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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은 인간의 일자리 영역으로 남을까? 인공지능의 발전 현황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창조성은 동물과 인간의 경계다. 이제 인공지능(이하 ‘AI’) 시대에 창조성은 기계와 인간의 경계로 다뤄지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전자가 여전히 유지되는 경계라면, 후자는 논쟁적인 주제가 되었다. 이미 인간의 초보적인 창조성을 구현한 AI의 등장으로 창조성은 인간을 정의하는 고유한 기준으로서의 지위를 잃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철학적인 논쟁은 여전히 필요하고 진행형일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의 미래와 관련해 인간과 AI의 창조성의 질적 차이를 논하는 것은 실익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는 범용 AI 개발 경쟁으로 치닫는 AI의 발전사를 핵심 기술의 발달과 함께 짚어 보고, 범용 AI 개발이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 갖는 함의를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기계 학습과 심층 학습

AI의 개발이 궤도에 오른 1950년대에 AI 개발 방법론은 크게 두 가지 길을 걷게 되었다. ‘규칙 기반(또는 상징적) AI’와 ‘확률·통계적 패턴 인식 기반 AI’가 그것이다. 전자를 성인이 규칙과 문법을 숙지하고 단어를 암기하는 방법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에 비유할 수 있다면, 후자는 어린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는 방식에 비유할 수 있다(Erik Brynjolfsson & Andrew McAfee, 2018).

기호를 처리하거나 인간의 논리적 사고를 재현하는 전자의 방법은 AI 개발 초창기에 주된 방법론이었다. 하지만 규칙 기반 접근법은 언어 인지, 번역, 이미지 분류 등의 영역에서 수십 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더뎠고, 결국 1980년대 말에 이르러 ‘AI 겨울’을 맞고 말았다. 이는 기계에 모든 규칙과 패턴을 입력하여 기계가 제대로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AI에 가구류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규칙을 넣는다고 가정해 보자. 의자는 다리가 있지만 좌대에 붙어 있거나 아래를 천으로 감싸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경우는 예외라는 식의 모든 사항을 규칙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Brynjolfsson & McAfee, 2018). 번역을 예로 들면, 규칙 기반 접근은 프로그래머에게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고 그 효율성은 규칙과 단어 정의의 명확성에 크게 의존한다. 이것은 기계에 해당 언어의 모든 문법 규칙, 어휘, 숙어의 기원 등을 입력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단어는 사전적辭典的 정의로 축소될 수 없고 문법 규칙에는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Brugel.org, 2017).

로봇공학에서 인간과 같은 신체 능력을 가진 로봇을 만들기가 극히 어려운 이유는 흔히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의 이름을 딴 “모라벡의 역설”로 설명되어 왔다. “지능 검사나 서양장기에서 어른 수준의 성능을 발휘하는 컴퓨터를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지각이나 이동 능력 면에서 한 살짜리 아기만 한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만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현재의 로봇은 모라벡의 역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Brynjolfsson & McAfee, 2016)

로봇이 아이의 신체 능력처럼 쑥쑥 성장하는 것을 막았던 것이 모라벡의 역설이라면, 규칙 기반 AI의 실패를 불러온 것은 영국인 화학자이자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의 이름을 딴 “폴라니의 역설”이다. 사람이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쉽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폴라니는 이를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규칙 기반 AI는 인간의 ‘상식’적인 감각 기능이 해내는 일들을 기계에 규칙과 절차로 모두 입력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 좌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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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부딪힌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 브렉시트의 원인, 쟁점, 향방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브렉시트Brexit.” 영국이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하 ‘EU’)에서 떠난다는 말이다. 브렉시트 시행일은 두 차례 연기된 끝에 2019년 10월 31일까지로 정해졌다. 영국은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2019년 3월 29일이 조약에 따른 탈퇴 시행일이었다. 하지만 영국과 EU 간의 탈퇴 합의안이 영국 하원에서 세 차례나 부결되는 바람에 브렉시트 시행일이 연기되었다.

