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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론과 디지털 전환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1. 문제의 제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계기는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상을 이 용어로 기술하면서부터다. 이 용어는 그 이후 정부, 기업, 학계, 언론 등이 널리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2016년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과 대결해 승리하는 사건이 이 용어를 받아들이는 큰 계기가 됐다. 2017년 9월에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했다.

반면, 이 용어가 현재와 임박한 미래의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특별히 생산성 지표에서 ‘산업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진행 중이거나 임박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반론도 끊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반론은 주류 경제학계 내부에서 터져 나왔지만, 기왕의 수많은 정보화 담론이 지닌 친자본 반노동의 정치적 효과를 비판해 왔던 좌파 세력도 4차 산업혁명론에 대한 냉소적 기류에 일조해 왔다.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 유연화, 산업 구조조정 등 노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기술 변화의 불가피성으로 설명하며 이에 대한 적응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서사로 그동안 정보화 담론이 기능해 온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편, 기본소득운동 진영은 정보통신기술 발전이 신자유주의 불안정노동체제를 심화시키는 측면에 주목하면서 이를 과거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근거의 하나로 강조하고자 했는데, 이들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별다른 비판적 검토없이 수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4차 산업혁명론이 제기된 과정과 그에 대한 찬반 입장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정리해 보았다. 사회과학적 개념으로는 ‘4차 산업혁명’보다는 ‘디지털 전환’이 더 적합한 용어다. 그러나 용어와 개념에 집착하다 디지털 전환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분석, 새로운 좌파 대응 전략을 방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디지털 전환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 4차 산업혁명론의 전개

1) 세계경제포럼의 4차 산업혁명론

슈밥의 4차 산업혁명론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16년 다보스포럼의 연설이었다. 슈밥의 4차 산업혁명론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현재의 “전환이 3차 산업혁명의 연장이 아니라 그것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4차 혁명의 도래를 대표하는 세 가지 이유”는 전환의 속도, 규모, 시스템 충격이다. 변화는 전례 없이 “기하급수적”이며(속도), 그 파괴적 영향은 “모든” 산업에 걸쳐 있고(규모), 이 변화의 폭과 깊이가 생산, 관리, 거버넌스 시스템의 “완전한” 전환을 알린다는 것(시스템 충격)이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은 “물리적, 디지털적, 생물학적 경계를 흐리는 융합”에 의해 촉진된다.

슈밥 역시 역대 산업혁명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분류하고, 4차 산업혁명이 “3차 산업혁명의 기반 위에서” 구축된다고 본다. 따라서 그에게 “융합”은 4차를 3차와 구별 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리고 그 역시 역대 산업혁명의 핵심인 “생산성 혁신”을 거론한다. 교통과 통신비가 떨어지고 물류와 글로벌 공급 체인은 더 효율적이 되어 교역 비용이 감소하여 이것이 새로운 시장을 열고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이 생산성 혁신은 “미래로in the future” 유보되어 있고, 이 미래의 시간적 원근은 제시되지 않으며 그저 이미 진행 중이거나 임박한 것으로 전제된다.(Klaus Schwab, 2016. 1. 14.)

슈밥의 다보스포럼 연설로부터 며칠 뒤 세계경제포럼 집행위원회위원이자 사회혁신팀장인 니콜라스 다비스는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Nicholas Davis, 2016. 1. 19)라는 글을 게재한다. 그러나 제목에서 기대하는 것과 달리 그의 4차 산업혁명 개념 정의는 슈밥 회장의 그것보다 더 빈약하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가상-현실 시스템cyberphysical systems(CPS)의 출현”으로 묘사한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이 사회에, 심지어 인간의 몸에 내장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대표하는데, 게놈 편집, 새로운 형태의 기계 지능, 혁명적 소재, 블록체인과 같은 암호화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신기술들이다. 이것이 개념 정의의 전부이고, 나머지 논의들은 4차 산업혁명이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들로 채워져 있다.

CPS는 원료, 생산, 물류, 서비스, 제품 등 상품 생산 전체 과정을 내장형 시스템embedded system을 통해 네트워크화한 생산 시스템을 말한다. CPS는 2007년 8월 미국에서 대통령과학정책자문위원회 권고에 따라 주요 연구 분야로 지정됐고, 제조업 기술혁신 전략인 독일의 산업 4.0 전략에서는 스마트 공장 체계의 핵심적인 기술 동인이다(현대경제연구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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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주노동자의 죽음

