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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본소득제 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대한 반박

윤형중 LAB2050 정책팀장

 

1. 들어가며

이건민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회원은 『시대』 2019년 12월호(제74호)에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이하 “「비판적 평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고, 그 주요 내용을 12월 5일에 공개된 팟캐스트 《이럿타》의 151회에서 소개한 바 있다. 비판의 대상이 된 “국민기본소득제”는 지난 10월 28일 LAB2050이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이하 “『국민기본소득제』”)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서 소개됐다.

LAB2050이 제안한 『국민기본소득제』란 기본소득의 재정 모형 가운데 하나다. 이건민 연구원이 적시했듯,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 재정 모형은 그동안 강남훈 한신대 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경기도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제시된 바 있었고(2009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곽노완, 이수봉, 2009; 2012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4; 2018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5; 강남훈, 2017; 최근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9a: 12∼13장),『 국민기본소득제』는 그 연장선에서 제출된 재정 모형이다. 필자는 『국민기본소득제』를 제안한 보고서의 공동 저자 가운데 한 명이다.

재정 모형은 기본소득의 지급을 가능하게 하는 재원 마련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따라서 재정 모형은 기본소득을 정책화하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뚜렷해진다. 세금 제도의 신설 및 개편, 재정 구조조정의 방식 등 재원 마련 방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러 정체성을 지닌 재정 모형이 등장할 수 있다. 재원 마련 방안이 구체적이고 정체성이 뚜렷한 여러 재정 모형이 등장할수록, 기본소득 담론이 풍부해지고 국민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으며, 또한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건민 연구원이 「비판적 평가」에서 도출한 정책적 시사점 가운데 첫 번째로 제시한 다음과 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다양한 기본소득 재정 모형이 제출될 필요가 있다. 여러 재정 모형 간 상호 비교와 평가를 통해서, 우리는 실현 가능하고도 바람직한,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그리고 노동, 젠더, 생태 등 여러 차원에서 해방적인 효과를 낳는 기본소득 재정 모형의 상을 더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비판적 평가」와 같은 성실한 비판이 기본소득 담론을 풍성하게 하고 지적으로 정직한 토론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하고, 이 반박 역시 같은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됐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2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의 주요 내용과 「비판적 평가」의 주요 비판을 소개하고, 제3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가 만들어진 취지를 다룬다. 이 내용이 비판에 대한 반박에 앞서 나오는 이유도 제시될 것이다. 제4절에서는 「비판적 평가」의 주요 비판에 대한 재반박이 이뤄지고, 제5절에는 비판에 대한 제언과 새로운 토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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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는 과연 말발로 강동 6주를 얻었을까?

신석준신의한술TV

 

꿇어라! vs. 배 째라!

993년 음력 윤 10월 3일, 양력으로는 11월 19일. 서희는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 진영으로 갑니다. 고려를 침공한 거란군과 협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란군과 고려군은 석 달 동안 1승 1패를 주고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소손녕은 쉽게 서희를 만나 주지 않습니다. 기 싸움이죠. 사서에는 “나는 큰 나라(요나라)의 귀한 사람이니, 마땅히 뜰에서 절해야 한다”라고 점잖게 적혀 있지만, 한마디로 “꿇어라!”입니다.

그러나 서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신하가 군주에게 아래에서 절을 올리는 것은 예의지만, 두 나라의 대신이 서로 만나는데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소? ( 『고려사』, 「서희열전」)

본격 협상 전에 상견례 절차를 협의하기 위해 두세 번이나 왔다갔다 했지만, 소손녕은 완강합니다. 그러자 서희가 성질을 내고 누워 버립니다.

서희가 노하여 돌아와 관사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다. (『고려사』, 「서희 열전」)

“배 째라”였습니다. 배 째라고 드러누운 사람을 제압하려면, 진짜로 배를 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서희 배를 진짜로 쨀 생각이 없었던 소손녕은 결국 기 싸움에서 밀리고 맙니다.

이후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외교의 달인 서희가 기막힌 언변으로 싸움도 없이 80만 대군을 물러가게 했고 강동 6주까지 덤으로 얻었다고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서희는 무슨 말을 했기에 거란군을 물러가게 하고 영토까지 확장했을까요? 소손녕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협박을 일삼다가 왜 순순히 철군했을까요? 땅까지 내주면서 말입니다. 당시 회담의 당사자였던 서희와 소손녕의 이력을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진실에 접근해 보겠습니다.

