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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판결 이후를 생각하다*

박정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징역을 산 알바노동자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 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018년 6월 28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병역법」 제88조 제 ①항이다. 2014년 4월 15일, 나는 이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서울서 부지방법원에서 수갑과 포승줄을 찼다. 법무부 버스를 타고 달려 서울 남부구치소로 이동했다. ‘쾅쾅’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히는 구치소 건물 안의 수많은 문을 통과했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드디어 좁은 방 앞에 섰다. ‘쾅.’ 마지막으로 방문이 닫히고, 나는 완전히 사회와 단절됐다. 나는 죄인이 됐다.

군복 대신 입은 수의와 내무반 대신 몸을 누인 감방이 내가 죄인임을 확인시켜 줬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교도관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사람들을 “확신범”이라 부른다며 다루기가 힘들다고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죄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터라, 구속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항소이유서를 쓰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왜 무죄인지를 재판에서 항변하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가 부담스러웠던 국선변호인은 변호를 그만두었다.

법을 잘 몰랐지만 항소 재판을 위해 법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치적 이유 이외에는 내가 감옥에 있어야 할 법리적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어설픈 항소이유서를 적었지만 판결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다 과거 ‘용산 투쟁’으로 추가로 재판을 받게 됐고 당시 청년좌파(현 ‘너머’)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김현성 변호사를 만나게 됐 다. ‘용산 투쟁’ 건은 뒤집기가 힘들어 보였고 (나중에 징역 10월 집 행유예 2년이 나왔다) 용산 사건 대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을 부탁드렸다. 일종의 반칙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받아들여 주셨다.

상고이유서와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죄가 확정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헌법소원을 냈다. 2015년 2월 23일의 일이다. 이날 감옥에서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몸이 아팠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지난 2018년 6월 28일 드디어 이 사건의 판결이 났다. 28건의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이 병합된 선고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서

법조문은 나 같은 비전공자들이 읽으면 너무 어렵다. 그래서인지 헌법재판소 판결을 가지고 말이 많다. 헌법재판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것(병역법 제88조)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 제도를 만들지 않은 건(병역법 제5조)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다. 잘못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게 합헌이라고 읽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병역법 제5조다.

병역법 제5조는 병역의 종류를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으로 규정해 놓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역이 보충역이다. 흔히 공익, 공중보건의, 국제협력의사, 공익수의사, 전문연구원, 산업기능요원 등 군인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언뜻 보면 이미 대체복무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간 것인가?

우선 공익근무요원을 예로 들어 보자면, 공익은 가고 싶다고 모두가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공익 판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결심한 사람들은 현행 공익근무를 수행할 수 없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이 금메달 따고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뒤 4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뉴스를 볼 수 있다. 공익근무요원도 4주간의 군사훈련은 받아야 한다. 따라서 총 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이 4주 훈련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누군가는 고작 4주를 못 견뎌서 감옥에 가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4주’ 대신 감옥을 선택한 사람들의 평화적 신념이 그만큼 진지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4주가 ‘그까짓 것’이라고 느껴진다면, 4주의 군사훈련을 없애는 걸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미 대체복무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들이 군대 대신 다른 일을 하게 하는 것이 큰 문제일까? 이렇게 쓰고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그간 대체복무를 주장해 왔던 사람들은 병역법 제5조에 군사 업무가 아닌 역을 신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시대의 요청에 대해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게 만드는 현행 병역법은 헌법 정신에 위반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쉽게 말하면,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지 않아 방치된 법조항 때문에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있으니 빨리 일 좀 해서 국민들 전과자 그만 만들라고 한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1950년 이후 오늘까지 6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만여 명의 전과자가 생겨났다. 일제강점기에 징집을 거부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사람의 고통스런 희생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만들어야 한다고 국회에 공을 넘겼다. 그렇다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겠다는 병역법 제88조를 합헌이라고 결정 내린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대체복무제도도 거부하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라는 의미다. 이 혼란은 우리가 국방의 의무를 병역의 의무만으로 좁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군대 대신 다른 형태로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고 이조차도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또, 이것마저 위헌이라고 할 경우 이미 처벌을 받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재심신청과 형사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감당이 안 될거라 판단했을 거다.

* 이 글은 2018년 6월 29일 《허프포스트코리아》 <블로그>에 올린 〈‘대체복무’ 시대에 우리가 맞 이한 과제들〉을 수정하고 보완한 글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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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주도 성장의 시대착오

촛불혁명에 뒤이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최소한 두 가지를 보여 주었다. 하나는 한국 민중의 완강한 저항이 폭발적 계기 속에서건 누적된 불만 속에서건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역사의 반복이며, 다른 하나는 매우 온건하고 질서 있고 상당히 기성 질서 안으로 편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그 저항의 고유한 성격이다. 특히 후자에 대한 분석은 훨씬 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므로 여기서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촛불혁명으로 인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모호한 성격이다. 아니 촛불혁명의 요구를 특정한 방향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정부의 태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의미와는 다르지만 “질서 있는 자본주의”를 만들겠다는 한국의 상상적 자유주의자의 오랜 꿈을 실현하려는 것일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성격이 모호하다는 것은 우선 폭발적인 대중의 지지 속에 당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으로 인해 그 이전 어느 대통령도 누려 보지 못한 지지도를 보이는 정부가 어떻게 이토록 소심한 태도를 보이는가다. 혹자는 최근의 논란 속에서도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을 지속적일 뿐만 아니라 발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태도 속에서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소득 주도 성장은 사실 그 말과 달리 소심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일부 우파가 여전히 “규제 완화”를 떠들긴 하지만 그런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임금 주도 성장”이며, 이것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소득 주도 성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름이야 어떠하든 넓은 의미에서 케인스주의의 부활인 것만은 분명하다. 피고용인의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될 때 경제적으로는 유효한 소비가 보장될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의 조건이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경제 운영 방식이나 사회제도가 피고용인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요소와 배열이 있는가고, 다른 하나는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이 가능한가다.

