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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그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지난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미국에서 중간선거는 하원, 상원, 주지사 등을 뽑지만, 대통령 임기 중간에 실시되어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중간 평가의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중간선거의 결과에 따라 미국 대내외 정책이 방향을 크게 전환한 사례는 많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많은 반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이번 중간선거는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중간선거가 끝난 후 미국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들은 대부분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을 되찾았고 주지사 선거에서 선전했기 때문에 트럼프와 공화당이 패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기성 언론들이 트럼프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온 편향된 해석이다.

이 글에서는 2018년 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그 결과가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사안인 북미 협상과 중미 무역 전쟁에 미칠 영향을 진단해 본다.

1. 미국의 의회 및 선거 제도

미국 중간선거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의회 및 선거 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의회가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상원과 하원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하원은 435명으로 구성된다. 각 주는 인구 비례에 따라 의석을 배분 받는다. 인구가 3천5백만 명인 캘리포니아는 하원 의원이 53명이지만, 인구가 73만 명에 불과한 알래스카는 1명이다. 인구가 적은 노스다코타, 버몬트, 와이오밍도 하원 의원은 1명에 불과하다. 하원의원의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2년마다 한 번씩 하원선거가 치러지는데, 한번은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지고, 또 한 번은 이번과 같이 중간선거 때 치러진다

이에 반해 상원은 주마다 2명이 선출된다. 그래서 미국 전체로 상원의원은 100명이다. 임기는 6년이고, 2년마다 1/3씩 새로 선출된다. 주마다 모두 2명의 상원의원을 선발하는 것은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이 현재와 같은 연방국가를 구성한 것은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를 통해서인데, 연방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각 주에 대등성을 부여하면서도 각 주의 인구 차이를 고려하여 양원제를 채택했다.

원리적으로는 하원은 국민을 직접 대표하며 상원은 주를 대표한다. 그래서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은 좀 더 국민의 입장을 적기에 대변하라는 의미에서 임기가 2년이며, 상원은 보다 장기적이고 좀 더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하라는 의미에서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원리에 의해서 구성되었기 때문에 하원은 세금과 경제에 관련된 권한을 주로 갖는다. 대표적으로 하원은 예산심의권을 가지며, 세금 관련 법안은 하원에서만 발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상원은 연방의 정책과 운영과 관련된 역할을 맡는다. 군대의 파병, 대법관 및 연방 관료 임명, 국제협약 승인 등의 권한을 갖는다. 이 같은 역할 분담이 있지만, 모든 법안은 양원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중간선거에서는 주지사 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주지사 선거는 연방과는 관계가 없고 각 주의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임기는 4년이고 일부 주가 2년이다. 선거 시기도 주마다 다르다. 50개 주 중에서 34개 주는 4로 나눠지지 않는 짝수 년에 뽑는데, 2018년이 그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34개 주에서 주지사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중 9개 주는 4로 나눠지는 짝수 년에 뽑는다. 홀수 년에 뽑는 주도 있다.

2. 2018 미국 중간선거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첫 2년간은 공화당이 상하 양원에서 모두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하원 435석과 상원 총 100석 중의 35석(33개 + 2개는 임기 4년 남은 보궐선거 2곳)에 대한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34개 주의 주지사 선거가 함께 치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에서 38석을 늘려 233석을 차지해 절반 의석(218석) 이상을 확보했다.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기존 의석에 2석을 늘려 과반인 52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선전해서 기존보다 7개 주를 더 얻었고 공화당은 6개 주를 잃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은 여전히 총 27개 주를 장악했고, 민주당은 이번 승리에도 불구하고 23개 주를 장악하는 데 그쳤다.

