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2018년 들어서면서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엔 우리의 철학으론 상상도 못할 일이 수없이 많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공화국 창건70돌”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하여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개선”하자고 했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을 “한반도 평화 원년”으로 만들자고 화답하면서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누이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방문했고, 폐막식에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이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물론 미국의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김여정 일행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고,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문은 ‘천안함 사태’의 책임 문제라는 명분 속에서 한국 내의 날카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낳고 있다.

올림픽이 서서히 무르익어 가던 2월 13일 지엠 본사는 한국지엠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폐쇄 결정을 발표하면서 지엠은 최근 3년간 군산 공장 가동률이 20퍼센트에 불과했고 한국지엠의 손실이 심각해서 내려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장 군산 공장 폐쇄로 2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며, 1, 2차 협력업체 노동자 1만 명 이상도 같은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많은 사람은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를 완전 철수의 신호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최대 수십 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일자리 늘리기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인데, 이 때문에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지엠의 경영 행태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정부는 지엠의 지원 요청에 대해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사태 속에서 지엠 같은 글로벌 기업이 2008년 이후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경영 전략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소득 아닌 소득일 것이다. ‘Government Motor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적 자금에 기대 생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는 상당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가 더 이상 아닐 것이라는 점 말이다.

끝으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장기 지속적인 일의 표출인 ‘미투’가 있다. 사실 왜 안 터지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검찰에서 시작된 폭로는 ‘문화예술계’와 종교계에까지 나아갔고, 아마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모든 사회 영역에서 분출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도 간간히 노출되었던 학계와 스포츠계 등의 사건도 새롭게 주목받을 것이다. 도리어 문제는 이런 일이 문자 그대로 만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없는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이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미투라는 사태 속에서,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이, 개인들을 비난하거나 징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인의 그런 행태가 가능했던 구조적 문제, 이른바 ‘권력관계’가 재구성될 수 있는가가 관건적인 문제이리라. 하지만 그런 권력관계가 재구성되어 모두가 동등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가 햄릿이 말한 “상상도 못할 일”인가? 누구도 그렇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 정권이 ‘합리적인’ 전략적 판단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주체라면 한편으로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재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이 국면에서 한국을 하나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는 이보다 더 예측하기가 쉬운 일이었다. 인천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엠이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 아닌 소문이 떠돌고 있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엠이 다른 지역에서 보인 ‘경영’ 행태를 보면 예측이랄 것도 없는 예측이었다. ‘미투’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가 문제였지 영원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인지를 헤아릴 게 아니라 상상도 못할 일 자체를 상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선 한반도의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보통 평화 체제라고 말을 한다. 과거에 열망하던 방식의 통일이 의제로 올라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평화 체제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변화까지를 포함하는 게 평화 체제이고, 또 평화 체제가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물론 세력 관계를 염두에 둘 때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약자도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것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남북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일 것이고, 상상도 못할 일은 ‘일방적인 군축’이다.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에 대한 전통적인 대응은 지원과 일자리 유지일 텐데, 현재 지엠의 입장을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해법이 새로운 산업의 유치 혹은 공장의 전환이다. 새로운 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 자체가 현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의 전반적인 방향은 ‘생산’과 일자리의 탈동조화脫同調化다. 이 속에서 지엠과 같은 사태는 시작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할 만한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여가, 한 마디로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활동 전반에 대해 다시 사고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운 경제로 가는 전환이 고통스럽다는 것까지 인정하면서 말이다.

독일의 화가인 샤롯데 베렌트 코린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실 해방되어야 할 여자란 없다. 바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남자들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오래 전의 것이라 여자와 남자라는 두 개의 젠더만 나오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고쳐 말해 본다면, 과거와 현재 권력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는 모두가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모두가 성숙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문명은 어떤 문명일까? 기존 문명의 옹호자들은 그걸 무질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돈에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세 가지 사태에 대해 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거나 실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거나 현재의 주체 역량을 벗어나 있기까지 하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시간 벌기’일 것이다. 물론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항전의 시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장소와 공간이 필요하다. 장소는 모이는 곳이고 공간은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래 걸리겠지만 시간 벌기는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3월호 통권5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