이제 영국은 10월 31일까지 EU와 다시 협상하여 새로운 탈퇴 합의안을 마련하여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합의 없는 브렉시트’, 곧 ‘노 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로 말미암아 영국과 EU의 관계가 단절되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

EU에서 탈퇴한다는 것은 경제 교류, 안보, 이민 등과 관련하여 EU차원의 규율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유럽 차원에서 단일 주권의 정치 공동체를 수립한다는 정치적 기획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가 급진전되어 세계적인 차원에서 국경을 초월한 경제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민족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정치 공동체를 실현한다는 대의로부터 이탈하겠다는 영국의 결정은 대세와 여망을 거스르는 돌출적인 행동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탈퇴 절차, 방식 그리고 이후의 새로운 관계를 둘러싸고 영국은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으며, 영국과 EU의 미래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세계경제의 안정이 위협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영국은 왜 EU 탈퇴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는가? 영국 국민 과반수는 왜 EU 탈퇴를 찬성했는가? 탈퇴 결의에도 불구하고 왜 탈퇴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가? 향후 브렉시트 문제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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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가 권문석을 추모하며

 

육 년 전 급작스러운 그의 죽음을 접한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자리의 이름에 “사회운동가 권문석”이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속에 꼬박꼬박 그가 떠나간 날을 지나고 있다.

사회운동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로 인식된 이후 등장한 현상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다수의 힘으로 이루어질 터였다.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가 되자, 이 변화에 대한 태도 속에서 이른바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맑스주의 등등.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가 다수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 사람들은 그 다수를 구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와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 속에서 사회운동이 탄생했다. 사회운동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처럼 거대 담론을 가지고 국가를 투쟁의 중심 지점으로 보는 것부터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사회운동까지,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가 되었다.

사회운동을 선택한 사람들은 햄릿이 말한 것처럼 “시대가 탈구되어 있다”라고 생각했고, 사태를 제자리에 놓는 비판을 시도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다. 권문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학생운동가로서 성년의 삶을 시작한 그가 진보정당의 활동가로, 정책 기획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상황은 많이 변해 있었다.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은 적극적인 전망을 내놓기는커녕 과거의 성취를 지켜내는 것도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여성의 권리 등 새로운 권리 운동의 등장과 생태적 위기에 맞서는 환경 쟁점의 부상에 대해 힘겹게 즉자적으로 대응할 뿐인 상황이었다. 이 바탕에는 “보편적 계급”, “세계사적 사명을 가진 계급”으로서의 노동자운동의 정체성화와 주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지역에 따라 이미 오래전에 감지되었으나 한국에서는 늦게까지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몰랐다기보다는 기존의 진보운동이라는 틀로 다 욱여넣으려고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혁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꾸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 원인을 다 드러내기는 어려우니, 일단 기존의 성취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해 두자. 굳이 하나를 더 들자면, 추상적 대의와 현실적 전략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자신을 구성하게는 하지만 한번 구성된 정체성을 바꾸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러니 목숨을 건 도약이 필요했을 텐데, 그것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일이긴 하지만 자유낙하는 아니었다. 그것은 적절한 착륙 지점에 도착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게다가 허공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기에 그 어떤 준거점도 주위에서 발견할 수 없이 감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의 권문석이 이 일의 선두에 섰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보다 땅에 발 딛고 서기를 원했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가 그를 그 무엇보다 “사회운동가”로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 사회운동가였다면, 오늘날에는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게 사회운동가의 운명이 되었다. 사회운동가 권문석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와 알바노동이라는 형태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어떤 것을 찾아내려고 했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알바들의 내적 힘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변화의 원동력이 되도록 만드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면, 알바노동의 가시화는 변화하는 우리의 노동 현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알바들이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가리키려는 시도였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권문석을 창립 회원일 뿐만 아니라 명예 의장이라고 생각하며, 알바연대는 그를 대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그가 내세운 의제, 그가 개척하고자 한 활동이 조금씩이나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면, 단두대로 가면서 시드니 카턴이 했던 말을 반복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내가 지금껏 했던 어떤 일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이라네.” 이런 점에서 조숙한 사람, 시대와 불화를 일으킨 사람과 함께했던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6월호 통권69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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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사납금제 폐지와 완전월급제는 시행될 수 있을까?