케인스주의가 경제학에 혁명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전후 자본주의와 복지국가 황금기는 고유한 역사적 배치와 내적 요인들에 의해 성립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의 생명 정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전쟁 기계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강조할 텐데, 최대의 총력전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여기서 중요한 배경이 될 것이다. 계급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사태를 보는 사람들은 그 이전에 있었던 계급투쟁의 격화와 타협의 드라마를 그릴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시각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대중의 주체화일 것이다. 전쟁기계로서의 국가의 국민 혹은 시민이건 계급투쟁에 나서는 계급 주체이건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 둘은 겹쳐 있다. 경제 운영과 국가 운영의 주체로서 말이다. 이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보통 ‘포드주의’라고 말하는 경제 운영 방식이었다. 고정자본의 대량 투입으로 인한 대량생산은 한편으로는 규율 있는 노동자를 필요로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 욕망을 자극받은 소비자를 필요로 했다. 이는 제도적으로 (산업)노동조합과 (부르주아적) 가족으로 나타났다. 물론 여기에 냉전과 탈식민화를 더해야겠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어떤 시기에는 천천히 또 어떤 때는 급격하게 사태가 바뀌었다. 그 사태의 변화는 신자유주의화와 탈냉전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과 관련해서만 살펴보자면 과거에 피고용인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대량생산 방식과 강력한 노동조합의 존재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변화했다.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시작된 노동의 유연화는 글로벌 노동력의 확대, 여성의 노동 참가 확대, 유연한 생산방식의 도입으로 이어져, 오늘날에는 “영구 임시직”이라는 새로운 범주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나라에서는 여전히 노동조합이 강력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조직률은 절반에서 2/3까지 떨어졌고, 새로운 존재방식의 노동력을 조직할 특별한 방법도 눈에 띄지 않는다.

또 다른 변화는 금융자본주의의 새로운 등장이다. 이를 완전히 새로운 양상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반복된 이행 국면에서 나타나는 금융화 현상이라고 볼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생산과 유리되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금융자본은 자본주의의 약탈적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이 속에서 이른바 ‘자본소득’이라고 분류되는 이윤이 크게 늘어났고, 이는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장려세제EITC 같은 수단밖에 없는 소득 주도 성장은 사태의 일부만 보고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득 불평등이 큰 것은 사실이고 현재의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일 때, 최저임금 인상은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이긴 하다. 하지만 강력한 노동조합과 같은 제도 없이 법정 최저임금을 소득 주도 성장의 주된 수단으로 삼는다면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더 큰 문제는 소득 불평등이 아니라 이른바 자산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사태다. 상상할 수 없는 서울의 주택가격은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현 정부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지만,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질서 있는 자본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능력주의’일 것이다. 엘리트 대학을 나온, 선한 자유주의자들인 그들이 보기에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은 능력에 따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총칼을 가진 군부 때문이건, 돈을 가진 재벌 때문이건 말이다. 그들이 소득 주도 성장과 함께 “혁신 성장”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있었던 ‘혁신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을 떠올린다. 기득권층에 맞서 현대화된 중간계급이 일으킨 반부패 운동 말이다. 물론 오늘날 적폐 청산이라고 부르는 이런 과제는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만이 적폐일까? 그들이 말하는 적폐를 청산하면 공정과 정의가 확보될까?

사실 정의를 위한 투쟁은 무엇이 정의인가를 둘러싼 싸움이기도하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갈라져 있는 현대사회에서 정의가 하나일 리 없다. 소득 주도 성장을 둘러싸고 표면적으로는 현 정부와 야당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싸움은 거기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만인의 적절한 생존을 위한 요구를 넘어서는 정의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의 탄생이 하나의 포퓰리즘적 계기였다면, 이제 이 국면이 지나가고 새로운 국면을 열 때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9월호 통권61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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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신세대, 신지예

안재성 소설가

 

1.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당년 29세 여성. 역대 서울특별시장 선거 최연소 후보인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이력은 남다르다. 이번 2018년 6월 13일에 실시되는 제7회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마다 무슨 대학이니 무슨 고시 출신이니 하는 상투적인 관록을 내세우느라 바쁘다. 그런데 다르다. ‘하자학교’ 출신과 ‘오늘공작소’ 대표다.

보통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할 이 짧고 명쾌한 이력만 보아도 신지예가 처음부터 기성의 문화나 제도와는 다르게 인생을 시작한, 그야말로 신세대 중의 신세대임을 알 수 있다. 이름 지어 ‘녹색 신세대’다. 누구에게 배우거나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중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변화를 택하고 2000년대 진보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이 당찬 청년운동가의 삶을 살펴보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가 시작되는가, 미미하지만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달에 만나 볼 인물로 선정했다.

선거를 40여 일 앞둔 2018년 4월 말,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신지예 후보 사무실을 찾았다. 50평은 될 꽤 넓은 3층 공간. 아직 플래카드도 걸지 않고 집기도 들여놓지 않은 상태로 당원들이 한창 청소와 정리를 하는 중이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이가 내부 수리를 위해 잠시 비워 둔 곳을 매우 저렴하게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늘 살짝 웃음을 띤, 밝고 씩씩한 인상이다. 한 시간 한 시간이 금쪽같은 후보이니 만나자마자 서울시장에 출마한 이유에 대해 단도입적으로 물었다. 답은 명쾌하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집권한 후 서울이 변화했느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선거인데, 저는 서울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봐요. 문재인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고 박근혜보다는 진일보했지만 보수적인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요. 지난해 핵발전소 문제에서 보여 주었듯이 탈핵 문제에 대한 입장이나 현재 민주당에서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 역시 보수가 맞다고 봅니다. 그래서 녹색당이 필요하다고 보고 제가 나선 것입니다.”

