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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시작: 2019년 유럽의회 선거

안효상 편집주간

 

자료: https://election-results.eu/

 

영국의 좌파 역사가 페리 앤더슨이 “메로빙거 입법기관”이라고 부르는 유럽의회가 유럽연합 내에서 유일하게 대중의 직접선거로 구성된다는 것은 유럽연합이 지향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면서도 유럽연합의 비밀을 은연중에 누설하는 일이다. 오늘날 유럽연합은 실질적으로 집행위원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고, 집행위원회는 유로존의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운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의회의 권한이 점차 커지긴 했지만 유럽의회를 여전히 유럽연합에서 장식적 기구 이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도 지난 5월 23∼26일에 열린 유럽의회 선거가 주목받은 이유는 유럽과 유럽연합이 처한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선거 결과가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더 높은 수준의 통합으로 가는 길은 이미 2005년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 헌법을 부결시킴으로써 한 차례 좌절된 바 있다. 이를 2009년 리스본조약으로 봉합했지만, 곧이어 닥친 부채 위기는 오늘날 유럽연합 및 유로존의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유럽연합 내 위계적 질서를 드러냈고, 이 속에서 유럽연합 및 유로존 탈퇴에 관한 논의와 주장이 분출했다. 이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른바 민족주의적인 우익 포퓰리즘 정치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고, 영국에서는 2016년에 브렉시트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여전히 브렉시트의 향방은 안갯속이긴 하지만, 유럽연합 탈퇴를 쟁점으로 국민투표가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탈퇴가 우세했다는 것 자체가 유럽연합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유럽의회에 사실상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아는 유럽 유권자들은 국내 선거 때와 달리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이전 선거와 달리 국내 정치적 쟁점만이 아니라 유럽 차원의 쟁점이 부각된 선거이기도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유럽의회 선거가 정치적 지형을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오늘날처럼 유동적인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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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포상 대상인가 전범인가?

안재성 소설가

 

해방된 뒤 김구, 이시영, 김규식 들과 함께한 김원봉.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우뚝 선 이.

 

몇 권의 평전을 쓰고 나니, 출판사들로부터 누구누구를 써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온다. 박정희와 김일성부터 최근의 노회찬까지 다양하다.

그중 김원봉은 특이한 경우다. 다른 인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 거절해 왔는데, 김원봉은 평전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까지 했다가 내가 먼저 해약해 버렸다.

김원봉을 어떤 사람이라고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위인전이 아니라 평전이라면 주인공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김구는 김원봉을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자”라며 매우 싫어 했다는데,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다. 강연회에서 누군가 “좌우를 통틀어 독립운동가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꼭 김원봉이라고 답한다. 사회주의자 중에는 이관술, 현대 운동가 중에는 윤한봉을 좋아한다는 단서와 함께. 그런데도 김원봉은 평전을 쓰기에 참 어려운 인물이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본인의 행동이나 글이 아닌 내면의 생각을 추측해서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엄청난 용량의 지능을 가진 인간의 내면은 그만큼 복잡하다. 겉으로 어떤 활동을 하든, 내면에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같은 온갖 생각이 뒤엉켜 있고, 친일과 반일, 친미와 반미, 친북과 반북이 공존할 수 있으며, 심지어 마초이즘과 페미니즘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의 불법적 행위를 재판해야지 도덕성이니 계급성이니 하는 잣대로 내면을 측량해 재판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사상을 추측하고 의심하고 캐내어 징벌하려는 오만한 행위가 구 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고 단언해도 될 것이다. 인간이란 가난은 견딜 수 있지만 남이 자기 머릿속을 캐고 들어와 헤집고 통제하는 것은 견딜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평전은 다르다. 행위만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과 감정까지, 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추론해도 된다. 그런데 자료를 아무리 봐도 김원봉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잡아낼 수가 없었다.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입만 벌리면 말했다. 그들이 항일운동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나의 소원은 첫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둘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셋째도 조선의 독립이다.”

