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람과 역사를 조롱하는 유니클로 광고

신석준 《신의한술TV》

유니클로의 요상한 광고

안녕하세요. 《신의한술》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7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었던 유니클로가 또 유튜브와 TV를 통해 요상한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많이 보셨을 텐데요, 나이가 지긋한 여성과 어린 여성이 나와 대화를 나눕니다. 98세의 여성은 “패션 콜렉터” 이리스 아펠Iris Apfel이고 13세의 여성은 “패션 디자이너” 케리스 로저스Kheris Rogers라고 합니다.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어요?”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

바로 이 대답이 문제였습니다. 영어로 된 광고에서는 “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그렇게 오래된 일은 기억할 수 없어!”)라고 되어 있고, 일본어판 광고에는 자막에 “昔のことは、 忘れたわ。”(“옛날 일은 잊어버렸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 광고에서만 유독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는 자막을 넣은 것입니다.

유니클로의 한국 법인 FRL코리아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나이 차가 크게 나는 두 사람 모두 후리스를 즐겨 입을 수 있다고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미국, 일본 편과 달리 80년을 넣은 이유도 명백하고 직관적으로 나이 차를 알 수 있도록 자막을 넣은 것이다.

우리가 너무 민감한 걸까요? 유니클로 광고는 정말 아무 의도가 없을까요? 한술 떠 보겠습니다.

강제징용에 끌려간 두 할아버지

집안 이야기 조금 하겠습니다. 제 고향은 충북 옥천군 청성면 대안리입니다. 아주 깡촌입니다. 제가 1970년생인데도 어렸을 때 전기가 안들어왔으니까요. 일제강점기 말에는 더했을 텐데, 그 깡촌에도 강제징용의 마수가 뻗쳐 왔습니다.

제 할아버지와 바로 아래 동생이 일제강점기 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할머니 배 속에 있을 때 끌려가셔서 4살 넘어서 돌아오셨다니까, 아마 1941년이나 1942년쯤 끌려가셨다가 1945년 해방되고 나서 돌아오신 듯합니다. 참고로 그 아래 두 동생도 불과 5년 뒤 한국전쟁 때 군인으로 징집되었고, 막내 종조할아버지는 1952년 장단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뭐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돈 없고 빽 없는 한국 사람 누구라도 집안 내력을 조금만 뒤져 보면 나오는 그런 사연이지요.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디플레이션의 위험과 재정적 대응의 필요성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한국의 2019년 9월 작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가 0.4% 하락했다. 소비자물가가 전년도 같은 달에 비해 하락한 것은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일반적으로 실업과 함께 부정적인 경제 현상을 대표하며, 중앙은행은 대체로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려고 물가안정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드물게 나타나지만 경제적으로 더욱 문제가 되는 현상은 심각한 불황을 동반하는 디플레이션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바로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경제 상황이 악화된 대재앙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1990년대에 시작된 디플레이션이 동반된 장기불황의 결과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회복세가 그 이전의 위기 때보다 강하지 못했고 인플레이션율도 낮게 유지되었다. 그래서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기를 맞이하면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그러한 징후가 더 뚜렷하게 포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디플레이션이 왜 경제적으로 위험한 현상인지를 설명하고, 한국 경제와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는지,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제1절 디플레이션의 원인과 영향

가. 디플레이션의 원인: 총수요의 감소

디플레이션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경제학에서는 개별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변동하는 이유를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서 찾는다. 경제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물가수준이 하락하는 이유는 총수요가 줄어들거나 총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은 수요 측 요인 때문인 것과 공급 측 요인 때문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급 측 요인은 생산성 향상이다. 생산성 향상이란 동일한 비용으로 더 많거나 더 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성 향상 때문에 공급이 늘어남으로써 전반적으로 생산품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경제적으로 부정적이지 않다. 물가 하락과 함께 경제성장이 동반되는 긍정적 현상이다. 그 예로는 19세기 후반 서구 경제에서 기술혁신으로 일어난 디플레이션을 들 수 있다. 현재에도 개별 상품 차원에서는 생산성 향상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는 일은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가 그렇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20 대 80의 사회와 조국 사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SNS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요즘이다.