이 통계만을 두고 보면 양당 중 어느 한 당이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하기가 힘들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차지하다가 하원을 민주당에게 빼앗겼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패했다고 할 수 있지만, 공화당은 상원에서 의석이 늘었다.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선전했지만 공화당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렇다 보니, 미국 언론들의 평가도 조금 모호하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미국 언론들은 민주당의 ‘판정승’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뉴욕 타임스』는 “민주당 바람이 어느 정도 불긴 불었는데 태풍은 아니었다”라고 결론 내렸지만, 2016년 대선과 비교해 하원 선거구 317곳에서 민주당 지지가 늘었고, 전체적으론 평균 10%포인트 민주당 지지가 늘었다는 점을 들어 민주당의 손을 들었다. 한편 CNN은 민주당이 2016년 대선에서 잃어버렸던 ‘블루 월blue wall’(민주당의 아성 지역) 중 일부 지역(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에서 상원 의석과 주지사직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 승리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미국의 주요 언론, 특히 자유주의 성향의 언론들이 트럼프 개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선거 결과의 평가에도 그런 선호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선호를 감안하여 냉정하게 분석하면 이번 선거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선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트럼프의 지지층이 꽤 견고하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중간선거는 집권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첫 임기에 치러졌던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 6석, 하원 63석, 주지사 6곳을 공화당에 내줬고, 두 번째 임기 중간선거(2014년)에서는 상원 8석, 하원 13석을 잃어 공화당에 상원과 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내줬고, 주지사 3곳을 잃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하원은 뺏겼지만 상원에서는 오히려 의석을 늘렸기 때문에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한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5년 동안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속한 당이 상원 선거에서 의석수를 오히려 늘린 것은 딱 다섯 번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가장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대통령이다.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한다. 이번 중간선거는 그의 반대파만큼이나 트럼프의 지지층이 견고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줬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다니엘 매카시도 비슷한 분석을 했다. 트럼프는 “널리 증오 받는 우려의 대상이지만 또한 그는 자신의 지지층들에게 깊이 사랑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또한 중간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를 통해서 대선의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화당이 대선의 승부를 좌우하는 플로리다, 인디애나, 오하이오 등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지역(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차지하는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트럼프가 재선 가도에 중요한 고비 하나를 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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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인식과 새로운 문제

 

토머스 페인은 『상식』 머리말에서 “시간은 이성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만들어 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에게 시간보다 더 강한 원군은 없는 것 같다. 비록 유토피아가 저 멀리 지평선에 아스라이 보일지라도 꾸준히 가다 보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 강한 동력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5·18 망언’과 이를 부추기고 있는 인식, 의도, 발언 등을 보면 페인의 말이 꼭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진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커진다.

사실 5·18이 북한군이 개입해서 만든 폭동이라는 망언의 의도와 인식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반공을 기초해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분단의 초기 단계를 넘어서려는 폭력적인 시도였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유아기를 보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를 주도한 냉전-반공 세력이 이른바 개발독재 체제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해 갔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정통성의 문제이건 이념의 문제이건 아니면 일상생활의 문제이건, 체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그에 대한 저항도 커졌던 것이 한국 현대사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5·18은 사실 하나의 비가역적인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이 몸으로 저항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따라서 아무리 군대의 힘으로 이를 억압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최후의 수단을 장기적으로 막을 다른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전히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면, 그 진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1980년대 초반, 시절이 아무리 암울하다고 느꼈다 할지라도 커다란 충돌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고, 이는 1987년에 사실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이른바 ‘87년 체제’에 살게 되었다.

