이 자기 소득의 50퍼센트를 출자하여 매달 동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매달 분배되는 기본소득은 435유로(한화 약 60만원)다. 참고로, 2016년 포르투갈의 1인당 명목 GDP는 19,759달러(한화 약 2,200만원)정도다. 이런 발상은 사회란 연대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인터뷰는 9월 28일 저녁 리스본의 한 식당에서, 그리고 이메일로 이루어졌다.

| 먼저 본인 소개를 해 달라.

1995년부터 포르투갈 정부에서 세금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나중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운동에서는 다른 회원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회원일 뿐이다. 우리는 회원에게 특정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으며 위계제 같은 것도 없다.

|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90년대 초반 나이든 분이 티비에서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창조하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이래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이 사람의 이름은 아고스티뉴다 실바Agostinho da Silva이며, 포르투갈의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이다. 그는모든 일을 기계가 하고 인간은 창조하고, 숙고하고, 자신을 개선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썼다. 그의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었고, 세월이 흐른 후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 아고스티뉴 다 실바가 이야기하던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즉각 이 운동에 뛰어들었다.

| 1990년대 초반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이후 어떤 활동을 했는가?

사실 2013년까지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특별히 한 것은 없다. 2013년에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조직화된 활동가 그룹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참가했다.

처음 이삼 년 동안은 주로 기본소득에 대한 공적 토론에 참여하고 재원 마련 문제를 연구했다. 나중에는 리스본에서 지역 운동을 만들었고,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토론하는 공개 행사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다른 목적을 가진 조직이나 활동가 그룹과 교류하면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전하기도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기본소득 토론을 조직했다.

인터넷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 기본소득의 어떤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첫 번째 관심사는 재정 문제였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어떤 자원으로 마련할 것인가, 민중과 국가 영역 모두에 미치는 재정적 효과는 무엇인가 등이관심사였다. 그러나 그 이후 초점을 바꾸었다. 현재 나의 주된 관심은 서로 다른 기본소득 모델이 민중의 자유, 물질적 재화의 목적, 민중의 물질적 재화에 대한 태도 따위에 가지는 심원한 함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 현재 포르투갈 기본소득운동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기본소득운동이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활동가와 대중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기본소득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에 이는 더욱 확대되었다. 기본소득운동이 양적으로만 성장한 게 아니다. ‘기본소득’이 매우 다양한 어떤 것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사람들이 하면서 질적으로도 성숙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스본에 있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의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분명하게 옹호하는 조직을 만들게 되었다. 이삼 년 전이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Basic Income of All for All” 운동이다.

| 당신이 구상한 기본소득 계획의 정치적, 철학적 배경은 무엇인가?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사회의 올바른 토대라는 확신이다. 사람들이 상호 연대성으로 연결된 공동체는 모두에게 가능한 가장 좋은 삶을 고취할 것이다. 이를 개인의 성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고대의 모든 인간 사회가 연대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부족사회에서 사냥한 동물은 그 동물을 사냥한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집단 모두에게 속했다. 부족사회에서 모두는 동일한 행운과 자원을 공유했으며, 서로를 돌보았다. 인류는 최초의 복잡한문명과 제국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자본주의의 ‘제국’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 지구상에서 인류가 살았던 거의 모든 시기 동안 – 오랫동안 이렇게 살았다. 오늘날 모든 곳에서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으며, 인간 사회는 협동 대신 경쟁의 가치를, 공유 대신 축적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있다. 분명 이것은 과거의 연대보다 자유나 행복을 증진시키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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