드라마 《녹두꽃》이 방영될 때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올렸던 조국은 자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프로필 사진을 자주 바꿨다. 자신을 수호하겠다는 구호가 자랑스러워서인지 서초동 촛불시위 장면을 걸기도 했고, “불쏘시개”라는 말을 남기며 법무부에서 퇴장하는 모습을 올리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자의식 과잉의 전시장이긴 하지만, 그가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었다.

혁명을 꿈꿨던 그의 옛 사노맹 동지들과 서울대 친구들,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론가도 하나둘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세계를 뒤집어 보겠다는 그들의 꿈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라는 꿈으로 변해 있었다. 이진경부터 장정일까지, 전설처럼 책 속에 존재하던 이들의 고백이었다.

조국이 끝낸 노무현 장례식

다행스럽게도, 조국 사태를 통해 “386” 또는 “586”을 제대로 알고 비판할 수 있게 됐다.

첫째로는 경제적, 문화적 위치와 관련된 것이다. 조국은 자신의 인맥과 문화적 자본을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활용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과 부인이 교수이고 많은 친구가 교수이거나 대학 총장이거나 법조인인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라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문화적, 교육적 혜택을 누리며 살았다. 과거 “혁명 이론가”였던 이가 사모펀드에까지 투자했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물론, 불법은 없었고, 당연히 열심히 노력했다.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합법적으로 부와 문화적 자본을 독점하고 자식들을 교육과 시험이라는 경쟁에서 승리하게 하여 지위를 세습할 수 있는 지배 집단이 등장한 것이다. 군부독재에 맞서 싸울 때는 적이 분명해서 힘들고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적이 눈에 보이지 않아 싸움이 어렵다는 말이 한때 유행이었는데, 그 막연한 지배 집단이 누구인지를 이번 사태가 보여 줬다.

두 번째는 386의 사상적 붕괴다. 이들은 검찰 개혁에 몰두하면서 “조국 수호”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을 뿐,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그들은 조국에 대한 많은 국민의 분노를 “진보의 도덕 결벽증”이라는 완전히 시대착오적 잣대로 분석하려 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더 큰 잘못을 했는데 진보 인사들의 도덕적 결함에 대해서는 국민이 더 날뛴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도덕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그들의 편리함은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그들의 옛 분석 틀이 얼마나 공상적이었는지를 드러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긴급사태(?)

모두의 바람과 달리, 살짝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것 같던 코로나19 사태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후 사태는 알 수 없는 위험과 인간의 의지 사이의 충돌 속에서 정말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두 가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기초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자연을 정복한 것처럼 보인 때가 있었지만 실상은 변형이 있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극단의 시대”였던 20세기 인류가 성취한 가장 큰 진보 가운데 하나가 의학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 웰빙의 진전이었다. 의학이 우리 몸에 기생하는 미생물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세기말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던 전염병들이 다시 살아났다. 인간이 자연에 깊이 개입할수록 자연도, 이 경우에는 병원체들도, 진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공동체가 위협에 맞서는 가운데 점점 더 예외 상태가 정상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벽두인 2001년 미국은 “애국법”을 통해 법무부 장관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가 의심되는 모든 외국인을 “구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속에서 해당하는 개인들은 법적 지위가 철저하게 말소되게 되었다.

최근에는 지구적 수준의 심각한 기후변화에 지구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 속에서, 이후 새로운 인간 공동체가 어떤 양태를 띨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지구적 수준의 주권체가 형성될 것인가, 기후변화 이후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은 당연하게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끝낸 근대국가 체제가 위기에 빠져 있으며 이는 또다시 새로운 “혼돈”으로 우리를 밀어 넣을 것이고 이런 “긴급사태(필요성)”는 새로운 주권으로 나아가는 예외상태를 낳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19 감염의 급증이 또 다른 긴급사태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현대의 국가는 이와 관련한 법률을 비롯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긴급사태는 법률을 갖지 않는다necessitas legem non habet”라는 상황과는 다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아니면 이후 닥칠지 모르는 또 다른 감염병이 의학계에서 말하는 “질병 X”일 경우, 그런 상황은 예외상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든 우리의 삶은 예외상태가 정상상태가 되는, 새로운 일상화의 국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첫 번째로 우려되는 것은 체제를 지키기 위해 체제의 존재 이유나 원리가 파괴되는 경향이다. 이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예외상태가 프랑스혁명기에 나왔음을 감안하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절대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그 반대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우려는 이렇게 예외상태가 정상상태가 되는 상황에서 가장 크게 고통받을 사람들은 당연히 피억압 계급들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어찌 되었던 내전을 초래할 것이고, 그 내전은 폭력으로 얼룩질 것이다.