독립한 뒤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가난한 조선인들을 위해 어떠한 정책을 펼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민족주의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당제 민주주의 공화국부터 의료보험, 국민연금, 가족수당 등 세부 사항까지 무려 260가지에 이르는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준 것은 온전히 공산주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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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핵폐기물, 이것이 딜레마다

박혜령 반핵지구인행동 회원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선명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운동은 어려워진다. 피아의 명확한 구분이 애매해지고 무엇이 다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고준위高準位 핵폐기물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 정부인지에 대해 판단이 다르거나, 탈핵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거나 표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사실 탈핵의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는 정부의 성격이 ‘찬핵’이라는 명확한 선이 존재했고, 그 반면 정권을 잡고자 하는 야권 정치인 문재인은 ‘탈핵’을 구현할 의지가 있는 인물로 간주됐다. 사실 이때부터 혼란은 시작되었다.

과연 얼마만큼 해야 탈핵인 건가? 오늘 당장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영구 정지를 선언하면 탈핵인가? 핵 마피아들이 득실대는 체제에서 완전한 탈핵이 쉽지 않으니 신규 핵발전소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문재인 정부 정도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탈핵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확실한 생각이 없으면, 고준위 핵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확한 메시지를 마련할 수 없다. 신고리5, 6호기 공론화 때와 마찬가지의 우를 범하고 있다. 정확한 자기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초기 대응의 첫 단추는 여지없이 잘못 끼웠다. 하다보니 그리된 것이 아니다.

핵폐기물 이제 그만? 언제까지 그만?
임시 저장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제 그만?

그렇다면 이야기해 보자. 2017년 당시 고준위 핵폐기물을 위한 공론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산업부의 발표에 8월경부터 시작된 각 현안 지역과 시민단체와의 논의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를. 임시 저장은 애초에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선명했다면, 고준위재검토준비단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논의에 임하거나 합의하는 내용과 과정이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기존의 환경 단체를 비롯한 일부 현안 지역에서도 탈핵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그 내용의 구체화를 위한 논의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런 논의를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않도록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 온 단체들의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고 본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딜레마는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해법 없는 문제가 아니라, 고준위 핵폐기물을 더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큰 줄기의 내용은 있으나 세부적인 내용의 자기 메시지를 만들지 못하는 문제다. 무엇이 탈핵인가라는 질문에 선명한 답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딜레마다. 이제라도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반핵운동이 더 길을 잃기 전에.

딜레마 1. 뾰족한 수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고준위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보관하여 안전하게 자연 상태로 되돌릴 기술은 확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핵발전을 선택한 나라들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곳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없다. 현재 유일하게 핀란드가 고준위 핵폐기물 심지층 처분장을 건설중이다. 부지를 선정하고 심지층 방식이 거론되던 스웨덴에서는 고준위 핵폐기물 심지층 처분 방식은 구리 원통이 부식될 수 있으며 방사선 누출 대책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부지 선정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었고 이를 충분히 보장하는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기술적 안전성이 아니라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공론화였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현재 월성핵발전소에서 추가 증설하려는 맥스터가 사실상 핵발전소 부지의 지상 중간 저장 시설로 분류될 수 있다. 단기적인 조치이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테러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 등을 생각하면 근본적인 대책일 수 없다. 발전소 내의 수조에 저장하는 그야말로 임시 저장을 비롯해 제3의 부지나 발전소 부지 내의 중간 저장, 아니면 영구 봉인하는 최종 처분까지 기술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고 안전성 확보에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이것은 핵발전소 가동을 시작할 때부터 예상한 문제였으나 우선 가동하고 보자는 무책임한 결정이 낳은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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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지 않은 생일, 전교조 30돌