고영란

위험한 일에 내몰리는 현실

지난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컨베이어 벨트 사고로 인한 스물네 살 김용균 씨의 죽음은 원청과 하청, 간접고용 등으로 최소한의 인원만 일터에 투입하는 용역 회사 노동자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반지가 갖고 싶었던 김용균 씨에게 택배가 도착했지만, 반지의 주인공은 세상을 떠나고 그의 꿈과 낭만은 유품으로 남았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전국의 또 다른 ‘김용균’들이 컵라면과 팻말을 들고 연말에 추모 행사와 촛불행진을 하게 된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에 대한 증언도 계속되면서, 전봇대나 옥상, 난간 등에서 혼자 일하는 인터넷 설치 기사, 여름철에 실내 온도 40도가 넘는 조리실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은 ‘다치거나 아프면 대부분 자기 부담으로 치료해야 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하지 않으려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 분야 등에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에 처음 온 이주노동자들은 우선 한국어로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 가장 답답하고 힘들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려면 한국어 능력 시험을 치르고 합격해야 하지만, 실제로 타국에 와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몸이 아프거나 사고로 다쳤을 때 충분히 의사소통이 되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에 온 지 6개월 미만인 이주노동자들에게 특히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데,‘ 언어’와‘ 일의 숙련도’ 부분에서 미숙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세한 제조업체의 경우, 안전 교육이 체계화되어 있지도 않고, 낡은 기계와 장비를 교체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공장 가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재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사업주 쪽에서 위험에 대한 주의를 충분히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사고가 나기도 한다.

2017년 5월 경북 군위 등에서 축사 정화조를 청소하던 중국, 네팔, 태국 출신 노동자 네 명이 사망한 사건은 이런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사업주들은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분뇨 유해 가스 농도를 측정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피해 상황을 조사한 한 자료(『2017 경기도 외국인 산업재해자 실태 조사』,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 의하면,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들 중 산재보험에 따른 보상을 신청한 경우는 10%에 불과했다.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가 52.9%에 해당하고,  이들 중에 산재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한 경우는 36.4%에 해당했다. 산재를 당했음에도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신청할 수 있는지 몰라서”(36.1%), “불법체류·불법고용이 드러날까 봐”(12.5%), “신청하지 않겠다고 사업주와 약속해서”(5.6%) 등으로 나타났다. 산재 피해 이주노동자들은 치료나 요양이 끝난 뒤에 계속 일하는 경우가 64.4%였고, 그중에서 70.9%는 사고가 났던 사업장으로 복귀했다. 산재 치료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나 요양이 종결되고(45.7%), 사업장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본래 일하던 사업장으로 돌아가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

한편, 고용노동부에서 집계한 『2012~2017년 이주노동자 재해 현황』을 보면, 5년 동안 산재로 이주노동자 511명이 사망했다. 숫자상으로만 파악되는 이들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통계에 나오지 않은 인원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고영란
르포 작가, 프리랜서 편집자,『우린 잘 있어요, 마석』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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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정책의 파산에 대한 고찰

– 진보적 신자유주의란 가능한가?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들어가며

프랑스에서 지난해 11월 17일부터 ‘노란 조끼 시위 le Mouvement des Gilets Jaunes’가 일어난 직접적인 계기는 마크롱 정부가 단행한 유류세 인상이다. 유류세 인상은 단순히 세수를 올리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친환경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2016년에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가입국으로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래서 마크롱 정부는 유류세 인상을 통해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한편 그 재원을 전기차 보조금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 사안만을 놓고 보면, 프랑스 서민들의 거센 저항을 납득하기 어렵다.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것은 전 세계 환경 단체의 요구이자 대부분의 국가가 합의하고 있는 사안이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5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포퓰리즘의 도전으로부터 자유주의를 구원할 지도자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당선되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여 포퓰리스트로 지목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마크롱은 결국 시위대에게 항복했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 12월 초 문제가 된 유류세 인상을 철회했을 뿐만 아니라 2019년부터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 인상하는 등 시위대의 요구 대부분을 수용했다. 이러한 사실은 노란 조끼 시위가 마크롱이 추진하고 있던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였음을 보여 준다.

이 글은 마크롱이 집권한 후 1년 반 동안 어떠한 구도에 따라 정책을 추진했는지를 검토해 봄으로써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의 의미와 파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지향

마크롱의 정책 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정치체제에는 수많은 흐름이 존재하지만, 1958년부터 최근까지는 대체로 두 개의 정치 동맹이 각각 하나의 지배적인 정당으로 결집해 있었다. 프랑스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 교수인 필리프 아스크나지에 따르면, 자유주의자와 좌파는 사회당으로 결집해 있었고, 보수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했다(Philippe Askenazy, The Contradictions of Macronism, Dissent, Winter 2018).