개헌 국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개헌국면(?), 무엇을 할 것인가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1772~1837)는 자신의 ‘사상’과 미래 계획을 구성하면서 인간의 변덕스러움을 주요한 전제로 삼았다. 이를 사회적, 기술적 혁신의 동기에 적용하든 생물학적 돌연변이에 대입하든 그럴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꽤나 보수적이고 완강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일 년 전 가을과 겨울에 우리는 이를 경험했다. 거의 십 년에 가까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극악한 정치적, 사상적 탄압을 경험했음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행동의 의지는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광포한 신자유주의 시절을 이십 년쯤 겪었음에도 ‘이윤보다 인간’을 바라는 우리의 또 다른 욕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87년 민주항쟁이 30주년을 지나면서 우리가 새삼 깨닫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와 기성 정치의 완강함이다. 거리의 정치가 탄핵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지만, 제도의 완강함은 제도의 정치적, 법적 절차를 따라가도록 했고, 이 경로 의존성은 결국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로 끝났다. 물론 이렇게 선출된 대통령은 대중의 열망뿐만 아니라 그 과정도 잘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는 분명 기성 제도의 대통령이며 그 구조를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구조 속에서도 적절하게 통치 혹은 협치의 방법을 배워야 하고, 또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면서 변화의 힘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럴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대통령이 일 년만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시간의 필요성만 말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어떤 전략적 판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운동의 힘을 끌어내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통치 혹은 협치도 기성 정치 내에서 쉽지 않을 것이고, 이는 결국 대중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이유로, “촛불은 개헌으로 완성된다”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편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개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 속에서 제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라는 어떤 전임 대통령의 말처럼, 그렇게 제도 안에서 제도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개헌 자체에 대한 요구는 광범위하고 또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권력 구조의 문제다. 박정희 시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는 구체적인 인격에 따라 사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반대편에 있는 것이 ‘5년 단임제’다. 이는 충분한 역 사적 근거가 있는 제도이긴 하지만 대의제 정당정치의 책임성이라는 문제를 회피하게 만든다. (아예 모든 선출직의 단임제를 다른 시각에서 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직업적 정치가’라는 범주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인격에 따라 광범위하게 남용될 수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해도 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갈린다. 하나는 임기 4년에 중임이 가능한 대통령제다. 다른 하나는 이원집정부제라 불리는 사실상의 내각제다. 여기에 순수 내각제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대의제 정부라는 형태에서 이들 이외에 다른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위스 같은 예도 물론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대중적 호소력을 얻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대통령제와 내각제 가운데 어느 것이 대의제 정부에 적절한지를 따지자면 논리적으로는 내각제가 합당할 것이다. 대통령제는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두 개의 기관이 병립해 있는 양상이며,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더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입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입법 기능은 분명 의회에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왕이 부재한 체제에서 왕 대신에 꼭대기에 있는 자리를 만든 게 대통령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최소한 한국의 대통령은 대중의 열망을 대변하며 그 에너지를 하나의 방향으로 집행하는 힘이기도 했다. 게다가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내각제를 새로운 카스트를 위한 장식물에 불과하다고 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의제에 맞게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가 적절한 권한을 가지도록 하는 개혁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개헌은 권력 구조 때문에만 나온 의제는 아니다. 우선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헌법 내용을 수정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개헌에 대한 요구가 나왔다. 이때 기본권 보장은 두 가지 방향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던 권리를 새로운 헌법에 분명히 새겨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정체성’에 근거한 권리로 표현되며, 실질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차별의 금지다. 다른 하나는 추상적으로만 표현되어 있거나 국가의 의무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 부분을 구체화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사회권’과 관련이 있다.

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개헌의 요구는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성숙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제기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기존의 기본권 보장이 역사적이고 특수한 것이며 새로운 지평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도 제기된다. 예컨대 ‘양성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표현 대신 ‘성평등’이라는 규범을 제시할 때 이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사회 질서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담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본권 보장의 요구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질서가 넓은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근원적으로 소유권 보장 및 이윤 추구의 자유라는 가치 위에 자리 잡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모두가 동등하게 공공의 업무respublica에 참여하는 민주적 공화주의는 충돌하기 마련이다. 물론 역사 적으로 이러한 모순적 결합의 체제는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기도 하고 조작하기도 하면서 유지되어 왔으며, 특히 제2차 대전 이후 상당한 활력을 보이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러시아혁명으로 성립한 사회주의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압력, 총력전에 따른 사회적 압력, 자본주의경제의 내적 모순에 따른 경제적 압력 등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세기말 이러한 압력은 여러 이유로 인해 사라졌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 극한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금융자본과 대기업의 지배라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존재하나 그 실질은 사라진 형해화된 민주주의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이런 의문은 사회권 보장을 아주 획기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주장과 경제적 질서의 바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견해로 이어진다. 전자의 대표적인 것이 기본소득이며, 후자의 경우 토지 공개념의 강화 및 사회적 경제를 새로운 헌법에 적절하게 포함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이번 개헌은 분명 1987년의 헌법 개정에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일 수 있는 커다란 변화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제도적 방식의 제도 변화인 ‘개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기성 질서의 요구에 따른 개헌 이외에 의미 있는 개헌, 사실상의 제헌은 혁명이나 이에 준하는 상황 속에서만 가능했다. 물론 지금이 촛불의 연장선에 있는지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것처럼 광화문에 모였던 대중의 힘은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의탁한 후 뒤로 물러섰다. 이 힘이 제도적 제도 변경인 개헌으로 모일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부분적으로라도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즉 대통령이 말하듯이 기본권 보장과 지방 분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을 6월에 이루어내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인가 아니면 좀 더 포괄적이고 제대로 된 개혁의 내용을 담은 개헌을 계속해서 ‘주장’할 것인가? 물론 현실에서 둘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제 개헌은 국회의 정치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의 정치 지형에는 다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어리석었지만 가장 길게 효과를 미친 것은 (실패한) 커다란 변동 뒤에 곧바로 그러한 변동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촛불혁명이 그만큼 성공했고 또 그만큼 실패한 것이라면, 금세 마찬가지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완강한 제도와 변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를 ‘개헌 국면’에서 실행하는 일은 개헌이 사실상 ‘제헌’이 되도록 하는 활동일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개헌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이 속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이후를 위한 새로운 주체와 조직의 형성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1~02월호 통권5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

 

,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 포르투갈 기본소득 활동가 미겔 오르타와의 인터뷰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2017년 9월 25-27일에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제17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BIEN Congress가 열렸다. “기본소득의 실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는 높아진 기본소득의 지위를 반영하듯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포르투갈 발표자도 적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곧 실시될 수 있다는 기대감, 새로운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것이 될 때 가질 수밖에 없는 조심스러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예전 대회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광범위한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는 오늘날,  ‘온전한’ 기본소득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단 합의를 통해 기본소득에 가까운 어떤 것을 실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이후 기본소득 지지자와 연구자 들 사이에서 하나의 쟁점을 형성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포르투갈 기본소득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활동가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미겔 오르타Miguel Horta는 인터뷰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를 거치지 않은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제출한 계획에 따르면 개인소득세를 폐지하는 대신 모든 사람이 자기 소득의 50퍼센트를 출자하여 매달 동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매달 분배되는 기본소득은 435유로(한화 약 60만원)다. 참고로, 2016년 포르투갈의 1인당 명목 GDP는 19,759달러(한화 약 2,200만원)정도다. 이런 발상은 사회란 연대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인터뷰는 9월 28일 저녁 리스본의 한 식당에서, 그리고 이메일로 이루어졌다.

| 먼저 본인 소개를 해 달라.