임성용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지난 1월 26일. 전주시청 앞 20m 높이의 조명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전국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전주지회장 김재주 씨가 땅을 밟았다. 무려 510일 만이었다. 단일 고공농성으로는 세계 최장기라고 한다.

고공농성은 막다른 길에 선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하늘로 올라가는 마지막 선택이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결사적 의지를 담고 있다. 한두 달도 아니고 일 년, 아니 일 년 반이 넘도록 눈과 비를 맞고 바람을 맞고 여름이면 땡볕을, 겨울이면 혹한을 견뎌야 했다. 계절이 여섯 번, 일곱 번이나 바뀌도록 비좁은 하늘 감옥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날로 쇠진한 몸으로 오랜 시간을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말 그대로 사투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좀체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가히 세계적인 일이다.

김재주 지회장은 2017년 9월 4일, 택시 사납금제 폐지와 완전월급제를 요구하며 조명탑으로 올라갔다. 본인도 그때는 농성이 그렇게 길게 갈 것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법이 정한 전액관리제(이하 ‘완전월급제’) 투쟁을 끝내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그 일념 속에는 무엇보다도 택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분노’가 들어 있었다. 사납금이라는 족쇄에 묶여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는 택시 노동자들의 노동 여건을 개선해 달라는 그의 요구는 단순했다. “제발 법대로 하라!” “법 좀 지켜라!”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 올라 사납금제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 중이던 김재주 지회장 (출처: 임성용)

택시지부와 전주시는 2018년 12월 말부터 교섭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또 한 해가 지나고 고공농성이 500일을 넘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끝장’ 교섭에 들어갔다. 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 동안 마라톤 교섭을 계속했다. 마침내 고공농성 509일째이던 1월 25일 밤에 합의안이 만들어졌다.

그 다음 날, 택시지부와 전주시는 전주시청에서 조인식을 했다. 김양원 전주시 부시장과 김영만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택시지부장이 ‘확약서’라는 이름으로 된 합의안에 서명했다. 교섭 내내 핵심 쟁점이었던 ‘행정처분(처벌)’과 관련된 합의가 명시되었다. 이로써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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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 관련 논란에 부쳐*

이건민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1. 여는 말

지난 2월 21일 통계청에서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를 발표하였다. 통계청장 교체의 배경으로 알려진 2018년 1/4분기와 2/4분기의 가계동향조사 결과 발표 때 벌어졌던 논란에 이어, 소득불평등 악화를 시사하는 이번 발표로 인하여 가계동향조사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이 글에서는 우선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발표 내용과 이를 둘러싼 몇 가지 논란을 간략히 요약한다. 다음으로 여기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들을 검토할 것이다. 쟁점 검토 결과, (최)상위 소득자가 누락되고 과소 소득 보고에 취약하다는 가구 조사가 가진 근원적 한계, 계절성을 갖는 분기별 통계로 인한 소득분포 및 소득불평등 추이를 분석하는 것의 부적절성, 2016년, 2017년, 2018년 조사에 걸쳐 이루어진 조사 모집단, 조사 방식, 표본 등의 급격한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적어도 가계동향조사 결과만으로는 소득불평등 심화의 원인으로 지목된 각 요인들이 소득불평등 확대에 미친 상대적 기여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이 어느 정도로 심화되었는지, 심화되기는 한 건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고 주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논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과 함의를 제공하면서 글을 맺는다.