87년 체제에서 냉전반공주의는 여전히 살아남았지만 최소한 폭압적인 군부독재는 정당성을 상실했고, 냉전-반공 세력은 새롭게 보수라는 이름을 걸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보수주의가 그 적절한 내용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보수는 ‘친자본’이라는 지향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없는 벌거벗은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신자유주의 하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된 것이 그들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라는 인물은 자기 역사에서 보수의 기반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미에서 보수주의를 나름대로 재건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당한 자기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그 보수주의는 침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촛불혁명과 탄핵이라는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5·18 망언은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갈등의 축을 옮김으로써 자기 정당성과 자기 활동성을 확보하려는 냉전반공주의의 끔찍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는 자유한국당에게 이는 강렬한 유혹일 텐데, 결국 ‘독이 든 사과’로 판명 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 내용이 가짜라서만이 아니라 반공주의를 가능케 한 냉전이라는 지형이 세계사적으로는 철지난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조차 서서히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냉전의 원인은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이념적이었다. 1989∼91년에 냉전이 끝나고 자유주의 이외에 다른 이념은 없다는 이념이 잠시 지배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트럼프주의의 발흥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간 일이 되었다. 아마 국제 질서는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지정학의 부활’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의 부활의 국내적 효과는 갈등의 축을 외부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 내부의 갈등의 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사회 양극화와 여기에 수반되는 사회적 지위의 변동 등은 해당 사회의 제도적, 문화적 배치 속에서 다양한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태극기 부대가 그저 냉전반공주의에 사로잡혀 거리로 나온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기존에 누리던 상상적, 실제적 지위가 무너지는 경험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며, 이는 어찌되었든 배출구를 필요로 한다. 태극기 부대와 5·18 망언은 이런 배출구가 퇴행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드는 완충제와 그 사회변동의 긍정적인 방향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공론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5·18 망언은 낡은 것이지만, 이러한 사태가 제기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3월호 통권6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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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을 위하여

해가 바뀌는 것이 자연적인 변화와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위적인 구분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덕분에 우리는 기억과 망각, 성찰과 구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시대』 독자들에게 기억과 망각, 성찰과 구상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기억할 만한 것은 기본소득이 한 번 솟구쳐 올랐다 사라진 의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정책적 차원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경기도에 기본소득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내년에는 청년배당이 실시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망국적인 부동산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국토보유세와 연동한 기본소득 제도가 분명한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농촌과 농업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목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농촌/농업 기본소득’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에서 실시하겠다는 ‘청년 기본소득’과 같은 것도 그 내용과 상관없이 언급할 필요는 있겠다.

망각해야 할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망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건 기본소득 의제를 담아내고 실천할 적절한 정치적 틀과 통로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아니 더 진솔하게 말하면, 조직적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조직 자체를 망가뜨리고 또 추스르느라 다른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망각하고 싶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기본소득 의제 자체가 목표로 삼고 있는 ‘자율적인 인간들’의 결사체로서의 정치 조직을 형성하지 못하고, 심하게 말하면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의제와 충돌하는 낡은 관계들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여러 번 여러 사람이 반복했기에 이제는 진부한 격언처럼 들리는 말이 떠오른다.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과 망각을 넘어 성찰로 넘어가야 한다. 잠시 숨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이것이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면 말이다. 인간에게 성찰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성찰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점의 이동이 필요한 데, 성찰과 함께 탄생한 근대의 진리의 의지가 시점의 이동을 가로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찰은 진리의 의지가 좌절된 곳에서, 평범한 말로 하자면 소수파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수파의 좌절된 진리의 의지는 맹목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의지의 결사체가 낡은 유대로 전락하고 전략이 음모로 강등되는 상황은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성공한 혁명은 대중과 분리된 전위의 변증법적 결합을 통해서건, 함께 굶주리고 아파하고 싸우는 것을 통해서건, 융합의 파괴력을 통해서 가능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융합의 양식과 윤리가 바뀌었고, 이는 계속 바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로 말하려는 것, 완전고용, 노동조합, 복지국가 등이 시대의 토대이자 사회의 목표가 되는 시절이 지나갔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낡았지만 익숙한 것과의 이별, 닿지 못했지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 환상의 섬에서 벗어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하는 가다.” 자연적 수명을 가진 인간이기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처럼 현재를 구성하는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숙한 것이 비극이라면 시대착오적인 것은 희극이다. 그리고 희극이 시대를 드러내는 징후라면 비극은 미래를 향한 의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의 비극과 현대의 비극이 평행선을 이룬 비극의 대위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끌려가면서도 이를 거부하려 했던 페르소나와 자신의 힘을 믿으면서도 바로 그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스러져가는 캐릭터 사이의 충돌일 것이다. 물론 의지가 살아 있다면 그 충돌 속에서 그 의지는 다시 미래를 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여전히 충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여진이 있겠지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의지를 살려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내면의 소리를 듣는 연옥을 통과해야 한다. 그 충돌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마 진정한 의지는 거기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1~02월호 통권6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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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익는 냄새에 홀린 토끼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국민학교 들어갈 즈음에 할머니께서 낡은 책상을 하나 얻어 오셨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타지로 돈 벌러 나가시고, 할머니, 나, 동생 이렇게 셋이서 둘째 이모네 밧거리(바깥채)에 살 때였다. 쫓기다시피 막 돌아온 고향이라, 살림살이라곤 이불 몇 채가 전부인 단칸방이었다.