임성용

참교육의 깃발을 들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투경찰과 백골단을 동원한 무장 병력으로 민주주의를 짓밟던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 쿠데타 세력에 맞서 이뤄낸 1990년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와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창립 과정에서 전교조의 역할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교원 노조가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한 1986년에 「교육민주화 선언」을 이끌었던 교사들은 1987년 6월항쟁의 열기를 “교육민주화 실현”으로 되살렸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참교육 실현, 사립학교 민주화, 교육 악법 개정 투쟁에 나선 교사들은 1989년 5월 28일 전교조를 창립했다. 법외노조였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라며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42명의 교사를 구속하고 1,527명의 교사를 파면 또는 해임하는 등 강경하게 탄압했다. 그중 1,329명만이 1994년 3월에야 교단으로 복귀했다.

합법성 쟁취 투쟁 10년 만인 1999년 7월 1일, 마침내 전교조는 합법화됐다. 민주당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같은 해 7월, 조합원 6만2,654명으로 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함으로써 합법적인 노조로서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전교조는 노동법이 아닌 특별법에 따라 합법화됨으로써 애초부터 일반적인 노조와 동등한 권한을 갖지 못했다.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단결권, 단체교섭권만을 갖게 되었다. 쟁의 행위는 금지되고 조합원 자격도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교원과 유치원 교원은 포함하되 대학교수는 제외되었다. 또한 전국 단위와 시도 단위의 조직은 허용되지만 학교 단위의 노조는 설립할 수 없었다.

공문 한 장으로 박탈당한 합법성

노조와 관련된 현행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이 세 가지 가운데 「노동조합법」은 일반법이고 나머지 둘은 특별법이다. 교원은 특별법인 「교원노조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이 법에서 규정하지 않는 사항은 「노동조합법」, 즉 일반법의 적용을 받는다. 교원은 국공립학교에 속하더라도 국가공무원이긴 하지만 「공무원노조법」의 적용은 전혀 받지 않는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교원노조법」 제2조와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이었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조합원의 자격을 재직 중인 교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은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은 후 ……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해 노동조합에 대하여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바로 이 법률 조항에서 심각한 충돌이 발생한다. 「교원노조법」 제2조의 조합원 자격 규정은 실업자나 해고자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노동조합법」에 배치된다. 특히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담긴 ‘행정관청 시정 요구’와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한다는 규정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결정하게 한 핵심적인 조항이었다.

이 조항들로 인해, 이미 설립신고를 하고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 행정부는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시행령이 노동조합의 존립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 같은 모순된 법률이 정부와 전교조의 법외노조 다툼을 야기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교조는 해당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해직자 조합원 인정’ 등 5개 규약에 대해 시정명령을 했고 전교조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듬해인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는 해직 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임을 통보했다. 팩스로 날아온 공문 한 장으로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가 되고 말았다. 6만 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노동조합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박탈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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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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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편이냐? 그리고 너는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

1960년대 미국에서 반전운동이 거세질 때 이런 노래가 있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1980년대 격동의 시대가 지난 후 한국에서 어느 시인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노래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전선이 분명했지. 그리고 각자가 그 전선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전선에 오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지 않았지.’

지금은 둘 다를 묻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조국 법무부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고, 또 조국 법무부 장관 자신에 대해서는 그가 서 있는 자리와 그가 걸어온 길이 부합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묻지 않는다. “검찰 개혁”이라는 말이 허공에 맴돌 뿐이다.

1960년대의 미국과 오늘날의 한국은 분명 다르다. 베트남에서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투하했던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이때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묻는 것은 거리감은 있었을지언정 가상에 기초한 질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 편 아니면 저쪽 편”이라고 하는 단정은 다양한 욕망과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성립하는 상상적 질문의 폭력이다.