삼선에 도전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박원순 시장님 역시 좋은 분입니다. 그러나 역시 기존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분이라고 저는 봅니다. 먼저, 박원순 시장에게서도 개발주의자의 면모가 보입니다. 서울시는 현재 서부간선도로, 동부간선도로 등 주요 간선도로를 지하로 파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최대 깊이 70m에 왕복 4차선 도로입니다. 환기, 안전 등 여러 가지 우려도 있고 주민과 협의도 안 된 상황입니다만, 지금도 유례없는 크기의 지하차도가 발밑에 뚫리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계획 중인 지하 개발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문제 때문에 이명박 때도 안 했던 토목공사를 박원순 시장이 강행하고 있는 것이죠. 이 문제를 지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다른 말로 쓰라면 ‘건설 공화국’, ‘토목 공화국’, ‘도로 공화국’이 정답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인성을 파괴하는 토목공사에 쏟아 붓는 세금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얼마나 많을까? 그 문제에 대한 민주당 정권의 안목은 거의 제로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신흥 권력자들도, 박원순 시장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신지예는 본다. 박원순 시장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서울시장은 시민 전체의 삶을 바꿀 혁신적인 큰 그림을 그리고 추진해야 하는데, 박원순 시장님은 제도권 안에서 작은 변화를 주는, 중간 관료들이 해야 할 일을 간섭하고 들여다보는 스타일이죠. 저는 서울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이 한걸음 더 질 높은 삶으로 나가려면 새 정당, 새 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선전하려고 선거에 나섰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해방 직후 한민당이란 이름으로 창당한 이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민주당 세력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벌써 세번째 집권으로 하부 구성원들까지 권력의 단맛을 알게 된 민주당 세력에 대한 신지예 후보의 시각은 냉정하다.

“촛불혁명의 덕분에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보수 기득권 세력이 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권력과 이권을 분배해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요, 진보세력 내지 신진 세력의 진출을 억제하고 있어요. 이번 지방선거구 협상할 때도, 소수 정당이 당선될 수 있도록 4인 당선 선거구를 35개로 늘리고자 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총력으로 반대해 무산시켰습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토론회장의 문을 잠가 버려 시민들의 출입까지 막으면서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게 법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제4회 세계녹색당대회에 참가하여 미국 참가자와 함께 사드 배치 반
대를 외치고 있는 신지예(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신지예는 말한다. 자신이 속한 녹색당은 아직 권력에 물들지 않았다고. 그러나 권력 잡으면 언제든지 변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고. 지금 민주당과 싸우고 견제를 해야 하듯이, 그때가 되면 자신은 녹색당을 견제하고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 권력과 돈은 사람을 사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임에 틀림없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견제하여 정치 생태계를 정화해 나가지 않으면 언제든 폭압적인 독재정권이 등장할 수 있는 게 인간 사회다. 세계 많은 나라에 하나의 이름으로 보조를 함께하는 녹색당은 그 정화제의 역할을 하는 소중한 존재다. 이번 선거에서 신지예의 득표율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녹색당과 청년 정치인들의 제도권 진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2017년에만도 네덜란드 총선에서 녹색당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뉴질랜드에서는 스물세 살의 녹색당원 크로에 스워브릭이 국회에 진출했다. 신지예처럼, 그들도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낸사람들이다.

“서울은 너무 비대하고 모든 게 과잉 상태입니다. 면적은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살고 있고 전력의 10%를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사회적, 생태적 위기의 많은 문제가 여기서부터 발생하고 있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지방분권의 의미도, 정의도 찾을 수 없어요. 저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등한 서울, 소유하지 않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 서울, 비대한 수도권이 아니라 건강한 도시 서울을 만들 것입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상상에 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이 당당한 청년 정치인이 장차 한국 정치를 미래로 이끌어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를 걸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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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실현

서정희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1.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실현의 가능성 및 바람직성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기본소득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유한 의제를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사회운동이 선거에 대응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개혁적인 방식’으로 어떤 의제나 정책을 실현하려 할 때 이것이 신생 정당을 포함하여 기성 정당과 정치인의 비전으로 포함되어야 하는데, 선거는 이런 과정이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집중적인 계기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절차 속에서 대중의 정치적 관심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

선거라는 국면에서 기본소득운동 세력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특히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자치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기본소득 제도를 지방 단위에서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기본소득 제도를 어떻게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에 대한 전략적 검토가 요구된다.

먼저, 전자의 문제를 살펴보자. 현재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를 제외하면 기본소득 실험은 전국 단위보다 지방정부 단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 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 주, 나미비아의 오티베로-오미타라Otivero-Omitara 마을,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 Y 컴비네이터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등이 그러한 예다. ***