벤야민은 오래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예외상태’가 상례임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예외상태가 도래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는 “진정한 예외상태”가 간헐적으로만 있었다. 그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것인가? 이 시대는 진정한 예외상태로 나아갈 수 있는가? 결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20년 03월호 통권7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

“나는 1월 1일을 싫어한다”

선거법 개정 과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러려고, 그 난리를 벌였나?’ ‘이러려고 내가 ○○를 지지했나?’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법 개정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크리스마스 시기 무기 실험이 묘하게 비슷한 말처럼 들리는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도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물론 이러는 사이에도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온다.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이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오니, 안타깝더라도 매듭지을 것은 매듭짓고 새로운 희망을 품으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과 한반도의 상황을 보면,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절망을 느낀다.

인위적인 매듭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동기에 의해 시간의 흐름을 끊거나 잇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안토니오 그람시가 104년 전에 쓴 글을 권한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워지기를 원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일어날 때마다, 이게 나에게는 1월 1일이라고 느껴진다.

그게 내가 고정된 만기일처럼 도래하는 1월 1일을 싫어하는 이유다. 그런 1월 1일은 삶과 인간의 정신을 최종적으로 깔끔하게 맞춰진 균형, 미결 금액, 새로운 경영을 위한 예산 등이 있는 상업적 관심으로 바꾼다. 1월 1일은 우리로 하여금 삶과 정신의 지속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는 진지하게 한 해와 다음 해 사이에 단절이 있다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심하고, 지키지 못한 결심을 후회하고 등등. 이것이 일반적으로 날짜를 가지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대기가 역사의 근간이라고 말한다. 좋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모든 선량한 사람이 머릿속에 넣어 두고 있는 네다섯 개의 중요한 날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날짜는 역사에서 농간을 부린다. 1월 1일도 이 날짜에 속한다. 로마 역사의 1월 1일, 중세의 1월 1일, 현대의 1월 1일.

그리고 이 날짜는 너무나 강력하게 스며들어 있고 화석화되어, 가끔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삶은 752년에 시작되었고, 1490년이나 1492년은 인류가 뛰어넘은 거대한 산맥이 되어 갑자기 신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따라서 날짜는 역사가 동일하게 중요한, 변화하지 않는 노선에 따라, 갑작스러운 중단 없이 지속해서 펼쳐지는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난간이 된다. 마치 극장에서 필름이 찢겨 잠시 밝은 빛이 비치는 것과 같다.

이게 내가 1월 1일을 싫어하는 이유다. 나는 매일 아침이 내게는 1월 1일이기를 원한다. 매일 나에 대해 숙고하고 매일 나를 새롭게 하기를 원한다. 하루도 이렇게 하지 않는 날이 없게. 나는 내 휴식 시간을 스스로 정한다. 삶이 너무 격렬하다고 느끼거나, 좀 마음껏 즐겨 여기서 활력을 찾고자 할 때 말이다.

정신적으로 시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이 순간이 지나간 것과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매 순간이 새롭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법으로 정해진 집단적 리듬으로 축하해야 하는 날은 없다. 나의 고조할아버지 등등이 축하했기 때문에 우리도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껴야 한단다. 이는 불쾌한 일이다.