먼저 서희입니다.

서씨네 염윤廉允이

『고려사』의 「서희 열전」에는 서희의 이력뿐 아니라, 서희의 할아버지, 자손들 이야기를 상당히 자세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일단 눈에 띄는 사람은 서희의 할아버지 서신일徐神逸입니다.

서신일은 시골에 살았다. 사슴이 도망하여 그에게 의탁하므로 서신일이 화살을 뽑고 숨겨 주었다. 사냥꾼이 쫓아왔으나 잡지 못하고 돌아갔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감사하며 말하기를,“ 사슴은 바로 내아들입니다. 공 덕분에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하겠습니다.”라 하였다. 서신일은 나이 80에 서필을 낳았다. 서필, 서희, 서눌이 과연 이어서 재상이 되었다. (『고려사』, 「서희 열전」)

이제현의 『역옹패설』(1342)에도 거의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아마 만들어진 이야기겠지요. 요즘도 집안마다 ‘우리 집안 시조 ○○ 할아버지는 말여∼’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재미는 있는데 그냥 믿어 주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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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는 대중의 폭력을 선동하는 영화?

강준상*

화장실로 피신한 이후 갑자기 화면 밖 음악을 화면 안 음악인 것처럼 들으며 춤을 추는 아서

 

영화 《조커》는 한국에서 5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하고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간판을 내렸다. ‘엘사’의 폭풍이 몰려왔기 때문에 2019년 11월 마지막 주 극장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영화는 외국 영화이든 한국 영화이든 예매율 1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조커》는 유튜브에서 최근까지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였으나 이제 더 관심을 끌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엘사가 극장가의 모든 것을 잠식할 듯하다.

그런데도 굳이 《조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조커》를 둘러싼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 때문이다. ‘영화와 현실의 관계.’ 《조커》는 개봉과 함께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나뉘었다. 미국의 일부 극장에서는 혼자 온 남성 관객을 몸수색하기까지 했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의 주요 극장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되기도 하여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영화는 유럽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는 황금사자상을 받았으나, 미국 주요 언론은 특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반反트럼프 진영의 언론을 중심으로 이 영화에 악평을 쏟아 냈다.

무게감 없이 가볍기만 하다. 재미없을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조차 없다. 그게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농담인가? ― 『뉴욕타임스』

만약 당신이 현실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조커》를 보시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것을 추천한다. ― 『월스트리트 저널』

《조커》는 유감스럽게도 현실적인 악몽만큼이나 당신에게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 『시카고 선 타임스』

총기류 소지가 허용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와 같은 격렬한 반응은 없었으나, 일부에서 “일베들이 날뛰는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는 평가가 있었고,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아서(조커)가 참조하고 있는 사람들인 인셀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라며 미국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강준상
다큐멘터리 《달려라 휠체어, 달려라 박정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을 연출했으며, 공연연출작으로 《옹달샘》, 《꼴》, 《줄탁동시》, 《스퀘어 – 다시 지금 여기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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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에 대한 비판적 평가

이건민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1. 들어가며

지난 10월 28일 LAB2050은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이원재, 윤형중, 이상민, 이승주, 2019)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발행하고, 같은 날 오후 2시 공공그라운드 001스테이지에서 연구 결과 보고회를 개최하였다(김수연, 2019. 10. 30).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여러 주요 언론매체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필자가 알고 있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기본소득 재정 모형은 강남훈 한신대 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경기도기본소득위원회 공동위원장)를 중심으로 몇 차례 제출되었던 것이 전부였다(2009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곽노완, 이수봉, 2009; 2012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4; 2018년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5; 강남훈, 2017; 최근 기준으로는 강남훈, 2019a: 12~13장). 그러한 점에서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며, 강남훈 교수의 최신 재정 모형(강남훈, 2019a)과의 비교 역시 유의미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의 문제의식과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3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 제안은 어떠한 ‘솔루션’을 제출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어떠한 ‘인사이트’를 주는지 살펴본다. 4절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 열 가지를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2. ‘국민기본소득제’의 문제의식과 주요 내용 요약