전통적인 두 정당은 세부적인 정책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유럽 통합에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와서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국수주의적인 극우 국민전선Front National이 급부상하여 기존의 정치 구도를 위협하고 있으며, 좌파측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흐름이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했다. 필리프 아스크나지 교수는 마크롱이 지배적인 두 동맹 체제를 해체시키고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들을 한데 묶어 새로운 정치 동맹을 구축했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어떤 개념으로 사용되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정의와 구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유주의는 대체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적 혹은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에서 벗어나 자유의 신장에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자유주의의 내용 변화는 복지국가의 등장과 맥락을 같이하는데, 복지국가와 병존하는 자유주의는 미국에서는 근대적 자유주의Modern Liberalism로 불리기도 하며. 유럽적 맥락에서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포괄한다. 이에 반해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적인 고전적 자유주의로의 복귀를 주창하면서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시장 자유주의 혹은 자유 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서는 ‘개혁하자’라는 뜻으로 “근대화하자moderniser”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마크롱으로 결집한 정치세력들은 근대성에 대한 비전은 상이하지만 모두 프랑스를 근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근대성이란 대체로 소수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근대성을 프랑스를 디지털 혁명의 창업 국가로 만드는 것에서 찾는다.

마크롱은 이 두 흐름에 포함되는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예를 들어 성소수자 조직에서부터 첨단 산업의 기업가에 이르는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서 집권에 성공했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여성의 권리를 보호할 것이며 성평등 혐오주의자와 싸워 소수자의 권리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지식인과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전직 투자은행가로서의 경력을 살려 일관되게 친기업적 강령을 내세움으로써 신자유주의자의 지지를 받았다. 마크롱으로 결집된 정치세력들의 공통점이라면 소수자까지 포함하여 동등한 권리를 옹호하는 한편 개방적이고 다문화적인 프랑스를 지지하면서 유럽 통합에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정치적 동맹에 힘입어, 마크롱은 유럽 통합과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 민족주의자인 르 펜과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보수 가톨릭 신자인 공화당의 프랑수와 피용를 패퇴시킬 수 있었고, 디지털 혁명에 부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을 내세워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전통적인 좌파 후보인 장뤼크 멜랑숑을 따돌렸다. 물론 그의 승리는 놀라운 것이었지만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마크롱은 1차 선거에서 24%의 지지를 받았지만, 르 펜과 피용도 각각 21.4%와 20%의 지지를 받았다. 만약 중도파인 프랑수아 바이루가 마크롱을 지지하면서 사퇴하지 않았다면 마크롱은 대통령 결선투표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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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저 아랫동네 누구네 집에서 상량식이 열린다고 했다. 초가집이 하나둘씩 신식 집으로 바뀌던 70년대 초의 일이다. 어린 나이에 상량식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말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새집이 번듯하게 세워진 것을 축하하며 잔치를 벌이는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튼 상량식이 뭔지는 몰라도 떡과 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상량식이 열리는 곳으로 몰려갔다.

벌써 집 마당에는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번듯한 집은 보이지 않고 기둥 뼈대만 서 있었다. 수수깡으로 만든 집처럼 벽도 문도 없이 얼개뿐이었다. 집을 이제 막 짓기 시작한 것 같은데 중요한 행사로 여겨지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잔치 음식이 많이 나올 것 같지 않는 작은 불안감도 한편에 있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어떤 아저씨가 높은 보 위에 앉아 있었다. 차림새로 보아 집 짓는 목수처럼 보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하얀 광목천을 몸에 휘감고 있었다. 두 다리를 벌리고 보 위에 앉아 있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운데 쪽으로 오려는 것 같았다. 높이가 2미터를 넘는 곳이라 앉아 있기만 해도 아찔할 텐데 양손을 앞으로 짚으며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높은 보 위에서 움직이는 목수를 향해, 잘 버틴다, 무서워 떠는 거 아니냐, 하는 농담을 던지는 아저씨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농담에도 그저 가볍게 웃어넘기며 목수는 침착하게 움직여 얼추 가운데에 이르렀다. 몸에 두른 광목을 풀어 보를 몇 번 휘감은 뒤 양 옆으로 늘어뜨렸다. 아래 있던 아저씨가 광목 끝을 잡아 양쪽에서 넓게 펼쳤다. 그런데 그때 보 위에 있는 목수는 큰 닭 한 마리를 잡고 있었다. 몸에 두른 광목 안에 닭을 넣고 왔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건네준 것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높은 곳에 있는 목수에게 닭을 건네주려면 또 한 사람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테니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내 기억에는 조금씩 움직이던 목수가 어느 순간 닭 한 마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 칼을 든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마 그 다음에 무슨 제문 같은 것을 읽는 그런 순서가 진행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날 상량식의 하이라이트는 희생 제의를 치르는 것으로 끝났다. 목수 혼자서 닭 모가지를 댕강 자르고, 붉은 피가 하얀 광목에 뿌려지고, 머리 잃은 닭이 피를 흩뿌리며 하얀 광목으로 날아가고.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엘리아데의 『성과 속』을 읽으며 떠오른 기억이다.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1907~1986)는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신화학자인데 20세기 사상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엘리아데가 보기에 인간은 태생적으로 종교적 인간이다. 그런 “종교적 인간에게 공간은 균질하지 않다.” 어떤 공간이든 성스러운 공간과 속된 공간으로 구별하여 인식하게 된다. “공간 내부의 단절과 균열을” 몸으로 느끼며 사는 존재가 종교적 인간인 것이다. 성스러운 공간은 “힘이 있고 의미가 깊은 공간”이고, 성스럽지 않은 공간, 즉 속된 공간은 “일정한 구조와 일관성이 없는 무형태의” 공간이다.