나는 또한 이런 이유로 사회주의를 기다리고 있다. 사회주의는 우리 정신에 울림이 없는 이 모든 날짜를 쓰레기통에 처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다른 날짜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최소한 우리 자신의 것이 될 것이며, 우리가 우리의 어리석은 조상에게서 아무런 유보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나는 1월 1일을 싫어한다」, 『전진』, 1916년 1월 1일. https://www.viewpointmag.com/2015/01/01/i-hate-new-years-day/에 실린 영어 번역본에서 번역.)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20년 01~02월호 통권7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

이한동부터 조국까지, 인사청문회로 드러난 ‘인싸’의 세상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우여곡절 끝에 임명 직전에야 열렸다. 여느냐 마느냐 다툼이 있는 와중에 집권당과 후보자는 국회 본청에서 청문회가 아닌 기자간담회를 열었고, 야당은 반박 기자간담회로 대응했으나 결국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하게 됐다. 법으로 정해진 기한에 쫓겨 열린 청문회였고, 여야 합의로 채택한 열한 명의 증인 가운데 한 명만 출석했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검찰이 후보자의 가족을 기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임명 안 하면 나쁜 선례”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 임명 이후에도 검찰 개혁과 관련하여 또는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와 관련하여 이어지는 논란, 또는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야당의 이러저러한 움직임 등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다. 이 글은 이제까지의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와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이 알게 된 것, 특히 조국 후보자 청문회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을 확인하려 할 뿐이다.

어쩌면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을 굳이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5공 청문회의 추억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회 청문회의 시작은 인사청문회가 아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에서 시작하기로 하자.

1988년 12월,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가 열렸다.

1987년 6월까지 이어진 국민의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민주정의당은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승리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치러진 1988년 4월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은 299석 가운데 125석을 얻었다. 일반적인 안건도 단독으로 통과시키기에는 25석 부족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른바 “여소 야대” 국회였다. 아울러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70석,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59석,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35석 등, 대통령 후보로서 경쟁했던 네 후보가 각각 이끄는 4당 체제의 국회였다.

서울올림픽이 몇 달 뒤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올림픽을 탈 없이 개최하려면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들에게 무언가를 양보해야 했고, 지난 정권이 저질렀던 일을 파헤치는 청문회의 개최가 합의됐다. 1988년 6월 15일 「 국회법」 개정으로 청문회는 법률적으로 준비를 마쳤다.

협상의 결과, 5공 청문회는 올림픽이 끝난 뒤 열렸다. 1988년 11월 2일에 시작된 청문회는 여당의 방해로 흐지부지되었지만, 1989년 12월에 다시 청문회가 열렸다. 그해 마지막 날 국회는 강원도의 한 사찰에 머물며 버티던 제5공화국의 유일한 대통령 전두환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냈다. 당시 초선의 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을 “청문회 스타”라 부르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혐의로 인해 여럿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실패의 정치가 아닌 변화의 정치를, 기본소득당이 지금 시작합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 상임대표

양희석 제공

● 모든 국민에게 월 60만 원 기본소득을!
● 빅데이터 시대, 디지털 공통부 배당으로 데이터 주권을!
● 1인 가구 600만 시대, 개인이 중심이 된 새로운 사회계약!
● 기후위기의 시대, 탄소배당으로 생태적 전환을!
● 자동화의 시대, 기본소득과 함께 주 30시간 노동 사회!

지난 9월 8일, 기본소득을 전면에 내건 한국 최초의 원 이슈One-Issue 정당,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출범하며 제시한 5대 핵심 정책입니다.

기본소득을 전면에 내건, 그것도 이름부터 기본소득을 내건 정당이 등장한 것은 2007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기본소득이 한국의 공직자 선거에 처음 소개된 지 12년 만입니다. 지난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본소득에 대해 알리고 정치 운동을 통해 기본소득을 실현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의 노력을 담아, 이제 ‘보편적 기본소득의 실현’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은 정당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소득당에 대한 논의는 올해 초부터 시작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는 점점 뚜렷해져만 가는데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속에서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모아 기본소득을 실현할 기본소득 중심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제안으로부터 계획은 시작되었습니다. 기존 진보정당 안에서 시작된 ‘기본소득당’에 대한 논의는 처음에는 몇 가지 제안에 그쳤지만, 당명을 바꾸는 단순한 논의가 아니라 점차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시대 인식과 대안 논쟁으로 점차 진지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면적이고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한 주도적인 대응과 대안 제시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들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채,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결정적 차이들을 확인하면서 기존의 정당 안에서 진행된 ‘기본소득당’을 둘러싼 첫 번째 논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도, 기본소득으로 타고 넘자