‘국민기본소득제’ 보고서의 저자들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1장).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으로 인해, 1) 지위 경쟁과 사회적 갈등이 악화되어 신뢰를 비롯한 사회적 자본이 낮아지고 다차원적 빈곤이 심화되며, 2) 소득이 불안정해지고 가계소비를 비롯한 내수가 부진해지며, 3) 저출생 현상이 초래되고 부양 부담과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세 가지 요소로 인해 경제와 사회의 역동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핵심 문제이며,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도를 낮춤과 동시에 모두에게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분배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제와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분배 제도가 바로 기본소득일진대, LAB2050은 우리나라에서 실현가능한 하나의 기본소득 모형으로 ‘국민기본소득제’를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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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 썼을까?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1937년 블랑키의 저서 『유럽 정치경제의 역사』의 표지와 “산업혁명”(밑줄은 이 글의 필자가 그은 것)이 등장하는 제2권 209쪽.

 

사물인터넷, 나노기술,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3D 프린터. 놀라운 기술 발전으로 인류의 삶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귀찮거나 위험한 일을 쉽고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노동의 종말까지는 몰라도 임금노동의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엄청난 기술혁신을 놓고 조금은 희한한 논쟁이 벌어졌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바프 의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많은 기업은 물론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 정부는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대응에 분주하다. 한편, 한국에서 “종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제러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 『한계비용 제로 사회』 같은 책에서 현재의 변화와 혁신은 “제3차 산업혁명의 연장”일 뿐이라고 본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한 토론 행사에 영상으로 보낸 기조 발제에서 리프킨은 제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것은 사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상업적 목적에 휘둘린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여러 이유로 “산업혁명”이 관심이다.

이 글은 최근의 변화와 그에 대한 평가나 대응책을 다루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일과 관련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증기기관의 등장, 여러 기계의 발명, 가내공업을 무너뜨린 대규모 작업장의 등장, 철도 부설과 열차 운행 따위에서 촉발되어 대체로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일어난 변화를 흔히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그러한 변화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은 어떤 이유이며 그러한 변화에 맞닥뜨려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다. 현재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일말의 단서를 지난 역사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예컨대 “최초의 산업혁명에 인류는어떻게 대처하려 했나?”가 처음에 생각한 주제였다.

안타깝게도 이 글은 그 주제에까지 가지 못했다.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또는 매우 일찍) 사용한 사람(들)이 누구였으며 그 사람(들)은 어떤 맥락에서 그 용어를 사용했는지를 부족하게나마 밝혔을 뿐이다.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면 이 글의 결론은 뒤집힐 것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너무도 많았다.

따라서 이 글은 연구 결과가 담긴 학술 논문과는 거리가 멀다. ‘좌충우돌 검색 과정을 약간 편집한 녹화 중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기원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 바로잡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러 인물과 저작이 등장하고 인용문도 많지만, 독자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냥 중계를 시청하면 된다. 필자가 겪은 좌충우돌을 감상하며 목적지를 향해 떠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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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한일 연대 – 2019

이경자 반핵지구인행동(반지) 회원

AWC(‘미일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 공동행동’) 한국위원회와 일본연락회의는 정기적인 연대를 통해 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후쿠시마 방사능오염수와 도쿄올림픽에 대한 현황을 공유하고 한 걸음 진전할 수 있는 연대를 모색하자는 취지로 연대 행동을 마련했다.

“후쿠시마, 끝나지 않은 인재. 국경을 넘어 연대하라!”
“福島, 終わらない人災, 国境を越えて連帯せよ!”
“NO MORE FUKUSHIMA!”

2019년 11월 10일 저녁

갑작스레 장대비가 쏟아졌다. 짧지만 꽉 짜인 일정을 앞두고 걱정이 많아졌다. 멀리 일본에서 달려온 이들이 무사히 1박 2일의 일정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마중을 나갔다. 서울을 거쳐 대전에 도착한 일행들과 서툰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며 밀린 얘기들을 쏟아 냈다. 피곤한데도 기자회견에 쓸 피켓을 만들고 강연 자료를 수정하는 60∼70대 활동가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몇 년 전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던 ‘원전 필요 없다. 후쿠시마의 여성들原発いらない 福島の女たち’에서 활동하는 구로다세츠코黒田節子(69세) 선생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될 후쿠시마의 현재가 너무 궁금했다. 그 단체는 후쿠시마 핵 참사 직후인 2011년 10월과 오오이핵발전소를 재가동하려던 2012년 6월 각각 도쿄 경제산업성과 수상 관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으며, 매년 3월 11일 집회와 시위를 이어 가고 있고, 1년 동안 활동한 사진으로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끔찍했던 그때 일을 되돌아보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 쓰나미가 덮쳤고, 핵발전소에 전원이 끊기면서 1호기가 폭발했다. 4일 만에 2, 3, 4호기도 폭발했고,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뿜어져 나왔다. 일본 열도는 공포에 휩싸였다.