물론 “검찰 개혁 대 법무부 장관 사퇴”라는 구도 속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은 순진하거나 적의 편을 드는 말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편에 서는가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전선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그 전선에서 싸워서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도 최소한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시절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서 있는 자리만큼이나 걸어온 길이 중요하다며 물을 때, 거기에는 분명 세대 논쟁이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복잡한 사회학적 논구를 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386세대”라고 부르는 특정 연령층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인간의 생물학적 순환에서 특정 시기에 특정 연령층이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 혹은 운fortuna이 특정 연령층에 그런 행운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령 변수를 제거하더라도 386세대가 ‘과잉 대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또 역사나 운명의 여신이 벌인 장난이었다면 그건 온전히 자신의 몫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 대학 학생들이 “공정”이라는 구호 아래 벌이는 움직임이 달가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공정을 말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이 그럴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좀 더 나은 조건과 그렇지 않은 조건 사이의 공정은 더 큰 사회적 그림 속에서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할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새로운 사회 연대성의 수립이 필요할 텐데, 그 기반은 시민성의 보장이다. 시민성의 보장은 모든 차별의 금지와 삶의 보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적 권리를 복지국가 황금시대에 서구가 보장했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원리적인 의미에서 근대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개인의 해방이야말로 근대성의 원리라 할 수 있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는 다양한 연원이 있는 전근대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근대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법률적 조치뿐만 아니라 “문화 전쟁” 또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문화 전쟁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라도 시민성의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질문에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이라고 대답할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10월호 통권72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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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정부, 가난한 국민: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 비판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 경제학부 교수

1.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소득 주도 성장”을 제시한 문재인 정부의 집권 2년이 지났다. 소득 주도 성장은 임금과 가계소득을 증가시켜 소비와 총수요를 늘리고, 나아가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경제성장 전략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1997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이 심화하고 성장이 정체된, 불평등과 저성장의 악순환에 대한 우려에 기초한 것이었다. 또한 낙수효과를 주장했던 보수 정부의 규제 완화와 ‘부채 주도 성장’의 실패에 대한 반성도 그 배경이었다.

소득 주도 성장은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아지면 총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는 진보적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의 “임금 주도 성장” 이론에 기초한 것이다. 실제로 여러 실증 연구는 1997년 이후 한국 경제가 임금 주도 체제임을 보인 바 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의 상승이 소비는 크게 증가시키지만 투자와 수출에 미치는 악영향은 미미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고 사회복지가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여 ‘소득 주도 성장’이란 이름을 붙였고 이에 기초한 여러 정책을 도입했다. 정부가 밝히고 있듯이, 소득 주도 성장의 세 축은 최저임금 인상 등의 가계소득 증대, 의료비와 주거비 등 생계비 감축,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확대다.

2019년 5월 현재,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실질경제성장률은 하반기 이후 투자 감소를 배경으로 2.7%를 기록하여 전년의 3.1%에 비해 낮아졌다. 2018년 하반기 이후에는 경기 둔화가 심각해졌고 2019년 들어서는 수출 감소를 배경으로 투자가 급락하여 1분기의 전 분기 대비 실질경제성장률 속보치는 -0.3%를 기록했다. 2018년 고용 증가도 9만7천 명에 그쳐 우려를 던져 주었다. 물론 고용 증가의 둔화에는 인구 고령화, 제조업 위기, 건설업 불황 등의 요인들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도 제한적이나마 있었을 것이다. 특히 가계동향조사를 둘러싼 통계 논란이 존재하지만, 2018년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격차가 확대되어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근로자 가구는 전반적으로 소득이 증가했고 저임금노동자가 줄어들었으며 임금 불평등도 감소했다. 또한 실질임금 상승률이 높아져 노동소득분배율도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임금 주도’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배경으로 오랫동안 위축된 가계소비가 견고하게 증가하여 2018년에는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것이 저소득층의 소비 증가라 보기 어렵고, 민간소비는 최근 둔화되고 있으며, 투자 감소가 심각하여 소비의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한계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정부가 기대하는 ‘소득 주도 성장’의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외에 사회복지 확대나 경제의 구조 개혁 등 다른 정책들의 실행에 한계가 많았다는 것과 관련이 클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2018년 재정정책의 실패가 이러한 실망스러운 결과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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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과 국가정책: 노동의 국제화된 비정형화