단칸방에 낡은 책상이나마 떡 하니 놓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누런색 합판을 대고 만든 싸구려 책상이라 여기저기 긁힌 자국도 많았고, 내 키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서 책상 앞에 앉으면 가슴팍까지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뛰놀다 들어와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아무 할 일이 없을 때에도 그저 책상에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장작이 귀해, 밥은 일출봉 분화구에서 베어 온 촐을 지펴 해 먹었다. 육지에서는 ‘꼴’이라고 부른다는 걸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베어온 촐로 지붕을 이고 새끼를 꼬아 줄로도 썼지만, 불을 지피는 데도 맞춤이었다. 불을 지펴 밥을 할 때면, 옆에서 할머니는 “솔솔 지드라. 와랑와랑 해분다.” 하고 당부하셨다. 한꺼번에 촐을 넣으면 활활 타오르니 조금씩 살살 지피라는 말씀이었다.

어느 정도 불을 지피고 나면, 촐이 작은 벌레처럼 잘게 부서지며 빨간색 불빛이나 노란색 불빛을 내뿜으며 일렁일렁 거리다가는 조금씩 회색빛 재로 바뀌며 아래에 쌓여 갔다. 부지깽이로 괜히 일렁거리는 불빛을 쿡쿡 찔러 보기도 하고, 촐을 살짝 들어 주어 불이 확 달아오르게 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따스하게 번져오는 온기도 좋았지만, 빨갛고 노랗게 꿈틀거리며 달아오르는 불빛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층층이 쌓이며 환하게 이글거리는 불빛은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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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상인의 기원

양정필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람들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사극이 방송된다. 인물 혹은 사건을 소재로 한 역사 영화도 계속 제작된다. 일상에서 쉽게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지식들도 조금은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 사람들은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일반인이 만날 수 있는 역사는 대개 정치적 인물 혹은 사건에 대한 것이다. 역사 속 경제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접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오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집단

생소할 수 있는 경제의 역사를 안내해 줄 사람은 개성상인이다. 개성상인은 중·고등학교 역사책에 나올 만큼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성상인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단 몇 줄에 불과하여서 개성상인의 존재는 알지만 그들의 장구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성상인은 오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큰 전쟁을 자주 겪은 우리 역사에서 수백 년 동안 존속한 존재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개성상인은 그 어렵다는 장기 존속은 물론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니,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개성상인 후손들이 경영하는 기업으로는 아모레퍼시픽, 녹십자, 신도리코, 한일시멘트, OCI,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개성상인이 세운 기업은 꽤 있다. 설립자는 모두 개성상인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2세들이 계승하여 경영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개성상인의 정체성을 지닌 기업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인도 있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

개성상인은 상인이므로 당연히 그들 활동의 중심은 상업이었다. 따라서 개성상인을 통해서 전근대 상업의 일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들은 돈 버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귀재였다. 개성상인 이야기를 통해 돈 버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개성상인을 이야기하려면 그들이 언제 어떻게 해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즉 개성상인의 기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기원을 잘 알면 그들의 성격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기원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이번 이야기는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한정될 것이다.