2.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발표와 이를 둘러싼 논란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통계청, 2019).** 먼저 월평균 소득의 불평등을 살펴보자. 소득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 분기(2017년 4/4분기) 대비 17.7% 감소(2003년 통계 집계 이후 4분기 기준 역대 최대폭 감소)한 123만8천원에 그친 반면, 소득 5분위 가구(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 분기 대비 10.4% 증가한 932만4천원이었다. 1분위 가구의 소득 감소와 5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로 인해, 2018년 4/4분기 월평균 소득의 5분위 배율은 7.53으로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1분위 경상소득은 123만6천원으로 전년 동 분기 대비 14.6% 감소한 반면, 5분위 경상소득은 917만7천원으로 전년 동 분기 대비 10.5% 증가하였다. 소득 주도 성장을 표방해 온 정부 입장에서 특히나 난감한 통계는 바로 1분위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전년 동 분기 대비 각각 36.8%와 8.6% 감소하였다는 것이다. 전년 동 분기와 비교할 때 5분위는 2018년 1분기부터 4분기까지 계속해서 소득 증가를 보인 반면, 1분위는 2018년 1분기부터 4분기까지 줄곧 소득 감소를 보일 뿐만 아니라 2018년 4분기의 경우 2018년 1∼3분기에 비해 감소율이 훨씬 커진 양상을 나타내었다.

 

* 본고의 일부 내용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제작한 ‘이럿타 107회-1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논란’에서 소개된 바 있음을 밝힌다.

** 주요 용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은 비교적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소득을 뜻하는 “경상소득”과 일시적이고 예상치 못한 소득을 의미하는 “비경상소득”을 더한 것이다. “경상소득”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이전소득(공적 이전소득 + 사적 이전소득)의 합이다. “가처분소득”은 경상소득에서 공적 이전지출(경상조세 + 연금 등 사회보험료)을 뺀 것이다. “균등화가처분소득”은 가구의 가처분소득을 가구원수의 제곱근으로 나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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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한국 최초의 배달 노동조합이 뜬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준비위원장

 

이 글은 『시대』 구독자들에게 라이더유니온 후원회원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띄우는 편지다.

 

2019년 5월 1일, 대한민국 최초로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뜬다. 그날 국회 앞에서 오토바이를 탄 라이더들이 출범 총회를 열고 행진을 할 예정이니, ‘시동을 건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출범 총회는 1시, 본격적인 행진은 2시부터 시작된다. 보험회사, 근로복지공단, 고용노동청, 청와대로 향하는 코스다.

라이더들은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들이다. ‘오배송’이 아니라면, 이유 없는 주행을 하지 않는다. 라이더유니온은 그동안 라이더들에게서 많은 주문을 접수했고, 이 주문을 각각의 목적지에 정확히 배달할 예정이다. 반송은 없다.

국회

플랫폼 자본주의와 플랫폼 노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라이더유니온 준비 모임에 언론, 학계, 정부 기관의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활동가들 중에서도 과외를 요청하는 분들이 있다. 『시대』 독자들도 복잡한 배달 산업에 대해 궁금해 하실 것 같아 여기서 한 번 설명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통적인 근로자인 가게에 고용된 라이더와 개인 사업자 신분인 배달 대행 기사를 구분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근로자인 가게 소속의 배달원들은 다들 아실 거라 믿고 넘어가겠다.

그럼 새로운 플랫폼 노동자로 떠오르는 배달 대행 기사, ‘라이더’들을 살펴보자.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문 중개”와 “배달 중개”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주문과 배달이라는 말에 주목하시라.

우리가 소비자로서 사용하는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는 “주문 중개 앱”이다. 소비자와 가게를 이어 주는 플랫폼이다. 배달의 민족이 1위이고, 요기요와 배달통이 2, 3위를 차지하는 독과점 시장이다. 배달의 민족의 최대 주주는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두고 헤지 펀드와 벤처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 힐하우스BDMG홀딩스이고, 2위인 요기요와 3위인 배달통의 최대 주주는 독일의 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다. 배달의 민족은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해외 자본에 열려있는 회사다. 배달의 민족은 가게 광고비와 3% 정도의 결제 수수료로, 요기요는 12.5%의 배달 중개 수수료와 3%의 결제 수수료로 먹고산다. 즉, 이들은 실제의 배달을 통해서 수익을 얻는 회사가 아니다.