이런 공간의 구분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문지방이다. 어렸을 때 문지방에 올라서거나 걸터앉을 때는 물론이고 그저 문지방을 밟고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에게 호되게 혼이 난 경험이 있다. 왜 이처럼 문지방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엘리아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집의 문지방을 넘어갈 때에 행하는 의례는 많다. 문지방을 향하여 절을 하거나 몸을 엎드리거나 경건하게 손을 대는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문지방에는 외적의 침입뿐 아니라 악마나 페스트와 같은 질병을 가져오는 힘의 침입을 방지하는 수호신 혹은 수호령이 거주하고 있다. 문지방 위에서 수호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고대 동양 문명(바빌로니아, 이집트, 이스라엘)에서는 판결의 장소를 문지방 위에 두기도 하였다. 문지방과 문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공간 연속성의 단절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점에서 중대한 종교적 의미를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문지방과 문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의 이행의 상징이자 매개자이기 때문이다.
(엘리아데, 『성과 속』, 58쪽. 강조는 원문)

성과 속을 가르는 문지방의 의미는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흔히 교회는 성역聖域으로 여겨지는데 교회의 문지방을 통해 공간의 연속성이 단절된다. 이런 교회의 문지방을 엘리아데는 “두 세계를 구분하고 분리하는 한계이자 경계선이고 국경인 동시에 그러한 세계들이 서로 만나고 속된 세계에서 성스러운 세계로 이행할 수 있는 역설적인 장소”라고 말한다. 성역은 신들이 지상으로 강림하는 곳이기도 하고 “인간이 상징적으로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천상계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이 있어야 한다.

엘리아데가 보기에 “종교적 인간”은 이런 성스러운 공간에 살고자 하는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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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으로 돌아가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원직 복직 합의

임성용

서른 번째 죽음을 안고

지난 9월까지만 해도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가 있었다.

서울 시청역 2번출구, 지하철에서 나와 대한문 쪽으로 걸어가면 덕수궁 돌담 곳곳에 여러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고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서른 번째 죽음을 추모하며”라는 글귀였다.

“여기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죽음을 맞는 또 하나의 죽음, 또 한 사람 위에 쌓인 또 한 사람의 죽음들이었다. 무려 서른 명의 목숨이 잿빛으로 사라지는 동안, 국가와 사회는 어떤 짓을 저질렀던가?

국가는 노동자의 삶을 처절하게 짓밟았고 사회는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마저 외면했다. 그 쓰라리고 참담한 세월은 정리해고, 국가 폭력, 사법 살인으로 이어진 잔인한 시간이었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에 9년이라는 길고 긴 죽음의 터널 속에서, 순박하게 살아온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죽어 갔다. ‘쌍용자동차 희생자 시민분향소’에는 영정으로 남은 희생자들이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까지 늘어났다. 분향소는 22번째 희생자가 생기면서 대한문 앞에 설치되었고 1년 7개월 동안 농성을 벌였다.

2013년에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가장 먼저 쌍용차 분향소부터 강제 철거하면서 노동자 탄압을 시작했다. 당시 세 명의 노동자가 지키고 있던 분향소에 경찰 병력 280명과 중구청 직원 50여 명이 들이닥쳐 기습 철거를 감행했다. 분향소에는 화단을 만들었다. 그 후, 여덟 명이 더 목숨을 끊었다.

2018년 7월 3일. 쌍용차 노동조합은 김주중 조합원이 자살하며 희생자가 서른 명에 이르자 대한문에 다시 분향소를 차렸다. 보수 단체의 방해와 충돌 속에서 5년 만에 두 번째로 설치된 분향소였다. 쌍용차 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촉구했다.

“정부는 쌍용차 희생자와 가족 앞에 사과하고 국가폭력 사법 농단 책임자를 처벌하라!”

회사 측에는 해고자 전원 복직 합의를, 정부에는 해고자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금 가압류 조치와 손해배상 소송의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해고자로 남은 노동자들 전원이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체투지로 몸을 길바닥에 뉘였다. 청와대까지 행진을 하고, 범국민대회를 열고, 지부장은 단식을 했다. 분향소에서는 종교, 문화, 노동, 사회 단체가 참여하는 문화제가 이어졌다. 시민들의 관심과 발길도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분향소가 설치된 지 3개월이 지난 9월 중순, 마침내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9월 14일, 2009년 투쟁 당시의 노조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2009년 투쟁 이후 금속노조를 탈퇴한 쌍용자동차 노조, 그리고 쌍용자동차 회사 측이 해고자 복직을 합의한 것이다.