후쿠시마 전역에 걸쳐 피난 명령이 내려졌고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핵발전소 사고였다. 지진이 잦고, 그래서 어느 나라보다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여 안전 민감도가 높을 것이라 믿었던 일본의 민낯은 매우 처참했다.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체계도 없었고 훈련도 하지 않았다.” 당시 총리 간 나오토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 어디선가 반드시 일어난다.”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고 칭송되던 원자력–핵에너지의 위험하고도 무시무시한 실상을 목도하게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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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노동자, 86일간 파업하다

임성용*

필자는 2014년도에 서울시 성북구에서 청소차를 운전한 적이 있다. 서울시가 시범 사업으로 실시한 ‘재활용 정거장’ 위탁 업무였다. 재활용 분리수거대 설치를 비롯해 주민 교육, 재활용품 배출량 산출, 적치장 관리, 매입 물품 회계, 월별 사업 보고(시청과 구청 각각)까지 할 일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흔히 환경미화원이라고 부르는 청소 노동자들의 고충을 필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경미화원이라고 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관내 쓰레기 수거, 도로 청소, 공중 시설이나 건물의 관리를 위하여 고용한 노동자들을 말한다. 환경미화원은 거리미화원과 건물미화원 등으로 구분된다. 생활 쓰레기, 폐기물, 재활용품, 음식물 쓰레기는 지자체에서 처리하지 않고 대부분 위탁업체에 맡긴다. 언제부터인지 시설관리공단과 같은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 환경과의 업무를 청소업체, 환경업체에 이관했다. 그리하여 정규직이었던 노동자는 위탁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이 되었다.

필자가 일한 성북구도 마찬가지였다. 쓰레기 처리 업무가 입찰을 통해 위탁으로 전환되자 그와 관련된 모든 일은 해당 업체의 몫이었다. 규모가 큰 업체는 서울의 여러 구청과 계약을 맺는다. 재활용 선별장 수준의 영세한 업체들은 감원이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기반으로 운영한다. 위탁이 곧 열악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청소차를 운행하는 운전자 한 명에 수거 미화원 두 명이 하던 일을 위탁업체에서는 운전자 혼자서 해야 한다. 골목골목 운전하면서 곳곳의 거점마다 무거운 쓰레기 자루를 옮기고 차에 싣다 보면 금방 적재함이 차 버린다. 차에 여러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적치장에 가서 짐을 비우고 다시 수거하기를 수십 번 하는 고된 작업이다. 세 명이 하면 오후 두세 시쯤 끝날 일을 혼자서 하니 새벽 5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가 넘어야 겨우 끝난다. 일 년 만에 결국 손가락 관절은 물론 무릎도 아파 도저히 할 수가 없어 그만두었다. 위탁의 참혹함을 그때 톡톡히 경험했다.

청소 노동자, 아직도 절반이 비정규직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은 5,577명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직영, 그러니까 구청 소속은 2,559명이다. 나머지 3,018명은 용역업체 소속이다. 말하자면 청소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청소 노동자는 모두 용역업체 소속이다. 관공서도 다를 바 없다.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에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청소 노동자들을 ‘공무직’,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서울시청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는 큰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직영이 된 구청에서 채용하는 환경미화원 취업이 바늘구멍인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정규직으로 선발된 선택받은 소수를 제외한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단순 미화 업무가 아닌, 생활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청소는 서울시 자치구 거의 모든 곳이 아직도 위탁업체에 맡기고 있다.