하지만 ‘기본소득당’이 제안되었던 배경인 새로운 변화의 파도는 여전히, 그리고 어느새 우리 발아래에 도달해 다리를 적시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파도에 쓸려 가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상황 인식과 적절한 대처 방법이 필요합니다. 들이치는 파도를 막고자 하는 완고한 방식으로는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유연하게 파도를 타고 넘는 것이야말로 현실 가능한 대안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당도한 파도는 ‘노동의 축소’, ‘일자리의 급감’, ‘이로 인한 소득의 감소’‘ 양극화 심화’ 등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 없는 사회’에 대한 공포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정치는 이러한 변화에 유연하고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낡은 방식의 해결책만을 고수해 왔습니다. 보수정치는 현재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에만 더 많은 지원과 규제 완화를 제공하려 하고 있습니다. 진보정치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못 본 척하며, (97년 IMF 이후 모든 정권이 다 추진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일자리 창출’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그저 ‘금배지’를 유지하기 위한 혹은 ‘금배지’를 달기 위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수, 진보, 기존의 정치, 그 어느 곳에도 우리의 삶은, 사회의 변화는, 미래의 대안은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완전 자동화 럭셔리 공산주의”의 전망과 쟁점

안효상 편집주간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가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비교할 만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대침체 직후 두드러진 것이 있다면,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배계급의 무능력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대안 세력의 전망 부재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결과는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일종의 반유토피아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쉽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은 일종의 “헤게모니 없는 지배” 상태다. 헤게모니 없는 지배 상태 속에서 2011년부터 대중의 반란이 점거에서부터 새로운 정당의 출현까지 이어졌고, 이는 기성 질서의 붕괴 조짐으로까지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때 기성 질서의 붕괴는 정치 질서의 변동을 넘어서는 더 큰 위기와 함께하고 있다. 이 위기가 아론 바스타니가 “완전 자동화 럭셔리 공산주의”를 말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바스타니는 인류가 다섯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기후변화 및 지구온난화의 파멸적인 결과, 자원 고갈(특히 에너지, 광물, 깨끗한 물의 부족), 사회고령화, 점점 “필요 없는 사람들unnecessariat”을 구성해 가는 지구적 빈민의 증가, 기술적 실업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새로운 기계 시대. 흥미로운 것은 이런 위기 속에서 바스타니는 묵시록적 미래가 아니라 매우 낙관적인 내일을 그려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완전 자동화 럭셔리 공산주의”다.

바스타니는 보통 20세기의 실패한 프로젝트를 가리키는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굳이 쓰는 이유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때 그가 공산주의라는 말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일이 없어지고 희소성이 풍요로 대체되며 노동과 여가가 서로 섞이게 되는 사회다.

이런 공산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프로젝트가 된 이유를 바스타니는 자신이 “세 번째 단절the Third Disruption”이라고 부르는 기술 변화에서 찾는다. 첫 번째 기술적 단절은 이른바 농업혁명이며, 두 번째 기술 단절이란 산업혁명을 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런 변화가 가져올 결과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 들어 있는 「기계에 관한 단편」에 의지하여 그려 내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맑스의 사고 가운데 크게 주목받지 않고 있는 측면은 자본주의가 기계로 노동을 대체하는 경향에 대해 그가 어떻게 인식했느냐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순으로 가득한 체제에서 이 체제를 잠재적 해방의 힘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

 

* Aaron Bastani,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 A Manifesto, 2019.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블레이드 러너》와 포스트휴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강준상*