1995년부터 포르투갈 정부에서 세금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나중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운동에서는 다른 회원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회원일 뿐이다. 우리는 회원에게 특정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으며 위계제 같은 것도 없다.

|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90년대 초반 나이든 분이 티비에서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창조하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이래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이 사람의 이름은 아고스티뉴다 실바Agostinho da Silva이며, 포르투갈의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이다. 그는모든 일을 기계가 하고 인간은 창조하고, 숙고하고, 자신을 개선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썼다. 그의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었고, 세월이 흐른 후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 아고스티뉴 다 실바가 이야기하던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즉각 이 운동에 뛰어들었다.

| 1990년대 초반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이후 어떤 활동을 했는가?

사실 2013년까지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특별히 한 것은 없다. 2013년에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조직화된 활동가 그룹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참가했다.

처음 이삼 년 동안은 주로 기본소득에 대한 공적 토론에 참여하고 재원 마련 문제를 연구했다. 나중에는 리스본에서 지역 운동을 만들었고,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토론하는 공개 행사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다른 목적을 가진 조직이나 활동가 그룹과 교류하면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전하기도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기본소득 토론을 조직했다.

인터넷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 기본소득의 어떤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첫 번째 관심사는 재정 문제였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어떤 자원으로 마련할 것인가, 민중과 국가 영역 모두에 미치는 재정적 효과는 무엇인가 등이관심사였다. 그러나 그 이후 초점을 바꾸었다. 현재 나의 주된 관심은 서로 다른 기본소득 모델이 민중의 자유, 물질적 재화의 목적, 민중의 물질적 재화에 대한 태도 따위에 가지는 심원한 함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 현재 포르투갈 기본소득운동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기본소득운동이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활동가와 대중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기본소득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에 이는 더욱 확대되었다. 기본소득운동이 양적으로만 성장한 게 아니다. ‘기본소득’이 매우 다양한 어떤 것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사람들이 하면서 질적으로도 성숙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스본에 있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의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분명하게 옹호하는 조직을 만들게 되었다. 이삼 년 전이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Basic Income of All for All” 운동이다.

| 당신이 구상한 기본소득 계획의 정치적, 철학적 배경은 무엇인가?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사회의 올바른 토대라는 확신이다. 사람들이 상호 연대성으로 연결된 공동체는 모두에게 가능한 가장 좋은 삶을 고취할 것이다. 이를 개인의 성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고대의 모든 인간 사회가 연대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부족사회에서 사냥한 동물은 그 동물을 사냥한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집단 모두에게 속했다. 부족사회에서 모두는 동일한 행운과 자원을 공유했으며, 서로를 돌보았다. 인류는 최초의 복잡한문명과 제국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자본주의의 ‘제국’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 지구상에서 인류가 살았던 거의 모든 시기 동안 – 오랫동안 이렇게 살았다. 오늘날 모든 곳에서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으며, 인간 사회는 협동 대신 경쟁의 가치를, 공유 대신 축적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있다. 분명 이것은 과거의 연대보다 자유나 행복을 증진시키고 있지 못하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유럽 역사의 맥락과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혁명 다시 보기

노경덕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I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 등 우리 사회각계에서 이를 기념하는 크고 작은 회합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 회합들의 빈도와 규모는 불과 1년 전 이맘 때 즈음에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이른바 ‘민중의 힘’을 직접 목도하기 이전과 이후의 사회 분위기 차이 때문일 것이다. 촛불과 광장의 기억 속에 러시아혁명은 민중의 힘을 과시한 세계사적 선례로서 자리매김되는 듯하다. 자연히 러시아혁명의 현재적 의의를 찾는 작업들은 대부분 민중의 자발성, 민주주의, 대중 정치 등을 키워드로 삼는 것 같다. 현재 우리의 정치 지평에서 이는 매우 중요하고 생산적인 작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작업은 러시아혁명을 야기한 고유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는 아쉬운 경향도 동시에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이 경향은 러시아혁명을 과거의 세계사 속 여타 민중 반란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면서, 그리고 이를 민중과 지배계급의 권력관계라는 모든 역사 시대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개념 틀을 통해 바라보면서, 더욱 강화된다. 물론 러시아혁명이 민중과 지배계급 간의 투쟁의 사례이며 대표적 민중 반란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혁명을 촉발시킨 그 시대 고유의 맥락을 경시하면서 그것의 의의를 적절히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 맥락은 로마 시대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 종교개혁기 토마스 뮌처의 농민 봉기, 또는 심지어 1989년 동유럽의 반체제 운동 등을 빚어낸 상황들과는 달리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

러시아혁명은 특정 국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출현한 사건이다. 그것은 19세기 초 유럽의 자본주의 및 산업화의 대두, 그리고 그것들이 대세로 자리매김했던 이후의 사회 및 국제 관계의 변동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러시아혁명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맥락이 형성되는 시점, 즉 19세기 초반으로 먼저 시선을 돌려야 하며, 그 후 19세기 후반의 변화 역시 치밀하게 추적해야 한다.