전국 단위에서 전면적인 사회보장 체계의 개편을 동반한 것이 아닌 지방정부 단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간 주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이라는 한계로 인해 소규모로 실험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이 아닌 실험에서 공공부문 역시 지방정부 단위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보다는 오히려 기본소득 제도가 가지고 있는 혁명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 어떤 발달된 복지국가도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인 현금 급여를 시행한 역사적 경험이 없고, 이를 전면에 내세운 적도 없다. 또한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실현은 기존 복지국가의 기반이었던 유급노동 중심성 테제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격렬한 정치적 반대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작은 단위에서 선도적으로 실행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동안에도 전면적인 개편을 수반하며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몇 개 지역에서 ‘시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그 시범 사업의 결과를 평가한 후 전국 단위로 확장해서 복지제도를 시행한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지방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이나 시행은 그간의 시범 사업에 상응하는 역할을 담당해 줄 것이기 때문에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보다는 현실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정치적 주체라는 측면에서도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보다 지방 단위의 정치적 주체가 기본소득 시행을 주도하기에 보다 수월할것으로 예상된다.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대선 후보 및 경기도지사 후보까지 갈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선도적인 사회정책 아젠다인 청년배당을 자신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전환하여 정치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청년배당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의 마찰을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적 소신을 확고하게 밀어붙였고, 이는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선호로 이어졌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 캐슬린 윈Kathleen O. Wynne의 경우, 재선 이후 기본소득 실험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다. 2018년 연말에 진행될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까지 자유당의 지지율은 보수당에 비해 높아 자유당이 온타리오 주정부 선거에서 다수당이 될 경우 캐슬린 윈의 도지사 3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점을 이번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한다면 후보들은 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변혁적인 대안이자 참신한 공약으로 기본소득 시행을 부각시킴으로써 구태의연한 사회복지 공약을 제시하는 타 후보들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바람직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지방정부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은 전국적인 기본소득 시행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지방의회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사회복지정책을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빚어가면서 조례를 제정하여 제도를 시행하고 결국 그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사례들이 존재한다. 1996년 광주광역시 동구의회의 「저소득주민생계보호지원조례안」이나 2006년 강원도 정선군의회의 「정선군 세자녀이상세대양육비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지방의회가 국가 단위의 복지정책 이상으로 복지 급여를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 지방자치단체장과 중앙정부는 지속적으로 반대를 제기해 왔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법원 소송까지 진행되었으나, 대법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주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조례안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하였고,***** 이러한 조례안의 내용은 다른 지역의 조례제정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국가 단위의 정책에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점을 상기한다면 기본소득 조례를 통한 지방정부 단위에서의 선도적인 정책 시행 전략은 기본소득을 국가 단위의 정책으로 확산시키는 데 고려해 봄직한 주요한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

* 안효상,「지방선거에 대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방침을 정하는 것에 대하여」,『2018년 지역네트워크 워크숍 토론 자료』, 2018년 2월 23일.

** 두 번째 요소인 대중의 정치적 관심은 최근 60년 만에 찾아온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 의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의제도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국면을 기본소득 의제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선거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선거를 이번만 하고 말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방선거 국면에서 기본소득 실현에 대한 검토는 여전히 유효한 의제라 판단된다.

*** 나미비아의 오티베로-오미타라 마을,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 주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은 민간 재원을 활용하여 한시적으로 시행되었고, 현재 종결되었다.

**** 서정희·김교성,「기본소득 지방선거 공약(안)」,『2018년 지역네트워크 후속워크숍 자료』, 2018년 4월 22일.

***** 광주광역시 동구의 ‘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1997년 4월 25일에 선고한 96추244 판결을 참조하고, 강원도 정선군의 ‘지방의회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2006년 10월 12일에 선고한 2006추38 판결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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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둘 수 없는 지주회사 및 자사주 제도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1. 들어가는 말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투척한 사건이 대한항공 지배주주의 갑질 문제로 퍼지더니 상습적인 관세법 위반 등의 불법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는 등 재벌 갑질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재벌가의 크고 작은 반사회적 행동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항항공 조회장 일가의 사례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이 인성이나 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사실 조양호 일가는 2013년 한진그룹의 지배 구조를 기존 순환출자 구조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룹지배력을 확보했다. 조양호 회장은 쏟아지는 사회적 질타와 사법 처리가능성을 의식해 조현아, 조현민 자매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였지만, 조 씨 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확고하기 때문에 이는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

재벌가와 재벌 기업들의 관계, 즉 극소수 지분으로 방대한 계열사를 확고하게 지배하는 소유-지배 구조의 문제가 사태의 본질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시장에 의해 퇴출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별다른 제도적 감시와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재벌이 기업집단*을 지배함에 따라 재벌-노동자, 재벌-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재벌-소비자의 관계는 물론이고, 나아가 재벌과 국민경제의 관계에서도 재벌은 점점 수탈자의지위로 변모하였다.

이 글에서는 대한항공 갑질 사례를 계기로 조 회장 일가에 확고한 지배권을 안겨 준 지주회사 제도, 특히 ‘자사주 마법’이라 불리는 지배력 확장 수단에 대해 알아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