지드 아흐메드 수시Sid Ahmed Soussi 몬트리올 퀘벡주립대학교 교수, 번역 윤철기 몬트리올 퀘벡주립대학교

 

이 글은 ‘일시적 이주노동’의 흐름이 끼치는 국내 수준에서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고용 규제, 노동관계, 노동의 사회권 보장 등을 중심으로 분석한 국제 비교 연구를 담고 있다. 캐나다의 정부 정책에 따라 노동계를 구조화하고 있는 이 세 가지 차원의 변화를 새로운 형식의 불평등 산출과 관련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이러한 메커니즘은 노동 공간과 여러 조직들, 특히 일시적 이주노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산업부문들에서 확장되고 있다. 오늘날 노동 변환의 상징적 현상인 일시적 이주노동 흐름의 가속화는 위의 세 차원에서, 그리고 새로운 불평등 형식의 두 가지 구성적 벡터인 불안정화와 사회권 접근과 관련하여, 국내 차원에서 점점 더 가시적인 결과들을 낳고 있다. 이에 더해 지금껏 충분히 보고되지 않았고 국제 차원에서 증대하고 있는 고용의 “회색 지대zone grise”의 등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방법론적으로 본고는 캐나다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담고 있다. 먼저 국내 비교 연구를 수행하고 이어서 국제 비교 분석을 수행할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비교 분석은 아래의 다섯 개 절에서 각각 제시될 것이다. 제1절은 노동의 국제 이주의 주요 경향과 이와 관련한 몇몇 개념들을 검토할 것이고, 제2절은 캐나다의 세 가지 주요 “일시 체류 외국인 노동자”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국내 차원에서 검토할 것이다. 제3절은 이 프로그램들과 관련하여 국제 차원에서 검토하고, 이 프로그램들이 노동의 불안정화와 사회적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다. 제4절에서는 일시적 이주노동의 흐름을 국제분업이라는 배경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국제 비교의 측면을 심화시키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이 현상이 사회적 불평등과 관련해 갖는 함의를 상호교차성의 관점*에서(계급, 성별, 인종 관계에서) 살펴보고, 일시적 이주노동 규제와 관련해 국가가 보이는 양면성의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또한 “시장의 지구화와 경제의 세계화”에만 근거한 전통적 사회 정치 모델이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갖게 되는 한계에 대한 이론적 논의도 더해질 것이다. 본고에서 비교적 접근이라는 방법론을 선택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으로 캐나다 프로그램은 하나의 특수한 사례이지만, 근래에 확산되고 있는 현상의 전형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는 특히 캐나다 프로그램이 기업들에 매우 높은 유연성을 부여하고 있고 국제법과 관련해서 법적으로 우회할 수 있는 장치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기업들이 국내적, 국제적 노동규범들을 쉽사리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강한 비정형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주노동의 흐름은 노동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겠다.

* 상호 교차성의 관점은 근래에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에서 크게 발전해 왔다. 이 개념은 “인종”의 사회적 관계 또는 “인종화”되거나 “종족화”된 사회적 관계를 성별화된 사회적 관계 및 계급의 사회적 관계와 결합시키는 불평등과 차별과 관련하여 특히 중요하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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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핵 정책과 반핵운동

김준한 반핵지구인행동 회원

 

“언론인 여러분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가짜뉴스를 생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들도 불안해한다. 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 전환은 60년에 걸쳐 점진적, 점차적으로 에너지믹스를 조정하는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원전은 줄어든 적이 없다. 탈원전 한 적이 없다.”