이 글은 러시아혁명과 그 결과를 이런 유럽 역사의 변동 속에 위치시키며 넓게 재술하려는 시도다. 러시아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여러 주요 사회과학적 쟁점들, 즉 민주주의와 독재, 대중과 지식인, 민중의 자발성과 지도 등을 추출해 내어 그 현재적 의의를 살피는 노력은 물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유럽 역사의 흐름 속에서 러시아혁명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II

19세기 초 유럽은 거대한 격변 속에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으로 귀족 중심의 전통적 지배 체제였던 구체제가 몰락했으며, 경제적으로는 한때 산업혁명이라 불리기도 했던 기술혁신으로 인해 공장제 기계공업이 주요한 생산 형태로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핵심 축인 사유재산권 관념의 보급과 공장제 기계공업이 만들어 낸 산업화는 여전히 압도적 다수가 농촌에 살았던 유럽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자본주의의 확대로 토지와 노동에 대한 근본 관념이 변했던 것이 이러한 변화를 강요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구체제에서 유럽의 농민들은 자영농 또는 소작농으로 토지에 대한 관습적 경작권을 유지하며, 곤궁했지만 대체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공동체 관념이 여전히 강했던 농민들은 토지를 협동 노동을 통해 함께 경작하며, 이를 공동의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살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사유재산 관념의 빠른 보급으로 토지 매매가 자유로이 이루어지면서 부호들이 토지를 대량으로 사들인 후 이를 양목이나 공장 부지 등 사업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많은 농민이 자신들의 토지를 매각해야 하는 입장이 되거나 또는 빌린 토지에 대한 관습적 경작권을 박탈당하면서, 도시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 도시와 그 인근에서 일어나고 있던 산업화의 물결은 이제는 노동자가 된 이런 농민 출신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밀려드는 노동자들을 감당하기에 당시 공장 상황은 너무도 열악했다. 주거, 교육, 육아, 위생 등의 기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다수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공장으로 몰린 탓에 저임금은 흔한 현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농촌적 심성과 생활 방식을 그대로 몸에 지니고 있는 이 농민 출신 노동자들은 도시와 공장이라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자연 리듬에 맞추어 노동하고 노동과정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었던 농촌과는 달리, 공장은 기계 리듬에 따른 노동을 강제했고 노동과정 또한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미리 짜놓은 일정에 억지로 맞춰져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 출신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겪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이 새로운 공장제 기계공업이라는 체제에 끝내 융화되지 못하고 도시 빈민, 부랑아, 범죄자가 되기도 했다.

이런 거대한 변화는 불과 수십 년의 기간 내에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당시 언론 표현이 말해 주듯 그 시대 지식인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어 모든 지식인이 느끼는 것이었다. 자연히 많은 이가 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착목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고, 그 나름의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 비판자들 중 가장 낙관적이었던 이들은 자본주의와 산업화를 대세로 보면서 당대의 문제들을 과도기적 고통으로 취급하려 했다. 물론 이들 역시 현재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당장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말이다. 반대로, 가장 비관적인 시각을 가졌던 이들은 이 문제들을 훨씬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산업화에 대한 전면 거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두 극단파 사이 중간 지점 어디엔가 있었으며 당대에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상적 흐름이자 운동이 다름 아닌 사회주의였다. 사회주의자라 자처한 이들은 당시 산업화가 전달해 주는 근본적인 혜택과 장점을 십분 인정했지만, 그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던 경제체제인 자본주의가 그 혜택과 장점을 사회의 극히 일부분에게만 매우 불공정한 방식으로 전달해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거부가 산업화의 장점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이었다. 첫째, 자본주의는 사회에서 생산된 재화 모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체제다. 그리고 그 시장은 이윤추구라는 개인의 계산적 동기에 의해 점철된다. 그들이 보기에 그 동기는 전통, 도덕, 사회적 보호 등의 보다 인간적이고 감성적 측면을 점차로 차가운 계산의 속성으로 대체하며 인간 세상을 경쟁의 세계로 만든다. 나아가 시장은 그 경쟁의 공정성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에 입장하는 개별 주체들의 체급 제한은 없다.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모두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일단 시장에 들어오면 그 헤비급이 스스로의 노동의 결과로 몸집을 불렸는지 아니면 단지 부모를 잘 만났거나 여타 부정한 방식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점검할 길도 없다. 둘째,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이 같은 유통과 거래의 형태 말고도 생산양식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매우 지엽적인 생산방식이던 임금노동제를 사회의 주류로 만들어 놓고 있다. 자본주의는 위에서 말한 ‘경쟁’ 원칙 때문에, 인간 노동의 환경이나 조건보다는 생산성 제고에만 골몰한다. 따라서 효율성만을 잣대로 생산의 도구, 즉 기계류를 만들어 내고 그 기계를 직접 다루는 사람들의 노동과정을 통제하려 든다. 그들이 보기에, 자본주의는 이 도구와 이를 다루는 이들을 노동 현장에서는 가깝게 위치시키지만 법률적으로는 완전히 분리시켜 놓는다. 하루 종일, 그리고 평생 생산도구를 직접 만지는 이들은 이에 대한 아무런 권리가 없는 대신에, 이를 시장에서 값을 주고 구입한 이들, 즉 소유권자들은 기계와의 먼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소유권을 행사한다. 법률적 차원에서 생산도구로부터 유리된 채 직접 생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그 도구의 소유권자들에게 하나의 상품으로서 팔고 그 대가로 현금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위엄은 점차 사라지고, 생산자들은 대체 가능한 생산의 요소들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이미 취업한 이들은 하시라도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그리고 아직 이런 ‘직업’을 찾지 못한 청년들은 그들의 노동력을 팔릴만한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생산관계에서의 약자의 위치 탓에, 노동자들은 생산과정 내부에 은폐되어 있는 불공정한 잉여가치 분배 기작에 근본적으로 저항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거래 및 생산 구조에서 자본가의 노동력 착취는 필연이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기본소득과 평등선거권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I. 제10차 헌법개정 – 논의 현황과 이 글의 과제