 

*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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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당을 위한 변명(?)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세월의 흐름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는 인내와 영원한 사랑에 대한 찬사로 흔히 읽힌다. 하지만 첫사랑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그 남자가 죽을 때까지 51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그리 간단치 않고 절대로 낭만적이지 않다. 51년 동안 첫사랑을 기다리는 플로렌티노는 결혼만 하지 않았을 뿐 수많은 여성과 사랑을 한다. 하지만 페르미나를 지워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첫사랑 페르미나에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재물과 명예를 추구한다. 페르미나는 남편인 후베날과 사실 잘 어울리는 사이는 아니다. 페르미나는 사랑이 넘치는 여자이나 후베날은 따분한 가부장적인 남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시간이 약인 것처럼 두 사람은 생활도 애정도 깊어진다. 그러면서 첫사랑 플로렌티노도 잊고 산다. 그런 그녀 앞에 남편이 죽자마자 나타나 사랑 고백을 하는 플로렌티노는 의심스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둘은 다시 가까워지고 “영원한 허니문”인 여행을 떠난다.

재난 혹은 비상사태가 정상상태가 될지도 모르는 신종코로나 감염증의 대유행(팬데믹) 시대에 기본소득당 같은 이름 없는 정당이 이른바 선거 연합 정당 혹은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이라 불리는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하여 한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뛰어든 것은 그리 대단한 일도, 그렇게 주목할 만한 일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몸에서부터 나오는 분노로 삶이 부정당할 일이고, 또 누군가에는 손쉽게 비난하고 지나칠 일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이제 우리에게도 국회 연단에서 말할 수 있는 스피커가 생기는 일이라 다행인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결의 마음이 만나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하면서 흐른다.

오래전에 나는 “지난 사반세기 넘게 한국의 진보 운동은 자신이 함께 만들어낸 87년 체제 속에서 한편으로 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 87년 체제 속에 자리 잡기 위해 분투해 왔다”라고 쓴 적이 있다. 당시는 진보신당(+사회당)을 좌파정당으로 전환하고 민주노총을 좌파노총으로 바꾸려는 프로젝트가 막 시작된 때였다. 이 프로젝트는 20세기 좌파운동이었던 진보정당, 조직된 노동자계급에 저마다 근거를 두었던 공산당과 사회(민주)당과 결별하고, 조합주의적 성격을 띨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낡아 버린 20세기 사회주의 이념을 자신의 조합주의-개량주의를 가리는 무화과의 잎사귀로 사용하는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었다. 당시 여기에 좌파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인간의 절대적 평등과 사회적 평등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며, 다른 하나는 당대의 과제에 대한 실현 가능한 가장 급진적인 대안의 제시가 근대 역사에서 좌파의 고유성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정책이자 새로운 결집의 구호로 기본소득을 내걸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충분히 논구하기 어렵지만, 이 프로젝트는 실패하기도 하고 좌초하기도 했다. 물론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외면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근거 있는 비판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리고 배신당한 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실패와 좌초의 궤적에서 지금 기본소득당을 창당한 그룹이 시도한, 노동당의 기본소득당으로의 당명 변경은 돌이켜 보면 절망적 시도였다. 절망적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듯이 퇴적된 낡은 힘의 강함에 관한 것이며, 그래도 시도였다는 것은 자기 그룹의 유지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정치에서 두 측면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고 결국은 탈당을 위한 명분이 되었다.

그 이후 기본소득당이 창당되었다. 87년 체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수의 “좌파”가 제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분투일 수 있으며, 의제라는 점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파일럿램프를 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분투이건 파일럿램프이건 다음으로 이어질 자원, 전략,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이 지점에서 기본소득당 사태(?)로 이어지는 정치적 판단이 사람들에 따라 갈라졌다. 어떤 사람들에게 기본소득당은 새로운 세대가 새롭게 만든 좌파정당 혹은 진보정당이며, 기성의 보수적인 혹은 부르주아적인 정당과 분명하게 다른 지향과 원칙이 있고, 이는 현재가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패 혹은 좌초한 과거 프로젝트가 새로운 순환을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좌파가 살아남는 방법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제도 속에서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애써 켠 파일럿램프 자체가 꺼지는 일이며, 이는 전망 자체를 아예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서술이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변명으로 들릴 것이고 또 누군가에는 너무 건조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이런 식의 설명도 있다. 기본소득당은 좌파정당이 아니라 확장과 도약을 위한 플랫폼 정당이다. 비록 이 정당을 좌파가 주도해서 만들었으나 정당 자체의 성격이 그러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혹은 부르주아적 세력과 연합하는 게 가능하다. 분석적인 설명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소득당을 주도하는 그룹이 좌파에서 연원하며 여전히 그 색깔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노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위안이 되는 설명은 아니다.