이에 쌍용차 지부는 대한문 분향소를 해체하기로 했다. 강제 철거가 아닌 자진 철거였다. 분향소를 설치한 지 73일 만이었다. 쌍용차 지부는 밝혔다.

“정부의 사과와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등 우리의 요구 사항에 대해 정부가 성의 있게 나선 것에 대해 존중하는 뜻에서 분향소를 정리하기로 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분향소를 방문하여 정부의 공식 사과와 퇴직금 가압류·손해배상 취하 절차를 밟겠다는 뜻도 전했다. 2019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에 대한 복직, 해고자 119명 가운데 60%를 2018년 연말까지 우선 채용, 나머지는 2019년 상반기까지 단계적 채용 등이 합의 내용이었다. 2019년 상반기 복직 대상자 중에서 부서 배치를 받지 못한 인원에 대해서는 6개월간 무급휴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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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에서 마주한 국가의 민낯과 정부의 대체복무제 계획

오경택 병역거부자,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반전평화모임 공동대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주민들을 내쫓기 위해 아침부터 찾아온 강남구청 공무원을. 그 뒤를 따라 먹구름처럼 몰려온 용역 깡패를. 그들이 건너온 양재천 다리와 개천 건너 보이던 반짝이는 타워팰리스를.

지금은 그 명성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타워팰리스가 ‘가장 비싸고 좋은 집’의 대명사였다. 바로 그 부자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포이동 재건 마을’이 있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로25길 32(옛 주소로는 포이동 266번지)에 위치한 이 마을은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넝마주이’와 ‘부랑인’ 등을 자활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수용하면서 만들어졌고, 1990년대 말까지도 재개발로 밀려난 철거민, 가난한 상이용사 가정 등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강제로 이주한 곳이다.

2011년 6월 12일, 작은 불씨로 시작된 화재가 초동 진화 실패로 마을 96가구 중 75가구를 전소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강남구청과 서울시는 마을 주민들을 어떻게든 쫓아내려 했는데, 허허벌판에서 금싸라기 땅으로 변신한 마을 부지 때문이었다. 사람이 살던 집들이 불타 없어지고 폐허만 남자, 구청은 주민들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계고장이 나붙고 공무원들은 용역 깡패와 함께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주민들을 회유하고 협박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마을에 머문 시간도 짧았고 성실하게 일하지도 않았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국가’를 대신한 공무원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그들이 데려온 깡패에게 패대기쳐지는 주민들을 보고서 생각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최소한 ‘양재천 건너’에 서 있어선 안 되겠다고. 이후 주변의 동료들을 따라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끊임없이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찾고자 했다.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세월호와 같은 투쟁에 연대했고 제주 4·3, 광주민중항쟁, 베트남과 이라크 파병의 역사를 학습했다. 근래에는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여 처벌하고 여군에 대한 성폭력을 은폐하는 데 급급한 모습까지 보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나라의 군대는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육지, 요동치는 배 위에서

대학을 졸업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영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미루고 미루던 입영 거부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사법 절차를 설명하자면, 입영 날짜를 어겨도 3일 이내에 훈련소로 찾아가면 ‘지연 입대’ 처리를 받을 수 있다. 그 기한마저 넘기면 병무청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다. 경찰 조사, 검찰 조사를 거쳐 재판을 받으면 「병역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이전의 병역거부자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나 또한 그와 같을 줄 알았다. 올해 5월에 시작된 재판이 6월 변론 종결을 거쳐 7월 17일 제헌절에 선고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재판을 받던 중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 사건을 전원 합의체에 회부하고 8월 30일에는 공개 변론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뒤 6월 28일에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일방적 처벌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다. 바깥세상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정리하던 나로서는 마냥 기쁘진 않았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돼 버려 걱정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감옥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병역거부운동에 이전과는 다른 국면이 열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선고 날이 다가왔고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저 멀리 대체복무제라는 육지가 보이는데 타고 있는 배는 침몰할 듯 요동치는 처지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란스러울지언정 무력하지는 않았다 점이다. 사법부에서 넘어온 변화의 단초가 ‘병역’라는 단단한 벽에 조그마한 균열을 냈으니, 법정투쟁을 열심히 하면 정과 망치가 되어 유의미한 싸움이 될 것도 같았다. 곧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장을 제출했으나 항소심은 곧장 잡히지 않았다. 반면, ‘대체복무’에 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국방부, 법무부, 병무청이 공동으로 실무추진단을 꾸리고 국가인권위, 로스쿨 교수, 참여연대, 군인권센터 등 학계와 시민사회 진영을 아우르는 자문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두 기구가 중심이 되어 대체복무제 도입을 활발히 논의했으나 결과물은 썩 훌륭하지 못하다. 11월 중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대체복무제 정부 안’의 내용이 “교정 시설 36개월 합숙 근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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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그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지난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미국에서 중간선거는 하원, 상원, 주지사 등을 뽑지만, 대통령 임기 중간에 실시되어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중간 평가의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중간선거의 결과에 따라 미국 대내외 정책이 방향을 크게 전환한 사례는 많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많은 반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이번 중간선거는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중간선거가 끝난 후 미국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들은 대부분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을 되찾았고 주지사 선거에서 선전했기 때문에 트럼프와 공화당이 패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기성 언론들이 트럼프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온 편향된 해석이다.