개성상인의 기원을 살펴보려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격변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려 말기는 정치 기강이 무너지고 경제는 양극화되어 소수의 권문세족과 사원이 경제력을 장악하고 다수의 백성은 비참하고 곤궁한 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사회 혼란은 미봉책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해결될 수 있는 단계였다. 이에 이성계와 정도전 그룹은 역성혁명을 통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여 사회 혼란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이 정도의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자. 역성혁명을 주도하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 그룹은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국가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이 그룹을 지지하고 그 노선을 추종하였다. 고려의 신하였던 이들 가운데서도 조선 건국을 지지하고 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길 때 따라간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고려 말기의 혼란을 고려 정부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역성혁명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진행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 중에는 역성혁명을 지지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지조나 절개와 관련된 문제인데,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유교적 가르침에 익숙한 사람들 중에는 차마 조선의 새 임금 이성계를 섬길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사람들은 대개 지식인, 관료 그룹이다. 일반 백성들도 새 국가 조선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을 텐데, 아쉽게도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전해 주는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당시 다수의 관료와 지식인은 개성에 거주하였다. 그들은 고려의 신하였기에, 지방관이 아니면 대개 개성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지식인들도 예비 관료로서 개성의 성균관 등에서 과거를 준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관료·지식인은 조선 건국을 둘러싸고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었다. 전자는 조선 정부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자 개성을 떠나 한양에 정착하였다. 반면 반대파의 경우는 그 운명이 크게 셋으로 갈렸다. 첫째는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 둘째는 낙향을 선택한 이들이 있었다. 마지막 셋째는 한양으로도, 고향으로도 가지 않고 개성에서 그대로 남아서 살아간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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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가격 케인스주의와 부동산 정책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지난 9월 13일 「주택시장안정대책」 발표 이후, 가팔랐던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둔화되고 있다. 하지만 9·13 대책의 투기 수요 차단 실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부동산 하락폭 둔화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보다는 올해 들어 세 차례나 있었던 미국의 금리 인상이 한국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미래 경제 예측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듯하다.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대책이 발표되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도 부동산시장 안정화 목적의 종합 대책이 벌써 여덟 번째다. 대책 발표 때마다 정부가 투기 수요를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함에도 대책의 실효성이 이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부동산 정책을 관통하는 모종의 정책 기조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산-가격 케인스주의Asset-Price Keynesianism”는 이 기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피케티 베타값과 아파트 가격

올해 들어 1월부터 7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4.37%로, 2017년 한 해 상승률 4.69%를 넘어섰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몇 주 만에 몇 천 만원은 기본이고, 몇 억원이 오른 곳도 있었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가격이 2018년 8월 기준으로 약 7억5,000만원이다. 2015년 12월에는 약 5억2,500만원이었다.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37.6%가 올랐다. 고용노동부가 8월말에 발표한 「2018년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6월 국내 상용직 1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 노동자 1인당 월평균임금 총액은 322만4000원이다. 노동자 평균임금으로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임금을 한푼도 안 쓰고 20년 가까이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노동자 전체 임금 총액 증가분과 전국 아파트 가격 총액의 증가분을 비교해 보는 것도 유용할 성 싶다. 2016년 노동소득분배율 56.25%,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의 2017년 명목임금 상승률 2.7%, 2016년 국내총생산GDP 1,637조원이라는 세 가지 수치를 가지고 산출한 2017년 노동자 전체 임금 총액의 증가액은 전년 대비 약 44조원이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의 가격 총액은 199조원 증가했다.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98조원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분이다. GDP 증가율과 전국 아파트 가격 총액 증가율도 조사해 봤다. 2017년 명목 GDP는 전년 대비 5.7% 성장했는데 전국 아파트 가격 총액은 7.7% 증가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베타ß값의 의미를 짚어 보는 것도 아파트 가격 폭등의 경제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베타값은 간단히 ‘자본/소득’으로 표시한다. 자본은 저량stock 변수로 특정 시점에 소유되는 부의 총액을 말하며, 소득은 유량flow 변수로 특정 기간(주로 1년) 중에 생산되고 분배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총액을 말한다. 피케티의 베타값은 두 가지 공식으로 산출될 수 있다. 하나는 ‘자본소득분배율(α)/자본수익률(r)’이고, 다른 하나는 ‘저축률(s)/성장률(g)’이다. 피케티의 전체 분석에서 베타값이 클수록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가져가는 몫이 줄고, 같은 의미로 자본이 가져가는 몫이 크기 때문에 결국 세습 자본주의로 나가게 된다.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의 가격은 베타값에서 대표적인 자본에 해당하고, 임금은 대표적인 소득에 해당한다.