30년 만에 이루어지는 헌법개정이지만 국민적 관심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헌법개정 논의가 국회의 개헌특위라는 제도적 범위로만 가두어지고 전 국민적 토론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또한 실제로 개헌이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조차 원내정당들의 합의에 달려 있다는 정치적 현실도 헌법개정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에 한몫한다. 물론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발의권은 현행 헌법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법률에 대한 국민발안권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권 등 여타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부재와 함께 1987년 헌법의 중요한 결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헌법개정은 국민주권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이라면, 최고 규범인 헌법을 제정하고 개폐할 수 있는 권력은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설령 실정 헌법이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발의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30년 만에 이루어지는 헌법개정 과정은 아래로부터 시민 참여가 보장되고 촉구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개헌특위의 활동은 매우 미흡하다.

헌법개정의 과정뿐만 아니라 최종적인 개정 내용면에서도 국회개헌특위의 논의는 통치 구조 문제 중심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6월 말 국가인권위원회가「기본권보장 강화 헌법개정(연구포럼안)」을 공표한 것은 분명 생산적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 (헌법개정안 전문은 이 안을 놓고 열린 토론회자료에 담겨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자칫 통치 구조 개편 중심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개헌 논의에 기본권 강화라는 큰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의 개헌안은 “기본권보장 강화”라는 목표 하에 거의 모든 기본권 조항과 주요 쟁점을 망라하고 있다. 그 주요한 내용을 살펴보자면, 1) 총강에서 “인권국가” 지향(개정안 제1조 ③항)을 명확히 하고, 2)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고(개정안 제43조 등), 3) 사형제를 폐지하며(개정안 제11조 ②항), 3) 평등권과 관련해서도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현행 헌법 제11조)으로 되어 있는 차별 사유를 “성별, 종교, 인종, 언어, 출신지역, 장애, 나이, 성적지향, 학력, 사상, 정치적 의견, 사회적 신분 등 어떠한 이유”(개정안 제15조 ②항)로 확장하고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개정안 제15조 ③항)를 추가하였다. 4) 자유권과 관련해서도 망명권의 신설과 난민 보호 조항의 추가(개정안 제21조 ②항 및 ③항),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의 강화(개정안 제26조 및 제27조) 등이 돋보인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정안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현행 헌법 제34조)의 개정안이다. 국가인권위 개정안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별도의 절(제2장 제4절)로 편성하고 그 아래에 10개의 조항(개정안 제30조∼제39조)을 두었다. 최저임금제 시행과 적정임금 보장의 명시화(개정안 제36조 ②항), 여성근로의 차별 금지 강화와 보호(개정안 제36조 ⑤항), 지속 가능한 발전의 원칙(개정안 제38조 ②항), 동물 보호(개정안 제38조 ③항) 등 개별적인 조항들도 주목할만하지만, 가장 획기적인 내용은 제2장 제4절“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첫 조항인 제30조 ①항에 기본소득을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본소득에 관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정안은 기본소득 보장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응하는 총괄적인 국가 의무로 파악한다. 기본소득 보장을 국가 의무로 명시하자는 국가인권위원회 헌법개정안은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안에 관한 더욱 진전된 논의를 촉발시켰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지난 8월 24일 “새로운 헌법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개헌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문화연대, 소박한 자유인, 알바노조, 노동당, 녹색당 기본소득의제모임, 평등노동자회, 청년좌파 등이 결성한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는 지난 8월 30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기본소득개헌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같이 기본소득개헌운동이 활성화된 배경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본소득을 국가 의무로 개헌안에 포함시킨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본소득을 기본권이 아니라 국가 의무로만 표현한 것은 헌법 해석론에 따라서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을 발생시킬 수 있다. 해석상의 차이를 낳지 않으려면 기본소득은 보다 적극적으로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시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기본소득 보장을 위한 헌법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을 다루는 일은 이 글의 첫 번째 과제다.

*이준일(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동석(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금민(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이 발제자로 참여한 개헌토론회 자료집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basicincomekorea.org/170824forum-proceedings/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기본소득운동의 지역 확대 흐름과 2017년 알래스카 설문조사 결과

박선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무국장

이번 호에서 소개할 기본소득 관련 소식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간단하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는 흐름을 소개할 것이고, 주로는 지난 2017년 3월에 실시된 미국 알래스카 주민 설문결과를 살펴볼 것이다.

1. 전남네트워크와 대구네트워크가 만들어지다

지난 2017년 9월 9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회에서 기본소득전남네트워크와 기본소득대구네트워크가 승인되었다. 이로써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지역네트워크는 여섯 곳이 되었다. 대전과 인천 두 곳이 있었을 뿐이었다가, 올해 들어서 전북과 부산에 만들어졌고, 이번에 또 전남과 대구에서 새로운 지역네트워크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최근의 확대의 흐름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이 같은 지역네트워크의 출범과 활동은 다양한 (정치적)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기본소득운동을 펼치려는 시도다. 어떤 지역네트워크는 교회와 정당의 만남이라는 특징을 보였고, 몇몇 지역네트워크는 기본소득 지지를 표방하고 있는 노동당과 녹색당 등의 당원들이 기본소득으로 뜻을 모아 만들었다.
또한 최근의 지역적 확대에는 현재 진행 중인 기본소득 개헌운동이 다소간의 구심력 역할을 하고 있다.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의 기본소득 개헌 캠페인이 전국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을 하나둘씩 모이게 하고 있고, 지역마다 기본소득을 위한 공동 행동의 싹을 틔우고 있다.