한진그룹은 2013년에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조양호 회장 일가는 지주회사 전환 전에 는 순환출자 구조에서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정석기업주식회사를 지배함으로써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을 지배하였다. 총수 일가가 정석기업을 37.3%의 지분으로 지배하고, 정석기업은 (주)한진에 19.41% 지분을 갖고, (주)한진은 대한항공 지분 9.69% 보유하고, 대한항공은 다시 정석기업에 48.28%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정석기업 → (주)한진 → 대한항공 → 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한진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총수 일가는 정석기업에 대한 확고한 지배 이외에 대한항공에 9.86%, (주)한진에 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순환출자 구조는 총수 일가의 지분 9.86%만으로는 대한항공을 지배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계열사 내부 지분***을 통해 한진그룹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순환출자를 통해서도 그룹 지배권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대한항공에 대한 총수 일가 지분 9.86%와 (주)한진의 대한항공 보유 지분 9.69%를 합쳐도 20%가 안 된다. 이는 그룹 경영권을 3세로 승계하려 할 경우에 특별히 문제가 된다. 총수 일가 지분 역시 조양호 회장 단독 보유 주식이 거의 절대적 비중이었는데, 세 명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경우 과세표준 30억원 이상에 적용되는 50%로 증여세를 내야 하므로 그룹 지배력이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한진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총수 일가의 추가 지분 투자 없이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소위 ‘자사주 마법’을 활용했다. 먼저 대한항공을 사업회사(대한항공)와 이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한진칼)로 분할한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주회사로 신설 법인이다. 대한항공에 적용된 분할 방식을 ‘인적 분할’이라고 한다. 인적 분할 방식으로 대한항공을 분할할 경우 총수 일가는 기존 대한항공에 대한 보유 지분과 동일한 9.86%를 신설 법인인 한진칼에서도 보유하게 된다. 2013년 8월 당시 대한항공은 자사주 6.76%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자사주 마법’이 등장한다. 자사주 마법에 대해서는 이후 상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핵심만 언급하겠다. 자사주는 원래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지만, 인적 분할 시에 존속회사****가 그 비율만큼 자사주를 승계하고 존속회사의 지주회사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율로 신주가 배정된다. 존속회사 자사주가 지주회사에 분할 신주로 배정될 때는 의결권이 부활한다는 것이 ‘자사주 마법’이다. 지배주주가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권만 안정적으로 확보하면 사업회사가 보유했던 자사주가 의결권이 있는 지주회사의 내부 지분으로 전환되어 결과적으로 지주회사 지배주주(조양호 회장 일가)의 의결권 지분이 되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를 보면, 대한항공 법인이 보유 중이었던 자사주 6.76%가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신설 지주회사 한진칼의 의결권 있는 내부 지분이 되었다. 대한항공 시가총액의 6.76%에 해당하는 주식을 사기 위해서 조양호 회장 일가에게 필요한 자금은 2018년 5월 3일 대한항공 주가 기준으로 약 2,145억원이다. 조 회장 일가가 자사주 마법을 통해 절약한 돈의 액수라고 보면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수의 재벌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추가의 지분 투자 없이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사주 마법을 활용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조 회장 일가는 한진칼에 대한 지분을 23.13%로 늘렸다. 여기에서도 지주회사와 존속회사의 주식 맞교환 등의 방법으로 지배주주의 추가 지분 투자 없는 지배력 확대가 이뤄졌다. 특수관계인*****의 한진칼 주식 지분까지 합쳐 조 회장이 지배하는 한진칼 지분은 32% 가까이 늘어났다. 인적 분할 첫 단계에서 한진칼의 대한항공에 대한 지분은 대한항공이 보유했던 자사주 6.76%에서 32.83%로 확대되었다. 이와 동시에 존속회사 대한항공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지분은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쳐 47.08%에 이르렀다. 자사주 마법을 활용한 지주회사 전환으로 주주총회 안건 가결이든 적대적 M&A 방어든 지배권이 확고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 “기업집단”이란,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을 말한다, 여기서 “동일인”이란 특정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나 법인을 말하며, 통상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일 경우에는 그 총수(예, 삼성그룹의 이재용, 현대차그룹의 정몽주 등)가 동일인이며,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일 경우는 지배회사(예, 포스코)가 동일인이다.

** “지주회사”란 주식의 소유를 통해 다른 회사의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상의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회사를 말한다. “주된 사업”의 기준은 지주회사가 지배하는 자회사의 주식 가액의 합계액이 지주회사 자산총액의 50%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지주회사는 순환출자와 함께 대표적인 기업결합의 방식으로, 기업집단 지배 구조의 투명성 제고 및 경제력 집중 억제 등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한도,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로 이루어진 출자 구조에서 모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최소 지분보유 한도, 증손회사 허용 여부, 자회사의 모회사 지분 보유 금지 등 여러 규제를 두고 있다. 이에 관한 제도의 총체를 “지주회사 제도”라 한다.

*** 기업집단 내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과 계열사 지분을 합쳐 “내부 지분”이라고 한다.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재벌 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은 2016년 기준 2.6%, 계열사 지분은 54.9%로 내부 지분은 57.6%에 달한다.

**** 분할되기 전의 원래 회사를 말한다. 한진그룹의 경우 대한항공의 인적 분할에서 대한항공이 ‘존속회사’이자 ‘분할 회사’이며, 한진칼이 ‘신설 회사’이자 ‘지주회사’다.

*****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 규정은 동일인이 법상의 규제를 피해 형식적으로 소유를 분산시키고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동일체를 형성하여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특수관계인은 1. 당해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자, 2. 동일인 관련자(배우자,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을 포함), 3 경영을 지배하려는 공동 목적으로 기업결합에 참여하는 자에 해당한다. 특수관계인에는 자연인뿐만 아니라 계열사와 공익법인 등 법인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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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하여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대안’상임연구원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종교인이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나왔고, 정치인, 교수 들이 그 뒤를 이었다. 평균 아래로는 작가, 예술가 들이 있고, 그 밑으로는 연예인, 체육인, 기자들이 포함되었다. 몸을 전문적으로 쓰는 스포츠맨들이 다소 의외인데. 과도하게 몸을 써서 평균수명이 짧은 경향을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들의 수명이 짧은 것으로 유명한데, 격렬한 운동에 더하여 서로 심하게 몸을 부딪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면 우리 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이런 염증 반응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작가, 예술가, 연예인, 기자 들의 공통점이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먼저 떠오른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고, 특히 연예인의 경우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떤 식으로든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조사는 한국의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훨씬 오래 전에 서양의 경우를 보도한 기사도 떠오른다.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휘자가 가장 오래 사는 직업이라는 결과가 또렷이 기억난다. 몸과 마음을 함께 쓰는 직업이라 오래 산다는 해석이 함께했다. 한국의 조사에서는 지휘자가 예술가 범주에 포함되어 결과가 분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휘자는 예술가 가운데서도 특이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창작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는 점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작품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야 있겠지만 창작에 대한 압박감과 비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해석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특별하다. 지휘자는 열정적인 몸짓으로 자신의 해석을 표현한다. 그야말로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정신과 몸을 가장 이상적으로 쓰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사는 철학자