《알파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 프로 기사들은 “인간이 두는 바둑 같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이전의 바둑 프로그램들은 기계 같았는데 《알파고》는 생각하는 인간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후, 세계 1위 커제까지 가볍게 이겼고, 《알파고》끼리 둔 50국의 기보를 남기고 사라졌다. 기사들은 《알파고》의 바둑을 공부하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바둑을 두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들은 학습해 온 방식을 벗어나지 않지만 《알파고》는 인간들이 두지 않는 창의적인, 아니 창의적으로 보이는 수들을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알파고》의 수를 보며 반성하고 새롭게 공부하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구절에서 어떤 영화 한 편이 떠오를지 모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

영화 속에서 리플리컨트(복제인간)를 만드는 회사의 회장 타이렐은 신형 복제인간(넥서스 6호)의 모토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라고 말한다. 이 모토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조금씩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의 핵심은 인간과 복제인간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는 것에 있으나, 영화가 진행되며 과연 인간은 인간적인지, 복제인간이 더 인간적인 건 아닌지, 그렇다면 인간과 복제인간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한지, 무엇보다 주인공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인간인지 복제인간인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2019년이었다. 올해가 2019년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 우리에게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세계가 도래하진 않았다. SF 영화 속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등은 아직 문화적 아이콘들일 뿐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과학기술은 그에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보이며, 로봇과 인공지능은 많은 부분 현실화되고 있다.

이 글은 《블레이드 러너》와 재작년에 만들어진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이하 《2049》) 두 편의 영화를 통해, 포스트휴먼 자체가 아니라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지, 또는 인간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징후를 살펴보고자 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첫 번째 컷과 두 번째 컷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첫 번째 컷과 두 번째 컷

 

*강준상
다큐멘터리 《달려라 휠체어, 달려라 박정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을 연출했으며, 공연연출작으로 《옹달샘》, 《꼴》, 《줄탁동시》, 《스퀘어 – 다시 지금 여기에서》 등이 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책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갈 세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하는 다소 진부한 물음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이 물음에 대해 “책이라고? 무인도에서? 뭐 하러?”(응우옌 후이 티엡) 이렇게 짐짓 딴죽을 걸 수도 있다. “이렇게 고약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스핑크스가 틀림없다.”(아멜리 노통브) 또는 “이 질문은 비인간적이다. 문학 유산은 대양의 방식으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파트리크 샤무아조) 이렇게 책 좋아하는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성경』과 셰익스피어는 제외해 달라는 단서를 달아도 기어코 이 두 가지를 목록에 포함시키는 작가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묵직한 책, 두껍고 오랫동안 명성을 누려온 책들에 치우친 목록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천일야화』 ……. 전 세계의 유명한 작가들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에 대한 답변이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에 실려 있다.

그런데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1712~1778)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루소의 대답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이 있다면 단 한 권이 있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가장 좋은 자연 교육 개론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 책은 나의 에밀이 읽게 될 최초의 책이 될 것이다. 그 책만이 오랫동안 그의 책꽂이에 꽂혀 있을 것이며, 그곳에서 품격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 도대체 그런 훌륭한 책은 어떤 책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일까, 플리니우스의 책일까, 뷔퐁의 책일까? 아니다. 그것은 『로빈슨 크루소』다. (장 자크 루소, 『에밀』, 329쪽)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에서도 『로빈슨 크루소』를 꼽은 작가들이 더러 있지만, “무인도에 가져갈 책”이라고 듣는 순간 대다수는 『로빈슨 크루소』를 우선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다람쥐”하면 “도토리”가 떠오르듯이. ‘무인도에서 홀로 사는 삶은 로빈슨 크루소의 삶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책은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읽는 책이다.’ 작가 대부분의 의식 속에는 이런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주저 없이 『로빈슨 크루소』를 첫째로 꼽았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하나 하나 척척 해결해 나가는 로빈슨 크루소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나도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고, 로빈슨 크루소처럼만 하면 못 살 것도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루소가 열두 살의 에밀이 읽어야 할 유일한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꼽은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워낙 재미있어서 에밀에게는 좋은 “오락거리”가 될 것이다. 거기에다 “교육거리”의 역할을 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로빈슨 크루소』를 읽는 에밀이 이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그가 그 책에 심취하여 끊임없이 저택과 염소와 식물에 대해 생각하며, 책에서가 아닌 사물을 바탕으로 하여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자세하게 배웠으면 한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