 

현재 유일하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기본소득당의 선거 연합 정당 참여 의사를 듣고 “나라면 그런 판단을 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할 수도 있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덧붙였다. 이 사달 속에서 “기본소득당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누군가는 기본소득당이 얻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는 특정 정치인이 얻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대차대조표는 이 일을 비난하는 사람이건 그래도 지지하는 사람이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이로 지향을 나눌 수는 없지만, 이번 사태 속에서 겉으로는 그렇게 드러나고 있다. 개별적으로나마 좌파의 자리를 지키려는 나이 든(?) 사람들과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젊은 사람들로.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집단으로서의 좌파는 죽었다는 것이다. 좌파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재배再拜하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약 없는 길을 떠날 일이다. 함께 죽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떠도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영원한 사랑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간단치도 않고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보장되어 있는 것도 없다. 유일한 희망은 귀환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물론 이 희망은 의지가 필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느 것도 희미하다.

정말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그동안 「책 머리에」를 통해 특정 독자를 겨냥한 혹은 특정 독자에게 호소하는 글을 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거리를 두고 보고 좀 더 일반화된 시각에서 사태를 다루려 노력하긴 했지만, 특정 독자와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위치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꼭 이번 사태 때문은 아니지만, 그런 위치 속에서, 어떤 지점을 겨냥한 글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다. 새로운 위치를 확보하는 일이 필요할 텐데 앞서 말한 것처럼 희미하다. 시대의 폭풍우를 앞두고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20년 04월호 통권77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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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처럼 가볍게 깃털처럼 아름답게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암컷 앞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걷는 수컷 청란. (리처드 프럼, 『아름다움의 진화』, 94쪽)

몇 번에 걸친 달 탐사 여행으로 달에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테지만, 새의 깃털이 달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의아한 일이다.

아폴로 15호는 월면차로 유명했는데, 그 우주비행 때 예정에 없던 실험이 짧은 순간 이루어졌다고 한다. 데이비드 스콧 선장은 여러 임무를 수행하는 바쁜 와중에 사전에 허락받지 않은 한 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실험, 바로 낙하 실험이다. 한 손에는 당연히 묵직한 망치를 들었다. 다른 한 손에는 가장 가볍다고 여겨지는 그것, 깃털을 들었다. 팰콘Falcon이라는 착륙선 이름에 딱 어울리게 송골매의 비행깃털을 미리 준비해 가서 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1971년 8월 3일에 있었던 일인데, 이 장면은 “아폴로 15호의 낙하 실험”으로 검색하면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오래된 영상이라 화질도 좋지 않고 극적인 장치 같은 것도 기대할 바가 전혀 없다. 갈릴레오 얘기를 몇 마디 하며 실험의 의미를 설명한 뒤 스콧 선장이 어깨높이에서 망치와 깃털을 떨어뜨린다. 그러고는 갈릴레오가 옳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1분 남짓한 길이의 동영상이다. 중력이 작용하는 곳에서는 망치든 깃털이든 질량과 관계없이 일정한 가속도로 낙하한다는 법칙을 몸소 실험해 본 것이다. 공기 저항이 없는 달이라 실험에는 적격이다.

얼마나 바빴던지 스콧 선장은 그때 실험에 쓴 깃털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그 깃털은 지금도 시간이 봉인된 것처럼 달 위에 그대로 있다고 한다.

깃털 열풍

가벼운 것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깃털이지만, 깃털의 가치마저 가볍게 평가를 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까지 서양에서는 깃털 열풍이 불어 깃털 산업이 융성했다.

열풍의 정도는 프랭크 채프먼의 일화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직업은 금융인이었지만 열렬한 새 애호가인 채프먼은 1886년 뉴욕 거리에 나가 새를 관찰했다.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라 여성 모자에 장식된 깃털을 조사한 것이다. 어느 날 답사에서는 700개의 여성 모자를 조사했는데 그 가운데 4분의 3에 깃털 장식이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 4분의 1은 “상복 입은 숙녀”나 “나이 든 부인”처럼 눈에 띄지 않는 복장을 해야 하는 여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깃털 장식 모자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보니 깃털 산업도 번창했다.