피케티는 선진국에서 이 베타값이 일반적으로 5∼6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경제학자 정태인은 2014년에 한국의 베타값이 7.5에, 2018년에는 8.2에 이른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일정한 경제 발전 단계에 이른 국가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자산 불평등 연구로 유명한 김낙년 교수는 한국의 베타값이 유례없이 높은 중요한 이유로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 자산 가격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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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와 산부인과 의사들의 임신중절 거부 사태

임석영 가정의학과 전문의, ‘행동하는 의사회’ 전 대표

우리나라 낙태 현황 및 법률 현황

우리나라는 법률적으로 낙태를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형법」은 “낙태의 죄”를 별도의 장(제27장)으로 명시하여 제269조, 제270조에서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와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에서는 불가피한 다섯 가지 경우, 임신 24주일 이내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 외의 낙태는 현행 법률에 따르면 불법이다.

그렇다면 실제 임신중절 시술 현황은 어떠한가? 이에 대해 보건 당국은 현재까지 2005년과 2011년 단 두 차례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두 차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5년 가임기 여성 1,000명당 29.8로 추정되던 임신중절률은 2010년 15.8로 감소하였으며, 추정 건수도 2005년 342,433건에서 2011년 168,738건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과소응답 가능 가능성을 고려하면 대략 해마다 15만에서 20만 건의 임신중절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임신중절수술의 대부분은 현행 법률에서 허용하는 경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2011년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응답을 1순위에서 3순위까지 종합적으로 합하여 분석하면, 사회경제적 이유가 89.3%로 가장 많았고, 본인의 요청 87.6%, 태아 이상 또는 기형 64.4%, 모체의 신체적 건강 보호 21.3%, 모체의 생명 위협 18.4%, 모체의 정신적 건강 보호 10.3%, 강간 또는 근친상간 7.4% 순으로 조사되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90% 가량이 현행 법률의 허용 이유가 아닌 경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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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 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② 법 제14조제1항제1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한다.
③ 법 제14조제1항제2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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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위기의 경고음이 울리는 이유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최근 들어 또 한 차례 세계금융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올해 봄부터 아르헨티나, 터키 등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아르헨티나와 파키스탄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10월 초에는 국제통화기금까지 새로운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직접 경고했다. 더군다나 2018년이 지난번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1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금융위기 10년 주기설’까지 퍼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외 언론들은 금융위기 도래에 대한 각종 시나리오들을 내놓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금융위기란 무엇인지 설명하고, 그것이 발생하는 원인과 그것의 영향을 살펴본 후, 현 시점에서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와 발발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1) 금융위기의 정의

자본주의사회의 경제 위기는 일반적으로 ‘공황’ 혹은 ‘불황’으로 알려져 있다. 공황은 흔히 ‘풍요 속의 빈곤’으로 불리는데, 말하자면 상품을 많이 생산했지만 팔리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자급자족 사회가 아니라 상품 교환관계가 전면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생산을 결정하는 주체와 소비를 결정하는 주체는 분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품은 언제나 판매되지 않을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위험이 생산 과잉이나 소비 부족으로 전면화되어 너무 많은 상품이 팔리지 않는 상황을 공황이라고 한다. 불황은 공황보다 정도가 약간 덜한 경기 침체의 상황을 지칭한다. 그러면 금융위기는 공황, 불황으로 불리는 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고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어나는 경제 위기의 한 유형이며 공황이나 불황과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념적으로 구분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많은 용어나 개념이 그러하듯이 금융위기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널리 합의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위키피디아》 영어판에 따르면, “금융위기financial crisis”를 “금융자산이 갑자기 명목가치를 크게 잃어버리는 다양한 상황”으로 정의하고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Financial_crisis). 즉 주가 등이 갑자기 폭락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개 금융위기가 주가, 지가의 폭락을 계기로 발생하는 것을 염두에 둔 정의다. 그렇지만 이 정의는 단지 부분적인 현상만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주가와 지가가 떨어지면 왜 문제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남겨 두고 있다.