실제 음식을 배달하는 회사는 따로 있다. 이걸 “배달 대행사”라고 한다. 물론, 배달의 민족은 배민라이더스, 요기요는 요기요플러스를 운영하면서 배달 대행 사업도 하고 있지만 배달 대행업에서는 미비한 수준이다. 배달의 민족에 주문을 하더라도 실제 배달은 소속을 알 수 없는 검은 옷을 입고 온 라이더나 ‘부릉’이라는 배달 대행 회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한 가지 더 헷갈리는 게 있다. 배달 대행업을 하려면 음식 가게에 들어온 주문을 라이더의 핸드폰에 띄워 라이더들이 배달할 수 있게 만드는 어플리케이션이 필요한데, 이게 배달 중개 앱이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회사가 부릉이다. 이걸 솔루션 업체 또는 프로그램 업체라고도 하는데, 실제 동네에서 사무실을 차리고 기사들에게 오토바이를 리스 형태로 제공하고 관리하는 배달 대행사들이 이 프로그램사와 일종의 계약을 맺는다. 배달 대행사 사장님과 기사는 동네를 기반으로 하는 오프라인의 존재들이고, 배달 중개 앱 회사는 이 오프라인의 기사와 동네의 사장님들을 데이터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네 가게를 뚫는 것과 기사를 모집하는 것은 동네 사람인 배달 대행사 사장님이 더 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보가 배달 중개 앱 회사로 넘어가고 정보가 집중되면, 배달 중개 앱 회사에서 직접 음식 가게와 라이더들을 모집해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배달 중개 앱 회사와 오프라인 회사는 협력과 갈등의 관계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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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과 북한의 미래 비전: 하노이 북미 정상 회담을 중심으로

차문석 통일교육원 교수

2018년 6월 12일과 2019년 2월 28일,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북미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성공하지 못하였고, 2차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은 결렬되었다. 서로에게 추구하는 바와 자신이 세워 놓은 미래 비전이 극도로 상이한 두 국가는 두 차례 만난 뒤에 다시 뿌연 안개 속으로 진입해 버렸다.

안개 속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하노이 회담은 여러 모로 스펙터클한 이벤트가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협상의 진행과 결렬 과정은 이 두 상이한 세계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단면을 비추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있을 양국 간 관계라는 것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를 주시하게 만들었다. 특히 실현 가능성을 떠나 북한이 추구하는 미래 비전을 이해하는 것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설명하는데 중요하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었다. 북한에게 북미 정상회담은 자신의 미래 비전의 실현에 불가결하고, 그 비전의 완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1.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출발 지점과 결렬 지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는 2018년 10월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2018년 10월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있었고 이때부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가 개시되었다.* 당시 협상의 출발점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 선언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었고, 정확하게 말하면 ‘출발 지점’이었다. 이후의 전개를 보자면, 미국은 영변 이상(이른바 ‘플러스 알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북한은 대북 제재 완화에 초점을 맞추어, 양자 간의 협상이 진행되어 왔다. 미국은 북한이 영변 이외의 핵시설과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 북한이 그렇게 한다면 미국은 제재 일부 완화와 연락사무소 개설로 보답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발 지점에서 무언가 변화가 발생한 것은 2019년 2월의 비건의 방북 때였다. 2019년 2월 6일,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때 비건이 북한 측과 실무 협의에서 합의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핵심적인 핵시설에서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면 미국은 제재 일부를 완화한다(US would lift some sanctions on North Korea in exchange for a commitment from Kim to stop nuclear-fuel production at a key nuclear facility)”라는 것이었다.*** 또한 연락사무소 교환, 평화 선언 체결, 미군 유해 송환 등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의 출발 지점에서 보면, 이것은 실무 협의를 진행한 비건의 명백한 실패이자 북한의 대성공일 것이다. 이는 당연히 미국의 트럼프가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였다. 따라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결렬의 씨앗이 이미 존재했고 이 씨앗은 2월 28일 정상회담에서 발아해버렸다.