깃털 시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백로 깃털 30그램 가격이 지금 돈으로 2,000달러가 훨씬 넘었고 잘나가는 사냥꾼은 한 시즌에만도 10만 달러라는 엄청난 순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번식기의 깃털 30그램을 얻으려면 어른 새 여섯 마리를 죽여야 하며, 백로 두 마리가 죽으면 그 뒤에 어린 새가 세 마리에서 많게는 다섯 마리까지 죽게 된다. 이리하여 수백만 마리의 백로가 죽었고, 한때 흔한 종이던 백로가 20세기로 접어들면서는 에버글레이드 습지를 비롯한 몇몇 습지대에서만 살아남았다. (소어 핸슨, 『깃털』, 246~7쪽)

1912년 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선적된 물품 가운데 가장 비싼 귀중품이 깃털이었다고 한다. 뉴욕의 여자 모자 제조상에게 배달될 최상급 깃털이 40상자 이상 실려 있었는데, 230만 달러에 달하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고 한다. “무게당 가치를 놓고 볼 때 이보다 비싼 것은 다이아몬드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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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선언과 해방적 기본소득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기본소득이 낯설고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제법 오래된 역사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말 그대로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역사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공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부상한 구체적 맥락을 검토하게 함으로써 이 아이디어가 진전하는 조건과 이를 가로막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끝머리의 주에 나와 있는 것처럼 2018년 5월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제출되고 승인받은 것이다. 이 선언은 독일기본소득네트워크 내의 워크그룹인 “디지털화? 기본소득!”이 작성한 것이다. 「선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기본소득 논의가 크게 퍼진 배경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화이며 그런 배경 속에서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 가운데 일부가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기본적인 동기는 파괴적인 기술 진전 속에서 일자리 없는 미래는 불가피하므로 고용 노동과 무관한 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침 기본소득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무조건성이기 때문에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디지털화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디지털화가 기본소득 논의에 유리한 지형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도리어 이 지형이 “왜곡된” 기본소득의 논의와 도입을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해방적” 기본소득의 관점에서 디지털화에 대응하자는 일종의 출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 원문영어 번역본은 각각 https://digibge.wordpress.com/2018/06/13/unser-positionspapier-2/https://digibge.wordpress.com/digitalisation-basic-income/에서 볼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해방적 접근의 가능성

지난 2년 사이에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변화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와 경영자 들은 이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환영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정보기술 부문의 일부 사용자와 과학자 들도 이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한 가지 주요한 근거는 경제의 디지털화가 확대되면서 지불노동이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경제와 상관없이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생계 및 사회 참여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장은 인권이다. 이것은 사회에서 디지털경제가 발전하는 것과 무관한 일이다. 해방적인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의 한 형태이지 유일한 선택 사항은 아니다.

급격한 디지털화는 새로운 노동관계를 창출하고 있으며, 그 결과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을 촉진하고 있다. 어떤 기술이 언제 도입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장래에는 누군가가 매일 아침 사무실이나 공장에 출근해서 전날과 같은 일을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노동”은 점점 없어질 것 같다. 디지털화는 사람들의 삶을 더 쉽게 만들고 더 자기결정에 의거하게 만드는 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노동하는 것을 옹호하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루어지는 지불노동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기계가 가져가는 노동 하나하나는 자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의 디지털화는 노동을 더 압박하고 사회를 덜 안전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기본소득 논쟁과 상관없이 이런 경향에 반대한다.

글로벌 디지털자본주의가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의제로 올리면서 해방적 기본소득운동 지지자들은 여기에 답할 필요가 생겼다. 우리의 관점에 따라 해방적 효과를 보장하기 위해 성취하려고 하는 그런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해방적 기본소득으로 가는 길에서 이 아이디어를 함께 실현할 수 있고 실현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동맹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개념에 입각한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삶Buen Vivir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다른 변화와 함께 다수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때에만 기본소득은 바람직하다. 사회적 발전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준은 모든 인간의 좋은 삶의 증대이며, 여기에는 자유와 연대, 자기결정과 기본적인 인간적 필요의 무조건적 보장이 포함된다. 기본소득으로 가는 어떤 발걸음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거기에는 광범위한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정치적 영향력과 방향에 종속되어 있는 기술 발전으로서의 디지털화에도 동일한 것이 적용된다. 기본소득의 글로벌 차원은 기본소득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간주되어야 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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