IMF에서 나온 한 보고서를 보면,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 금융위기 때 관찰되는 여러 현상을 명기해 놓고 있다. 금융위기 시에는 신용 규모가 갑자기 축소되고, 자산 가격이 대폭적으로 하락하며, 금융 중계와 외부 자금 조달이 갑자기 단절되며, 기업, 가계, 정부 등의 부채가 급증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만을 언급하고 있다(IMF Working Paper, Financial Crises, WP/13/28).

인터넷의 유명 법률 사전은 금융위기를 “화폐 공급이 화폐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으로 정의하고 있다(Law Dictionary, Financial crisis, https://thelawdictionary.org/financial-crisis). 이 정의도 금융위기 때에는 돈이 필요해도 제대로 빌릴 수 없다는 중요한 현상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다른 다양한 현상과의 연결 고리를 추론하기에는 너무 협소한 정의다.

이 글에서는 금융위기를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일이 집중적으로 발생하여 금융 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상황”으로 정의하고 이에 근거해서 설명할 것이다. 금융이란 기본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일이다. 그래서 금융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근원적인 문제는 “돈을 빌려간 측이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런 근본 문제가 집중적으로 일어나서 금융이 크게 위축되는 상황을 금융위기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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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악에 맞서는 정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보면서 악의 진화를 알아차리고 악의 평범성 혹은 평범한 악에 대해 논구했다. 평범한 악은 추악하거나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종교적 악과 달리 범속하고 일상적이다. 아렌트는 평범한 악에 맞서 개별적 감수성인 양심을 내세운다. 아렌트 이후 악의 평범성 혹은 평범한 악은 어느덧 상식이 되었다. 우리와 한참 떨어져 있는 거대한 악만큼이나 일상 속에 악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다.

이런 상식에 맞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철학자 김진영은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으로 악의 평범성을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악은 “선과 악의 경계를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거나 도덕적 양심을 외면하는 그런 의지적인 악이 아니다.” 오늘날 악은 “선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 양심 자체가 이익을 따라서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부드러운 악이다.”

김진영은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게 악의 평범성이 시효 만료되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을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가? 선과 악이라는 구도는 불가피하게 경계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결국 경계를 짓는 일이 필요한데, 부드러운 악이라면 그만큼 경계 짓기가 어렵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경계가 유동적일 가능성이 크다.

부드러운 악이라는 개념과 마주하면서 당장 세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권력의 절대적 부패 가능성이라는 고전적 테제가 첫 번째이고, 영구 혁명이라는 맑스주의적 테제가 두 번째이며, “단단한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라는 근대성 테제가 세 번째다. 물론 이 테제들은 조금씩 수정해야 한다. 권력은 좁은 의미의 정치권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 사이에서 작동하는 힘의 관계를 말한다. 맑스주의 전통 속에서의 영구 혁명은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공산주의사회를 종착점으로 한다.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인간관계로서의 사회는 불가능하며, 아무리 미끄러진다 하더라도 잠정적인 고정점이 필요하다.