2. 2017년 알래스카 설문조사 결과: 알래스카 주민들의 극적인 인식 변화가 보이다

2017년 3월 22일부터 4월 2일까지 알래스카 주민들을 정확하게 대표하는 유권자 1,004명에게 전화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나왔다. 하스태드전략연구소Harstad Strategic Research에서 실시한 이 조사는 알래스카 영구기금배당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특히 1984년과 2008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와 비교해 보면 아주 극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하의 내용은 하스태드전략연구소가 ‘경제적 보장 프로젝트The Economic Security Project’에 보낸 결과 분석서(https:// www.scribd.com/document/352375988/ESP-Alaska-PFD-Phone-SurveyExecutive-Summary-Spring-2017)를 요약한 것이다.

알래스카영구기금배당은 여성 취약층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알래스카영구기금배당은 연 1회 지급되었고 2천달러(약 230만원) 수준이었다. 가구원이 3명 이상(47%)인 경우와 2명(34%)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따라서 연 배당금은 가구당 4천달러 또는 6천달러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난 5년간 이 정도의 영구기금배당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는지를 묻자, 무려 40%가 “아주 많이” 또는 “상당히” 삶이 바뀌었다고 대답했고,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은 20%였다. 변화는 특히 여성 취약층에서 컸다. 조사 결과,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여성, 비혼 여성, 어린 자녀에 함께 사는 여성 가구소득이 5만달러 미만인 여성, 알래스카 선주민 여성 등의 경우, 영구기금배당 덕분에 자신의 삶이 “아주 많이” 또는 “상당히” 바뀌었다는 응답이 50% 이상이었다.

영구기금배당은 알래스카에 매우 건설적인 영향을 주었다

11개 항목을 제시하고 배당이 그 항목 각각에 이로웠는지 해로웠는지를 물었는데, 주민들은 그중 9개 요소에 배당이 분명히 건설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3분의 2 이상의 주민들이 “미개간지 주민의 생활 조건”, “알래스카 주의 경제”, “삶의 질”, “알래스카 선주민들의 상태”, “대학 등록금을 위한 저축”, “가구 예산”, “알래스카 주의 빈곤 수준” 등 7개 요소에 도움을 준다고 답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땅의 사람들이 읽은『자본』들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1867년에 나온『 자본』 제1권 독일어 초판의 표지. 출판 업자로 함부르크의 오토 마이스너와 함께 뉴욕의 L. W. 슈미트도 표시되어 있다.

올해는 칼 맑스Karl Marx(1818∼1883)의 『자본』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온 지 150년 되는 해다.『자본.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라는 시리즈의 첫 권(“자본의 생산과정”)은 “1867년 9월 14일” 자로 ‘오토 마이스너 출판사Verlag von Otto Meissner’에서 나왔다. 맑스보다 한 해 늦게 1819년에 태어난 칼 오토 마이스너는 혁명이 한창이던 1848년에 함부르크에서 출판사를 차렸고, 1866년에 맑스의 원고를 받아 출판을 준비했다. 초판은 1,000부를 찍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출판사는 지금도 건재하다. 1867년에 나온 『자본』 제1권은 그 뒤 저자 자신에 의해 한 번(1873년) 대대적으로 수정되었고, 프랑스어(1875년)로 번역되면서 저자에 의해 원고가 다시 검토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죽은 뒤에는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1820∼1895)에 의해 두 번(1883년과 1886년) 보완되어 제4판까지 출판되었다. 제2권 (“자본의 순환 과정”)과 제3권 (“자본주 의적 생산의 총과정”)은 모두 맑스가 죽은 뒤에 엥겔스가 원고를 모아 출판했고, 제4권 (“잉여가치에 관한 이론들”)은 엥겔스도 죽은 후에 칼 카우츠키Karl Kautsky(1854∼1938)가 편집하여 처음으로 출판한 후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보완했다.

맑스가 언제 어떤 계기로 경제학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또한 연구 계획과 집필 및 발표 계획을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 따위의 이야기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이 글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읽은 맑스의 그 책들에 대한 소개다.

식민지 시대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 해방을 맞을 때까지 맑스의 그 저작은 조선어 또는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 않았다. 그 책의 저자 또는 편집자가 알려 준 바에 따르면, 독일어로 된 원저는 러시아어(1872 년), 프랑스어(1875년), 영어(1886년)로 번역되어 있었다. 식민지 시대 조선의 해방을 위해 싸우던 한반도 사람들이 이런 언어로 된 그 책을 읽었을까?

이병주(1921∼1992)가 1980년대에 완성한 대하소설 『지리산』의 시대적 배경은 식민지 시대 말기부터 한국전쟁까지다. 이 소설에는 보광당이라는 조직에서 권창혁이 이규에게 맑스의 『자본』을 원서로 읽히며 독일어를 가르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규가 프랑스와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권창혁이라는 인물이 그럴 만큼 그 책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럴 만한 수준의 독일어 실력인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소설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마도 그 시절 이 땅의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다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아니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맑스주의’의 깃발을 들고 혁명이 성공한 것은 1917 년이지만, 러시아어로 『자본』이 처음 번역된 것은 1872년이다. 맑스 도 1873년에 독일어 제2판 「후기」에 “『자본』의 우수한 러시아어판이 1872년 봄 뻬제르부르그에서 발간되었다”라고 썼다. 이 번역은 미하일 알렉싼드로비치 바꾸닌이 시작하였으나 결국 니꼴라이 다니엘슨이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 뒤 1907년에서 1909년에 걸쳐 스끄보르초르-스쩨빠노프와 블라지미르 바자로프가 번역하고 알렉싼드르 보그다노프가 감수한 러시아어판 『자본』이 출판되었으며, 이것이 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도 가장 권위 있는 번역으로 인정되었다. (러시아어《위키피디아》 <자본론> 항목 해당 부분은 최문정 님이 번역해 주었다.)