 

* 2018년 7월 6일 방북한 폼페이오는 김정은을 만나지 못했다. 7월 6일은 미국이 6월 15일에 기획을 완료한 중국에 대한 관세전쟁을 실행하는 날이었다. 따라서 4차 방북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본격적 논의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 애초에 판문점에서 실무 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으나, 북측이 비건을 평양으로 초대하였다.

*** VOX.com, 2019년 2월 26일.(http://www.ifs.or.kr/bbs/board.php?bo_table=news_board&wr_id=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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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진실, 분개의 정치

 

세월호 5주년을 지나면서 거리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많아졌다. “기억 너머 진실로.” 세월호 사건 속에서 함께 아파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의미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문구가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또 그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출발점으로 “진실”이 필요하기때문이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날 때 “기억”은 격정을 멈추고 온전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리라. 하나는 세월호에 대해 끊이지 않고 나오는 폄훼와 왜곡이다. 지면에 옮기기조차 저어되는 모욕은 사건 자체를 넘어 인간성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낳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건의 총체적 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러저러한 사실조차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기대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바람이 우리가 “기억 너머”로 나아갈 때 다가올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억을 가지는가에 따라 진실도 다르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억은 하나의 틀이며, 가변적인 쟁점이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과 진실은 아마 왕복운동을 하면서 각각을 특유한 방식으로 구성할 것이다.

 

기억과 진실, 과거와 현재의 가변성은 5월 광주민중항쟁을 둘러싼 쟁투 혹은 그 역사적 사건의 이용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꽤 오랫동안 광주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자 한 “신군부”에 맞선 민주화 투쟁과 폭도들에 의한 무질서 사이에 형성된 전선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거대 서사 속에서 비무장 시민을 향한 무차별 총격이라든가 북한군과 간첩의 개입 등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등장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19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수립되면서 광주는 이 나라를 만든 가장 최근의 민중 항쟁으로, 민주화를 향한 거대한 발걸음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물론 그 이후로도 항쟁 이후의 광주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그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평가하려 하지 않거나, 이른바 흠집을 내기 위한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형식적으로 광주항쟁을 부정할 수는 없었는데, 아마 우리는 여기서 민주주의 담론이 가지는 힘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광주의 운명을 감안할 때 최근에 도드라지게 보이는 광주에 대한 폄훼, 모욕, 왜곡은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당연히 첫 반응은 이럴 수 있다. “광주에 대한 평가는 이제 끝난 것 아닌가?” “도대체 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 하지만 반복될 뿐만 아니라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광주에 대한 폄훼, 모욕, 왜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날 가짜 뉴스 혹은 사실 왜곡을 통한 대중 동원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이를 “포퓰리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이때 포퓰리즘은 사회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는 정치 전선을 구축하는 담론적 전략이다. 이 전략에는 다양한 소재와 정체성이 동원될 수 있고, 우리의 경우 분단과 반공주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반공이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배치를 감안할 때 포퓰리즘적 동원 전략의 일순위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모호할 것이 하나도 없는 북한군 개입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과 관련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동원을 위해 거짓 뉴스나 악의적 왜곡을 하는 발화자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듣는 수신자의 처지다. 오늘날 포퓰리즘의 발흥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따라 경제적 손실을 입고 정체성 정치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 예컨대 백인 노동자계급의 “분개의 정치”로 설명하는 것은 이런 점에 주목한 것이다. 과거에 자신이 사회의 주역이었고 자기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 분개의 정치의 조건이 형성된다.