이 글에서는 2018년 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그 결과가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사안인 북미 협상과 중미 무역 전쟁에 미칠 영향을 진단해 본다.

1. 미국의 의회 및 선거 제도

미국 중간선거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의회 및 선거 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의회가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상원과 하원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하원은 435명으로 구성된다. 각 주는 인구 비례에 따라 의석을 배분 받는다. 인구가 3천5백만 명인 캘리포니아는 하원 의원이 53명이지만, 인구가 73만 명에 불과한 알래스카는 1명이다. 인구가 적은 노스다코타, 버몬트, 와이오밍도 하원 의원은 1명에 불과하다. 하원의원의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2년마다 한 번씩 하원선거가 치러지는데, 한번은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지고, 또 한 번은 이번과 같이 중간선거 때 치러진다

이에 반해 상원은 주마다 2명이 선출된다. 그래서 미국 전체로 상원의원은 100명이다. 임기는 6년이고, 2년마다 1/3씩 새로 선출된다. 주마다 모두 2명의 상원의원을 선발하는 것은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이 현재와 같은 연방국가를 구성한 것은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를 통해서인데, 연방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각 주에 대등성을 부여하면서도 각 주의 인구 차이를 고려하여 양원제를 채택했다.

원리적으로는 하원은 국민을 직접 대표하며 상원은 주를 대표한다. 그래서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은 좀 더 국민의 입장을 적기에 대변하라는 의미에서 임기가 2년이며, 상원은 보다 장기적이고 좀 더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하라는 의미에서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원리에 의해서 구성되었기 때문에 하원은 세금과 경제에 관련된 권한을 주로 갖는다. 대표적으로 하원은 예산심의권을 가지며, 세금 관련 법안은 하원에서만 발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상원은 연방의 정책과 운영과 관련된 역할을 맡는다. 군대의 파병, 대법관 및 연방 관료 임명, 국제협약 승인 등의 권한을 갖는다. 이 같은 역할 분담이 있지만, 모든 법안은 양원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중간선거에서는 주지사 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주지사 선거는 연방과는 관계가 없고 각 주의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임기는 4년이고 일부 주가 2년이다. 선거 시기도 주마다 다르다. 50개 주 중에서 34개 주는 4로 나눠지지 않는 짝수 년에 뽑는데, 2018년이 그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34개 주에서 주지사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중 9개 주는 4로 나눠지는 짝수 년에 뽑는다. 홀수 년에 뽑는 주도 있다.

2. 2018 미국 중간선거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첫 2년간은 공화당이 상하 양원에서 모두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하원 435석과 상원 총 100석 중의 35석(33개 + 2개는 임기 4년 남은 보궐선거 2곳)에 대한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34개 주의 주지사 선거가 함께 치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에서 38석을 늘려 233석을 차지해 절반 의석(218석) 이상을 확보했다.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기존 의석에 2석을 늘려 과반인 52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선전해서 기존보다 7개 주를 더 얻었고 공화당은 6개 주를 잃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은 여전히 총 27개 주를 장악했고, 민주당은 이번 승리에도 불구하고 23개 주를 장악하는 데 그쳤다.