추측컨대 동방노력자대학(모스크바공산대학)에 유학했던 조선인 혁명가들이 거기서 『자본』을 공부했다면 보그다노프가 감수한 책을 읽었겠으나, 그런 기록은 찾지 못했다. 이 분야 연구자들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신고리5, 6호기공론화위원회, 공약의 후퇴인가 한 걸음 전진인가

용석록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사무국장

 

신고리핵발전소 5, 6호기 건설을 중단할 것이냐 재개할 것이냐 문제를 놓고 공론화 과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500명의 시민참여단의 권고안을 받아 최종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행사에 참석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국무회의를 거쳐 ‘신고리5, 6호기공론화위원회’가 7월 24일 출범했다. 출범 이후 한 달 가까이 공론화위원회 운영 방법 등을 논의하고, 8월 25일부터 9월 11일까지 18일 동안 국민 2만 명을 대상으로 1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가운데 시민참여단 500명을 선정했고, 그 첫 오리엔테이션이 9월 16일 천안에서 열렸다. 그동안 정부의 공론화 방침에 대해 대체적으로 침묵하던 탈핵 진영이 시민참여단 오리엔테이션 전후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신고리5, 6호기공론화위원회가 공론화 과정을 공정하게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글에서는 이 문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 추진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신고리 5, 6 호기 공론화 과정이다.

핵발전소 전체 공론화 아닌 일부 공론화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탈핵을 선언하고 그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와 ‘계획 중인 핵발전소 건설 전면 중단’,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금지’를 약속했다. 또 현안 지역 시민단체와는 완공 단계에 있는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 2호기 건설을 잠정적으로 중단함과 동시에 이들 발전소 운영 여부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협약을 체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현안 지역과의 협약 체결 내용을 바탕으로 본다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는 공약의 후 퇴임이 분명하다. 완공 단계인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 2호기 건설을 중단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고리 5, 6호기도 정부가 건설을 중단시키지 않고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 아래 공을 국민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탈핵 진영 내에서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현재 정부 공론화위원회의 소통협의회 대화 창구인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신고리5, 6호기백지화시민행동’ 진영의 취지는 신고리 5, 6호기를 공론화 과정을 통해 백지화하고 이후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 2호기, 노후 핵발전소 조기 폐로 등으로 탈핵 로드맵을 짜서 추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 영덕 등 현안 지역 탈핵 활동가는 탈핵 진영이 정부의 공론화위원회와 파트너(협상 대상 또는 대화 창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현 정부가 약속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를 ‘지금 당장’ 정부가 이행토록 요구하며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 2호기의 건설을 중단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가 중반을 달리고 있는 지금, 탈핵 진영은 다소 당황해 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선거 이전과 직후에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에 찬성하는 국민이 약 70%대였으나 공론화 과정 중인 지금은 건설 중단과 건설 재개 의견이 50대 50으로 팽팽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공론화 결과 시민참여단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라는 권고안을 낸다면 정부로서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백지화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 2호기 건설 중단은 사 회적으로 동의 받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이 필요하다고 했던 의견이 70%에서 50%대로 낮아졌을까. 대선 때는 2016년 9월 12일에 있었던 규모 5.8 지진의 여파로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중단하려고 보니 원자력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언론은 연일 매몰 비용, 일자리 문제, 전기 요금 문제 등을 보도했다. 반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측 목소리는 대체적으로 축소되어 보도되거나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정부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왕의 말은 어디로 갔는가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어렸을 때 맨 처음 읽은 추리소설은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모르그 가의 살인』이었다. 『모르그 가의 살인』은 여러 평론가들과 학자들이 최초의 추리소설로 꼽는 작품이다. 나중에 『모르그 가의 살인』이 최초의 추리소설로 평가받는다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뭔가 기묘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최초로 읽은 추리소설이 역사상 최초의 추리소설이라니. 하지만 이런 정도의 일을 기묘한 우연이라고 여기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이리라. 그 당시 어린이 책은 전집류가 대세였고, 추리소설 전집이라면 첫머리에 포의 작품이 오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포의 작품을 최초의 추리소설로 꼽는다고 했지만, 이것은 다수의 견해일 뿐이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되도록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성서, 헤로도토스, 볼테르에게서 “추리의 조각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 중에서 볼테르의 작품은 실제로 추리소설의 한 대목처럼 읽힌다. 『자디그』 3장에 나오는 「개와 말」 이야기다. 『자디그』는 1747년에 처음 출판된 책이다. 『모르그 가의 살인』이 1841년에 발표되었으므로 최초의 추리소설보다 백 년쯤 앞선 작품이다.

 

개와 말

『자디그』는 일종의 우화집으로 『아라비안나이트』의 분위기를 짙게 풍기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자디그는 바빌론의 지혜로운 젊은이인데, “신께서 우리들 앞에 펼쳐 놓으신 위대한 책의 비밀을 읽어내는 철학자”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숲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왕비의 환관 우두머리와 여러 신하들이 몹시 근심스런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가장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고는 다시 찾으려 넋을 잃은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환관장이 자디그에게 물었다.

“젊은이, 혹시 왕비님의 개를 보지 못하셨소?”

그러자 자디그가 겸손하게 대답하였다.

“수캐가 아니라 암캐이지요.”

“당신의 말씀이 옳소.” 환관장이 대꾸하였다.

“아주 작은 스패니얼 종이지요. 얼마 전에 새끼를 낳았고, 왼쪽 앞다리를 절며, 귀가 매우 길지요.” 자디그가 그렇게 덧붙였다.