지난 5월 7일,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가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노골적으로 탈원전 한 적이 없다고까지 했지만, 한편 새로울 것이 없는 발언이다. 당선 이후 새로운 정부의 핵 정책을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2017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 기념사에서 공약을 파기하고선 신고리5, 6호기 공론화로 선회하면서 예견됐던 것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 공약에서 신고리5, 6호기 건설 중단을 비롯해 계획 중인 핵발전소 백지화를 표방했지만, 한 달하고도 열흘 만에 가장 핵심적인 쟁점에서 후퇴하고 만 것이다. 더군다나 고리1호기 폐쇄는 이미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수명 연장 포기 선언’이 이루어진 마당이어서 문재인 정부의 성과라고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기껏해야 현재로서는 아직 법적으로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월성1호기 폐쇄가 결정된 것 외에는 핵발전소 폐쇄 계획이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 의원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고 하겠다.

“고리1호기 영구 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고 야심 차게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이어지는 신고리5, 6호기 공론화 국면에서 언론을 통해 새로운 발언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공론화위원회의 최종 결정이 나오기 나흘 전인 10월 16일 언론에서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정부가 더는 “탈원전”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않고 앞으로는 “에너지정책 전환”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고 전한다.

탈원전이라는 말 자체가 갑자기 핵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비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이유다. 공론화 이전에 이미 문재인 정부의 핵정책의 궤도 수정과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으로서의 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큰 틀이 마련된 것이다.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완전히 별개.”

이 또한 신고리5, 6호기 공론화 결과가 나오기도 열흘 전인 10월 10일 당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원전수출전략협의회에서 한 발언이다. 이에 화답하듯 이듬해인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 바라카핵발전소 건설 완공식에 참여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덤핑과 이면 합의로 극적으로 타결시킨 계약의 완성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해 6월 산업부는 국정현안조정점검 회의에서 특별하게 핵발전소 설비 교체 비용을 현행보다 7,810억 원 증액하고,* 원자력 전공자 채용 비중을 30%로 확대하며, 핵발전 관련 중소기업 지원 등을 대대적으로 약속하게 된다. 또한 핵 수출은 미국의 핵 기술 사용과 연동된 만큼 8월 한미원자력고위급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를 통해 한미 간에 제3국 핵발전소 시장 진출 확대 협력이라는 사전 준비를 하게 된다.

 

* 이는 핵발전소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그동안 핵 산업계의 핵발전소 수명 연장의 이유 중 하나가 매몰 비용, 특별히 수명 연장을 염두에 두고 추가로 투입한 거액의 비용을 손실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경제적 이유였다는 점에서 추후 수명 연장의 명분을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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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기타를 만들지 않겠다는 회사

―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13년간의 눈물

임성용

2019년 4월 23일 콜텍의 노사가 드디어 합의문에 서명했다. “4,464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한 공동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출처: 임재춘 페이스북)

장장 13년의 투쟁이었다. 국내 최장기 투쟁 사업장 중의 한 곳이었던 (주)콜텍 해고노동자들이 13년의 복직 투쟁 끝에 마침내 회사와 합의했다.

지난 4월 23일, 노사는 아홉 차례에 걸친 교섭 끝에 어렵사리 합의안을 마련하고 조인했다. 노동자들이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한지 4,464일 만이었다.

합의문의 주요 내용은 회사의 유감 표명, 그리고 해고노동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의 명예로운 복직과 퇴사였다. 아울러 콜텍지회 조합원(25명)에 대한 합의금 지급과 민형사상 소 취하 등도 합의했다.

충남 논산에 있던 콜텍은 2007년에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았다. 콜텍에서 통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당했다. 해고노동자가 복직해도 지금은 돌아갈 공장이 없다. 그래서 합의문을 보면, 이인근(콜텍 지회장) 등은 “5월 2일 복직시키되 5월 30일부로 퇴직”하기로 했다. 또한 “소급해서 근로관계를 부활시키거나 해고 기간의 임금 등을 지급하지는 아니한다”라고 했다. “회사는 국내 공장을 재가동할 시 희망자에 한해 우선 채용한다”라고 했지만, 그럴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콜텍 사장 박성호는 이미 공장을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기타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인천 부평에서 함께 운영하던 (주)콜트악기도 폐업한 후 중국으로 이전했고 콜트 노동자들 역시 전원 해고되었다. 두 회사 모두 사장은 박성호이며 법인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콜트와 콜텍은 똑같은 정리해고 사업장이었고,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한 몸으로 연대해 왔다. 다만 콜텍이 먼저 합의했다. 합의서 한 장 받는 데 13년이 걸렸다.