그렇다면 철학자들의 수명은 어떨까?
철학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젊은이’는 없다. 죄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고 게다가 모두 남성이다. 이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자료가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3세기 ~ 미상)가 쓴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가르침』(한국어판 제목은 『그리스 철학자 열전』)이다. 고대 희랍철학자들을 다룬 이 책은 철학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이 책에는 철학자들의 사망 연령도 나와 있는데 그 추정치가 거의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다룬 고대 희랍철학자 48명의 사망 연령을 정리한 내용이 『노년의 역사』에 실려 있는데, 한결 같이 오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젊어서 죽은 철학자는 에우독소스로 53세에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60세에 죽은 헤라클레이토스, 63세에 죽은 아리스토텔레스, 66세 죽은 아낙시만드로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70대 이상에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정확한 나이 없이 그냥 “늙어서” 또는 “매우 늙어서” 죽었다고 기록한 경우가 11명이다.) 100세 이상 산 철학자도 보인다. 데모크리토스 100세 또는 109세, 고르기아스 100세 또는 105세 또는 109세, 테오프라토스 85세 또는 100세 이후. 과음으로 죽은 인물도 더러 있고 노년의 무게를 벗어 버리려 자살한 철학자들도 몇 있다. 테오프라토스의 경우에는 장문의 유서를 실어 놓기도 했다. 그 가운데 스틸폰(기원전 380? ~ 300년)이라는 철학자가 눈에 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키티온 사람 제논(기원전 335?~ 263?년)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포도주를 마셨다”는 그를 위해 저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시가 실려 있다.

메가라 사람 스틸폰을 당신은 아마 알리라.
늙음과 병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한 쌍이 그를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도주라는, 이 못된 한 쌍의 말[馬]들보다 나은 존재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단숨에 비우고 서둘러 떠나갔으니. (『그리스 철학자 열전』 스틸폰 편)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여러 철학자가 오래 살았다고 해서 고대 희랍의 철학자 전체의 평균수명도 높았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생존자 편향’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래 살면서 명성을 떨친 철학자들만 실려 있는 것이다. 젊어서 철학 공부에 매진했으나 채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들의 데이터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명성을 누린 철학자들이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을 테고, 이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늙어감에 대하여 숙고하고 글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 대한 글을 쓴 고대 철학자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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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비정규직노동자가 공유하고자 하는 사태의 진행과 해법

신현창 한국지엠 부평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요 몇 달 한국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와 파산 이야기로 사방이 시끄럽다. 글을 쓰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몇 주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엠을 둘러싼 상황은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해 갔다. 날마다 신문 기사를 읽어 보고 현장의 교섭 내용을 파악해 봤지만,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언론에서 ‘운명의 날’이라고 칭한 부도 신청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다. 내부 소통망에서 확인해 본 결과, 부도 신청과 관련된 이사회 결정을 4월 23일 월요일로 연기했다고 한다. 다시 며칠을 번 셈인가?

아마도 이 글을 독자들이 읽게 될 때에는 이 글을 쓸 때와는 많은 것이 변해 있을 수도 있겠다. 지엠의 법정 관리가 확정됐을 수도 있고, 여전히 지금과 같은 상태로 진행 중일 수도 있다. 또 추가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면서는 상황을 공유하여 논의를 확장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생각나지 않는다.

기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이 지경이 되도록 지엠 노조는 무엇을 했느냐?’ ‘국가는 혹은 산업은행은 왜 알지 못했느냐?’ 하지만 모든 사건의 전조는 있기 마련이고, 오늘의 한국지엠 사태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위기를 말해 왔다. 특히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구조조정이 있었고 이에 대해 비정규직 구성원은 수년 전부터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에 대해 경고해 왔다. 이에 반해 10여 년간 위기설에 시달린 탓인지 정규직노조는 다소 위기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또한 비정규직 목소리에 대해 언론은 무관심했고, 나아가 가장 큰 피해자인 비정규직 주체가 확장되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어우러지면서 사태를 키웠다고 본다.

따라서 몇 가지를 짚어서 공유할 생각이다. 첫째, 지엠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한국지엠의 비정규직 구조조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볼 것이다. 둘째, 글로벌 지엠이 한국지엠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어떤 작업을 진행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셋째, 이미 언론에서 드러난 지엠의 수탈 과정을 다시 한 번 공유할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해법을 놓고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지엠의 글로벌 정책에 따른 비정규직 구조조정의 역사

1) 한국지엠 비정규직노조(지회)의 간략한 투쟁 역사

한국지엠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완성차 공장의 비정규직 주체들의 노조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2003년 현대 아산 공장을 시작으로 2004년 현대 울산, 2005년 한국지엠 창원과 현대 전주, 기아 화성 등의 공장에서 비정규직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한국지엠 창원 공장에서는 비정규직노조가 건설될 때 특이하게도 정규직 노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국지엠 사측은 끊임없이 정규직 내부를 흔들었고, 한국지엠 창원 정규직 집행부가 불신임을 받고 내려오면서 본격적인 비정규직노조 깨기에 들어갔다. 당시 한국지엠은 사내하청 업체 폐업을 통해 비정규직노조를 무력화시켰다. 오래지 않아서 핵심 활동가와 적극적인 조합원을 모두 공장 밖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창원 공장 비정규직 운동은 깊은 수렁에 빠지게됐다. 소수의 조합원이 공장 안팎에서 명맥을 이어 왔는데, 2013년 닉 라일리 사장의 불법파견 형사처벌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다시 반전의 기회를 얻게 됐다. 즉각적으로 창원 비정규직 주체들은 다시 조합원을 확대했고, 현장에 남아 있던 조합원을 중심으로 한국지엠의 근로자임을 확인해 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걸었다. 2016년 6월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서 조합원 확대 사업에 성공했다.