이 통계만을 두고 보면 양당 중 어느 한 당이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하기가 힘들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차지하다가 하원을 민주당에게 빼앗겼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패했다고 할 수 있지만, 공화당은 상원에서 의석이 늘었다.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선전했지만 공화당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렇다 보니, 미국 언론들의 평가도 조금 모호하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미국 언론들은 민주당의 ‘판정승’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뉴욕 타임스』는 “민주당 바람이 어느 정도 불긴 불었는데 태풍은 아니었다”라고 결론 내렸지만, 2016년 대선과 비교해 하원 선거구 317곳에서 민주당 지지가 늘었고, 전체적으론 평균 10%포인트 민주당 지지가 늘었다는 점을 들어 민주당의 손을 들었다. 한편 CNN은 민주당이 2016년 대선에서 잃어버렸던 ‘블루 월blue wall’(민주당의 아성 지역) 중 일부 지역(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에서 상원 의석과 주지사직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 승리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미국의 주요 언론, 특히 자유주의 성향의 언론들이 트럼프 개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선거 결과의 평가에도 그런 선호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선호를 감안하여 냉정하게 분석하면 이번 선거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선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트럼프의 지지층이 꽤 견고하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중간선거는 집권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첫 임기에 치러졌던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 6석, 하원 63석, 주지사 6곳을 공화당에 내줬고, 두 번째 임기 중간선거(2014년)에서는 상원 8석, 하원 13석을 잃어 공화당에 상원과 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내줬고, 주지사 3곳을 잃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하원은 뺏겼지만 상원에서는 오히려 의석을 늘렸기 때문에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한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5년 동안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속한 당이 상원 선거에서 의석수를 오히려 늘린 것은 딱 다섯 번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가장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대통령이다.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한다. 이번 중간선거는 그의 반대파만큼이나 트럼프의 지지층이 견고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줬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다니엘 매카시도 비슷한 분석을 했다. 트럼프는 “널리 증오 받는 우려의 대상이지만 또한 그는 자신의 지지층들에게 깊이 사랑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또한 중간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를 통해서 대선의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화당이 대선의 승부를 좌우하는 플로리다, 인디애나, 오하이오 등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지역(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차지하는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트럼프가 재선 가도에 중요한 고비 하나를 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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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인식과 새로운 문제

 

토머스 페인은 『상식』 머리말에서 “시간은 이성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만들어 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에게 시간보다 더 강한 원군은 없는 것 같다. 비록 유토피아가 저 멀리 지평선에 아스라이 보일지라도 꾸준히 가다 보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 강한 동력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5·18 망언’과 이를 부추기고 있는 인식, 의도, 발언 등을 보면 페인의 말이 꼭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진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커진다.

사실 5·18이 북한군이 개입해서 만든 폭동이라는 망언의 의도와 인식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반공을 기초해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분단의 초기 단계를 넘어서려는 폭력적인 시도였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유아기를 보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를 주도한 냉전-반공 세력이 이른바 개발독재 체제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해 갔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정통성의 문제이건 이념의 문제이건 아니면 일상생활의 문제이건, 체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그에 대한 저항도 커졌던 것이 한국 현대사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5·18은 사실 하나의 비가역적인 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이 몸으로 저항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따라서 아무리 군대의 힘으로 이를 억압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최후의 수단을 장기적으로 막을 다른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전히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면, 그 진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1980년대 초반, 시절이 아무리 암울하다고 느꼈다 할지라도 커다란 충돌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고, 이는 1987년에 사실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이른바 ‘87년 체제’에 살게 되었다.

87년 체제에서 냉전반공주의는 여전히 살아남았지만 최소한 폭압적인 군부독재는 정당성을 상실했고, 냉전-반공 세력은 새롭게 보수라는 이름을 걸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보수주의가 그 적절한 내용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보수는 ‘친자본’이라는 지향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없는 벌거벗은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신자유주의 하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된 것이 그들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라는 인물은 자기 역사에서 보수의 기반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미에서 보수주의를 나름대로 재건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당한 자기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그 보수주의는 침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촛불혁명과 탄핵이라는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5·18 망언은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갈등의 축을 옮김으로써 자기 정당성과 자기 활동성을 확보하려는 냉전반공주의의 끔찍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는 자유한국당에게 이는 강렬한 유혹일 텐데, 결국 ‘독이 든 사과’로 판명 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 내용이 가짜라서만이 아니라 반공주의를 가능케 한 냉전이라는 지형이 세계사적으로는 철지난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조차 서서히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냉전의 원인은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이념적이었다. 1989∼91년에 냉전이 끝나고 자유주의 이외에 다른 이념은 없다는 이념이 잠시 지배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트럼프주의의 발흥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간 일이 되었다. 아마 국제 질서는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지정학의 부활’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의 부활의 국내적 효과는 갈등의 축을 외부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 내부의 갈등의 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사회 양극화와 여기에 수반되는 사회적 지위의 변동 등은 해당 사회의 제도적, 문화적 배치 속에서 다양한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태극기 부대가 그저 냉전반공주의에 사로잡혀 거리로 나온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기존에 누리던 상상적, 실제적 지위가 무너지는 경험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며, 이는 어찌되었든 배출구를 필요로 한다. 태극기 부대와 5·18 망언은 이런 배출구가 퇴행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드는 완충제와 그 사회변동의 긍정적인 방향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공론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5·18 망언은 낡은 것이지만, 이러한 사태가 제기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3월호 통권6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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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을 위하여

해가 바뀌는 것이 자연적인 변화와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위적인 구분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덕분에 우리는 기억과 망각, 성찰과 구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시대』 독자들에게 기억과 망각, 성찰과 구상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기억할 만한 것은 기본소득이 한 번 솟구쳐 올랐다 사라진 의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정책적 차원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경기도에 기본소득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내년에는 청년배당이 실시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망국적인 부동산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국토보유세와 연동한 기본소득 제도가 분명한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농촌과 농업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목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농촌/농업 기본소득’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에서 실시하겠다는 ‘청년 기본소득’과 같은 것도 그 내용과 상관없이 언급할 필요는 있겠다.