20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던 사람

회사는 지독했다. 노사 협상이 시작된 것은 복직 투쟁이 시작되고 무려 12년 만인 2018년 12월 말이었다. 노동자들이 협상 당사자인 박영호 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13년 만인 2019년 3월 7일에 있었던 8차 협상에서였다. 사장을 만난 그날도 협상은 결렬되었고, 3월 12일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조합원이 단식을 선언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임재춘은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42일 동안 단식했다. 그의 나이는 57세. 흰색 한복을 입고 앉아서 단식하는 그의 머리카락은 한복만큼이나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가 해고될 당시에 마흔네 살이었을 테니, 그 길고 어두운 시간을 견뎌 온 세월이 버림받은 노동자의 이력으로 고스란히 묻어났다.

지난 4월, 필자가 단식투쟁을 지지하기 위한 집회에 참석했을 때, 그의 몸무게는 47kg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약간 말을 더듬는 듯한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로 그는 말했다.

“13년을 길거리에서 싸우고 농성할 줄 알았으면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깊고 강인한 눈빛을 가진 눈에 고인 눈물이 안타까웠다. 옆에 앉은 이인근 지회장과 김경봉 조합원은 차마 그 모습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여전히 제 꿈은 명품 기타를 만드는 겁니다.”

과연 그는 이번 생에 다시 기타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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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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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판결과 ‘권리들을 가질 권리’

‘포스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중의 고통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과거가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미래는 우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시작해서 포스트포디즘을 거쳐 포스트신자유주의를 지나 포스트자본주의까지. 여기에 포스트파시즘과 포스트트루스까지. 뭔가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그 속에 머물고 있으며, 세상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도리어 뒤로 떠미는 바람이 더 거센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뒤로 떠미는 거센 바람에 과거의 것이 실려 오면서 “귀환”이 포스트 시대의 주조인 것처럼 보인다. 직접적으로는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치적 대응으로 시작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 전쟁’과 대중적, 민족적 대립은 역사적 잔해의 귀환이다. 물론 이 사태가 단순한 귀환은 아닐 것이다. 분명 여기에는 미래를 향한 불씨가 있다. 다만 역사적 잔해 속에 묻혀 있을 뿐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누구 말대로 “지정학의 귀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자유주의적 국제 체제의 붕괴를 가리키는 지정학의 귀환은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지역 패권 추구, 터키와 인도 등의 새로운 위치 잡기 등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를 추구하는 일본의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태세 전환의 시도가 도드라져 보인다. 북한이 핵무장과 그 해결 과정에서 추구하고 있다고 알려진 “정상국가화”라든가 한국 정부가 이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 일본과의 대립 속에서 주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모두 지정학 속에서 행위자로서 자리 잡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일지만 이러한 지정학의 귀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민족주의다. 서구에서 근대국가가 ‘민족-국가’라는 특유한 형태를 취했고 20세기 이후 이것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낯선 일은 아니다. 지구화 속에서 민족주의의 시대가,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주장이 나온 바로 그 시점부터 에스닉과 종교 등 다른 갈등이 터져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의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적 침략의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국가의 추구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억압적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족주의의 귀환’은 봉인된 파괴적 힘이 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한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에도 예외는 아니다. 민족주의가 인류 공동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과도적인 단계라는 자유주의자들의 바람과 달리 민족주의의 일반화는 중첩된 갈등을 낳았다. 크게 보아 지배적인 민족일지라도 특정 지역에서 ‘소수민족’일 경우 억압을 피하지 못했으며, 제국주의에 지배받는 피억압 민족도 자기보다 하위에 있는 민족 집단에 대해 제국주의와 유사한 태도를 보였다. 이른바 민족 내부에서는 민족 대 반민족의 이름으로 소수자나 반대파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일본과의 대립 속에서 기술 자립을 위해 노동조건의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든가, 불매운동에서 민족(?)자본에 대한 옹호가 나타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우려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격렬한 싸움은 가끔 그 싸움이 왜 일어났는지를 잊게 한다. 한일간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원인을 빼고 해법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적 발단은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해 해당 일본 기업에 손해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강제징용 자체가 있었는지 여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 한국이 받은 3억 달러의 성격, 그리고 이것으로 개인들의 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여부다.