부평의 경우, 비정규직노조 건설에 대한 논의는 2004년부터 본격화됐지만 창원보다 다소 늦은 2007년 9월에 노조 깃발을 올렸다. 당시 지엠의 글로벌 정책에 따라 모듈화, 외주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비정규직노동자가 해고되거나 일터가 공장 안에서 공장 밖으로 바뀌게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이에 더 이상 노조 건설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노조를 건설했다. 하지만 창원에서 이미 비정규직노조 깨기에 성공한 경험이 있기에 한국지엠은 핵심 주체에 대한 집단 폭행과 징계해고, 조합원 다수가 조직되어 있는 업체의 폐업 등의 방식으로 비정규직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노조는 사측의 편에 서서 탄압을 방관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협조하고 있었다. 결국 조합원 절반가량은 조합 건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해고됐고, 나머지 현장 조합원들도 하나둘 사측의 압력에 못 이겨 조합을 탈퇴했다. 2008년 9월에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지엠도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2009년 4월 한국지엠 부평 공장에 있는 비정규직 1,000명 이상이 해고되면서 공장 안에는 비정규직 조합원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대규모 비정규직 해고 역시 그 과정에서 노사 합의 또는 정규직노조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장 밖으로 밀려난 비정규직노조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2011년 비정규직 전원 복직을 회사와 합의하여 2013년부터 현장에 배치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2014년 현장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조합원 확대 사업을 통해 조합원을 늘리면서 2015년 1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창원, 군산, 부평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제기했다. 2016년 이후 물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자 끊임없는 한국지엠의 ‘인소싱’(정규직의 비정규직 공정 전환배치) 시도가 있었지만, 줄기차게 현장에서 투쟁을 이어가면서 어느 정도 인소싱을 막아 내고 조합원도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결국 12월에 조합원 상당수를 포함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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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입법’과 새로운 의회-시민 관계 ― 2018년 헌법 개혁 논의에 부쳐*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Tampere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울대 강사

 

1. 근대의 정치적 조건과 직접민주주의 논쟁

‘다수의 독재’ 또는‘ 무분별한 포퓰리즘’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직접민주주의 구상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로부터 페이트만Carole Pateman(1940∼ )과 바버Benjamin R. Barber(1939∼2017)에 이르기까지 많은 참여 민주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다. 이들은 ‘회합 민주주의assembly democracy’에 대한 고전적 이상을 회복함으로써 선거 형태의 대의 정부가 지니는 민주적 결함을 극복하기를 희망했다. 직접민주주의가 정치과정의 중심에서 작동하는 스위스의 사례는 직접민주주의가 근대사회의 정치적 조건 속에서도 실행될 수 있음을 입증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회합 민주주의와 달리 본질적으로 대의 정부 시스템의 기반 위에 수립된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1806∼1873)과 매디슨James Madison(1751 ∼ 1836) 등은 (직접)민주주의의 불안정함과 인민들의 불완전성 때문에 대의민주주의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보편적 참정권조차도 20세기 초반 들어서야 도입되고 확대되었다.

스위스는 1848년혁명 이후 국민투표referendum 기반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국민투표와 (완전형) 시민발의 제도가 1874년과 1891년의 헌법 개혁들을 통해 각각 도입됐다. 이후 미국의 많은 주가 스위스 모델을 따르면서 주민투표와 시민발의를 제도화했다. 그러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과 나치 등 전체주의 체제들에서 일어난 대중 참여의 남용으로 인해 직접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럽 국가가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면서도 의회와 정당 중심의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선호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재생된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전후 구축된 안정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복지국가 질서의 기반에 균열이 오면서 대안적 의제 설정과 직접 행동주의를 추구하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이 출현했다. “비판적 시민들critical citizens”은 더 투명한 정부와 모든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직접적 시민 참여를 요구했다. 참여 민주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의회와 정당 등 대의 기구를 우회하는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이 더 자주 활용됐다. 알트만에 따르면, 1984년부터 200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국가 단위 수준에서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이 총 949회(시민 주도 메커니즘 328회, 위로부터의 메커니즘 621회) 실행됐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 적합성, 국민투표와 시민발의의 정책적 효과와 정치적 영향,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 등은 계속됐다. 논쟁은 주로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간의 고전적 이분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벗지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주요 비판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근대사회에서 함께 토론하고 표결하도록 모든 시민들을 소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유권자들은 이미 총선을 통해 정당한 정부와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3) 평범한 시민들은 ‘숙고된 판단’을 내릴 역량이 없으며 정책 전문성을 결여하고 있다. (4) 다수의 전제專制와 소수자 인권의 침해라는 위협은 현실이다. (5) 정당과 입법부 등 ‘중간 매개적’ 제도들을 침식하는 것은 ‘일관성 없고, 불안정하며, 무분별한 정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 이 글은 필자의 박사 학위논문 Reaching Out to the People? Parliament and Citizen Participation in Finland(Tampere University Press, 2017)을 토대로 작성됐다. 결론부의 제언은 2017년 11월 3일 국회 박주민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 Altman, D., Direct Democracy Worldwid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 Budge, I., “Implementing popular preferences: is direct democracy the answer?”, Geissel, B. & Newton, K. (ed.), Evaluating Democratic Innovations: Curing the democratic malaise? Routledge, 2013, pp.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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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시대가 변하고 있는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지난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일부 언론과 이데올로그들이 합의문에 확실한 북한의 비핵화 원칙, 이른바 CVID가 담겨 있지 않다고 당연한 시비를 걸긴 했지만, 대체로 보아 새로운 시대를 향한 첫 걸음을 떼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열린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원내에서 진보로 분류되는 정의당의 성과는 애매하지만 제법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권자의 의사가 투명하게 반영되지 않는 현행 선거제도로 인해, 그리고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현재 누리고 있는 인기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이 커다란 승리를 거둔 것이 당장 눈에 들어오는 일이긴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몰락이 아마 더 큰 사태라는 점에도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당연히 자유한국당은 ‘쇄신’의 노력을 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적응’하려고 애쓸 것이다. 하지만 당내의 분파 투쟁을 제외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쇄신의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그건 이들의 진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흐름이 더 이상 시대 변화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자유한국당을 지지했던 대중의 열망과 욕망을 받아 안을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의 지배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을 많은 사람은 냉전과 분단,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찾을 것이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민주주의에서 이데올로기가 주는 환상적 만족이나 억압만으로 장기간 통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대중이 누렸을 실질적 이득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우리가 ‘산업화’라고 부르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 그에 따른 어느 정도의 분배였을 것이다. 냉전이라는 역사적, 지정학적 배경이 (이 속에서 희생당한 사람들과 무관하게) 한국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했다는 점에서 냉전과 반공은 최소한 한반도에서는 동전의 양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균열을 가져온 것이 이른바 ‘97년 체제’하의 사회 양극화였다.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이 깨지면서, 다수에게는 당장의 삶이 어려워졌다. 또한 저성장 국면에서 자본은 투기에 의한 수탈, 보조금을 통한 강탈, 임금 비용의 절감을 통한 초과 착취에 몰두했다. ‘갑질’은 이런 양태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일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에 포획당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없었다. 진보라는 세력조차 방어적인 투쟁에 몰두하던 시절에 당시 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욕망이 이명박이라는 일그러진 인물로 통해 투사된 것은 냉전과 반공이라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이를 대신할 그 어떤 공공선도 눈에 잡히지 않을 때 대중이 선택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일그러진 초상화가 아니었을까?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의 후광과 자신의 묘한 아우라 덕분에 대통령이 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반사회적 가족과 개인만이 삶의 준거점이 된 시절에 그나마 대중을 통합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 덕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환상은 그의 오랜 벗이 드러나고 자신의 시간은 드러나지 않은 채 산산조각이 났다.