“그렇다면 개를 보셨다는 말씀이오?” 환관장이 아직도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아닙니다. 그 개를 본 적은 없습니다. 또한 왕비께서 암캐 한마리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 “운명의 변덕 탓으로” 왕의 마구간에서도 사건이 터졌다. 마구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말이 도망친 것이다. 왕실의 경비대장도 여러 관리들과 함께 다급하게 말을 찾아 나섰다. 이 우두머리의 근심도 환관장 못지않았다. 경비대장이 자디그에게 왕의 말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자디그는 아무런 설명 없이 직설적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어느 말보다도 잘 달리며, 키는 5피에이고, 굽이 매우 작지요. 꼬리의 길이는 3.5피에이고, 재갈의 장식은 23캐럿 황금으로만들었으며, 편자는 11드니에 은으로 주조했지요.” [1피에=약0.324미터, 1드니에=약 1.296그램]

“그 말이 어느 길로 들어섰소? 그것이 어디에 있소?” 경비대장이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그러한 말이 있다는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자디그의 대답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니 경비대장과 환관장은 자디그가 왕의 말과 왕비의 암캐를 훔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디그는 대재판관들에게 끌려가 태형과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다행히도 형이 선고된 직후에 말과 암캐가 발견된다. 어쩔 수 없이 판결은 취소되었지만, 자디그는 “보고도 보지 못하였다고 말했다”는 죄목으로 황금 400온스의 벌금을 부과받게 된다. 일단 벌금을 내고 나서야 자디그는 변론을 펼 수 있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시급 7,530원으로 실업 대란이 일어난다는 호들갑에 대하여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

 

고용이 줄었다구요?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된다고 고용이 줄어든다는 증거는 없다. 직관에 반하는가? 적어도 지금까지의 한국에서는 그랬다.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한 것은 2001년의 16.6%, 그 다음은 2005년의 13.1%다.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한 것은 2010년의 2.8%, 그 다음은 2009년의 4.9%다. 이때의 실업률과 취업률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2001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역대급이라고 말하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보다도 높다. 그런데 전년에 비해 실업이 0.4%p 줄었다. 착각이 아니다. 21세기에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했던 2010년에는 전년에 비해 실업률이 0.1%p늘었고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을 보인 2009년에는 0.4%p가 상승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른 해에는 취업률 역시 높아졌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최저임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청년실업률과 노년실업률의 증감을 비교해 보겠다. 대체적으로 청년기와 노년기에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할 확률이 높으며, 최저임금으로 실업이 우려되는 일자리에 종사할 것이다. 아래의 표에서 청년은 15∼24세이며, 노년은 55∼64세다.

청년과 노년의 실업률 역시 최저임금 인상률과 상관관계를 찾아볼 수 없다. 최저임금을 16.6%나 인상했는데도 청년실업률과 노년실업률은 전년도에 비해 감소했다. 한 해 비교는 여러 요인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수 있으므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5년과 별로 올리지 않은 5년을 비교해 보겠다.

평균 연간 12.2%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서 2005년 사이에 실업은 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았던 시기보다 실업률 감소 폭이 약간 낮지만, 실업이 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취업률 증가 수치는 최저임금 인상률과 상관없이 비슷하다.

최저임금 외에도 실업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이 있으므로 최저임금이 오르면 실업이 줄어든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이 실업 억제에 기여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 상당수가 실업자가 되어 거리에 나앉게 된다고 공포를 전도하는 이들은 이 객관적 사실에 대해 해명할 의무가 있다.

 

2년 새 최저임금 58% 올린 시애틀, 결과는?

미국 시애틀 시는 머리 시장 주도 하에 2015년부터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인상시켰다. 5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2015년 시간당 최저임금 9.47달러를 2017년 15달러로 무려 58%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500인 미만 기업은 13달러로 37% 인상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마이클 라이히, 실비아 알레그레토, 안나 고도이 등이 결과를 분석한 논문을 지난 달 발표했다. (이 논문은 http://irle.berkeley.edu/seattles-minimum-wage-experience-2015-16/에서 볼 수 있다). 결론의 핵심 문장을 그대로 옮겨 보자.

The evidence collected here suggests that minimum wages in Seattle up to $13 per hour raised wages for low-paid workers without causing disemployment.

시애틀에서 시간당 13달러로 최저임금이 인상된 것이 저소득 노동자들에게 실업을 야기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이 보고서는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 후 경제 상황을 검토하면서, 모든 산업 분야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줄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비슷한 경제 상황에 있는 다른 도시들보다 고용 효과가 더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애틀의 실업률은 2015년 1월 4.2%에서 2017년 1월 3.1%로 1.1%p하락했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그것도 무려 37%~58%나 상승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실업률이 하락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시애틀이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의 고용 축소 효과가 상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이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은 대조군으로 시애틀과 경제구조가 비슷한 여러 지역을 설정해서 최저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을 추정한 뒤 이 추정치와 실측치를 비교하는 방식을 썼다. 호황이라는 외적 요인을 배제하고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분석했다는 것이다. 결론은? 시애틀 노동자들의 소득은 대폭 올랐는데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조차도 줄지 않았다.

이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보고서와 거의 동시에 나온 워싱턴주립대의 보고서가 잠깐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보고서의 요약문은 http://www.washington.edu/news/2016/04/18/early-analysis-of-seattles-15-wage-law-effect-on-prices-minimal-one-year-after-implementation/에서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 이후 저임금 일자리의 임금은 3% 올랐지만 근로시간은 9%가 줄어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월평균임금이 125달러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했다는 이 보고서를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국내 언론들이 대거 인용했지만 문제점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