따라서 이 조건을 바꾸는 것이 문제다. 정체성의 정치가 가져온 성취, 즉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이 배제당하거나 차별받는 것이 아닌 일이 되게 만든 것을 보존하면서도, 정체성의 정치가 가져온 또 다른 분할선이 대립선이 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이는 결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공통성에 근거하고,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이는 보편성을 설정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때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특유하게 결합해서 적절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 시절이 있었다. 자본주의 황금기 혹은 복지국가 황금기라 불리던 때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주로 남성 시민에게 완전고용이라는 정책적 목표 아래 적절한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동자-시민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여성은 배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오늘날 더 이상 양적 성장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파괴적인 기술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면, 과거처럼 노동자-시민의 구성으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활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만약 기본소득이 모두의 것인 공유부에 대한 몫으로 정의되고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새로운 보편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가 설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은 이해당사자-시민일 것이다. 이는 인민주권에 맞먹는 새로운 권리의 지평을 여는 일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5월호 통권68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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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과 해안선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초기 조건의 민감성을 뜻하는 과학 용어인 ‘나비효과’는 이제 일상용어로 흔히 쓰이게 되었다. 제임스 글릭은 『카오스』 2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나비효과가 대중화된 계기로 1993년에 상영된 영화 《쥐라기공원》에 나온 대사를 꼽고 있다. “나비 한 마리가 북경에서 날갯짓을 한 번 하면,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화창한 날씨가 아니라 비가 내릴 수 있다.” 그 뒤로 ‘나비효과’는 말뜻 그대로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대중문화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퍼져 나가 지금은 아주 흔히 쓰이는 상투어가 되었다.

나비효과는 1960년대 에드워드 로렌츠가 최초로 과학적으로 규명했지만, 일상생활에서 겪는 나비효과에 대해서 이미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임스 글릭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비효과를 설명하는 서양의 교양 과학책에 흔히 인용되는 서양의 민요가 있다.

못이 없어 편자를 잃었다네
편자가 없어 말을 잃었다네
말이 없어 기병을 잃었다네
기병이 없어 전투에 졌다네
전투에 져 왕국을 잃었다네!

못 하나가 없어서 왕국을 잃었다는 과장된 노래가 오래도록 살아 남았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을 안겨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시작된 사소한 잘못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바뀌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다. 나비효과가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효과라면, 동양에도 그런 효과를 알아차리고 표현한 작품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의 과학자 장톈룽은 『나비효과의 수수께끼』 서문에서 위의 민요에 이어 한시 한 편을 인용하고 있다.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로 흔히 부르는 소식蘇軾(1037∼1101)의 시다.

용광사에서 베어 얻은 대나무 두 개
북쪽으로 가지고 돌아가 만인에게 보여 줄 텐데
대나무 속에 든 조계의 물 한 방울
크게 불어 강서의 십팔탄을 일으키네

斫得龍光竹兩竿(작득용광죽양간)
持歸嶺北萬人看(지귀영북만인간)
竹中一滴曹溪水(죽중일적조계수)
漲起江西十八灘(창기서강십팔탄)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로서 육조대사六祖大師로 불리는 혜능慧能(638∼713)이 보림사寶林寺에 자리를 잡으면서 남종선南宗禪이 시작되었는데, 보림사가 있던 곳이 광둥성廣東省 조계曹溪였다. 조계는 혜능의 별호로 쓰이기도 했다. 십팔탄은 중국어 발음으로는 스바탄인데, 장시성江西省에 있는 물살이 거세고 험난한 협곡을 이르는 말이다. 장수이강章水과 궁수이강貢水이 북류하여 간저우赣州에서 합류하는데, 여기서부터 완안萬安에 이르는 구간이다. 어찌나 물살이 사나운지 열여덟 번의 고비를 넘어야 건널 수 있다는 뜻에서 “스바탄十八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대나무 속에 든 조계의 물 한 방울이 스바탄의 거센 물길을 일으키듯이 혜능의 남종선이 중국 전역에 파란을 일으키며 퍼져 나가기를 염원하는 소동파의 바람이 물씬 풍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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