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일종의 경로 의존성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두 가지 과제는 각각 무겁기도 하고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하나는 “적폐 청산”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좀 더 민주적이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람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는 일일 것이다.

우선 적폐 청산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 사회의 나머지 부분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어딘가에, 주로는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잘못된 관행이 쌓여 왔다는 것으로 쓰이는 게 적폐다. 하지만 적폐 따로 정상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적폐만을 암세포 적출하듯이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자리 창출의 경우, 공공부문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어느 정도 만드는 것은 가능하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과잉생산의 덫에 빠진 현 국면에서, 특히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가 적절한 수준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현 정부가 기대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 활성화, 공정한 거래를 감독함으로써 다수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활력 제고다. 그런데 전자는 제한적인 효과만 있을 것이고, 후자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양자를 관통하는 남북 관계의 개선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 불확정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다. 물론 이것은 앞서 말한 자본주의의 현 국면을 반영하는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적’ 방식이다. 문제는 이것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최근 거세진 반페미니즘, 예멘 난민의 제주도 입국으로 불거진 포비아 등을 볼 때 적폐를 청산하고 돌아갈 우리의 정상적인 과거는 없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일자리 창출 같은 방식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정상적인 경제란 것도 없다. 사태는 언제나 중층적이고 정상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요구할 뿐이다.

자신의 삶의 비참함 때문에 타인을 혐오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새로운 사태를 상상할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가지는 것만이 언제나 위기의 물결을 새로운 ‘정상’으로 데려다줄 물길로 만들 수 있다. 만약 기본소득을 포함해서 우리가 넓은 의미의 경제민주화라는 것을 달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파도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먼저 적폐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익숙함이라는 적폐 말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7~08월호 통권60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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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것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위하여!

김교성, 백승호, 서정희, 이승윤, 『기본소득이 온다: 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 사회평론아카데미, 2018년.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노아의 홍수 같은 ‘신적 폭력’을 바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건 깨끗한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인간사의 처지는 그런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리가 가진 이상이 높다 하더라도 우리 발은 부드러운 흙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의 혁명 과정은 ‘테러’와 ‘독재’라는 형식으로 그 부드러운 흙을 쿵쿵 밟아 단단하게 다짐으로써 도약을 꾀하기도 했지만, 최소한 현재까지는 자기 발목을 부러뜨리는 효과를 낳았을 뿐이다.

오늘날 다양한 위기와 변화의 전망 속에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본소득‘운동’도 비록 정신적인 차원이긴 하지만 그런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지향하는 목표나 터 잡고 있는 근거에서 도덕적 우월성과 현실적이면서도 급진적인 태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역사적 사회주의의 붕괴 속에서도 그 홍수에 함께 떠밀려 가지 않은 ‘최소 기준’으로서의 자유, 평등, 사회정의, 인간의 존엄성을 그 어떤 사상이나 정책보다 확고하게 옹호하고 실현하는 것이며, 예상되는 사회 변화에 가장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신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도덕적 우월성과 현실적인 대안이기에, 머지않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신적 폭력의 유혹을 피해야만 한다면 현실의 변화는 정치적인 것의 자리에 스며들어야 하고, 정치의 장을 통과해야 한다. 이는 여기서 시작해서 저곳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에 관한 경로를 제시하는 문제이고, 실제로 이 경로를 통과하는 실천이다.

스스로를 “상상하는 리얼리스트들”이라고 부르는 사회복지 연구자 네 명의 공동 저작인 『기본소득이 온다: 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은 이런 경로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네 사람은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에서 도출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한국형 기본소득”의 모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기존 제도와의 실천적 비교 속에서 구체적인 이행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동안 한국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 논의와 실천, 정치적 투영과 전망 등을 검토함으로써, 한바탕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던 기본소득 논의를 새로운 정치적 실천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쉼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이 온다』는 구성이라는 면에서도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무엇보다도 저자들이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라는 말로 포착하는 현실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책은 저마다 독특하고, 현대적인 의미의 국제 기본소득운동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2017년에 기본소득의 베테랑들이 각기 출판한 책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야니크 반더보르트와 함께 쓴 책에서 기본소득을 “자유의 도구”로 제시하고 있으며, 가이 스탠딩은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하며, 애니 밀러는 기존 복지국가의 문제점에 자기 논의를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 권의 책은 이른바 “철학적 정당화”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건 그동안 국제 기본소득운동이 걸어온 궤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공산주의는 사실상 무너져 가고 있었고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 복지국가는 점점 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던 시점에서, 기본소득에서 어렴풋하나마 빛을 찾고자 한 사람들이 취할 수 있었던 태도는 무엇보다 그 정당성을 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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