다시 부드러운 악이라는 사태에 맞서기 위해 경계를 짓는 일로 돌아가면 지속적인 경계警戒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물론 경계는 고발을 수반한다. 마키아벨리는 갈등과 대립의 사사화私事化를 방지하기 위한 공적 질서의 확립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고발의 중요성을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대립과 갈등을 공개적인 공적 권위를 통해 해결할 수 없을 때 고발은 격심한 사회적 불안정의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공공성publicness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다. 공적인 것을 가리키는 라틴어 publicus는 ‘성숙한’이라는 뜻의 pubes의 영향을 받아 사람 혹은 인민을 가리키는 populus가 변해서 생긴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성은 인민의 성숙을 조건으로 하며 또 이를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인민의 성숙은 어디서 오며,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대한 근대적인 대답은 도야Bildung겠지만, 고대적인 대답은 정의의 실현일 것이다. 정의가 자리 잡을 때만 공적 권위가 유지될 것이고, 이럴 때에만 개인적인 도야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대적인 의미에서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각자가 자기 몫을 가지는 것이다. 이를 근대로 넘기면 소유와 분배의 문제가 될 것이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그리고 공유에 대한 접근권과 공유부에 대한 몫의 권리 등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산에 대한 공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는 부드러운 악에 맞서기 위한 기반일 뿐이다. 하지만 이 기반이 사람들에게 자율적 시간 혹은 주권적 시간을 부여한다면 부드러운 악에 맞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에 기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도덕적 감수성을 날카롭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12월호 통권64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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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가 아닌 권리로서의 기본소득, 어떻게 해야 시행 할 수 있을까?

김태호 발행인

기본소득. 일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
가이 스탠딩 지음, 안효상 옮김 | 2018년 7월 | 창비

1.

처음으로 번역된 가이 스탠딩의 글을 접한 한국 독자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사람은 그랬다. 「CIG, COAG, COG:논쟁에 대한 비평」(『분배의 재구성. 기본소득과 사회적 지분 급여』,나눔의 집, 2010년). 한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막 시작되던 시점에 그 글은 제목부터 너무 전문적이어서 쉽게 읽을 수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책은 2006년에 나온 “Redesigning Distribution. Basic Income and Stakeholder Grants as Cornerstones for an Egalitarian Capitalism”을 번역한 것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분배를 재구성할 방법으로 기본소득이 더 나은지 사회적 지분 급여가 더 나은지를 놓고 벌인 토론에서 발표된 글들을 모은 책이다.

가이 스탠딩 글 제목에 나오는 “CIG”란 Citizenship Income Grant, 즉 “시민소득급여”의 약자다. 기본소득이라 봐도 좋다. “COAG”란 Coming-of-Age-Grant(“미래 세대를 위한 수당”)의 약자이며, “사회적 지분 급여 혹은 자산급여 구상”을 말한다. 21세가 되는 국민에게 일정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해 삶을 준비할 수 있게 하자는 기획이다. 이 둘이 논쟁의 두 축이다. 여기에 더해 스탠딩이 주장하는 “COG”란 Community Capital Grant, 즉 “공동체 자산급여”를 말한다.

가이 스탠딩은 CIG와 COAG를 비교할 때는 CIG를 지지하지만, 더 나아가 COG, 즉 “공동체 자산급여”를 새로운 대안으로 주장한다. COG의 예로는 초기의 스웨덴 임금노동자 기금이 있고, 이제 『시대』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알래스카영구기금이 있다. “COG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장, 즉 경제적 민주주의의 확장이며 실질적인 자산 분배일것이다.”(276쪽)

2.

가이 스탠딩은 1948년 영국에서 태어나 1977년에 캠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06년까지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활동했고, 특히 후기에는 사회경제보장프로그램Socio-Economic Security Programme을 마련하는 작업의 책임자였다. 그의 글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나쉬대학Monash University에서 노동경제학 교수 지위도 얻었지만, 2006년부터는 영국의 배스대학University of Bath에서 강의를 했고, 2013년에 런던대학University of London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인도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 실험에 관여해 많은 연구 성과를 냈다. 2015년 영국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 당선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약력은 BIEN과 관련된 것이다.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asic Income European Network 창립에 참여했고 공동의장이 되었다. ‘좋다’는 뜻의 프랑스어 ‘bien’을 단체 이름의 약자로 하자고 한 사람이라고 한다(최광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2011년, 박종철출판사, 190쪽).

그런 가이 스탠딩이 기본소득과 관련된 논의를 정리한 책을 냈고, 그 책이 얼마 전 한국에서 번역됐다. 한국어판 뒤표지에 적혀 있는 “가이 스탠딩이 말하는 기본소득의 모든 것”이라는 문구가 과장이 아니라 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그의 다른 책을 먼저 다루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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