망각해야 할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망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건 기본소득 의제를 담아내고 실천할 적절한 정치적 틀과 통로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아니 더 진솔하게 말하면, 조직적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조직 자체를 망가뜨리고 또 추스르느라 다른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망각하고 싶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기본소득 의제 자체가 목표로 삼고 있는 ‘자율적인 인간들’의 결사체로서의 정치 조직을 형성하지 못하고, 심하게 말하면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의제와 충돌하는 낡은 관계들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여러 번 여러 사람이 반복했기에 이제는 진부한 격언처럼 들리는 말이 떠오른다.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과 망각을 넘어 성찰로 넘어가야 한다. 잠시 숨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이것이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면 말이다. 인간에게 성찰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성찰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점의 이동이 필요한 데, 성찰과 함께 탄생한 근대의 진리의 의지가 시점의 이동을 가로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찰은 진리의 의지가 좌절된 곳에서, 평범한 말로 하자면 소수파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수파의 좌절된 진리의 의지는 맹목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의지의 결사체가 낡은 유대로 전락하고 전략이 음모로 강등되는 상황은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성공한 혁명은 대중과 분리된 전위의 변증법적 결합을 통해서건, 함께 굶주리고 아파하고 싸우는 것을 통해서건, 융합의 파괴력을 통해서 가능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융합의 양식과 윤리가 바뀌었고, 이는 계속 바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로 말하려는 것, 완전고용, 노동조합, 복지국가 등이 시대의 토대이자 사회의 목표가 되는 시절이 지나갔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낡았지만 익숙한 것과의 이별, 닿지 못했지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 환상의 섬에서 벗어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하는 가다.” 자연적 수명을 가진 인간이기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처럼 현재를 구성하는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숙한 것이 비극이라면 시대착오적인 것은 희극이다. 그리고 희극이 시대를 드러내는 징후라면 비극은 미래를 향한 의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의 비극과 현대의 비극이 평행선을 이룬 비극의 대위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끌려가면서도 이를 거부하려 했던 페르소나와 자신의 힘을 믿으면서도 바로 그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스러져가는 캐릭터 사이의 충돌일 것이다. 물론 의지가 살아 있다면 그 충돌 속에서 그 의지는 다시 미래를 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여전히 충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여진이 있겠지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의지를 살려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내면의 소리를 듣는 연옥을 통과해야 한다. 그 충돌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마 진정한 의지는 거기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1~02월호 통권6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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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익는 냄새에 홀린 토끼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국민학교 들어갈 즈음에 할머니께서 낡은 책상을 하나 얻어 오셨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타지로 돈 벌러 나가시고, 할머니, 나, 동생 이렇게 셋이서 둘째 이모네 밧거리(바깥채)에 살 때였다. 쫓기다시피 막 돌아온 고향이라, 살림살이라곤 이불 몇 채가 전부인 단칸방이었다.

단칸방에 낡은 책상이나마 떡 하니 놓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누런색 합판을 대고 만든 싸구려 책상이라 여기저기 긁힌 자국도 많았고, 내 키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서 책상 앞에 앉으면 가슴팍까지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뛰놀다 들어와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아무 할 일이 없을 때에도 그저 책상에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장작이 귀해, 밥은 일출봉 분화구에서 베어 온 촐을 지펴 해 먹었다. 육지에서는 ‘꼴’이라고 부른다는 걸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베어온 촐로 지붕을 이고 새끼를 꼬아 줄로도 썼지만, 불을 지피는 데도 맞춤이었다. 불을 지펴 밥을 할 때면, 옆에서 할머니는 “솔솔 지드라. 와랑와랑 해분다.” 하고 당부하셨다. 한꺼번에 촐을 넣으면 활활 타오르니 조금씩 살살 지피라는 말씀이었다.

어느 정도 불을 지피고 나면, 촐이 작은 벌레처럼 잘게 부서지며 빨간색 불빛이나 노란색 불빛을 내뿜으며 일렁일렁 거리다가는 조금씩 회색빛 재로 바뀌며 아래에 쌓여 갔다. 부지깽이로 괜히 일렁거리는 불빛을 쿡쿡 찔러 보기도 하고, 촐을 살짝 들어 주어 불이 확 달아오르게 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따스하게 번져오는 온기도 좋았지만, 빨갛고 노랗게 꿈틀거리며 달아오르는 불빛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층층이 쌓이며 환하게 이글거리는 불빛은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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