우선 강제징용 문제는 두 가지 다른 쟁점을 제기한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식민지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중첩되어 있는 것이긴 하지만 어떤 체제 하에 살던 개인이 인간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에 관한 문제다. 1910년 대한제국과 일본은 “한일병합에 관한 조약”을 맺어 대한제국 전체에 관한 통치권을 일본 황제에게 양여하기로 한다. 이로써 한국 인민은 법적으로 일본 황제의 신민이 되었다. 이런 사태가 1965년 이후 무효화되긴 했지만, 한국은 원천 무효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일본은 당시에는 유효했으나 대한민국 수립 이후 무효화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일제강점기 한국 인민의 ‘강제동원’에 대한 입장 차이를 수반한다. 하지만 설사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대해 ‘합법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강제징용된 개인의 권리까지 무효화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런 개인의 권리를 통치권과 무관한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통한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는 개인의 권리와 관련해서 좀 더 일반적인 시사점을 준다. 두 나라는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도 맺었는데, 일본은 이로써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본다. 여기에는 청구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 간의 조약으로 개인의 권리가 무효화될 수 있는가라는 쟁점이 있다. 청구권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이 있는데, 앞서 보았듯이 양국 사이에는 여전히 이견이 있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일본 측에서도 국가가 가지는 외교 보호권을 포기한 것이지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외교 보호권의 포기와 개인 청구권이 유효함은 양립가능한 일인가?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는 깨달음과 마주한다. 20세기의 가장 특유한 정치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말처럼 상황과 우연의 결과물로 미국으로 건너가 1951년에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지만, 그 이전까지 거의 20년간 국적 없는 난민으로 살았다. 이 경험 속에서 그는 권리들을 가지려면 단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했다. 권리를 가지려면 인간은 우선 정치공동체의 일원이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구체적인 권리들에 앞선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아렌트의 이런 깨달음은 근대의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이 가진 추상성을 드러내며, 현실에서 이것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권리들을 가질 권리”에 대해 말한 바로 그때부터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제적인 제도와 활동의 발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적 없는 사람들과 난민들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에서 설사 정치공동체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오늘날 지정학의 귀환은 ‘민족-국가’와 민족주의의 이름 아래 정치공동체 내부에서 많은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강제징용 손해 배상 판결은, 어느 정도로 실효성이 있을지 아직 모르지만,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려 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누구나 과거를 딛고 내일로 나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동아시아 세계에서 일본의 침략과 만행으로 벌어진 과거사에 대한 청산 없이 의미 있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청산은 국가 대 국가 사이의 관계 재설정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극단의 시대이자 진보와 야만이 교차한 지난 세기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어떤 정치공동체도 모든 사람의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보고 있는 인권의 목록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권 자체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다시금 정치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할 때, 그리고 그러한 인권 자체가 다시금 후퇴한다고 여겨지는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19세기에 프랑스의 종교사가인 에르네스트 르낭은 민족을 “나날의 국민투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 인간의 권리, 이 권리를 보장한다는 정치공동체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권리들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공동체를 나날이 형성하는 투쟁이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고 행사하는 길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어떤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은 그러한 권리를 위한 투쟁 속에서만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9월호 통권71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